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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기억사형
작가 : 김광수
작품등록일 : 2020.8.4

사형수들의 기억을 지우고 사회로 보냄으로써 발생하는 이야기

 
기억사형(15)
작성일 : 20-08-04 16:12     조회 : 202     추천 : 0     분량 : 8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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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연구시설 공격당일이 되었다. 끝없이 이어진 차량에는 혁명군의 마크가 그려져 있었다. 병사들은 군복과 여러 개의 주머니가 부착된 조끼를 입었고 총을 어깨에 메고 있었다. 비상도 사람들을 따라 군용 차량에 탑승했다.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찬 공기가 주변을 맴돌았다. 병사들은 서로 대화를 하며 긴장을 풀고 있었다. 하지만 엔진소리가 들리자 대화소리는 일제히 멈추었다. 수많은 군용차량이 국가연구시설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주변에 빠르게 지나가는 모습들이 보였다. 지나가던 군용차량을 보자 놀라서 숨는 시민들도 있었다. 주변 풍경을 보며 다신 그 모습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혁명군들의 표정은 약간 굳어있었다. 그들이 직업군인이라고 하더라도 실제로 목숨을 걸고 전투를 하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원래 군인이 아니었던 사람들은 분노로 두려움을 가리고 있었다. 그들이 정부에게 속았다는 느낌을 강렬히 받은 것 같았다. 국가에선 시민들이 노력한 만큼 얻는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출발점이 상당히 달랐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자신들의 인생은 어느 정도 결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기억사형 당한 사람들의 경우는 더욱 심했다. 그들의 이번 혁명은 억압의 표출이었다. 그들은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간 채로 눈에 살기가 들어서 있었다. 그들은 직업군인보다 전투방법은 덜 알지 몰라도 더 무서웠다.

  각지에서 지원 받은 병력들이 3지구 시민혁명군 본부 근방 공터에 모두 모였다. 그곳은 대공방어 대비가 되어있지 않아 폭격을 맞을 수 있기 때문에 명령이 떨어지면 바로 진격한다고 했다. 넓은 공터에 전차, 장갑차, 자주포와 같은 별의 별 군용 차량이 다 있었고 심지어 일반차량을 개조한 것도 있었다. 혁명군들은 차량 뒤에 옹기종기 앉아서 명령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저 멀리 하늘 위로 회색의 물체가 빠르게 지나갔다. 혁명군의 전투기였다. 잠시 후 일부 병력들이 먼저 전진했다. 그들은 8군단 본부에 위협을 하기 위한 병력이었다. 그 후에 다시 일부의 병력이 출발했다. 그들은 국가연구단지에서 8군단으로 복귀하는 병력을 끊기 위해 잠복할 병력이었다. 비상이 포함된 병력은 마지막으로 국가연구단지로 출발하였다.

  차가 달린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국가연구단지가 시야에 들어왔다. 비상은 이런 식으로 이곳을 다시 찾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곳에서 연기가 나고 있는 것으로 보아, 8군단에 폭격을 끝낸 전투기가 국가연구단지로 가서 공중폭격을 어느 정도 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국군이 쉴 틈이 없도록, 먼저 자주포가 대형을 이뤄서 국가연구단지로 포격을 시작했다. 다른 병력들은 조금 더 전진하다가 차량에서 내려서 몸을 가렸다. 그들은 일대에 몸을 숨길만한 것이 없어서 차량 뒤에 몸을 숙이거나 기계를 이용하여 삽으로 땅을 파서 숨을 숨겼다. 목숨이 달려 있다 보니 미친 듯이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다른 명령이 오기까지 숨을 죽이며 대기하고 있었다.

  포격이 멈추었다. 손목 신분증으로 돌격 명령을 받은 간부들이 모두에게 앞으로 전진하라고 소리를 크게 질렀다. 사람들은 주저하면서 발을 차마 떼지 못하였다. 그러다 간부가 함성을 지르며 먼저 적진으로 달려갔다. 그 모습을 보며 병사들도 발을 떼고 달려갔다. 사방에서 모든 병사들이 일제히 나와 개미떼처럼 냅다 뛰어서 국가연구단지로 달려갔다. 그리고 총성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주변에서 사람들의 비명이 이어졌다. 포격덕분인지 국가연구단지의 벽은 상당히 허물어졌다. 애초에 이 정도의 공격을 막기 위해 지어진 시설은 아니라서 쉽게 뚫렸다. 비상도 명령에 따라 장갑차 안에 숨죽이며 있었다.

