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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무협물
흑첨향
작가 : 박재영
작품등록일 : 20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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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말썽꾸러기 소녀1.
작성일 : 16-04-02 13:49     조회 : 666     추천 : 0     분량 : 8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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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화. 말썽꾸러기 소녀1.

 

 

 

 숲을 빠져나와 관도에 이르자 흑화고는 곧바로 정극풍천으로 돌아가자고 고집하기 시작했다. 이미 각오하고 있던 능비령은 부드러운 음성으로 자신의 계획을 말했다.

 "여기서 하북의 북당하까지는 이제 보름만 더 가면 돼. 이제 거의 코앞까지 왔는데 돌아가는 건 너무 억울하다고. 흑화고도 그랬잖아. 내 단전이 폐쇄되어 있는 이유를 알려면 먼저 내 신세 내력을 알아내야 한다고."

 기실 정극풍천까지 돌아갔다가 다시 하북의 북당하까지 되돌아오려면 얼마나 시일이 걸릴지 예상도 할 수 없었다. 능비령의 음성이 부드럽긴 했지만 그 속에는 꺾이지 않을 고집이 담겨져 있었다.

 "좋아! 그 대신 한 가지만 약속 해."

 "무슨 약속을 하라는 거지?"

 "정확히 열흘의 기한을 주겠어. 북당하에 도착해서 열흘 동안 찾아봐서 그때까지도 찾는 사람을 못 찾으면 정극풍천으로 돌아가야 해."

 "그거야…."

 능비령은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열흘 안에 사람을 찾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거기까지 양보한 흑화고에게 더 이상 고집을 부릴 수 없었다.

 "저어… 저도 함께 가면 안 될까요? 실은 이제 임무는 끝났지만 아직 자문정으로 돌아가고 싶지가 않아요. 난 처음으로 강호에 나왔거든요."

 여교가 한 옆에서 흑화고의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능비령이 문득 기이한 생각이 들었다는 듯 걸음을 멈추고 빤히 여교를 바라보았다.

 "너 혹시… 청부가 취소되었다고 한 말 거짓은 아니겠지?"

 여교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는 화가 난 듯 눈을 실처럼 가늘게 뜬 채 능비령을 노려보았다.

 "뭐야! 사내자식이 의심은 많아 가지고! 언니가 옆에 있는 한 내 실력으론 어차피 널 죽이고 싶어도 못 죽여! 난 그냥 수행도 할 겸 여기저기 여행을 해보고 싶은 것뿐이야! 그러니 겁먹을 거 하나도 없어. 내 말 알아들었어, 쨔샤!"

 능비령의 눈이 튀어나올 만큼 커졌다. 그는 아연해져 멍청히 여교를 바라보았다.

 가늘게 뜨여진 눈과 낮게 깔린 음성. 아직 화가 폭발하지 않아서 그렇지 만약 화가 폭발하면 물불 안 가릴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게 만드는 그런 태도였다.

 "그, 그러니까… 진짜로 그냥… 여행을 해보고 싶다는 거니?"

 능비령은 자신도 모르게 더듬거렸다. 자신이 왜 위축되어 말을 더듬어야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순간, 스스로 깜짝 놀란 표정이 되더니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여교가 고개를 숙인 채 기어 들어가는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어멋! 내가 무슨 짓을… 난 몰라!"

 여교는 수줍고 민망해 차마 눈도 마주치지 못하겠다는 태도로 간신히 들릴락 말락 한 음성으로 능비령을 원망했다.

 "몰라요, 몰라! 다 오빠 때문이에요. 오빠가 날 뚜껑 열리게… 아니, 그게 아니라 날 화나게 만드니까 나도 모르게…."

 "끄응! 알았다, 알았어. 함께 다니는 건 좋은데 앞으로는 거 무슨 뚜껑인지 몰라도 제발 뚜껑만 열리지 말아다오."

 능비령은 더 이상 상대하고 싶지 않다는 듯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갔다.

 여교는 얼굴을 가렸던 두 손을 살짝 치우며 능비령의 등을 향해 혀를 쏙 내밀었다.

