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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무협물
죽은 너를 위하여
작가 : 예드니
작품등록일 : 2020.8.5

마교가 멸문당한 정사대전이 발발한지도 20년이 지났다.

"귀안을 갖은 자는 삿된 것에게 먹혀 귀문을 열고 만다."
귀신을 보는 청년 '우현'과 인형에 갇힌 여인 '천설화'. 그리고 외팔이 '장익삼'의 평생에 걸린 복수극.

 
7. 무관과 무인
작성일 : 20-08-05 23:13     조회 : 266     추천 : 0     분량 : 4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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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무관과 무인

 

 우현은 혈혈단신으로 횃불 한 자루를 들고서 길도 없는 야산을 올랐다. 물론 겉보기에만 그랬지,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우어어어!]

 [깔깔깔! 혼백 도령아! 이 길로 올라가다 보면 곽 아저씨가 묻힌 자리가 나온단다!]

 “그러셨어요?”

 [네 생각은 어떠냐? 저 아저씨 무덤에는 저이 얼굴 닮은 초록색 풀이 나겠냐, 아니면 혓바닥 같은 보라색 꽃이 피겠느냐?]

 

 공동묘지의 산세를 잘 아는 심마니 할아버지를 선두로 그 뒤를 우현이 걸어갔다.

 

 영체는 열심히 꾸물꾸물 움직여 잘도 우현의 뒤를 따라왔다. 그 수가 족히 삼십은 넘어 보였다.

 

 구름은 짙었지만, 이따금 구름 너머로 얼굴을 내미는 달빛이 반가웠다. 오래간만에 혼백 공자와 함께하는 산보에 신이 났는지, 한시도 쉬지 않고 수다를 떠는 바람에 제법 왁자지껄했다.

 

 다리가 없는 자는 구르고, 뛸 수 있는 영체는 방방 뛰었다. 이도 저도 아닌 이들은 덩치 좋은 영체가 공을 쏘듯 휙휙 던지며 앞으로 나아갔다. 쏘아 올려진 머리만 남은 영체, 유매가 제발 차지만 말아 달라고 부탁을 하며 깔깔거렸다.

 

 [아이야.]

 “예, 할아버지. 벌써 용안이 보이십니까? 고 단것을 맛볼 생각 하니 군침이 계속 고이네요.”

 

 그때, 발의 움직임도 없이 스스스 앞으로 갔다가 돌아온 심마니 할아버지 영체가 우현의 옆으로 다가왔다.

 

 [조심하거라. 저만치에 누가 있구나.]

 “예? 누가 있다니요? 지금 이 시각에 말입니까?”

 

 우현은 발걸음을 멈추고 제자리에 우뚝 섰다. 심마니 할아버지가 가리킨 방향을 살펴보았지만, 우현의 눈에는 묘비 없는 봉분 위로 음산한 새벽안개가 잔뜩 끼어있을 뿐이었다. 오늘따라 더욱 흐린 초승달을 바라보며 시각을 예측하던 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영체가 아니라 사람이 확실합니까, 할아버지?”

 [그래. 아주 건강한 놈들이야. 무서울 정도로 양기가 짙구나.]

 “에? 놈들이라뇨? 하나가 아닌 겁니까?”

 [아가야! 우리 같은 혼령은 근처에 가지도 못하겠다! 다가가지도 못하겠어!]

 

 우현은 영체들과 함께 달빛 산책을 종종 나왔다. 달의 음기를 받으면 영체들도 한결 형체가 선명하게 변했다. 그래서 저를 따라다니다 집 안에만 머물러 있는 이들이 비실비실해지는 것이 걱정된 우현은 할 수만 있다면 새벽에 시간을 내어 산책을 나섰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내려가 볼까요?”

 

 그런데 누군가 있다니?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이곳이 시체 썩는 냄새가 끊이지 않는다는 천것들의 공동묘지이기도 했지만, 실제로도 음기가 강하기로 소문이 자자한 땅이기에 더욱더 그러했다. 혹시라도 노약자가 방문하게 된다면 필시 시름시름 앓았기 때문에 묘지는 명백한 기피 장소였다.

 

 “하, 할아버지? 왜 그래요?”

 [우아아아아-!]

 [꺄아악-!]

 

 그때였다. 갑자기 영체들이 일제히 비명을 질러대며 사방팔방으로 정신없이 달아났다. 도통 영문을 모르는 우현만이 우두커니 서서 달아나는 영체들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웬 놈이냐.”

 

 그리고 그때, 낯선 목소리가 우현의 바로 옆에서 들려왔다. 차라리 귀신이면 덜 무서웠을 텐데, 분명 사람의 목소리였다.

 

 “······!”

