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
 1  2  3  4  5  6  >>
 
자유연재 > 로맨스
이,보라색
작가 : Riley
작품등록일 : 2020.8.1

이 소설은 저에게 많은 '처음'을 선물해 주었어요.
여러 '처음' 중에서도, 가장 소중한 건 역시 '첫 소설'인 것 같네요.

이 글을 쓰면서 제가 관심있는 주제에 대해서도 깨닫게 되었어요.
그건 바로 '운명'인데요, 아마 이 후로도 계속 글을 쓰게 된다면,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형태의 '운명'에 대해 쓰지 않을까 싶어요.
[이,보라색]은 '운명'을 만났을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까를 궁금해하며
써 내려갔던 저의 첫 중편소설입니다.

너무너무 부족하지만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우연히, 또는 운명처럼, 읽어주실 분들께도 미리 인사 전할게요.
감.사.합.니.다.

 
#7.1
작성일 : 20-08-10 12:23     조회 : 230     추천 : 2     분량 : 5023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황금연휴 시작인데, 어디 안 가세요?”

 오늘도 황주임은 통통거리는 오렌지이다. 나쁜 일은 금세 잊어버리고, 즐거운 일을 먼저 떠올리는 황주임이야말로 이 복잡한 서울에서 행복지수 상류층에 속할 것이다.

 “우리 집은 양쪽 할머니, 할아버지 네 분 모두 돌아가시고, 아빠는 외아들이셔서, 명절에 특별한 일이 없어. 이번에 부모님은 여행 다녀오신다고 1월에 이미 발권하셨더라. 이모네랑 같이 베트남, 베트남 아닌가? 어디 동남아 다녀오신대. 난 뭐 별 일 없고. 민주씨는?”

 “저희는 완전 고리타분한 집안이라 내일 큰집 가서 전 부쳐요. 그나마 경기도라서 다행이지.”

 “고생이겠다. 전 부치면 시집가란 말 옷에 베어 오겠네?”

 “하, 벌써부터 지치네요. 근데, 과장님….”

 은근한 목소리로 부르면서, 또 달달한 향을 풍겼다. 무슨 말을 할지 알 것 같았다.

 “그냥 물어볼래, 너무 궁금하니까. 두 분 무슨 사이세요?”

 “남태영 얘기지?”

 “그 남자말고 또 누구 있어요?”

 “그냥 동창이야. 나한테 도움 받고 싶은 게 있다고 부탁하는 중이라 해야 하나?”

 “설마 돈 빌려 달라는 건 아니죠?”

 “그런 건 아니고.”

 “다행이네. 그럼 관심 없으신 거죠?”

 “없으면, 소개라도 시켜 달라고?”

 “맞아요. 아시잖아요, 완전 제 이상형 그 자체.”

 “민주씨 결혼상대 찾는 거 아니었어? 나도 잘 모르지만, 결혼상대로 소개시켜 주기에, 걘….”

 “소개만 시켜주시면 그건 제가 잘 알아서 할게요. 네?”

 “기회 봐서 말은 해볼게. 나도 그렇게 친한 사인 아니야. 연락한지 한 달도 안 됐고.”

 “과장님만 믿을게요. 오늘 이 집 음식 더 맛있는 것 같아요.”

 황주임의 행복지수는 한층 더 상한가이다. 반면, 내 연락을 기다리는지 아무 소식이 없는 태영과 당장 며칠 뒤면 만나야 하는 이상우를 두고 여전히 어떤 대책도 없는 나는 우울증 검사라도 받아야 할 판이었다.

 

 명절의 시작이라 조금 일찍 퇴근했다. 집에 와보니 N만 거실 한 복판에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엄마한테 메시지가 와 있었다.

 -우린 곧 탑승한다. 잘 다녀올게. 일요일에 보자.

