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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무협물
죽은 너를 위하여
작가 : 예드니
작품등록일 : 2020.8.5

마교가 멸문당한 정사대전이 발발한지도 20년이 지났다.

"귀안을 갖은 자는 삿된 것에게 먹혀 귀문을 열고 만다."
귀신을 보는 청년 '우현'과 인형에 갇힌 여인 '천설화'. 그리고 외팔이 '장익삼'의 평생에 걸린 복수극.

 
17. 녹색과 자색
작성일 : 20-08-05 23:18     조회 : 252     추천 : 0     분량 : 4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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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녹색과 자색

 

 죽은 지 얼마 되지도 않는 영체가 온갖 사물에 빙의해서는, 우현에게 몸을 던졌다.

 

 빙의를 남발한 그는 거의 소멸 직전까지 갔다. 스스로를 한계까지 몰아세우며 우현을 못살게 군 것이다.

 

 [우현아, 우현아! 깔깔깔! 곽 아저씨가 제 얼굴이 자색, 혀가 녹색인 것만 말해달란다! 아! 아니지! 반대로 말해버렸네? 깔깔깔! 곽 아저씨가 제 얼굴이 녹색, 혀가 자색인 것 좀 꼭 말해 달란다!]

 ‘아니, 유매! 진작 좀 알려주시지 그랬어요! 잠도 못 자고 밤새 괴롭힘당했는데!’

 [무어? 네가 안 물어봤잖아? 깔깔!]

 

 혀를 길게 내밀고 죽어버려 말을 못 하는 곽 아저씨가 왜 저를 괴롭히는지 도통 영문을 몰랐던 우현은 그렇게 밤새 고통받았다.

 

 그러던 중 우현에게 상반신만 남아있는 여자 영체, 유매가 다가와 곽 아저씨의 말을 전해 주었다.

 

 빨리 가지 않으면 늦겠다면서.

 

 우현은 다가오는 수레를 향해 양손을 들어 올려 멈추라는 수신호를 하며 다가갔다.

 

 그러자 차츰 느려진 수레가 곧 우현의 앞에 섰다.

 

 “실례지만, 공자께서는 누구시길래 저희 앞길을 막으십니까?”

 

 팽후영이 우현에게 높임말을 썼다.

 

 ‘응? 뭘 잘못 먹었나? 쟤는 또 무슨 개수작이지?’

 

 게다가 팽소령은 또 어떤지. 수레 위에 앉아서 얼굴을 붉힌 그녀는 굉장히 낯선 모습이었다.

 

 우현은 갑자기 여염집 규수처럼 저와 눈조차 마주치기를 꺼리는 팽소령을 보며 속이 더부룩했다.

 

 “예? 아……. 저, 하북에서 오신 팽후영 대협이 아니십니까?”

 “대협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팽후영은 맞습니다만, 저를 어떻게 아시는지요?”

 

 우현이 제 이름을 알아보자 팽후영은 못내 미심쩍은지, 큰 덩치를 하고서 눈을 반만 뜬 채로 우현을 위아래로 살폈다.

 

 ‘아. 나를 못 알아보는구나!’

 

 정중하게 정체를 물어오는 팽후영에게 당황했으나, 우현은 곧바로 어제 제 얼굴이 온통 숯 칠이었던 것을 떠올렸다.

 

 지금은 구걸하느라 했던 변장을 지운 채였다. 게다가 얻어맞아 엉망이었던 상처들도 하루아침에 쑥 들어갔으니, 동일 인물이라고 보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었다.

 

 큼큼. 우현은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러자 본래의 소리보다 퍽 낮아진 목소리가 나왔다.

 

 “다름이 아니라. 어제 저희 형님께서 어제 신세를 지셨다고 들었습니다. 감사의 인사를 전해드리려고 예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형님이요?”

 “예, 그렇습니다. 아! 왜 그, 외팔이에. 정신이 조금 모자라신.”

 

 우현의 말에 잠자코 있던 팽소령이 붉은 양 뺨을 손바닥으로 가리고는 기쁜 듯이 외쳤다.

 

 “아~! 어머나! 세상에나. 어쩜 이런 인연이! 너무 가여워 보이는 나머지 제!가! 힘을 써서 옥중에서 꺼내어 구해준, 그 샛! 아니, 사내를 말하나 봐요, 오라버니! 호호, 호호!”

 

 가증스러운 연기를 하는 팽소령을 보며 우현은 웃음을 터트릴뻔했다.

 

 이를 참느라 잠시 숨을 고르는 척 헛기침을 했는데, 팽소령이 그 모습을 어떻게 오해하는지 몰라도 어머나! 하며 볼을 새빨갛게 붉혔다.

