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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이,보라색
작가 : Riley
작품등록일 : 2020.8.1

이 소설은 저에게 많은 '처음'을 선물해 주었어요.
여러 '처음' 중에서도, 가장 소중한 건 역시 '첫 소설'인 것 같네요.

이 글을 쓰면서 제가 관심있는 주제에 대해서도 깨닫게 되었어요.
그건 바로 '운명'인데요, 아마 이 후로도 계속 글을 쓰게 된다면,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형태의 '운명'에 대해 쓰지 않을까 싶어요.
[이,보라색]은 '운명'을 만났을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까를 궁금해하며
써 내려갔던 저의 첫 중편소설입니다.

너무너무 부족하지만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우연히, 또는 운명처럼, 읽어주실 분들께도 미리 인사 전할게요.
감.사.합.니.다.

 
#6
작성일 : 20-08-09 23:50     조회 : 221     추천 : 1     분량 : 4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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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은 모니터에, 손은 키보드 위지만, 정신은 온통 휴대전화의 까만 화면에 있었다. 금요일 밤에 태영을 보낸 후 평생 가장 긴 주말을 보냈다. 도저히 기다릴 수가 없어 ‘우리 언제 만날까?’라는 메시지를 보냈지만, 돌아온 건 ‘데이트 신청?’이란 장난스런 답변뿐이었다. 다시 한 번 간절한 마음을 전달했다.

 -나 정말 진지해. 언제 볼 수 있어?

 -주말에 VIP 투숙객 있어서 바쁘고, 월요일에 다시 연락할게.

 -연락 기다릴게. 고생해.

 다시 올 연락을 기다리며 지새운 세상 가장 긴 주말이었다. 월요일이 오기를 이렇게 원했던 적이 있나 싶을 정도였다.

 “부장님, 오늘 점심은 뭐 먹을까요?”

 직장인의 최대 난제라는 점심 메뉴 얘기를 하는 황주임의 목소리를 듣고 점심시간이라는 걸 알았다.

 “난 오늘 점심 약속 있어서 이과장이랑 둘이 먹어야겠다. 맛있게 먹고 와.”

 차부장의 말에 황주임이 자기 의자를 끌어 내 옆에 바짝 붙었다.

 “과장님, 오늘 뭐 먹을까요? 우리 점심 때 할 얘기도 많잖아요.”

 커다란 장바구니에서 오렌지 하나가 통통거리며 떨어졌다. 월요일에 내가 치러야 할 일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오늘 점심시간을 잘 견뎌내 보자 다짐하는데, 휴대전화 진동 알림이 왔다. 점심 메뉴를 잔뜩 늘어놓고 있는 황주임에게 잠시 기다려 달란 손바닥을 보였다.

 -왜 보고 안 해?

 봄이었다. 실망스런 마음에 전화기를 뒤집어 놓았다. 다시 진동 알림이 왔다. 또 봄이겠지 싶어 황주임의 점심 메뉴 오지선다 중 번호 하나를 고르려는데, 연속해서 휴대전화가 울렸다. 미리보기 메시지 창에 ‘구 남태평양’이라고 저장된 이름이 보였다.

 -점심시간이지?

 -잠깐 와줄 수 있어?

 -1층 카페로.

 갑작스런 요청에 당황스러웠지만 일단 가야했다. 통통거리며 떨어지는 오렌지를 낚아 채 황주임 머리 위에 되돌려 놓았다.

 “민주씨 정말 미안한데, 갑자기 나갔다 와야 해서 같이 점심 못 먹겠어. 미안. 주연씨랑 먹어. 미안해.”

 설명도 변명도 거짓말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차부장보다 먼저 사무실을 나서 호텔로 향했다. 로비를 지나 1층에 있는 라운지 카페를 찾았다. 입구에서 기다려야 하는지 들어가서 기다려야 하는지 물어보려고 휴대전화 화면을 켰다. 등 뒤로 누군가 다가오는 게 느껴져 한쪽으로 피하려는데 오른쪽 어깨에 커다란 손이 툭 떨어졌다.

 “들어가자.”

 머리 위에 립스틱이 있는 태영이었다. 태영은 창가 쪽 자리로 안내했다. 무슨 일인지 물어보려는데 태영이 먼저 말했다.

