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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인류멸망회의
작가 : 김광수
작품등록일 : 2020.8.4

인류가 멸명한 미래, 인공 지구에서의 신인류들의 이야기

 
인류멸망회의(17)
작성일 : 20-08-04 16:38     조회 : 241     추천 : 0     분량 : 9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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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23)

  마그가 아침부터 일어나서 몸을 풀고 있었다. 일렉이 그 모습을 보고 말했다.

  “오늘 네가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나 했더니 오늘 축구대회였구나.”

  마그가 무릎으로 축구공을 튕기며 말했다.

  “너도 구경 올래? 상대팀 주장이 잭인데 옛날에 나한테 엄청 맞았다고 눈에 쌍심지를 켜고 있더라고. 다시는 고개도 못 들게 해줘야지.”

  “시간 보고 가볼게.”

  거실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던 포트가 마그를 부르며 무언가 건네며 말했다.

  “자, 이거 도시락인데 거기 가서 먹어. 축구 하면 금방 배고플 거니까.”

  마그는 도시락을 받으며 감격 받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녀는 외출복으로 갈아입는다고 방으로 들어갔다. 마그는 도시락을 바라보며 말했다.

  “좋아. 결심했어. 난 포트와 결혼할거야.”

  그 갑작스러운 말을 듣고 일렉은 화들짝 놀라서 말을 했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결혼하겠다니?”

  “갑자기가 아니야. 예전부터 생각했던거야. 포트와 결혼 하면 안 돼? 너 포트 좋아하는 거야?”

  일렉은 그 말에 괜히 수줍어졌다.

  “아니 그건 아니지만...”

  “아니면 됐어. 난 걔 아니면 다른 사람은 싫어.”

  “우리는 이미 한 가족처럼 지내고 있었잖아. 그런데 결혼을 하겠다니. 그냥 지금처럼 살자.”

  “우리는 이미 결혼할 나이가 됐고 해야 해. 그것이 인간의 이치야. 이미 여기서 결혼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둘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포트가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나오더니 둘의 말다툼을 보고는 손으로 머리를 잡았다.

  “미안한데, 소리 좀 낮춰줄래? 요새 몸이 좀 안 좋아서 말이야.”

  그녀는 최근 부쩍 어지럽다던가, 피곤하다던가 하는 말이 많아졌다. 일렉과 마그가 그 말에 조용히 눈으로 싸움하고 있었다. 포트는 문 쪽으로 비틀비틀 걸어가다가 갑자기 쓰러졌다. 그 모습을 보고 놀라 그녀에게 달려가서 부축했다.

  그들은 시내 중심가로 달려갔다. 아직 아침이라서 병원에 문이 열린 곳이 없었다. 전화를 해서 의사의 집까지 직접 찾아갔다. 그 의사는 진단을 하더니 잘 모르겠다고 했다. 자신이 일 하면서 본 질환은 아니라는 것 밖에 못 알아내었다. 시간이 지나서 의사들이 출근하자 다른 의사에게도 가보았다. 그 의사는 기계를 이용하여 그녀의 몸 상태를 확인하자고 했고 데이터를 분석하더니 뇌종양일 수도 있다고 했다. 치료 가능한지 물었지만 치료는 가능한데 자신은 할 줄 모른다고 했다. 그들은 다른 의사들에게도 가 보았다. 다른 의사들도 뇌종양이라고 했지만 마찬가지로 치료할 줄 모르거나 어려운 작업이라서 치료하다가 죽을 가능성이 높아서 할 자신이 없다고 했다.

  그들은 일단 그녀를 제일 큰 병원에 입원시켰다. 모든 의사를 찾아갔지만 치료할 방법이 없었다. 이제 기껏 모든 역경을 해쳐냈는데 정작 몸이 아프면 행복도 누리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녀는 그동안 아픈데도 내색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힘들어 하는 것을 보고 자신이 아프다고 말할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일렉은 병실 침대에 기대서 하루 종일 괴로워하고 있었다. 마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홀연히 사라졌다.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모양이었다.

  일렉은 자신의 하던 일을 관두고 매일 같이 그녀를 간병하러 갔다. 그리고 옛날에 있었던 이야기들을 나누며 그녀의 말동무가 되어 주었다. 그녀는 대화를 하며 웃기도 했지만 곧 고통스러운 듯 머리를 붙잡았다. 하지만 일렉은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몇 주가 지났다. 그녀는 이제 진통제 없이 하루를 버틸 수 없었다. 일렉은 그녀의 이마를 쓰다듬었다. 그녀는 힘겹게 고개를 돌리며 입을 떼었다.

  “그런데 마그는 요새 왜 안보여?”