 이미 대한민국 상공을 벗어나 있을 시간이라 답장을 미뤘다. 들고 나갔던 가방을 정리하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주방으로 갔다. 5일간 먹을 식량이 있는지 냉장고부터 찬장까지 차례로 확인했다. 쌀은 있고, 김도 있고, 통조림도 좀 있고, 라면도 몇 봉지 있는 정도였다. 장을 보러 나가볼까 망설였다. 사람이 많이 있는 곳은 아무래도 눈이 불편했다. 그래도 내일보다는 오늘이 덜 북적일 것 같아 일단 집을 나섰다. 뭘 사야할지 모르는 채로 ‘구 분홍목욕탕’에서 마을버스에 올라탔다. 버스는 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옆 동네의 큰 재래시장으로 데려다줬다. 금요일에 베이킹클래스를 제외하면 오늘 포함해 6일간 커다란 집에서 특별한 계획 없이 혼자 보내는 고요하고 긴 휴가가 시작됐다. 지난여름을 태웠던 프로젝트로 휴가도 다녀오지 못 했다. 황주임도 마찬가지였는데, 이번 추석 연휴에 쓰지 못한 휴가의 일부라도 붙이고 싶어 했지만 공식적으로 5일이나 쉬는 연휴를 더 연장하는 건 임원급이나 할 수 있는 일이라며 눈치를 보다 말았다.

 

 황금연휴의 시작을 맞이하는 사람들은 여유가 있었다. 시장은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로 붐볐지만 급히 서두르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한복을 차려입고 분홍색이나 황금색 보자기로 곱게 싼 선물상자를 들고 가는 사람들도 종종 눈에 띄었다. 일자로 길게 뻗은 시장을 입구부터 끝까지 천천히 둘러보고, 맛있어 보이는 건 조금씩 다 사기로 마음먹었다. 추석이니까 송편도 조금 사고 동그랑땡이나 육전도 먹어야지 생각하니, 우리 집에서 느끼기 힘든 명절 분위기에 취하는 것 같았다. 자주 오는 장소는 아니라 ‘어느 집이 맛있다, 어느 집이 인심이 좋다.’같은 알찬 정보는 없었다. 가게 앞에 서 있는 손님들의 색이 좀 더 행복해 보이는 곳에서 구매하기로 했다. 자연스레 시선이 올라갔다. 제일 먼저 모듬전을 공략하기로 했는데, 직진해서 걷다가 세 네 번째쯤 등장한 가게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단감색을 가진 할머니가 전집 사장님과 담소를 나누다 동그랑땡 하나를 입에 넣었다. 먹는 순간 커다란 나무에 달린 그네를 타듯 색 덩어리가 흥겹게 움직였다. 냉큼 할머니 옆에 서서 모듬전 하나를 주문했다. 육전도 먹고 싶었는데, 모듬전 양이 생각보다 많아 넘어갔다. 다음으로 떡집을 탐색했다. 시장에 있는 대부분의 떡집이 붐벼서 전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삼색 송편 한 봉지를 샀다. 식혜도 맛있어 보여 한 병 사서 담았더니 들고 온 장바구니가 꽤 묵직해졌다. 그래도 조금 아쉬워서 시장 끝까지 걸어갔다 다시 입구로 돌아와 버스를 타기로 했다. 다음으로 내 발목을 잡은 곳은 꽈배기 가게였다. 저녁거리와는 거리가 멀지만 시장만 오면 꼭 먹고 싶어지는 간식이다. 나보다 먼저 온 손님들이 있어 차례를 기다렸다. 바로 옆에 과일 가게가 있었다. 사과, 배, 포도, 감, 모두 맛있어 보였지만, 사가지고 간들 먹지 않을 것 같아 눈으로만 구경했다. 주문할 차례가 되어 시선을 꽈배기로 돌리려다, 다시 과일 가게를 볼 수밖에 없었다. 색이 없는 사람이 있었다. 무화과를 사고 있는 이상우였다. 꽈배기 사장이 내가 산 꽈배기를 종이봉투에 담는 동안 수십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채웠다. 아는 척은 해야 하는데 어떻게 자연스럽게 인사해야 하는지, 여기서 만나는 건 정말 우연인데 우연이라고 생각할지, 지금 내 옷차림은 괜찮은지. 종이봉투를 건네받고, 꽈배기 사장에게 조금 큰 목소리로 인사했다. 소리가 나지 않게 최대한 크게 숨을 내뱉고 과일 가게 쪽으로 몸을 돌렸다.