 “이보라,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

 알 수 없는 긴장감이 돌아 태영의 머리 위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움직임이 적고 형태가 더 립스틱과 가까워지고 있다.

 “우리 앞 쪽에 외국인 보이지? 지금 어떤 것 같아?”

 “두 사람 중 누구?”

 “두 사람 다. 자세히 얘기해 줘.”

 “그걸 왜 나한테….”

 목소리를 한 층 더 낮췄다.

 “너도 볼 수 있다며?”

 “지금은 못 봐. 잘 보고 세세하게 말해 줘.”

 지금 내가 어떤 상황에 들어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일단 태영이 시키는 대로 우리 앞 쪽에 자리한 두 명의 외국인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내가 정면에서 볼 수 있는 사람은 팬톤색상표 한 장을 떼어 붙인 듯한 코발트블루, 뒷모습이 보이는 다른 한 명은 체다 치즈가 떠오르는 주황을 가졌다. 꼭 색 덩어리의 움직임이나 형태를 보지 않더라도, 두 사람을 둘러싼 경직된 분위기가 무언가 중요한 얘기를 하고 있음을 알려줬다. 무얼 보고 무엇을 얘기해야 하는지 물으려고 입술을 뗐는데, 내 앞에서 자연스러운 척 연기하고는 있지만 잔뜩 긴장한 듯 보이는 태영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못 했다.

 “내 쪽에서 정면에 있는 남자는 코발트블루를 가졌어. 단단해 보이는 둥근 형태를 하고, 움직임도 적어.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고, 신중한 태도를 보일거야. 뒷모습이 보이는 남자는 주황이야. 색이 바깥으로 번져 나간 것처럼 보이는 형태이고, 움직임이 많지는 않지만 일정한 시간 간격에 맞춰 흔들리고 있어. 초조하고 긴장한 것 같아.”

 “일단 나가자.”

 태영은 내게 어리둥절해 할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얼떨결에 일어나 머뭇거리는 내 팔을 잡아끌면서, 카페 담당자에게 가볍게 인사하는 여유까지 보였다. 로비까지 와서는 일단 돌아가라고 했다.

 “이게 무슨 상황이야? 지금은 안 보인다는 건 뭐야?”

 “곧 다 설명할게. 일단 돌아가.”

 “뭐?”

 “내가 지금 꼭 가봐야 해서. 연락할게.”

 호텔 로비 한 가운데서 버려졌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고 잠시 서 있는데, 내 뒤에서 들리는 이야기가 날 붙잡았다.

 -저 여자는 또 누구야? 새 여친인가?

 -지난번에 호텔로 와서 남매니저를 직접 찾았다던데.

 -또 어느 호텔 사장 딸 아니야? 능력도 좋다.

 호기심을 돋우는 자극적인 얘기였지만 더 이상 듣고 싶지 않고 그 자리에 더 머물기도 민망해져, 얼른 밖으로 나왔다. 사무실 건물 뒤쪽에 있는 편의점으로 들어가 1+1 프로모션으로 판매하는 삼각김밥과 포도맛 탄산음료 한 캔을 들고 남아 있는 자리 아무데나 앉았다.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질문을 퍼붓는 황주임에게 대충 얼버무렸다. 다행히 지난달에 끝난 프로젝트 마무리 건으로 오후는 분주해져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퇴근 시간이 되었을 때, 업무를 완전히 마무리 하려면 한 시간은 족히 걸릴 것 같았다. 그렇다고 내일로 미뤄 일의 흐름을 끊기는 싫었다. 차부장에게 마무리하고 가겠다고 하고는 혼자 남았다. 아무도 없고, 전화도 오지 않는 사무실에서 조금 느긋하게 일을 하다 보니 어느새 7시 반이 지나 있었다. 이제 집에 가야겠다 생각했다. 갑자기 아침에 생각나 하루 종일 머릿속에서 반복 재생되는 노래처럼 남태영과 이상우가 떠올랐다. PC 전원을 끄고 조금 어질러진 책상을 뒤로한 채 가방만 달랑 챙겨 사무실을 나섰다. 회사 로비를 거쳐 정문을 지나려는데, 밝은 색 청바지에 얇은 녹색 스웨터를 입고 머리에 벽난로를 가진 남자가 눈앞에 서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갖가지 감정이 몰려왔다. 한 편으론 서운하고, 한 편으론 서러웠다. 이렇게 다양한 감정이 드는 게 억울하기도 했다.

