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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지오르고스의 일기
작가 : 현서랑
작품등록일 : 2020.7.31

J. 그녀는 그것을 지오르고스의 일기라 적었지. 모르탈 아이움, 그 옛 시대에 지오르고스가 일궈내어 셀 수 없는 시간을 지나온 그 신비의 역사를. 이젠 J라는 그 작은 여자아이의 이름이 우리들의 진실 위에 허구성과 함께 덮여질 테지. 인간들은 우리들의 존재를 믿으려하지 않아. 앞선 존재들. J는 우리를 그렇게 부르더군. 인퀴스토 디토스란 신들과 엄연히 구분되어야 함에도 말이야.

 
나가 I
작성일 : 20-08-10 08:47     조회 : 260     추천 : 0     분량 : 8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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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가 8_

 북상 4일째 밤 우린 테스미르미드의 북쪽 국경을 넘었고 루치노르에 들어섰다.

 5일째엔 로부르의 수도인 로마노 남부에 진입했으나 시각은 늦어있었다. 로마노 시내는 그 다음 날인 6일째에 지나야했다. 나와 이니스는 로마노 시내의 예술가들과 그 거리의 미관에 반하여 속력을 늦췄으나 뤼귀는 우리를 다그쳤고 우린 그곳에 오래 머물지 못했다.

 7일째엔 랑발에서 칼로스 강을 건넜다. 랑발이 끼고 있는 칼로스 강 유역엔 교량이 많았고 나룻배 위에서 강을 넘나드는 사람들 역시 많았다.

 8일째 되는 날엔 록를린의 국경을 넘었다. 뤼귀가 안내하는 길은 그때부터 칼로스 강을 따라 그 상류로 이어졌는데, 그곳은 버마로라는 지역으로 록를린에 속해있었다. 록를린의 견고한 사슬갑옷으로 무장하고 있던 버마로의 국경감시대는 우리를 발견해 멈춰 세웠고 우린 그들로 인해 약간의 시간을 지체해야 했다.(뤼귀는 그때도 자신을 루완의 특사라 밝혔다.)

 11일째 밤 루멘 국경이 우리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12일째에 우린 루멘 몽페르 동부로 진입했다. 몽페르에서부터 보이던 루멘의 병사들은 모두 체구와 기백이 상당했다. 그들은 철이나 쇠보다는 가벼워 보이는 소재의 갑옷에 흰 망토를 두르고 있었는데 그들 모두가 들짐승의 털과 가죽으로 각자의 갑옷을 치장하고 있었다.

 13일째인 어제, 우린 루멘의 수도 알랭에 들어섰다. 그 길에서부터 동쪽으로는 린그노르 북해로 이어지는 헤즈버그 만이 보였고, 거기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은 낮 시간임에도 시리고 매서웠다. 나와 이니스가 그 추위를 견디지 못하자 뤼귀는 알랭 남쪽 해변에서 우리를 위해 또 한 번 코옵스꾼이 되어주었다. 뤼귀가 나선 곳은 드라스라 불리는 어촌 마을이었다. 그곳의 어민들에게 두꺼운 옷이란 꽤 큰 자산이었고, 뤼귀는 그만큼의 큰 수고를 쫓아 그곳 촌장을 찾아갔다. 마침 드라스는 한 가지 문제를 겪고 있었다. 사람 좋은 촌장은 그 문제를 밝히지 않고 그저 호의만으로 코트 두 벌을 우리에게 내어주려 했으나, 그들의 시름을 안 뤼귀는 굳이 자신의 일거리를 구했다.

 드라스의 촌장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 마을 어민들 중 어느 누구도 뤼귀가 그 문제를 해결해주리라 기대하지는 않았다.

 

 - 실은 사흘 전부터 저희 마을에 어둠이 깔리면 새벽까지 괴상한 울음소리들이 들려 주민들이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흰 어젯밤 처음으로 청년들을 꾸려 밤에 보초를 세웠는데 그중 해안을 감시하던 한 청년이 실종된 상태입니다. 몇몇은 어젯밤 해안에서 괴물을 봤다고 합니다. 저희는 이 일을 알랭 궁에 일러 도움을 요청한 상태입니다. 허나 왕께서 언제 병사들을 보내주실 지 모르니 저희로서는 당장 오늘밤이 걱정입니다.

