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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너무 밝은 곳의 그대
작가 : 드리민
작품등록일 : 2019.5.17
너무 밝은 곳의 그대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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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의 인연을 끝으로, 사제가 된 남자.
5년 전의 사고를 끝으로, 흡혈귀가 된 남자.

너무 밝은 곳의 그대를 향한 이야기.

 
#39 정해진 운명대로 (2)
작성일 : 20-03-26 00:52     조회 : 289     추천 : 0     분량 : 4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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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서린의 기도와 동시에 오르간의 곡조가 바뀌었다. 체칠리아는 자신이 들어본 적 없는 음악에 그들이 치밀하게 준비했음을 깨달았다. 갑자기 만들어진 의식이라기에는 이미 기반이 다져져 있었다. 캐서린은 체칠리아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딸을 꾸짖는 어머니의 것이었다.

 

  “본당 사제가 되기 위해 이 성소의 역사를 배웠던 적이 있었지. 기억하느냐.”

  “네. 기억하고 있습니다.”

  “모든 본당 사제께서는 이 성소의 미래를 위해 항상 무언가를 남겨두셨지.”

 

  누군가는 건물이나 물건을 남겼다. 누군가는 사람을 남겼다. 그리고 누군가는 혼에 울리는 목소리를 남겼다.

 

  “비적성 출신의 옛 본당 사제께서 남기신 의식을 보여주마.”

 

  캐서린은 그렇게 말하고는 의식을 위해 준비된 사과나무 지팡이를 높이 들었다. 그녀의 어깨까지 오는 지팡이의 끝이 빛을 발했다. 조지를 가둔 빛의 고리가 사슬을 이루었다. 캐서린은 조지를 둘러싼 구속을 지팡이로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원초의 파편이여, 유일하며 신성한 권리를 가지신 분의 편린이여. 창조와 함께 파멸의 권한을 가진 열쇠여. 아홉 선지자의 이름에 따라, 그리고 나의 뜻에 따라, 파멸을 불러오는 사슬을 끊고 무위로 돌아가 잠드소서.”

 

  그녀의 주문이 끝나자 빛의 사슬이 부서지는 소리를 내며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체칠리아는 심판 자체에 개입해 심판을 없던 것으로 하는 이 의식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녀는 큰소리로 외쳤다.

 

  “원초의 파편이여.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섭리의 편린이여. 옳고 그름의 절대적인 기준이 되는 열쇠여. 당신의 이름에 따라, 그리고 나의 뜻에 따라, 이 심판을 주재하는 원을 열고 천벌을 내려주소서!”

 

  끊어진 사슬은 다시 원을 이루고 그 위에 천벌의 창이 나타났다. 체칠리아가 심판을 재촉하며 자신의 영혼을 제물로 바치려 하자, 캐서린은 사과나무 지팡이로 체칠리아를 가리켰다.

 

  “아홉 선지자시여. 저 영혼을 보호해주소서. 그리고 저 영혼이 자신을 불태워 일어나는 모든 일을 잠재워주소서.”

 

  그러자 체칠리아를 중심으로 작은 빛의 원이 생겼다. 체칠리아는 향로를 들어 연기를 일으켰다. 캐서린의 기도는 그녀의 연기 앞에서 무력했다.

 

  “이제 포기해요. 그 어떤 것도 저를 막을 수는 없어요.”

 

  캐서린은 그녀의 선언에 포기했다는 듯이 사과나무 지팡이를 든 팔을 거뒀다.

 

  “그래, 내가 어떻게 막아서더라도 너는 멈추지 않겠지.”

  “네. 이제는 멈출 수 없어요. 그러니 가야겠어요.”

  “하지만 체칠리아, 마지막으로 노래를 하나 듣고 가는 여유는 가져주면 안 되겠느냐.”

 

  캐서린의 말끝에 다시 새로운 음색이 들려왔다. 던스턴의 연주법이 아니었다. 체칠리아는 사제들이 모여 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그렉은 그 자리에 없었다. 의식에 집중하고 있던 사이에, 아니면 캐서린이 자신을 방해하고 있던 사이에 오르간으로 향한 것인가.

 

  “아가야, 잘 자렴. 여기에 있을게.”

 

  그렉의 연주에 얹어진 두 사람의 목소리는 자장가를 부르고 있었다. 그 노래에 체칠리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악몽을 꿀 때면 언제나 던스턴이 불러주던 그 자장가. 어른이 되고 나서는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던 노래였다. 그녀는 캐서린에게 중얼거리듯 반문했다.

 

  “이 노래를 듣는다고 해서 제 마음이 멈추지는 않을 거예요.”

  “하지만 이 노래는 너만을 위한 것이 아니란다. 잘 보려무나.”

 

  체칠리아는 캐서린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조지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체칠리아는 그와 자신이 같은 자장가를 듣고 자랐음을 깨달았다. 그 깨달음은 한때 그와 그녀에게 이 자장가를 불러주었던 이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떠올렸다.

 

  “피를 나누지 않았더라도, 같은 자장가를 나눈다는 것이 어떤 뜻인지 아느냐.”

 

  캐서린의 말에 체칠리아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알 것 같았지만, 말하면 끝일 것 같았다. 그녀는 향로를 머리 위로 더 높이 들었다. 성소 전체를 가득 메울 것처럼 연기가 퍼져나갔다. 그 누구도 그녀를 멈추려 들지 않았다.

 

  “성찬 사제는 자장가를 꿈으로 사람을 잇는 노래라고 배운단다. 부모와 자식을 하나의 꿈으로 이어주듯, 같은 자장가를 듣고 자란 사람들의 꿈도 하나로 이어질 수 있지.”

  “아니야, 아니야! 조용히 하세요!”

