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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너무 밝은 곳의 그대
작가 : 드리민
작품등록일 : 2019.5.17
너무 밝은 곳의 그대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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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의 인연을 끝으로, 사제가 된 남자.
5년 전의 사고를 끝으로, 흡혈귀가 된 남자.

너무 밝은 곳의 그대를 향한 이야기.

 
#41 밝은 곳의 그대와 함께 (1)
작성일 : 20-05-24 01:59     조회 : 285     추천 : 0     분량 : 3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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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일들이 있었지.”

  “그랬었죠.”

 

  고급스러운 침대에 누워 있는 노인의 옆에 앉은 영원한 빛은 담담히 옛날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다음에 이어지는 이야기는 그녀의 활약상, 노인은 오랫동안 그 이야기를 좋아했다. 몇 번이고 들어도 멋진 모험담이었고, 몇 번이고 곱씹어도 그녀다운 무용담이었다. 그녀는 정해진 운명대로 했을 뿐이라며, 지금은 옆에 없는 동료의 흉을 살짝 보았다.

 

  “웃긴 일이지. 그 모든 게 이미 정해진 운명이라면, 사실은 내가 아닌 누구여도 상관없지 않았을까. 그냥 비슷한 처지의 누구라도.”

  “그렇지는 않을 거예요.”

  “어째서 그렇게 생각해?”

 

  노인은 힘겹게 웃으며 영원한 빛을 바라보며, 천천히 손을 뻗었다.

 

  “당신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 분명 있었으니까. 체칠리아. 아니, 성 카이킬리아.”

 

  그녀는 노인의 가냘픈 손을 두 손으로 꼭 붙잡았다.

 

  “우리 사이에 그렇게 부르지는 말자, 그렉. 약간은 서운해지니까.”

  “그것도 그러네요.”

 

  체칠리아는 조용히 그렉의 손을 붙잡은 채, 침묵으로 잠시 그의 곁을 지켰다.

 

  “내가 할 일은 끝났어. 한동안은 작별이네, 그렉.”

  “제게 남은 일이 다 끝난 다음에 다시 만날 수 있겠죠, 체칠리아?”

 

  체칠리아는 그의 질문에 금방 답을 주지 않았다.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를 떴다. 그렉은 자신의 손을 붙잡아준 체칠리아의 온기를 느끼며 허리를 일으켜 세웠다. 헛기침 세 번에 방문을 열고 사람들이 나타났다.

 

  “부르셨습니까.”

 

  그렉은 그들을 잠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갑시다.”

 

  그에게는 아직 끝내야 할 일이 있었다. 그렉은 사용인이 건네준 지팡이를 짚으며 일어났다. 성 카이킬리아의 가호 덕분이었을까. 그는 평소보다 더 곧게 허리를 펴 걸을 수 있었다.

 

  긴 통로를 지나고, 그렉은 거대한 홀에 도착했다. 그의 등장에 그곳에 있던 모든 사제가 일어나 그를 바라보았다. 홀의 중앙에 놓인 작은 제단까지 천천히 걸어간 그는 대리석으로 만든 반석 위에 서서 주변을 바라보았다. 익숙한 얼굴도, 그렇지 않은 얼굴도 있었다. 몇몇의 영원한 빛들도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체칠리아도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분명, 너도 여기에 있겠지. 조지. 사제들이 다시 자리에 앉으면서 내는 약간의 부산스러움과 그 메아리가 모두 끝난 뒤에야, 그는 입을 열었다.

 

  “원초의 빛과 아홉 선지자, 모든 성인과 모든 영원한 빛, 이곳에 계신 모든 사제, 그리고 세상에 널리 퍼진 모든 신자 여러분께 평안함이 함께 하길 바랍니다.”

 

  이것은 그렉에게 주어진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다. 그렉과 조지,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이 고통받았던 악습을 끊을 하나뿐인 방법.

 

  “저 그레고리오 게오르기우스의 소집 하에 시작된 제7차 살루티스 공의회의 마지막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교단의 아홉 정점, 아홉 선지자의 뒤를 이어 새벽녘 교단의 모든 것을 주재하는 아홉 대사제. 그들 중 한 명이 소집하고, 다섯 이상이 안건 제출과 함께 동의를 표해야만 이뤄질 수 있는 공의회로 교단의 이치를 바꾸고 세상에 대한 해석을 뒤엎는다. 더욱이 백 년에 한 번꼴로 개최되었던 공의회였기에, 그에게는 시기적으로도 명분이 있었다.

 

  “제가 신실한 마음을 가진 여러분께 제출할 안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홉 선지자, 모든 성인, 모든 영원한 빛 개인을 섬기는 행위를 이단에서 제한다.

 

  단순히 조지를 되찾기 위함은 아니었다. 이 자리까지 오기 전에, 그렉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이들을 보았다.

