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자유연재 > 판타지/SF
지오르고스의 일기
작가 : 현서랑
작품등록일 : 2020.7.31

J. 그녀는 그것을 지오르고스의 일기라 적었지. 모르탈 아이움, 그 옛 시대에 지오르고스가 일궈내어 셀 수 없는 시간을 지나온 그 신비의 역사를. 이젠 J라는 그 작은 여자아이의 이름이 우리들의 진실 위에 허구성과 함께 덮여질 테지. 인간들은 우리들의 존재를 믿으려하지 않아. 앞선 존재들. J는 우리를 그렇게 부르더군. 인퀴스토 디토스란 신들과 엄연히 구분되어야 함에도 말이야.

 
엘레노어 V, J 3
작성일 : 20-08-05 13:06     조회 : 248     추천 : 0     분량 : 7960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엘레노어 18_

 지울 수 없는 비밀을 알게 된 날이다. 이 비밀은 내게 강인한 인상을 남겨 낮 동안 구상해놓은 오늘 서사의 전개를 무너뜨리려한다. 차분히 시간을 돌려본다.

 오늘 아침 브리테니엄의 풀밭. 내 몸뚱이 밑에 깔려있던 풀들은 햇빛이 비추자 그 빛을 바라며 내 등을 밀어냈다. 눈을 뜨자마자 이니스의 얼굴이 보였다. 그녀는 내 옆에 기대어 자고 있었다. 내가 몸을 움직이자 그녀는 바로 잠에서 깼고 우린 잠깐 동안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의 눈을 마주했다. 곧 그녀가 내게서 황급히 떨어졌지만 그 짧았던 눈 맞음은 오전 내내 잊히지가 않았다.

 이니스와 내가 잠에서 깼을 때, 뤼귀는 먼발치에서 우리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전 날 밤부터 모습을 감췄던 그가 아침이 돼서야 돌아온 것이다. 그의 옷은 군데군데 붉게 물들어 있었다.

 

 - 어르신! 밤 동안 어딜 다녀오신 겁니까?

 

 이니스가 물었고 뤼귀는 그녀에게 다가가 자신의 손을 펼쳐 보였다. 그의 손안엔 커다란 산머루 한 덩이가 있었다.

 

 - 어젯밤 급히 확인할 일이 생겨 근처에 다녀왔단다. 말도 없이 떠나서 걱정했겠구나. 오는 길에 이걸 따려다가 이렇게 옷에 물이 튀었지 뭐냐.

 

 순박한 이니스는 뤼귀의 말을 믿었다. 하지만 난 그의 옷에 묻은 것이 산머루 즙이 아닌 짐승이나 사람의 피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뤼귀 그 역시 내 눈치를 단박에 알아차려 날 따로 불렀다.

 

 - 자네의 짐작은 저 아이에겐 비밀로 하게나. 그녀에게 어젯밤 일을 내 입으로 설명하고 싶진 않네.

 

 난 그가 보낸 밤에 대해 물었다.

 

 - 여왕의 궁정에서 일이 있었네. 어차피 오늘 우린 그곳으로 갈 것이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거기에 도착하면 저절로 알게 될 걸세.

 

 우린 여왕의 거처로 향했다. 이니스는 뤼귀에게 받은 열매를 개울물에 씻어와 말 위에서 나와 그것을 나눠먹었다. 남은 식량은 없었고, 산머루 한 덩이로 우리의 배가 찰 일은 없었다. 게다가 르포틴 시장에서 생긴 오해는 브리테니엄 사람들을 보는 우리들의 시선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브리테니엄 시내의 정경은 대체로 얌전했다. 도어테일즈와 르포틴의 사람들은 매순간이 분주해보였던 것에 반해 이 도시의 사람들은 행동 중간마다 긴 겨를이 배어있었다.

 굶주린 배를 안고 브리테니엄 궁의 성벽을 올려다봤을 때는 해가 쨍쨍하던 한낮이었다. 궁은 조용했고 거대한 성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성 안쪽을 보고 있던 보초병들은 뤼귀가 크게 헛기침을 내자 뒤늦게 우릴 발견했다.

