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넓지는 않았지만 혼자 살기에는 적당한 듯 보였다. 방 두개에 부엌과 연결되어 있는 거실. 그리고 화장실이 전부였다.
진짜가을은 인테리어에는 관심이 없는 듯 거실은 소파와 티 테이블 그리고 책장과 장식장이 집은 넓지는 않았지만 혼자 살기에는 적당한 듯 보였다. 방 두개에 부엌과 연결되어 있는 거실. 그리고 화장실이 전부였다.
진짜가을은 인테리어에는 관심이 없는 듯 거실은 소파와 티 테이블 그리고 책장과 장식장이 전부였고 그 위에 올려있는 화분만이 유일하게 포인트로 보였다.
심플하니 깔끔해서 좋네.
누군가 본다면 단촐하다고 생각이 들수도 있지만 가을은 복잡하지 않고 단순한 인테리어가 마음에 쏙 들었다.
"맘에 드네요"
첫인상이 그랬다. 그러자 옆에서 가벼운 웃음 소리가 들렸다.
"당신 집이니깐 당연하겠지."
"아.... 그... 그렇죠 하하"
가을은 어색하게 웃으며 베란다쪽 방 문을 열었다. 그곳은 침대, 서랍장만이 단촐하게 있었고 다른 방은 드레스룸으로 쓰이는 듯 옷장에 걸려있는 옷들과 그리고 벽면 한편에 아무렇게나 놓여져있는 상자가 전부였다. 그리고 그 어디에도 진짜가을의 영혼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에 숨은거지? 분명히 집에 있어야 하는데.
아직 지혁이 있어서 꼼꼼히 살피지는 못했기에, 그가 돌아가면 옷장 어딘가, 아니면 구석진 곳에라도 있을거라는 기대감을 버리지 않고 문을 닫았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바로 찾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보이지 않자 그 실망감이 그대로 가을의 얼굴에 들어났다.
거실로 나오자 지혁이 소파에 앉아 옆자리를 가볍게 두드리며 가을을 불렀다.
"여기 앉아봐"
그녀를 부르는 지혁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그가 저 표정일때는 한번씩 폭탄을 던졌기에 또 어떤말이 나올지 긴장한채 그 옆에 앉았다.
"기억이 어느정도 돌아오면 말해주려 했는데, 퇴원까지 했으니 더이상 미루면 안될것 같아서. "
"무슨 말이요?"
"음..."
지혁은 어떻게 해야 그녀가 충격을 덜 받을까 입안에서 적당한 말을 찾으려 했지만, 어떤 말을 해도 그녀가 받을 충격은 같을 것 같았다.
또다시 가을을 힘들게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에 괴로웠지만 집으로 돌아 온 이상 그녀도 어떻게든 알게 되겠지.
“충격 받지 말고.”
가을이 쓰러질거라고 예상이라도 하듯 지혁이 그녀의 어깨를 부드럽게 잡았다.
"그러니깐 쓰러지기 한달 전 쯤...당신의 부모님께서 사고로 돌아가셨어."
무슨말을 하는거지?
가을은 잠시 이해하지 못한채 눈을 깜빡 거렸다.
"교통사고였고 당신이 잘 정리하고 보내드렸어."
지혁이 덤덤하게 말하는 듯 보였지만 그녀에게 이런 소식을 전하는게 내키지 않는 목소리였다. 그리고 그가 말을 더 이어나갔지만 가을은 귀가 멍한 듯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러니깐 내... 아니 이가을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말...
"어...?"
생각이 더이상 이어나가지 못했다. 진짜가을이 아니니 분명히 덤덤해야 하는데,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두 볼을 타고 떨어졌다. 멍한 표정으로 눈물을 뚝뚝 떨구는 그녀를 보고 지혁의 얼굴이 구겨졌다.
"미안하다."
지혁이 미안할게 뭐가 있는가. 그는 그저 사실을 이야기 한 것 뿐인데 그의 얼굴은 가을보다 형편없어 보였다. 처음 보는 당황스런 표정에 그녀는 피식 웃음이 났다. 하지만 웃으면서 울고 있는 그녀의 표정에 그의 얼굴은 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젠장..."
짧게 비속어를 뱉으며 그는 그대로 가을을 감싸 안았다. 실컷 울라는 듯 자신의 어깨에 얼굴이 묻을 수 있게 머리를 감싸 안으며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괜..찮... 흐어엉엉, 허엉"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냥 당신 표정이 이상해서 웃었다고 해줘야하는데. 말은 단어가 되어 내 뱉지 못하고 뭉개져 울음소리가 되었다. 저릿한 가슴의 통증에 아파와 가을은 크게 소리내어 울었다. 진짜가을이 울고 있는 것 같았다.
