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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그러나 그는 죽지 않는다
작가 : 에르노
작품등록일 : 2016.10.5

누군가 그를 미친듯이 원한다! 영문도 모른 채 쫒기는 소년, 그는 어째서 납치당하는가?
벗어날수록 옭아매오는 그물, 그는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지금 치명적인 음모가 정체를 드러낸다!

강대한 라니냐 제국의 볼모가 되어버린 도림 왕국의 태자, 상냥하고 친절하나 실은 비성숙한 자아에 고통받는 그는 제국을 적대하는 식민지 독립파에 의해 납치당하고 만다. 탈출을 시도하고 흉악한 적들과 추격전을 벌이며 이색적인 해적과 조우한다. 스릴 넘치는 모험과 풋풋한 사랑을 통해 자아의 성장을 일궈나가는 다크판타지.



표지는 핀터레스트 펌입니다.

 
15.루비가 박힌 단검
작성일 : 16-10-18 18:08     조회 : 410     추천 : 0     분량 : 8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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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장미당 당수가 암살당했다.

 

  적장미당 당수에게 협박편지가 전해진 뒤, 정국은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적장미당은 당연히 청장미당의 소행으로 간주했다. 그들은 그 편지 안에 담긴 여차하면 죽이겠다는 내용을 들먹이며 청장미당의 부도덕함을 주장했다. 물론 청장미당은 한사코 그런 일을 꾸미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금 당장 풀어나가야 할 다양한 현안이 있었으나 전혀 진전되지 않았다.

 

  사태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궁정 곳곳에서 청장미당 의원과 적장미당 의원 간의 말싸움이 벌어지는 건 일상이었다. 개 중 몇몇은 술에 취해 서로 쌈박질까지 했다. 그 모습을 보며 황제의 관료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용기 있는 관료는 회의 시간에 황제에게 다음과 같은 간언을 하기도 했다. 이 사태의 원인은 적장미당을 후원하는 군수 길드와 청장미당을 후원하는 무역 길드의 이권 경쟁이다. 비록 증거는 없었지만 많은 공감을 얻었다.

 

  황제는 아무 말이 없었다. 언제나 그렇듯 침묵으로 일관할 뿐이었다. 그가 무슨 꿍꿍이인지 누구도 몰랐다. 선화는 이 답답함이 마음에 안 들어 한 번은 황제와 대면까지 했다. 그러나 시시콜콜한 이야기만 나눌 뿐, 중요한 말은 하나도 안 했다. 선화는 결국 소득 없이 물러났다.

  대자의 생사도 알 수 없는 지금, 제국의 앞날에 안개가 끼었다.

 

  바로 그 때, 적장미당 당수가 암살당한 것이다. 사인은 날카로운 비수로 인한 심장 관통이었다. 의원들과 술을 마시다가 요의를 느껴 잠시 골목길로 나왔을 때 참변을 당했다. 이 사건 이후 정국은 마비되었다. 일이 하나도 진전되지 않았다. 적장미당과 청장미당 간의 사병 전투가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였다.

 

  그러나 용의자는 나오지 않았다.

 

  선화는 대자의 방에서 한숨을 쉬었다. 창문 너머 장미정원을 바라보았다.

 

  ‘의원들이 모두 힘을 합쳐 대자 구출에 힘을 써야 할 지금, 이런 불필요한 소모전이나 벌이다니.’

 

  헬라는 도자기를 걸레로 정성스럽게 닦고 있었다.

 

  “선화님, 고민이 깊어 보이네요.”

 

  “응. 지금 상황이 너무 답답해서.”

 

  선화는 또 한숨을 쉬었다.

 

  “의원들은 대체 왜 있는 걸까? 차라리 황제만 있는 게 제국이 더 잘 굴러갈 것 같아. 우리나라처럼 말이야. 우리나라의 전 왕국은 당파 간 싸움이 매우 극심했어. 서로 간에 숙청도 벌어지고. 그러다가 결국 파국을 맞았지. 그런 중 당파 중 하나가 왕당파로 돌아서서 왕을 도와 정국을 정리하고 새롭게 왕국을 일신하여 왕의 독재체제를 세웠어. 그러고 나서야 우리나라는 동방의 맹주가 되었지.”

