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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무협물
죽은 너를 위하여
작가 : 예드니
작품등록일 : 2020.8.5

마교가 멸문당한 정사대전이 발발한지도 20년이 지났다.

"귀안을 갖은 자는 삿된 것에게 먹혀 귀문을 열고 만다."
귀신을 보는 청년 '우현'과 인형에 갇힌 여인 '천설화'. 그리고 외팔이 '장익삼'의 평생에 걸린 복수극.

 
4. 숨바꼭질
작성일 : 20-08-05 23:11     조회 : 249     추천 : 0     분량 : 4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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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숨바꼭질

 

 “어르신. 장가 입니다요.”

 “들어오게!”

 

 낡고 더러운 막사에서는 지독한 악취가 났다. 손닿는 부분에는 유독 새카맣게 때가 찌들어 있었다.

 눈살을 찌푸릴 법도 하지만, 장익삼은 익숙한 듯이 천막을 젖히고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무얼 가져왔느냐? 본좌가 배를 곯은 지도 한참 되었단 말이다!”

 

 장익삼은 어둡고 더러운 장막 안쪽에 자리해 있는 노인에게 넙죽 절을 하며 준비한 함지박을 내밀었다.

 그러자 거지는 귀한 음식이 수북하게 쌓인 바가지를 보더니 입을 쩝쩝 다셨다.

 

 “시장하지 않으셨습니까, 어르신. 어서 드시지요.”

 “크흠! 내 그럼 맛만 먼저 좀 보겠느니라.”

 

 노인은 꽂혀있는 숟가락을 냅다 집어 던지고서 얼굴을 처박았다. 허겁지겁 허기를 채우는 모습이 영락없는 거지였다.

 

 “장가야. 육전이 참 맛있구나.”

 “예. 많이 드십시오, 방주 어르신. 부족하면 다녀오겠습니다.”

 “되었다, 되었다! 이만하면 되었다.”

 

 쩝쩝 소리를 내며 게걸스럽게 한참을 먹던 노인이 고개를 휙 들어 장익삼을 바라보았다.

 그의 손에 들린 함지박은 원래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깨끗했다.

 

 “그나저나 장가야.”

 “예, 어르신.”

 “자네가 이번에도 허탕을 쳤다지?”

 “며, 면목 없습니다.”

 

 노인은 치태가 끼인 누런 이빨 사이에 손가락보다 더 긴 손톱을 걸었다. 이 사이에 낀 음식물을 뽑아 쩝쩝 입맛을 다시던 노인이 손가락을 까닥였다.

 장익삼은 지독한 악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앞으로 다가가 귀를 대었다.

 

 “......어째 쓸만한 것 좀 주워오라고 보낸 엽구 새끼가, 보내는 족족 허탕을 치고 앉았을까.”

 

 더러운 거지의 안광이 형형하게 빛났다. 노인의 목소리는 높낮이 변화 없이 태평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천막 안에는 숨을 옥죄는 날카로운 기운이 넘실거렸다.

 

 “행여나 네놈이.”

 “바, 방주 어르신.”

 “……뒷주머니로 무언가 챙기고 있다는 소문이라도 내 귀에 들어온다면.”

 

 참으로 기이한 일이었다. 순간 바람 한 점 들어올 리가 없는 밀폐된 곳에서 장익삼의 오른쪽 소매가 허공에 펄럭였다.

 

 사락.

 

 그리고는 곧 칼에 베인 것처럼, 소매가 싹둑 잘려 바닥에 떨어졌다.

 

 “그때는 네놈이 외팔이일 뿐만 아니라. 외다리 신세도 면치 못할 것이야. 알아들었느냐?”

 

 드러난 장익삼의 오른쪽 어깨 밑으로 있어야 할 것이 없었다. 잘린 소매의 절단과 휑한 어깨가 완벽하게 일치했다. 장익삼은 남은 손으로 절단된 소매를 붙잡았다.

 

 “큭!”

 

 그러자 마치 외팔이가 되던 첫날처럼, 장익삼은 팔에서 불에 덴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소, 소인이 어찌! 방주 어르신의 가르침은 언제나 며, 명심, 또 명심하겠습니다.”

 

 삽시간에 장익삼의 얼굴이 식은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놈, 쥐잡듯 뒤진 것이 분명한 것이더냐.”

 “무, 물론입니다! 소인이 장원의 모래알과 지붕 기와의 안쪽까지! 모, 모두 직접 살폈습니다.”

 

 노인, 개방의 방주 노구환은 손톱에 까만 떼가 덕지덕지 낀 손가락으로 장익삼의 턱을 들어 올렸다.

 

 “흐음. 네 놈 눈알 때깔을 보아하니 거짓은 아니겠다만은.”

