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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흰나비
작가 : 햇콩
작품등록일 : 2020.8.1

죽여 마땅한 성범죄자들을 청소하는 킬러 공무원 흰나비와
그 범죄자들까지 살리려는 불법 히어로 릴리의 만남.
2042년 서울에서 이루어지는 SF스릴러.

 
2화 2037년, 서울
작성일 : 20-08-02 23:15     조회 : 276     추천 : 0     분량 : 5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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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이한테 자기 직업을 어떻게 설명할 건가요?"

 

 이십 년 동안, 어쩌면 이백년 동안 반복되었을 질문. 흰나비의 어머니와 할머니가 들었던 그 질문이 흰나비에게도 던져졌다. 질문이 던져지는 이유 또한 이십 년 전과 같았다.

 

 "아이 낳을 생각 없어요."

 

 흰나비는 무난한 답변을 돌려주었다. 그 역시 흰나비의 어머니와 할머니 그리고 수많은 여성들이 반복해온 대답이었다.

 

 빨간 불이 깜빡였다. AI 면접관이 흰나비의 대답을 인식하는 소리가 들렸다. 흰나비는 손가락으로 의자 손잡이를 두번 두드렸다. 탁. 탁. 리듬감 있는 소리가 났다.

 

 통계를 기준으로 필요한 질문과 불필요한 질문을 구별하고, 그 결과 수많은 인간 선배들과 똑같이 어리석은 질문을 반복하는 AI 면접관은 그 소리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탁. 탁. 무의미한 소음으로 읽었을까. 탁. 탁. 반항심을 읽었을까. 아니면 흰나비 안에 내재되어 있는 불안을 읽어냈을까.

 

 "사람을 죽이는 일이에요. 죄책감은 느껴지지 않나요?"

 

 자기들이 지시하는 일이면서 AI 면접관은 왜 그리도 피해자 같은 말을 던졌을까. 흰나비는 그 태도가 의뭉스러웠다.

 

 "저는 청소부에 지원했습니다."

 

 "인간 청소부예요."

 

 "저는 아무도 죽이지 않아요."

 

 흰나비는 흔들림 없이 대답했다. 표정 없는 얼굴로 감정 없는 목소리를 뱉었다. 반면 AI 면접관의 목소리에서는 섬세한 감정이 느껴졌다. 비록 표정은 둘째치고 눈코입도 없이 모니터뿐인 얼굴이었지만, 이름 모를 성우가 열연한 덕에 그 목소리만큼은 흰나비보다 훨씬 인간적이었다.

 

 "저는 쓰레기를 치울 뿐입니다."

 

 쓰레기에게 느끼는 연민 또한 인간성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말이다.

 

 "N번방 가해자들을 쓰레기라고 생각하나요?"

 

 "예."

 

 흰나비가 아무리 확신에 찬 눈빛으로 말해도 많은 사람들은 그 대답을 믿지 않았다. 돈에 눈이 멀어 저지르는 자기 암시이거나 단순한 거짓말이리라고 멋대로 생각하고는 했다. 그들은 인간 쓰레기라는 단어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아무리 극악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라고 해도 인간은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들 또한 사람이며 최소한의 살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나요?"

 

 "들지 않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언뜻 아주 선량해보인다. 누구도 적극적으로 해치지 않으며 특히 자기 자신을 해치지 않는다. 안전하고 편안하다.

 

 "면접관님은 피해자들도 사람이며 최소한의 살 권리를 보장받아야 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으세요?"

 

 AI 면접관은 대답하지 않았다. 평균적인 면접 대상자들은 역질문을 하지 않고, 혹여나 역질문이 들어오더라도 면접관은 항상 건성으로 대답했기 때문에 데이터가 남아있기 어려웠다.

 

 "다른 사람의 권리를 해친 사람도 여전히 사람일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흰나비는 질문을 이어갔다. AI 면접관은 대답하는 대신 흰나비가 던진 역질문을 또다른 대답으로 인식하여 점수화했다.

 

 "사람이 사람이기 위해선 아무런 조건도 필요하지 않은 건가요?"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흰나비는 표정 없는 얼굴로 질문을 이어갔다. 그대로 데이터가 되더라도 아무것도 변하거나 왜곡되지 않을 만큼 기계적인 목소리였다. 흰나비는 AI 앞에서든 사람 앞에서든 항상 그 목소리를 유지했다. 그 사람이 아주 많고 공격성을 드러내는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2.

 

 "부모님한테 자기 직업을 어떻게 설명하실 겁니까!"

 

 기자는 습관적으로 마이크를 들이밀며 목소리를 높였다. 모니터 너머에서 다른 기자들도 뒤엉켜 아우성치는 게 보였다. 왜 이들은 항상 화가 나 있을까. 흰나비는 의아해하며 톡. 톡. 탁자를 두드렸다. 톡. 톡. 그 소리는 모니터 너머로 들리지 않을 터였다.