  일렉은 이를 꽉 깨물며 말했다.

  “모르겠어. 일이 바쁜가봐.”

  마그는 포트가 입원한 이후로 집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현실도피를 하고 싶어도 이젠 정신 차리고 포트의 간병을 해줘야 하는데 코빼기도 안 보여서 마그는 그가 원망스러웠고 언제는 결혼하겠다고 하더니 아프자 마자 사라진 것에 배신감이 들었다.

  그 생각을 하던 그 때 누군가가 병실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 바로 마그였다. 그는 눈 아래 다크써클이 광대까지 닿을 것 같았고 몸이 한 층 말라진 것 같았다. 일렉은 그를 보며 말했다.

  “지금 포트가 이렇게 아파하는데 도대체 넌 어디 갔다가 오는 거야?”

  마그는 일렉의 말을 무시하고 양 손으로 포트를 안았다.

  “지금부터 포트는 내가 치료한다.”

  일렉이 마그의 팔뚝을 잡으며 말했다.

  “지금 뭐 하자는 거야? 의사들도 고칠 수 없다는데 네가 뭐 어떻게 하려고?”

  “나도 한 때 의학을 배웠어.”

  “그건 옛날이잖아!”

  “난 살면서 내가 지금 만큼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것에 대해 후회한 적이 없었어. 지난 몇 주간 난 뜬 눈으로 밤새며 그 병에 대해 공부했어.”

  “하지만 그렇게 급하게 배웠는데 위험할지도 모르잖아. 생명과 관계된 건데.”

  마그는 일렉을 보았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흘러 내렸다.

  “내가 살면서 너한테 이렇게 부탁한 적이 없었잖아. 이번 한 번만 부탁하자. 나 좀 믿어주라!”

  일렉은 마그의 팔뚝을 잡은 자신의 손을 힘없이 놓았다. 마그는 포트를 안고 의료장비실로 향했다. 일렉은 그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3]

 1)

  병원 밖은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로 북적북적거렸다. 변함없는 뜬 태양의 햇빛이 창문을 통해 들어와 일렉과 포트를 비추었다. 포트는 병실 침대에 누운 채로 주름진 손을 들어 일렉의 손에 닿으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70년 전에도 네가 이렇게 간병했지?”

  “그게 벌써 70년 전인가?”

  “곧 있으면 종합 회의 한다며? 너도 거기서 발표할거야?”

  “해야지. 이때까지 그래왔으니까.”

  일렉과 포트는 얼굴에 주름이 가득했다. 머리는 백발이 되었으며 목소리는 가늘어졌다.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장난기 가득해 보이는 꼬마애가 들어왔다.

  “엄마 할머니 안녕하세요.”

  같이 들어온 아이의 엄마가 말했다.

  “엄마 할머니가 아니라 증조할머니라고 해야지.”

  그녀는 포트를 보고 다시 말했다.

  “할머니 몸은 괜찮으세요?”

  포트는 잔기침을 하며 말했다.

  “괜찮다마다.”

  “할아버지는 어디 계세요?”

  “후배 의사한테 뭐 가르쳐준다고 한다고 하던가 뭐라던가. 늙었으면 이제 은퇴하고 좀 쉬지.”

  “그래도 아직 정정하시더라고요.”

  구체의 사람은 5천 명 정도로 늘었다. 쓸데없이 도시의 건물이 많았던 이유는 아마 신인류의 자식들까지 고려했던 모양이었다. 그 점을 생각하면 과거 사람들은 이 구체 밖으로 신인류들을 빨리 나가게 해줄 계획은 아니었던 것 같다. 지금 사람들에겐 이곳에서 과거의 혼돈의 시기가 있었다는 것이 전설처럼 들을 수밖에 없었다. 과거 영광의 인물들은 점차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는 중이었다. 사람들은 서로를 존중하며 배려하고 질서를 지키며 욕심 없이 살아가고 있었다.

 

  2)

  다음날 밤도 일렉은 창고에서 기계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러다 포트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숨이 멎을 듯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가 가장 먼저 도착한 것 같았다. 옆에는 간호사가 진찰을 하다가 잠시 자리를 비워서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

  “왜 그래? 몸 괜찮아?”

  그녀는 쉰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때가 된 것 같아.”

  “때가 되었다니 무슨 소리야! 아직 더 살 수 있어. 평균 수명까지 20년도 더 남았는데.”

  “옛날에 큰 수술을 해서 그런지 제명에 못 사는 것 같아. 하긴 그 때 뇌종양으로 죽을 줄 알았는데 70년이나 더 산 것 자체가 기적이지.”

