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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엄마, 그 인간, 그리고 나린
작가 : 세가잘놀
작품등록일 : 2016.10.5

'가난'이란 한 단어로 정의하기엔 조금은 부족한 듯한,
지금은 평범한 직장인 85년생 나린이의 굴곡진 삶.
과거를 지나 현재까지의 우리, 우리 부모님 이야기.

 
2_8
작성일 : 16-10-17 10:13     조회 : 467     추천 : 3     분량 : 5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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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년이 올라가면서 혼자 하는 공부가 점점 버거워졌다. 특히 영어는 아무리 책을 들여다보며 정을 붙이려 해도 흥미가 없었다. 내가 돈이 어디 있다고 미국에 가서 영어를 쓸 일이 있을까, 싶었다. 영어뿐만 아니라 사회, 가정, 기술, 한자, 체육, 미술, 음악 할 것 없이 뭐 하나 쓰잘데기 있어 보이는 게 없었다. 미술 시간엔 어떻게 그려야 잘 그리는 건지도 안 알려주면서 미술 작품을 그려내 점수를 받아야 했고, 음악 시간엔 리코더랑 단소만 가르쳐줘 놓고서 ‘자율 악기 연주’ 실기평가를 했다. 음악회를 보고 와서 보고서를 작성하라는 실기평가는 나보고는 하지 말라는 소리로 들렸다. 미술학원 다니고 피아노, 바이올린학원 다니는 애들이 점수를 잘 받는 걸 보며 울분이 났다. 그나마 자신 있던 수학도 경시대회에서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을 이겨내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나 같은 아이는 잘되지 말라는 데가 학교구나. 아무리 독을 품고 더 잘하려고 해 봐도 한계를 느낄 때가 많았다. 사실 그 전에 의욕이 나질 않았다. 엄마가 죽고 나서 내 성적에 일일이 관여하는 사람이 없어졌다는 것도 문제였다. 그는 종종 “공부 열심히 잘하고 있제?” 하면서도 내가 몇 점을 맞는지, 몇 점을 맞아야 잘하는 건지, 도통 몰랐고 성적표를 일일이 확인하지도 않았다.

 

 그런 내가 교육열이라면 강남 못지않은 평촌에, 그것도 학원가 바로 뒤에 살았다는 건 참 잔인한 일이었다. 학교가 끝나면 아이들은 각기 다른 학원 차에 올라탔고 노란 봉고차며 버스는 아이들을 학원으로 직송했다. 그 학원 차를 타면 오 분도 안 걸리는 거리를 난 삼십 분은 걸려 걸어 다녀야 했다. 옥탑방이 있던 건물에서 샛길로 일이 분만 걸으면 나오던 학원가에는 수십 개의 학원이 색색의 간판을 달고 즐비해 있었다. 학원들은 경시대회에서 상을 타거나 특목고, 자사고에 들어간 원생들의 이름을 커다란 플래카드에 적어 과시했고, 난 그들이 부러워서 매일 학교에서 집에 오는 길에 일부러 삥 돌아 학원가를 걸으며 그들의 이름을 외울 정도로 읽어댔다. 특히 난 강원도에 있는 한 자사고에 가고 싶었다. 뭐 큰 이유는 없었다. 언젠가 신문에서 본 바로는 교복이 예뻤고 기숙사 학교라서 더 이상 그와 한방에서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게 맘에 들었다. 강원도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서 왠지 머나먼 딴 세상 같았고 그곳에 가면 삶을 새로 시작하는 기분이 들 것 같기도 했다.

 

 그가 생일선물로 뭘 받고 싶으냐고 물었을 때,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엄마가 살아있을 땐 내가 생일이 언제인지 뭐가 필요한지 관심이 없었던 그였지만, 엄마가 죽고 나서 첫 생일이라 그런지 방세도 닷새나 집주인의 닦달을 듣다가 낸 주제 “니가 원하는 건 다 사줄꾸마.” 했다. 갖고 싶은 거야 많았다. 초등학교 때 누구 생일에 초대받아 딱 한 번 먹어본 적 있는 케이크도 먹고 싶었고, 고기를 실컷 구워 먹어보고 싶기도 했다. 당시 책가방이 찢어져 내가 빛깔도 맞지 않는 실로 대충 기워놨던지라 새 책가방도 갖고 싶었다. 이왕이면 당시 아이들 열에 아홉은 가지고 있던 아랫부분에 주머니가 달린 유명 브랜드 가방으로 갖고 싶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나 학원 보내주면 안 돼?” 했다. 내친김에 난 강원도에 있는 자사고가 가고 싶다고, 거기 가려면 학원에 가야 한다고 다 이야기했다.