 '저 아이는 아직 나이 어린 조그만 계집아이인데 별안간 화를 낼 때는 나도 모르게 당황하게 되고 또 우는 척하니까 오히려 내가 사과를 하게 되는구나.'

 한 발 앞서서 걸어가며 능비령은 내심 혀를 내둘렀다. 불현듯 부인이 무서워 도망쳤다는 막능여의 말이 이해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능비령 일행이 오대고도(五大古都) 중 하나인 낙양(洛陽)에 도착한 것은 호북성의 의도현을 출발한 지 칠 주야 만이었다.

 흑화고는 기이하게도 여교가 합류한 뒤부터 사람들 앞에서도 모습을 감추지 않았다. 화고 또한 흑화고가 모습을 감추지 않는 것을 보고는 따라하는 듯 숨어 다니지 않고 능비령의 소매 속에 들어와 함께 다녔다.

 능비령은 시일을 단축하기 위해 낙양성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외곽으로 통과하려 했지만 여교와 흑화고가 고집을 부려 성내로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어차피 그동안 쉬지 않고 강행군을 한 탓에 능비령도 지칠 대로 지쳐 있어 하루나 이틀 정도 휴식을 취해야 할 형편이기도 했다.

 능비령은 낙양성 내에 들어서자 먼저 객점을 찾아 방을 잡아놓은 뒤 구경을 하고 저녁을 먹을 예정으로 객점을 나섰다.

 대도 낙양에 들어서자 가장 신난 사람은 과연 여교였다. 그녀는 보는 것마다 모두 신기한 듯 지친 기색도 없이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능비령은 하루나 이틀 정도 휴식을 취하며 구경을 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먼저 용문(龍門)으로 가서 석굴(石窟)을 구경한 뒤에 다시 백마사(白馬)사로 갔다.

 그동안 내내 여교는 신이 나서 잠시도 입을 다물지 않았다.

 능비령도 기분이 좋았다. 쉬지 않고 종알거리는 여교가 마치 여동생 같은 기분이 들었다.

 흑화고는 조용히 따라다녔는데 그녀 역시 마음이 들뜬 듯 상기된 얼굴로 간혹 가다 능비령을 향해 다정한 미소까지 보여줄 정도였다.

 백마사에 들러 향화를 올리고 다시 백거이의 묘가 모셔져 있는 백원(白園)까지 들러본 뒤에 주루와 기루들이 늘어서 있는 중앙로로 돌아오던 능비령은 한 사람이 자신들을 따라오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소매 끝에 두 줄기의 금색 띠가 둘러쳐진 흑금의(黑錦依)를 걸치고, 손에는 한 마리 용의 그림이 수놓인 부채를 들고 있는 이십 대 중반의 청년이었다.

 피부 아래 거친 힘을 감추고 있는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오랜 세월 동안 무공으로 단련시킨 몸매였다. 얼굴은 준미한 편이었지만 웃고 있는 눈이 어딘가 경박한 느낌을 준다.

 좌우에는 범상치 않은 기도를 지닌 두 명의 중년인이 수행하고 있어 그의 신분이 평범하지 않음을 드러내고 있었다.

 능비령은 흑의공자가 이미 백마사의 제운탑(齊雲塔)에서부터 뒤를 따라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같은 방향이겠거니 했지만 백원을 거쳐 중앙로까지 따라오자 그가 자신들을 따라오고 있다는 확신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흑의공자는 능비령 일행이 주루에 들어가자 뒤를 따라 들어왔다. 능비령이 보니 그는 구석진 자리에 앉기는 했지만 음식과 술에는 관심이 없는 듯했다.

 "저어… 언니도 알고 있겠지요?"

 흑의공자에 대해 먼저 입을 연 것은 여교였다. 그녀는 흑화고를 빤히 보며 말을 이었다. 웃음을 참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저 앞쪽 구석에 앉아 있는 사람은 아마 언니를 따라오는 것 같아요."

 "그래?"

