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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나의 119.
작가 : 삼각형
작품등록일 : 2016.8.31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사고, 어머니의 유산을 독차지 하려는 아내, 아무런 의욕 없이 삶을 살아오던 주인공은 뇌사 상태에 빠진 어머니의 곁에서 어머니의 임종을 기다린다. 자신의 삶에 대해서 회의적으로만 생각하던 주인공은 어느 날, 병원 안을 산책하던 도중에 어린이 병동에서 꼬마 환자 박하를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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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10-17 17:33     조회 : 424     추천 : 0     분량 : 5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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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거 참, 이런 말씀을 드리기는 정말 죄송합니다만.”

  커다란 진료실 안, 그리고 이 진료실 안에서 가장 커다란 의자에 편히 앉으며 어머니의 담당의가 머리를 긁적인다.

  “워낙에 그 어머님께서 연세도 있으셨고, 병원에 도착하는 것도 늦어서, 제가 그 최선을 했지만, 아무래도 이 한계라는 게 있기 때문에…….”

  의사는 자신의 이마에서 떨어지는 식은땀을 닦아가며, 열심히 주저리주저리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겠는 말들을 이어간다.

  어려운 의학용어, 제대로 알아듣기도 힘든 속사포 같은 말, 금세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하는 의사.

  내용을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의사가 내게 전하고 싶은 뜻이 무엇인지는 잘 알 것 같았다.

  ‘저는 최선을 다했고, 제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싶다.

  “아, 그 제 말을 다 알아들으셨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 요점만 어떻게 말을 하자면…….”

  “그 요점은 됐고요.”

  듣고만 있으면 한이 없다.

  나는 줄줄 이어져 나오는 의사의 말문을 잠시 끊고 입을 열었다.

  “그래서 어머니 앞으로 얼마나 남은 것 같습니까?”

  진지한 내 눈빛을 알아채기라도 한 걸까, 의사는 내 눈을 바라보고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가 한숨을 내쉬며 힘들게 말을 꺼냈다.

  “얼마 전에, 그 길어야 두 달이라고 말씀을 드렸었죠?”

  떨리는 목소리와, 떨리는 눈동자로 의사는 내 눈을 바라봤다.

  “길어야……. 한 달이지 아닐까, 싶습니다.”

 

  “아, 몰라! 내가 어떻게 알아! 빨리 병원비나 더 보내봐! 지금 돈이 중요해? 사람이 더 중요해? 어? 우리 그러지 말자, 우리 힘들 때 누가 우리 챙겨줬는지 생각을 좀 해!”

  담배를 피러 이렇게 병원 옥상으로 올라오면 꼭 저렇게 누군가와 말다툼을 하고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

  “제발, 응?”

  큰소리로 전화기 너머 상대에게 소리치던 남자는 고개를 숙이며 손에 들고 있던 전화기를 더욱 꽉 잡는다. 그리고 별 말 없이 멍하게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다가 소매로 자신의 눈가를 쓱 문지르더니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나 또한 그 장면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다가 손에 담배를 들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급히 담배를 입에 물고, 라이터로 담배 끝에 불을 붙였다.

  한 달도 지나지 않아서 어머니는 이 세상을 떠날 것이 분명해졌다.

  어머니에 관한 어떠한 감정도 없음이 분명했는데, 어쩐지 아까부터 계속 손끝이 저리고 떨린다.

  지금까지 이 병원에서 죽치고 눌러 붙어 있던 목적이 다 이것 때문이었는데, 막상 상황이 닥치고 보니 앞이 막막해 진다.

  도움이 필요해진다.

  나는 담배에 입을 가져다 대고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떡할까.”

  혼잣말이 새어나온다.

  역시나 이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아내에게 연락하고 아내의 지시를 따르기만 한다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애초부터 이 병원에 오게 된 것도 아내의 뜻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할 일은 매우 간단하다. 휴대폰을 들고 아내에게 연락을 하기만 하면 될 터였다.

  그런데.

  어쩐지 그러기가 싫어진다.

  대충 살아왔던 인생이 전부 무색해질 정도로, 진지한 무언가가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기 시작한다.

  “사춘기도 아니고…….”

  또 다시, 혼잣말이 새어나온다.

  다시 중학생으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거의 다 문드러지고 썩어버린 어머니가 아직도 싱싱하게 살아있다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머니.