 

 자식 공부시키기 싫어하는 부모가 어디 있으랴. 학원을 보내달라는 말에 그가 당장 가잔다. 학원이 코앞에 있는데 왜 진작 말을 안 했느냐고 큰소리를 쳤다. 나는 그의 지갑 사정을 걱정하면서도 신이 나서 앞장섰다. 이미 어느 학원이 내가 가고 싶어 하는 자사고에 가장 적합한 준비를 해 준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학원 건물에 달린 플래카드에는 “자사고 전국 최다 합격자 배출!”이라고 적혀있어 학원의 명성을 증명해주었다. 건물에 들어서자 내가 아는 아이들 몇몇이 눈에 띄었다. “어! 너도 이 학원 다니냐?” 그 아이들에게선 향긋한 부자 냄새가 났다. 그에게서 늘 나는 땀 냄새, 트럭 냄새, 기름 냄새가 새삼 코를 찔렀다. 샤워라도 하고 가자고 할 걸, 후회가 됐다. 난 일부러 그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져 걸으며 “아니, 그냥 알아보러.” 했다.

 

 카운터에 앉아있는 여자는 내 학년만 묻고 대뜸 시험지를 내밀었다. 당황한 나에게 그는 특유의 큰 목소리로 “찬찬히 풀그레이”하고는 자기가 더 떨려 하며 앉지도 못하고 서성였다. 수학과 영어 시험이었다. 학교에서 배우던 내용은 아닌 것 같았다. 특히 영어는 아는 단어를 찾기 힘들어 대충 찍은 문제가 더 많았다. 카운터 여자가 내 학년을 잘못 들었나 싶었다. 중학생부 교무주임이란 사람이 내 시험지를 채점했다. “여태껏 혼자 공부한 것치고는 잘하네요.” 교무주임은 칭찬으로 한 말이겠지만, 난 내 욕이라도 들은 것처럼 치가 떨리고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혼자 공부한 것치고는’하는 말이 ‘네까짓 게 돈 많은 우리 학원 원생들과 겨룰 실력은 못 되지만’하는 말로 들렸다. 교무주임은 내가 지금 당장은 자사고 반에 들어갈 수 없고, 그 아랫반에서 영어 실력을 키우다가 매달 있는 반 평성 고사에서 성적이 오르면 자사고 반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내가 수학에 재능이 있다며 수학 경시반도 권했다. 수학경시를 준비해 좋은 상을 타면 과학고나 자사고를 가는 데 유리하단다. 난 몰랐던 사실이었다. 그는 잘 알겠으니 열심히만 가르쳐 주시면 애가 워낙 똑똑해서 금방 따라잡을 거라고 했다. 나도 속으로 지금까지 내가 학원을 안 다녀서 그렇지, 이제 학원만 잘 다니면 전교 일등도 문제없고, 자사고도 문제없다고, 상처 난 자존심을 애써 달랬다.

 

 다시 카운터로 보내진 우리에게 여자는 “종합반은 삼십육만 원이고 수학경시반은 사십오만 원입니다. 카드결제 하실 거에요? 현금결제 하실 거에요?” 했다. “삼십육만 원요?” 그가 학원이 떠나가라 큰 소리로 되묻는다. 그의 눈이 그렇게 커지는 건 처음 봤다. 옥탑방 월세 삼십 만원도 간신히 내고 사는 마당에 그 돈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가 다시 “한 달에요? 한 달에 학원비가 삼십육만 원 사십오만 원이라구요? 뭔 놈의 학원비가 그꾸 비싸노?” 하며 나와 여자를 번갈아 봤다. 마침 쉬는 시간이었는지 주위에 있던 수십 명의 아이들이 구경거리라도 난 듯이 그와 나를 쳐다봤다. 우리 학교 전교 일등도 그사이에 보였다. 그를 내버려둔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 나왔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었지만 그 자사고 학비는 학원비보다도 훨씬 비쌌다. ‘다양한 예체능 활동’을 경험할 수 있는 장점은 스키며 가야금, 골프채 등을 사야 하는 단점 속에서나 가능했기에 학비 외에도 이것저것 드는 비용이 어마어마했다. 미리 알았다면 꿈도 꾸지 않았을 거다. 그때까지 살면서 깨달은 한 가지는 돈은 항상 없고 앞으로도 없을 거니 못 살 거는 아예 욕심을 내지 않으면 된다는 거였다. 우리 집에 티브이가 없어도, 컴퓨터가 없어도, 좋은 옷이나 신발이 없어도, 지금까지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건데 뭐, 하면 쓸데없이 슬퍼지거나 처량해지는 걸 방지할 수 있었다. 늘상 있는 일에 항상 슬퍼할 수는 없으니까. 그에게 자사고 학비를 말했더니 그의 눈이 또 한 번 뒤집혔다. 자사고니 특목고니 안 가도 좋은 대학만 가면 된다고, 자기가 열심히 해서 대학은 어떻게든 꼭 보내 줄 테니 넌 열심히 공부해서 교대에 가면 된다고, 엄마나 할법한 설교를 늘어놓았다. 큰소리 잘 치는 그도 돈 앞에서는 장사 없었다.