 

 팽후영은 들떠있는 팽소령의 옆구리를 우현이 보지 못하는 사이 팔꿈치로 쿡쿡 찌르며 말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고작 그런 일로 예까지 이 새벽에 나와계시다니요.”

 “고작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대협께선 말씀 낮추시지요. 제가 어려도 한참은 어린걸요.”

 “어머! 그나저나 공자가 밤새 근심이 크셨겠어요!”

 “예. 형님께서 정신연령이 낮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랍니다. 저희 형님께서 감옥에 가셨다는 사실을 들었을 땐 정말이지, 눈앞이 깜깜했었죠.”

 “형님의 상태가 호전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대협.”

 

 어느 정도 인사치레가 끝나고 나서였다. 큼큼, 목소리를 낮게 가라앉힌 우현이 팽후영을 똑바로 올려다보며 말했다.

 

 “저, 대협. 그런 데 말입니다.”

 “예, 말씀하시지요.”

 “푸른 도복의 사체를 찾으셨다고요?”

 “예? 아니 어찌 그것을······.”

 “아. 오해하지 마십시오. 그자를 처음 발견한 이가 저라서 말입니다.”

 “뭐라고요-?!”

 “혹시 저의 형님을 구해주신 은인들께 도움이 될까 하여 이렇게 나와 있었답니다.”

 

 벌떡.

 팽후영이 앉아 있던 수레에서 뛰어나와 땅 위에 발을 딛고 섰다.

 

 삽시간에 이루어진 일에 놀란 우현이 눈을 껌벅였다. 팽후영의 커다란 덩치는 호랑이가 덤불에서 번쩍하고 나온 모양새와 똑 닮아 있었다.

 

 “이런, 놀라셨다면 죄송합니다. 제, 제가 자세히 들을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흠흠. 제가 그 시체를 처음 본건 저쪽 야산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신기하게도······.”

 

 꼬끼오-!

 그때 멀리서 새벽닭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저 동쪽 언덕배기에서 서서히 동이 트기 시작한 것이다.

 

 우현은 말을 서둘렀다.

 

 “얼굴이 녹색! 길게 빼문 혀가 자색이지 뭡니까? 그래서 확실히 기억이 납니다.”

 “아……! 그렇다면 동물이 물어간 것이 맞았군요!”

 “정말이지 감사드립니다, 감사해요. 소공자.”

 

 우현은 감사하다며 눈물과 콧물을 쏟는 팽소령과 팽후영의 손을 마주 잡아 주었다.

 

 그리고는 그들이 타고 온 수레 위로 시선을 올려 남매 몰래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우우우-.]

 

 수레에는 그 둘과 함께 타고 있던 곽 아저씨가 긴 혀를 날름 이며 기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우현은 그것이 혀를 빼물고 죽은 자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기쁨이라는 것을 아는지라 그저 마주 보고 웃어주었다.

 

 [우우-.]

 

 곽 아저씨는 곧 우현에게 고맙다는 눈인사를 하고는 점차 희미해져갔다.

 

 별 가루를 뿌린 듯 환한 빛과 함께, 곧 그는 자리에 없었던 것처럼 자취를 감췄다.

 

 이승에 원한이 없는 영체가 이룰 수 있는, 성불이었다.

 

 ‘곽삼호 아저씨, 부디 다음 생에는 좋은 곳으로 가세요.’

 

 사람이 죽어 구천을 떠도는 이유에 대해서 우현은 자세히 알지 못했다.

 

 그저 죽을 당시의 강한 염원이 남았던 이들이 영체가 된다고 경험상 짐작해 볼 뿐이었다.

 

 그리고 귀혼들은 자신의 염원이 이루어졌을 때, 미련 한 톨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영체들이 사라질 때 짓는 표정이 참으로 따듯했기에 우현은 그 순간을 바라보는 것을 즐겼다. 덩달아 저도 함께 행복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도움을 주고 싶었다.

 

 ‘얼굴이 녹색, 혀가 자색인 것이 대체 뭐라고.’

 

 우현은 저만치 가는 수레가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었다. 이게 어떻게 성불의 이유가 되는 걸까. 우현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더는 파고들지 않았다.

 

 곽 아저씨의 성불로 자신의 역할은 완료된 것이었으니까.

 

 ***

 

 모든 것이 평소와 같이 아름답고 완벽한 하루였다.

 

 손녀는 어설픈 솜씨로나마 인형을 만들었다며 노인에게 건넸고, 주름진 손은 손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대견하다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어머니께 부탁하여 실을, 아버지께 요청하여 목탄을 얻어온 작은 아이가 두 볼을 빨갛게 붉히고는 ‘할아버지. 만들어주세요.’ 했다.

