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판타지/SF
너무 밝은 곳의 그대
작가 : 드리민
작품등록일 : 2019.5.17
너무 밝은 곳의 그대 더보기
이 작품 더보기 첫회보기

5년 전의 인연을 끝으로, 사제가 된 남자.
5년 전의 사고를 끝으로, 흡혈귀가 된 남자.

너무 밝은 곳의 그대를 향한 이야기.

 
#37 원초의 파편 (3)
작성일 : 20-02-19 22:50     조회 : 283     추천 : 0     분량 : 4114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체칠리아와 안토니오가 낀 저녁 식사는 짙은 침묵 속에 치러졌다.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요리와 설거지를 돕고, 방에 들어가 긴 거리를 달려온 여독을 풀었다. 다른 사제들은 그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도록 조용히 밤을 지새웠다.

 

  비적성에서 온 두 사제는 아침 일찍 숲으로 향했다. 숲의 중심에서 에어드부르가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주변에서 조지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 체칠리아와 그가 마주치지 않도록 배려해준 것이겠지. 그 배려가 누구를 위한 것일지 안토니오는 속으로 의문을 표했다.

 

  “비적성의 사제 체칠리아, 인사드립니다.”

  “비적성의 사제 안토니오, 인사드립니다.”

  “그래. 내일 밤이구나.”

 

  하늘을 올려다보는 에어드부르가의 눈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 구름이 껴 그늘진 하늘도 그녀의 눈에는 너무나도 강렬한 백색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고개를 내려 두 사제에게 찾아온 이유를 물었다.

 

  “이 심판이 끝난 후에, 저희는 당신을 성인으로 추대할 계획입니다. 당신은 이 숲에 얽힌 흡혈귀의 저주를 무너뜨리고, 이 마을에 평화를 가져온 수호자가 되겠죠.”

  “그러냐.”

  “기쁘지 않으신 모양이군요.”

  “성인이 되면 돼지를 칠 수 없지 않으냐.”

 

  에어드부르가는 반쯤 농담으로 답했다. 안토니오는 그녀의 대답에 살짝 웃음소리를 흘렸다. 체칠리아가 살짝 눈짓을 흘려 안토니오는 입을 가린 채 무례를 사과했다. 에어드부르가는 신경 쓰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나에게 전할 것은 그것뿐이더냐.”

  “그건 아닙니다. 사실 당신에게 궁금한 것이 있었어요.”

 

  체칠리아는 자신에게 숲의 저주가 담긴 상자를 건네준 이유를 물었다. 심판을 가져올 이가 누구인지 알면서도, 원초의 파편을 얻기 위해 필요한 제물을 남긴 이유를 체칠리아는 확실히 알고 싶었다.

 

  “다른 이유는 없었어. 보았으니 그리할 뿐이었다. 자신에게 찾아올 미래를 부정하고 새 미래를 개척할 힘은 누구에게나 있지. 하지만 미래를 보지 못한 자와 본 자의 각오는 다른 법이니라. 영원한 빛이 보는 미래는 자신이 서 있는 시간과 공간에서 가장 최선이면서 일어날 가능성이 큰 것이니까. 그 미래를 부정한다면 어떤 미래가 와도 나쁜 선택지가 되지.”

  “빛의 심판이 일어나는 현재가, 당신에게 있어서는 가장 최선의 것이었단 말인가요.”

  “다른 영원한 빛에게는 다르겠지만, 내게는 그랬지. 그렇다고 내가 이 미래를 모두 준비했다고 생각하지는 말아라. 미래를 알 수 있게 되는 힘은, 그 미래에 굴복할 수밖에 없도록 움직이지.”

  “당신이 만약 저에게 그 상자를 주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이미 없어져 버린 미래의 가능성을 묻는 연유는, 후회 탓이냐.”

 

  심판을 내리려는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고 있냐는 질문에 체칠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결국 비슷한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늦든 이르든, 심판이든 아니든. 그 수단이 원초의 파편을 통한 심판이 되었을 뿐이고, 그 대상이 그렉의 사랑이었던 조지가 되었을 뿐이다. 누가 보아도 이 끔찍한 결정이 최선이었다고 말한다면, 체칠리아는 그 가치를 인정해야 했다.

 

  “내일 있을 심판에 오실 건지요.”

  “내가 본 미래를, 너희가 선택한 미래의 끝을 보러 가야지.”

  “이 심판에 개입할 생각이시라면, 미리 말씀해주세요. 다른 사제들도 개입할 생각이니까요.”

  “그럴 것 같더구나. 하지만 걱정하지 말아라. 너에게 그 상자를 건넨 시점에서 나는 미래에 개입하지 않겠노라 영원한 빛의 이름을 걸고 스스로 선언했으니.”

  “알겠습니다.”

 

  체칠리아와 안토니오는 에어드부르가에게 예를 표하고 뒤를 돌았다.

