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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이,보라색
작가 : Riley
작품등록일 : 2020.8.1

이 소설은 저에게 많은 '처음'을 선물해 주었어요.
여러 '처음' 중에서도, 가장 소중한 건 역시 '첫 소설'인 것 같네요.

이 글을 쓰면서 제가 관심있는 주제에 대해서도 깨닫게 되었어요.
그건 바로 '운명'인데요, 아마 이 후로도 계속 글을 쓰게 된다면,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형태의 '운명'에 대해 쓰지 않을까 싶어요.
[이,보라색]은 '운명'을 만났을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까를 궁금해하며
써 내려갔던 저의 첫 중편소설입니다.

너무너무 부족하지만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우연히, 또는 운명처럼, 읽어주실 분들께도 미리 인사 전할게요.
감.사.합.니.다.

 
#7.2
작성일 : 20-08-11 16:47     조회 : 213     추천 : 0     분량 : 5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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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준비되셨죠? 두 번째 수업 시작할게요.”

 오늘도 수첩을 넘기고 볼펜을 누르면서 신호를 보냈다. 휴일의 시간은 낙엽이 떨어지는 속도보다 빠르다. 화요일 오후에 재래시장에서 만난 후, 두 번째 수업이 있는 금요일 저녁까지 무엇을 했냐고 묻는다면 딱히 대답할 수 없다. 별 일은 없었고, 이상우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이런저런 상념에 빠진 나를 눈치 챘는지, 이상우는 덧가루를 묻힌 두 손을 힘껏 부딪쳤다.

 “지난번보다 큰 크기의 타르트반죽을 밀어야 하니까, 집중할게요.”

 지름 약 18㎝의 타르트 틀을 구워내야 했다. 옆면 높이까지 생각하면 23㎝ 이상으로 반죽을 둥글게 밀어 펴야 했는데, 쉽지 않았다. 이상우가 옆에서 지켜보면서 모나게 되려는 내 타르트반죽을 둥글게 바꿔주었다. 이상우의 도움으로 간신히 만든 타르트 틀 하나에 유산지를 깔고 타르트 돌을 잔뜩 부었다. 오븐에 넣고 굽는 동안, 오늘 배우기로 한 레몬크림을 만들었다.

 “지난번에 배웠던 크림 기억나세요?”

 얼른 수첩을 넘겨 적어놓았던 낯선 이름을 댔다.

 “맞아요, 크렘 파티시에. 오늘 호화해서 직접 만들어 보기로 했는데, 레몬크림은 크렘 파티시에에 레몬즙만 추가하는 크림이니까, 레몬크림으로 대체할게요.”

 이렇게 말하고 계란노른자 분리부터 가르쳐줬다. 이상우는 가르쳐 줄게 너무 많았고, 나는 알아내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태영의 말대로라면 내가 이상우의 색을 볼 수 없다는 건, 이상우도 나나 태영처럼 이상한 눈을 가졌을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손님을 대하는 이상우나, 재래시장에서의 이상우를 관찰했을 때, 그의 시선은 평범했다. 보인다면 본능적으로 시선이 위로 향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상우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이런 갖가지 의문에 스스로 답하면서, 두 손은 무척 분주했다. 노른자와 설탕을 휘젓고, 박력분을 체에 쳐서 섞고, 우유를 살짝 끓여 붓고, 마지막에 호화시켰다. 호화시킨 크림에 버터를 조그맣게 잘라 넣어 녹이고, 마지막에 레몬즙을 부었다. 크림 하나를 만드는 데도 이렇게 과정이 복잡한데, 내가 모르는 조리법에 의해 다 자라버린 한 사람의 맛은 어떻게 알아내야 하는 걸까 싶었다.

 “적당히 식은 것 같은 데, 맛 한 번 보실래요?”