 

 그때 해는 이미 뉘엿해있었고 뤼귀는 촌장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다.

 

 - 그 괴물의 생김새가 어떻습니까?

 

 - 온몸이 반짝거리고 사람처럼 다리가 있어 두발로 걸었다고 합니다.

 

 - 괴상한 울음소리에 대해 더 설명해주실 수 있습니까?

 

 - 그 소리는 고래의 울음소리와 비슷했습니다. 길손께선 고래의 울음소리를 들어보셨습니까?

 

 뤼귀는 고개를 끄덕인 후 질문을 이었다.

 

 - 근래에 파도가 사나웠던 적은 없었습니까?

 

 - 예? 길손께서는 그것을 어찌 아셨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부터 해류가 사나워 저희 배가 먼 바다에 나가질 못하고 있습니다.

 

 모든 질문을 마친 뤼귀는 그곳에 모인 주민들에게 두 가지를 당부했다.

 

 - 오늘밤 제가 조사를 해볼 테니 주민들께선 부디 절 믿고 집안에 계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되도록이면 바깥을 내다보셔도 안 됩니다.

 

 밤이 되자 드라스 거리엔 인적이 사라졌다. 뤼귀는 내게 동행을 허락했으나 이니스에게는 실내에 머무르기를 권했고, 그녀는 촌장 집에 머물렀다. 촌장은 뤼귀에게 검 한 자루를 내어주었는데 뤼귀는 그 검을 받아 해변으로 나갔다. 난 그를 따랐다.

 해변엔 단출한 제단이 지어져 있었다. 뤼귀는 그 구조물을 반겼다.

 

 - 주민들이 나가님께 제를 올린 모양이군. 예부터 어민들은 나가님을 섬겼지. 난 그분을 모시던 기사였네.

 

 뤼귀는 어두운 바다를 보며 내가 쫓지 못할 회상에 잠겼다. 난 그를 방해하지 않았다. 마침 지나는 월 또한 나가였다.

 어둠은 천장을 채우는 별과 헤즈버그 만의 물소리가 어우러진 우리의 모래사장 위로 금세 가까워왔다. 주민들이 말했던 괴상한 울음소리는 자정이 되기 전부터 들리기 시작했다. 소리는 바다에서 들렸고 뤼귀는 갈수록 커지는 소리에도 느긋이 앉아있기만 했다.

 

 - 기다리면 저들이 알아서 뭍으로 올라올 걸세.

 

 하나로 시작된 울음소리는 점차 여럿으로 확산되어 해변 쪽으로 모여들었고 이윽고 뤼귀의 말대로 그 소리의 주인들이 뭍으로 올라왔다. 긴 재색 머리털에, 빛나는 은비늘로 덮인 여인의 몸이었다. 그것들의 손발엔 갈퀴가 달려 있었다. 그것들이라기 보단 그녀들이라 칭하는 것이 더 어울릴만한 자태였다.

 뤼귀는 그녀들을 갈렌 호수의 요정 딩곤이라 소개했다. 해변으로 올라온 딩곤 넷에겐 모두 표정이 있었고, 맵시고운 몸에서 발해지는 은빛은 그녀들의 낯을 드러냈다. 우리에게서 먼 거리를 두고 멈춰선 그녀들은 우리 주위에 내린 암흑 속에서도 뤼귀를 알아보기라도 한 것처럼 자신들의 얼굴에 반가움을 띠웠다. 자리에서 일어난 뤼기가 그녀들에게 가까이 다가서자 그녀들은 울음소리를 멈추고 턱을 앞으로 빼내 교태를 부렸다. 그러나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을 땐, 그녀들은 곧바로 경계심을 드러냈고 뤼귀는 내게 가만히 있으라는 손짓을 보냈다.