 

  헬라는 미소 지었다.

 

  “후후, 하지만 제국에게 있어 의회의 역사는 깊어요. 함부로 혁파할 수는 없답니다. 혁파할 방법도 마땅치 않고요. 황제에게 반기를 들지 않는 이상은 말이죠. 근데 의회가 그럴 리가 없죠. 후후.”

 

  “황제폐하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도통 모르겠어. 그 분은 왜 사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 거지?”

 

  헬라는 화제를 돌렸다.

 

  “딱딱한 정치 이야기는 선화님에게 맞지 않답니다. 저는 선화님의 오라버니에 대해 얘기가 듣고 싶네요.”

 

  “오라버니?”

 

  선화는 천장을 바라봤다. 오빠에 대한 게 뭐가 있을까.

 

  “아. 저희 오라버니는 궁궐에서 지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오빠가 말하길, 너무 답답했대요. 그래서 어렸을 때는 항상 밖에 나가서 놀고 공부도 안 했다고 했어요. 그러다가 아바마마한테 크게 혼나고 몇 주일 간 방 안에 갇혀 지낼 때도 있었고요. 물론 좀 나이 들고는 어느 정도 순응하고 공부에 힘을 기울였지만요.”

 

  선화는 살며시 미소 지었다.

 

  “오라버니는 상냥하면서도 마음이 여려요. 옛날에는 여행 갔다가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잔 적이 있었는데, 갑자기 오라버니가 울더라고요. 놀라서 제가 왜 우냐고 물었더니, 언젠가 죽으면 마치 세상에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렇게 무(無)가 되어버리는 것에 대해 생각했더니 무서워서 울었더라고요. 재밌지 않아요? 노인도 아니면서 죽음을 생각하고 울다니.”

 

  그런 오라버니를 생각하니 지금 오라버니가 처해 있을 상황에 오라버니가 더 가여워졌다. 얼마나 외로울까.

 

  선화는 결심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일어섰다.

 

  “안 되겠어. 한 번 더 황제를 만나야겠어. 헬라, 준비해줘.”

 

  헬라는 선화가 황제를 접견할 준비를 했다. 대단한 건 아니고 향수를 새로 뿌리고 몸단장을 하는 것뿐이다. 도림의 궁궐에서는 한복 하나로 하루 종일 쏘다녔던 선화는 매 용무마다 옷을 바꿔 입어야 한다는 게 어색했다. 선화는 헬라의 즐거운 표정을 보며 물었다.

 

  “헬라는 저번도 그렇고 황제를 보러 가면 싱글벙글하네?”

 

  “아하, 그럼요. 황제폐하는 멋지신 분이니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황제폐하를 존경한답니다. 무엇보다 절 이 궁전에 고용하신 분이 황제폐하시거든요. 시종인 하나하나 황제의 허락 아래에 고용될 수 있답니다. 저는 떨어질 뻔 했는데 황제폐하께서 제 진가를 알아보시고 특채해주셨죠. 이렇게 고마울 데가 있나요.”

 

  선화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호오, 황제에게도 그런 면이 있구나.”

 

  “전 황제폐하가 상냥하신 분이라고 믿어요. 선화님께도 상냥하지 않나요?”

 

  “으음, 뭐, 그렇지.”

 

  확실히 황제는 선화를 볼 때마다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게 마음에서 우러나온 걸까? 확신할 수 없다.

 

  모든 준비를 마쳤다. 선화는 헬라를 동행하고 황제의 집무실로 갔다. 문 앞에는 도금을 한 풀 플레이트 갑주를 입은 호위병이 서 있었다. 선화가 용건을 말했다. 호위병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문을 두드렸다. 대자가 왔음을 알리는 것이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나지막이 황제의 허락이 들려왔다.

