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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무협물
죽은 너를 위하여
작가 : 예드니
작품등록일 : 2020.8.5

마교가 멸문당한 정사대전이 발발한지도 20년이 지났다.

"귀안을 갖은 자는 삿된 것에게 먹혀 귀문을 열고 만다."
귀신을 보는 청년 '우현'과 인형에 갇힌 여인 '천설화'. 그리고 외팔이 '장익삼'의 평생에 걸린 복수극.

 
3. 아이
작성일 : 20-08-05 23:10     조회 : 256     추천 : 0     분량 : 4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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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아이

 

 “…….”

 

 우현은 장익삼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자고로 무림인은 백 리 밖의 대화도 듣고, 본다고 했다. 비록 우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지만, 장익삼이 입 다물라 한 것을 보니, 근처에 지나가는 멸마단이 있을지도 몰랐다. 입조심을 해야 했다.

 

 ‘아.’

 

 그렇게 한 다경을 더 달리니 마침내 평범한 우현의 눈에도 저 멀리 산등성이에서 타오르는 불길이 보였다. 그것은 마치 동이 트는 것처럼 아주 붉고 환했다.

 

 산자락을 타고 거세게 이는 화마의 흔적, 그리고 옅게 메아리치는 비명 소리.

 

 우현은 살짝 겁에 질린 표정으로 장익삼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장익삼은 말없이 전방만 주시할 뿐이었다.

 

 ‘저 불길 안에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요, 아저씨.’

 

 불현듯 우현은 장익삼은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등불 없이 밤길을 달리는 마부, 백 리 밖을 듣고 본다는 무인의 눈과 귀에는 과연 지금 무엇이 흘러들고 있을까.

 

 모르는 게 약이라고 했던가. 우현은 지금 만큼은 무공을 배우지 않은 자신이 장 아저씨보다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렇기 때문에 저이가 제게 무공을 가르쳐 주지 않는 것일지도.

 

 다그닥 다그닥.

 

 눈을 가린 말은 지옥도가 펼쳐진 촌락으로 내달렸다. 코끝에 살이 타는 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우현은 차라리 화마의 존재를 몰랐던,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좀전의 암흑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

 

 “오늘따라 왜 이렇게 굼떠 자빠졌느냐? 개똥이라도 처 밟은 게야?”

 

 한 짐 가득 실은 수레에 끈을 묶던 장익삼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서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그러자 그의 옆에서 눈치를 보고 있던 9살 남짓 되어 보이는 작은 아이가 놀라서는 어깨를 바들바들 떨었다.

 

 “예, 예! 거의 다 되었습니다! 갑니다!”

 

 저편에서 허리를 굽히고서 작업 중이던 우현이 얼른 대답했다. 하지만 뭐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지, 장익삼은 한 번 더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

 

 “너같이 느려 터진 속도로는! 날 새겠다, 이놈아!”

 

 장익삼은 점점 언성을 높였다. 그가 우현에게 화를 내면 낼수록, 장익삼의 옆에 쭈그리고 앉아 흙을 갖고 놀던 아이의 얼굴도 점차 허옇게 변해갔다.

 

 “아, 거참! 다했습니다? 이거만 하면 된다니까요! 저놈의 외팔이 성질하고는.”

 “저, 저-!”

 

 기름을 바닥에 쏟으며 길을 만들던 우현이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이슥한 밤에 퍽 어울리지 않는 선량하고도 환한 미소였다.

 

 ‘우에에붸-’

 

 우현이 장익삼이 등을 돌린 틈을 타 그의 옆에서 눈알을 굴리는 아이에게 우스꽝스러운 얼굴을 만들어 보여주었다.

 그러자 장익삼의 기에 눌려 크게 주눅이 들어 있던 아이가 덩달아 작게 웃었다.

 

 “이제 시작하는 놈이 맨날 다했다, 다했다! 대체 뭘 했다는 게야!”

 

 다했다는 소리만 도대체 몇 번째인지. 제 몫으로 할당된 작업이 거의 끝나가는 장익삼은 신경질을 부렸다. 잔업을 하는 우현의 모양새를 보아하니, 날이 새도록 뛰어다녀도 글러 보였다.

 촌락 전체에 기름을 뿌리고 화약을 심고 도화선을 깔고. 전 구역을 깡그리 날려 버리기까지 밑 작업이 남아도 한참 남은 것이다.

 

 “에이, 쓸모없는 것!”