 곧 뤼귀는 바다로 뛰어들었다. 딩곤들은 해변 위에 멀뚱히 서서 뤼귀가 있는 바다 쪽과 드라스 마을 쪽을 두리번거렸는데, 수면 위로 얼굴을 뺀 뤼귀가 휘파람 소리를 내자 모두 바다로 뛰어들어 뤼귀와 함께 얕은 물에서 헤엄을 쳤다. 그때 난 어둠속에서도 딩곤들에게서 발해지는 은빛으로 인해 뤼귀가 헤엄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마치 작은 파도처럼 해면을 누비던 뤼귀는 어느덧 물결에 휩싸여 딩곤들을 먼 북쪽으로 물살을 이끌었고, 그녀들은 뤼귀의 이끎을 따라 달 아래 수평선으로 사라졌다.

 어둑하고 싸늘한 모래사장에 혼자 남게 된 난 뤼귀를 기다리지 않고 촌장의 집으로 돌아왔다. 촌장 부부는 딩곤의 울음소리와 함께 사라진 뤼귀를 걱정했으나 나와 이니스는 그들을 안심시켰다. 그리고 그들이 잠들었을 때, 난 내가 본 것들을 이니스에게만 얘기해주었다. 그녀는 내가 말을 더듬을 때마다 웃음을 참으면서도 딩곤에 대한 이야기에 아이처럼 빠져들었고, 내 이야기가 끝나자 자신이 아는 바다 전설들과 그 속에서 등장하는 바다 괴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새벽까지 내 곁에 깨어있었다.

 뤼귀는 다음 날인 오늘 낮에 드라스 마을로 돌아왔다. 마을 사람들은 이미 뤼귀가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을 알았고 그에게 감사를 표했다. 뤼귀는 촌장이 건네줬던 검을 다시 그에게 돌려줬는데, 검엔 어느 누구의 피도 묻어있지 않았다.

 우린 드라스 주민들에게 받은 옷과 음식을 챙겨 알랭 궁으로 향했다. 우리가 떠나기 전, 촌장은 뤼귀에게 실종된 청년에 대해 물었으나 뤼귀는 대답을 함구한 채 안타까움만을 전했다. 촌장은 청년의 죽음을 이미 예상했던 것처럼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드라스 마을을 온전히 벗어난 뒤가 돼서야 뤼귀는 어젯밤 이야기를 꺼냈다.

 

 - 그녀들을 본 것도 오랜만이지. 내가 오랜 세월을 레인웜과 루완에서만 지내다보니 잉코아 북쪽 바다의 친구들이 그리도 반갑더군.

 

 이니스는 딩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뤼귀 옆에 말고삐를 붙였다.

 

 - 어르신께 친구라면, 그녀들도 야경인가요?

 

 - 지금 인간들은 우리를 괴물이라 부르고 딩곤 역시 그 괴물들에 속하니 어떻게 보면 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그녀들은 그저 물짐승이란다. 루크룸 북쪽엔 갈렌이라 불리는 길고 거대한 호수가 있는데, 그녀들은 오래전부터 그 호수에서 살아왔단다. 인간들도 과거엔 그녀들을 호수요정이라 부르며 고귀한 생물로 여겼었지. 그때만 해도 갈렌은 요정들의 호수라는 별칭에 맞게 아름다웠어. 밤마다 딩곤들이 뭍으로 올라와 은비늘을 빛내며 달 아래 노래를 했단다.

 

 뤼귀가 연상케 한 과거 갈렌 호수의 모습은 더할 나위 없이 찬란했다.

 

 - 지금은 그렇지 않나요?

 

 이니스가 묻자 뤼귀는 쓴 표정을 지었다.

