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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여섯개의 돌
작가 : 글쓰는토깽이
작품등록일 : 2019.10.4

여섯개의 돌(분노, 나태, 교만, 탐식, 색욕, 탐욕, 질투)을 이용해 붉은용을 현세에 강림시키려는 여섯 순교자에 맞서 세상을 지키는 주인공들의 이야기

 
사라진 자들의 시간 (1)
작성일 : 19-11-16 21:20     조회 : 193     추천 : 0     분량 : 7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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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차디찬 1월의 서울

 

 “야~ 민영아 거기 좀 더 쓸어. 아~좀! 팍팍 쓸어~! 넌 애가 왜 그리 힘이 없냐~”

 시커먼 뿔테 안경에 끼워져 있는 두꺼운 안경알을 통해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찢어진 눈으로 바라보던 박 사장은 편의점 앞을 쓸고 있는 민영을 힐끔힐끔 곁눈질하며 그녀에게 괜한 심술을 부리고 있다.

 그는 벌써 3일째 내리는 눈 때문에 가게 앞길을 오가는 행인이 줄어 매상이 많이 떨어져 짜증이 난 것도 있지만 실은 그녀를 어찌해볼 생각으로 이틀 전부터 자기 랑 밥 한번 먹자고 그렇게 졸라도 들은 척도 안 하는 민영 때문에 골이 잔뜩 나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심술이 난 그는 그녀를 눈이 내리는 편의점 앞을 빗으로 쓸게 만들었다.

 

 보름 전 착실하게 일하던 알바생이 대기업에 취업 됐다고 말하면서 갑자기 그만 뒀다.

 하지만, 박 사장은 그 알바생이 그만둔 이유가 자신이 계속 치근덕거렸기 때문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아무튼 그 바람에 급하게 알바생을 구해야 했던 그는 조금 전 면접을 보러 오겠다는 여자와 통화를 하고 나서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민영이 편의점 문을 열고 면접을 보러 들어왔다.

 박 사장은 자신에게 걸어오는 민영의 얼굴을 보자 두근거리 던 심장이 멈추는 듯했다.

 그는 집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희영의 얼굴과 똑 닮은 그녀의 얼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희영은 얼마전 밤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비싼 돈을 주고 어렵사리 일본에서 공수해 온 리얼돌에게 붙여준 짝사랑하던 여자의 이름이었다.

 그는 자신 앞으로 걸어와 선 민영을 차근차근 살펴봤다.

 리본으로 질끈 동여맨 긴 머리가 등까지 내려와 있고 여자치고는 조금 큰 키, 뽀얀 얼굴에 유난히 붉은 입술 그리고 적당히 높은 코, 무엇보다 그는 자신을 바라보던 그녀의 큰 눈에 가득 차 있는 검은 눈동자에 정신이 혼미해 졌다.

 그는 지금까지 살면서 그렇게 찾아 헤매던 이상형이 지금 눈앞에 서있는 민영이라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더 이상의 판단은 무의미했다.

 경력이라든지, 아니면 얼마나 일할 수 있는지 하는 중요한 일을 물어보려고 준비했던 그의 머리속을 배신하듯이 그의 입은 정작 쓸데없는 말을 내뱉았다.

 “혹시 사귀는 사람은 있어요?”

 “아뇨, 없어요.”

 “근데 일하는 거랑 사귀는 사람이 무슨 상관인가요?”

 “아…아니, 남자친구 있는 애들이 꼭 땡땡이를 자주 쳐서…. 그렇게 애먹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라서…. 흠흠.”

 “아, 네.”

 그리고 그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면접을 본지 3분도 채 안되어 내일부터 출근하라고 말해버렸다.

 잠시 뒤, 나중에 그녀를 만난 걸 후회하게 될 줄은 모른 채 면접을 보고 편의점을 나서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이 찢어져라 웃음을 짓는 그였다.

