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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너무 밝은 곳의 그대
작가 : 드리민
작품등록일 : 2019.5.17
너무 밝은 곳의 그대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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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의 인연을 끝으로, 사제가 된 남자.
5년 전의 사고를 끝으로, 흡혈귀가 된 남자.

너무 밝은 곳의 그대를 향한 이야기.

 
#35 원초의 파편 (1)
작성일 : 20-02-06 00:24     조회 : 293     추천 : 0     분량 : 4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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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사람은 꽤 오랜 시간을 지하로 내려가는 데에 쏟았다. 이 세상의 중심이라 불리는 살루티스 중앙 대성소에서도 한가운데, 아홉 선지자가 원초의 빛을 잠재우고 첫 승천을 하는 장면을 새긴 석상. 그들은 바로 그 지하를 향해 내려가고 있었다. 바로 그곳에 원초의 빛이 잠들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곳으로 가는 유일한 통로는 살루티스 중앙 대성소에서도 가장 후미진 비적성의 탑에서 이어진다. 아홉 선지자의 유지를 계승하는 아홉 대사제도 비적성의 허락이 없으면 원초의 빛을 만나러 갈 수 없었다.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있냐는 질문에 비적성의 사제들은 모두 입을 모아 말했다.

 

  “거기에는 아홉 선지자께서 비밀로 하신 모든 것이 잠들어 있습니다. 그것들이 풀리면 창세가 다시 시작됩니다.”

 

  창세가 다시 시작된다는 말은 곧 이 세상의 끝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비적성의 선언을 계속 의심했지만 시도해볼 용기를 가진 자는 세상에 없었다. 그건 참으로 다행인 일이었다. 비적성도 그들의 선언이 실제로 일어나는 광경을 보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때로 세상에는 원초의 빛이 가진 절대적인 힘이 필요한 때가 있었다. 세상을 혼란에 빠뜨린 이단의 빛을 없애기 위한 두 번의 심판, 그리고 몇 번의 기적. 세상에 흩뿌려진 원초의 파편들은 주인의 곁으로 돌아가지 않고, 계속 그곳에 남아 있었다. 왜 그렇게 되는지, 어째서 주워 담을 수 없는 것인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얼마나 내려왔을까. 방향도 바꾸지 않고 계속 사선으로 내려오던 계단이 잠깐 멈췄다. 그 앞에는 오래된 나무로 된 문이 있었다. 안토니오는 뒤를 돌아 체칠리아를 바라보았다.

 

  “다 온 건가요?”

  “아니요. 앞으로도 한참은 내려가셔야 합니다. 지금부터는 나선 계단입니다만.”

  “그렇다면 이 문은 왜 있는 것이죠?”

  “마지막 결심을 세우는 곳입니다.”

 

  이 문을 넘어가면, 돌이킬 수 없다는 소리예요. 안토니오의 앞으로 나와 문고리를 잡으려던 체칠리아의 손이 멈칫했다. 이제 돌아갈 수 없다. 돌이킬 수 없다. 그렇게 여러 번 다짐하며 이곳으로 달려왔는데도, 안토니오의 목소리로 그런 말을 들으니 현실로 다가왔다.

 

  “안토니오 사제님.”

  “네. 여기에 있습니다.”

 

  체칠리아는 그 현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체칠리아는 문고리를 잡고 밀었다. 그리고는 횃불을 들고 뒤에 선 안토니오를 바라보았다.

 

  “저 혼자 내려가야 하나요?”

 

  그 질문에 안토니오는 나긋하게 답했다.

 

  “아니요. 같이 가겠습니다.”

 

  안토니오가 어째서 자신을 따라오는 것인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뒤를 봐주고 있는 것인가. 체칠리아도 그것에 대해 궁금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사선으로 계속 내려가는 계단에서 물어보았지만, 안토니오는 그 질문에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에게도 나름의 계획이 있다는 것만 대답할 수 있다고 했던가. 체칠리아는 그 대답을 듣고 더 물어보지는 않았다.