 

 - 잉코아 중앙 전선에 위치해 있는 만큼 많이 황폐해졌지. 갈렌의 여신으로 여겨지며 그녀들을 보살피던 이도 그곳을 떠났으니……. 아직도 갈렌 호수엔 일부 딩곤 무리가 살고 있긴 하지만 전쟁으로 인해 터전을 잃은 대부분의 딩곤 무리는 어느 때부턴가 잉코아 북해에 자기들의 영역을 세우더구나. 그녀들이 어떻게 호수에서 빠져나와 바다로 들어간 것인지는 모르겠어. 그래도 그 아름다운 존재들이 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어서 다행이야. 해가 갈수록 호수 안엔 시체가 쌓여가고 호숫가의 나무들은 불타고 있으니 말이야.

 

 이니스는 뤼귀에게 동화해 갈렌 호수와 딩곤들의 사정에 슬퍼했다. 뤼귀는 그런 그녀를 위해 억지스런 미소를 끄집어냈다.

 

 - 난 그녀들의 터전이 사라지는 것보다 그녀들이 인간들을 적으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이 더 걱정이구나. 매년 나가와 네냐엔 잉코아 북 바다에서 큰 파도가 치는데 딩곤들은 그것을 피해 해류가 잔잔한 해만으로 들어올 테니 말이야. 저 드라스 마을과 같은 일들이 이 근처 어촌마을에서 앞으로도 종종 일어날 지도 모르겠어. 밤마다 뭍을 찾는 그녀들의 습성이 지금시대엔 차라리 없었으면 좋겠군.

 

 뤼귀 그의 걱정은 인간이 아닌 딩곤들에게 향해있었다. 도어테일즈에서 그를 처음 만났을 때도 그는 바늘이 없는 낚싯대로 헛낚시를 켜고 있었다. 그땐 그의 행동이 이상하게만 보였지만 이젠 그렇지도 않다.

 딩곤들에 대한 대화가 끝나갈 무렵, 우린 알랭 궁에서 드라스 마을로 파견된 루멘 병사들을 만났다. 그들의 대장이 먼저 우리에게 인사와 소개를 한 까닭에 우린 그들을 알아볼 수가 있었다. 뤼귀는 그들의 대장에게 드라스 마을의 문제가 이미 해결되었다고 말했는데, 그 대장은 당최 루멘의 부관다운 말을 남기고 마을로의 행진을 이어갔다.

 

 - 그대들이 우리의 일을 덜어주었다니 고맙소. 하지만 우린 왕께서 그 마을에 보이신 호의를 증명하기 위해 그곳으로 가야하오. 또한 그대들이 마무리하였다는 일을 재차 확인하는 것 또한 오늘밤 그 마을에 필요한 일이오.

 

 그들과의 만남 뒤로 우린 이곳 알랭 궁에 도착했다. 성의 하얀 외경은 우리가 지나온 그 어떤 성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웅장했다. 성루엔 바위 같은 파수병들의 흰 망토가 바람에 날려 마치 깃발처럼 펄럭였다. 우린 성문에 다가갔고, 성문 앞엔 한 부관이 말에 오른 채 성문 양쪽의 창병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 모두 말에서 내리시오.

 

 그가 근엄하게 말했고 우린 모두 말에서 내렸다. 그는 우리 앞에서 느리게 말을 몰며 우리를 내려다 봤다. 그가 말없이 우리를 살피기만 하자 뤼귀가 먼저 입을 열었다.

 

 - 클로드 왕을 뵈러 왔소. 난 루완의 특사이며 이들은 내가 보호하는 아이들이요.

 

 - 당신이 특사임을 증명해보시오.

 

 - 난 징표를 가지고 있지 않소. 다만 테스미르미드에서 우리의 방문에 대한 서신을 미리 보냈을 것이오.

 

 그 말에 부관은 뤼귀에게 가볍게 예를 보이며 길을 텄다. 성문은 열렸고 우린 웅장한 관문에서부터 이어지는 오르막길을 걸었다. 길 왼쪽엔 마구간이, 오른쪽엔 거대한 연병장이 있었다. 연병장엔 궁내 병사들이 모여 모두 하나같이 곧은 자세로 서있었는데, 그 수많은 병사들의 눈이 닿는 단상 위엔 루멘의 왕이 서있었다.