 

 갑작스럽게 홀연히 나타난 사내의 기척에 우현은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놀라서 몸이 굳은 까닭도 있었지만, 목덜미에서 서늘한 쇠붙이의 감각 때문에 더 그랬다.

 

 “어찌 이 으슥한 야밤에 묘지에 올라서 미친놈처럼 혼자 중얼거리고 있는 게야.”

 

 바늘과도 같은 뾰족한 것이 우현의 울대 옆을 쿡 찔렀다. 하지만 우현은 제 목덜미를 위협한 것이 바늘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마침 구름 사이를 뚫고 내려온 달빛에 곧은 검날이 서슬이 시퍼렇게 빛을 발했다. 검 끝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침으로 찔린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예기였다.

 

 “놈, 혼잣말은 잘도 하더니만. 갑자기 혀 쓰는 법을 잃어버리기라도 한 것이냐?”

 

 우현이 긴장으로 꿀꺽하고 마른 침을 삼키자, 차가운 검날이 그의 살갗을 스쳤다. 그 찰나의 접촉만으로 붉은 피가 방울져서는 칼끝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니면. 네 놈이 무시할 정도로 내가 만만해 보이는 것이냐.”

 

 만만해 보이다니! 되지도 않는 억지에 결국, 우현은 억지로 목소리를 짜냈다. 그는 덜덜 떨리는 제 다리가 보이지 않는 것인지 되려 묻고 싶어졌다.

 

 “저, 절대 그렇지 않사옵니다, 대인.”

 “허면?”

 

 우현은 눈을 질끈 감았다. 구름 뒤로 숨은 달 덕에 눈을 감으나, 뜨나 변하는 것은 없었다.

 

 그런데도 제 목에 정확히 겨누어진 검이라니. 우현은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도 대낮처럼 활동하는 장익삼이 떠올랐다. 무인이 분명했다.

 

 “소, 소인은.”

 

 목에 닿은 차가운 금속 아래 맥이 펄떡펄떡 뛰었다. 목소리의 떨림을 막을 수는 없었지만, 우현은 최대한 침착하게 대답했다.

 

 “소인은 그저 밤 산책을 즐기던 한, 한낱 거지옵니다. 대협께서 하시는 일은 보지도, 듣지도. 무, 무지하여 아무것도 모르오니 제발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흐익-!”

 

 우현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우현의 목에 닿은 칼날이 더욱 바짝 다가왔다. 우현은 식겁하여 몸을 움찔 떨었다.

 

 “……이 야심한 시각에 묘터에 올라 혼자 중얼거리기에 미친놈인 줄 알았더니. 산책을 나온 거지였다? 흥미롭구나. 네놈이 보기엔 어느 쪽이 덜 실성한 듯싶으냐.”

 

 칼끝이 우현의 목젖에 닿았다. 목숨을 위협받은 우현은 다급하게 외쳤다.

 

 “대, 대협! 제가 감히 거짓을 고하리까! 저, 저는 이곳에서 평생을 살았습니다. 못 배운 놈이 묘지기를 하는 터라 밤과 낮에 경계가 없, 없을 뿐이옵니다.”

 “뭐라? 주인 없는 천것들의 땅에 묘지기가 말이 될 성싶으냐!”

 

 쿵!

 

 칼을 쥔 이가 천것 운운하자마자 우현은 퍼뜩 무릎을 꿇었다.

 

 ‘천것이라니! 높, 높으신 분이로구나!’

 

 목소리에 서린 위엄만 보더라도 확신 섰다. 제 목에 칼을 들이민 자는, 천민의 목숨을 파리 보듯 하는 고관대작일 것이 분명하다고.

 

 “귀, 귀하신 분 앞에서 제가 감히 어찌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만약 남자가 높은 신분에 있는 귀족이라면. 근본도 없는 우현과 같은 치가 그의 앞에 두 발로 서있는 것조차도 불경이었다.

 

 쿵!

 

 우현은 바닥에 이마를 찧으며 바짝 엎드렸다. 그의 목덜미에는 칼날에 베인 상처가 붉은 실처럼 길게 남았다.

 

 “이곳은 대협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천것들의 묘지이옵니다! 이런 곳에 묘지기라니, 소인의 존재가 천부당만부당한 소리임은 분명한 사실이옵니다!”

 “그러한데?”

 “처, 천것들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질서가 없어 봉분에 누가 묻혔는지도 모르옵니다. 그러다 보니 챙겨줄 사람이 없어 시신은 무분별하게 방치되어 산짐승을 불러들이고 민가에 피해 또한 막심합니다.”

 “제법 그럴싸하구나.”

