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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흰나비
작가 : 햇콩
작품등록일 : 2020.8.1

죽여 마땅한 성범죄자들을 청소하는 킬러 공무원 흰나비와
그 범죄자들까지 살리려는 불법 히어로 릴리의 만남.
2042년 서울에서 이루어지는 SF스릴러.

 
1화 2042년, 서울
작성일 : 20-08-01 19:36     조회 : 383     추천 : 0     분량 : 5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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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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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흰나비가 처음으로 선생님을 만난 날은 5월 중순이었다. 적당히 유복하고 그리 나쁜 구석 없이 좋은 집에서 첫째 딸로 태어난 흰나비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가 되니 온 집안은 신이 나 들썩였다. 당장 학교에 들고 갈 책가방을 샀고 그 안에 채워넣을 온갖 문구용품을 샀다.

 

 브랜드명이 커다랗게 박힌 민트색 책가방은 아주 예쁘고 귀여웠다. 흰나비는 그 가방을 메고 싶어서라도 어서 학교에 가고 싶었고 매일같이 가방을 안고 잠들었다. 첫 수업을 시작하는 모니터 앞에 앉아서도 설레는 마음으로 가방을 꼭 안고 있었다.

 

 "우리 예쁜 친구들 얼굴을 못 봐서 너무 아쉽네. 다들 손 열심히 씻고, 마스크 꼭 하고 다녀서 코로나 끝나면 꼭 선생님이랑 마주 보고 수업하자?"

 

 모니터 속 선생님은 인상 좋은 남성이었다. 아마 이십대 후반에서 삼십대 초반 사이였을까. 흰나비는 그의 정확한 나이를 기억하지 못했다. 혹은 애초부터 알지 못했던 건지도 모른다. 그에 대해 많은 것이 기억나지 않았다. 사실은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했기에 그 이름을 청소 대상자 명단에서 확인하고도 무심코 지나쳤다.

 

 흰나비가 선생님을 청소한 날도 5월이었다. 선생님은 오프라인 수업 학생들, 즉 흰나비 초등학교 선배들 불법촬영 사진을 유포한 혐의가 있었다. 당시 크게 문제가 되었던 N번방 회원 중 하나였다고 한다. 주동자였는지. 아닌지. 그건 마지막 순간에까지 밝혀지지 않았으나 흰나비는 그들 모두가 주동자였으리라고 생각했다.

 

 "선생님. 전, 저는, 오해가 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진짜, 실수로 들어가기만 했어요. 그때 제가 집에 고양이를 키웠는데...그놈이 에지간히도 똘똘해서...그, 실수로 버튼을...."

 

 선생님은 흰나비를 선생님이라 부르며 매달렸다. 흰나비는 그 얼굴을 내려다보면서야 그가 초등학교 1학년 때 모니터 속에서 보았던 인상 좋은 남성이라는 걸 기억해냈다. 당시 서른 즈음이었던 그는 이제 오십 대 중년 남성이 되었다.

 

 "선생님."

 

 "예, 선생님....예. 말씀하십쇼. 말씀 편하게..."

 

 흰나비가 그를 부르자 선생님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참 멍청해보였다. 이런 인간이 누군가의 첫번째 교육을 담당했다니. 자신도 그런 학생 중 하나라니. 흰나비는 잠시 대한민국 교육기관에 큰 회의감을 느꼈다.

 

 "제가 올해 서른이니까. 그땐 2020년이었겠네요."

 

 무감정한 목소리였다. 흰나비는 덤덤하게 천장을 응시하며 첫 수업날을 떠올렸다. 아직은 유치원 같기도 하고. 이젠 정말 학생 같기도 한. 애매한 원격 입학식 날 만난 선생님은 커다란 안경을 쓰고 있었다. 그 안경테가 둥글었다는 게 어렴풋이 떠올랐다.

 

 "1학년 3반..."

 

 흰나비는 자기 본명을 말하려다가 아, 소리를 내며 멈추었다.

 

 "이름은 기억 못하시겠구나. 저희 만난 적 없잖아요."

 

 철컥. 장전하는 소리가 났다. 흰나비는 총을 제대로 쥐었고 선생님은 얕은 신음소리를 내며 다시 한번 매달렸다. 흰나비 바짓가랑이를 붙든 손에 땀이 맺혔다.

 

 "아니. 아냐. 왜, 왜 기억을 못해. 아이고. 아이고...내가 못 알아봐서 서운했구나. 아, 그래. 그때 우리 애들 얼굴 볼 기회도 많이 없긴 했지. 아유, 그래도 선생님은 다 기억해. 응?"

 

 "아뇨. 모르실 거예요."

 

 흰나비는 총구를 선생님 머리에 갖다댔다.

 

 "그때 선생님 쫓겨났잖아요."