  “조금만 버텨봐. 마그는 너를 70년을 더 살게 해줬지만 나는 널 영원히 더 살게 해줄 수 있어. 내가 인체를 교체할 장치를 만들고 있거든 거기에 너를 이식 시켜서...”

  그녀는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

  “그건 인간의 영역이 아니야. 사람은 때가 되면 사라지는 거지 그게 자연의 이치야. 그런 짓 하지 마. 난 아름답게 생을 마감하고 싶어.”

  곧이어 마그가 숨을 헉헉거리며 들어왔다. 그 후로 수많은 사람들이 들어와서 병실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포트는 혼잣말을 했다.

  “그래도 이번 인생은 헛되게 살지는 않았나 보구나.”

  곧 의사가 들어와서 진단을 하고 살 수 있는 날이 얼마 안 남았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일렉은 조용히 병실에서 빠져나와 어깨가 축 늘어진 채로 병원 복도를 거닐고 있었다. 그러다 병실에서 누군가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누군가는 병실 침대에 누워 있는 글라도스였다. 일렉이 그에게 다가가자 글라도스는 힘겹게 침대에 걸쳐 앉으며 말했다.

  “오랜만이군. 친구.”

  “너도 여기 입원했었구나.”

  글라도스는 기침을 하며 말했다.

  “우리가 과거에 같이 활약했던 거 기억나?”

  “기억나지. 그걸 잊을 수가 있나?”

  “그런데 말이야 사람은 결국 죽는가보더라고. 우리도 결국 이곳의 먼지 속으로 사라지겠지.”

  “오늘 기분 심란하니까 그런 농담은 하지 말게.”

  “사실 그동안 두려워서 말하지 않은 것이 있는데 너에게는 알려줘야 할 것 같아.”

  “어떤 비밀?”

  그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혹시 내가 어떻게 감옥을 탈옥했는지 알고 있나?”

  심상치 않은 그의 진지한 표정에 일렉은 침을 꼴깍 삼켰다.

  “그러고 보니 거기서 어떻게 탈옥한 겐가?” “지금부터 내 이야기 잘 들어. 내가 감옥에 들어갔을 좀 됐을 무렵이었지. 난 무료함에 감옥에 있는 책을 항상 읽었어. 그 중에서 나와 관련 있는 분야인 컴퓨터 언어 분야를 읽고 있었지. 근데 책 내용이 좀 이상했어. 뭐랄까? 잘못된 내용이 쓰여 있다고 할까? 나는 그 쪽 방면으로 공부를 했기 때문에 무슨 내용인지 대략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는데 말이 안 되는 것들이 중간중간에 나왔지. 단순히 책이 잘못된 건지 아니면 내가 이해를 못한 건지 알 수 없어서 몇 날 며칠을 책만 보다가 조금 이상한 걸 발견했지. 책의 특정 문자에 종이가 도드라져서 튀어나와 있었어. 그래서 튀어나온 문자들만 연결해서 읽었는데. 과거 인류의 보안을 풀 수 있는 비밀이 나왔어. 게다가 감옥을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이 나와 있었지. 또 하나의 비밀은 바로 그 책 자체가 컴퓨터였어. 그래서 기회를 엿보다가 책의 비밀암호가 알려준대로 책을 만지고 감옥을 정전시키고 탈옥을 했지.”

  그 사실을 알고는 일렉은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과거 사람들이 그런 걸 남겨놓았단 말이야? 왜 그동안 말하지 않았어?”

  “내가 걱정스러웠던 건 다른 책들도 과거 인류들이 알려주지 않는 비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 하지만 지금같이 정보 보안에서 끝나지 않고 만약 무기 제조 방법이었다면 또 다시 사회는 불안정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지.”

  “그럼 왜 그 사실을 나에게 알려주는 거지?”

  “구체에서 너 만큼 사람들의 과거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이 없어서 네한테 알려주면 뭔가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말이야. 난 너를 신뢰해. 그리고 지금 아니면 내가 또 언제 쓰러질지 모르니까...”

  일렉은 말없이 그를 한동안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그가 문득 무언가 생각을 떠올렸다.

  “그럼 혹시 옛날 가짜 인공지능을 만든 그 사람도 이 비밀을 발견하고 로봇들을 해킹한 건가?”

  “내가 감옥에서 본 책에서는 인공지능에 관한 내용은 없었거든 아마 다른 책인 것 같아. 혹시 그 사람이 가지고 있던 책들 중에 아무런 마크도 없는 책이 있었던가?”

  “음... 그래 있었어. 다른 책들은 마크가 있어서 원래 있던 자리에 두었는데 그 책만 마크가 없어서 내가 보관했던 기억이 있어.”