 르슈 오디아르 클로드 왕은 우리가 만났던 왕들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아보였다. 그는 팔소매가 작은 은고리들로 장식된 하얀 평복을 입은 채 앞부분이 삼지창처럼 위로 솟아있는 철제 왕관을 쓰고 있었다. 그가 우릴 바라보자 뤼귀는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연로한 왕에 대한 인사라기엔 다소 채신이 없어보였다.

 왕은 말없이 우리에게 따라오라 손짓을 했고, 그를 따라 들어간 궁의 실내는 왕의 집무실처럼 보였다. 왕이 멈춰선 곳 뒷벽엔 거대한 린그노르 지도가 걸려있었는데, 뤼귀는 마치 제 방을 돌아다니듯 왕 옆을 지나쳐 그 벽 앞으로 가더니 거기서 지도를 살폈다. 우릴 따라왔던 루멘의 관료들은 소탈하면서도 대담한 뤼귀의 태도를 언짢아하며 그를 흘겨봤다. 왕은 그런 신하들의 모습과 지도 앞에 서있는 뤼귀의 뒷모습을 번갈아보며 조용히 웃었다.

 

 - 당신의 신하들께서 저를 불편해하는 모양입니다.

 

 뤼귀가 말했다. 왕은 그의 말을 듣고 크게 웃더니 자신의 신하들을 모두 바깥으로 내보냈다. 그리고 실내에 우리 넷만 남게 됐을 때 왕은 첫마디를 뗐다.

 

 - 은사님의 삶은 예나 지금이나 예사롭지가 않군요. 그래도 루완의 특사라니 이번엔 제법 고관을 고르셨습니다.

 

 둘은 그제야 웃으며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난 그 둘의 친분에 대해 그 자리가 끝난 후에 알게 되었는데, 뤼귀는 루멘의 전통왕가인 오디아르가가 대대로 존경해오던 야경이었고, 르슈 왕은 어릴 적부터 뤼귀를 은사라 부르며 따랐던 것이었다.

 왕은 나와 이니스에게도 호의를 보여 상석에 앉게 해줬다.

 

 - 테스미르미드에서 보내온 서신엔 루완의 특사가 누구인지 밝혀져 있지 않았습니다. 그게 은사님일 줄 미리 알았다면 전 제 아들을 궁에 남겨두었을 텐데요.

 

 - 웰렌 왕자를 말씀하시는 군요. 왕께선 그를 후임으로 내세울 작정이십니까?

 

 그들이 언급한 오디아르 웰렌은 르슈 오디아르 클로드의 셋째 자식이자 루멘의 유일한 왕자였다.

 

 - 은사께서는 제 아들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 알고 있습니다. 다만 그에 대하여 제가 알고 있는 상은 여태껏 제가 봐온 루멘의 왕들과는 사뭇 다릅니다.

 

 왕은 시름 섞인 한숨을 뱉었다. 난 오디아르 웰렌에 대한 소문을 들어본 적이 없었으나, 아들을 떠올리는 왕의 낯빛을 통해 웰렌 왕자가 세자의 자질을 갖추지 못한 왕손임을 바로 알 수 있었다.

 

 - 그래서 전 그 아이와 저희 루멘의 앞날이 걱정입니다.

 

 왕은 심란해했다. 뤼귀는 그의 걱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 다른 자식에게 왕위를 물려주면 되는 것이 아닙니까? 첫째 레아 공주와 둘째 실라 공주는 둘 모두 루멘의 여왕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지 않습니까?

 

 오디아르 레아와 오디아르 실라는 그녀들의 남동생인 오디아르 웰렌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유명했는데, 그 이유는 그녀들이 떨쳐온 무용 때문이었다. 그녀들은 어린 나이서부터 각각 록를린과 카르고를 도와 린그노르 동부 전선에서 숱한 야경 부대를 막아냈고, 사람들은 그런 그녀들의 활약을 루멘의 차기 왕권경쟁이라 여겨 이야깃거리로 삼았다. 도어테일즈에서 자란 나와 이니스는, 종종 시와 노래에 등장하는 두 공주에 대해 잘 알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두 공주에 대한 르슈 왕의 평가는 세간과 달랐다.

