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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엄마, 그 인간, 그리고 나린
작가 : 세가잘놀
작품등록일 : 2016.10.5

'가난'이란 한 단어로 정의하기엔 조금은 부족한 듯한,
지금은 평범한 직장인 85년생 나린이의 굴곡진 삶.
과거를 지나 현재까지의 우리, 우리 부모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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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10-15 03:09     조회 : 523     추천 : 3     분량 : 5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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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로 돌아가자마자 치게 된 중간고사는 당연히 잘 볼 리가 없었다. 그전엔 상상도 못 했을 성적이었지만 야단치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엄마가 살아 있을 때도 내가 일 등을 했는지 이 등을 했는지 엄마에게 전해 듣기만 했고, 이제 엄마가 없으니 전해 들을 일도 없었다. 담임은 나를 불러 어머님을 잃고 상심이 큰 건 알지만 공부는 계속 열심히 해야 한다고 교과서를 읽는 형식적인 톤으로 일러주었다. 난 건성으로 “네.” 했다. 담임이 “그런데 어머니는 어떻게 돌아가신 거야?” 했다. 내가 대답을 못 하고 가만히 있자 “지병이 있으셨니?” 하고 물었고 난 이게 객관식 문제인가, 계속 기다리면 ‘자살’이란 보기가 나올까, 고민하다가 그냥 “네.” 했다.

 

 사실 그때 성적보다 더 큰 고민이 있었다. 장례를 마치고 집에 돌아갔던 그 다음 날부터 오줌이 너무 자주 마려웠다. 학교에 있으면 매 쉬는 시간마다 화장실에 가도 수업을 시작하고 얼마 안 되면 미칠 듯이 쉬가 마려웠다. 물을 많이 마신 것도 아니었고, 정작 화장실을 가면 오줌은 찔끔거리며 시원하게 나오지도 않는데, 오줌을 금방이라도 싸버릴 것 같은 느낌은 30분이 멀다 하고 부지런히 찾아왔다. 학교에서 나오면서 화장실에 가도, 버스를 타고 30분, 걸어서 20분 걸리는 하굣길 내내 오줌이 마려워 집에 항상 뛰어가야 했다. 문제는 잠을 잘 때였다. 잠들기 전에도 수 번, 수십 번을 화장실에 다녀와야 했고 자다가도 서너 번은 깨 화장실에 갔다. 잠에서 깰 때는 그나마 다행이었다. 어렸을 때도 이런 적은 없었는데 중학교 일 학년이 돼서 요에 지도를 그리니 처음엔 창피하고 당황했고 이틀 사흘 반복되자 체념했다. 요도 처음엔 그가 없을 때 빨다가 나중엔 오줌에 누레진 부분만 빨았고 그 뒤엔 그마저도 감당이 안 돼 대충 말렸다.

 

 둔한 그도 내가 화장실을 수십 번 들락날락하는 걸 모를 수 없었다. 그는 자꾸 나에게 어디 아프냐고 물었고 난 그때마다 얼굴을 붉히며 물을 많이 마셨다는 둥 배탈이 났다는 둥 이리저리 둘러댔다. 그날은 하필 그가 일을 늦게 나갔고 내가 늦게 일어나 그가 나를 깨우러 방에 들어왔다. 잠결이지만 그가 축축이 젖은 요를 만지고 냄새까지 맡는 게 느껴졌다. 이대로 안 일어나고 죽었으면 좋겠다 싶어 감긴 눈을 더 질끈 감는데 그가 태연히 나를 깨웠다. “그마 인나라. 늦었다.” 학교에 다녀오자 요가 깨끗이 빨아져 있었다.

 

 그날 이후로 그는 새벽마다 내 방에 들어와 내 요를 확인했다. 처음 며칠은 요를 빨다가 결국 그도 포기했다. 대신 어느 날 학교에 갔다 돌아오니 그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용한 한의원을 알아보았으니 같이 가자는 거다. 난 “돈도 없는데 한약을 어떻게 짓게?” 하면서도 이러다가 평생 오줌싸개가 될까 봐 두려웠던지라 안 갈 수가 없었다. 한의원은 가깝지 않은 평택에 있었고, 하루를 공칠 여유가 없는 그는 한의원 가는 길에 내릴 짐을 실어 놨다. 그는 그 한의원을 추천해준 그의 친구 ‘봉식’의 아들도 여기서 약을 지어 먹고 나았다며, 자기가 한의사라도 되는 듯이 “몸이 허해져서 그래. 밥 단디 먹고 약 먹음 될끼다.” 했다. 내가 오줌이 마렵다고 할 때마다 그는 차를 세워줬고 난 휴게소에서, 길가 트럭 뒤에서, 주유소에서 오줌을 싸댔다.