  총소리가 뜸해졌다. 적을 괴멸시키고 내부로 침입 성공했다고 한다. 멈춰있던 장갑차가 움직였다. 그리고 무언가를 밟았는지 덜컹덜컹 요동쳤다. 아마 허물어진 담벼락 같았다. 그리고는 장갑차의 문이 열리더니 내부로 빛이 비춰졌다. 비상은 아직 아무것도 한 것이 없지만 숨이 거칠어 졌다. 비상이 손으로 빛을 살짝 가리고 실눈을 뜨고 밖을 보았다. 주변에는 허물어진 벽이 있었고 혁명군의 많은 차량이 벽을 뚫고 국가연구단지 안에 들어와 있었다. 벽 밖으로는 하늘을 뒤덮은 검은 연기가 있었고 땅을 뒤덮은 붉은 피와 시체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비상은 차마 그곳을 쳐다보지 못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지친기색이었고 온 몸에 상처투성이였다. 여러 대의 장갑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다시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내부로 전진했다. 비상도 사람들을 따라서 전진했다.

  비상이 속한 병력은 오만 교수의 연구실 방향으로 향했다. 비상이 길을 알기 때문에 빠르게 갈 수 있었다. 예전과 같이 이곳은 정원과 호수와 장식물들이 아름답게 배치되어 있었다. 병사들은 이 연구시설을 보며 이런 곳이 있었구나라는 놀라움도 있었지만 자신들의 삶과 다른 모습에 분노도 동시에 느껴졌다. 비상은 어설프게 총을 잡으며 주변에서 적이 나타나지 않을까 두리번거렸다. 다른 방향에선 벌써 연구실이 폭파되는 소음이 들렸다. 비상은 탁 트여있는 곳이 아닌 갓길로 갔다. 그곳은 나무와 장식물들과 언덕이 있어 몸을 가리기 쉬웠다. 다행이 그 연구소 일대에 도착할 때까지 적들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 8군단의 폭격으로 그곳을 지원하기 위해 병력이 많이 빠진 대다가 남아 있던 병력들마저 처음 혁명군의 진군을 막기 위해 막다가 전부 죽은 것으로 보였다.

  소대별로 나누어서 각각의 연구실로 침입했다. 국가연구단지의 연구실은 워낙 많기 때문에 이렇게 나누워서 하지 않으면 한 세월이 걸릴지도 모른다. 비상을 포함한 소대는 오만 교수가 연구하는 건물에 도착하여 그곳으로 들어갔다. 지하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는 위에서 작동되지 않았다. 수류탄으로 엘리베이터를 폭파시켜서 지상에 밧줄을 묶은 뒤에 밧줄을 타고 손전등을 비추며 지하로 타고 내려갔다. 상당한 거리를 내려가자 끝이 보였다. 바닥의 부서진 엘리베이터의 금속 파편들 옆으로 연구실 입구가 보였다. 그 문에 접착식 폭탄을 붙이고 밧줄을 타고 올라가서 피신한 후에 폭파시켰다. 그리고 다시 밧줄을 타고 내려왔다. 병사들이 잔해들을 밀어서 사람이 지나갈 수 있는 크기로 만들었다. 비상도 뒤따라서 들어갔다. 그곳엔 비상과 같이 연구를 했던 연구원들이 있었다. 폭음에 놀라 기계 뒤로 숨은 사람도 있었고 방으로 피신한 사람도 있었다. 몇 사람은 싸울 의지가 없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주기 위해 양손을 든 사람도 있었다. 비상은 안면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비상을 알아보지 못했다.

  비상이 여기에 온 마지막 이유는 그것이었다. 같이 연구하던 사람들을 살려내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은 잘못은 국가의 명령에 따랐을 뿐이었다. 그것이 그들을 죽일 이유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이런 인재들을 죽이는 것은 국가적으로 아까운 일이다. 애당초 혁명군의 계획은 이들을 생포하는 것이지만 허튼 짓을 하면 사살하라고 했다. 비상이 직접 왔기 때문에 그들이 허튼 짓을 하지 않게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단 그들을 진정시키기 비상은 안면마스크를 벗었다. 비상을 본 사람들은 놀라서 눈이 커다래졌다. 그 순간 비상이 입을 떼기도 전에 연구 기계 뒤편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이 녀석! 우리를 배신한 것도 모자라서 우리를 죽이러 와?”

  분노에 찬 거친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바로 오만 교수였다. 숨어 있어서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배신했다고 믿으시면 그렇게 믿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죽이러 온 것은 아닙니다.”