 

 - 돌아가시오! 오늘은 전령 외엔 어느 누구도 궁에 들일 수 없소!

 

 한 보초병이 소리치자 뤼귀는 그를 올려다봤다.

 

 - 여왕께서 우리를 초대하셨거늘 그대는 감히 어느 이의 이름으로 우리의 출입을 막는 것인가?

 

 그때 보초병 사이로 한 무관이 모습을 보였는데, 그에게선 여느 성곽지기들과는 다른 체통이 묻어났다.

 

 - 그대가 들은 말 역시 왕령이다.

 

 뤼귀는 그 무관을 알아봤다.

 

 - 반갑습니다. 총독께선 하루 사이에 절 잊으셨나봅니다.

 

 - 내겐 그대를 본 기억이 없다.

 

 - 어젯밤 궁 안에서 피를 뿌린 건 당신의 부하들만이 아니지 않습니까.

 

 뤼귀의 말을 들은 남자는 고개를 빼내어 뤼귀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고, 곧 자신의 부하들에게 성문을 열 것을 명령했다. 게다가 그는 직접 성문 밖으로 우리를 마중 나오기까지 했다.

 

 - 이럴 수가요. 선생을 몰라 뵈어 면구스럽습니다.

 

 - 괜찮습니다. 어제 못한 인사를 나누도록 하지요. 전 메어 뤼귀라고 합니다.

 

 - 다골라 스왈로입니다. 자네들도 어서 오게나.

 

 그는 루완의 경비대장 다골라 스왈로였다. 사실 그에겐 지위에 어울릴 만한 명성이 없었으나, 그의 인품은 왕가의 여느 귀족들보다도 뛰어났다.(우린 그와의 짧은 대화만으로도 그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린 말에서 내려 스왈로를 뒤따랐다. 성문이 열리자마자 보이던 울창한 정원은 푸르렀고 꽤나 길게 이어져 있었다.

 잘 정돈 된 정원을 걷던 뤼귀는 감탄했다. 그러나 그 감탄은 정원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탄이 아니었다.

 

 - 놀랍도록 대처가 빠르군요.

 

 뤼귀가 말하자 스왈로는 대답했다.

 

 - 단지 이곳뿐입니다.

 

 그리고 잠시 뒤 정원 너머의 처참한 광경은 우리들 눈에 들어왔다. 피로 낭자한 안뜰엔 부상당한 브리테니엄의 병사들과 의생들이 그득했으며, 아르도르의 갑옷을 입은 시체들을 실은 수레가 그들 사이를 지나다녔다. 시녀들은 붉게 물든 성의 기둥을 닦느라 물바가지를 옮겨 다니고 있었다.

 이니스는 눈앞의 참혹함을 참지 못해 고개를 돌렸고 뤼귀는 안뜰을 거닐며 부상자들을 관찰했다. 난 그때 스왈로에게 진상을 물었다.

 

 - 자네들은 모르고 있었나? 그럼 이 광경에 적잖게 놀랐겠군. 자네가 말을 더듬는 것도 이해하네. 음, 어젯밤 이곳에서 살육전이 있었네. 아르도르의 군사사절단이 반의를 드러냈어. 다행히 뤼귀 선생의 도움으로 우리 측 피해는 많지 않네만 앞으로 여왕님과 우리 루완에게 닥칠 정세가 걱정이군.

 

 어젯밤 뤼귀는 브리테니엄 궁과 한나절 거리나 떨어진 곳에서 궁 안의 낌새를 알아차리고 여왕을 돕기 위해 나와 이니스 곁을 떠났던 것이었다. 한 시가 급한 살육전을 두고 우리에게 말 할 새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뤼귀가 어떤 방법으로 브리테니엄의 병사들을 도왔는지는 물을 수가 없었다. 비할 데 없이 지체 높은 목소리가 우리 대화의 틈에 끼어들어와 스왈로를 찾았기 때문이다.

 

 - 스왈로. 이 청년들은 누굽니까?