 니트릴 장갑 낀 손으로 내가 만든 레몬크림을 찍어 먹어 보면서, 이상우도 찍어 먹어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레몬크림을 완성하고 한 숨 돌리려하자 오븐에서 알람이 울렸다. 이상우는 다음으로 머랭을 만들 테니, 아까 분리해 둔 흰자를 믹싱볼에 계량하고, 자루냄비에 설탕과 오렌지주스를 달아두라고 했다.

 “이탈리안 머랭을 만들어서 레몬타르트 윗면을 장식할 거예요. 흰자에 흘려 넣는 시럽은 물로 만들어도 되지만, 당도가 높은 주스를 사용하면 향도 좋고 맛도 좋아요.”

 머랭에 대해 설명하면서 구워낸 타르트 틀을 타공판에 옮기고, 빨리 식히기 위해 냉동실에 넣었다.

 “머랭 제조는 간단하니까 타르트 틀 식히는 동안 잠깐 쉴게요.”

 이상우는 잠시 매장을 확인하러 갔고, 그 동안 나는 레몬크림 조리법을 정리했다. 수첩에 또박또박 한 글자씩 써내려가다가 문득 왜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나 의문이 들었다. 내가 배우고 싶은 건 레몬타르트는 아니다. 정작 알고 싶은 건 어떻게 배워야 하는지 물어볼 사람도 없다.

 “레몬크림 만드는 법 잘 정리해 놓으셨네요?”

 매장으로 나가는 유리 미닫이문이 열려 있었는지, 이상우는 소리도 없이 내 옆으로 다가왔다. 그 바람에 흠칫 놀라 휘청했다. 이상우는 얼른 내 팔을 잡았다.

 “처음 저희 가게 오셨을 때도 그러시더니. 옆에서 챙겨줄 사람 한 명은 꼭 데리고 다녀야겠어요. 이제 레몬타르트를 완성해 볼까요?”

 이탈리안 머랭을 만드는 동안, 돌림판 위에 타르트 틀을 올려놓고, 원형깍지를 끼운 짤주머니에 레몬크림을 넣어 타르트 틀을 채웠다. 완성된 머랭도 원형깍지를 끼운 또 다른 짤주머니에 넣은 다음 윗면이 뾰족한 모양으로 짜야했는데, 잘 되지 않아 이상우의 도움을 받았다.

 “처음 해 보시는 거니까 잘 안 되는 게 당연해요. 머랭은 토치를 이용해서 살짝 태울게요. 그동안 슬라이스 레몬 앞뒤에 설탕을 잔뜩 묻혀 주세요.”

 살짝 그을려 군데군데 갈색 빛이 돌게 만든 레몬타르트는 다시 냉동실로 들어갔다. 그 사이 설탕을 묻힌 레몬도 태워져서 작업 공간은 달콤한 캐러멜 냄새로 가득했다. 살짝 굳힌 레몬타르트를 꺼내 6등분하고, 마지막으로 그을린 레몬 슬라이스로 장식해 레몬타르트를 완성했다.

 “오늘도 잘 따라와 주셨어요. 다음 시간에는 타르트 케이크 완성을 위한 준비를 해 볼게요.”

 이상우는 완성된 레몬타르트를 들고 매장으로 나갔고, 나는 앞치마를 정리해 놓고 짐을 챙긴 후 뒤따라 나갔다. 레몬타르트는 어느 새 상자에 예쁘게 담겨, 나와 함께 갈 준비를 마쳤다. 상자를 건네받기가 싫었다. 시장에서 마주친 후 제대로 된 이야기 한 마디 나누지 못 했는데, 또 한 번의 수업이 끝나버렸다.

 “타르트 조심히 들고 가셔야 해요. 보라님 좀 덜렁대는 면이 있어서 걱정인데, 제가….”

 그 다음 단어가 뭔지 이상우의 입모양만 쳐다보고 있는데, 가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런 순간에 누군지 한 번 흘겨보려고 고개를 돌렸다.

 “끝났어?”