 

 가방을 메기보다 안고 다니는 게 더 친숙해졌을 즈음이었다. 어린 흰나비는 드디어 학교에 갔다. 반팔과 반바지차림으로 엄마 손을 잡고 종종걸음으로 걸어가니 학교에는 경찰들이 와 있었다.

 

 수사가 그리 박진감 있지는 않았다. 아마 학교 측에서는 유야무야 해결할 셈이었던 모양이다. N번방 주동자 중에는 선생님보다 훨씬 어리고 악질적인 사람도 많았지만, 그들조차 천천히 잡혀갔으니까. 선생님은 여러 모로 무난한 수준이었다. 동영상이 아니라 사진만 올렸으며 음란물 수위도 높지 않았다고 해명하는 이야기가 교무실에서 계속 들려왔다.

 

 그건 해명이 아니라 변명이었겠고 그 범죄에 무난함이란 없었겠지만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흰나비를 비롯한 학생들도 그 이야기를 능히 들을 수 있었다. 해명인지 변명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선생님을 기억하기에는 충분한 수준이었다. 학부모들은 더욱 선명히 들을 수 있었고, 그들은 그게 해명인지 변명인지 분명히 판단할 수 있는 어른들이었다.

 

 결국 선생님은 오프라인 수업을 진행하지 못하고 정직당했다. 정직이 풀릴 즈음에는 세상이 많이 바뀌었고 선생님은 교직에 복귀하지 못했다. 그 이후의 행방은 알 수 없었다. 가해자가 너무 많으면 세상은 그들에 대해 비판하거나 알리기를 포기하고 말았으니까.

 

 "나중에 감옥은 가셨어요? 그러니까, 한 번이라도? 아님 일 년이라도?"

 

 흰나비를 붙든 손에서 힘이 빠졌다. 선생님은 아랫입술을 악물었다. 식은 땀이 흐르고 있었다. 화가 난 표정이었는데, 꽤 억울해하는 듯 보였다.

 

 "야, 씨발... 내가 니 사진 찍었냐?"

 

 선생님은 비틀대며 일어서더니 다 알겠다는 듯이 헛웃음쳤다.

 

 "아니 썅....아 학교 선생한 게 죄야? 이거 존나 사생활 침해라고. 씨발 살인 공소시효도 이만하면 끝났지. 썅. 작작 좀 하자! 어? 언젯적 N번방이야?"

 

 흰나비는 시계를 확인했다. 8시 58분. 등교 시간도 그 즈음이었겠지. 이제 곧 일을 할 시간이다.

 

 "막말로 이제 뒤질 새낀 다 뒤졌잖아! 내가 갓갓이냐?"

 

 선생님은 악을 쓰며 주변에 있던 소주병을 집어들었다.

 

 "내가...내가 씨발...."

 

 소주병에는 브랜드 로고만 덜렁 붙어 있었다. 흰나비가 어렸을 때는 거기에 헐벗은 여자 사진이 붙어있었지만 이젠 그것도 옛말이었다. 흰나비는 술과 여성을 연결시킬 수 없는 세대였지만 선생님은 달랐다. 그는 여전히 모든 걸 여성과 연관시킬 수 있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을 촌스러운 어린 아이로 매도하곤 했다.

 

 "내가 죽을 죄라도...!"

 

 총소리가 들렸고 선생님은 브랜드 로고만 붙어 있는 소주병을 쥔 채 죽었다. 이제 그는 절대로 소주병에 여자 사진이 붙어 있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알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다행히도, 더 이상은 타인을 촌스러운 어린 아이로 매도하지도 못할 것이다.

 

 "지었겠죠."

 

 흰나비는 조용히 총을 들어 다시 한번 방아쇠를 당겼다. 총알은 나가지 않았다. 대신 흰나비가 차고 있던 스마트 워치에 선생님의 개인 정보가 떴다.

 

 박태식, 무직, 54세 (사망)

 

 화면을 한 번 눌렀다. 잠시 로딩이 이어지더니 "전송 완료되었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떴다. 흰나비는 다시 한번 화면을 눌렀다. 화면이 꺼졌다.

 

 흰나비는 자리에 앉아 총을 닦았다. 살충제가 흘러나왔다. 살충제 자체는 확실한 독약이었고 뒷처리도 상당히 깔끔했지만 역시 스마트 총 자체가 아직 발전중인 단계라 다소 아쉬웠다. 발포할 때마다 총알 안에 있던 물질이 묻어나오는 게 영 번거로웠다.

 

 반면에 선생님이 죽은 자리는 깔끔했다. 인간 신체 70프로를 차지하는 액체를 죄다 흡수해준다는 점에서 살충제는 정말 혁신적인 제품이었다. 뒷정리까지 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이만큼 반가운 일도 없었다.

