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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눈을 떠보니 여자가 없는 세계였다
작가 : 오리에탈
작품등록일 : 2020.7.31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일을 영화로 찍었다면 어떤 제목으로 나왔을까? <미친 놈들>, <병신 같은 놈들>, <쓰레기 새끼들>. 아마 이런 제목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건 진짜 군대보다 더한 지옥이었다. 이 시대 인간들이 여기가 지옥이라는 걸 몰라서 그렇지.

사실 나도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잘 모르겠다. 알고 있는 건, 눈을 떠보니 엄청 먼 미래에 와 있었다는 것. 그것도 우주력 4천년이다. 서기니 기원전이니 하는 건 완전히 잊혀진 세상에 와 있었다. 우리가 차를 타고 다녔듯이 여기 살아있는 대부분이 우주선을 타고 다녔다. 처음엔 별 세상에 왔다고 좋아했지.

하지만 여자가 없었다.

 
프롤로그 - 도망자 캡틴 트랜스의 일기(2) / 외전 - 미친놈들의 세상에 떨어지다
작성일 : 20-08-09 01:00     조회 : 210     추천 : 0     분량 : 9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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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을 떠보니 여자가 없는 세계였다

 

 CH01 캡틴 트랜스

 

 프롤로그 - 도망자 캡틴 트랜스의 일기(2)

 

 

 

 우주력 4120년 12월 29일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시작을 바란다. 새롭게 시작했으면, 삶이 달라졌으면 하고 생각하곤 한다. 흑역사가 있으면 그것을 지워버리고 싶고, 새로운 역사로 대체하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정말로 삶에는 몇 번씩이나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

 중학교에 올라갈 때,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대학교에 들어갈 때, 군대에 갈 때, 그리고 새로운 직장에 들어갈 때. 사람은 여러 번에 걸쳐 새로운 시작을 경험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모든 시작이 다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 새로운 시작은 때로 우리가 원했던 모습과 너무도 달라서 도리어 끔찍할 때도 있다.

 내가 이 세상에서 눈을 떴을 때가 딱 그랬다. SF 세상으로 전생하여 먼치킨 인생을 살기만 하면 정말 행복하고 즐거울 줄 알았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여자가 없었다.

 여자가 없다는 현실은 바뀌지 않지만, 그래도 지금 나는 새롭게 시작할 또 한 번의 기회를 얻었다. 새로운 이름을 가지고 제국의 국민으로서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여자가 없는데 새로운 신분을 얻는 게 뭐가 좋은지 모르겠긴 하다. 그래도 암살과 추적의 위험에서 자유로워질 거니까 좋은 거라고 생각해보기로 했다. 그러면서 포인트로 젊음을 구매했다. 그렇게 힘들게 모은 포인트인데, 아깝긴 했지만.

 뭐, 지금이 아니라고 해도 언젠가 이건 꼭 구매해야 하는 거긴 하다. 예를 들어서, 내 정해진 수명이 100살이라고 해보자. 99년을 살고 겨우 정해진 수명에서 하루 남았을 즈음에 하루에 하루씩 늙어가는 걸 유예하는 것보다 스무 살의 몸으로 매일 하루씩 늙어가는 걸 유예하는 게 나은 편이다. 어차피 하루 젊어지는 것 또는 하루 늙는 걸 유예하는 것은 동일하게 한 포인트 밖에 안 되었으니까. 물론 그렇다 해도 3600포인트 넘게 쓴 게 아깝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렇게 어려진 몸으로 나는 바다를 건너 나폴레옹의 한 도시에 숨어들어갔다. 어떻게 바다를 건넜는지는 묻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래도 굳이 궁금한 사람이 있다면, 시스템은 만능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는 시스템에게 지불할 수 있는 포인트가 넘쳐났고.

 시스템의 힘은 진짜 대단해서, 포인트만 많다면, 젊어지는 것뿐만 아니라 팔이 떨어져 나가도 다시 붙이거나, 심장을 다시 바꿔 달거나 하는 것도 가능하다. <시스템>이 하는 일에는 불가능이란 없는 거 같다. 진짜 말도 안 되는 능력이지만, 그리고 카더라이기는 하지만, 죽은 사람도 되살린 전례도 있다고 한다.