 호텔 유니폼을 입고 붉은 색 덩어리를 머리에 얹은 남태영이 숨을 몰아쉬며 문 앞에 서 있었다. 태영을 본 순간 사고가 정지됐다. 몇 시간 같은 몇 초를 보내고 정신을 차렸지만, 남태영이 지금, 여기, 왜 나타났는지 알 수 없었다. 본능적으로 이상우 앞에서 치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안녕하세요, 보라님 친구 분이시죠?”

 내 생각과는 관계없이 두 사람은 대화를 시작했다. 위치상으로도 관계상으로도 둘 가운데 놓인 나는 양쪽을 바라보며 미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태영의 붉은 색은 평소보다 움직임도 빠르고 미세하게 크기가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했다. 이상우의 색은 여전히 전혀 보이지 않았다. 태영의 시선은 이상우의 눈보다 약간 위에 있다. 그의 색을 보고 싶지만 볼 수 없어, 조금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태영의 붉은 색이 뾰족해지고 조금씩 더 커진다. 하지만 유니폼을 입고 있는 태영은 당연히 자연스런 미소를 만들어 낼 줄 알았다.

 “안녕하세요. 보라가 좋은 분께 수업 잘 듣고 있다는 얘기 들었어요. 오늘도 감사합니다.”

 대화의 전개가 수상스러워 태영쪽으로 고개를 돌려 지금 이게 무슨 짓이냐고 눈으로 말했다. 태영은 오히려 한 걸음 다가오더니, 내 옆에 나란히 섰다. 앞에 놓여있는 타르트 상자를 보고 대뜸 들었다.

 “오늘 만든 거야? 얼핏 보기에 맛있어 보이는데? 다 끝났으면 가자.”

 “어딜 가?”

 간신히 한 마디 뱉었다. 그러면서 이상우를 살폈다. 태영은 아랑곳하지 않고 레몬타르트를 들고 문 쪽으로 향했다. 이상우와 좀 더 함께 있고 싶었지만, 태영을 해결하는 게 먼저였다.

 “죄송해요. 저 친구가 무슨 일인지 연락도 없이 와서. 일단 얘기 해 봐야겠어요. 오늘도 수업 감사하고, 다음 주 금요일에 뵐게요. 감사합니다.”

 뭔가 말하려는 이상우를 뒤로 하고 태영을 뒤따랐다. 태영은 성큼성큼 걸어갔다. 몇 걸음만큼 거리를 두고 뛰듯이 걸으며 따라가다 결국 소리쳤다.

 “내 타르트 내 놔.”

 그제야 멈춰 섰다. 고개를 돌려 오른손에 들려 있는 상자를 보고, 다시 뒤를 돌아 나를 봤다. 철길 공원의 조명은 너무 은은해서 태영의 색이 또렷이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조금 화나 보였다. 잠시 마음을 가라앉힐 시간을 갖는 듯 내가 좀 더 다가오길 기다렸다.

 “차 한 잔 하자. 우리 할 얘기 있잖아. 시간 많이 안 뺏을게. 나도 다시 호텔로 돌아가 봐야하고.”

 “근무 중에 나온 거야?”

 “응. 너랑 불편한 채로 지내기 싫어서.”

 

 밤 10시를 향해가는 카페는 한산했다. 카운터의 직원이 10시에 마지막 주문을 받는다고 했다. 태영은 차가운 커피를, 나는 따뜻한 허브티를 시켰다. 음료가 오기 전까지 마주앉은 테이블 사이로 어색함이 흘렀다. 나와 불편하게 지내고 싶지 않다고 말은 했지만, 나를 똑바로 응시하는 태영의 시선은 불편하다는 표현만으로 담기에 부족했다. 그 때 진동알림이 울렸고, 태영이 커피와 차를 가져왔다.