 그렇게 민영이 출근하고 얼마 안되어 편의점을 들린 남자들은 꼭 한번씩 돌아보게끔 만드는 그녀의 미모때문에 한번이 두 번 이 되고 두 번이 세번, 그런 식으로 자주 편의점을 들려 그곳에는 그녀를 보기 위해 오는 남자손님들로 붐비기 시작하면서 매출이 급상승했다.

 하지만 매출이 오른 던 말든 간에 편의점으로 매일 출근하던 노총각 박 사장은 매일 그녀를 찾아와 찝쩍대는 남자들로 인해 애가 탔다.

 그는 혹시라도 저 추근대는 놈들 중 한 놈이랑 사귀면서 그녀가 편의점을 그만 둘까 봐 속이 이만저만 타 들어가는 게 아니었다.

 집에 돌아갈 때마다 자신을 맞이하는 것이 이제 희영이 아니라 민영이길 바라는 그의 마음이 점점 더 그녀를 향한 집착으로 변해갔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는 딴 놈이 낚아채기 전에 자신이 그녀를 가져야 된다는 착각에 빠져들어갔다.

 그래서 며칠 전에 구해 놓은 최음제를 그녀에게 사용하기 위해 밥이나 같이 하자며 그녀를 꼬셨지만 이리저리 핑계를 대며 피하는 그녀였다.

 그러더니 어제 취업하게 돼서 그만둬야 되겠다고 민영이 자신에게 일방적인 통보를 해오는 것이었다.

 그녀가 이번 주말까지 만 일을 봐준다는 말에 조급하게 느껴진 그는 다른 남자들에게는 웃으며 상냥하게 대하는 민영이 오늘따라 유독 자기에게만 차갑게 대하는 것 같아 슬며시 부아가 오르던 참에 눈까지 내려 장사가 잘 안되자 짜증이 치솟은 것이었다.

 그래서 쓸어도 쓸어도 쌓이는 눈을 빗자루로 쓸고 있는 민영에게 심술 섞인 목소리로 지랄을 떨고 있는 것이었다.

 

 “언제까지 쓸어요?”

 민영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목소리로 박 사장에게 물었다.

 

 “뭐?”

 

 “아니, 눈 그치고 나서 쓸어도 되잖아요. 근데 이렇게 꼭 지금 쓸어야 되는 거냐구요.”

 빗질한 자리를 순식간에 다시 메우는 눈 때문인지 아니면 심술부리는 박 사장 때문인지 암튼 그녀의 목소리에는 화가 잔뜩 묻어 있었다.

 

 민영의 화난 목소리를 들은 박 사장은 머릿속에 있던 줄이 띵-하고 끊어는 걸 느꼈다.

 “너 이거 명령 불복종이야!!. 그냥 쓸라면 쓸 일이지 뭔 말이 많아!!”

 그는 팔짱을 끼고 있던 손을 풀고 그녀에게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뭐라구요? 나 참 어이가 없어서.”

 민영은 박 사장의 억지에 화가 나서 손에 들은 빗자루를 눈바닥에 내팽개치더니 편의점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야!! 너 방금 뭐라고 했어? 엉? 어디서 건방지게!!!”

 흥분해서 씩씩거리며 뒤따라 들어온 박 사장이 민영의 왼쪽 어깨를 붙잡고 거칠게 돌려세우며 소리쳤다.

 

 “이거 놔요. 지금 어디다 손을 대는 거예요!!!”

 민영이 손으로 박 사장의 손을 쳐내며 소리쳤다.

 

 그녀의 격한 반응에 박 사장은 움찔하며 뒤로 살짝 물러났다.

 

 “제가 사장님 그런 거 알면서도 그동안 참고 일한 거 모르셨죠!!”

 민영은 박 사장이 잡았던 어깨가 아픈지 문지르며 굉장히 화난 목소리로 박 사장에게 말했다.

 

 “뭐, 뭐어, 어? 뭐, 뭐, 말하는 건데?”

 그는 민영에게 자신의 마음이 들킨 것 같아 더듬으며 대답했다.

