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칵.
윤선의 수갑이 가지런히 내밀고 있는 상대의 두 손 위에 채워졌다.
“당신을 대중 선동과 납치 및 폭력 혐의로 체포합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아니, 아가씨! 아니, 형사님! 이게 지금 뭐……, 무, 무슨 일이에요. 우리는, 우리는요, 지인짜아 착해요.”
금방이라도 눈물이 뚝 떨어질 것 같은 눈망울로 임산부가 윤선을 쳐다보았다.
“정당한 공무 집행입니다.”
윤선이 꺼냈던 공무원증을 주머니에 넣으며 냉혹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별일 아닐 거예요. 그것보다 선생님, 오늘은 뒷정리 좀 맡아주세요”
“그래에……. 지금 이 시점에…… 자기는 뭐얼 그런 걸 걱정하고 그래에…….”
동현은 심각한 표정으로 박선생을 쳐다보며 말했다. 하지만 이내 윤선을 향해서는 살짝 웃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순간 윤선이 인상을 확 찡그리며 수갑 찬 동현의 몸을 끌어냈다.
“이것도 나름 잼 있는데요.”
차에 올라타자 동현이 윤선에게 수갑에 묶인 손을 내밀며 말했다. 이제는 수갑을 벗겨 달라는 의미였다.
“수갑을 차고도 잼 있으면……, 변태 아녜요?”
윤선은 가지고 있던 열쇠를 꺼내 동현의 손에 채인 수갑을 풀었다.
하지만 양쪽을 다 푼 건 아니었다. 그녀는 한쪽만 풀더니, 손을 쭈욱 끌어 당겼다.
'어어' 동현의 당황한 듯 감탄사를 뱃어냈다.
그녀는 경멸하듯 그의 얼굴을 훑면서 조수석 손잡이에 다시 수갑을 철컥 채워 버렸다.
“아니, 왜…… 이건 뭐예요?”
“왜요? 수갑 차는 게 잼 있으시다매요? 쫌 더 즐기시라고…….”
윤선은 휘파람이라도 휙휙 불듯한 표정으로 차를 출발시켰다.
이 여자의 짓궂음을 익히 알고 있는 동현은 잠깐 그녀를 쳐다 보았다. 하지만 곧 그냥 씨익 웃음을 웃어 버렸다.
사실 윤선이 도서관에 처음 도착 하자마자 만난 사람이 동현이었다.
임산부의 말과 달리 동현은 퇴근한 상태가 아니었다. 오히려 도서관 주변 청소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인사와 자기소개를 대충 끝냈을 때 윤선은 자신이 처한 상황과 현재의 방문 목적을 자세히 그에게 설명했다. 고개를 끄덕여 가며 그녀의 설명을 듣던 동현은 퍽이나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임신한 윤 선생님이 자신의 조기 퇴근을 허락해 줄 리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원래 살이 넉넉한 편이였던 윤은 임신 후 자신의 부풀어 오르는 살 때문에 보통 예민해 진 게 아니었다. 이전에 윤선에서 짜증을 쏟아낸 것도 그녀의 몸이 너무 날씬해 보였던 이유도 있었다. 그런 예민함 때문인지, 아니면 그녀의 말대로 뱃속의 아이를 너무 사랑하는 까닭인지 정말이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 그녀였다. 당연히 임시직인 동현의 잡일이 많아졌고, 부모님이 돌아가시기라도 하지 않는 한 조기 퇴근은 생각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 당신 때문에 졸지에 전 이상 전문가가 되어 버렸다니까요. 책 한 줄도 안 읽었는데……, 나도 이대로는 안 돼요. 정 안 되면 체포라도 해 가야지. -
답답함을 토로하던 윤선의 말에 박수를 친 건 동현이었다. 차라리 체포를 하자는 것이었다.
- 이러면 어때요? 어차피 그 이상 사건 때문에 제가 필요한 거잖아요. 윤 선생님도 제가 이상 좋아하는 거 다 아는 거니까, 제가 그 사건의 용의자라고 하면서 손목에 찰칵 수갑을 채우는 거예요. 어차피 그 사람 가면 썼으니까 누군지 모르는 거잖아요. -
그렇게 진행된 사건이었다. 도서관 직선로를 벗어난 후에 윤선은 잠깐 차를 멈춰 세웠다.
“무슨 남자가 수갑을 그렇게 좋아해요?”
자신이 유리창 위의 내부 손잡이에 수갑을 채우면 펄펄 뛸 줄 알았던 윤선이었다. 하지만 그조차도 잼 있다는 듯 도무지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동현이었다.
“이유가 있었겠죠. 형사님이신데…….”
