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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무협물
후계자는 네가 해
작가 : 박시인
작품등록일 : 2020.8.4

묻혔던 비밀과 얽히고설켰던 사연들이 드러난다. 그 엉킨 매듭을 풀어내라고 등 떠밀렸는데, 맞서는 대적자가 전혀 뜻밖의 인물이라. 그렇다고 멈출 수도 없으니……. 이 검왕의 아들과 그를 제자로 삼았던 천마의 후예는 결국 대립할 수밖에 없다. 음모에 빠졌을 때에도 갖가지 기연을 만나게 되는 제법 운이 좋은 사내. 또 고난을 겪을지라도 끝까지 의리와 헌신의 관계성을 발전시켜 나가려 애쓰는 올곧은 의식의 소유자, 그런 주인공의 이야기.

 
#2. 그래서 요구사항이 뭐요?
작성일 : 20-08-08 06:58     조회 : 281     추천 : 0     분량 : 5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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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그래서 요구사항이 뭐요?

 

 

 

  소리와 함께 검은 그림자 하나가 나타났다. 눈여겨볼 사이도 없이 펄럭, 몸을 띄우더니 보 둘레에 파놓은 격자(넓고 깊은 도랑)를 넘어왔다. 땅은 딛지도 않은 채였다. 억새잎 하나를 앞에 던져 밟으며 몸을 튕겨서 날아왔다.

  격자의 폭이 오 장(약 15m)이었다. 또 거기서 이들이 서 있는 곳까지도 오 장.

  거리도 거리지만, 억새잎 하나에 의지해서 몸을 튕기는 수법이며 빠르기라니!

  모두 놀라 입이 벌어졌다.

  검은색 옷을 입고 있었다. 얼굴에는 검은 망사를 썼는데 그 사이로 은은한 안광이 비쳐 나왔다.

  땅에 내려서자마자 손을 들어 등운룡을 후려쳤다. 정말 빠른 솜씨였다.

  그러나 이 소년도 만만치 않았다.

  정면에서 매화점점의 초식을 펼쳐 그 장심(掌心: 손바닥 한가운데)을 찔러 갔다.

  슬쩍 소매를 휘둘러 검법을 막아낸 검은 그림자가 코웃음을 쳤다.

  “흥! 어린 게 제법이구나!”

  주유곤이 급하게 외쳤다.

  “사제는 손을 멈춰라. 보통의 인물이 아니다.”

  이문세도 놀랐는지 신음을 토해냈다.

  “설마?”

  검은 그림자가 그들 앞에 내려서자 흰 앵무새가 몸을 떨기 시작했다. 부리를 이문세의 목 뒤에 파묻었다.

  검은 망사 안에서 맑은 음성이 들렸다.

  “명(鳴)아야, 네가 아직도 살아있었느냐?”

  호명을 받은 앵무새의 어색한 억양도 떨려서 나왔다.

  “아, 어쩌면 좋아? 노주인께서는 아직 강호에 나오시지 못하는데.”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이더니 날개를 퍼덕여 멀리 떨어진 나뭇가지로 옮겨 앉았다. 전에 무슨 두려운 일이라도 당했던 꼴 모양새였다.

  주유곤은 눈매만 차가워졌을 뿐 그 인물을 본체만체했다.

  그러나 이문세에게는 긴장감이 역력했다. 정중하게 포권지례를 올렸다.

  “무림말학이 현의용녀 소(蕭) 노선배님께 문후드립니다.”

  “너는 태산세가의 칠 대(代)째겠구나?”

  “어찌 아십니까?”

  “이장광(李長光)이 태산세가의 오 대(代)째 가주가 되는 자리에 내가 있었다. 육 대째를 이은 이순명(李淳明)은 당시 아직 어린아이였어. 그러니 이제 너 아닌 누가 칠 대째란 말이냐?”

  “하오면 존조부(尊祖父)는 어찌 아시는지요.”

  “너는 그를 아주 꼭 빼닮았구나. 어여쁘다. 그러나!”

  “네?”

  반문하는 이문세에게 현의용녀는 무슨 사무침이 있는 것처럼 또박또박 말했다.

  “태산일검 이장광은 내게 두 번 빚진 적이 있다!”

  “그렇습니까? 그게 무슨 빚이었을까요? 또 왜 여태 상환할 수 없었는지 여쭙고 싶습니까?”

  과연 보통의 젊은이가 아니었다.

  질문이 구체적이었다. 그 빚이 무엇이며 왜 여태 그걸 갚거나 받지 않았는지 까닭을 묻고 있었다.

  “너는 꼭 알고 싶으냐?”

  “선조의 빚은 후손이 갚는 법!”

  가문의 일을 책임지겠다는 의지를 드러냈으나 돌아온 말은 냉랭했다.

  “너는 갚을 수 없다.”

  “소생은 다만 자손의 도리를 다하고 싶습니다. 부디 까닭을 밝혀주십시오.”