 포인트를 얻는 방법은 뭔가 게임과 비슷한데, 우주괴수, 정확하게는 우주 괴수 로봇을 한 기 처리할 때마다 1포인트가 들어온다. 그리고 게임을 잘하는 한국인인 나는 우주에서 손가락 안에 꼽히는 군인으로, 수십만 포인트 이상의 실적을 가지고 있었다. 아직도 남아있는 포인트가 수십만 포인트라는 거지, 100년 동안 살면서 죽인 우주 괴수 로봇의 숫자는 그보다 많긴 하다.

 

 우주력 4120년 12월 29일 저녁

 지난 일기에서는 포인트에 대해서 뭔가 횡설수설한 거 같다. 원래 하고 싶었던 말은, 포인트를 써서 어려졌다는 거다. 이제는 누가 나를 보더라도 열다섯 정도로 볼 게 분명했다. 생체 나이가 열다섯이 되었다는 거다.

 사실 아무리 포인트가 많아도 열다섯의 외모로 살아가는 인간은 별로 없었다. 종종 열다섯의 외모를 취하는 사람으로는 제1우주군 총사령관 지그문트 정도다. 이 인간은 매일 포인트를 써서 하루씩 젊어지는 걸 귀찮아해서, 한 번에 몰아서 수명을 사곤 했으니까. 거의 최대한도로 수명을 사서 열다섯의 외모가 된 뒤, 20년 정도 있다가 다시 몸이 늙어서 전성기 때의 기량이 나오지 않으면 다시 포인트로 젊음을 구매해 어려지곤 했다.

 나는 이번에 처음으로 이렇게 많은 젊음을 구매했는데, 몸이 급작스럽게 젊어지는 게 생각보다 많이 피곤한 모양이었다. 하루씩 젊어질 때는 몰랐거든. 그러다 보니 지난 일기에 포인트로 젊음을 사는 것에 대해 적으려다가 졸려서 횡설수설한 거 같다.

 아무튼 지금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포인트를 써서 한 번에 10년 정도 어려지는 것도 생각보다 피곤한 일이었는데, 심지어 그 직후 바다를 건너야 해서 피곤했다는 거다. 파도가 너무 심해서 거의 맨몸으로 건넌 거나 마찬가지였다. 맨몸으로 바다를 건너다니, 갑자기 <몬테크리스토 백작>이라는 소설이 떠오른다. 그런데 내가 헤엄친 거리는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주인공이 감옥에서 나와 헤엄친 거리보다 훨씬 길었다.

 그러다 보니 너무 피곤해서 일기를 쓰다가 잠깐 자고 말았다. 그래서 일어나자마자 다시 적는 거다. 이제 슬슬 잠도 깼으니 다시 움직여야겠다.

 

 우주력 4120년 12월 30일 오후

 드디어 12월 30일이다. 미래로 오기 전까지만 해도 1년은 365일이었는데, 지금 이 시대에는 1년이 360일이었다. 그것도 한 달에 30일과 31일이 번갈아 있는 게 아니고, 한 달은 꼭 30일만 있었다. 그래서 오늘이 1년의 마지막 날이다.

 오늘 아침, 나는 위저드와 통신을 했다. 뭘로 통신을 했냐고? 당연히 펫을 이용했다.

 펫. 시스템을 보조해주는 존재로, 내가 살던 시대에서는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사용했지만 이 시대에는 펫을 사용한다. 내 펫은 토끼 모양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로봇이었다.

 

 이 펫을 볼 때마다 여러 가지 아이러니가 떠오른다. 이 여러 가지 아이러니는 결국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우주 로봇 괴수와 로봇 펫 사이의 유사점 때문에 생기는 건데, 사실 우주 로봇 괴수는 로봇 펫과 마찬가지로 시스템이 우리에게 보내준 거란 사실이다. 우리가 만든 게 아니다.