 “오늘 일이 너무 많았어. 피곤하다. 나중에 얘기하자.”

 조용하고 평범한 자정을 맞고 싶었다. 내일이 되기만 하면 뭔가 달라질 거란 헛된 기대를 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비밀’앞에서 기다렸더니, 황민주씨를 만났어. 너에 대해 물으니까 아직 일하는 중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여기 있었어.”

 “일단 집에 가고 싶어.”

 “우리 처음 만났던 곳에서 딱 5분만 얘기하자. 그 이상은 붙잡지 않을게.”

 태영은 내 팔을 슬쩍 잡아끌어 우산공원으로 데려가더니, 공원 입구에서 제일 먼저 보이는 벤치에 앉혔다. 자신은 앉지 않고 내 앞에 서 있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벌써 2분은 지난 것 같았는데, 그 말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정확히 3분 뒤에 말없이 일어나 가버릴 생각이었다.

 “난 능력을 잃어가고 있어. 이보라가 남태영의 색을 볼 수 있다는 건 그런 의미일 거야.”

 내 감정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 대답 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 놀라서 아무 반응도 할 수 없었다. 색이 보이지 않는 날이 올 수도 있다는 것에도 놀랐지만, 이 이상한 눈을 ‘능력’이라 부른다는 것에 더 놀랐다.

 “우리가 가진 능력이 어느 시점이 되면 사라지는 건지 나에게 어떤 문제가 있어서 나만 그런 건진 잘 모르겠어. 확실한 건, 난 해가 지날수록 보이는 날보다 안 보이는 날이 더 많아진다는 거야. 이 능력이 살아가는 데 엄청난 이득을 주진 못 해도 적어도 내 직업에는 상당히 유리했어. 투숙객의 깊은 속마음까지 알아채는 호텔리어야 말로 최고지. 그 덕에 승진도 빠른 편이었고.”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내 눈이라도 빌리겠다는 거야?”

 “그랬으면 좋겠어.”

 “뭐?”

 “대가없이 해달라는 거 아니야. 이보라도 내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을 거야. 예를 들어, 금요일의 파티시에?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보라가 그 남자에게 관심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아.”

 태영이 이상우를 언급하는 게 불편했다. 일단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어, 뻔 한 말을 했다.

 “5분 지난 것 같다.”

 “그래, 오늘은 일단 보내줄게.”

 태영은 내가 버스에 탈 때까지 말없이 내 뒤에 있었다.

 

 터벅터벅 걷다보니 집이었다. 이제 막 시작된 가을인데, 함박눈이 소복하게 쌓인 겨울을 걷고 있었다. 사방은 고요했고 가로등 불빛은 유난히 밝았다. 올봄 보라색으로 새로 칠한 대문을 지나 초록색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가니, 거실에서 아빠가 뉴스를 보고 있었다. 너무 복잡해 오히려 텅 비어버린 것 같은 마음을 아빠의 평온한 베이지를 보며 달래고 싶어, 말없이 옆에 앉았다.

 “큰 딸, 왔는가?”

 아빠는 뉴스에서 시선을 돌리지 않고 마중인사를 건넸다.

 “다녀왔습니다.”

 “오늘 힘들었나 보네? 얼른 가서 쉬어라. 저녁은 먹었고?”

 “안 먹었는데, 생각 없어요.”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잘 챙겨야지. 바나나라도 먹고 자.”

 아빠는 치노바지가 생각나는 베이지색을 가졌다. 임업직공무원에게 딱 알맞은 색이라고 항상 생각했다. 아빠의 색을 보면서 이런저런 설명을 하지 않고도 말없이 위로 받고 싶었는데, 오늘은 그마저도 안 되는 날이었다. 뉴스의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평온함과는 거리가 먼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아주 짧은 반바지를 입은 사람이 마구 달리고 있다. ‘비선실세, 국정농단, 문고리’ 등 평소에 잘 등장하지 않는 단어들이 뉴스에서 쏟아져 나왔다. 한숨을 쉬었다가 혀를 찼다가 하며 TV에서 눈을 떼지 않는 아빠를 뒤로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내 침대에서 꼬리까지 동그랗게 말고 자다가 문 열리는 소리에 얼굴만 번쩍 드는 N에게 달려가 내 볼을 마구 비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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