 “어, 보라님.”

 먼저 알아봐줬다. 먹지도 않은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입 안에서 사르르 녹았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과일 사러 오셨어요?”

 “무화과가 떨어져서 사러 나왔어요. 근처 사시니까 이렇게도 만나네요. 장 보러 오셨어요?”

 “오늘 일찍 끝나기도 했고, 명절이라 구경 나왔어요. 아, 꽈배기 하나 드세요. 방금 샀어요.”

 “감사합니다.”

 우리는 종이컵에 꽈배기 하나씩 넣고 먹으면서 잠시 말없이 시장을 걸었다. 이상우가 어느 방향으로 가든 그 방향이 내가 가야할 방향이었다.

 “저는 이쪽에 주차했는데, 버스 타고 가세요?”

 “차 가져오셨구나. 네, 전 버스 타러 가야해요.”

 “짐도 있는데 태워드릴까요? 차는 아니고 스쿠터라서 조금 불편하실 지도 몰라요.”

 당연히 타겠다고 말해야하는데 나도 모르게 망설였다. 이상우의 뒤에 앉아서 어딜 잡아야 하는지 먼저 생각했다. 거절의 의미로 받아들일 시간이 오기 전에 얼른 대답했다.

 “제가 타면 불편하지 않으실까요? 선생님 짐도 실어야 하는데?”

 이상우만 앞에 없었다면 주먹으로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았을 것이다. 괜찮다고 태워주겠다고 다시 말해주지 않으면 어쩌나 속으로 애태웠다.

 “스쿠터에도 트렁크가 있어요. 모르셨죠? 가세요, 데려다 드릴게요.”

 조금 걸어가니 공영주차장 한편에 베이지색에 갈색 가죽시트가 달린 스쿠터가 보였다. 이상우는 보란 듯이 시트를 젖히더니, 헬멧 두 개를 꺼냈다. 하나는 하늘색, 하나는 노란색이었다.

 “개업하면서 근처로 급하게 장 보러 갈 때 탄다고 한 대 샀어요. 거의 혼자 타고 다닐 텐데 왠지 헬멧은 두 개가 사고 싶더라고요. 헬멧 예쁘죠? 노란색 쓰세요.”

 그렇게 말하고는 하늘색 헬멧을 내게 건넸다. 그래서 다른 쪽 손에 들고 있는 헬멧에 손을 뻗어 가져와 썼다. 이상우는 잠시 멋쩍은 표정을 하더니 내 장바구니를 뺏어 시트 아래 공간에 넣었다. 자기가 산 무화과도 내 짐 위에 살며시 얹었다.

 “무화과 위에 얹어도 되겠죠? 그럼 이제 출발할게요. 가면서 길 알려주세요.”

 골목길 구석구석을 천천히 안전하게 달리는 스쿠터에서는 이상우를 잡지 않아도 괜찮았다. 두 팔을 등 뒤로 뻗어 가죽시트 끝 부분을 단단히 잡았다. 처음엔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이게 과연 다행스런 일인지 조금씩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골목길 구석구석을 천천히 안전하게 달리는 스쿠터에서 가능한 게 한 가지 더 있었다.

 “지난 주 수업 끝나고 힘들지 않으셨어요? 2시간 넘게 서 계셨잖아요? 베이킹 처음 접하는 분들은 그 부분을 제일 힘들어 하시더라고요.”

 조금 큰 목소리를 내면 무리 없이 대화가 가능했다.