 

 한의원이 유명하기는 한지 늦은 시각이었는데도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난 아픈 냄새가 나는 사람들 사이에 오줌 지린내를 폴폴 풍기며 앉아있었다. 한의원 건물 밖에 있던 화장실에 두세 번 다녀오니 내 차례가 되었다. 나이가 백 살은 돼 보이는 한의사는 흰 한복 두루마기를 갖춰 입고 상투를 트고 갓까지 쓰고 있었다. 수염도 사극에 나오는 사람들보다 훨씬 길어 조선 시대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왔다 해도 믿을 것 같았다. 나를 대신해서 그가 수다를 떨었다. 화장실을 자주 가고 밤에 안 하던 실수를 한다고. 간호사가 나를 한심하단 듯이 봤다. 전엔 그런 적이 없는데 엄마를 잃고 충격이나 스트레스 때문인 것 같다고. 간호사가 나를 측은한 듯 쳐다봤다. 한의사는 미동도 없이 한참 동안이나 맥을 짚었다. “원래 건강한 몸인데 잘 못 쓰고 있네.” 난 갑자기 혼나는 기분이 들었지만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약 좀 씨게, 잘 듣게 지어주이소.” 그가 머리를 조아렸다.

 

 비싼 돈을 주고 지어온 한약은 전혀 효과가 없었다. 살이 좀 찔 수 있다고 경고하던 한의사 말과는 달리 살도 쑥쑥 빠졌다. 잠을 자다 오줌이 마려워 깨는 빈도도 늘었고 하룻밤에 두세 번 요에 쉬를 할 때도 있었다. 잠을 제대로 못 자니 항상 졸렸다. 아침잠이 없던 나였는데 아침에 일어나기가 버거워졌고 지각을 하는 일도 종종 생겼다. 아침마다 내 젖은 요를 보며 한숨만 쉬던 그가 한마디 두 마디씩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니 몸에서 나오는 긴데 니 의지로 조절을 해야지.” 너도 네 몸이랑 네 대가리로 하는 건데 그런 빚보증은 서주면 안 되지. 그를 따라 비뇨기과로 내과로 찾아가 봐도 누구 하나 뾰족한 수는 없었다.

 

 그는 어디서 은행이 신장에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똥냄새 나는 은행을 직접 한 자루 주워와 하루에 일곱 알씩 구워주기도 했고, 호박씨가 방광에 좋다며 시골에서 늙은 호박을 잔뜩 사 오기도 했다. 호박씨를 까먹고 남은 호박은 처치 곤란이었다. 엄마라면 호박죽을 끓이고 호박전을 부쳐서 어떻게든 다 먹었을 텐데, 그나 나는 그럴 능력이 없었다. 결국 내가 푹푹 삶아 소금, 설탕을 넣고 죽 같이 만들어 먹었다. 맛이 없는 건 둘째 치고 호박의 이뇨작용 때문인지 오줌만 더 자주 쌌다.

 

 그가 뱀을 잡아와 뱀탕을 끓여 놓았을 땐 솔직히 그만두라고 먹기 싫다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가 “느그 엄마 어렸을 때도 몸이 허해가 뱀탕 많이 먹었다 캤다. 이상한 거 아이다.” 하자 할 말을 잃었다. 장례식 이후로 엄마 얘기는 거의 하지 않았던 그와 나였다. 뱀탕 아무리 먹으면 뭐해. 자기가 죽어버리면 그만인데. 기름이 둥둥 떠 있는 허여멀건 국물을 보며 “기름은 걷어내야 하는 거 아니야?”하고 물었더니 그가 기름이 진국이라며 한 그릇 다 마시란다. 한 모금 넘기자 비린내와 노린내가 섞인 고약한 냄새가 났다. 코를 막고 쭉 들이키자 그가 이번엔 고기를 접시에 덜어 줬다. 소금, 후추를 잔뜩 뿌려 입안으로 욱여넣었다. 냄새를 안 맡고 씹으니까 질긴 닭고기 같기도 했고 생선 같기도 했다. 오줌 싸는 데는 효능이 없었지만, 뱀탕 덕분인진 몰라도 그해 겨울에 8센티나 자랐다.

 

 날이 추워서 내복에 잠옷까지 껴입고 잔 날이었다. 요에 지도를 그리면서부터 얇고 빨기 좋은 옷만 입고 잤는데, 그 날은 보일러를 켜도 너무 추웠다. 엄마 꿈을 꾸었다. 처음엔 엄마 얼굴만 보였다. 꿈속에서 ‘엄마를 어떻게 보고 있지? 엄마는 죽었는데.’하고 생각했다. 자각몽이었다. 벌거벗은 엄마가 벌거벗은 작은 아기를 안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아기가 아니었다. 성교육 시간에 비디오에서 본 눈코입이 제대로 없는 태아의 모습이었다. 탯줄도 달고 있었지만 그 끝이 잘려있었다. 엄마가 태아를 쓰다듬는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갑자기 괴팍한 얼굴로 변한 엄마가 손으로 태아를 뭉개기 시작했다. 엄마의 손이 태아의 머리를 뽀갰다. 뇌로 보이는 누런 물과 피가 줄줄 흘렀다. 엄마 손이 태아의 콩알만 한 심장을 터트렸다. 바퀴벌레 잡을 때 나는 “쿡” 소리와 함께 피가 솟구쳤다. 엄마의 가랑이에서도 피가 흘렀다. 괜히 내 몸에서도 피가 흐르는 것 같고 끈적끈적한 기분이 들었다. 엄마가 죽고 처음 꾼 엄마 꿈이었다. 꿈에서마저 왜 하필 이런 꿈인지 화가 났다.