 

  “제가 살루티스로 오기 전에 어느 마을에 잠시 본당 사제 대리직을 지내고 있던 시절의 일입니다. 그곳에는 심성이 착한 농부 가족이 있었는데, 그들은 선조의 잘못으로 저주를 받아 성년이 되면 천천히 몸이 썩어가는 병을 짊어지고 있었습니다. 저주 자체는 사제의 도움으로 사라졌지만, 병은 그대로 피에 남아 있었죠. 그 병은 다른 사람에게 옮는 것도 아닌데 이웃도 그들의 겉모습을 보고 피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묵묵히 제 일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그들의 선조 중 한 명이 끝없는 윤회 끝에 영원한 빛이 되었다.

 

  “자신의 전생이 남긴 자손들이 고통받고 있음을 알게 된 그 영원한 빛은 그들을 구제하기 위해 병마 자체를 없애기 위해 가족들 앞에 나타났습니다. 가족들은 신실한 마음으로 성소에 다님은 물론, 매일 같이 자신들을 구하기 위해 내려온 선조의 빛을 좇았습니다.”

 

  그 기도가 차도를 보여 피에 깃든 모든 병마가 사라질 즈음, 그들이 이단 행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발각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이단이라는 것도 알지 못했다. 그저 선조가 내려준 지혜로 썩어가는 피부를 치료하고, 선조의 어깨에 기대어 멍이 든 마음을 치유했을 뿐이었다.

 

  “그들은 비적성의 이단심문관들에게 모진 심문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로 병마를 다 떨쳐내기 전에 핏줄이 말라버렸습니다. 후에 그들에게 가해진 심문이 과했다는 사실이 지금은 성인이 되신 대사제 카이킬리아에 의해 증명되었지만, 그들의 죽음을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 선조의 빛은 자신의 존재가 자손들에게 해악이었음을 알고, 스스로 영면에 들어 지금도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세상에 어느 조상이 불쌍한 자손에게 해를 끼치려 한단 말인가. 그런데 우리는 그 조상을 악한 존재이며, 그 은덕을 받으려 한 불쌍한 자손을 악한 것이라 말하고 말았다. 만약 그 조상이 산자였다면, 그저 지혜가 있는 조부모에 불과했다면 이와 같은 비극이 발생할 수 있었겠는가. 그렉은 늙은 몸을 불태우듯 열변을 토했다.

 

  “이건 잘못된 겁니다. 명백하게 잘못된 것입니다. 영원한 빛을 성인이라 지나치게 떠받고, 저주의 구렁텅이 같은 생을 사는 우리들과는 본질부터 다르다고 치부해버린 결과를 보십시오. 그들을 우리와 다른 존재라고 하지 않았다면, 그저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먼저 간 가까운 이라고 말했다면 살려낼 수도 있었을 어린 영혼들을 보란 말입니다!”

 

  그렉은 지팡이를 바닥에 힘껏 내리쳤다. 대리석으로 만든 단단한 바닥에 나무 지팡이의 끝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그의 허리가 순간 밑으로 내려갔다. 사람들이 일어나 그가 다치지 않았는지 살피려 했으나, 그렉은 손을 들어 그들을 만류했다.

 

  “겨우 하나의 이야기로 여러분들을 설득시킬 수 없다면, 저는 여러분들에게 몇 가지 이야기를 더 말씀해드릴 수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아홉 선지자 중 하나이신 성 미하일리스의 직계 제자였던, 안토니우스의 이야기. 또 하나는 그와 함께 여행을 떠나 안토니우스의 두 번째 죽음을 지켰으며, 비적성의 대사제가 되었던 성 카이킬리아의 이야기.

 

  그렉은 그렇게 말하고는 체칠리아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에게 있었던 일을, 그 과거와 그 미래에 있던 일을 모두 이야기하자.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저를 사랑했던 조지라는 남자아이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이야기는 끝났다. 남은 것은 그 자리에 있던 사제들이 그의 이야기에 마음을 열 것인가의 문제다. 그들이 회의를 이어나가는 동안, 발의자였던 그렉은 잠시 회의장을 벗어나야 한다. 그는 조금 쉬고 싶었다. 그는 사제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그의 침실로 향했다.

 

  무겁고 갑갑했던 옷을 잠시 의자에 걸어두고, 그는 창 너머에서 은은히 내려오는 저녁노을의 햇빛을 바라보았다. 내일도 다시 태양은 떠오르겠지만, 세상은 조금씩 변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도 그래야 한다.

 

  조지 같은 사람들이 조금 더 행복한 세상을 살 수 있도록.

 

  긴장이 풀려서 그런 것일까. 졸음이 쏟아졌다. 그렉은 문 너머의 하인에게 회의에 다시 참석해야 할 때 깨워달라고 말했다. 하인은 알겠다고 말했다.

 

  조금은 긴 꿈을 꿀 것 같다고, 그렉은 어렴풋이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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