 “하, 하여. 저같이 정처 없이 떠도는 거지를 긍휼히 여긴 관아에서는 작은 삯을 내려 소인에게 돌보도록 명하였고 그것이 소인이 이 무덤가를 관리하게 된 까닭입니다.”

 

 우현의 대답이 끝나자마자 바짝 엎드린 그의 바로 옆 잔디 위로 방울진 피가 튀었다.

 

 챙.

 

 영 탐탁지 않은 눈치였지만 제게 납작 엎드려 복종하는 거지의 태도가 나쁘지 않았던지, 남자가 칼을 갈무리해 검집에 넣었다. 칼을 집어넣는 동작마저도 군더더기 하나 없이 깔끔했다.

 

 “이화.”

 “존명!”

 

 그때 사내의 말에 응답하는 목소리가 허공에서 들려왔다.

 

 ‘호, 혼자가 아니었어?’

 

 허허벌판만이 있는 줄 알았던 방향에서 들려온 또 다른 타인의 목소리에 우현은 더욱 넙죽 자세를 낮췄다.

 

 누군가가 또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사내는 수하마저도 기척을 숨기는 능력이 대단한 무인 임이 분명했다.

 

 “저 천것의 말이 사실인지 알아보고 오너라.”

 ‘천 것이 입에 익은 자다. 역시나, 저자는 무, 무관인 것인가.’

 

 우현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의 머릿속에 일전에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다 강도에게 맞아 죽은, 한 방물장수 영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네놈, 우현아! 너 무관과 무인을 어찌 구분하는지는 아느냐?’

 ‘예? 다 무공이 출중한 똑같은 사람 아니었습니까?’

 ‘아이고. 이 맹한 놈을 어찌할꼬! 자, 듣거라. 무인과 무관은 말이다…….’

 

 영체들은 틈만 나면 우현의 귓가에 대고 쉴새 없이 재잘거렸다. 살아생전에 삶의 우환이 말도 못 했는데, 무려 산 자가 제 말에 반응하니 그렇게 신날 수가 없었다.

 

 ‘무인은 무예를 숭상하며 스스로를 ‘귀한 것’이라 여긴다. 그놈들은 제 입으로 저를 ‘본좌’라 칭하며 높여 부르길 좋아하지.’

 ‘그렇군요. 하면 무관은 무에 다르답니까? 무를 갈고 닦고, 모두가 우러러본다는 점에서 무인과 다를 바가 없는걸요?’

 ‘무관은 오로지 천제 하나만을 모시는 무식한 놈들이다! 게다가 우리같이 없는 것들을 ‘천한 것’ 취급하며 한없이 낮잡아 본단다.’

 

 제 앞에 기척도 없이, 영체도 감당 못 할 기운을 풍기며 등장한 사내.

 

 저를 보자마자 천것을 운운하며 칼을 빼든 사내는 무관임이 분명해 보였다.

 

 다시 말해, 눈앞의 남자는 심심풀이로 저 같은 천것의 목을 똑 분지르더라도 내일 아침에는 아, 그랬나? 할 정도로 대단한 위인이라는 소리였다.

 

 ‘주둥이를, 주둥이를 단연코 조심해야 한다! 더욱이 무관 앞에서는!’

 

 방물장수 영체뿐만이 아니었다. 비록 지금은 성불하여 없지만, 우현의 집에는 황성에서 높은 분을 모시다 건방진 태도로 그만 하루아침에 사지가 절단된 영체가 있었다.

 

 제법 우현의 곁에 오래 머물다 성불했던 그가 언제나 우현에게 강조하기를, 저처럼 비명횡사하고 싶지 않으면 고관대작 앞에서는 바짝 엎드리라 했다.

 

 ‘내 어디 죽을죄를 지어서 사지가 잘린 줄 아느냐? 요, 요놈의 주둥이가 문제였지!’

 

 경어는 물론이요, 절대 눈 마주칠 생각도 하면 안 된다면서. 매번 우현에게 귀가 따갑도록 잔소리를 해댔다.

 

 ‘예, 예. 알았다니까요! 귀에 딱지가 앉겠습니다!’

 ‘새겨듣거라! 네 놈도 나처럼 팔다리 없이 동그랗게 오려지고 싶지 않거들랑!’

 

 영체는 특히나 우현에게 전장에 나가 사람 목을 무 썰듯 베는 무관을 조심하라며 단단하게 일러두었다.

 

 의로울수록 추앙받는 무림의 세계에서 무인은 체면이라도 차린다지만, 녹봉을 받는 무관에게는 그마저도 없다면서.

 

 부우우.

 

 매일 밤 듣는 부엉이 울음소리인데도 오늘따라 무척 스산했다. 마치 네 목숨도 오늘이 끝이겠구나? 하고 조롱하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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