 

 그것은 여왕의 목소리였다. 리오르닌 안 테레지아, 루완의 주인이자 발락 안 테레지아 선왕의 독녀다. 그녀는 자신을 찬양하는 시들 속의 비유보다도 고매했으며, 그 여린 목소리 속엔 젊은 여왕의 의기가 차있었다. 그녀는 내가 처음으로 만난 왕이었고 그녀가 가진 고상 역시 이제껏 본 적 없는 새로운 경지에 속해있었다.

 우리와 더불어 주변의 모두가 고개를 숙여 여왕에게 예를 표했고 스왈로가 우릴 소개했다.

 

 - 이들은 저희의 은인이신 뤼귀 선생께서 보호하고 있는 도어테일즈 출신의 청년들입니다.

 

 여왕은 즉시 고개를 두리번거려 뤼귀를 찾았다. 수레 앞에서 아르도르 병사의 시체를 살펴보고 있던 뤼귀는 여왕의 시선을 알아차리곤 우리 쪽으로 돌아봤다. 안뜰 가운데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던 브리테니엄의 부상병들은 그런 뤼귀를 멀뚱히 쳐다봤는데, 여왕은 그 병사들을 나무랐다.

 

 - 그대들은 은인도 몰라보는가? 어젯밤 그대들의 목숨을 구해낸 은인이 바로 저분이시다.

 

 그러자 그곳에 있던 병사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몸을 일으켜 뤼귀에게 고개를 숙여 감사의 예를 표했다. 뤼귀는 그들의 예를 물리며 다친 자들을 부축해 다시 바닥에 앉혔다. 부상자들을 모두 앉힌 그는 여왕 앞에 섰다.

 

 - 여왕께선 부상자들에게 무리를 강요하셨군요.

 

 여왕은 뤼귀의 빈정거림에 지그시 웃었다.

 

 - 전 그러지 않았습니다. 단지 저들이 어르신의 은혜를 잊지 않았을 뿐입니다.

 

 여왕은 뤼귀를 알고 있었으며 그를 어르신이라 칭했다. 이에 스왈로가 놀랐고, 고개를 숙이고 있던 시중들도 뤼귀를 힐끗 쳐다봤다.

 우리 셋은 모두 여왕을 따라 후정에 마련된 정자로 자리를 옮겼다. 담쟁이덩굴은 정자의 기둥과 천장을 장식하고 있었고 엘레노어월을 맞은 푸성귀들 사이에선 아카시아향이 났다. 여왕과 뤼귀는 정자 주변을 걸으며 정치담론을 나눴으나 이니스와 난 시녀 둘과 정자 안에 남아있었다. 두 시녀는 배를 곯은 우리에게 다과를 내어줬다. 금세 배를 채운 이니스는 자신의 잔에 담긴 찻잎을 건져내 향을 맡으며 가지고 놀다가 그마저 지루해졌던지 시녀들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 두 분께선 어젯밤 별 일 없으셨나요?

 

 두 시녀는 서로 눈치를 봤는데, 둘 중 한 명은 말하기를 좋아하는 다언자였다.

 

 - 사실 전 봤어요. 저기계신 저 어르신께서 아르도르 사내들을 한 명도 빠짐없이 죽이던 걸요. 어젯밤 저분 몸이 말입니다. 글쎄 그 형체가 이곳저곳서 보였다가 사라지는 것이 꼭 번갯불 같았습니다. 제가 눈을 깜빡일 때마다 적어도 세 사람이 저 분의 손에 쓰러졌습니다. 검도 창도 쥐지 않은 손이 아르도르의 철갑옷을 뚫는 걸 제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두 손님께선 알고 계셨습니까? 저기 저분은 사람이 아닙니다. 신이 아니라면 동부에서 온 괴물일지도 몰라요.

 

 시녀가 느낀 감정은 내가 셰펄드를 처음 봤을 때 느꼈던 경이로움과 비슷했다. 뤼귀의 무예에 대해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던 난 크게 놀라지 않았다. 이니스도 마찬가지로 가벼이 웃을 뿐이었다. 시녀는 우리의 여유에 놀라 엉뚱한 짐작을 비쳤다.

 

 - 혹시 두 손님께서도 저 분과 같은…….