 

 장익삼이 고함을 버럭 질렀다. 그는 참 정 없게도, 소리를 내지를 때마다 제 옆에 주저앉은 채로 두려움에 허옇게 질려 오들오들 떠는 어린아이를 본체만체했다.

 

 “서당 개는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나랑 있는 놈은 당최 늘질 않으니! 내 개를 데리고 다니는 게 나을 뻔했다!”

 

 짐을 수레에 단단히 여미며 장익삼이 구시렁거렸다. 저 들으라는 듯이 장익삼이 큰 소리로 비아냥거리자 우현도 하던 일을 멈추고 잠시 허리를 펴고서 땀을 닦았다.

 그의 손가락에 묻은 새까만 기름이 땀을 닦는 족족 얼굴에 묻어났다. 꼭 하얀 종이 위에 먹을 묻힌 붓이 쓱쓱 지나간 것만 같았다.

 

 “아니, 아저씨. 진작 말씀하시지 그러셨어요!”

 “하아.”

 

 장익삼은 정리가 된 수레에서 눈을 떼고 뒤에서 일하던 우현을 바라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기름 묻은 더러운 얼굴에서 흰 눈알만 번지르르 한 것이, 저놈이 또 지랄하려고 판을 까는 모양이었다.

 

 “저도 3년 동안 일하는 것보다야 옆에서 풍월이나 읊는 것이 더 좋단 말입니다!”

 “또 뭔 개 같은 소리야?”

 

 우현의 엉뚱한 소리에 장익삼의 옆에서 쭈그리고 앉아 있던 아이도 그를 바라보았다. 똥그랗게 뜬 눈이 몹시도 귀여웠다.

 

 “일 열심히 하는 저보다 풍월 읊는 개가 낫다고 하시는데! 당연히 그렇게 해 드려야죠! 오늘부터 저는 일 말고, 시나 외렵니다!”

 

 허허허. 장익삼이 허탈하게 웃었다. 그러나 말거나 우현은 큼큼 목을 가다듬었다. 하지만 갑자기 풍월을 읊으라니 또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흐음, 이게 좋을까. 그렇게 우현이 시상을 뭐로 할까 주저하고 있을 때였다.

 

 딱!

 

 휘영청 뜬 달과 보석처럼 빛나는 별을 바라보며 막 첫 음을 떼려던 우현의 이마로 조막만 한 돌이 날아왔다.

 

 “……끄아아아아!”

 

 출처는 장익삼이었다. 제법 거리가 있었으나 무인인 그에게는 코앞에 던지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아이고, 나 죽네-!”

 

 우현은 돌에 맞은 이마를 부여잡고 아프다며 장익삼에게 고함을 빽 질렀고 곁에서 보고 있던 아이는 어찌할 줄 몰라 발을 동동 굴렀다.

 

 “저이, 망할 외팔이가!”

 “뭐야? 한 대 더 맞겠다고?”

 “아니아니아니아니, 에이씨! 말이 돼?”

 

 우현은 머리를 부여잡고서 자리에 주저앉았다. 너무나도 큰 충격에 잠깐은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했지만, 얼마 안 가 해일처럼 아픔이 들이닥쳤다. 분명 어두컴컴한 밤인데도 돌에 맞은 순간만은 번개가 친 것처럼 온 세상이 번쩍했다.

 

 “요놈아. 또 그 잘난 주둥이 놀려 보아라!”

 “아파 죽겠습니다, 아저씨!”

 

 혹이 난 것 같았다. 흐어엉! 허우대 멀쩡한 청년의 입에서 우는 소리가 났다.

 

 “한두 번 맞았더냐? 엄살 한번 기갈나는구나.”

 “어, 엄살이라뇨! 화살이 어디서 난 겁니까? 예?! 급기야 저를 죽이시려는 겁니까?!”

 “화살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그냥 돌멩이였다. 놀 생각 말고 얼른 일어나 일이나 마저 끝내도록 해!”

 “일이요? 지금 제가 일이 가능하게 생겼습니까? 뒤통수까지도 얼얼해요! 돌이 관통했나 봅니다, 아저씨! 이걸 어째요!”

 

 흐어엉! 우현이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그렇지 않아도 더러운 옷에 먼지가 덕지덕지 달라붙었다. 다 자란 성인이 발을 가만두지 못하고 좌로 우로 구르는 모습에 장익삼은 혀를 끌끌 찼다.

 

 “현아. 관통상이었음 네놈이 지금까지 주둥이를 나불거릴성싶으냐? 입 닥치고 얼른 일어나지 못해?!”

 “으으! 아파서 못가요! 못갑니다! 으어어어!”