 

 두려움에 가득 차 있는 이의 눈동자를 지긋이 응시하던 노구환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가진 것이 없는 게 거지라지만, 또 제 숟가락 뺏기는 일엔 목숨을 거는 놈들이 거지거든”

 

 악취가 가득했으나 장익삼은 긴장으로 인해 눈도 한 번 깜박이지 못했다.

 

 “......장가야. 잔머리 굴릴 생각은 하지도 않는 게 좋을 것이다.”

 

 다 해진 옷가지와 무 줄기만 하게 뭉친 머리카락은 더럽기 짝이 없었다. 본래의 피부색이 무언지 모를 정도로 지저분한 외관을 한 노인이었지만, 장익삼은 그의 앞에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여, 여부가 있겠습니까.”

 

 눈곱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지만, 장익삼을 노려보는 노인의 안광만은 날카로웠다. 개방을 이끄는 방주다웠다.

 

 “그래, 그래. 그래야지.”

 

 장익삼의 심중을 읽어내려가던 노구환은 중앙에 기둥처럼 꼽혀 막사를 지탱하고 있는 검푸른 대나무 가지를 만지작거렸다.

 

 “소, 소인이 찾은 쓸만한 것이라곤 촌락을 뒤져 나온 금전 60만 냥과 약초 몇 뿌리가 전부이옵니다!”

 

 장익삼은 저 타구봉에 개 패듯 맞았던 지난날을 떠올리며 마른 침을 삼켰다. 무어라도 말하지 않으면 혼쭐이 나겠다는 불안감에 떨었다.

 

 “그, 그 일대가 약초로 유명한 명산인지라! 말린 약재 조금이 전부였습니다. 추호의 거짓도 없습니다요!”

 

 장익삼은 결백했다. 불타 사라진 기와집의 이불장 먼지까지도 모두 털어 수레에 담아 온 그였다. 더군다나 그는 무공도 대단하지만, 진법과 추적에 능한 귀재였다.

 

 무림맹에서 파견한 멸마단에 의해 한번 휩쓸린 데다가, 그들이 놓고 간 화마에 휩싸인 촌락에서 저만한 금전을 발견한 것도 대단한 능력이었다.

 

 “에힝! 영 시원찮단 말이지.”

 “소인은 겨, 결백합니다요! 어르신!”

 “그렇겠지, 그렇겠지. 아무렴, 그렇지 않으면 네놈은 개 처맞듯 맞다가 사지가 잘려 묻히고 말 텐데, 당연히 그래야 겠지.”

 “죄, 죄송합니다. 방주 어르신! 이번에 갔던 곳은 20년 전에도 이미 멸마단이 다녀간 곳인지라……. 이후에 새로 자리 잡은 촌락에서는 푼돈밖에 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 나도 어째 그럴 것 같긴 했다.”

 

 장익삼은 제 말을 들어주는 노구환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없는 자들의 왕, 거지의 지배자. 개방 방주 노구환이 얼마나 지독한지 장익삼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단 한 치의 거짓도 고하지 않았다. 무려 장익삼이 팔 한쪽을 내놓고 얻은 지혜였다.

 

 “네 놈도 찾지 못한다라! 허면, 대체 무슨 조화일까?”

 “예?”

 “무림맹 별동대 멸마단 새끼들도 못 찾았다고 하던데. 그게 그럼 어디로 갔느냔 말이다!”

 “무, 무엇을 말입니까요? 어르신.”

 

 눈을 휘둥그레 뜬 장익삼이 조심스럽게 눈치를 보며 노구환에게 물었다. 그러자 노인은 귀찮다는 내색이 가득했지만, 눈을 흘기며 대답해 주었다.

 

 “왜에서 활동하던 살수들의 보물, 암영사(暗影絲) 말이다.”

 “아, 암영사? 그 암영사 말입니까?”

 

 노인은 다시 한번 장익삼의 얼굴을 뚫어지라 바라보았다. 그의 반응이 거짓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려는 노인의 눈빛이 날카로웠다.

 

 “……그래. 그 암영사. 손끝만 닿아도 세상에서 기척을 지우고 지니고만 있어도 한기와 열기를 막아준다는, 보물.”

 “이, 이십 년 전에. 이미 갖고 있던 요망한 사파는 멸마대에게 멸문지화를 하지 않습니까?”

 “그래. 그렇지. 다들 그렇게 알고 있지. 그런데 영 보이질 않는단 말이야?”

 “무림맹 수중에 이미 들어가 있지 않을까요?”

 

 노구환이 혀를 쯧쯧 찼다. 저렇게 눈치가 없어서야. 어디에 쓸모가 있을지.

 

 “멸마단 개새끼들이 그럼 한번 쓸었던 곳을 또 가서 근방 촌락까지 싹 다 불태워버린 이유가 무얼 것 같으냐?”