 

 - 그 두 아이는 오랜 날을 동부에서 머묾으로 인하여 루멘의 의를 잃었습니다. 우리 루멘의 군사는 동벌을 목적으로 양성된 침략자들이 아닙니다. 레아와 실라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뤼귀는 안타까운 내색을 드러냈다. 왕은 멋쩍게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 제가 괜한 소리를 했습니다. 은사께서 루멘의 왕위를 걱정하여 오신 것이 아니실 텐데 말입니다.

 

 뤼귀는 그때 아르도르의 펄먼 왕의 죽음과 언더옥포드의 상황을 왕에게 전했고, 왕 또한 린그노르 남부의 모든 정세를 알고 있었다.

 

 - 다른 국가들 역시 아르도르의 배반을 알고 있고 현재 린그노르는 첫 내전을 앞두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지요. 허나 록를린과 카르고는 이번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그들은 이번 일을 루완과 아르도르 두 국가만의 외교문제로 치부해버리더군요.

 

 - 그들의 태도는 이미 예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왕이시여, 적어도 루멘만은 이번 일을 외면해선 안 됩니다. 배반국의 서진을 막아낼 힘과 도리를 모두 갖춘 곳은 이 나라뿐입니다. 왕께서는 린그노르의 먼 앞날을 생각하셔야 합니다.

 

 뤼귀의 진중한 부탁은 르슈 왕의 분위기를 바꿨다. 왕은 오묘하게 웃으며 등받이에 어깨를 기대 팔짱을 꼈다.

 

 - 아, 은사께서 루완의 특사로서 저를 찾아온 이유가 그 때문이었군요. 테르미르미드의 로워드 군사가 저희에게 특별히 서신을 보낸 이유도 말입니다.

 

 왕은 자리에서 일어나 벽에 걸린 지도 앞에 섰다.

 

 - 은사님. 테스미르미드는 아르도르에게 쉽게 육로를 내어주진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자국 안전의 위협일 뿐만 아니라 배반자를 돕는 일처럼 보일 테니 말입니다. 허나 테스미르미드의 육로는 아르도르가 무력으로도 충분히 쟁취할 수 있는 것이지요. 게다가 죽은 펄먼 대왕을 대신하여 현재 아르도르의 통치권을 쥐고 있는 섭정 비즈니 운버트는 서방국가들만이 누리는 평화를 시기하는 옹졸한 이라 들었습니다.

 

 뤼귀는 말도 표정도 없었다. 르슈 왕은 거만을 떠는 것처럼 보였고, 뤼귀는 르슈 왕과의 대화가 자신의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왕의 태도는 뤼귀를 놀라게 해주려는 얄궂은 연기에 불과했다.

 

 - 제 아들 웰렌이 이미 저희의 정예군 8천을 이끌고 남하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로부르 국경에서 룩스비오스의 군과 합류하여 아네이 강 서편까지 진군할 것입니다. 은사께서는 이 북부까지 걸음을 낭비하신 셈이 됐군요.

 

 내내 굳어있던 뤼귀의 안색은 순간에 환해졌고 그것을 본 르슈 왕 역시 뿌듯해했다.

 

 - 그 걸음은 제가 루멘의 왕을 의심하여 얻게 된 수고였나 봅니다.

 

 뤼귀의 그 말을 끝으로 왕은 신하들을 불러들이며 대화를 끝냈다. 그리고 왕과 뤼귀의 화목한 정론은 저녁에 다시 시작되어 밤까지 이어졌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테스미르미드를 떠난 후부터 14일 간 겪었던 일들이다. 조금 전 우리는 왕의 시녀에게 바다가 보이는 높은 층의 넓은 방을 안내받았고, 내가 서사를 정리하는 동안 이니스와 뤼귀는 창가에 나가 밤 파도 소리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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