  “우릴 잡아서 죽도록 고문시키고 또 우리 기밀을 불게 한 뒤에 죽일 생각이잖아!”

  오만 교수는 침을 튀기면서 그 말을 하고는 재킷 안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냈다. 그리고 총을 비상에게 겨누려고 손을 들었다. 비상은 그 모습을 보지 못했고 무방비상태였다. 그 순간 승화가 달려가서 오만 교수를 덮쳤다. 그리고는 총성이 들렸다. 비상과 같이 온 병사들은 재빨리 오만 교수를 향해 달려가서 제압했다. 오만 교수가 괴성을 지르며 말을 토했다.

  “승화, 네 녀석 주제에 감히 나를 배신해!”

  비상은 승화가 있는 곳에 달려가서 감싸 안았다. 승화는 오만 교수 쪽으로 고개를 살짝 돌리며 말했다.

  “저는 국군의 편도 반란군의 편도 그 누구의 편도 아닙니다. 다만 사람의 편일뿐입니다.”

  승화를 끌어안은 비상의 손에는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승화는 복부에 총알을 맞았었다. 비상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고 다리에 힘이 빠졌다. 비상은 목소리가 갈라졌다.

  “승화야 괜찮아? 이게 무슨 짓이야! 왜 이렇게 무리하게 행동했어! 빨리 의무실로 데려다줄게.”

  “총에 맞을 줄은 몰랐는데…….”

  비상은 승화를 등에 업고 줄로 몸을 연결한 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밧줄을 타고 위로 올라갔다. 무게 때문에 기계가 잘 올라가지 않았다. 다른 병사들도 올라가는 걸 도우려고 합세해서 위에서 밧줄을 당겨줬다. 승화는 입에서도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하.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게 꿈이었는데 결국 이루지 못했네요.”

  “뭔 소리야? 말하면 아프니까 닥치고 있어!”

  승화는 가냘픈 목소리로 비상의 귀에 속삭였다.

  “마지막으로 부탁하나만 할게요. 앞으로 제 몫까지 살아주세요.”

  승화는 심장이 멈추었다. 그것이 비상의 등에 그대로 전해졌다. 비상은 억지로 참던 눈물을 기어코 흘렸다. 그는 밧줄에 매달린 채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연구실 내부의 모든 사람들은 생포되어 차량에 탑승했다. 오만 교수는 반항하다가 쌔게 맞아서 기절했다. 승화의 시체는 천에 감싼 뒤에 전사자 수송차량에 보관했다.

  그 후 연구실의 자료들은 모두 지웠다. 국가기밀이라서 내부에서만 정보를 공유하기 때문에 외부에 정보가 전송되었을 가능성은 적었다. 만약 외부로 나갔다고 해도 연구원들이 모두 포로로 잡혀서 그 기술들을 국군이 이용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비상은 가능하다면 연구 자료를 저장해서 들고 오라는 명령을 받아서 usb에 저장을 했다. 비상은 usb를 손에 들고 있다가 지하에 폭탄을 던져서 연구소를 소각시킬 때 같이 던져서 소멸시켰다. 그 연구 자료는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어차피 비상이 없었으면 자료를 빼올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애초부터 자료를 얻지 못한 것으로 여겼다.

  그러는 동안 8군단 일대는 혁명군이 장악했다. 8군단으로 복귀하던 국군의 병력까지 일망타진했다. 8군단이 더 이상 반항할 수는 없었다. 국군에서도 가망이 없는지 8군단에 더 이상의 병력지원은 하지 않았다. 1군 사령관이 군단장에게 항복하라고 했지만 국가를 배신할 수 없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 8군단의 잔여 병력들은 혁명군에 흡수되었고 반항하던 일부 예하부대들은 도망치다가 포로로 잡혀서 수감되었다.

 

  국가연구단지 파괴 작전 이후, 혁명은 상당히 긴 시간동안 정체되었다. 서로 대규모 공격을 하지 않고 국지전을 하며 전선만 유지하였다. 1군 사령관은 수십 명의 간부들을 전부 지휘통제실에 집합시켰다. 비상도 구석자리에서 지켜보았다.