  “그럼 역시 마크가 없는 책이 과거 인류의 비밀이 담긴 책이었군. 혹시 그런 책 더 본 적 없어? 내가 예전에 도서관에 많은 책을 뒤져봤는데 없더라고.”

  “나도 그런 책은 못 본 것 같은데.”

  글라도스와 대화를 마친 일렉은 급하게 학교 도서관으로 출발했다. 거기서 책 하나하나 뒤져보았지만 전부 학교 도서관 마크가 있을 뿐 마크가 없는 책은 없었다. 수천 권의 책을 만진 일렉의 손이 불어터져는 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수확이 없자 그는 포기하고 밤하늘이 어두울 무렵 병원으로 돌아갔다. 들어가니 포트가 힘겹게 고개를 돌리며 일렉을 말없이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은 죽은 생선의 눈알처럼 생기가 없었다. 그리고 침대 옆에는 마그가 앉아 있었다. 하루 종일 앉아 있었던 것 같았다.

  “너 아직 집에 안 갔어?”

  그는 기운이 없는 듯 했다.

  “어...”

  “포트의 상태는 어때?”

  “진통제 맞고 나니 좀 괜찮아 진 것 같아.”

  그녀는 일렉은 그녀의 침대 앞에 먹다 만 음식이 있는 걸 보고 말했다.

  “병원 음식이 입에 안 맞으면 내가 음식이라도 만들어서 올까?”

  마그는 피식하며 말했다.

  “너 예전에 축제 때 음식 만들다가 다 버린 것 기억 안 나? 포트도 그 음식 먹고 네 욕하더라.”

  포트는 파르르 떨리는 입으로 웃으며 말했다.

  “그거 먹다가는 아마 내 수명이 더 짧아질 것 같아.”

  그녀는 아픈 걸 내색하기 싫어서 농담으로 했겠지만 일렉과 마그는 농담으로 받기엔 너무 슬펐다.

  “그 때는 내가 요리책을 보고 만들었는데 요리책이 이상했던 거지.”

  “무슨 요리책을 빌렸기에 그런 음식이 나와?”

  “도서관에서 빌렸는데. 아 참 생각해보니 그 책이 좀 이상했던 게 물리학 코너에 꽂혀져...”

  일렉은 그 말을 하고 온 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을 받았다.

  “이제 변명할 것도 떠오르지 않나보네.”

  포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가 만난 지 100년 가까이 됐는데도 너희들 모습을 보면 변함이 없는 것 같아.”

  일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미안한데 잠시만 집에 갔다가 올게.”

  일렉은 집으로 돌아갔다. 예전엔 다 같이 살던 집이었지만 이젠 일렉 혼자 사는 집이었다. 그는 집안에 있는 모든 서랍이란 서랍은 다 뒤져보았다. 그의 늙은 손이 상처가 났다. 주방의 위에 찬장을 열어본 순간 <파티 음식 만들기>라는 책을 발견했다. 일렉은 그 책을 열어보았다. 하지만 그 책에는 돌기 같은 건 없었다. 하지만 암호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을 하고 계속해서 암호를 알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인공태양의 빛이 창문 틈으로 들어왔다. 일렉의 얼굴 주름에 그늘이 드리웠다. 그가 펜으로 글자를 하나씩 적고 있었다. 드디어 암호를 해독한 모양이었다. 암호는 요리 재료의 문자를 조합하는 식이었다. 일렉은 조금씩 웃음이 나왔다. 문자는 단어가 되고 단어는 문장이 되었다. 그 문장은 다음과 같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인공지구를 만들 것에 만족하지 못했다. 우리는 인류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영원히 살고 싶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인간들은 손대지 말아야 할 영역에 손을 대고 말았다. 그것은 바로 영생이었다. 인간의 의식을 기계에 주입하는 것이었다...’

  일렉은 암호를 풀었다는 기쁜 얼굴이 곧 돌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그리고는 포트의 병원으로 갔다. 마그는 침대에 기대어 자고 있었고 포트도 자고 있었다. 일렉은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가 이마를 쓰다듬고는 조용히 속삭이듯 말했다.

  “미안해. 영원히 살게 해준다는 그 말 못 지켜 줄 것 같아.”

  그녀는 자신의 손을 일렉의 손에 닿으며 말했다.

  “괜찮아. 난 이대로가 행복해.”

  일렉은 그녀가 자고 있던 줄 알았는데 깨어 있어서 놀랐다.