***
퉁퉁 부운 눈에 얼음팩을 올리니 열기가 조금 가라앉았다. 몸이 원하는대로 흘리고 싶은 만큼의 눈물이 다 쏟아져 나온 한참 뒤에야 스스로 감정을 컨트롤 할 수 있게 되었다. 감정에 모든 걸 맡겼을 때는 몰랐는데 정신이 들고 나서야 그의 품에 안겨 있다는 걸 깨달았다. 너무 펑펑 울었다는 생각과 창피함에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자 그가 눈물이 그친걸 알았는지 자연스럽게 냉장고에서 얼음을 꺼내 팩을 만들어 가을에게 건냈다.
"한 두번 온거 아니죠?"
"정확히 오늘까지 세번째지"
"푸훗, 그러기엔 너무 자연스러운데"
큰 키에 쭈그려 앉아 낮은 서랍에서 봉투를 찾아내던 그의 모습이 생각나 웃음이 났다.
“전에 왔을 때 눈여겨 봤거든.”
“서랍까지요?”
“그때 당신이 비닐봉지에 뭘 담아 줬는데, 그게 뭔지 궁금하지 않아?”
위로해주던 모습은 어디갔는지, 그때 가을이 어처구니없는 걸 줬던 듯 살아생전 이런 걸 받은건 처음이라는 듯한 목소리였다. 보이지 않아도 한쪽 눈썹을 올린채 삐뚜름히 웃고 있는 그가 상상이 되었다.
"음...아뇨. 제가 기억해 볼게요"
궁금하긴 한데, 그의 어이없어하는 목소리로 봐서는 그렇게 말하면 안될 것 같다.
“허...”
그녀의 눈치 빠름에 말문이 잠시 막혔다가도 다시 원래의 그녀로 돌아온것 같아 지혁은 피식 웃었다.
가을은 눈이 어느정도 가라앉은 듯 싶어 얼음팩을 테이블 위에 두고 두 세번 정도 눈을 깜빡였다. 흐렷던 시야가 뚜렷하게 잡히자, 다리를 꼬고 앉아 폰을 보고 있는 그가 보였다. 지혁이 메시지를 확인하고는 혀를 가볍게 찼다.
"이제 가봐야겠어"
아까부터 전화를 받지 않자 단체로 작정이라도 한 듯 한명씩 돌아가며 메시지를 폭탄처럼 보내왔다. 대부분 내용은 한결 같았다.
‘대표님 언제 오세요 ㅜㅜ’
‘죽겠습니다. 언제 오시나요.’ 등등,
하지만 그 중 한 명, 그나마 지혁에게 협박을 할 수 있는 창립멤버인 나윤만이
‘올 때 별 마카롱에 들려서 인절미, 치즈, 돼지바... 아니 거기 있는거 하나씩! 사오지 않으면 이대로 퇴사 각입니다.’
그에게 심부름을 시켰다. 나윤은 단 걸 먹지 않으면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며 종종 밖에 나가있는 지혁에게 부탁 아닌 부탁을 하곤 했었다. 여기서 회사까지의 거리도 가깝지 않지만, 마카롱 가게를 들렸다 가면 한참을 둘러 가야함에 그는 한숨을 내 쉬었다. 하지만 나윤에게 빚을 지고 있는 이상 들어주지 않으면 그 후가 더 골치 아픔을 알기에 그는 핸드폰을 들고 자리에 일어났다.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고.”
지혁이 일어서자 가을도 따라 자리에 일어났다. 그리곤 그녀는 대답 대신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핸드폰을 봤다. 여전히 먹통인 폰. 그의 시선도 같은 곳을 바라보더니 잊고 있었다는 듯 혀를 차고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어 그녀에게 건냈다.
"준다는걸 깜빡했군. 당분간 이 폰으로 사용하고 이건 수리 맡기도록 하지.“
“고마워요.”
“그리고 무슨일이 있으면 그 번호로 연락해"
핸드폰에는 그의 번호가 입력되어 있었다. 가을은 번호를 저장하기 위해 추가 버튼을 눌렀고 그리곤 이름을 적는 란에서 잠시 손가락의 움직임을 멈췄다.
뭐라고 적어야 하지? 주지혁대표... 직함과 함께 적으려다 지혁씨라고 부르라던 그의 말이 생각이 났고, 그렇다고 지혁씨라고 쓰기에는 그와 너무 개인적인 관계로 보이는 듯 했다.
근데 이게 그렇게 크게 고민할 거리인가. 가을은 아무것도 붙이지 않고 주지혁 이름 세글자만 입력하고 그대로 저장 버튼을 눌렀다.
“근데 핸드폰은 언제 쯤 고쳐질까요?”
“내가... 수리기사도 아닌데 어떻게 알겠어?”
또 갑자기 왜 이렇게 까칠하게 구실까. 다정했다가 가끔 까칠해 보이는 성격을 보면 그도 외동에 재벌2세는 맞는가보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재벌에 대한 편견일지 모르겠지만.
“호호, 아니, 말 좀 잘해주시라구요.”
그 팀장에 팀원이라고, 대표를 심부름꾼 취급하는게 나윤과 가을이 똑 같았다.
가을은 그의 등을 가볍게 밀며 문앞까지 배웅나갔다. 물어볼 말이 산더미 같이 있지만 바빠보이는 그를 더이상 붙잡아 둘수 없었다.