 물론 포인트도 시스템이 주는 거고, 음식도 시스템이 보내주는 거다. 뭔가 자연이 우리에게 쌀도 주고, 송아지도 주고, 바다도 주지만 또 태풍도 주고, 가뭄도 주는 거와 마찬가지인 거 같았다. 시스템이 우리에게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같이 보내주었다. 병 주고 약 주는 것도 아니고, 이게 뭐하는 건가 싶었다.

 둘째는, 현재 이 우주에는 동물이란 존재가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펫이 있다는 거다. 아니, 동물이란 존재를 믿지도 않는 놈들이 펫을 데리고 다니는 게 얼마나 아이러니한지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른다. 심지어 이 시대에는 소고기와 돼지고기라는 개념은 있어도 소와 돼지라는 개념이 없는 세상이다. 그런데 펫이랍시고 데리고 다니는 거다. 어떤 놈들은 이 펫을 가리켜 반려동물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아니, 동물이 없는 세상에서 반려동물이라고 표현하는 게 말이 되는 건가 싶다.

 이 펫의 용도는 매우 다양했는데, 물론 인형처럼 들고 다니는 것도 그 용도의 하나였다. 과거 우리 대원 중 하나가 했던 것처럼 방송 중계용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빔 프로젝터나, 후레쉬(flash, 한국어 규범 표기는 플래시)로 사용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내가 사용한 것처럼 통신용으로 사용할 수도 있었다.

 아,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 위저드와 통신을 했다는 거였지? 깜박할 뻔했다. 의식의 흐름대로 적는 거 같지만 이 글을 읽는 사람이 있다면 헷갈리지 않았으면 좋다. 언젠가 여자를 찾아내게 된다면 그 일대기가 적혀지게 될 이 일기를 자서전으로 내고 싶기 때문이다.

 지난번에 이 일기 혹은 일대기가 출판되면 어떤 장르가 될까 내 생각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SF, 판타지, 전쟁물까지는 나왔었지. 그런데 그냥 평범하게 자서전이 될 수도 있을 거 같다. 여자라고 하는 이 세상의 미스터리가 되어 버린 존재를 찾아내는 인디아나존스와 같은 장르이거나 혹은 탐정물이나 미스터리 스릴러가 될 수도 있을 거 같다. 하지만 그보다는 종교서적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래봬도 나는 여자의 존재를 실제로 찾아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존팔교의 신자이기 때문이다. 또 아는가? 내 일기가 경전으로 불리게 되는 날이 올지? 내가 여자를 찾아내게 된다면 가능하다.

 아무튼 나는 오늘 아침에 위저드와 통신을 했다.

 위저드. 이 인간의 말을 100% 가감 없이 다 믿는다고 한다면, 그는 전 우주적인 해커였다. 그 중에서도 독보적인, 거의 전설에 가까운 존재라고 할 수 있었다. 시스템을 해킹해서 그로부터 부당한 이익을 얻다니. 이건 진짜 말이 안 되는 일이다. 그러니까 위저드는 시스템을 해킹해서 영원한 젊음과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포인트 없이 무상으로 얻어낸 것이다.

 이것을 그리스 신화를 비유로 들어 설명하면, 헤라클레스가 제우스를 해킹해서 영원한 젊음과 부귀영화를 얻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니까 신들의 음식 암브로시아와 넥타르를 훔쳐서 먹은 거다. 중국의 설화로 따지면, 손오공이 천도복숭아를 훔쳐 먹어서 불로불사를 얻게 된 거와 같다. 우리 시대로 따지면 위조지폐를 찍어낼 수 있다는 것과 똑같다. 뭐, 안 걸릴 리가 없지만.

 이 세상의 <법칙>이라 할 수 있는 시스템이 그대로 있을 리 만무했다. 결국 위저드는 시스템에 의해 <절망>이라 부르는 영원한 감옥에 갇히고 말았다. 위저드의 말에 의하면, 자신이 <절망>에 갇히게 된 것은 시스템을 해킹해서 자신의 포인트를 무한으로 만들었다가 걸려서라고 한다. 영원한 생명을 가진 채 말이다. 또 위저드의 말에 따르면 이 영원한 감옥에 갇힌 지 벌써 수백 년이 지났다고 한다. 오행산에 갇힌 손오공인가 싶지만.

