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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무협물
죽은 너를 위하여
작가 : 예드니
작품등록일 : 2020.8.5

마교가 멸문당한 정사대전이 발발한지도 20년이 지났다.

"귀안을 갖은 자는 삿된 것에게 먹혀 귀문을 열고 만다."
귀신을 보는 청년 '우현'과 인형에 갇힌 여인 '천설화'. 그리고 외팔이 '장익삼'의 평생에 걸린 복수극.

 
8. 가죽신과 삼궤구고두
작성일 : 20-08-05 23:13     조회 : 244     추천 : 0     분량 : 4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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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가죽신과 삼궤구고두

 

 우현은 마른 침을 꼴깍꼴깍 삼켰다.

 

 귀신보다 더 무서운 존재, 무관이 앞에 있다. 흙바닥에 찧은 우현의 이마 위로 닦지도 못한 식은땀이 주룩 흘러내렸다.

 

 “주군. 사실이옵니다. 저 청년은 우현이란 자로 이 근방에서 묘지를 돌보며 15년을 살았다 하옵니다.”

 

 그때, 잡초가 밤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만이 간혹 나던 곳에서 무덤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군으로 불린 사내가 질문을 부탁한 지 한 다경도 채 지나지 않은 시각이었다.

 

 “수고했다.”

 “존명.”

 

 겨우 남자가 제 목에서 칼을 거두어 바람에 땀을 식힌 정도의 찰나가 흘렀다. 그동안에 제 이름이 밝혀지다니?

 

 사내의 수하가 한둘이 아니었고, 또 상승 무공을 익힌 무인 간에 이루어지는 전음의 원리를 모르는 우현에게는 천지개벽할 일이었다.

 

 “네 나이가 올해 몇이라 하였느냐.”

 “스, 스물이옵니다.”

 “약관의 나이에 이곳에 15년을 있었다 하면……. 거의 한평생을 산 셈이나 다름없겠구나.”

 “그, 그러하옵니다.”

 

 사락.

 

 잔디가 바스락거렸다. 우현의 목에 검을 댄 남자가 등을 돌리며 걸음을 옮긴 것이다. 우현은 그가 또 검을 빼 들지는 않을까, 사지를 발발 떨었다.

 

 “이토록 음습한 기운이 서린 곳에서 그리 오래 살았다고 하니. 야밤에 혼자 산책을 나와 혼잣말을 하여도 이상할 것은 없겠지.”

 

 남자가 우현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발소리는커녕 들풀 접히는 소리 나지 않았다.

 

 사내가 다녀간 흔적이라고는 황량한 새벽의 무덤가와 어울리지 않는 고급 사향 내음이 전부였다.

 

 향기가 스칠 때 우현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확인할 뻔했으나, 다행히도 공포로 제압당한 몸은 움찔 한번 하고 말았다.

 

 “이, 이해해 주시니 송구합니다, 대협!”

 

 그때였다.

 

 두 발짝 멀어지는 남자의 발치를 바라보던 우현의 전신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다.

 

 물론 우현이 무공에 재능이 있어서 방금 사내가 ‘이 천것을 처리하라.’며 수하에게 명령한 전음을 엿들었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일전에 영체가 했던 잔소리가 떠오른 까닭이었다.

 

 ‘우현아. 무관 앞에서는 무조건 잘못했다고 빌고, 무조건 감사의 인사로 문장을 끝낸 뒤 절을 올려야만 한다!’

 ‘그렇게까지 해야 해요?’

 ‘예끼! 이놈아! 그들이 돌아섰다고 안심이라도 하면, 그게 바로 네 목 위로 달린 머리가 볼 수 있는 마지막 장면이 될 터이다! 명심해라! 내 마지막이 바로 그러했다!’

 

 무관을 조심 또 조심하라던, 바로 황실에서 일하다 무관에게 사지가 절단되어 죽은 영체의 엄포가 떠올랐다.

 

 흡사 그 영체가 살아 돌아와 바로 곁에서 말하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목소리까지 생생했다.

 

 “저, 대- 대협! 소, 소인이 감히!”

 

 그러자 어디서 난 용기인지는 몰라도, 우현은 저만치 가던 사내의 뒤에다 대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이 야, 야심한 시각에! 대협의 심중을 심란케 하는 대불경 죄를 저질렀사옵니다!”

 

 사내의 뒷모습이 머리가 달리고 보는 마지막 풍경일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였다.

 

 ‘이대로 가면 죽는다!’

 

 개죽음을 당하기 전에 무어라도 해야 했다. 불안에 떨며 우현은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살기 위해 떠올린 영체의 조언을 따라, 쿵쿵쿵! 그는 바닥에 넙죽 엎드려 이마를 찧으며 절을 했다.