 

  “잠깐.”

  “무슨 일이신가요.”

  “안토니오는 잠시 남아라.”

  “알겠습니다.”

  “저희에게 개입하지 않을 거라고 하지 않으셨나요?”

  “이건 그것과 별개의 일이 될 것이다. 남을지 말지는 안토니오가 선택해라.”

 

  안토니오는 체칠리아에게 괜찮을 거라며 먼저 가라고 말했다. 체칠리아는 미덥지 못한 듯 잠시 머뭇거리더니 그대로 숲을 나가는 길로 사라졌다. 안토니오는 폐허가 된 성을 찢고 자란 나무 위의 에어드부르가를 향해 시선을 올렸다. 점점 높아지는 태양에 달궈진 바람이 둘 사이에서 소용돌이쳤다.

 

  “내가 본 미래, 내가 본 심판의 풍경에 너는 없었다.”

 

  너는 어디에서 온 게냐. 이 심판에 개입해 무엇을 하려는 게냐. 에어드부르가의 질문에 안토니오는 조용히 웃었다. 그들은 대낮의 바람이 저녁노을에 식을 때까지 그곳에 있었다.

 

  “알겠다. 네 뜻대로 해라.”

 

  에어드부르가의 말이 끝난 뒤에야, 안토니오는 숲을 나올 수 있었다. 당신은 정말 좋은 성인이 되어 모두에게 가르침을 줄 것입니다. 안토니오의 찬사를 에어드부르가는 그날 내내 곱씹었다.

 

  이른 저녁을 먹고 체칠리아는 바람을 쐴까 싶어 성소의 밖으로 잠시 나왔다. 푸른 기가 도는 보라색으로 바뀐 하늘에는 아직 완전히 차오르지 않은 달이 주변의 별빛을 몰아내고 있었다. 너무나도 밝은 탓에 주변의 미약한 빛을 먹어 치운다. 그 자리에 남는 것은 어둠과 외로움뿐이었다.

 

  “옆에 자리 비어있습니까?”

 

  그래도 아직 자신은 옆에 다가오려는 사람이 있구나. 체칠리아는 뒤를 돌아 던스턴을 바라보았다. 체칠리아는 다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던스턴은 그녀의 옆에 섰다. 로브를 벗은 그녀의 뒷모습은 지금까지 보았던 것과 사뭇 달랐다. 목덜미가 드러난 단발. 예전에는 머리카락으로라도 목덜미를 물리지 않게 해야 한다고 그렇게 길게 길렀는데.

 

  “지금이라도 그만둘 수 있냐고 물어보실 건가요?”

  “물어본다고 해서 그만둘 일이 아니잖습니까.”

 

  체칠리아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를 대신해서 차기 본당 사제가 되실 거라고 들었어요. 축하드려요.”

  “제가 잘 할 수 있을지 고민입니다.”

  “당연히 잘하실 수 있을 거예요. 저를 가르쳐주셨잖아요.”

 

  던스턴은 체칠리아를 내려다보았다. 씁쓸한 미소. 앞으로 하루가 지나면, 그 어떤 고난도 그녀의 미소를 앗아갈 수는 없었다. 때때로 그늘이 지고 씁쓸한 향을 머금을지라도, 그녀의 미소는 고난을 이겨낸 자의 상징과도 같았다. 그런데 그것이 이 세상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체칠리아.”

  “안 되는 것을 아시면서 물어보시는 건가요.”

  “너의 미소를 잃고 싶지 않아.”

 

  딸아. 내가 가족을 잃는 슬픔을 또 겪지 않도록 해주면 안 되겠니. 바짝 말라버린 건조한 음색이 체칠리아의 옷소매를 붙잡았다. 체칠리아는 한참을 답하지 않다가, 짧게 잘린 자신의 머리카락을 가리켰다.

 

  “저는 머리카락을 잘랐습니다. 던스턴 사제님.”

 

  죄송해요. 체칠리아는 그대로 던스턴을 남겨두고 성소로 들어갔다. 던스턴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허망하게 하늘을 바라보았다. 달이 차고 있었다.

 

  “여기 계셨군요. 루카스 사제님.”

 

  내일이 심판의 날인데도, 루카스는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안토니오는 루카스의 캔버스를 쳐다보았다. 영원한 빛의 형상. 아니, 그보다는 눈에 익었다. 아르티제 성소에 새겨진 이 지역의 성인들인가. 루카스는 붓을 쉬지도 않고, 제 뒤에 있는 안토니오에게 말했다.

 

  “나가주셨으면 합니다만.”

  “어째서인가요.”

  “성인을 과도하게 추숭하는 것처럼 보일 거 같아서요.”

 

  안토니오는 조용히 웃었다. 성인으로 추대된 개인을 섬기는 것은 이단이다. 자신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같이 심판해버릴 거냐는 루카스의 말에 안토니오는 흥미를 보였다.