 흑화고는 대수롭지 않다는 태도였다. 그녀 역시 흑의공자가 일행을 따라오고 있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여교의 말을 듣고 생각난 것이 있어 능비령은 다시 한 번 흑의공자를 바라보았다. 과연 그는 계속 흑화고만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눈빛에 노골적인 열정이 담겨 있었다.

 "아하! 그랬던 것이구나."

 "왜 웃어?"

 능비령이 빙글빙글 웃으며 중얼거리자 흑화고가 사나운 눈매로 쏘아보았다.

 "그냥 한 가지 생각이 났을 뿐이야."

 "뭐가?"

 "난 단지 자신이 쫓아다니고 있는 여자가 자기 할머니보다 나이가 많은 여자라는 걸 알고 나서도 저렇게 쫓아다닐지 궁금해졌을 뿐이야."

 능비령이 짐짓 흑의공자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해 보이자 흑화고가 미소를 머금었다.

 "그렇지 않아. 전에도 말했지만 난 지난 팔십 년 동안 가사 상태였어. 실제의 내 나이는 보는 그대로야."

 흑화고는 한술 더 떠 그때까지도 뚫어져라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흑의공자를 향해 슬쩍 얼굴을 돌렸다. 그녀는 우연히 그쪽으로 눈이 간 것처럼 흑의공자를 빤히 바라보다가 다시 능비령을 향해 짐짓 정색을 했다.

 "생긴 것도 저만하면 준수한 편이고, 아름다운 여자를 보고 호감을 표현하는 솔직한 성품도 괜찮은 것 같고, 무공이 제법 높은 수하들을 거느리고 다니는 걸 보니 집안도 꽤 괜찮을 것 같아."

 '뭐야! 한심하게 여자 뒤나 쫓아다니는 저런 놈이 괜찮다니?'

 능비령은 흑화고가 화를 벌컥 낼 줄 알았다가 오히려 웃으며 말하자 자신도 모르게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흑화고가 빙글빙글 웃으며 능비령을 빤히 바라보았다.

 "한데 질투하는 거야?"

 "어? 그, 그럴 리가…!"

 능비령은 깜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더듬거렸다. 그러다가 자신이 흑화고에게 말려들었음을 깨닫고 얼굴을 붉혔다.

 흑화고는 재미있다는 듯 빙글빙글 웃으며 점소이를 불러 술을 시켰다. 하지만 원래 술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 능비령이 보기에 괜히 시간을 끌기 위해 술을 시킨 게 분명했다.

 신이 난 건 여교였다. 흑화고가 시켜놓은 술을 혼자서 독차지한 것이다. 처음에는 한 잔을 놓고 입술만 축이며 음미하듯 홀짝홀짝 마시더니 나중에는 한 모금이 한 잔이 되었다.

 "여기 한 병 더!"

 여교가 거침없이 두 병째 술을 시키자 능비령은 은근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조그만 게 술이 엄청 세구나. 한두 번 마셔본 솜씨가 아니야.'

 여교는 아직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은 상태였고 취기 또한 전혀 없었지만 계속 마셔대다간 아무래도 사고를 칠 것 같았다.

 처음 한 병이 빈 속도에 비하면 두 번째 술병이 없어진 속도는 가히 번개라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여교는 능비령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또다시 술을 시키더니 발그레해진 얼굴로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저어… 교아는요, 능 오빠가… 좋아졌어요."

 "교아가 누구지?"

 능비령은 드디어 여교의 술주정이 시작되는가 싶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는 짐짓 태연을 가장하며 질문을 던졌다.

 "바보! 내가 교아란 말이에요, 여교!"

 여교는 기분 좋게 웃으며 눈을 흘겼다.

 능비령은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서 대응을 잘못하면 본격적인 주정이 시작된다는 건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용병들과 생활하면서 한두 번 겪은 일이 아니었다.

 능비령은 부드럽게 여교를 바라보며 짐짓 근엄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나도 네가 좋아. 항상 너 같은 동생이 있었으면 했어."

 "정말이에요?"

 여교는 뛸 듯이 기뻐했다.

