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
 1  2  3  4  5  >>
 
작가연재 > 로맨스판타지
봄과 늑대
작가 : 최극
작품등록일 : 2020.7.31

부왕이 살해됐다.
나라도 빼앗겼다.
공주의 신분도 추락했다.
죽이려 달려드는 자들을 피해 얼음의 땅으로 도망쳤다.
이제 곁에 남은 자는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경멸하는 남자 그라위스.
하지만 불같은 그를 붙잡기 위해 결혼을 감행한다. 빼앗긴 나의 왕국을 되찾기 위해서!

작가 이메일 : koveteran1@naver.com

 
3화. 들이지 말아야 할것을 치우셔야 합니다.
작성일 : 20-08-05 18:33     조회 : 335     추천 : 0     분량 : 5119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여자의 피부는 지나치게 까매 시꺼먼 초콜릿을 발라놓은 것 같았다.

 여자의 두 눈은 뱀처럼 가늘고 길게 찢어져 징그러웠다.

 코는 뭉뚝했고 입술은 커서 천박해보이기까지 했다.

 여자는 그 못난 눈을 더욱 가늘게 뜨며 말했다.

 

  “이렇게 귀여운 따님을 반년 만에 보는 데, 뭐하고 살았냐뇨? 후휴흇, 참. 그런 바보같은 질문이 어딨어요 여보?물론 난 당신의 그런 귀여운 낯가림이 좋지만, 그래도 자식한테 그러면 못쓰죠.”

 

 허. 자기도 모르게 레프리가 신음 소리를 내며 경악했다.

 여자는 마치 품안의 아이를 야단치듯, 아버지의 볼을 손가락으로 톡톡 치며 혼내고 있었다.

 

  '게다가 아버지께 바보같다고? 웨르의 왕세자인 내 아버지께??'

 

 그러거나 말거나 여자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놀라 선 레프리를 흘깃 보았다.

 서른 중반을 넘긴 여자는 농익을 대로 농익은지라 왕세자에게 스스럼없이 대하는 저를 보고 햇병아리처럼 놀란 레프리가 우스웠다.

 

 사실 여자는 지난 반년의 삶이 즐거워 미칠 지경이었다.

 왕족은 똥도 안 누고 사는 줄 알았다.

 속된 말로 이슬만 먹는 족속인줄 알았고 사람들이 추앙하는 신의 자식들이라 믿었다.

 그런데 웬걸.

 

 왕족도 질펀하게 마시고 늘어지게 게으름을 피웠으며 더럽고 추잡했다.

 왕세자는 거리의 여자였던 저를 거리낌 없이 안고 뒹굴었으며 보란 듯이 왕궁에 데려왔다.

 하인들과 시종들이 손가락질 하며 뭐라고 숙덕댔지만 개뿔 그러든지 말든지.

 이 나라의 후계자인 왕세자는 지금 제 치마 속에 푹 빠져 헤나오질 못하고 있었고 여자는 비어있는 왕세자비 자리를 꿰어 찰 심산이었다.

 물론 그 전에 필요한 작업이 하나 있지만 그다지 걱정하지는 않았다.

 왜? 유랑극단의 여배우였던 제게 속임수 하나만큼은 자신 있었으니까.

 

 퀴르케는 그런 여자의 꿍꿍이는 전혀 모르는 듯 세상 달콤한 목소리로 물었다.

 

  “오, 사랑스런 페디타스. 내가 귀엽다고? 하하핫. 그럼 오늘은 내개 어떤 선물을 줄 테냐 응? 응?”

 

 아버지에게 뭐라 답할지 궁리하고 있던 레프리는 기계인형처럼 시선을 돌려 부왕을 봤다.

 여자의 무례함을 꾸짖을 줄 알았다.

 감히 왕세자에게 당신이라 칭한 그녀를 단번에 밖으로 끌고 나가 참수시키라 명할 줄 알았다. 그런데!

 

  ‘아버지가 여자에게 칭얼대며 애교를 부리고 있다! 더욱이 아버지의 목소리가 저토록 부드럽고 저토록 달콤한 목소리였던가?’

 

 여자는 까만 얼굴을 퀴르케의 손바닥에 비비적대며 말했다.

 

  “당신은 요즘 너무 어린애 같다니까. 오랜 만에 만난 따님 앞에서 애기처럼 칭얼대기나 하고."

 

 여자는 다시 아버지의 볼을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여보, 저 아이를 품에 끌어안고 입을 맞춰주세요. 그러면 좀 이따 우리 둘만 있을 때 당신이 원하는 선물을 담뿍 줄게요. 후훙.”

 

 더럽고 추잡한 대화에 레프리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끔찍한 것은 왕녀인 저를 '아이'라고 칭한 것이다!

 저 여자는 지금 레프리의 눈앞에서 보란 듯이 저를 깔아뭉갠 것이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세상 더할 나위 없는 소중한 보석을 보듯 페디타스를 바라보는 게 아닌가!