 

  나선 계단의 저 아래에는 은은하게 빛을 내는 우물이 있었다. 우물 안에 담긴 것은 차가운 지하수가 아니라 원초의 빛. 그들은 우물이 있는 세상의 중심, 그 밑바닥까지 내려왔다. 숨이 자연스럽게 멎는 기분이었다. 저 아래에는 원초의 빛이 잠들어있다. 대가를 바친다면 그 누구에게도 줄 수 있는 강대한 힘을 내버려 둔 채로.

 

  “가지고 오셨죠?”

 

  안토니오의 말에 체칠리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은으로 봉해진 상자를 가방에서 꺼냈다. 숲에 깃들어있던, 아르티제의 흡혈귀들이 남긴 저주. 에어드부르가는 그것을 체칠리아에게 맡겼다. 언젠가 필요하게 될 것이라며. 그녀는 내가 심판을 가져오는 것을 원치 않았을 텐데. 내가 이것을 이렇게 쓸 거라고 미리 알고 있었을 텐데. 그녀는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하지만 지금 그 이유를 물어볼 수는 없다. 에어드부르가가 본 미래는 현실이 되었다. 그것을 막을 수 없기에 체념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체칠리아는 그렇게 생각하고 저주가 담긴 은상자를 우물의 수면 바로 위에 올렸다. 상자는 물 위에 올린 나무토막처럼 둥실 떠올랐다. 체칠리아는 상자의 윗부분에 살며시 손을 올리고 이제껏 입에 담은 적 없는 기도를 올렸다.

 

  “세상의 모든 것은 오직 원초의 빛으로부터 태어났으니, 나의 혼과 나의 육은 오직 원초의 빛께서 정하신 운명대로 움직일지어다.”

 

  세상, 영원한 빛, 나, 그리고 저주. 모든 것을 나의 의지와 나의 의지를 지배하시는 원초의 빛에 맡기리라.

 

  “원초의 빛이여, 나를 모든 구속으로부터 해방하는 열쇠가 되어주소서. 나에게 깃든 해묵은 비밀과 온갖 더러움을 지워주소서.”

 

  열쇠를 얻기 위한 담금질을 위해 이 저주, 이 영혼과 육신의 더러움을 모두 바치리라.

 

  그녀의 기도가 끝나자 그녀의 손끝에서 그녀의 영혼과 육체에 남아 있던 모든 저주가 빠져나갔다. 원초의 파편을 품기 위해서는 영원한 빛과 마찬가지로 아주 조금의 저주도 있어서는 안 된다. 모든 것을 비워 내려놓은 그녀의 은빛 머리카락은 더 반짝이는 백색으로 변하고, 붉은 눈동자도 잠시 흐릿하게 물들었다가 원래의 색으로 돌아왔다.

 

  안토니오는 그녀의 변화를 지켜보다가 품 안에서 단검을 꺼냈다. 그녀는 로브를 벗고 긴 머리를 한 손으로 붙들었다. 안토니오에게서 단검을 건네받은 그녀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끊어냈다.

 

  모든 사제는 사제가 되기로 선언한 날 머리카락을 자른다. 머리카락을 길게 자르든, 짧게 자르든 중요한 것은 자른다는 행위다. 그동안 세속에서 관계했던 인연을 정리하고, 사제로서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나간다는 의미가 담긴 의식. 아홉 선지자도 영원한 빛이 되기 직전에 머리카락을 잘라 지금까지 세상에 있었던 영혼들과는 다른 존재가 되었음을 알렸다던가.

 

  “그러니 조심하렴. 사제가 되어 머리카락을 또 자른다는 것은, 지금까지 사제로서 만들었던 인연을 끊어내는 일이 될 수도 있단다.”

 

  물론 머리를 조금 다듬는 정도는 괜찮지만. 그렇게 말하며 어린 체칠리아의 머리카락을 잘라주던 캐서린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고, 그 미소가 눈동자에 비치는 것 같았다. 체칠리아는 끊어진 자신의 머리카락을 바라보다가 원초의 빛이 잠든 우물 안으로 던져버리며 눈을 감았다. 여기서 그녀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인연을 다시 끊었다.