 

 쉽게 포기하는 법을 깨달았다고 해서 내가 물욕에서 벗어난 건 아니었다. 어쩌면 욕심을 죽이려 하면 할수록 내 안에 욕구불만만 키웠는지도 모른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에 학원가를 걷다가 한 서점에 들어갔다. 그 서점은 학원가에서 쓰는 교재들을 주로 팔았는데 책 구경하기를 좋아하는 내가 자주 들르던 서점이었다. 물론 구입한 적은 없었다. 꼭 필요한 문제집이나 참고서도 다 못 사던 나에겐 꿈꿔서는 안 될 물건들이었다. 수학경시대회 문제집을 폈다. 몇몇 문제는 종이와 연필만 있으면 풀 수 있을 것 같기도 했지만, 손도 못 댈 문제들이 대부분이었다. 흠. 돈 많은 아이들은 돈 주고 이런 걸 배우는군. 평소엔 그렇게 생각하고 그냥 나왔을 거다. 그날도 그랬어야 했다. 안 그럴 이유는 전혀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날 내가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어렸다고 변명하기에도 너무 큰 나이였다. ‘공부가 하고 싶었어요.’라고 변명할 만큼 공부에 미친것도 아니었다. 마침 떼 지어 들어온 아이들에게 둘러싸인 주인아줌마를 보다가 문제집을 신발주머니에 슬쩍 넣었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내가 뭔 짓을 했는지 실감이 안 났다. 심장이 콩닥콩닥 뛰고 아팠다. 엄마가 생각날 때 느껴지는 아픔과는 다른 아픔이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신발주머니에서 갓 꺼낸 신발 냄새가 나는 그 문제집을 보면서도, 문제집을 가졌다는 기쁨보단 내가 왜 그랬지 하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초등학교 때 학교 앞 문방구서 불량식품을 슬쩍 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굶으면 굶지 그런 짓은 안 한다던 나였다. 내가 왜 이럴까. 언제 이렇게 변했나. 엄마가 살아있었다면 안 이랬을까? 엄마가 살아있었어도 이 문제집 살 돈은, 학원에 갈 돈은 더더욱 없었을 텐데.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나쁜 짓은 한번 하고 끊기 힘들다. 꼭 필요했던 영어 참고서를 살 돈 만 천 원을 달라는 나에게 “오늘이 며칠이노? 방세 내야 허는데.” 하며 말을 돌리는 그는 돈 없고 무능한 것 빼곤 아무 잘못이 없었다. 엄마가 있었으면 오늘이 며칠인지, 방세 내는 날은 며칠이고, 여윳돈이 얼마 있는지는 알았겠지만, 엄마라고 해서 없는 돈을 찍어낼 수는 없었을 거다. 가난이 잘못이라면 잘못이겠지만, 사실 참고서는 선생님에게 빌렸어도 됐고 친구한테 빌렸어도 됐을 거다. 그러고 보면 싫은 소리 하기 싫어했던 내가 잘못이고, 싫은 소리를 해야만 학교공부나마 따라갈 수 있었던 상황을 탓해야 했겠다. 두 번째 절도는 학교 앞 문방구에서 이루어졌다. 심장은 여전히 빠르게 뛰었지만, 일주일 동안이나 할까 말까, 하면 어떻게 할까 고민했던 만큼 내 손놀림과 발걸음이 재발랐다.

 

 옥탑방에 들어올 땐 일 년만 바짝 벌면 더 나은 데로 이사 갈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던 그였지만, 허탕을 치고 집에 일찍 들어오는 날이 많아졌고, 돈 달라고 문을 두드리는 집주인 눈을 피해 집에 아무도 없는 척 방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어야 하는 날이 반복됐다. 배도 고팠지만, 배고픔과는 다른 허함이 머리끝부터 아랫배까지 흘렀고, 아무리 책상에 앉아 책을 들여다보아도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학교가 끝나면 저녁 늦게까지 거리를 쏘다니다가 집에 들어갔다. 걷다 보면 백화점도 갔고, 평소 가보고 싶었던 미술학원 안에도 들어갔고, 아무것도 사지 않으면서 대형 마트를 두세 바퀴 돈 적도 있다. 아무리 걸어도 구멍이 뻥 뚫린 가슴이 진정되지 않으면 슈퍼나 문방구에 가서 간식거리나 펜 따위를 슬쩍 했다. 그러면 언제든 들켜서 내 인생이 결딴날 수 있다는 공포감이 공허함을 대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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