 주위에 사람만 없으면 당장이라도 품속으로 뛰어들 듯한 기세였다. 그러다가 문득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 가은 도생? 어? 그따 거는 시은데···"

 여교는 이내 풀이 죽어 고개를 숙인 채 혼자 중얼거렸는데 이미 혀가 꼬부라져 발음이 정확하지 않았다. 능비령이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하게 둘 사이에 선을 그어놓는 바람에 더 이상 진전시킬 수가 없는 게 불만인 표정이었다.

 이때 주루의 입구로 한 명의 대한이 황급히 들어와 주위를 둘러보더니 그때까지도 계속 흑화고만을 노골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흑의공자에게 다가들었다.

 대한은 흑의공자 앞에 이르자 목례를 하며 예를 취한 후 고개를 숙여 무어라 속삭였는데 그 표정이 다급해 보였다.

 흑의공자의 표정이 굳어졌다. 무언가 긴급한 사안이 터진 듯 그는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는 흑화고를 한 번 바라본 뒤 곧바로 나가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흑화고는 흑의공자가 어떻게 나올지 흥미롭다는 듯 담담한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결국 흑의공자는 결심을 굳힌 듯 마지못해 주루를 빠져나갔다. 주루의 문을 나서며 다시 한 번 흑화고를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안타까워하는 빛이 역력했다.

 "이제 가지."

 여교는 어느새 탁자에 얼굴을 처박고 잠들어 있었다.

 능비령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깨워도 여교는 일어나지 않았다. 어린아이가 아니니 업고 갈 수도 없어 결국 능비령은 그녀를 부축한 채 주루를 나섰다. 흑화고는 관심이 없다는 듯 먼저 나가 버려 그녀에게 맡길 수도 없었다.

 곤욕도 이런 곤욕이 없었다.

 여교는 완전히 축 늘어진 채 능비령에게 매달려 있었는데 자꾸 쓰러지려고 해서 아예 안 듯이 한 손을 그녀의 허리에 두르고 걸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정도면 차라리 괜찮았다.

 방을 잡아놓은 객점으로 돌아가기 위해 중앙로의 중간쯤을 왔을 때 여교는 돌연 몸을 뒤틀기 시작했다. 한 손으로 입을 막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것이 당장이라도 토할 듯한 기세였다.

 '맙소사! 골고루 다 하는구나.'

 능비령은 사람들이 오가는 중앙로 복판에다 토하게 할 수가 없어 황급히 한쪽의 골목으로 들어갔다.

 양쪽으로 담장이 길게 이어져 있는 골목 안으로 들어서자 여교는 한쪽의 담장 앞에 쪼그려 앉아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능비령은 울상을 한 채 그녀의 등을 두드려 주지 않을 수 없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흑화고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빙글빙글 웃으며 이제야 골목 안으로 따라오고 있었다.

 잠시 후 더 이상 토할 게 없는 듯 여교가 몸을 일으켰다.

 여교가 토해낸 물체를 보지 않으려는 듯 황급히 반대쪽으로 눈을 돌리던 능비령의 눈에 의아해하는 빛이 떠올랐다.

 흑화고의 태도가 기이했다.

 그녀는 길게 이어져 있는 담의 한쪽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가 바라보고 있는 담에는 나뭇가지나 돌멩이로 긁어 쓴 글자가 하나 적혀 있었는데 어린아이들이 장난을 친 듯이 엉성했고 그나마 글자 자체가 옆으로 누워 있었다.

 "왜 그래?"

 능비령은 흑화고의 얼굴에 감회의 표정이 떠올라 있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었다.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흑화고가 능비령을 돌아보았다.

 "이게 무슨 글자인지 알아볼 수 있겠어?"

 "옆으로 누워 있긴 하지만 분명히 절(絶)이라고 쓴 것 같은데?"

 "이건 우리 집안의 사람이 남긴 비밀 표식이야."

 흑화고의 눈에 다시 아련한 그리움 같은 감회의 빛이 떠올랐다.