 

 온몸이 쑤시고 오한이 들어 잠이 깼다. 바지는 여느 때처럼 축축했다. 일어나 이불을 걷어 올리는데 요에 이상한 게 묻어 있었다. 불을 켜고 보니 요가 빨갛다. 반 아이들 대부분이 생리를 해 나는 언제 시작하나 했던 차라 그 빨간 게 뭔지, 무슨 뜻이지는 알았지만, 막상 닥치자 뭘 해야 할지 몰랐다. 시계를 보니 새벽 네 시다. 집 근처 슈퍼는 다 문을 닫았을 텐데, 생리대는 어디서 사야지? 집에 엄마가 쓰던 게 남아 있으려나? 화장실을 뒤져봤지만 생리대는커녕 두루마리 휴지도 넉넉하고 사 놓는 법이 없는 우리 집엔 생리대 대용으로 쓸 만한 것도 보이지 않았다. 변기에 앉아 오줌과 피를 내려보냈다. 검붉고 덩어리진 피가 뚝뚝 떨어지는 걸 보니 조금은 신기했고 조금은 무서웠다. 똥이 마려운 듯 아랫배가 아팠지만 똥은 안 나왔다. 날이 밝을 때까지 변기에 앉아있어야 하나? 아, 변기에서 자면 되는구나. 여태껏 그 생각을 왜 못했지? 잠이 들락 말락 하는데 그가 화장실 문을 두드렸다. 나가보니 내 방문이 열려있고 그는 이미 상황파악을 끝낸 모양이었다.

 

 “약국에 가야 쓰나?” 그가 조심스레 말했다. “이 시간에 문 연 약국이 어디 있어.” 그의 얼굴도 잘 못 쳐다보면서도 괜히 툭툭댔다. “그럼, 뭐, 우얄까?” 그가 깊은 고민에 빠졌다가 나를 쳐다봤다. “편의점. 편의점 같은 데선 팔겠지?” 내가 어떻게 알아. 한 번도 안 사봤는데. “그렇겠지.” 그가 차키를 집어 들었다. 우리 동네엔 편의점이 없었다. 그를 보내고 바지와 요를 세탁기에 쑤셔 넣었다. 전기세와 수도세가 걱정됐다. 팬티는 세면대에서 손빨래를 했다. 아무리 비누칠을 해도 거무죽죽해진 핏물이 빠지지 않았다.

 

 그는 생리대를 종류별로 다 사 왔다. 머뭇거리며 “우에 쓰는진 알제?” 하는 그에게 얼굴을 붉히며 말없이 화장실 문을 닫았다. 제일 큰 것으로 골라 차고 나니 기저귀를 찬 듯한 기분이 드는 게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그날 저녁 그는 내가 성인이 된 것을 축하한다며 외식을 하자고 했고, 뻔한 그의 주머니 사정을 아는 난 당연히 싫다고 했다. 성인이 된 걸 축하할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다. 아직도 요에 지도나 그리는데, 이제 요에 핏물까지 들이기나 하는데, 무슨 성인이라고.

 

 그는 완강했다. 내가 같이 안 오면 혼자 가서 이인분을 먹고 오겠단다. 난 “내가 다섯 살인 줄 알아? 그런 협박을 믿게?” 하면서 그를 따라나섰다. 짜장면이나 먹자고 하니 그가 또 안 된단다. “이런 날 좋은데 가서 안 먹으면 언제 가노?” “돈 없잖아.” 곧 전세 계약이 만료되고, 전세금은 이미 채권단 손으로 넘어갔으니, 당장 살 곳을 마련하는 게 큰 문제라는 걸 알고 있었다. “돈은 있다가도 없는 거고, 없다가도 있는 거고, 돈 없다고 암껏도 안 하고 살면 그게 사는 기가?” 엄마가 싫어했던 그의 말 같잖은 논리였다. 엄마가 있었다면 한바탕 싸움이 일어났을 거다. 아니, 엄마가 있었으면 그가 내 생식기 사정에 관여하지 않았을 거다. 그는 자기 전에 엄마한테서 나린이가 생리를 시작했다고 한마디 전해 들었을 테고 아마 그걸로 끝이었을 거다. 설사 그가 외식을 하고 싶어 해도 돈 없다는 엄마의 면박 한 마디면 그는 찍소리도 못했을 거다. 엄마를 대신해 그에게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난 엄마가 아닌지라 그의 싱글벙글 웃는 얼굴에 침을 뱉을 성격이 못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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