 

 "부모가 있는지는 어떻게 알아요?"

 

 흰나비는 한쪽 턱을 괸 채 테이블 위에 놓인 마이크를 살포시 쥐었다. 기자는 당황했고, 이내 다른 기자에게로 밀려났다. 밀려난 기자가 다시 일어났다. 모니터 앞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투쟁이 이어졌다. 그 주변에서 키보드를 격렬하게 두드리는 소리가 쏟아졌다. 거세게 비가 쏟아지는 것 같은 소리였다.

 

 대한민국 1호 인간 청소부, 부모 없이 자라. 인간 청소부 흰나비 "부모가 있는지부터 물어봐라" 발언. 부모 없는 아이 자라 인간 청소부 돼...정상가족 필요성 상승. 기자들이 무슨 헤드라인을 적어댈지는 안 봐도 뻔했다. 특히 보수 언론이 신나서 날뛸 광경이 벌써부터 보이는 듯했다.

 

 "돌아가신 부모님께 부끄럽지 않습니까?"

 

 "안 돌아가셨어요."

 

 다시 웅성거리는 소리가 높아졌다.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방금까지 급하게 적었던 헤드라인을 고치느라 바쁜 거겠지. 흰나비는 지루한듯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형식적으로 하는 기자회견이라고 들었다. 적당히 중립적인 얘기를 하고 적당히 청소 대상자들에게 애도를 표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하지만 정말 중립적이고 적당한 이야기를 원했다면 흰나비 옆에 감시원을 하나쯤은 붙여두지 않았을까. 흰나비는 누구 입맛대로 움직여주는 성격이 아니었다. 정부에서도 흰나비를 뽑은 이상 그 정도는 파악했을 것이다. 그곳이 제대로 운영되는 기관이었다면 말이다.

 

 "제 목소리 들리세요?"

 

 흰나비는 마이크를 잡고 기자들에게 물어보았다. 기자들이 웅성거렸다.

 

 "예. 들립니다!"

 

 성별도 나이도 알 수 없도록 변조된 목소리만이 기자회견장 스피커에서 나오고 있었다. 흰나비는 그 목소리를 들어보고 싶었다. 자기 원래 목소리와 변조된 목소리가 어떻게 다른지 궁금했다. 어떤 부분을 제거해야 이 목소리에서 성별도 나이도 유추할 수 없게 되는지 알고 싶었다.

 

 "제가 누군지 아시겠어요?"

 

 흰나비는 말에 다른 뜻을 담지 않았으나 기자들은 그 말에 숨은 뜻이 있다고 확신했다. 그들은 흰나비가 자기들을 놀린다고 생각하며 질문을 퍼부었다.

 

 "스스로 떳떳하면 나와서 대답하세요!"

 

 "자기 일이 부끄럽다고는 생각하시는 겁니까?"

 

 "얼굴 공개 하십쇼!"

 

 잡음이 커졌다. 흰나비는 볼륨을 천천히 줄였다가 아예 음소거버튼을 눌러버렸다. 화면 속 기자들은 여전히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지만 그 목소리는 흰나비에게 들리지 않았다. 흰나비는 마이크를 다잡았다.

 

 "저는 청소부입니다."

 

 기자들이 스피커에 마이크를 들이밀었다.

 

 "저는 아무도 죽이지 않아요."

 

 소리없이 키보드를 두드리는 모습이 보였다. 기자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키보드를 때려대거나 스피커를 뚫을 듯이 마이크를 들이밀었다. 흰나비 목소리를 듣고 있는 듯도 했고 듣지 못하는 듯도 했다.

 

 "저는 AI 재판관이 지정해준 쓰레기를 치울 뿐입니다."

 

 여기저기서 기자들이 입을 뻐끔거렸다. 흰나비는 볼륨을 빠르게 올렸다. 음소거가 해제되면서 스피커가 찢어질 듯이 큰 소리가 울렸다. 기자는 뭐라고 질문을 하긴 했으나 그 소리가 지나치게 큰 나머지 문장으로 전해지지 못했다. 흰나비는 다시 한번 음소거버튼을 눌렀다.

 

 "죽어 마땅한 흉악범만이 쓰레기로 분류될 것입니다."

 

 흰나비는 마지막으로 한번 더 음소거 버튼을 누른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명처럼 울리는 마이크 소리만이 방을 가득 채웠다. 자잘한 질문이 들려오기는 했으나 이전보다 훨씬 흐릿하고 그 소리가 작았다.