 

  체칠리아의 목소리가 일그러졌다. 바닥에 떨어지는 것은 조지의 눈물인가, 아니면 체칠리아의 눈물인가. 그것을 알 수는 없었고 그저 바닥으로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만이 자장가에 묻혀 잔잔히 흐르고 있었다.

 

  “나는 여기에 네가 있었으면 좋겠구나. 나도 언제나 네 옆자리에 있어 줄 테니.”

 

  캐서린의 고백에 체칠리아는 끝내 향로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향로에서 피어오르던 연기는 멈췄지만, 이미 성소는 신성한 안개로 자욱했다. 캐서린은 사과나무 지팡이를 바닥으로 떨어뜨리고 자리에 주저앉은 체칠리아를 감싸 안았다. 이 몇 개월 동안 그녀의 마음에 큰 상처를 주고, 옛 흉터를 건드렸다. 캐서린의 눈가에도 눈물이 맺혔다.

 

  캐서린은 어린 짐승처럼 흐느끼는 체칠리아를 그저 토닥여주었다. 언젠가 그렉에게 그랬던 것처럼. 이제 조지도 그렇게 감싸 안고 토닥여줘야 했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이 끝날 터였다. 원초의 파편을 잘못 삼킨 이를 구제하기 위해서는 그 원초의 파편을 삼킬 수밖에 없었던 이의 응어리를 풀어줘야 한다.

 

  “캐서린 사제님!”

 

  루카스의 외침에 캐서린은 고개를 들었다. 원초의 파편을 연료로 태운 연기의 움직임이 이상했다. 신성한 안개에서 작은 번개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 아아!”

 

  캐서린의 품 안에서 체칠리아가 가슴을 움켜쥐었다. 조지의 고통스러운 비명이 옆에서 들려왔다. 의식을 너무 늦게 막은 것일까. 두 사람의 영혼은 이미 불태워지기 시작했다. 심판은 이미 걷잡을 수 없는 수순에 올랐다.

 

  “그렉! 던스턴!”

 

  캐서린의 외침에 두 사제는 오르간을 쳤다. 심판을 막고 원초의 파편을 몰아내는 음악, 모두의 구원을 바라며 그렉이 준비했던 그 음악을. 하지만 안개 속의 번개는 멈추지 않았고, 두 사람의 고통은 끝나기는커녕 더 심해졌다. 이대로 끝인 것 같았다.

 

  모두가 제 자리에서 어쩔 줄 모르는 사이에 움직이는 이가 있었다. 안토니오는 체칠리아와 캐서린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는 체칠리아가 떨어뜨린 향로를 주웠다. 무거운 소리를 내는 향로의 사슬이 팽팽해졌다. 연기가 다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캐서린은 안토니오를 노려보았다.

 

  “여기에 온 이유가 뭡니까, 안토니오 사제님.”

 

  안토니오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웃고 있음을 캐서린은 알아챘다. 안토니오는 자신의 검을 꺼내 들었다. 왼손의 향로와 오른손의 검이 서로 공명하기 시작했다.

 

  “성 안토니우스의 검은 삿된 것을 끊어내는 검이죠. 그리고 지금의 제게 있어서, 제가 그토록 바라고 있는 미래를 방해하는 것이야말로 삿된 것입니다.”

  “그게 체칠리아란 말입니까. 그게 조지였단 말입니까! 우리의 파멸을 위해 당신이 이곳에 왔던 것입니까!”

 

  캐서린이 일어나 두 팔을 벌려 안토니오를 막아섰다.

 

  “당신은 성인의 검을 쓸 자격이 없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미래가 무엇이든 간에, 그것이 사람을 해칠 이유는 되지 않습니다. 그 검에 체칠리아의 피를 묻혀야겠다면, 제 피를 먼저 묻히셔야 할 겁니다. 조지의 영혼을 베야겠다면, 제 영혼을 먼저 베셔야 할 겁니다. 어디 한 번 그렇게 해보세요!”

 

  안토니오는 잠시 침묵하는가 싶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 없습니다. 처음부터 알려준 것은 아니지만, 체칠리아 사제님도 이미 동의하신 일이었으니까요.”

  “뭐라고요?”

 

  캐서린의 반문에 대답하는 대신 검을 높이 들었다. 번개를 일으키는 신성한 안개가 검에 휘감겨 폭풍을 일으켰다. 성소의 모든 불빛이 폭풍에 빨려 들어갔다. 안토니오는 그 힘에 집중하는가 싶더니, 입을 열었다.

 

  “미래를 열고 사람을 구하는 데에는 늘 희생이 필요한 법이라.”

 

  아홉 선지자여,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성인과 모든 영원한 빛이여.

 

  “이 원초의 파편이 일으키는 심판의 겁화야말로, 미래를 닫는 고통이라.”

 

  여기에 임하여, 모든 고통으로부터 구원을 내려주소서.

 

  그의 기도가 끝나자 어디선가 사슬이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굳게 닫혀 있던 성소의 문이 열리자 에어드부르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뒤로 수많은 생에 단 한 번이라도 아르티제에 연이 있던 모든 성인이 성소 안으로 들어왔다. 성소의 스테인드글라스에 새겨진 성인들도 그 모습 그대로 나타나 제단 앞으로 다가왔다.

 

  “이게 무슨….”

 

  캐서린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안토니오는 검 끝에 맺힌 안개의 폭풍을 눈으로 겨눈 채 입을 열었다.

 

  “성 안토니우스의 검이여, 미래를 닫는 삿된 것을 끊어주소서. 삿된 것에 묶인 모든 고통을 풀어주소서.”

 

  안토니오는 검을 휘둘렀다. 향로의 연기가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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