 “그렇게 잘 보이고 싶었어?”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태영이 차갑게 뱉었다. 심술궂은 내뱉음에 물들고 싶지 않아 빨리 용건이나 말하라고 하려던 참이었다.

 “그렇게 티를 내면 상대방이 쉽게 눈치를 채지. 연애는 밀고 당기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대체 왜 그러는데? 잘 보이고 싶다니? 눈치를 채다니? 연애? 밀당? 이게 다 무슨 소리야.”

 “둔보라, 잘 들어. 오늘 수업 들으러 가기 전에 준비하는 데 얼마나 걸렸어? 평소보다 옷이며 화장이며 신경 썼지? 누가 봐도 한껏 꾸민 차림으로 수업 들으면서 그 남자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나 얼굴만 쳐다보고 있지 않았어? 그 남자가 그렇게 좋냐?”

 다그치듯 몰아치는 태영의 말에 정신을 못 차렸다.

 “잠깐, 잠깐만. 내가 선생님을 좋아한다고? 좋아한다기보다…, 나한테는 특별한 사람이니까, 관심을 가지고 관찰 중인데….”

 “어떤 점이 특별한데?”

 이상하게 태영이 하는 질문에는 진심을 얘기한다. 이번에도 그랬다.

 “보이지 않아서. 이렇게 보이지 않는 사람은 처음 만났어.”

 표정이나 몸짓으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태영은 놀랐다. 태영의 붉은 색이 말해줬다. 하지만 금세 평정심을 되찾았다. 그러고는 퉁명스럽고 못 되게 말했다.

 “이보라 눈에 보이지 않는 남자가, 마침 너에게 적당한 나이에, 외모도 썩 나쁘지 않고, 친절하기까지 하니 관심이 생겼다? 운명의 상대라도 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왜 이런 얘기를 너랑 하고 있어야 하는 걸까? 그만 가자. 일하러 가봐야 한다며?”

 태영은 다시 차가운 한 모금을 마시고 유니폼 재킷 안쪽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 테이블 위에 턱 올려놓았다. 나는 봉투와 태영의 얼굴과 붉은 색을 번갈아 봤다.

 “마음 바뀌기 전에 열어봐. 이거 주려고 온 거야.”

 조심스레 봉투를 내 앞으로 끌어왔다. 열리는 쪽이 위로 오도록 살며시 뒤집었다. 호기심보다 두려운 마음으로 봉투를 열어보니 초대권이 들어 있었다.

 “어렵게 구한거야. 선배들한테 몇 번이나 부탁하고, 오늘 근무까지 대신하는 중이야.”

 “이게 뭔데?”

 “우리 호텔에서 매년 9월 말 10월 초에, 그 해 투숙객들을 대상으로 추첨을 통해 초대하는 디저트 뷔페 티켓. 꽤 신경 써서 준비하는 이벤트니까 괜찮을 거야. 나도 못 가봤어.”

 “보통 이런 건 연말에 하지 않아?”

 “9월 25일이 창립기념일이라 그 때 맞춰 진행해. 좋냐? 웃기는.”

 “아무튼 고마워.”

 “그거 공짜 아니야.”

 나도 모르게 지었던 미소가 싹 사라졌다. 다시 태영의 눈과 붉은 색, 초대권을 번갈아 가며 봤다.

 “지난번처럼 사람들 훔쳐보고 어떤 기분인지 얘기해주고, 그런 거 시키려고?”

 “최대한 자제할게. 그래도 꼭 필요할 땐 불만 갖지 말고, 화내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해야 해.”

 “이거 안 받는 게 좋을 것 같다.”

 “이런 기회를 놓치겠다고?”

 “일단 가져갔다가 마음 바뀌면 반품해도 될까?”

 “아니. 그리고 널 위해 한 가지 더 해줄게.”

 대답하지 않고 태영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내가 볼 수 있는 날, 너의 이상해씨를 보러 올게. 나도 확인해 보고 싶으니까.”

 “그렇다면, 거래 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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