 

  “들어가십시오.”

 

  호위병은 옆으로 비켜서서 문을 열어주었다. 선화와 헬라는 함께 집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선화는 집무실을 둘러보았다. 담백했다. 소른 대륙 중앙부에 위치한 분지의 소국에서 수입한 기하학적 무늬의 융단이 바닥에 넓게 깔려있었다. 벽면은 하얀 벽지로 도배했고 멋진 풍경화들이 걸려있었다. 아치모양의 창문으로부터 햇빛이 쏟아져 들어와 집무실의 책상과 접대용 탁자와 소파에 흘러넘치고 있었다. 황제의 책상 뒤에는 붙박이 책장이 있어 빼곡하게 형형색색의 겉표지가 붙은 책이 들어차있었다. 책상 위에는 온갖 서류들이 쌓여있었고 필기구가 어지러이 놓여있었다.

 

  황제는 한창 서류를 결재하는 중이었다.

 

  선화가 말했다.

 

  “폐하, 잠시 얘기해도 괜찮으신지요?”

 

  “잠시란 말은 곧 길게 하잔 뜻이지.”

 

  황제는 접대용 소파를 가리켰다.

 

  “거기 앉아있어라. 서있지 말고.”

 

  선화는 헬라와 함께 소파에 앉았다. 황제는 일어나 기지개를 폈다.

 

  “폐하, 일이 많으신 것 같네요.”

 

  “의회도 탐 나태하단 말이야.”

 

  에드워드 황제는 소파 맞은편에 앉았다.

 

  헬라가 그에게 인사를 드렸다.

 

  “폐하, 안녕하셨는지요?”

 

  “물론이네. 나 대신에 대자를 돌보느라 고생이 많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후후후.”

 

  헬라는 약간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선화는 속으로 경악했다. 서, 설마! 아니야. 내가 잘못 생각 한 거야. 둘이 나이 차이가 얼만데! 그냥 헬라가 좀 엉뚱한 사람이라서 그런 거야. 진정하자, 진정해.

 

  “아니, 황제폐하!”

 

  갑자기 헬라가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 선화는 긴장했다. 이번엔 또 어떤 기행을 시작하려고?

 

  “구두가 이렇게 더러우시다니, 안 됩니다!”

 

  헬라는 주머니에서 걸레를 빼들었다. 그러더니 황제의 발치에 앉아 구두를 쓱삭쓱삭 닦기 시작했다. 헬라는 땀까지 흘려가며 정성을 다했다.

  “황제폐하는 곧 제국이십니다! 제국의 발이 이렇게 더럽다니, 용납할 수 없습니다!”

 

  선화는 어물어물거리며 무어라 말했다.

 

  “그, 어, 폐하? 헬라가 좀, 음, 이상한 구석이 있어요! 지, 지금도 결코 그 폐하를 욕보이려는게 아니라, 그, 너무 지나친 거에요! 폐하를 존경하는 마음이!”

 

  에드워드 황제는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괜찮아, 괜찮아. 이렇게 성실한 시종인이 또 어디 있겠나?”

 

  헬라는 헛, 하며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리고 슬그머니 황제를 올려다보았다.

 

  “죄송합니다, 제가 그만 또 발작을 하고 말았습니다.”

 

  헬라는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히며 걸레를 주머니에 넣고 선화 뒤로 물러났다. 황제는 웃었다.

 

  “나의 대자, 오늘은 무슨 일로 왔지?”

 

  “황제폐하께서 작금의 혼란을 빨리 수습해주길 바래서입니다.”

 

  “수습이라.”

 

  황제는 자세를 고쳐 다시 앉았다. 두 손은 깍지 끼고 허리를 약간 숙인 채 선화를 응시했다. 창문 뒤로 햇살이 비쳐와 황제를 내리쪼였다.