  “이제 우리가 결단을 내릴 때가 왔다. 애초에 계획은 이 쯤 되었을 때 지도자가 스스로 항복하여 우리의 혁명의 정당성을 부여하려고 했지만 지금까지 봤을 때, 그는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혁명을 시작하기 전에 암살을 해서 지도자는 죽일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더라도 그의 아들이나 다른 후임자가 역할을 이어 받아서 우리와 싸웠을 것이다. 그런 이유들로 적극적으로 전투를 벌이지 않았다. 하지만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 이젠 지도자를 잡을 수밖에 없다. 보고에 의하면 지도자가 최근에 이 근방에 새로 건설한 군사기지에 숨어 있는 걸로 파악되었다.”

  1군 사령관은 지도에 표시된 군사시설을 가리키며 말했다. 비상은 깜짝 놀랐다. 그곳은 비상이 일했던 건설현장이었기 때문이다. 지도자는 목소리를 깔며 강경하게 말을 했다.

  “바로 이곳에 우리의 대부분의 병력을 쏟아 부어야 할 때이다. 최근에 지어진 만큼 대공방어가 잘 되어 있을 것으로 생각되니 공중폭격을 먼저 하지 말고 지상에서 포위하듯이 전투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1군 사령관은 작전을 계속 설명했다. 굳이 비상이 그 회의하는 자리에 있을 필요는 없었지만, 혹시 도움이 될지 모르니 단심이 데려왔는데 운이 좋게도 단심의 생각이 적중했다. 비상은 1군 사령관에게 그곳에서 일했던 시민혁명군이 많이 있을 거니까 그들을 전략적으로 이용하면 전투에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직접 건설했으니 내부구조와 주변 지리는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 말을 듣고 생각하던 1군 사령관은 군사기지 공격계획에 그곳에서 일해본 적이 있는 시민혁명군들을 부대마다 분배하는 것 까지 추가시켰다.

  다음날 전국 각지에서 군사기지 건설에 참여했던 시민혁명군들이 지원이 왔다. 비상도 그곳에서 일을 해 본적이 있었기 때문에 집합 장소에 같이 있었다. 그런데 거친 목소리로 비상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 비상이잖아? 오랜만이네 나 기억하지?”

  비상은 누군지 알아보기 위해 고개를 돌려서 얼굴을 확인했다. 그는 다름 아닌 예전 건설현장에서 만난 굴레의 친구였다. 그 모습을 보니 옛날 생각도 나고 반가웠다.

  “안녕하세요. 당연히 기억하죠.”

  “너 말이야 완전히 유명인사가 다 됐더만. 하하”

  비상은 의문을 품었다. 자신이 국가연구시설에서 일 하는 것은 외부에는 알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제가 연구하는걸 알고 계셨어요?”

  굴레의 친구는 웃으면서 말했다.

  “이 녀석아. 넌 뉴스도 안 보고 사냐? 너 인마 지명수배 당해서 뉴스에 나왔어. 아무리 국군의 선동하는 뉴스가 대부분이라도 그런 건 봐야지.”

  “지명수배요?”

  비상은 연구소에 있을 때는 상황을 보려고 뉴스를 본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하루하루가 바빠서 보질 못했었다. 그 뉴스에 국가를 배신한 사람의 얼굴이 나오면서 지명수배를 하고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것이 있었는데 아마 근래에 비상도 나왔던 것 같다.

  “거기도 말이야 높은 사람이나 지명수배가 되는 거야. 나처럼 평범한 사람은 뭔 짓을 해도 뉴스에 나오지 않는다고. 너 좀 높은 자리까지 갔구나?”

  비상은 놀라기는 했지만 어차피 지명수배 당했다고 하더라도 지금 상황에서 달라질 것은 없었다.

  “그 정도까진 아닌데 과장하는 것 같아요.”

  비상은 머리를 괜히 긁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어서 다시 물었다.

  “그 동안 잘 지내셨어요? 그리고 혹시 굴레씨는 어디 계세요?”

  그 말을 하자 굴레의 친구는 발을 괜히 왔다갔다 거리며 바닥을 긁고는 목소리를 깔고 말을 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 해 줄까?”

  비상은 갑자기 무거운 분위기에 침을 삼켰다.

  “가능하면 다 이야기 해 주세요.”