 

 “쿨럭! 크으. 이, 이 사지를 찢어 갈아 넣어도 모자란 놈들-!”

 

 그렇게 귀여운 손녀의 재롱을 지켜보며 식솔 모두가 행복하던 어느 날 밤. 깨어 있는 이 하나 없는 야심한 시각은 달마저 짙은 구름을 덮고 잠들어 사위가 어둑어둑했다.

 

 그리고 그렇게 흐린 하늘을 등에 업고 밤손님이 들이닥쳤다.

 

 “네놈에겐 정의도 없는 것이야-!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와 여자만은 살려준다고 하지 않았느냐! ”

 

 평온했던 집안에서는 누군가의 고통스러운 단말마를 시작으로 비명이 끊이지 않았다.

 

 “쿨럭-!”

 

 노인이 피를 한 움큼 토했다. 더는 들려오지 않는 고요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직감했다.

 

 자신이 바로 단말마를 외치며 쓰러질 최후의 일인이 될 것이라는 사실과 그리고 가족의 마지막을 지켜보지 못한 참담함에 노인의 주름진 눈가에서는 피눈물이 흘렀다.

 

 “인명을 바쳐 사악한 힘을 얻는 더러운 사파 놈의 주둥이에서 그딴 말이 나오다니. 하늘이 다 비웃는구나.”

 

 쿠르릉. 쾅!

 

 번개를 끌어안고서 사태를 지켜보던 먹구름이 더는 참지 못하겠는지 비를 쏟아내며 노호성을 터트렸다.

 

 번쩍하고 빛이 세상을 뒤덮는 찰나의 순간, 온몸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노인의 주변에 정승처럼 서 있는 6명의 형상이 보였다.

 

 “닥쳐라, 이 쳐죽일 놈들-!”

 

 근 백에 이르던 식솔들이 모두 죽임을 당했다. 어른, 아이 가릴 것 없는 학살이었다. 노인은 눈에 핏발을 세우고 일갈했다.

 

 “하늘만이, 누가 더 더러운 짓을 했는지는 하늘이 알 것이-! 크학!”

 

 소리도 없이 다가온 칼날이 노인을 베었다. 오른쪽 어깨에서부터 왼쪽 허리까지 한 번에 그어진 긴 상처에서 피가 꿀럭꿀럭 솟았다.

 

 가슴팍에 치명상을 입은 노인은 피 칠갑이 되어 고통에 몸부림쳤다.

 

 “곧 죽을 노친네가 힘도 좋지.”

 “쿨럭!”

 “말이 많은 것 보니, 피를 덜 흘린 모양이지.”

 "너······. 너는!”

 

 뚜벅.

 칼에 묻은 피를 떨구며 새하얀 무복을 입은 중년의 남자가 노인에게 다가왔다.

 

 “20년간 쥐새끼처럼 숨어 어디 있었나 했더니만. 죽기 전에 하고픈 이야기가 많은 게냐? 노가야.”

 “이 육, 육시랄 놈이 결국 여기까지-!”

 

 쿠르릉. 콰광!

 

 번개가 연달아 번쩍였다. 그러자 노인의 앞으로 다가온 하얀 무복의 사내의 손에 들린 여자아이가 보였다.

 

 입이 막혀서 괴로울 텐데도 소녀는 공포에 질려 사지를 벌벌 떨며 아무소리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하, 할아버지…….”

 

 아이는 아직 목숨이 붙어 있는 노인의 손녀였다.

 

 가족은 모두 죽여버린 줄 알았건만. 아니, 차라리 죽은 게 다행이었을 텐데. 노인은 피로 거품을 물며 외쳤다.

 

 “민아! 괜찮으냐! 민아-!”

 “훗. 몹시 귀여운 아이일세. 대범하기도 하고. 자네를 많이 닮은 것 같구먼.”

 “하……. 할아, 버지. 살, 살려주세…….”

 

 멱살을 잡혀 허공에 매달린 아이가 경련이 인 것처럼 사지를 떨었다. 하지만 소녀의 목을 조르고 있는 사내의 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노가야. 네놈은 손녀가 목숨을 부지할 방법을 알고 있다. 그렇지 않으냐?”

 

 중년의 말에 노인은 크게 동요했다. 손녀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자 욕심 없이 죽음을 기다리던 노인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할, 할아 버지. 흐으!”

 

 많은 생각이 노인의 뇌리를 스쳤다. 희생으로 지켜온 대의니 한 번쯤은 가족을 살리며 저버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한마디만 하면 된다. 그럼 손녀만은 살게 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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