  이 병원에 오게 되고 나서부터인가, 어쩌면 나는 어머니가 병상에 눕기 전보다 지금 와서야 어머니를 더욱 오래 보고, 어머니에 대해서 더욱 오래 생각하는 것 같다. 지금까지 내게 있어서 어머니란 쓸데없는 참견은 단 하나도 필요 없는 그런 강직한 사람이었다.

  당연히 나는 어머니에 대해서 걱정해야 할 일이 없었고, 어머니도 내 일에는 어떠한 신경도 쓰지 않았었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적에도 물론이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말이다.

  그래도 나는 내 인생이 부족한 것은 없었다고 줄곧 생각해왔다.

  돈이 많으니까, 풍족하니까, 넘쳐나니까.

  오히려 어머니에게 감사인사를 하고 싶을 정도였다. 물론 실제로 어머니에게 감사인사를 드린 적은 없었지만, 나는 여기에 대해서도 어떠한 감정도 들지 않았다.

  한 마디로, 어머니와 나와의 관계는 전혀 깊지 않았다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한 순간은 없었으며, 각자의 인생에 충분히 만족하고, 충분히 행복하다고 여기며 살아왔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니까, 어머니에 대한 어떠한 감정도 내 안에는 남아있지 않을 것이고, 어머니에 대한 어떠한 추억도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아야 정상인 것이다. 나는 글러먹은 인간이니까, 나답지 않게 이것저것 혼자 고민하는 것은 분수에 맞지 않는 행동이다.

  그런데 도대체 나는 무엇에 이리 고민하고, 무엇에 이리도 주춤하는 것일까.

  머릿속에서 물음표들이 이리저리 요동친다.

  나는 다 타버리고 남은 담배꽁초를 바닥에 떨어뜨리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갑자기, 매우 뜬금없이, 꼬맹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갑자기 내가 이렇게 나답지 않게 고민하는 것은 그 꼬맹이의 영향이 아닐까. 그 밝고 해맑은 꼬맹이와 꽤나 오래 있다가 보니 ‘아 나도 저 꼬맹이 녀석을 조금은 본받고 힘차게 살아가자.’하는 기가 막히는 망상이라도 무심결에 든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 녀석의 모습이 내 어린 시절과 너무나도 대조되어 보여서 샘이라도 났던 걸까.

  샘이 났다면, 나는 그 꼬맹이의 어느 부분에 그렇게 샘이 났던 건가. 해맑은 웃음을 지어보일 수 있다는 점? 하고 싶은 말을 여과 없이 마음껏 말하고 다니는 점?

  자신 있게, 자신의 어머니를 사랑한다고,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점?

  나보다 몇 보는 앞서서 더 어른 같은 존재로 눈에 비춰진다는 점?

  머리가 아파온다.

  마치 정곡이 찔린 것처럼, 가슴도 아파온다.

  틀릴 것이다, 내가 그런 것에 샘을 부린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왜냐고 묻는다면, 답은 간단하다.

  나는 풍족했고, 넘쳐났고, 오히려 과했으니까.

  그렇다면, 그 풍족했고, 넘쳐났고, 오히려 과했던 건 무엇인가.

  눈이 번쩍 뜨이는 기분이 든다.

  풍족했고, 넘쳐났고, 오히려 과했던 건.

  내게 있어서 돈뿐이지 않았던가.

  풍족했고, 넘쳐났고, 오히려 과했던 건.

  내게 있어서 시간뿐이지 않았던가.

  부모의 사랑, 부모와 함께할 수 있었던 시간, 부모와의 대화, 부모의 사랑어린 눈빛, 부모와의 포옹. 이 모든 건, 내게 있어서 부족했고, 부족했고, 또 부족하기만 한 것들이었다.

  여태까지 부인해 왔던 것들이 까발려지기 시작한다.

  나는 스스로를 속여오기만 했었다. 정확히는 자기최면을 끊임없이 걸어왔다. 꼬맹이와 함께 했었을 때, 잠시라도 가벼움을 느낄 수 있었을 때, 내가 그 가벼움을 느낄 수 있었던 이유는 분명히 스스로가 그 꼬맹이에게 샘을 내고 있다는 걸 인정할 수 있어서였다. 못나고 추한 나의 더 못나고 추한 모습을 스스로 인정을 해버리니 그보다 더 가벼워질 수는 없었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했던 과거는 사실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과거의 한 장면 속에서 내가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었는지, 사실 전부 생생히 기억이 난다. 심지어 어젯밤 꾼 악몽의 내용도 지금에 와서는 생생히 기억이 난다.