  “며칠 뒤 인류멸망회의가 시작 하는데 지켜봐 줄 수 있어?”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3)

  마지막 인류멸망회의

  예전에 종합회의라고 하던 것은 이제 각각 분리되어 인류멸망회의만 따로 하게 되었다. 그 회의장 안에는 이제 젊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거기 있던 사람들은 매년 오는 그를 아는지 인사를 했다. 평소 같았으면 웃으며 화답해 줄 텐데 오늘은 표정 없이 손만 들고는 받아주었다. 회의를 시작한다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일렉이 손을 번쩍 들고 있었다. 그는 덤덤하게 일어나서 말을 했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이번이 마지막 발표가 될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그 말에 웅성거렸다. 포트는 병실에 누워서 TV를 통해 일렉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우리는 그동안 인류가 무엇 때문에 멸망했는지 많은 추측을 했죠. 기후변화, 운석충돌, 바이러스, 전쟁, 자원고갈... 하지만 원인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인류가 멸망한 시기의 역사를 알게 되었고 그 원인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류가 멸망한 이유는 그들의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과거 인간들은 고도로 뛰어난 기술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살고 싶어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낡은 육체를 버리고 의식을 기계에다 주입시켰죠. 그 후에 기계의 몸을 가진 인간들은 인간의 환경에 대해 신경 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대기가 오염되든 물이 썩든 바이러스가 퍼지든 관심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기계 육체는 그런 것이 필요 없었기 때문이죠. 그렇게 지구는 점점 인간이 살 수 없는 환경이 되어버렸습니다. 이것이 인류가 멸종한 이유입니다. 근데 여기에 제 추측을 덧붙이겠습니다. 기계로 이식된 인간의 의식은 네트워크상에서 점점 하나로 합쳐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후회하게 되죠. 영생이라는 건 행복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연의 이치를 어긴 순간 그들은 불행이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사실 저도 영생에 욕심이 있었습니다. 수년간 과거 인류가 하던 짓을 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제 오랜 친구의 말을 듣고 그만두었습니다.”

  TV로 일렉의 모습을 보고 있던 포트는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

  “그 후 인류는 후회 속에 살다가 새로운 인류를 위해 만든 인공지구가 있다는 사실이 생각났고 작동시켰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인공지능이라고 속이고 로봇의 안에 들어가 우리들을 키웠습니다. 우리가 그 때 인공지능 로봇을 진짜 인간처럼 느꼈던 이유가 바로 진짜 인간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후 과거 인류들은 우리들의 순수함을 더럽히지 않기 위하여 우리가 20살이 되었을 무렵 그들의 의식을 꺼버렸습니다. 과거 인류의 육체에 이어 정신까지 소멸하게 된 것이죠.”

  그 말을 하고 회의장은 일대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러다 갑자기 사방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회의를 하다 말고 사람들은 놀라 밖으로 뛰쳐나갔다. 인공태양이 점점 빛이 약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구체 내부의 에너지가 모두 소멸한 줄 알고 모든 사람들이 태양을 바라보며 공포에 떨고 있었다.

  약해진 태양빛 뒤로 도시의 정 반대편에 있는 바다가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바닷물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바닷물이 거의 다 사라지자 황량한 바닥만 보였다. 그 바닥은 곧 카메라 조리개처럼 열리더니 강렬한 빛이 새어 들어왔다. 인공태양과 비교할 수 없는 강한 햇빛이었다. 그것은 바로 진짜 태양이었다. 인공태양은 꺼지고 인공지구의 내부는 진짜 태양에 의해 모든 것이 밝게 되었다. 사람들은 손바닥을 펼쳐서 진짜 태양의 따스함을 느꼈다.

  일렉은 그 모습을 보고 포트의 병실로 허겁지겁 달려갔다. 이 소식을 전해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문을 쾅 열고 들어간 그곳엔 포트가 옅은 웃음을 띤 채로 영원한 잠에 들고 있었다.

 

 에필로그

  포트의 수술은 잘 마무리 되었다. 일렉은 그녀가 있는 병실로 향했다. 그 때 누군가가 그녀의 병실에서 뛰쳐나왔다. 모자를 쓰고 있어서 잘 못 보았지만 252의 모습이었다. 옛날 친구의 모습을 보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일렉은 그가 사라진 자리를 쳐다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마그는 수술을 하느라 탈진을 해서 다른 병실에서 링거를 맞고 기절한 듯 있었다. 일렉은 그에게 다가가 말을 했다.

  “포트한테 언제 고백할거야?”

  마그는 이빨이 다 보이도록 웃으며 말했다.

  “퇴원하면 바로 할 거야.”

  일렉은 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결혼하게 되면 축가는 내가 불러줄게.”

  마그는 눈물을 글썽이며 눈웃음으로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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