 

  “의회 말이지? 하지만 네가 말해도 아무 소용없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거든. 그리고 지금까지 모든 황제들이 의회에 혼란이 생길 때마다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렸어. 그건 황제에게 문제가 있을 때마다 의회가 참아준 덕분이었지. 섣불리 내가 개입했다간 맞불을 놓는 격이 될 수 있지.”

 

  “하지만 폐하, 의회는 제국의 심장입니다. 좋든 싫든 의회가 움직여야 혈액 순환이 되어 제국이 움직일 수 있죠. 또한 피가 돌아야 제국의 뇌인 황제께서도 원활하게 정무를 보실 수 있고요. 혈액순환이 잠시라도 멈춰버리면 큰 해악이 됩니다. 그래서 저는 황제께서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해결해야 한다고 봅니다.”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현안 해결이 잘 안 되면 대자 구출도 원활하게 안 되겠지.”

 

  “네, 아, 물론 그것도 그렇고요.”

 

  “하지만, 거듭 말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의회가 스스로 회복되길 기다릴 수밖에 없지.”

 

  황제의 표정은 단호하다.

 

  선화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렇다면 저라도 움직이겠습니다.”

 

  “응?”

 

  “며칠 전에 제국의 대자법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그 중에 흥미로운 항목이 있었습니다. 황위계승권을 가진 대자는 특별히 정무를 수행하는 게 가능하다. 예를 들어 성도 주변에 도적떼가 창궐한다면 대자는 그 문제만을 전담하는 태스크포스 팀을 꾸려 해결을 시도할 권한이 주어진다. 만일 그가 원한다면 말이다. 그리고 이는 실전으로 배우는 제왕교육이라는 명목으로 정당화된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옛 오현제 또한 태스크포스 활동을 통해 능력을 인정받았다고 했고요.”

 

  황제는 턱을 매만졌다.

 

  “그래서, 지금 네가 의회의 혼란을 수습할 태스크포스 팀을 꾸리겠다고? 도와줄 사람은 있고? 태스크 포스는 일종의 내각처럼 만들어야 할 텐데?”

 

  선화를 머리를 긁적였다.

 

  “으, 으음. 아직 구체적인 건 없지만요. 그냥 생각만 하고 있어요.”

 

  황제는 한숨을 쉬었다.

 

  “내 충고하자면, 괜한 짓은 하지 마렴. 의회의 눈엣가시로 비춰질 수도 있고, 네가 위험에 처할 수도 있어. 게다가 오현제들이 태스크포스 활동을 했을 때도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은 잘 안 건드렸어. 하지만 너는 현실 정치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려고 하고 있지. 그건 위험해.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하지 마라.”

 

  선화는 고개를 저었다.

 

  “황제폐하가 법률에 의해 제약받는 이상, 황제폐하라고해서 저를 제약하실 순 없어요. 황제폐하가 행동하시지 않는다면 저라도 할 겁니다.”

  “골치 아프군. 네가 한다면 난 막을 수 없어. 하지만 제발 부탁인데 하지마라. 여론도 슬슬 의회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어. 시간이 지날수록 의회는 자중해야 한다는 걸 알 거야. 시간문제일 뿐이지. 그러니 제발 일 키우지 말거라.”

 

  헬라도 조용히 있다가 거들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선화님. 섣불리 발을 내디디면 돌이킬 수 없답니다. 안 그래도 선화님은 의회와 별로 사이가 안 좋지 않습니까? 괜히 나섰다가 의회의 미움만 사실 수 있습니다.”

 

  선화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뭐야, 헬라. 너도 그러기야? 두 분이 아무리 그러셔도 제 생각은 변함없어요. 저는 뭐라도 할 거에요. 저는 옛날부터 청개구리여서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었어요. 그러면 황제폐하.”

 

  선화는 일어서서 꾸벅 인사했다.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가자, 헬라.”

 

  선화는 헬라를 데리고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황제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장난 아닌 황소고집이군.