 

  “오 사랑스런 페디타스. 너는 얼굴 못지않게 마음씀씀이 마저 훌륭하구나. 저 어린 것을 배려하는 네 마음이 너무 사랑스럽구나.”

 

  ‘맙소사. 유모의 말처럼... 아버지의 머리가... 정신이...아프신 걸까?’

 

 레프리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웨르 왕족은 그레이트챔버에 초대받은 고위 귀족 외에는 절대로 다른 자를 들이지 않았다.

 더욱이 왕실의 정부는 성 밖에 따로 마련된 별장에서 기거하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부왕은 지금 궁의 법을 무시하고 여자를 이 안에 들인 것도 모자라 무례하기 짝이 없는 여자의 오만함을 야단치기는커녕 헤죽헤죽 웃어주고 있었다.

 

 사랑에 빠지면 바보가 되는 걸까.

 아버지가... 정말 사랑에 빠진 걸까?

 

 레프리는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정도가 심했다.

 눈앞에 보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은 반년 전 모습과 너무나 달랐다.

 

 ‘그 여자가 어젯밤 전하의 내실에서 함께 잤답니다.’

 ‘그 여자가 아침을 대령해 먹었답니다.’

 ‘그 여자가 살구절임과 설탕을 통째로 훔쳐갔답니다.’

 

 유모에게 들었던 정보를 십분 활용해 부왕의 열세 번째 정부를 혼내줄 수 있었다 믿었다.

 왜? 다른 건 다 참아도 참을 수 없는 게 하나 있었으니까.

 살구절임과 설탕은 왕실의 귀한 식료품이었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잇템이니까.

 하지만 지금 레프리는 지금 속으로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웨르의 왕세자에게 스스럼 없이 여보라 부르는 저 여자.

 그 여자에게 홀딱 반하신 부왕에게 그런 용기백배한 행동을 할 자신이 없었다.

 

  ‘역시 난 안 된다. 아버지 앞에만 서면 심장이 떨리고 가슴이 조인다. 더욱이 부왕이 저토록 저 여자를 사랑하시는데 내가 뭐라 말할 수 있을까.’

 

 레프리는 이곳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제 입술을 축이며 간신히 아뢰었다.

 

  “부왕께서 피병하시는 동안 저는 건축과 검술을 공부하였고 지난주부터 대수와 기하심화과정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여자를 한참동안 쓰다듬던 퀴르케는 그제야 레프리를 발견한 것처럼 심드렁하게 말했다.

 

  “건축? 검술? 다이어트만 한 줄 알았더니?”

 

  ‘저를 칭찬하시는 것일까.’

 

 레프리는 조금 기뻤다. 그래서 더 용기를 내 말을 이었다.

 

  “문안인사를 이만 마치고 도서실로 돌아가 남은 공부를 끝마치겠습니다.”

  “도서실을 가다니. 지난 반 년 간 고작 그런 쓸데없는 짓거리를 했더냐.”

  “예??”

 

 레프리는 어리둥절해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퀴르케는 한심하다는 듯 레프리를 흘겨보고 있었다.

 

  “계집애에겐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 있다.”

 

 계집애? 하. 정말.

 레프리는 부왕의 반응이 아주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제 마음을 다지고 공손히 물었다.

 

  “더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하문해주시면 따르겠습니다.”

  “풉. 내 앞에서 개뼈다귀 같은 격식은 집어치워라. 그보다는 네 연회에 대해 말해 보거라.”

 

 레프리는 다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부왕을 봤다.

 조금 전에는 쓸데없는 짓거리를 했다며 뭐라고 하시더니 이제는 저의 데뷔당트에 관심을 보이시는 건가?

 

 사실 다음 주에는 레프리의 성인연회가 개최될 예정이었고 웨르의 도성 안은 그 준비로 들썩이고 있었다.

 레프리는 조금 상기된 표정으로 부왕을 바라봤다.

 부왕이 왕녀인 저를 조금은 생각해주는 것 같아 내심 기뻤다.

 

  '그나저나 연회에 대해 뭐부터 말씀드려야 할까. 정혼자를 정하는 것을 의논드릴까. 혹여 부왕이 따로 마음에 두신 자가 있는지 여쭤볼까?'

 

  “쯔쯔쯔. 왜 이렇게 둔하냐! 여전히 말귀를 못 알아먹는 그 버릇은 반년 동안 하나도 변하질 않았구나!”

 

 퀴르케가 큰 소리로 야단을 치자 레프리는 제 몸을 움츠렸다.

 

  “대수니 기하니 그따위 쓰잘데기 없는 공부는 집어치우고 뭘 입을지나 정하란 말이다! 네 낯짝을 사교계에 처음으로 선보이는 날인데 비쩍 곯은 그 몸매로 귀족들 눈에 차겠느냐?”

 

 레프리의 얼굴과, 귀, 목덜미가 수치심으로 순식간에 붉어졌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온몸이 떨려왔다.

 부왕의 거친 언사에 당장 구역질이 나올 것처럼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아무리 유랑극단의 저 여자와 몇 달을 함께 지내셨다지만 어찌 이토록 저를 참담하게 모욕하신단 말인가.’