 

 “부디 너그러이 아량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선처를 바라옵지만, 천한 것의 목숨으로 죗값을 받겠다 하시면. 물론 응당 따르겠나이다!”

 

 쿵쿵쿵!

 

 자갈과 돌이 묻더라도 상관없었다. 우현은 바닥에 몇 번이고 이마를 찧으며 절을 했다. 잡초가 날리며 흙이 눈에 들어가도 멈추지 않았다.

 

 그러자 마침내 사락 하고, 사향 내를 머금은 저만치 걸어가던 검푸른 비단이 우현의 눈앞에 다시 나타났다.

 

 “재미있는 놈 아니냐, 이화.”

 “예. 주군. 그러하옵니다.”

 “증거 인멸은 평상시와 같이하되, 이 녀석은 남겨 놓거라.”

 “그리하겠나이다.”

 

 증거 인멸이라니. 우현의 끔찍한 예상이 맞아 떨어졌다.

 

 그는 진심으로 머리를 조아렸다. 제 목숨을 살려준 이에게 감사의 인사로 쿵쿵쿵,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절을 했다.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대인.”

 

 바짝 엎드린 우현의 이마 바로 앞에 가죽신 한 짝이 소리도 없이 다가왔다. 귀신이었다면 이해라도 할 텐데, 사람이 이러니 우현은 귀신보다 이 사내가 더욱더 무서웠다.

 

 “이곳은 앞서 말했다시피 다른 곳보다 음기가 유독 강하다. 멀쩡한 사람도 병이 나 돌아갈 만큼 음기가 가득한 곳이란 말이지.”

 

 우현이 작게 실눈을 뜨자 붉은 실로 마감한 사내의 까만 가죽신이 퍽 고급스러웠다. 현위 마저도 산을 탈 때는 곱게 염색된 값비싼 실을 쓴 신을 시지 않았다. 그가 생각보다 높은 고위 무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우현은 눈앞이 아찔했다.

 

 “이 근방에서 오래 살아온 네게 할 말은 아니지만, 건강에 좋지 않을 터이니 다른 곳을 알아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우려와는 달리 우현의 목에 피를 낸 사내의 첫인사는 위협적이었을지언정 끝인사는 그렇지 않았다.

 

 “가, 감사합니다. 대협의 깊으신 가르침에 천것은 탄복할 따름이옵니다.”

 

 사락사락.

 

 우현은 재차 절을 올렸다. 그러자 사내가 입은 비단이 길게 자란 잡초를 스치며 그의 곁에서 멀어졌다.

 

 “휴우······.”

 

 여전히 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있는 우현은 작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이화야. 생각하면 할수록 신기한 놈이 아니더냐.”

 

 흠칫!

 

 그러나 우현이 안심하던 때. 떠난 줄로만 알았던 붉은 실로 멋을 낸 까만 가죽 신이 다시 번개처럼 우현의 앞에 나타났다.

 

 “네 놈.”

 “······!”

 

 사내는 우현의 바로 코앞에 서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멀리 떠난 줄로만 알고 있던 우현은 놀라서 사지를 푸들푸들 떨었다.

 

 “천한 거지 주제에 삼궤구고두는 감히 어디서 훔쳐 배웠느냐?”

 

 삼궤구고두(三?九叩頭]).

 황제에 대한 경례법으로 근래에 들어서는 거의 사장되다시피 한 예법이었다. 무릎을 꿇고 양손을 바닥에 대고서 머리를 땅에 3번, 6번, 9번을 닿게 하는 거추장스러운 절차였기 때문이었다.

 

 지금에 와서는 황제에게 충성을 맹세한다는 의미만 남아 황제의 권위를 내세워 외국의 사신을 제 발밑에 두기 위한 흉계로 한두 번씩 쓰였다.

 

 “소, 소인이 미천하여 대협께서 무슨 말씀 하옵는지. 도무지-.”

 “못 배운 거지 주제에 술술 나오는 경어는 또 어떠하고? 그렇지 않으냐, 이화야.”

 “예, 주군. 정녕 그러하옵니다.”

 

 한 발짝 더 앞으로 다가온 가죽신에 우현은 긴장으로 몸을 바짝 숙였다.

 

 바스락.

 

 사내는 우현의 어깨로 손을 올렸다. 굳은살 가득한 손의 무게가 천근만근이었다.

 

 우현을 가까이서 보고 싶은 모양인지, 그는 직접 허리를 숙여 우현을 일으키려 했다.