 

 목소리에 감정이 없기 때문인지 사람들은 번번이 흰나비가 하는 말을 곡해해서 받아들였다. 흰나비는 죽어 마땅한 흉악범을 정말 사람으로 분류하지 않겠다는 뜻이었으나, 기자들은 흰나비가 어지간한 죄로는 사람을 죽이지 않을 것이라고 받아들였다.

 

 결과적으로 이날 기자회견은 대중이 인간 청소부 제도를 경계하지 않게 된 계기로 작용했다. 매일같이 다채로운 범죄가 발생하고 또 무수한 사람들이 그걸 방관해왔으면서도, 누구나 자기 자신만큼은 무고한 존재일 거라 생각했다. 가끔 가다 죄를 인식한 사람조차도 그게 죽어 마땅한 잘못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흰나비가 총구를 겨누는 순간까지도 그들은 자기 잘못이 어지간했다고 믿었다.

 

 

 

 3.

 

 "애인한테는 무슨 일 한다고 말했어요?"

 

 스트라이프는 특이한 방식으로 무례하게 구는 사람이었다. 옛날 같았으면 로맨스, 요새 같았으면 뺨 맞을 문장으로 첫 만남을 시작했다.

 

 "애인 없어요."

 

 "와, 진짜? 안 그래 보였는데."

 

 흰나비는 무례함에서 로맨스를 찾기에는 과히 상식적인 사람이었다. 여전히 누군가는 로맨스와 무례를 구분하지 못했지만 다행히 세상은 바뀌어가고 있었고 상식의 기준도 차차 달라져가고 있었다.

 

 "일 얘기 합시다. 저희."

 

 "이것도 일 얘기 아닌가?"

 

 스트라이프가 샐샐 웃으면서 가벼운 말을 건넬수록 첫인상은 더 나빠졌다. 흰나비는 요즘 시대에도 비상식적인 사람이 참 많다는 게 아쉬웠고, 언젠가 동업자를 청소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잠깐은 했다.

 

 "최시우씨."

 

 "스트라이프요."

 

 스트라이프는 몸을 흰나비쪽으로 기울였다.

 

 "그쪽도 흰나비잖아요. 나는 스트라이프."

 

 "저희 이름 부를 일 잘 없을 겁니다."

 

 흰나비는 커피잔에 손을 뻗었다. 스트라이프는 커피를 마시는 흰나비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럼 나비라고 불러도 돼요?"

 

 흰나비는 스트라이프를 째려보았다. 스트라이프는 아랑곳 않고 미소지었다. 흰나비는 커피잔을 쨍, 소리가 나도록 내려놓았다.

 

 "한 마디만 더 하면 해고할 겁니다."

 

 "진짜? 기왕이면 해고말고 청소해줘요."

 

 아무런 감정이 나타나지 않던 흰나비 표정이 흔들렸다. 미간에 살짝 주름이 잡혔다.

 

 "정말 해고할까요? 그게 뭔지도 모릅니까?"

 

 "알아요. 알아서 지원한 건데."

 

 스트라이프는 짧게 소리내어 웃었다.

 

 "나는 나비씨한테 죽고 싶어요."

 

 흰나비가 헛웃음 쳤다. 스트라이프가 환한 얼굴로 흰나비를 가리켰다.

 

 "어, 웃었다!"

 

 스트라이프는 눈꼬리와 입꼬리를 각각 위아래로 잡아당기며 밝게 웃었다. 흰나비 표정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잠시동안 아무런 대화도 오가지 않았다. 스트라이프는 흰나비 앞에 있던 커피잔을 살폈다.

 

 "커피 더 드릴까요? 블랙?"

 

 흰나비는 대강 고개를 끄덕였다. 스트라이프는 커피잔을 들고 일어나 부엌으로 갔다. 흰나비가 스트라이프를 눈으로 좇으며 집을 둘러보았다. 깔끔하게 정돈된 살림살이가 눈에 들어왔다. 보드라운 카펫부터 시작해 테이블보까지 전체적으로 불그스름한 분홍색이 많았다. 얼핏 보이는 작은 책장 안에는 요리책이나 수예책 등 집안일에 관련된 도서만 들어 있었다.

 

 "과자 드실래요? 제가 구운 거예요."

 

 스트라이프는 따뜻한 커피와 바삭하게 구운 스콘을 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스콘 옆에는 생크림과 딸기잼도 발려 있었다. 흰나비는 말없이 고개만 저었다.

 

 "단 거 안 좋아하세요?"

 

 "진심입니까?"

 

 "아, 좋아하세요?"

 

 "청소해달라는 소리, 진심이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그쪽 좋아하는데."

 

 흰나비는 말문이 막혔다. 스트라이프는 웃음기를 싹 거두고 말했다.

 

 "진심이에요. 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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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황 20-10-20 07:10
 
잘 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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