 

  머리카락이 우윳빛으로 반짝이는 우물 아래로 떨어져 모습을 감추자, 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우물에서 안개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수면에서 강렬한 빛이 솟구쳐 아홉 선지자의 발바닥에 닿았다. 체칠리아는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안개 속에서 오른손 검지를 높게 뻗으며 외쳤다.

 

  “원초의 파편이여, 올바른 법도에 따라 권리를 받은 나의 뜻에 복종하라. 심판의 때가 왔음을, 그릇된 법도로 세상을 어지럽히는 거짓된 빛을 멸할 때가 왔음을 알리노라!”

 

  그녀의 선언에 안개와 빛의 무리가 모여들어 형태를 이루었다. 두 사제의 주변이 완전한 어둠에 잠겼다가, 다시 우물의 빛으로 환해졌다. 원초의 파편을 제련해 만든 심판의 무기. 오직 단 한 사람, 체칠리아의 의지만을 위해 준비된 무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사슬을 붙잡았다. 세 갈래로 나뉘어 균형을 이루는 사슬의 끝에는 향로가 매달려 있었다. 원초의 파편이 저 자신을 연료로 삼아 잠시 사그라질지언정 꺼지지는 않는 빛의 안개를 일으키고 있었다.

 

  체칠리아는 그 안개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향이 자욱하게 맴돌았다. 체칠리아는 안개의 끝으로 시선을 들어 올리다가 안토니오와 눈이 마주쳤다. 어느새 안토니오는 자신의 검을 들고 있었다. 사악한 저주의 현신을 베어낸 성 안토니우스의 검. 안토니오는 그 검으로 빛의 안개를 휘저었다.

 

  “성 안토니우스여. 당신의 검을 든 종자가 아뢰오니, 당신의 검이 심판의 때에 쓰이는 것을 허락해주소서.”

 

  그러자 태양의 금색으로 반짝이던 성검에 우윳빛 광택이 새겨졌다. 성인의 검에 새겨진 원초의 잔향이 강렬한 진동을 일으켰다. 안토니오는 오직 사악한 것에게만 날카로운 그 검의 끝으로 바닥을 찍은 채 체칠리아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체칠리아, 이 검은 당신의 심판에 함께할 것입니다. 제가 당신의 심판에 함께하듯이.”

 

  그의 행동에 체칠리아는 난색을 보였다. 심판의 대가로 체칠리아는 자신의 존재를 걸었다. 안토니오가 이 심판에 개입하게 된다면, 그 역시 같은 것을 걸어야 한다. 그녀는 이 심판에 다른 이들이 개입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하지만 그는 기꺼이 그녀의 곁에 있겠다고 선언했다. 그래, 어쩌면 처음부터.

 

  “당신은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군요. 안토니오 사제님.”

  “미리 말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미리 말한다고 당신이 저를 허락해주실 것 같지는 않았거든요.”

  “그건 사실이지만요. 하지만 이제는 이유를 들어야겠어요. 당신은 왜 이 심판에 개입하려는 거죠? 당신이 숨기고 있는 계획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생각은 되지 않았다.”

 

  안토니오 꿇었던 무릎을 펴고 일어나 씁쓸하게 웃었다.

 

  안토니오는 영원한 빛들과 함께 어떤 미래의 가능성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주 오랫동안 그 미래를 위해 많은 것들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어느 날부터 미래를 볼 수 있는 눈은 흐려졌다. 조지의 존재가 빛의 눈을 가린 탓이었다.

 

  “하지만 미래를 볼 수 없게 된 지금, 이 심판으로 빛의 눈을 가린 이와 담판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당신이 원하는 미래가 무엇이기에?”

 

  체칠리아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안토니오가 왼손 검지를 잠시 제 입에 대었다. 체칠리아도 비밀을 지키겠다는 뜻으로 왼손 검지를 들어 자신의 입에 대었다. 안토니오의 개입이 체칠리아의 심판에 차질을 주어서는 안 되기에, 안토니오가 숨긴 미래를 들어야겠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안토니오는 손가락을 떼고, 자신이 봐온 미래를 말했다. 체칠리아는 그의 말을 다 듣고 나서 조용히 웃었다.

 

  “당신도 결국 비적성의 사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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