"얼른 가보세요."
"문 단속 잘하고, 무슨일 있으면 연락하고"
"풋, 네네 알겠습니다."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 취급 하는 듯한 그의 말에도 가을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걱정해주는 따뜻함에 고마웠다.
"지혁씨야 말로 운전조심해서 가요. 안전운전"
말 어디가 이상했던 걸까? 문을 열다말고 그가 묘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지혁은 아마 자신도 그녀를 그렇게 바라보는 줄 의식도 하지 못한 채 애정 가득한 눈빛으로 웃었다.
“그거 알아 이가을? 방금 처음으로 내 이름 불렀어.”
두근,두근
갑자기 가을의 심장이 터질 듯 뛰기 시작했다. 빠른 펌핑에 얼굴까지 피가 올라옴이 느껴졌다. 이러다 터질것 같아 자신도 모르게 한손을 심장 위에 올렸다.
심장위로 살포시 올리는 그녀의 손을 보고 지혁이 피식 웃었다.
“새삼 반했나?”
“무...무슨! 얼른 가세요. 늦겠어요.”
발개진 얼굴로 얼른 나가라며 독촉하듯이 가을이 직접 문을 열었다.
시선조차 마주치지 못하는 그녀의 모습이 귀여웠지만 그도 이제는 정말 가야했기에 더 이상의 말은 붙이지 않았다.
"쉬어. 내일 연락할께."
“네, 조심히 가세요. 오늘... 고마웠어요.”
인사 대신 싱긋 웃으며 복도로 걸어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가을은 가만히 바라봤다. 그가 엘리베이터에 타고 나서야 문을 닫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아~ 이제 슬슬 찾아볼까?”
이제야 자유를 얻은 느낌이다. 병원에 있을 때 지혁이 진짜가을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긴 했지만 그를 통해서 얻는 정보는 제약적이었다. 아무도 없는 지금 이곳에서본격적으로 진짜가을에 대한 정보를 하나씩 찾아갈 생각이었다.
그녀는 가볍게 기지개를 켜고 넓지 않은 거실을 둘러봤다. 지혁이 일주일에 한번 업체를 불러 청소를 했다고 하더니 한달동안 비워둔 집 답지 않게 먼지 하나 없었다. 그 덕분에 장식장 위의 꽃도 어여쁘게 피어서 보라색 꽃잎을 뽐내고 있었다.
그녀는 먼저 책장을 뒤져보기로 했다. 혹시 책 사이에 다이어리라도 꽂혀있을까 싶었지만 일기 쓰기는 취미가 없는지 그 비슷한 것도 보이지 않았다. 넓지 않은 거실에 인테리어도 단조롭기 그지없어 뭘 숨겨둘 공간도 없는데 찾을 수 있는 정보는 더 없는 듯 했다.
가을은 갑자기 아까 전 봤던 옷방의 상자가 떠올랐다.
방으로 들어가 상자의 뚜껑을 열자마자 첫번째로 보이는건 가족 사진이었다.
"부모님인가...“
가운데 진짜가을이 해맑게 웃고 있고 좌우로 그녀의 부모님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여행을 가서 찍은 듯 뒤에는 라벤더 꽃이 활짝 펼쳐져 있었다.
"닮은 듯 닮지 않았네..."
웃는 모습이 닮아있는 가족이었다. 이렇게 행복해 보이는 가족에게 왜 갑자기 그런 큰 아픔이 찾아왔을까. 사진속의 진짜 가을은 세상 행복해 보이는 표정인데, 병실에 누워 있을 때 본 그녀의 모습은 지치고 슬퍼보였다.
손가락으로 가볍게 액자를 쓰다듬자 자신도 모르게 다시 감정이 솟구쳐 올라올 것 같았다.
"가을아, 오늘은 그만하자."
할일이 너무 많아.
울컥 올라오려는 감정을 몇번의 심호흡으로 추스리며 시선을 다시 상자 안으로 돌렸다. 상자 안에는 또 다른 액자가 뒤집어진채 넣어져 있었다.
가을은 가족사진을 바닥에 두고 액자를 꺼내어보았다. 어머니의 영정사진 이었다. 밑에 있는 또 다른 액자는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그녀는 꺼냈던 모든 사진을 다시 상자안에 넣고 뚜껑을 닫았다. 갑자기 숨조차 잘 쉬어지지 않는 것 같아 가을은 숨을 멈추고 그 방을 빠져나왔다.
“하아 하아”
가을은 문에 기대어 그대로 주저 앉았다. 다급히 산소를 들이마시며 크게 심호흡을 하자 잠시 뒤 호흡은 편안해졌다. 하지만 몸에는 힘이 다 빠진 듯 손끝이 가볍게 떨렸다.
몸이 느끼는 거부감은 생각보다 컸다. 그런데 왜 마음 또한 이렇게 불편한걸까.
가을은 떨리는 손을 붙잡고 얼굴을 무릎사이에 묻었다. 당분간 이방은 들어가지 못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