 

 장익삼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는 수레를 끌던 말 두필 중에 한 마리를 떼어 나무에 밑동에 묶었다.

 

 “나 먼저 간다. 천천히 가고 있을 테니 알아서 불붙이고 숙소로 돌아오너라.”

 “으아아아! 아파! 아파아!”

 

 장익삼은 우현이 들었는지 어쨌는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장익삼 옆에 있던 아이는 황당해하며 눈을 굴리다가 슬그머니 우현에게 다가갔다. 수레를 끌고 가는 장익삼은 끝까지 무정하게도 아이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

 

 [아파?]

 “응. 너무 아파. 흐으윽.”

 [미안해. 나 때문에.]

 

 우현은 아직도 머리를 움켜쥐고 있었다. 하지만 열 살 남짓한 아이가 저 때문에 의기소침해한 모습에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웃어 보였다.

 

 “아니야. 내가 일을 못 해서 그런 거야. 네 탓이 아니야.”

 [피이. 형! 나 이래 봬도 20년을 넘게 살았어.]

 “하하. 하. 그, 그래?”

 

 우현이 자리를 툭툭 털며 일어났다. 그의 이마에는 장익삼이 던진 돌에 맞아 커다랗게 자리 잡은 혹이 있었다.

 

 [응. 알 거 다 아는 나이야. 나 때문에 맞아가면서까지 일 늦춘 거 다 알아.]

 “그, 그렇구나.”

 

 우현은 물끄러미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10살 남짓 되어 보였다. 야밤에 혼자 돌아다니는 위험한 짓을 하는 것에 비해 꼬마는 의외로 붉은 비단에 금색 실로 수를 놓은, 값비싼 옷을 입고 있었다.

 

 “음, 있지. 미안해. 형이 시간이 별로 없을 것 같아.”

 

 우현이 동쪽 산 능선 언저리가 조금 환하게 변한 것을 보며 말했다. 이제 얼마 가지 않아 동이 틀 것만 같았다.

 

 “해가 뜨기 전에 일을 마무리해야 하거든.”

 [응, 그러겠다. 형도 해야 할 일이 있는 거니깐.]

 

 그러자 아이가 아쉬운 표정을 하며 고개를 푹 숙였다. 꼬마의 얼굴을 하고서 좌절을 너무나도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에 우현은 작업하던 손을 멈추고 코밑을 벅벅 닦았다.

 

 “뭐, 시간이 더 있다 해도 네게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겠지만.”

 [뭐? 아니야, 형! 나는 지금 함께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아.]

 “정말 그러니?”

 [응! 그러니까 일하러 가 봐, 형.]

 “착한 아이구나.”

 “응…….”

 

 아이의 마지막 대답이 힘을 잃고 기어들어 갔다. 일을 마저 하려 몸을 돌리던 우현은 제자리에서 우뚝 멈추고 말았다. 한껏 움츠러든 아이의 어깨가 무척이나 신경이 쓰였다.

 이러면 정말 해뜨기 전까지 마무리 못 할지도 모르겠는데.

 

 [……어? 형?]

 

 결국, 우현은 다시 돌아서고 말았다. 늦게 왔다며 장익삼에게 얻어맞을 이마가 벌써 아려왔다.

 

 “자, 가자.”

 [어, 어딜?]

 

 저벅저벅.

 

 아이의 앞까지 다가온 우현이 꼬마와 눈높이를 맞추어 무릎을 꿇었다. 그의 옷은 진작에 까만 기름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지만, 아이는 티끌만큼의 먼지조차도 묻어 있지 않았다.

 

 “형이 집으로 가는 거 도와줄게.”

 [집?]

 “응. 너 혼자 이러고 있으면 엄마 아빠가 많이 걱정하실 거야.”

 

 우현의 말에 아이는 고개를 돌려 화마가 휩쓸고 간 다 쓰러져 가는 집을 잠시 바라보았다. 슬픈 표정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다.

 

 [하지만……. 엄마 아빠는 20년 넘게 보이지 않는걸.]

 “아…….”

 

 아이의 몸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꼬마의 신형의 크게 원을 그리며 우현의 주변을 맴돌았다. 사람의 소행이라고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현상이었다.

 

 “형이 그럼 어떻게 해주면 되겠어?”

 

 우현이 다정하게 아이에게 물었다. 물론 일은 바빴지만, 20년 전 멸마단에게 몰살당한 터를 여태까지 맴도는 아이를 도저히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형. 그럼······. 나랑 숨바꼭질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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