 

  “그렇게 되길 바라시는 건가요.”

  “그럴 리가. 제 목숨이 소중하지 않은 이는 없습니다.”

  “체칠리아 사제님은요?”

  “그녀는 자기 목숨보다 소중한 것을 고른 셈이죠. 제 눈에는 그게 소중하지 않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루카스 사제님에게 체칠리아 사제님의 목숨은 소중합니까?”

 

  안토니오의 말에 루카스는 살짝 신경질적으로 뒤를 돌았다.

 

  “제 목숨보다는 소중하지 않습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구해야겠지요. 안토니오는 그렇게 말하며 검지를 입술에 가져다 댔다. 당신의 비밀을 지켜줄 이유는 없다는 데에도 안토니오는 조용히 미소만 보일 뿐이었다. 그도 결국에는 비밀을 지키겠다는 서약을 마지못해서 했다.

 

  안토니오는 루카스에게 무언가를 말해주었다. 그의 말이 이어질수록 루카스의 표정은 놀라움을 숨기지 못했다가, 끝내 허탈해졌다.

 

  “잘도 숨기고 계셨군요. 당신.”

  “비밀을 지켜주실 거죠?”

  “언제까지 지켜야 합니까.”

  “이 심판이 끝날 때까지.”

 

  제가 죽을 때까지 지켜주신다면 더욱더 좋고요. 안토니오는 짧게 덧붙였다.

 

  “그냥 빨리 체칠리아를 데리고 이 성소를 나가주면 잊어줄 수도 있는데.”

 

  루카스는 다시 붓을 들며 중얼거렸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공지 완결 후기 2020 / 8 / 16 540 0 -
공지 <너무 밝은 곳의 그대> 중간고사 … 2019 / 10 / 12 644 0 -
공지 8월 28일 <너무 밝은 곳의 그대> 휴… 2019 / 8 / 28 683 0 -
공지 <너무 밝은 곳의 그대> 연재주기 … 2019 / 8 / 16 665 0 -
44 에필로그 2020 / 8 / 16 293 0 1007   
43 #42 밝은 곳의 그대와 함께 (2) 2020 / 8 / 16 255 0 3654   
42 #41 밝은 곳의 그대와 함께 (1) 2020 / 5 / 24 284 0 3705   
41 #40 정해진 운명대로 (3) 2020 / 4 / 5 270 0 4110   
40 #39 정해진 운명대로 (2) 2020 / 3 / 26 289 0 4234   
39 #38 정해진 운명대로 (1) 2020 / 3 / 5 279 0 4483   
38 #37 원초의 파편 (3) 2020 / 2 / 19 284 0 4114   
37 #36 원초의 파편 (2) 2020 / 2 / 12 273 0 4250   
36 #35 원초의 파편 (1) 2020 / 2 / 6 290 0 4699   
35 #34 이단의 빛 (4) 2020 / 1 / 8 298 0 4018   
34 #33 이단의 빛 (3) 2020 / 1 / 1 313 0 4223   
33 #32 이단의 빛 (2) 2019 / 11 / 24 304 0 4125   
32 #31 이단의 빛 (1) 2019 / 11 / 14 301 0 4353   
31 #30 언약과 고요 (5) 2019 / 11 / 2 291 0 3782   
30 #29 언약과 고요 (4) 2019 / 10 / 3 299 0 4039   
29 #28 언약과 고요 (3) 2019 / 9 / 26 303 0 4592   
28 #27 언약과 고요 (2) 2019 / 9 / 19 301 0 3999   
27 #26 언약과 고요 (1) 2019 / 9 / 12 310 0 5031   
26 #25 재탄의 날 2019 / 9 / 4 308 0 4454   
25 #24 너를 위한 미끼가 되어 (4) 2019 / 9 / 4 299 0 3972   
24 #23 너를 위한 미끼가 되어 (3) 2019 / 8 / 21 279 0 4157   
23 #22 너를 위한 미끼가 되어 (2) 2019 / 8 / 15 304 0 4144   
22 #21 너를 위한 미끼가 되어 (1) 2019 / 8 / 12 322 0 4362   
21 #20 기억 속의 그 아이 (5) 2019 / 8 / 8 303 0 4372   
20 #19 기억 속의 그 아이 (4) 2019 / 8 / 5 310 0 4444   
19 #18 기억 속의 그 아이 (3) 2019 / 8 / 1 304 0 4067   
18 #17 기억 속의 그 아이 (2) 2019 / 8 / 1 310 0 5110   
17 #16 기억 속의 그 아이 (1) 2019 / 7 / 25 291 0 4257   
16 #15 순록을 탄 여인의 승리 (5) 2019 / 7 / 22 320 0 4643   
15 #14 순록을 탄 여인의 승리 (4) 2019 / 7 / 18 322 0 4996   
 1  2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