안전벨트를 벗은 윤선이 몸을 조수석으로 기울였다. 수갑을 풀기 위해서였다.
“설마 이런 스킨십을 기대하고 그러신 건 아니죠?”
꽤난 먼 거리라서 거의 안기다시피 몸이 겹쳐지자 좀 어색한 표정으로 동현이 물었다.
“누가 변태 아니랄까봐……. 아까 윤 선생이란, 그 임산부 아줌마가 이층 창문으로 목이 빠지라고 우리 차를 보고 있었거든요. 퍽이나 동현 씨가 걱정되는 모양이던데……. 수작은 그 여자한테나 부리시죠.”
수갑을 꺼내서 뒷주머니에 넣으면서 윤선도 어쩐지 자세가 좀 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뒷자리에 태웠으면 그냥 열쇠만 휙 던져 줘도 됐을 텐데…….
이상하게 이 남자 앞에서는 실수가 많다는 생각이었다.
“실없는 소리 그만하고, 그 세 가지 폭발에 대해 좀 말해 볼래요?”
처음 도서관 주차장에서 동현을 만났을 때, 윤선은 자신이 묻고 싶은 게 뭔지 모두 정확하게 설명하고 동행을 요구했었다. 하지만 그때는 일단 동현이 빠져나오는 게 최우선 문제였으므로 윤선의 질문에 대한 답은 자연스럽게 뒤로 미루어진 상태였다.
“그 가면 남자 동영상 저도 며칠 전에 봤거든요. 확실히 이상 가면이더라구요.”
“이상이란 사람이 대게 못생긴 사람이었나 보죠……?”
“그래요? 전 제가 이상처럼 생겼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게 잘 생긴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동현의 말을 듣고는 윤선이 고개를 돌려 동현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외간 남자의 얼굴이라 굳이 자세히 본 적이 없었고, 대략의 이미지만 인식했던 까닭이었다.
동현의 말대로 눈은 작고, 얼굴은 길쭉한 게, 어딘가 그 가면의 인물을 좀 닮았다 싶은 생각이 들긴 했다.
윤선은 운전하던 오른손을 들어 동현의 머리를 쓱쓱 헤집었다. 가면의 얼굴이 괴기하게 느껴지는 건 정돈되지 않는 머리 때문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가면의 머리처럼 2대 8 가리마에 머리를 과장되게 흩뜨려 놓자, 꽤나 닮은 모습이 나타났다. 장난으로 한 행동이었지만 이상한 소름이 윤선을 쓰윽 훑고 지나갔다. 어쩐지 그날 가면 뒤에 있던 진짜 남자의 얼굴이 이런 얼굴이 아니었을까 하는…….
“어때요? 좀 닮았죠?”
“…….”
윤선은 대답 대신에 큰 한숨만 쉬었다. 형사의 직감이란 아무래도 설명하기 어려운 구석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의 가정은 너무도 심하게 우연적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우연히 찾아간 도서관,
우연히 만난 남자,
우연히 일어난 사건,
그 우연한 사건의 범인이 그 우연히 만난 남자일지도 모른다니……,
이건 우연 반복하기 놀이가 아니고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일단 저는 이상 전문가가 아니고요. 설혹 이상 전문가라고 하더라도 이상을 아는 것과 사건을 추리하는 건 뭔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저의 생각이 전적으로 옳을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어요.”
“제가 바라는 것도 사건의 전말을 밝혀내라거나 절대로 틀린 걸 말하지 마라는 게 아니에요. 그냥 우리가 놓친 게 있는지 확인해 보고 싶은 거죠.”
“좋아요. 일단 그 동영상을 보면서 제가 느낀 건, 이건 고의적이다 싶을 만큼 이상 마스크가 ‘날개’라는 소설의 첫부분을 패러디한 느낌이었거든요. 몇 개의 시가 등장하기도 했지만요.”
“이상 마스크가 시를 읊었다고요?”
윤선 역시 이상 마스크의 창업 선언을 동영상을 통해 보았었다. 하지만 그녀는 해당 동영상의 어디에서도 시가 등장하는 걸 느낄 수는 없었다.
“시는 두 개에서 세 개쯤 등장했죠. 그 마지막에 뱃지라고 보여 줄 때, 뱃지 안의 그림 있잖아요? 그것도 시였어요. 그게 아마 오감도 5호던가?”
“뱃지 안의 그림이 시라고요?”
“네”
윤선의 생각이 맞다면 뱃지 안에는 그냥 글씨는 단 한 자도 없고 그냥 사각형만 몇 개 있는 그림일 뿐이었다. 그게 시라니?
