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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나 혼자 목이 없다
작가 : 알레그로
작품등록일 : 2020.8.1

목 없는 기사로 되살아난 수도사 파울의 이야기.

 
2화
작성일 : 20-08-06 15:10     조회 : 239     추천 : 0     분량 : 5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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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화

 

  레몽은 웃음을 터뜨렸다.

 

  “농담이에요. 어릴 때 들었던 이야기에서 따왔어요. 그런 게 어딨겠어요. 죽으면 아무것도 없죠.”

 

  진지해진다 싶으면 김이 새는 마법사였다. 명색이 마법사라 그런지 목 없는 사람쯤이야 별 감흥이 없는 듯했다. 무던해서 다행이긴 했지만, 막상 반응이 없으니 서운했다.

 

  “내가 어떤 존재인지는 상관없어. 해야 할 일만 하면 돼.”

 

  “말이 짧아지셨네요.”

 

  “그쪽이 먼저 무례하게 굴었으니까.”

 

  쇠사슬에 묶인 손목을 들어 보였다. 문도 열고 관도 열었지만, 나를 묶고 있는 수갑은 풀 수가 없었다.

 

  “왜 안 풀리나 싶죠?”

 

  투구 안에서 울리는 우쭐한 목소리. 듣기만 해도 화가 치밀어 오른다.

 

  “흑마법이 유별나다고 생각하나 본데, 어디까지나 애들 장난에 불과해.”

 

  절그럭거리던 견갑이 멈췄다.

 

  “‘흑’마법사란 건 어떻게 알았죠?”

 

  “그토록 고귀하신 마법사님들이 마을 변두리에서 목 없는 사람이나 기다릴 리 없잖아. 모두를 적으로 돌리고 숨어 지내는 ‘그들’이 아니고서야.”

 

  레몽이 투구를 벗어 오른팔로 들었다. 정색한 얼굴에 원한이 서려 있었다.

 

  “우리가 왜 숨는다고 생각해요?”

 

  “해선 안 되는 일을 했겠지.”

 

  레몽이 한쪽 무릎을 굽히며 허리를 숙였다. 해코지라도 할 것 같아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레몽의 건틀렛이 쇠사슬을 건드렸다. 고리 하나가 툭, 하며 끊어지더니 결박이 풀렸다. 노크를 하자 문이 열리듯.

 

  “무엇을 여느냐 마느냐는 자기 자신에게 달렸죠.”

 

  발목의 결박마저 풀렸다. 몸에 묻은 진흙을 털어냈다. 레몽이 내게 투구를 건네주었다. 부러진 칼을 칼집에 넣듯이, 투구를 뒤집어썼다.

 

  “저도 당신이 누구든지 상관없어요. 당신이 할 일이 중요한 거죠.”

 

  “마치 내가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말하는군.”

 

  “목 없이 살아 움직이는 거, 분명한 이유와 목적이 있지 않을까요?”

 

  레몽의 말이 맞았다. 이토록 부자연스러운 삶이 주어진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답을 모르겠다. 두 눈은 없지만, 눈앞의 사건에 집중하다 보면 내가 찾는 답이 나올지 모른다.

 

  탄틸루스의 창이 사라진 언덕 너머를 보았다. 차라리 만나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을. 녹스본에 성유물이 나타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상, 외면할 수 없었다.

 

  창이 날아간 방향은 북쪽이었다. 수도원까지 가는 길이 지연되겠지만, 우선은 녹스본을 휘젓고 다니는 미친 성창부터 저지해야 했다. 가능하다면 내 손으로 회수하고 싶었다.

 

  마법사가 도우면 성유물을 수색하는 과정이 순조로울 것이다. 숙련된 마법사 한 명이 천의 군대를 대체할 수 있다고 하던데, 소문이 과장인지 아닌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이동 마법은 없나?”

 

  “혈석이 필요해요. 붉은 마법사들이 대부분 독점했고, 구하려 해도 녹스본처럼 축축한 곳엔 없겠죠.”

 

  “추적 마법은?”

 

  “흑마법사는 추적할 일이 없어요. 추적당하기 바빠서.”

 

  말장난. 나를 조롱하는 게 틀림없었다.

 

  “사람 묶어놓고 우쭐거리는 게 흑마법의 전부란 말이지?”

 

  레몽이 멱살을 잡았다.

 

  “아시다시피, 흑마법사는 몇백 년간 숨어 지냈어요. 외부에서 마법을 남용하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고요.”

 

  레몽의 검은 눈동자.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여 헤아리기 어려웠다.

 

  물감을 많이 섞으면 결국 검어진다. 그것이 왜 검어졌는지를 아무도 알려고 하지 않는다. 나도 그랬다.

 

  레몽이 멱살 쥔 손에 힘을 풀었다.

 

  “예언을 들었어요. 문지방을 넘는 자, 안개를 흩뜨리는 자가 올 거라고.”

 

  예언. 시대가 어려우면 믿음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몸의 안식처가 없으면, 정신의 안식처라도 있어야 했으니까.