 

 - 아닙니다. 저희 둘은 사람이고 도어테일즈 출신입니다. 뤼귀 어르신께선 절 구해준 은인이십니다. 제가 도움을 받던 날 어둡고 경황이 없어 볼 수 없었던 어르신의 무용을 하님 덕분에 더 알게 되었네요. 이야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후에 우린 별 말을 나누지 않았고 여왕과 뤼귀도 둘만의 담론을 끝낸 것 같았다. 그런데 그들이 정자 안으로 다시 들어오려 할 때 스왈로와 한 전령병이 여왕을 찾아왔다. 스왈로는 여왕에게 전령에 대해 소개했고 전령은 예를 갖춘 뒤 자신의 본분을 다했다.

 

 - 주군께서 폴 다이트에 보내신 아르도르의 사절단이 어젯밤 모반을 일으켰습니다. 다행히도 저희의 성채는 지켜냈으나 테렌티나 아서 영주께서 간밤의 전투 중 서거하셨습니다. 현재 폴 다이트 성안의 피해가 막심한 상태이오니 왕께서는 부디 저희 성에 원조를 베풀어 주시길 바랍니다.

 

 비보는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브리테니엄과 폴 다이트, 그리고 도어테일즈를 제외한 루완의 나머지 세 성에서 파견된 전령은 모두 오전 내에, 혹은 오후 늦게 여왕 앞에 당도했다. 르포틴과 베르오라 역시 지난밤 아르도르 사절단과의 전투를 면치 못했으며, 모두 가까스로 성을 지켜냈다고 했다. 그러나 포페타 성의 상황은 조금 달랐는데, 포페타의 전령이 들고 온 소식은 우리 일행에겐 유독 흥미로운 소식이었다.

 

 - 아르도르의 사절단이 어젯밤 포페타에서 음모를 꾀했으나 저희 영주님을 만나 뵙기 위해 성 앞에 와있던 한 검객이 아르도르의 병사들을 모조리 베어 죽이는 바람에 삽시간에 전투가 끝나버렸습니다. 아르도르의 지휘관은 생포한 상태며 저희 쪽의 피해는 미미합니다. 로메로 오비디우스 영주께서는 어젯밤 일과 더불어 그 검객에 대한 소식을 주군께 전하라하셨습니다.

 

 여왕은 그때 나지막이 셰펄드의 이름을 속삭였고 뤼귀도 고개를 끄덕였다.

 

 - 그 검객에 대해 계속 말해보시오.

 

 뤼귀가 말하자 전령은 잠시 생각했다.

 

 - 믿으실 진 모르겠으나 제 두 눈으로 본 그대로를 이야기하자면, 그 검객은 사람보다는 귀신에 가까웠습니다. 영주님의 명령으로 성 밖에서 머물고 있던 아르도르의 병사들이 성안으로 들이닥치려 할 때 저희의 성곽 수비병들은 그들을 향해 일제히 활시위를 당겼습니다. 그때 성문 앞에 앉아있던 그 검객은 저희가 두 번째 화살을 메기기도 전에 열 명이 넘는 아르도르 병사들을 도륙했습니다. 그가 단신으로 아르도르의 사절단원 수십을 베어내는 데 걸린 시간은 경각이었습니다. 이후 저희가 성 밖으로 나가 그를 옆에서 도왔으나 그의 검술은 당시의 어둠이 아니었어도 사람의 눈으로써는 도저히 따라 볼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저희 포페타 성사람 가운데 그를 아는 사람은 오비디우스 영주님뿐이었으나 영주님조차 오늘 아침에 사라진 그 검객의 행방에 대해선 모르시고 계십니다.