 그녀는 담에 어린아이들이 장난친 것 같은 글자를 보며 차분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절(絶)은 일신에 위험이 닥쳤다는 의미이고, 글자가 동쪽으로 머리를 두고 눕혀져 있는 건 동쪽으로 간다는 뜻이야. 마지막 획이 세 부분으로 잘려진 건 삼백 장 뒤에 다시 표식을 남긴다는 의미이고···"

 '집안사람이 남긴 비밀 표식이라고?'

 능비령은 어리둥절해하는 눈빛으로 새삼 담장 구석에 적혀 있는 글자를 바라보았다.

 흑화고의 설명에 의하면 어린아이들이 장난해 놓은 듯한 글자 하나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일단 글자 전체는 상황을 말하는 것이고, 또 그 글자를 이루고 있는 서체와 획의 형태, 글자가 누워 있는 방향 등은 더욱 많은 세부적인 정보를 감추고 있었다.

 "추적자들의 수효는 세 명, 표식이 남긴 건 반 시진 전이야. 우리 가문의 사람이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는데 상당히 절박한 상황이라 구원을 요청하고 있어."

 말을 마친 흑화고는 문득 능비령의 한쪽 어깨에 기대선 채 잠들어 있는 여교를 바라보았다.

 "일어나. 정말 취한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어."

 능비령은 어이가 없었다.

 그가 보기에 여교는 취해도 보통 취한 게 아니었다. 오죽 취했으면 남자 앞에서 먹은 것을 몽땅 내보이는 추태까지 드러냈겠는가?

 하지만 흑화고의 나직한 한마디에 여교는 언제 취했었냐는 듯이 멀쩡하게 두 발로 선 채 눈을 떴다.

 "시키실 일이라도?"

 "난 무림의 일에는 상관한 적이 없지만 가문의 사람이 도움을 요청한 것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도 없어. 내가 객점으로 돌아갈 때까지 네가 저 멍청이를 보호해야 해. 만에 하나 저 멍청이의 몸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흑화고는 말을 잇지 않았다. 여운을 남기는 듯한 말투였는데 그 순간 여교는 공포에 짓눌려 몸을 떨며 황급히 입을 열었다.

 "예! 걱… 걱정 마세요!"

 "좋아!"

 여교를 바라보던 흑화고의 몸이 점점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은 점차 투명해지더니 종래에는 완전히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긴 휘파람 소리만이 아득한 허공 저쪽에서 한차례 울려 퍼졌을 뿐이다.

 흑화고의 휘파람 소리가 채 사라지기도 전에 능비령이 어이없어하는 표정으로 여교를 바라보았다.

 여교는 말짱히 서서 흑화고가 사라져 간 방향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는데 술이라고는 단 한 방울도 안 마신 사람 같아 보였다.

 "그러니까 술에 취해 주정하고 결국 토하기까지 한 게 모두 내숭이었다는 거냐?"

 "난… 난 정말… 취했었어요!"

 여교가 다시 수줍어서 눈도 들지 못하는 태도로 입을 열었다.

 능비령은 그녀의 태도에 오히려 더욱더 황당해하는 표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정신을 잃을 정도로 취했던 사람이 저 여자의 말 한마디에 벌떡 일어나? 그게 취한 사람이냐고!"

 "휴우! 오빠는… 여자의 마음을 모르는군요."

 "그 대목에서 여자의 마음이 어쩌니 하는 말이 왜 나와?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네가 여자냐? 넌 아직 어린아이일 뿐이야. 그리고 흑화고도 그래. 널 더러 날 보호하라니… 내가 널 보호해야지 어떻게 널 더러 날 보호하라는 말을 할 수가 있냐고!"

 "남자가 돼 갖고 지난 일을 자꾸 들먹일 거예요? 정말 나 뚜껑 열리는 거 보고 싶어요? 그만 하고 우리 언니나 쫓아가요."

 "화아…!"

 능비령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든 후 흑화고가 사라져 간 방향으로 눈을 돌렸다. 그렇지 않아도 흑화고의 일이 궁금하기 이를 데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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