  나는 분명히 원했다. 부모의 사랑을 원했으며, 부모의 눈길을 원했다. 가족이 함께 외식을 하고 싶었으며, 가족과 함께 영화를 감상하고 싶었다. 변신을 하는 로봇 장난감보다 아버지의 목마를 원했고, 고급 제과점의 케이크보다 어머니가 직접 만든 간식을 먹고 싶었다.

  그리고 부모 앞에서 어떠한 요구도 떳떳이 할 수 없었던 나 자신이 몹시 한심했다. 한심하고 불쌍하고 불행한 놈, 용기 없는 한심한 겁쟁이, 머저리. 폭소가 터져 나올 정도로 나는 스스로를 잘 평가하고 있었다.

  생각은 있으나, 몸을 움직일 수도 없는 놈. 두 다리, 두 팔, 멀쩡히 달렸으면서도 실천이라는 걸 할 수 없던 허수아비 같은 인간이었다.

  때문에 나는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기로 했다. 스스로에게 선물을 주기로 했다. 선물의 내용은 행복, 나는 자신의 행복을 스스로 만들어 스스로에게 선물했다. 웃기지 않은가. 한심하지 않은가. 나는 그 행복을 스스로가 대충 살아갈 수 있는 이유로 만들었다. 최선이나 노력과 멀어지기 위해서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대며 자기 위로를 한 것이다.

  “씨팔.”

  절로 욕이 나온다.

  그래, 이거였다.

  이 욕이 향하는 목적지에는 내가 있다.

  샘났다, 엄청나게 샘이 났다.

  아프고, 불편하고, 심지어는 한심해 보이는 데도, 진심으로 행복하게 웃을 수 있다는 것에 샘이 났다. 어릴 적 내 모습이 너무나도 부끄럽고, 너무나도 한심하게 생각이 되어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나는 글러먹은 인간이다.

  그나마 남아있던 것들이 부서지고, 더러운 알몸이 까발려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 감정을 후련한 감정이라고 말해야 할까.

  드디어 조금은 후련해진 걸까.

  허나, 그렇다고 뭐가 어떻게 달라진 건 아니다.

  지금 내게 도움이 절실하다는 것이 어떻게 달라진 건 아니다.

  스스로의 한심함을 인지했다고, 한심한 자신이 어떻게 달라지는 건 아니다.

  이 상황에서 어쩌면 좋을지 도저히 모르겠는 건 사실이다.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진다.

  나는 숙였던 고개를 들고 용케 아직까지 아내에게 연락하지 않은 휴대폰을 든 왼손을 바라봤다.

  아무래도 오늘은 도저히 연락할 기분이 아니군.

  어쩌면 나는 그 꼬맹이보다도 더 어린애가 아닐까 싶어져서 쓴웃음이 밀려온다. 그 쓴웃음을 참을 수 없어, 나는 입을 실룩거리며 옥상을 나와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하얀 옷을 입은 환자를 지나치고, 웃고 떠드는 간호사드를 지나치고, 하품을 하며 피곤한 기운을 내뿜는 의사들을 지나치고, 용도도 제대로 모르는 의료기구들을 지나쳐서.

  나는 어머니가 누워있는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지금 이 어머니에게는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러니까 내가 여기서 무슨 말을 떠벌리든 절대 어머니가 내게 반응하는 일은 없다. 그러므로 나는 이 어머니에게 투정도, 감사도, 시시콜콜한 이야깃거리도 떠벌릴 수 없을 것이다. 설령 그럴 마음이 있다고 해도, 행동으로 옮길 수 없는 게 나라는 인간이다.

  뭘 하려거든 간에, 지금은 너무 늦었다. 시간은 되돌릴 수 있는 게 아니고, 결과적으로 이 병상에서 어머니가 일어나는 일도 없다. 나는 부모와 진솔한 대화를 단 한 번도 나누지 못한 자식으로 남을 것이고, 이 어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한심할지도 모르는 멍청한 자식을 둔 어머니가 될 것이다.

  여기에는 시체가 두 구 있다.

  죽어가는 시체, 그리고 살아있는 시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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