 “다음 날이 주말이어서 충분히 쉬었어요. 처음 해 보는 수업이라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더라고요. 그래도 재밌었어요. 생각해보니까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는 게 참 오랜만이에요.”

 “다행이네요. 보라님 같은 경우는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수업을 진행하니까 더 흥미로우실 수 있어요. 아버님 생신이 10월이라고 하셨죠?”

 잠시 당황했다가 얼른 정신을 차렸다. 베이킹클래스를 듣겠다고 신청하면서 아빠 핑계를 댔던 게 떠올랐다. 우리 가족은 모두 다른 계절에 태어났다. 봄은 봄, 엄마는 여름, 나는 가을, 아빠는 겨울. 그러니까 10월에 생일인 사람은 나였다. ‘직접 만든 케이크를 선물하고 싶다.’가 이상우에게 얘기한 베이킹클래스를 듣는 동기였는데, 그 선물의 대상을 ‘나’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아…. 맞아요. 10월 1일이요. 9월 30일 마지막 수업 때 타르트케이크를 잘 완성해서 다음 날 드리려고요.”

 “직접 만든 케이크 선물하면 감동받으시겠어요. 그 날까지 힘내 봐요, 우리.”

 “네, 열심히 할게요. 잘 부탁드려요.”

 “참, 다음 수업 때도 남자친구분이 데리러 오시나요?”

 “네? 무슨? 저 남자친구 없는데요.”

 “지난 번 수업 끝나고 공원 쪽으로 가시 길래, 힘들어서 잠시 쉬시나 보다 했는데, 어떤 남자가 보라님께 다가가더라고요. 그래서 혹시나 해서 지켜봤어요. 불미스러운 일 생기면 안 되니까요. 그런데 아는 분 같아서, 남자친구분이구나 했어요.”

 “아, 남태영. 남자친구는 아니고 동창이에요. 일 때문에 철길공원 근처에 있었는데, 잠시 저한테 인사하고 갔어요.”

 “제가 괜한 걱정을 했네요. 이제 큰 도로로 가야하니까 잘 잡으세요.”

 자신을 잡으라고 말하는 이상우의 말이 노래처럼 들렸다. 습관적으로 하늘색 헬멧 위를 봤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내 앞에 보이는 등만 가지고는 이상우가 어떤 기분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이상우의 카키색 트러커 재킷을 양손으로 움켜쥐었다. 이것을 신호 삼아 스쿠터의 속도가 빨라졌다. 대화는 더 이상 할 수 없었다. 대신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 이상우는 내 왼손을 끌어다 자기 허리를 감싸게 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오른손으로도 이상우를 감쌌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22 #14 2020 / 8 / 22 229 0 5935   
21 #13 2020 / 8 / 21 203 0 8521   
20 #12.2 2020 / 8 / 20 203 0 3714   
19 #12.1 2020 / 8 / 19 218 0 5261   
18 #11 2020 / 8 / 18 207 0 7840   
17 #10.3 2020 / 8 / 17 214 0 3737   
16 #10.2 2020 / 8 / 16 208 0 2472   
15 #10.1 2020 / 8 / 15 221 1 3614   
14 #9 2020 / 8 / 14 212 0 6762   
13 #8.2 2020 / 8 / 13 217 0 4936   
12 #8.1 2020 / 8 / 12 234 0 6050   
11 #7.2 2020 / 8 / 11 213 0 5385   
10 #7.1 2020 / 8 / 10 231 2 5023   
9 #6 2020 / 8 / 9 221 1 4638   
8 #5.2 2020 / 8 / 8 220 1 2920   
7 #5.1 (1) 2020 / 8 / 7 255 1 3736   
6 #4 2020 / 8 / 6 219 1 3522   
5 #3.2 2020 / 8 / 5 218 1 3350   
4 #3.1 2020 / 8 / 4 222 1 2381   
3 #2.2 2020 / 8 / 3 226 1 3143   
2 #2.1 2020 / 8 / 2 238 1 3871   
1 #1 2020 / 8 / 1 423 0 3415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