 아무튼 펫을 통해 본 영상의 위저드는 마른 몸에, 꾀죄죄한 모습의 긴 머리 남자였다. 영상을 보니 위저드는 아주 좁은 사각형의 방 안에 있었는데, 그게 바로 <절망>이라고 불리는 감옥이라고 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위저드는 <절망>에 갇혀 있으면서도 이렇게 나와 통신을 하고 있다는 거지.

 위저드는 무인 양성소를 나폴레옹의 소도시 옆에 보내주기로 했다. 무인 양성소를 해킹하는 것 자체도 말이 안 되는 일인데, 정말 그것이 가능하다고 한다면 이 위저드라는 인간을 인정해주기로 했다. 이제 몇 시간 뒤에 도착한다고 하니 기다려보면 알게 될 거다. 이 위저드라는 놈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눈을 떠보니 여자가 없는 세계였다

 

 CH01 캡틴 트랜스

 

 외전 – 미친놈들의 세상에 떨어지다

 

 

 

 - 야르댕 이 미친 새끼.

 존팔교의 존경받는 창시자, 현존팔 님께서 종종 남기셨다고 하는 말이다. 현존팔의 제자 몇 명이 남긴 문헌에 그 말이 아직도 남아있다. 그런데 후대의 사람들은 <야르댕>을 고대의 신화적 악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날, 내 입에서도 이 말이 튀어나왔다.

 “야르댕 이 미친 새끼.”

 내 눈앞에는 고대의 투투족 사원에서 발견할 수 있는 거대한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기다란 머리에, 커다란 가슴 그리고 불룩 튀어나온 엉덩이를 가진 헐크같이 생긴 아저씨였다. 나름대로 깎았는지, 퍼르스름한 수염 자국이 얼굴에 남아있는 아저씨가 기묘한 포즈를 취하고 서 있었다.

 그래, 고대 투투족의 사원에 들어오면 이 말이 튀어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4천 년 전, 우주력과 그 이전을 구분지은 위대한 선각자이자, 여자의 존재를 처음으로 우주력 시대의 미친놈들에게 설명한 미친놈이었다.

 - 여자란 가슴과 엉덩이가 크고, 털이 없으며, 머리가 긴 아름다운 존재다.

 털이 없는데 머리가 길다는 말 때문에 5백 년 간 엄청난 논쟁이 벌어지게 만들었던 고등학교 동창을 떠올리며, 진짜 양투투 이 녀석도 이런 싸이코 같은 세상에 떨어져서 잘도 살아남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미친 놈 때문에, 투투족 사원마다 저 괴상한 그림이 걸려 있게 되었고.

 현자 양투투가 설명한 <여자>라는 존재를 숭배하려고 이 우주 이곳저곳에 저런 그림이 그려진 사원들이 널려 있었다. 투투 이 녀석이 그냥 말만 많았던 멍청이였다면 좋았겠지만, 이 우주 어딘가에 있을지 모르는 여자를 만나기 위해 그렇게 온 우주를 헤집고 다니면서 우주시대 투투니즘을 개척한 엄청난 대장군이 되었고, 그 바람에 이 녀석이 지나간 모든 우주에는 저런 사원이 세워진 것이다. 함부로 투투에 대한 험담을 했다간 무시무시한 전사 아저씨들한테 무슨 일을 당할지 몰랐다.

 그래서 우리는 양투투 저 녀석을 직접 욕하지 못하고 야르댕 이 미친 새끼라고 불렀다. 양투투 이 녀석의 다른 별명이 야르댕이었거든.