  “이야기가 기니까 잘 들어라. 네가 건설현장에서 떠나고 우리는 군사기지에 계속 남아서 일을 했지.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별 일 없이 완공되었지. 그 후에 마침 좋은 일자리가 있다고 해서 같이 일을 하러 갔지. 별로 다른 건 없었어. 고위 관리가 운영하는 평범한 고층 건물을 짓는 일이었지. 늘 하던 일이라서 평소처럼 일을 했지. 그런데 말이야 굴레가 일을 하던 중에 기계 팔의 오작동으로 인해 건물 뼈대인지를 무너뜨려서 건물 끝에 한 쪽이 살짝 무너졌어. 물론 비상도 크게 다쳤지. 근데 문제가 뭐냐 하면 거기서 발생한 손실을 전부 굴레에게 전가했지. 우리 같은 사람들에겐 빈번한 일이야. 거기에 치료비까지 소비한 굴레는 지금까지 일하면서 모았던 돈을 거의 탕진하고 몸도 상해서 삶의 의욕이 없어졌었지. 나는 그 동안 같이 있던 정이 있어서 일단 우리 집에 와서 편할 때까지 있으라고 했어. 굴레는 손목신분증 배터리도 충전하지 않고 하루의 대부분을 식물처럼 누워있었지. 굴레는 몇 달이 지나자 몸이 좀 낫긴 하지만 조금 남은 돈 마저 모조리 다 써버렸어. 그러다가 굴레가 어디 갔다 온다면서 집을 나갔어. 어디 가는지 말도 안 하기에 나는 혹시 자살이라도 할까봐 이상한 마음먹지 말라고 말은 했지만 걱정은 했지. 하지만 내 생각과는 다르게 얘가 어딜 갔다 오더니 기운을 차렸더라고. 좀 이야기가 길었나? 계속 할까?”

  비상은 흥미롭게 듣고 있었다.

  “아니요.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전부 이야기 해주세요.”

  굴레의 친구는 목을 가다듬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 후에 나는 굴레를 다시 불러서 같이 새로운 건물을 짓는 일을 하고 있었지. 옆에서 지켜봤는데 굴레가 예전처럼 기운도 차리고 열심히 하더라고. 굴레는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을 먹은 것 같더라고. 그리고 보니까 건망증 치료도 받은 것 같더라고. 그 당시에 건망증 증세가 있는 사람은 근처 병원으로 오면 저렴하게 치료해준다고 했었거든. 하여튼 계속 일을 하던 중에 혁명이 시작됐지. 굴레와 나는 도심에서 고층 건물 위에 있었는데 길에 사람들이 한 곳으로 모이더라고 그래서 뭔가 싶어서 그곳을 봤는데 사람들이 전부 커다란 전광판을 보고 있었지. 너도 봤겠지만 거기엔 1군 사령관의 모습이 나왔지. 그의 말이 끝나자 도시에 있던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우왕좌왕했고 같이 건설 일을 하던 사람들 중 일부는 그걸 보고는 건물 밖으로 나갔어. 아마 혁명군에 들어갔을 거야. 나와 굴레는 아직 상황을 지켜보자면서 그냥 일을 하고 있었지. 그러던 중 다시 화면에서 지도자의 관저가 폭격을 받는 영상이 나왔지. 그 모습에 도시는 혼돈에 빠졌어. 자신들이 있는 곳도 폭격에 맞을까봐 자동차들이 도심을 빠져나가는 행렬이 줄을 이었어. 우리가 일을 하고 있던 것도 중단되었지. 굴레는 지도자 관저가 불에 타는 모습을 가만히 서서 보다가 그동안 사회에 대해 참고 있었던 분노가 드디어 터졌어. 굴레는 국가를 무너트리는데 동참하겠다고 했지. 나도 그 말을 듣고 갈 거면 같이 가자면서 따라 나섰어. 그리고는 시민혁명군에 들어가서 국가시설을 파괴하는 일에 동참했지. 시민혁명군에 들어 간지 얼마 안 되서 우리가 국가 시설을 파괴하러 갔었는데 그곳에 하필 국군의 군사 병력이 잠복되어 있었던 거지…….”

  굴레의 친구는 더 말을 잇지 않았다. 비상은 설마 하는 생각에 몸이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못했다. 그리고 떨면서 말했다.

  “그...그래서 어떻게 되었어요?”

  굴레의 친구는 고개를 휙 저며 땅을 바라보았다.

  “이쯤하면 말 안 해도 알지 않나?”

  비상은 이젠 알겠다는 듯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비상은 슬픈 표정으로 멍하니 생각에 빠졌다. 그러는데 작전을 알리려고 간부들이 시민혁명군을 정렬시켰다. 비상을 슬플 겨를도 없이 작전 설명을 들었다. 하지만 그 작전은 비상의 귀에 잘 들리지 않았다. 그는 작전 발표가 끝나고는 부대로 복귀해서 출발하기 전까지 씁쓸하게 무기 정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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