 

  “생각보다 이상주의자군.”

 

  “이상은 높지만, 당신처럼 무모하진 않아요. 선별된 정예군도 성유물을 쫓다가 전멸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예요.”

  수도사 얘기를 꺼내려다 주춤했다. 두 번째 삶에서 나는 수도사가 아니었다.

 

 “그만큼 위험하니까 누군가는 꼭 손에 쥐어야 해. 소유해서 통제해야지.”

 

  창의 소유자는 죽기 전까지 창의 그림자로 살아야 했다. 날아가는 창에 따라붙는 그림자처럼, 창이 꽂히는 곳으로 끌려가는 운명. 영원한 방황.

 

  녹스본의 선선대 왕은 탄틸루스의 창으로 승리를 거머쥐고, 파멸을 맞았다. 그의 운명은 창 그림자가 어떤 최후를 맞이하는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왕족은 다를 줄 알았지만 성유물에게 있어 혈통은 중요하지 않았다. 왕의 피든 노예의 피든 붉고 끈적한 액체일 뿐이었다. 자신이 지나간 곳에 남는 흔적.

 

  탄틸루스의 창이 유실되고 나서, 수도원은 두 갈래로 갈라졌다. 성유물 사용을 반대했던 수도사 기욤은 성을 떠나 서쪽으로 향했다. 그곳에 브리즈 수도원을 세웠다.

 

  브리즈 수도원에서 성유물을 되찾기 위한 사투가 시작되었다. 기욤의 가르침은 기존의 가르침과 달랐다.

 

  기존의 가르침은 성유물을 멀리하기 급급했다. 땅을 더 깊게 파고, 유혹의 근원을 은닉했다.

 

  하지만 성유물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은 심해보다 깊은 지하 던전도, 고위 마법사가 이중삼중으로 둘러친 봉인 마법진도 아니었다.

 

  깃털처럼 연약한 인간의 내면이었다.

 

  기욤의 가르침에 따라 내면과 외면을 단련한 자들이 사제단이 되어 이인 일조를 이루었다. 원정길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두 사람의 동등한 희생 정신이 필요했다. 어느 누구로 치우치지 않는.

 

  “그래서 통제하는 방법이 뭔데요?”

 

  레몽이 물었다.

 

  “창을 소유하고 사용하지 않기.”

 

  “말은 참 쉽네요.”

 

  오두막집의 잔해에서 쓸만한 무기라곤 곡괭이뿐이었다. 곡괭이와 성유물이라. 좁혀지지 않는 간극에 눈앞이 캄캄했다.

 

  성유물을 소유하고 나서도 문제인데, 성유물을 포획하기까지도 막막했다. 동행자는 마법을 못 쓰는 마법사인 데다, 기사가 입어야 할 갑옷마저 줄 생각이 없었다.

 

  녹스본의 새벽은 길었다. 레몽과 나는 북쪽으로 걸어갔다. 비는 그쳤지만, 땅은 여전히 축축했다. 곳곳에 물웅덩이가 고여 있었다.

 

  성유물을 발견했던 순간에 레몽이 내게 했던 행동. 곰곰이 생각해보면 당연한 행동이었다. 레몽은 정말 필요할 때 마법을 사용했다. 좀전의 상황이 그랬다.

 

  레몽은 내 감정을 알고 있었다. 들끓는 복수심. 분노와 집착. 억울함. 탄틸루스의 창이 군침을 흘릴 만했다.

 

  만약 레몽이 막아서지 않았다면, 지금쯤 나는 창의 노예가 되어 녹스본의 주민들을 학살하고 다녔을지 모른다.

 

  주변이 하얗게 번쩍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천둥이 울렸다. 하늘이 찢어지는 듯했다. 레몽이 나를 돌아보았다.

 

  “녹스본에서 일주일만 살면 그쪽처럼 웃음기가 없어지겠어요.”

 

  “지금 웃고 있는데 보여줄 수 없어서 아쉽군.”

 

  “혹시 본인 얼굴은 기억해요?”

 

  걸음을 멈췄다. 저 멀리 갈대밭에 파란 불꽃이 일렁였다. 누군가 검은 말에 올라타 있었다.

 

  하늘을 찌를 듯한 랜스와 단단한 금속성의 방패. 깃이 휘날리는 투구와 아지랑이처럼 타오르는 듯한 망토.

 

  그 모든 것이 검었다.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지만, 더 먼 곳을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정체불명의 기사는 말을 돌려세우더니 소리 없이 멀어졌다. 발굽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기사였지만, 어딘가 낯이 익었다.

 

  “잃어버린 머리라도 봤나요?”

 

  레몽의 농담. 곡괭이로 투구를 툭툭 쳤다. 웃겼다는 뜻이었다.

 

 ●

 

  석조로 된 아치 교량에 이르렀다. 다리 일부가 허물어져 돌들이 나뒹굴었다. 마을은 조용했고, 불어난 개울물이 콸콸대는 소리만 들렸다.