 

 제 눈에 눈물이 설핏 고여 왔지만 레프리는 눈을 부릅뜨고 참았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이미 복도를 울리고 있었고 문밖에는 지금 그라위스와 미세리아가 서있었다.

 

 팔짱을 낀 채 저를 삐뚜름하게 내려다 볼 그라위스.

 그리고 마치 제 일인 양 발을 동동거리며 저를 동정할 미세리아...

 

 하지만 퀴르케는 레프리의 모멸감 따위는 전혀 아랑곳 하지 않았다.

 

  “계집애 인생은 남자에 따라 좌우된다. 대수니 수학이니 그따위 것은 다 쓸모없다. 너는 이제부터 페디타스에게 몸매관리를 배워라. 그게 진정 웨르를 위한 것이니까. 안 그러냐 페디타스? 후후훗.”

 

 페디타스가 호호 웃으며 맞장구를 치는 사이 레프리는 피가 나도록 제 입술을 깨물었다.

 

  ‘계집? 남자에 따라 좌우된다고?’

 

 레프리는 드레스 자락을 꽉 움켜쥐었다.

 부왕이 저를 사랑하지 않는 것을 잘 알고는 있었지만 이토록 한심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인 줄은 미처 몰랐다.

 레프리의 온몸이 분노와 수치로 덜덜 떨리고 있었지만 페디타스는 못 본 척하면서 퀴르케의 무릎에 다시 제 머리를 비볐다.

 

  “당신은 너무 입 바른 말만 해서 미워요. 그건 숙녀에게 큰 실례라구요. 뭐 그치만 틀린 말은 아니죠. 길바닥에서 텐트나 치고 구걸이나 했던 날 당신이 품어준 덕에 나는 이제 왕궁에서 살잖아요? 그러니까 맞아요 당신 말이. 여자는 남자의 손아귀에 운명이 달렸어요. 후훙.”

  "그렇지?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당신 말대로 제가 저 아이를 가르쳐볼게요. 가슴이랑 엉덩이부터 바로잡아 볼게요, 여보. 기대해요!"

 

 레프리의 입술과 눈썹이 파들파들 떨렸다.

 제 심장소리가 들릴 만큼 빠르고 강하게 뛰고 있었다.

 방 안에 희미한 진동이 일기 시작했고 퀴르케와 페디타스가 이상을 감지한 듯 레프리를 쳐다봤다.

 그 때문에 생긴 용기였을까. 아니면 대체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을까.

 ‘너는 웨르의 빛. 존엄한 웨르 여왕의 길을 갈 존재다.’ 라고 말했던 할머니 때문이었을까.

 레프리는 후에 이 날의 일을 몹시 후회했다.

 

 방안의 진동이 심해지고 거울이 흔들거렸다.

 페디타스는 놀라 퀴르케의 무릎을 꽉 잡았다.

 퀴르케는 형형한 눈빛으로 레프리를 응시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방문이 확 열리고 누군가 뛰어들어왔다.

 그라위스였다.

 그는 협탁 위에서 흔들리는 다과 세트를 날카롭게 보고는 레프리를 돌아봤다.

 그리고 레프리에게 바람처럼 다가와 그 팔꿈치를 잡으려는 순간.

 레프리가 입술을 꽉 깨물며 차갑게 토해냈다.

 

 “아바마마의 이런 모습은 진정 웨르를 위한 일인지요?”

 

 갑자기 방 안의 진동이 멈췄다.

 퀴르케의 눈썹이 뾰족하게 올라갔고 표정은 얼음처럼 차가워졌다.

 

 “훗. 훗. 훗.”

 

 그 웃음소리 또한 소름끼치도록 음산했다.

 

 “진정 웨르를 위한 일이라...? 그게 무엇인데?”

 

 레프리의 눈앞이 하얘졌다.

 

 ‘헙. 내가 대체 무슨 말을 내뱉은 것인가!’

 

 부왕에게 대들다니!

 조금 전 한 말을 당장 주워 삼키고 싶었다.

 지난 17년 동안 이토록 냉엄하고 차가운 아버지의 얼굴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픽- 하는 바람 빠진 소리가 들렸다.

 찰나였지만 분명히 열세 번째 정부가 저를 비웃는 소리였다.

 레프리는 덜덜 떨리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페디타스를 가리키며 기어이 마지막 말을 내뱉고 말았다.

 

 “그레이트챔버에 들이지 말아야 할 것을 당장 치우셔야 합니다.”

 

 흡-!

 이번에는 그라위스가 놀라 내뿜은 소리였다.

 페디타스가 고개를 돌려 레프리를 쳐다보았다.

 

 

 - 다음에 계속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3 3화. 들이지 말아야 할것을 치우셔야 합니다 2020 / 8 / 5 336 0 5119   
2 2화. 그 여자 2020 / 8 / 3 354 0 5251   
1 1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2020 / 7 / 31 559 0 5063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청동거울의 비밀
최극
블랙 스완
최극
탐정신부
최극
풀어주세요
최극
49일
최극
당신은 왜 품절
최극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