“이상이 원래 그런 시를 많이 썼잖아요. 유클리티드의 기하학을 시에 접목시켰다는 건 다들 아는 얘기고……. 윤선 씨도 그 정돈 알죠?”
“그, 글킨 하죠. 유클리티드의 기하학…….”
윤선은 너무 당연하다는 듯 질문하는 동현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동의를 하며 말꼬리를 흐렸다.
그런 윤선의 행동이 재미있다는 듯 동현이 고개를 수그리며 킥킥거렸다.
“암튼, 중요한 건 시가 아니라 그 이상 가면이 말하는 내내 날개의 앞부분을 패러디 했다는 건데…….”
“그러니까, 날개와 나래 슈퍼라…… 우리 검사님도 그 남자가 날개의 앞부분을 패러디 했다고 하긴 했죠. 근데에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 건데……, 대체 그 말의 어디가 그렇게 날개의 패러디인 거죠?”
“시작부터 그러잖아요?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 연애까지가 유쾌하오. 날개도 이렇게 시작하거든요. 그다음에 위트와 패러독스를 바둑 포석처럼 늘어 놓소. 그런 문구도 있고, 지성의 극치를 들여다본다는 표현이나, 제일 싫어하는 음식을 탐하는 아이러니, 그런 말도 있고, 무엇보다. 그 전반부가 끝날 때 ‘굿바이’이러거든요.”
아, 그런 표현들이 날개라는 소설 속에 나오는 거구나. 하는 생각.
윤선은 집에 돌아가면 날개라는 소설을 한 번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그 이상이라는 시인이 어딘가 자신과 비슷한 돌아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요?”
“그 ‘굿바이’ 말이에요.”
“네. 굿바이.”
“거기까지가 주인공의 독백이라면, 그 다음부터가 소설 속 사건이 시작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윤선 씨가 말했던 세 장소들 말이에요. 그 장소들 주소 좀 알 수 있을까요?”
“갑자기 주소는 또 왜요?”
윤선의 대답에 동현이 느닷없이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는 뭔가를 마구 검색하더니 잠깐 차를 세워 주기를 부탁했다. 그리고는 핸드폰으로 검색한 내용을 쫘악 펼쳐서 윤선에게 보여주었다.
이상의 날개 본문 내용이었다.
그가 말했던 주인공의 독백부는 이렇게 끝나고 있었다.
- 내 논리가 뜻밖에도 여성에 대한 모독이 되오? 굿바이
그리고 이어서 시작되는 사건 시작부는 이랬다.
- 그 33번지라는 것이 구조가 흡사 유곽이라는 느낌이 없지 않다. 한 번지에 18가구가 죽 – 어깨를 맞대고 늘어서서 창호가 똑같고 아궁지 모양이 똑같다.
윤선은 주소를 알아보지 않은 자신의 경솔함을 후회하고 있었다. 그녀가 전화를 건 사람은 룸메이트이자 같은 서에서 여경으로 근무하고 있는 민서였다.
“…… 엉, 그 세 곳 있잖아. 주소 좀 지금 당장 찍어서 보내 줄 수 있어?”
갑작스러운 부탁이었지만 윤선의 부탁이 다급했으므로 민서는 복잡한 질문 따위를 하지 않았다. 사회생활이 쉽지 않았던 윤선과 조화롭게 룸메이트를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이미 알 수 있는 그녀의 과묵한 성격 탓이었다.
“잠깐만…… 이름만 있어서, 장소를 찾아 봐야 하니까, 전화 끊고 좀 기다릴래? 나오는 대로 내가 전화할게.”
“그래. 그리고 그 바뀐 도로명 주소 말고 옛날 주소까지 함께 좀 알아봐줘……. 응, 그래…… 부탁해. 응.”
윤선이 전화를 끊자 동현이 그녀를 보며 빙그레 웃고 있었다.
“왜요? 왜 또 변태처럼 웃고 그래요?”
“아뇨, 그 주소요. 도로명 주소에는 번지가 없잖아요. 그래서 옛날 주소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다 알아서 하시는 게 신기해서요.”
그래도 형사 3년차인 자신을 뭘로 보는 건지……. 윤선이 약간은 으쓱해진 속마음을 숨기느라 유독 새침한 표정으로 동현을 흘겨보고 있을 때였다.
따르릉. 윤선의 전화벨이 울려왔다.
“그래, 혹시 33번지에 해당하는 장소가 있었어?”
윤선의 질문이 단도직입적이었으므로 동현도 눈이 똥그래져서 그녀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이럴 때 스피커폰으로라도 전화기를 바꿔 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동현의 머리에 떠올랐다.
“뭐, 있다고…… 정말 있다고? 거기가 어딘데?”
윤선이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동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역시 전문가는 달라 뭐 그런 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