 양투투가 잠들고 5백년이 지나서 이 땅에 떨어진 윤까추가 기겁한 건 당연했던 거 같다. 지나가는 곳마다 건장한 아저씨가 비키니를 입고 뇌쇄적으로 서 있는 사진과 동상을 만나야했으니, 윤까추 그 녀석이 여자에 대한 모든 이미지(투투족 여성상이라 부르는)를 금지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윤까추로 인해 시작된 <여자주의 운동>이 시작되었고, <자칭 여자주의자>라 칭하는 이상한 놈들이 가는 곳마다 투투족 여성상을 박살내고 부숴버렸다. 덕분에 <여자주의자>는 이 우주에서 가장 금욕주의적인 미친놈들이 되고 말았다.

 아니, 내가 잘 알거든? 윤까추 그놈은 금욕적인 놈이 아니라니까? 여자 없으면 못 살 인간이라니까? 그냥 저딴 그림을 견디지 못했을 뿐이었다고.

 물론 윤까추가 금욕주의자로 불리게 된 이유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4천 년 전에 야르댕 이 미친놈이 여자에 대해서 가르쳐준답시고 알려준 남자와 여자 사이의 관계를 오해한 미친놈들이 자기들끼리 이상한 짓을 했고, 그것을 본 윤까추가 발작을 했기 때문이다. 윤까추는 고등학생 때부터 동성애자를 좋아하지 않았거든. 그렇다고 동성애자를 혐오하는 수준도 아니었다. 그냥 자기에게 달라붙는 남자들을 싫어했을뿐. 여자만 좋아했던 녀석이니까.

 물론 윤까추 이 녀석이 전혀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윤까추가 암호를 걸어서 남겨 놓은 문서(일기)를 보니까, 당대에는 자기들끼리 손잡고 같이 자위를 하러 가는 이상한 문화가 있었다고 한다. 누군가 자기한테도 같이 가자고 해서 자기도 모르게 레이저 건으로 몇 명 죽였고 그때부터 금욕주의자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 같은 일을 겪었으면 나라도 기겁할 일이다.

 아무튼 야르댕 이 미친 놈 때문에 생긴 이상한 문화들 중에서도 가장 독보적인 것 중 하나인 투투족 여성상을 보고 한 마디(‘야르댕 이 미친 새끼’) 내뱉은 나에게 투투족 사원의 수호자가 말했다.

 “종교적 열심이 신실한 인간이군.”

 여자주의자의 시초인 윤까추가 급조한 ‘야르댕이라고 하는 신화적 악’을 저주했기에 한 말이었다. 그러니까 성상을 보자마자 종교적 경건심을 드러냈다고 생각하는 거다. 하아. 그래, 뭐라고 생각하든 알아서 해라. 이젠 나도 모르겠다.

 사실 나도 이전에 이곳에 도착한 다른 동창들이 다 이해가 가는 중이다. 진짜 이 우주에 사는 미친놈들을 보면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폭발해서 쏘아붙이다가 이상한 위치에 오르게 되기도 하니.

 그래서 지금 나는 존팔교의 새로운 사도가 되어 있었다. 물론 이 사실은 널리 퍼지진 않았다. 일부만 아는 비밀인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내가 이상한 사이비 종교의 새로운 교주급 인사가 되어 있다는 사실이 참.

 게다가 정말 미치겠는 건, 이 존팔교가 2천 년 유구한 역사를 가진 유서 깊은 종교라는 사실이고, 천 년 전의 종교 지도자였던 장카레 이후 내가 천 년 만의 사도라는 점이다. 그치만 이 미친놈들이 하는 짓거리를 보면 답답해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고!

 “아무튼 양투투가 남기고, 장카레가 다시 숨겨놓은 고대의 비서가 이곳에 있는 것은 분명하죠?”

 2년에 걸쳐서 이 미친놈들이 남겨 놓은 유산(?)을 찾느라 엄청 고생했다. 물론 그것 외에도 여러 가지 일들을 하긴 했지만, 내가 했던 일들 중에 다소 중요도가 높은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녀석들이 남겨 놓은 유산을 찾는 것이었다.