 

 전령들의 보고가 모두 끝났을 때, 뤼귀는 나와 이니스를 궁에 남겨둔 채 브리테니엄 궁을 떠났다. 그는 셰펄드와 함께 이곳으로 돌아오겠다고 말했지만 오늘의 서사를 정리하는 지금까지도 그는 돌아오지 않고 있다. 그가 셰펄드를 찾으려는 이유를 난 여전히 모르고 있고 물어보지도 못했다. 그러나 그의 추적엔 날로 다급함이 더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저녁 무렵엔 적잖게 중요한 대화를 겪게 되었다. 오늘 서사 첫말에 언급했던 비밀이 바로 그것이다. 사실 이 비밀을 서사에 담아야 할 지 고민했다. 이 비밀의 중요성은 더 따질 것이 없었다. 다만 내가 그 비밀을 알게 된 상황이 문제가 된다.

 이니스가 궁내의 시체들을 피해 화단을 돌아다닐 때였다. 난 폴 다이트의 전령을 따르는 브리테니엄 병사들의 행렬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이 맨 처음 나선 모퉁이에선 경비대장 스왈로의 목소리가 들렸다. 난 별 이유도 없이 그 모퉁이로 갔다. 키 큰 꽃나무들 가운데 스왈로와 여왕이 단둘이 서있었다. 난 감히 그 자리에 나설 수 없었고, 나설 이유도 없었다. 그래서 발길을 돌리려 했다. 하지만 스왈로의 목소리가 내 귀에 닿아 내 걸음을 말렸다.

 

 - 뤼귀 선생께서 아무리 무예가 뛰어나고 저희 브리테니엄의 은인이시라지만 주공께서 그분을 어르신이라 높여 이르시는 것은 그분께도 과분한 처사라고 생각됩니다.

 

 스왈로의 견해가 지나자 여왕의 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 당신의 조언은 제가 따르기 싫을뿐더러, 따르기 위해서도 무리가 있습니다.

 

 여왕의 목소리는 가볍고 장난기가 있었다. 반면에 스왈로는 진지하기만 했다.

 

 - 무리가 있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요? 주공께서는 루완의 주인이자 린그노르 땅에서 가장 높으신 아홉 사람 중 한분이십니다. 주공께서 이름을 높여 부를만한 이는 나머지 여덟 분을 제외하고선 이 서녘 땅엔 아무도 없습니다.

 

 -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린그노르가 아닌 다른 대륙의 왕이 이 땅에 살고 있다면 당신의 생각은 어떻지요?

 

 그때 스왈로는 벙어리가 되었다.

 

 - 그분께선 레인웜의 왕 메어 뤼귀입니다. 저와 제 아버지, 그리고 선대의 우리 루완 왕가는 늘 그분의 도움을 받아왔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그분 앞에서 이 찰나의 권위를 내세워야 할까요?

 

 비망록에 적힌 대화는 그것이 끝이다. 더 이상 글씨를 채울 수는 없었다. 여왕의 말에서 느꼈던 미묘한 감정이 다시 찾아든다. 이것이 설렘인지 근심인지는 모르겠다.

 

 

 -

 

 

 J_

 셋의 여정은 브리테니엄에 들어서며 새로운 국면을 마주하게 된다. 뤼귀가 브리테니엄에서 막아낸 아르도르의 내란은 루완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계획적인 반역이었다. 뤼귀는 이 모반의 전말 속에서 셰펄드의 위치를 가늠해내 브리테니엄을 떠난다.

 한편 지오르고스와 이니스는 여왕의 시녀를 통해 뤼귀의 무용에 대해 전해 듣게 된다. 그리고 지오르고스가 안 여왕과 스왈로의 대화를 엿들음으로써 그간 감춰져 있던 뤼귀의 일면이 드러나게 된다. 메어 뤼귀는 레인웜의 왕이었다.(그럼에도 지오르고스는 자신의 일기 속에서 뤼귀에게 말을 높이지 않는데, 리오르닌 여왕과 다른 왕들에게도 마찬가지였던 것으로 보아 그는 자신의 일기를 남들에게 철저히 숨겼던 것으로 보인다.)