 

 흰나비는 킬러였지 염습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시체가 뱉어낸 온갖 토사물을 처리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걸 굳이 애써 배우고 행하기엔 직업적 발전 욕구가 높지 못했다. 살인자라고 해도 결국은 철밥통 공무원이었으니까. 죽이라고 들은 사람만 열심히 죽이고, 깨끗이 청소만 하면 됐다.

 

 시간은 어느덧 아홉시에 들어섰다. 흰나비는 기지개를 켰다. 귀찮지만 오늘도 일을 해야 했다. 흰나비는 주변 자리를 치웠다. 처음에 흰나비가 들어왔을 때 난동을 피우느라 엉망이 된 것들을 전부 쓰레기봉투에 밀어넣었다. 깨진 컵이나 제멋대로 흩어진 각종 살림살이를 치운 뒤에 선생님이 쥐고 죽은 소주병을 잡아당겼다. 꽉 쥐고 죽어 빠져나오지 않았다.

 

 "아...이거 분리수거 해야 하는데..."

 

 흰나비는 투덜대며 칼을 꺼냈다. 옷가지까지는 타는 쓰레기로 분류해 주지만 유리병은 달랐다. 재활용을 해야 했다. 손을 자를까. 병만 잘 끊어내볼까 고민하던 차에 스마트워치에 알림이 왔다. "스트라이프"라고 적혀 있었다. 흰나비는 이어폰을 끼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나비야~ 끝났어?"

 

 스트라이프는 애교 섞인 목소리로 흰나비를 불렀다. 성인 남자보다는 변성기 소년 같은, 높고 얇은 톤이었다. 흰나비는 높낮이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톤으로 대답했다.

 

 "분리수거 중."

 

 "오래 걸려?"

 

 흰나비는 선생님 손 가까이에 칼을 대고 어떻게 자를지 각을 재어보았다. 손가락만 썰어내도 좋지 않을까.

 

 "왜?"

 

 "편지 왔어."

 

 선생님 손에는 털이 길게 자라 있었다. 흰나비는 조금 역겨웠다.

 

 "무슨 편지?"

 

 흰나비는 그냥 손목째로 잘라내려고 했다. 투실하니 살이 붙은 손목에 칼을 가져다댔다. 살짝 힘을 주어 눌렀다. 피가 방울져 맺혔다.

 

 "예쁜 편지. 아니다. 엽서?"

 

 하얀 백합 한 송이가 흰나비 손에 날아와 꽂혔다. 흰나비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뗐다. 백합이 꽂힌 자리에서 피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이걸 뭐라 그러더라? 메일은 아니고..."

 

 구두 소리가 들렸다. 흰나비는 백합이 날아온 방향을 노려보았다. 총을 다시 집었다. 또각. 또각. 하이힐 소리가 점차 가까워졌다.

 

 "이게 한 장짜린데...접히는 거거든?"

 

 흰나비는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총을 겨누었다. 멀리서 어렴풋이 사람 형체가 보였다. 긴 머리가 구불져 흘러내리는 게, 여자인 듯했다.

 

 "맞다, 카드!"

 

 탕. 발포음이 울렸다. 흰나비는 다가오는 그림자를 향해 총을 쏘았다. 탕. 탕. 발포음은 두 번 더 울렸다. 흰나비가 방아쇠를 누른 횟수와 일치했다. 흰나비는 한 번 더 방아쇠를 당겼다. 스마트워치에서 알림음이 들려왔다.

 

 대상 정보 없음

 

 흰나비는 총을 내렸다. 발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그림자도 사라졌다. 그리고 눈앞에 있었던 선생님 시체 역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나비야, 아직 안 끝났어?"

 

 "끝났어."

 

 정확히는 흔적도 없지는 않았다. 흰나비는 시체가 남긴 유일한 흔적을 집어들었다. 새하얀 백합 한 송이가 그려진 검은 카드 한 장이었다.

 

 "총 소리 들렸는데."

 

 흰나비는 카드를 펼쳐 내용을 살폈다. 청첩장처럼 꽃이 곳곳에 그려진 디자인이었지만 하나같이 검은색이었다. 검은 바탕에 하얀 글씨가 딱 두 줄 적혀 있었다. 문장 하나와 이름 하나.

 

 "카드, 누가 보낸 거야?"

 

 "모르는 사람인데..."

 

 - 이름 없는 풀은 없다. Lily

 

 "릴리라고, 알아?"

 

 흰나비는 카드를 접어 쓰레기 봉투에 던져넣었다. 쓰레기봉투 끄트머리를 잡아당겨 묶었다. 전쟁이라도 난 듯 엉망진창이었던 집은 이제 많이 깔끔해졌지만, 시체가 없는 쓰레기 봉투는 제법 가벼웠다.

 

 "몰라."

 

 흰나비는 쓰레기봉투를 챙기며 말했다.

 

 "난 쓰레기 이름은 안 외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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