  물끄러미 이문세를 바라보는 현의용녀는 만감이 교차하는 기색이었다. 선뜻 말하지 않고 있다가 차갑게 말했다.

  “잠시 기다려라.”

  그러더니 주유곤에게 몸을 돌리며 추궁했다.

  “너도 내가 누구인지 알았을 텐데 왜 문안하지 않느냐?”

  그런데 의외였다.

  평소 언행이 신중했던 주유곤이 즉각 대꾸했다. 더구나 말투 속에는 알 수 없는 도발이 숨어 있었다.

  “당신이 무엇이관데 내가 문안해야 하오?”

  존칭을 붙이지 않았다. 평교(平交: 위아래 없이 대하는)처럼 당신이라는 호칭으로 불렀을 뿐이었다.

  놀랍게도 그 언행 태도에서 은은한 위엄이 풍겨 나왔다. 만조백관을 다스리는 군왕의 기세가 엄연했다.

  “뭐라?”

  망사를 썼으니 아무도 현의용녀의 표정을 살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은은히 탄복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짧게 되받은 음색에도 분노의 떨림은 들어있지 않았다.

  이때 등운룡이 불쑥 나섰다.

  이 소년은 정말 거침이 없었다. 게다가 자기 사형을 위하는 일이라면 아무것도 망설이지 않았다. 사나운 기세를 그대로 드러내며 외쳤다.

  “비록 무림의 대선배이실지라도 무례한 망발을 삼가십시오!”

  까마득한 후배들의 태도에 기가 막힌 모양이었다. 어이없다는 듯 되물었다.

  “너는 또 무엇이냐?”

  그 순간 억양이 묘하게 바뀌었다. 돌연 이 소년에게 큰 관심이 생긴 기색이었다. 발성의 가락이 그랬다.

  그러나 등운룡은 거기 대꾸하지 않았다. 자기 할 말만 했다.

  “이런 일은 명(明)나라 강토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일이라. 누가 감히 검왕부의 왕자들에게 문안하라 말하는가?”

  “작은 아이야, 너는 쓴맛을 좀 봐야 세상이 넓다는 걸 알겠구나!”

  현의용녀의 호통에는 살짝 웃음기가 섞여 있었다. 의외였다. 화딱지가 났다는 쓴웃음인지, 어이없다는 비웃음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등운룡의 사나운 기세를 상대하는 어투가 거칠지 않았다. 계속 훈계처럼 들리는 것도 이상했다.

  “천하에서 내게 쓴맛을 보여준 사람은 아직 없었소.”

  “네 손바닥만 한 세상에서 말이냐?”

  “그럼 귀하께서 넓은 세상맛을 좀 보여주시겠습니까? ”

  정말 거침없는 소년이었다.

  그러나 앞가슴에 품었던 음양비검을 꺼내 들다가 멈추어야만 했다.

  주유곤이 갑자기 몸을 전후좌우로 움직이며 낯선 손짓과 발짓을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자기 사형의 이런 엉뚱한 모습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방금까지도 현의용녀와 대립하지 않았던가.

  왜 그러느냐는 듯 바라보는데 주유곤의 표정이 수시로 변하고 있었다. 무슨 놀라운 일을 겪을 때 드러내는 기색이었다.

 

  사실 이곳에 오는 동안에도 주유곤은 말을 별로 하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수많은 가닥의 상념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 칠음절맥을 앓는 소녀 진진설이 가르쳐준 것들이 머릿속에서 생각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방금도 마찬가지였다. 그중 하나가 뇌리에 그림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이 장면이 사라지면 그게 다시 떠오를 거라고 장담할 수 없었다. 자기도 모르게 떠오르는 그림을 따라 손짓, 발짓을 해보았다. 잠깐씩 멈췄다가 떠오르는 대로 그걸 다시 되풀이했다.

  현의용녀는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이 준수한 청년의 표정과 몸짓과 호흡이 신기하게 여겨졌다.

  그러다가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우울해 보이는 이 젊은이를 한번 지켜보기 시작하면, 자기가 아닌 누구라도 이상한 호기심에 빠져들 수밖에 없을 거라는 감각이었다.

  그러면서 찾아든 생각도 뜻밖이었다. 잠시 후 다른 젊은이들의 반응은 과연 어떨지 한번 지켜보고 싶어졌다.

  바람이 불었고, 넓고 황량한 상관보 앞뜰에 사람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묘하게 찾아온 정적이었다.

  주유곤만 혼자서 손가락 끝을 마주 짚었다가 떼거나, 좌우로 혹은 앞뒤로 서너 발짝씩 움직이며 옷자락을 펄럭였다.

  그 모습은 분명 몰아지경에 빠진 게 틀림없었다.

 

  주유곤은 대력열화신공의 올무를 무릅쓰고 태어난 몸이었다. 장문혈과 영태혈이 심각하게 그 영향을 받았다. 간과 쓸개가 점점 기능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런 세월의 막바지 고비를 넘어가고 있을 때였다.