 

 레인웜은 세르부스와 더불어 그롯테에서 가장 동쪽에 위치한 국가였다. 레인웜의 국토는 크게 두 섬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바다에서 생존하는 인퀴스토 디토스들은 대부분 그 두 섬 사이의 바다 속에서 살았다. 때문에 레인웜에선 육지와 바다의 개념을 딱히 달리두지 않았으며 그로 인해 두 섬의 명칭은 따로 정해져 있지도 않았다.(남아있는 모든 기록에서 레인웜의 지역은 단지 방향만으로 표시된다.) 레인웜에서 지내던 인퀴스토 디토스들의 성향은 대부분 중립적이었는데, 그들은 서녘을 향해 정복전쟁을 치를 때에도 인간애와 동족애 중 어느 한 곳으로 치우친 적이 없었고, 단지 스스로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다른 우두머리들과 뜻을 같이했던 이들만이 간혹 있을 뿐이었다. 레인웜의 세력은 그롯테의 왕국들 내에서 굉장히 막강했는데, 이에 그롯테의 다른 세력들은 중립을 고수하는 레인웜을 포섭하려들지 못했고 억지로나마 레인웜의 중립성을 존중해야했다. 때문에 레인웜은 린그노르 내 약소국인 루완 보다도 더 평화로웠고, 대륙에서 홀로 떨어진 지리적 특성까지 더해져 그롯테 국가들 가운데서 유독 독립적이었다.

 

 레인웜의 왕 메어 뤼귀는 ‘루르마’라는 종족의 우두머리로서 물의 신인 나가를 섬기던 기사였다. 뤼귀는 우두머리들에 대한 기록 속에서, 지괴의 여신 엘레노어의 기사이자 에퀘스의 왕인 레기야와 자주 비교가 되는데 이는 두 우두머리의 깊은 우정 때문이기도 했지만, 서로 정반대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 더 큰 이유였다. 때문에 레기야에 대한 기록을 보면 뤼귀의 성격에 대해서 잘 알 수 있다.(상대적으로 메어 뤼귀에 대한 기록보다 레기야에 대한 기록이 더 많이 남아있다.)

 

 이곳 에퀘스의 야수들을 다스릴 수 있는 분은 뭍의 기사 레기야님 뿐이다. 그분을 처음 뵈었을 때 난 감히 그분께 범접할 수가 없었고, 그분의 묵언과 시선이 내게 닿았을 때 난 나의 본능보다도 앞선 두려움에 절을 해야 했다. 그러나 그분 곁에 계시던 창해의 기사께서 날 일으켜 일러주셨다. 자신들에게 복종의 예를 보이지 말라하셨다. 자신들은 신이 아니라고 하셨다.

 (세르부스의 야경 사제 다르넬의 기록)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24 네냐 VIII 2020 / 8 / 23 238 0 10347   
23 네냐 VII 2020 / 8 / 22 257 0 12654   
22 네냐 VI 2020 / 8 / 21 259 0 4717   
21 네냐 V 2020 / 8 / 20 237 0 7805   
20 네냐 IV 2020 / 8 / 19 242 0 8653   
19 네냐 III 2020 / 8 / 18 252 0 12175   
18 네냐 II 2020 / 8 / 17 248 0 4678   
17 네냐 I 2020 / 8 / 16 254 0 6634   
16 나가 VI 2020 / 8 / 15 244 0 4947   
15 나가 V 2020 / 8 / 14 262 0 5026   
14 나가 IV 2020 / 8 / 13 235 0 8509   
13 나가 III 2020 / 8 / 12 252 0 7021   
12 나가 II 2020 / 8 / 11 255 0 4802   
11 나가 I 2020 / 8 / 10 260 0 8461   
10 엘레노어 IX, J 5 2020 / 8 / 9 257 0 5063   
9 엘레노어 VIII, J 4 2020 / 8 / 8 261 0 4894   
8 엘레노어 VII 2020 / 8 / 7 270 0 4877   
7 엘레노어 VI 2020 / 8 / 6 260 0 4064   
6 엘레노어 V, J 3 2020 / 8 / 5 249 0 7960   
5 엘레노어 IV, J 2 2020 / 8 / 4 247 0 5539   
4 엘레노어 III 2020 / 8 / 3 270 0 7052   
3 J 1 2020 / 8 / 2 271 0 7013   
2 엘레노어 II 2020 / 8 / 1 273 0 5506   
1 엘레노어 I 2020 / 7 / 31 452 0 13442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