 

 우현은 콧속으로 훅 들어오는, 귀족들이나 갖고 다닌다는 사향 주머니 냄새를 맡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

 

 ‘장군. 찾았다고 합니다.’

 

 멈칫.

 

 우현이 사내의 손에 이끌려 엉거주춤 반쯤 상체를 일으켰을 때였다.

 

 어디에 있는지 짐작도 할 수 없는 곳에서 사내의 심복, 이화가 그의 주군에게 전음을 날렸다.

 

 “드디어 찾았느냐.”

 ‘예. 그런데 주군께서 직접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한가.”

 

 바짝 엎드려 듣고 있는 우현은 도무지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가 자문자답하는 미친 척을 할 리가 없다.

 

 그러자 사내가 잠자코 숨죽이고 있던 우현에게로 굽힌 허리를 펴고 일어서며 말했다.

 

 “다음에 또 보도록 하지.”

 “……예, 에?”

 

 무엇이 그리 급했을까, 한차례 돌풍에 잔디가 허리를 꺽였다 폈을 즘, 우현을 일으켜 세우려 어깨에 손까지 얹던 남자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바람과 같이 사라진 신형에 우현은 눈을 휘둥그레 뜨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하! 사람이 귀신보다 더 귀신 같으니 원.”

 

 우현은 남자가 사라지고도 한참 이 지나고 나서야 몸을 일으켰다. 오랫동안 찬 바닥에 누워 절을 했던 근육들이 비명을 질렀다.

 

 털썩!

 

 긴장이 풀리자 다리가 다 후들거렸다. 바닥에 궁둥이를 붙이고 주저앉은 우현은 놀란 마음을 달랬다.

 

 “삼궤구고두라니.”

 

 우현은 본직이 거지였다. 머리가 영특하다는 이유로 장익삼의 눈에 띄어 운이 좋아 개방의 특수 조직, 엽구 활동을 하고는 있으나 별다른 활동이 없을 때는 개방의 다른 거지들과 다를 바 없이 시내에 나가 구걸을 했다.

 

 “하. 이 절은 황제만 받을 수 있다며 으스대던 그 영체의 말이 사실이었구나!”

 

 구걸하러 다녀온 밤에는 꼭 무릎이 시렸다. 길거리에서 종일 무릎을 꿇고 있었으니 당연했다.

 

 ‘절 하는 법을 일러주랴?’

 

 그런 우현에게 황실에서 일했다며 으스대던 영체가 다가왔다. 장시간 무릎을 꿇어도 덜 아픈 자세. 그것은 제법 효과가 있었고 어느덧 우현의 몸에 자연스럽게 배었을 뿐이었다.

 

 “그나저나. 높은 무관인 줄은 알았지만, 황제와 연관된 사람이었다니······.”

 

 우현은 정말 큰일 날 뻔했다며 가슴을 쓸었다.

 

 

 ***

 

 

 음기가 강한 땅에서는 넓은 잎 식물이 자라지 않는다는 말이 사실인지, 침엽수림이 가득했다.

 

 

 검푸른 도복에 값비싼 가죽신을 신은 남자는 울창한 산림 안 달빛조차 닿지 않는 숲의 한가운데에 홀로 서 있었다.

 

 “이화.”

 

 남자의 부름에 어디선가 번개 같은 속도로 신형이 튀어나왔다.

 

 

 “예, 위장군. 하명 하소서.”

 

 이화는 남자를 ‘위장군’이라 불렀다. 아까는 달밤에 산책을 나온 웬 거지가 등장하는 바람에 주군이라 칭하였으나, 사내의 정체는 황실 직속 호위부대를 관장하는 위장군, 부영이었다.

 

 “이 사체가 확실한 것이냐.”

 “그렇사옵니다.”

 

 부영은 날 때부터 명령을 내리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아랫사람을 부렸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삼대에서 대장군을 배출한 가문의 오대 독자였다. 서 있는 모습에서조차 귀티가 철철 흘러넘칠 수밖에.

 

 “그렇단 말이지…….”

 

 우현이 힐끔거리며 그저 ‘현위가 입은 것보다 비싸보였다.’라고 평가한 남자의 복식 또한 범상치 않았다.

 

 겉으로 보기엔 부영과 이화, 둘 다 까만 옷을 입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저 까만 물을 먹인 무복을 입은 이화의 것에 견줄 것이 못 되었다.

 

 위장군 부영이 입은 검은 배자 위로 비단 전체에 은실로 입힌 자수가 희미한 달빛에도 푸르게 빛이 났다. 기품이 배가 되어 흘렀다.

 

 “이것이 우리가 찾던 태악령 종놈이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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