 

  마을 어귀부터 끔찍한 광경들이 이어졌다. 가슴 한쪽에 구멍이 뚫린 시체들. 마을 주민의 시체도 있었지만, 제국군의 시체도 더러 보였다.

 

  제국군이 녹스본까지? 성창과 관련된 문제는 엄연히 녹스본 왕가와 톨레멘 교단의 관할이었다. 반세기가 넘도록 성유물을 유실했다 해도, 제국이 넘볼 영역은 아니었다.

 

  제국군이 아니어도 인력은 충분했다. 녹스본의 군대와 수도원의 사제단이 사태를 수습할 수 있었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성유물이 제 발로 들어왔으니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저기 사람이 있어요.”

 

  우물 뒤로 움직임이 느껴졌다. 남자아이였다. 꼬마는 우리와 눈을 마주치더니 기겁하며 달아났다. 투구만 쓴 비렁뱅이와 갑옷만 입은 마법사. 도망갈 만했다.

 

  “우리 무서운 사람 아니야. 물어볼 게 있어서 그래.”

 

  레몽은 아이가 어디로 도망갈지 알고 있었는지, 집채와 집채 사이의 틈새로 들어갔다. 나는 제국군의 검을 챙기고,

 방패를 둘러멨다.

 

  제국군의 방패라면 성창이 날아와도 두 번은 버텨줄 수 있다. 처음은 창날이 깊숙이 박히고, 두 번째는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그 정도면 준수했다.

 

  레몽은 꼬마와 손을 잡고 돌아왔다. 갑옷만 입었을 뿐이지,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은 모양이다.

 

  물론 나는 예외였다. 넝마 속에 검집을 감췄다. 투구는 쓰고 있는 것이 꼬마에게 최선이었다.

 

  “꼬마야. 여기 무슨 일이 있었지?”

 

  “케릭의 망령이야. 케릭이 화났어.”

 

  “케릭?”

 

  “우리가 케릭 따돌렸어. 괴롭혔어. 그래서 복수하는 거야.”

 

  레몽이 다가와서 물었다.

 

  “케릭이 혹시 긴 창을 갖고 있었니?”

 

  꼬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레몽과 나는 눈을 마주쳤다. 케릭이 성유물의 이전 소유자였다.

 

  케릭을 조사하면 반세기 만에 녹스본에 나타난 성창의 전말을 알아낼 수도 있었다. 어쩌면 성유물 원정의 본모습이 드러날지도 모른다. 암브로스의 진정한 목적이.

 

  “케릭의 집이 어딘지 알려줄래?”

 

  꼬마를 따라 돌계단이 수놓은 언덕을 올랐다. 마을의 중심가에서 꽤 떨어진 곳이었다. 언덕 아래로 마을 전역이 내려다보였다.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케릭과 함께 살던 사람이 있었다. 마당에 노파가 모습을 보였다.

 

  노파는 외벽에 판자를 덧대고 있었다.

 

  “바늘을 만나면 땅에 엎드려야 해요. 그래야 바늘이 당신을 꿰매야 하는 천 조각으로 오해하지 않을 겁니다.”

 

  “조언 감사합니다.”

 

  노파는 마저 망치로 못을 박았다.

 

  레몽과 나는 케릭의 집에 들어왔다. 노파는 꼬마를 먹일 식량밖에 없다며 양해를 구했다. 레몽이 괜찮다며 말렸다.

 

  “어디서 오신 분들인지 몰라도 케릭 때문에 오셨겠죠.”

 

  노파는 케릭의 일이라면 신물이 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케릭이 창의 소유자였다는 사실이 밝혀진 지 꽤 오래된 모양이다.

 

  “혹시 케릭의 어머니신가요?”

 

  “아니요. 저는 케릭 어머니의 하수인이었습니다. 지금은 집주인 없는 집사가 되었죠.”

 

  “케릭이 ‘바늘’의 원래 주인이었나요?”

 

  노파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네. 팔 년 전부터 그랬죠.”

 

  레몽이 놀라며 물었다.

 

  “이미 알고 계셨단 건가요?”

 

  “네. 상관없습니다. 죽음이 코앞인 노파의 목을 누가 치려고 들겠습니까.”

 

  이해할 수 없었다. 성유물을 발견하고도 여태껏 왕가나 교단에 보고하지 않았다니.

 

  성유물을 발견한 사실을 숨겨서 득 볼 것은 없었다. 은폐 사실이 밝혀지면 반역죄로 연행되었다. 그런 위험까지 감수하며 소유해봤자 성유물이 가져다 주는 선물은 불행과 죽음이었다.

 

  “케릭은 성유물을 어디서 찾았습니까?”

 

  “찾은 것이 아닙니다. 소유권을 물려받았죠.”

 

  벽난로 위에 흠집이 나 있었다. 날카로운 무언가가 깊숙이 박혔던. 레몽이 상처를 다루듯이 조심히 어루만졌다.

 

  “케릭 어머니의 존함은 메이텔. 사십오 년 전에 성유물 원정을 떠났던 수녀시죠.”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격일로 꾸준히 업로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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