 

  “나는 네가 걱정이 돼서 하는 말이란다. 제발, 몸조심하렴.”

 

  선화는 대답도 없이 나갔다. 문 옆에 청장미당 당수가 벽에 등을 기대고 서 있었다. 선화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안녕하세요, 당수님. 여기서 뭐 하시나요?”

 

  “안녕하십니까, 대자님. 보다시피 황제의 면담을 기다리고 있지요.”

 

  “안의 대화가 들렸나요?”

 

  당수는 선화를 곁눈질했다.

 

  “글쎄요?”

 

  선화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고는 꾸벅 고개를 숙이고 그 자리를 떠났다. 선화는 그대로 대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책장에서 대자와 관련된 책을 서너 권 꺼내고는 책상으로 가 읽기 시작했다. 헬라는 슬그머니 옆으로 와 홍차를 대령했다.

 

  “그 책은 무엇인지요?"

 

  “오현제의 업적과 관련된 책이야. 이 안에 태스크포스 활동과 관련된 게 많이 나올 것 같아서. 참고 하려고.”

 

  “정말로 하실 생각인가요?”

 

  “물론이지.”

 

  헬라는 선화의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선화님, 황제의 말씀이 옳아요. 이건 현명하지 못한 행동입니다. 선화님을 위험에 처하게 만들 수 있어요.”

 

  선화는 헬라를 쳐다보더니 미소 지었다.

 

  “두 분 모두 날 걱정한다는 건 알아. 하지만 우리 오라버니를 생각하면 도저히 가만있을 수가 없어. 오라버니는 지금 엄청 고생하고 있을 거야. 어쩌면 끔찍하게도 고문을 당하고 있을지도 몰라. 그렇지는 않겠지만. 그런데 나만 여기서 안락하게 생활하고 있어. 하루하루 편하기는 하지만 잠자리가 항상 편하지 않아. 그래서 나는 뭐라도 하고 싶은 거야. 이대로는 안 되니까.”

 

  헬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선화님의 생각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요. 하지만 위험하다는 것만은 아셔야합니다. 저는 용무가 있어서 나가보겠습니다.”

 

  “응.”

 

  헬라는 나갔다. 선화는 열심히 책을 읽었다. 하지만 안 하던 짓을 하니 어깨도 뻐근하고 눈도 침침해졌다.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졸려왔다. 지금 막 책도 지루한 부분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선화는 오라버니를 생각하며 버텼다.

 

  셋째 현제의 업적인 대운하 부분에 이를 무렵, 선화는 이미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펴놓은 책 위에 뺨을 깔고 쿨쿨.

 

 

  늦은 밤이 되었다. 헬라도 용무를 끝내고 돌아왔다. 헬라는 책상에 엎드려 자는 선화를 보며 쿡쿡 웃었다. 귀여운 얼굴로 자고 있다.

  “선화님, 일어나세요. 침대로 가셔야죠.”

 

  헬라가 선화의 어깨를 부드럽게 주무르자 선화는 허걱, 하며 잠에서 깼다. 선화는 멍하니 벽을 쳐다보았다. 침이 흐르다가 붙어버린 뺨을 문질렀다.

 

  “잠들었구나. 의지박약이네.”

 

  “후후후. 괜찮아요. 쉬면서 해요.”

 

  헬라는 선화를 부축하며 침대로 갔다. 침대를 덮은 이불을 걷어낸 순간, 헬라는 손으로 비명을 삼키며 뒤로 물러났다.

  선화가 물었다.

  “왜 그래?”

 

 

  “저기, 보세요.”

  헬라가 침대 위를 가리켰다. 선화는 고개를 돌려 그것을 보았다.

 

  선화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신음하며 뒤로 물러났다.

  “말도 안 돼.”

 

  루비로 장식을 한 단검이 놓여있었다. 그 옆에는 아름다운 은빛 머리카락이 몇 올 정도 놓여있었다. 절로 소름이 끼쳤다. 선화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확인했다. 평소에 그녀는 뒷머리도 깔끔하게 치는 편이었다. 그런데 한 부분이 다른 곳보다 약간 짧은 듯했다.