 “여기에 있다. 자네가 그것을 얻어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녀석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사원에 숨겨진 방의 문을 열었다. 양투투가 하루에도 몇 번씩 들어와 명상에 잠겼다고 하는 작은 방이었다.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했지만, 몰래 그 모습을 본 제자들이 양투투의 행동을 흉내낸 것이 아직도 전승되고 있다고 하는, 그래서 윤까추를 기겁하게 만들었던 그 일을 시작하게 만든 양투투의 심처 중 하나였다. 전승이 맞다면 이 안에 내가 원하는 것이 있을 터였다.

 방으로 들어간 나는 문을 닫고 조용히 암호를 말했다. 보는 놈이 없지만, 말하면서도 부끄러웠다. 그래도 이 비밀번호 때문에 아무도 현존팔의 사도인 장카레가 숨겨놓은 보물을 가져가지 못했다.

 “우리의 결의. 우리는 국가와 국민에 충성을 다하는 대한민국 육군이다. 하나. 우리는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며 조국통일의 역군이 된다. 하나. 우리는 실전과 같은 훈련으로 지상전의 승리자가 된다. 하나. 우리는 법규를 준수하고 상관의 명령에 복종한다. 하나. 우리는 명예와 신의를 지키며 전우애로 굳게 단결한다.”

 장카레 이 자식이 육군 복무신조를 암호로 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이곳에 <그게> 있다는 것을 안 순간, 이 암호를 파헤치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암호를 찾는답시고 장카레의 비밀 일기장을 얼마나 뒤졌는지 모른다.

 암호를 외치자 마자 바닥에 스크린이 열리며, 하나의 사진이 떠올랐다. 나, 너라는 뜻을 가진 쥬부(Je Vous)라는 아이돌 그룹 사진이었다. 그리고 나는 누가 볼까봐 빠른 속도로 락을 걸 수 있는 내 스토리지에 얼른 이 사진을 전송한 뒤 스크린을 껐다.

 아직도 기억난다. 작년에 어느 유적지를 탈환하면서, 존팔교 사원에 있는 조각상 하나를 발견했었다. 현존팔 이 녀석이 2천 년 전에 그렇게나 모으고 다녔던 여배우 조각상 중 하나였다. 조각이긴 했지만, 정말 오랜만에 본 여자의 모습이었다. 나도 모르게 잠시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한 번도 여자를 본 적이 없는 이 시대의 남자들이 멍한 상태로 마약을 한듯 조각상을 보고 있는 걸 발견했다. 그 중에는 어떤 생각이 든 것인지 바지를 막 벗고 있는 놈도 있었다. (하아, 진짜 이 모습은 2년이나 되었지만 적응이 안 되었다. 짐승 같은 놈들. 부끄러움도 없냐?)

 그때 갑자기 하나가 소리쳤었다.

 “악마다!”

 갑자기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그 녀석을 바라보았다. 나도 어이가 없어서 녀석을 보았는데, 녀석은 황제파의 최측근 중 하나였다.

 “보자마자 이렇게 시선을 앗아가게 하다니, 이것이야 말로 악마의 조각이 아니고 무엇인가! 저것이 바로 고대의 악 야르댕일 것이다! 때려부숴라!”

 그 이후 그 지역에 남아 있던 악마의 조각(?)은 모조리 박살나고 말았다. 너무 분위기가 살벌해서, 현존팔이 만들어둔 여자의 모습이지 않겠느냐 반박해 보지도 못했다. 그래, 내가 다른 사람들 몰래 개인 스토리지에 쥬부의 사진을 저장한 이유다. 이걸 소장하고 있는 걸 들키기라도 했다간 황제파 놈들에게 고문당하고 죽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이곳에 올 필요성이 있었다. 쥬부의 사진 되에도 필요한 게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현존팔의 비밀 일기 중 한 구절을 찾아냈거든.

 - 분명 이 우주 너머 저기에 그들이 존재하는 곳이 있을 것이다.

 여자가 존재할지 모른다는 우주 너머의 공간으로 가는 맵을 현존팔 이 녀석이 이 유적지 안에 저장해 놓았다고 했거든.

 

 
작가의 말
 

 프롤로그는 이번 화로 끝입니다.

 다음 화부터는 <괴도 캡틴 트랜스>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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