  불과 하루 차이로 삼음절맥을 지닌 서문옥연과 칠음절맥을 지닌 진진설, 이 두 여인을 연이어 만나게 된 것이었다.

  그녀들 역시 결핍과 위축을 벗어날 수 없던 몸. 그런데 기이(奇異)하게도 주유곤의 고질인 대력열화신공의 잠재된 기운이 그녀들을 살리는 유일한 수단이 됐으니……. 또 이로 말미암아 강호 무림에는 수많은 평지풍파가 일어나게 되고.

 

  ***

 

  진진설이 검왕부에 찾아든 그 날은 살아오는 동안 몇 번 겪어보지 못했던 힘든 날이었다.

  한성검(寒星劍)을 앞에 놓고 천하 군웅들과 대립하며 버텨내야 했던 하루.

  보자마자 한눈에 자기 넋을 빼갔던 주유곤이 자신의 눈앞에서 피를 내뿜으며 주저앉던 장면.

  이어진 검왕비 등옥려의 철저한 검증.

  둥옥려의 제자 둥소연에게 자기 사연을 말하고 후사를 부탁한 일까지.

 

  그날이 지나고 오경(五更: 새벽 3~5시)이 됐을 때였다.

  낮에 피를 토하고 늘어져 버린 주유곤을 눕혀 놓은 방.

  거기 들어온 진진설은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다시 또 토납지공을 펼칠 수밖에 없었다. 숨을 깊게 들이켜고 길게 내뿜어서 조금 기운이 돌아오게 했다.

  그런 다음에야 누워있는 주유곤을 가만히 살펴볼 수 있었다.

  이어서 심한 부끄러움과 설렘의 목소리로, 그러나 간절하게 말했다.

  “소녀는 소왕야께 청할 것이 있습니다.”

  무심한 대답이 돌아왔다.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소.”

  “소녀가 연명할 수 있는 길을 알고 계셨더이까?”

  “어젯밤 대청에서 다 들었으니 자연히 알게 되지 않았겠소?”

  진진설은 얼굴이 붉어졌다. 더 말하지 못했다.

  그런데 주유곤은 소위 말하는 군왕무치(君王無恥: 임금은 관계성에서 수치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의 의식을 가진 인간인지, 거리낌이 없는 인간인지, 아니면 예측 불가의 인간인지 도대체 생각지도 못했던 뜻밖의 말을 내뱉었다.

  “어머니도 사부님도 우리가 이렇게 될 거라는 건 알고 계셨을 거요.”

  “네? 네. 아마도요.”

  이상한 일이었다. 진진설은 어쩔 줄 몰라 했다.

  주유곤의 사부를 사람들은 화산이검(華山二劍)이라고 불렀다. 천하에 이름을 크게 떨친 인물이었다. 그러나 엊저녁에는 그런 조태민이 내보이는 언행 태도의 가식을 조목조목 따져가며 면박을 주던 천재 소녀였다.

  그랬건만 주유곤 앞에서는 속된 말로 쪽도 못 쓰는 행태를 보여주고 있었다. 더할 나위 없는 온유함이며 순종적 태도였다.

  주유곤이 침상에서 일어나 앉았다.

  팔다리의 움직임은 흡사 연체동물처럼 흐느적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의식은 흩어지지 않았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럼 이렇게 합시다.”

  “네? 어떤?”

  “이 몸은 지금 깨어있는 건지, 잠들어 있는 건지 알지도 못할 상태요.”

  “두어 시진(時辰: 네다섯 시간)은 더 지나야 거뜬해지실 거예요.”

  “하여튼 그건 그렇다 치고, 지금 낭자는 매우 피곤하고 지쳐 보이거든?”

  “그렇게 보이셨습니까?”

  되묻는 말에는 자기를 염려하는 듯한 사내에게 살짝 감동한 기색이 드러났다.

  “우선 낭자는 여기 누워서 한숨 자도록 하시오. 우리의 일은 그다음에 의논합시다.”

  “소왕야 곁에 누우라고요?”

  “그렇다니까?”

  진진설이 다시 부끄럽게 물었다.

  “불편하지 않으시겠어요?”

  “나는 지금 자는 건지 깨어있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했잖소. 상관없소.”

  “그럼 먼저 소왕야께 무례를 범해도 괜찮을까요?”

  “무례는 무슨!”

  “아니, 그거 말고요.”

  “아, 또 뭐요?”

  별일이었다.

  그 행태가 마치 몸 고달플 때의 서방이 마누라에게 짜증 내는 짓거리와 꽤 닮아있었다. 누구라도 주유곤이 그럴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일이었다.

  그걸 느꼈는지 못 느꼈는지 진진설은 온유하게 대꾸했다.

  “소왕야가 강호에 나왔다는 소문을 들으면 필시 전대(前代)나 그보다 더 앞 세대의 고인들도 강호에 나오게 될 거예요.”

  “왜 그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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