 

 ***

 

 동쪽 산등성이에 푸르스름한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누나랑 집에서 숨바꼭질을 많이 했어.]

 “그랬니?”

 

 약 20년 전, 사파의 요사스러운 술법을 사용했다는 죄목으로 멸문지화를 당한 문파. 이름도 까맣게 잊힌 가문의 터만 남은 정원에는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이 밝아왔다.

 

 [응! 그런데 형 있잖아, 매번 우리 누나가 이겼어! 나는 누나를 단 한 번도 찾아낸 적이 없었지.]

 “그래? 단 한 번 도? 그것도 참 신기한 능력이구나.”

 [응!]

 

 우현은 아궁이만 남은 부엌 터에 쪼그려 앉은 아이의 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 누나는 무공도 잘하고 예쁘고, 똑똑해서 도망도 잘 다니는 건 줄 알았는데.]

 “그랬는데?”

 [······그게 아니었어.]

 

 우울한 목소리를 끝으로 아이는 입을 꾹 다물었다. 우현은 한동안 말이 없는 아이의 눈치를 보다가 으차! 하며 허리를 폈다.

 

 ‘시간이 너무 지체되었구나.’

 

 증거 인멸. 멸마단이 지나간 자리를 없애 주는 대신 떡고물을 주워 먹는 것이 엽구의 임무였다. 그런데 작업도 못 마치고 근처를 지나는 상인이라도 만났다가는 정말 큰 일이었다.

 

 ‘화약을 담아놓은 죽통은 모두 설치를 마쳤고.’

 

 해가 뜨기 전에는 일을 마쳐야 했다. 우현은 주변을 다시 한번 꼼꼼히 확인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안전한 거리로 대피하여 심지에 불만 붙이면 모든 일이 끝이었다.

 

 [형. 이제 갈 시간이지?]

 “응. 많이 못 놀아줘서 미안해.”

 

 아이가 우현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밝은 미소에 우현도 덩달아 웃고 말았다.

 

 [아니야. 숨바꼭질 너무 재미있었는걸.]

 

 우현은 아이의 소원대로 놀아주었다. 폐가를 무대 삼아 숨바꼭질을 했다. 다년간 많은 어른이 저를 찾아왔었으나, 아무도 저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아이의 말에 우현은 슬픈 미소를 지었다.

 

 “내가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해.”

 [아니야, 형.]

 

 아이는 아궁이에 숨어 있었다. 우현에게 발각되고 싶었는지, 그가 엉뚱한 곳을 헤맬 때면 우현에게 다가와 까르륵 웃으며 자꾸만 이쪽이라며 방향을 알려주었다.

 

 [……누나가.]

 “응?”

 [누나가 나보고 이곳에 숨어 있으랬어.]

 “그랬구나…….”

 [이거, 이거 주면서 덮고 있으면 아무도 못 찾는 데서. 그래서 나는 잠자코 숨어 있었어.]

 

 아이는 부엌에 쪼그리고 앉아 아궁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가 후-! 하고 불자 아궁이 안쪽 깊은 곳에 재와 목탄으로 숨겨놓은 철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작은 꼬마의 몸집 하나만 겨우 들어갈 수 있을 법한 밀실이었다.

 

 [정말, 누나 말대로였어. 아무도 나를 못 찾았지 뭐야? 무서운 아저씨가 얼마나 많이 왔었는지, 형은 아마도 모를 거야.]

 “......무서웠겠구나.”

 [아니? 정말 누나 말대로 아무도 모르더라고. 그래서 하나도 안 무서웠어.]

 

 끼익.

 

 아이는 몸을 구기며 다시 아궁이 안으로 들어갔다. 철문을 열고서 안쪽에 손을 쑥 집어넣더니만, 꼬마는 무언갈 꺼내 들고서 몸을 일으켰다.

 

 [이거야.]

 “이게 뭐야?”

 

 그것은 윤기 하나 없는 새까만 비단이었다. 워낙 촘촘하여 흐르는 물 같기도 했다. 모든 빛을 흡수시키는 것이 밤의 한 자락을 오려 놓은 것만 같았다.

 이질적인 천 조각을 쥐고서 아이가 말했다.

 

 [누나는 매번 나한테 숨바꼭질하자고 하고서는 이걸 덥고 한숨 잤다지 뭐야.]

 “······”

 [참 바보 같은 누이지? 그날도 자기가 덥고 한숨 잤으면 되었잖아. 왜 날 주고 갔을까……. 예쁘고 똑똑한 줄 알았더니, 누난 정말 멍청해.]

 

 그건 아이를 위한 누나의 뜻이었으리라. 우현은 입술을 짓씹으며 고개 푹 숙였다. 아이의 오해를 풀어주는 대신 침묵을 택한 그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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