  잘랐구나. 내가 잠든 사이에. 선화는 침을 꿀꺽 삼켰다.

 

  “대체 누가.”

 

  마음속으로 용의자를 생각해보았다. 청장미당 당수? 역시 그 대화를 들은 거야. 내가 방해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아냐! 그녀가 아닐 수도 있어. 그녀가 의원들 사이에 소문을 내고, 개 중에 불만을 품은 자가 했을 수도 있어. 여하튼 의회가 내 참견을 바라지 않는 건 확실해. 아냐! 의회가 아닌 다른 누군가? 대체 누구지? 그래도 수법이 너무 변태적이야. 머리카락을 잘라가다니.

 

  ‘내 머리를 자를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는 거야.’

 

  선화는 주먹을 꽉 쥐었다.

  “여기로 들어오는 건 어디어디로 가능해?”

 

  “문과 창문밖에 없어요. 하지만 문은 단단히 잠겨있었어요. 제가 놓아둔 문 사이의 종이도 멀쩡하고요. 그렇다면 창문밖에 없는데.”

  헬라는 창가 중 하나를 골라 유심히 관찰했다. 자세히 보니 밧줄에서 빠져나온 듯한 보푸라기가 보였다. 헬라는 그 보푸라기를 손으로 만졌다.

 

  “역시 창문을 향해 잠입한 것 같아요. 하지만 이 높이인데.”

 

  헬라는 선화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제 불찰이에요. 제가 좀 더 경계했어야 했는데.”

 

  “아냐, 누가 생각이나 했겠어?”

  “혹시 모르니 앞으로 방범을 더 강화하겠습니다. 황제폐하께도 알리고요.”

 

  선화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냥 우리만 알자.”

 

 

  선화는 한숨을 쉬며 의자에 걸터앉았다.

 

 

  “선화님, 상황이 좋지 않아요. 누군가가 선화님이 자꾸 황제와 접촉하는 것을 불쾌하게 여기는 게 분명해요.”

  헬라는 선화 앞에 무릎 꿇고 손을 잡아주었다.

 

  “선화님, 태스크포스는 관두셔야 해요. 선화님의 목숨이 위험해요.”

 

  선화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잠든 사이에 괴한이 찾아와 머리카락을 자르고 갔다. 몇 번을 생각해도 머리털이 쭈뼛 섰다. 죽음의 공포.

 

  미안해, 오라버니. 의지가 약해지면 안 되는데, 나는 약한 놈이야. 오라버니는 지금 훨씬 더 괴롭고 무서울 텐데. 미안해. 주제도 모르고 나서다니. 선화는 자그마하게 떨리는 무릎을 손으로 눌렀다.

  선화는 자신의 목을 매만지며 조용히 눈물을 삼켰다.

 

  선화의 마음 속, 미세하게 고동치는 파도가 있었으나.

  아직은 충분히 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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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0.루카를 위하여 2016 / 10 / 13 543 0 7296   
10 09.다시 찾아온 2016 / 10 / 12 1267 0 16436   
9 08.선화의 짖궂음 2016 / 10 / 11 528 0 6245   
8 07.선상의 파티 2016 / 10 / 11 620 0 5057   
7 06.가녀린 손 (1) 2016 / 10 / 10 708 1 7374   
6 05.헬라와 욕조 2016 / 10 / 9 545 0 6228   
5 04.선화와 황제의 문답 2016 / 10 / 8 470 1 9336   
4 03.이도의 펜던트 2016 / 10 / 8 693 1 5708   
3 02.납치선에서 (2) 2016 / 10 / 7 620 1 6595   
2 01.고장난 마차바퀴 2016 / 10 / 6 542 1 8418   
1 00.라벤더와 라즈베리 향 2016 / 10 / 6 724 2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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