 

 “그동안 저를 그 눈, 그 찢어진 눈으로 매번 훔쳐본 거 모를 줄 아셨어요? 저 그때마다 얼마나 소름 끼쳤는지 아씨~ 지금 생각해도 소름 돋네. 면접 볼 때 사귀는 사람 있냐고 질문할 때부터 이상하다 했지. 며칠만 참을 걸 당장 돈이 급해서 일했더니 진짜!!!”

 민영이 자신의 팔을 쓰다듬으며 그의 눈을 노려봤다.

 

 “뭐!! 찢어진 눈~~!! 그리고 뭐!! 훔쳐봐~!!! 야 이!!! 쌍년아!!! 어디서 함부로 지껄이는 거야!!! 엉!!!”

 박 사장은 커다란 손을 들어 올려 자신을 노려보는 그녀를 내려치는 시늉을 하며 거칠게 욕을 내뱉었다.

 

 “왜 욕을 하고 그래요!! 그리고 핸드폰으로 제 사진 찍은 거 그것도 범죄예요. 그것도 제가 모를 줄 아셨나 보네요!!”

 민영이 박 사장의 뒷주머니에 꽂혀있는 핸드폰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무, 무슨 소리야!! 내가 왜 네 사진을 찍어? 어!!”

 박 사장은 화들짝 놀라며 자신의 뒷주머니에 손을 가져갔다.

 

 “그거야 보면 알죠! 핸드폰 이리 줘봐요!! 어서~!! 이리 달라니까요!!”

 

 “글쎄 없다고!! 없다는데 왜 이래!!!!”

 박 사장은 자신에게 달려들어 뒷주머니에 꽂혀 있는 휴대폰을 잡으려는 그녀를 잡고서 뒤로 강하게 밀쳤다.

 

 “앗-!!!”

 

 “와자장차아앙-!! 콰르륵 쿠다탕탕-!!”

 

 박 사장이 힘껏 밀쳐낸 민영이 뒤로 날아가 냉장고 유리문을 박살내더니 그 자리에 쓰러졌다.

 그리고 냉장고에 들어있던 음료수병들이 한두개로 시작하더니 급기야 우르르르 쏟아지며 쓰러진 그녀를 덮쳤다.

 

 “퍽-!! 퍼-! 퍽-! 퍽-!! 퍽!!퍽!!!퍽!!퍽!!퍽….”

 삽시간에 음료수 병들이 그녀의 머리를 향해 전부 떨어져 내렸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박 사장은 혼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서있다가 쓰러진 그녀의 머리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걸 보고 나서야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갔다.

 “민영아. 괜찮아? 응? 차민영?”

 “헉-!!”

 그리고 쓰러진 민영에게 다가가던 박 사장은 자신의 발 앞까지 흘러온 그녀의 피가 보였다.

 

 “탁-!”

 신발에 피가 묻을까 몇 발짝 뒤로 물러선 그는 우측 뒤에 있던 진열대에 몸이 부딪쳤다.

 심장이 멎을 정도로 놀라며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본 그의 눈에는 진열대에 걸려있는 손거울에 비친 창백하게 변해 있는 자신의 얼굴이 보였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뒷주머니에 있는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119를 차례대로 눌린 그는 통화 버튼을 누르려다 죽은 듯이 엎드려 있는 민영을 쳐다봤다.

 ‘만약 죽은 거면, 정말 그런 거면 나는….’

 그는 지금 신고하면 살인자로 잡혀갈 것이 뻔히 보였다.

 그는 취소 버튼을 누른 다음 뒷주머니에 다시 핸드폰을 끼워 넣고 나서 편의점 문을 열고 밖을 둘러봤다.

 잠시 서서 눈만 내리고 있는 거리에 행인이 없는 걸 확인하고서 얼른 가게 셔터를 내렸다.

 그리고 문을 잠그고 나서 내부 전등을 모조리 껐다.

 그는 탈의실로 들어가 오늘 날짜의 cctv 영상을 지웠다.

 그리고 어두운 탈의실 의자에 앉아 핸드폰의 사진 앱을 열어 삑삑소리를 내며 민영의 사진을 전부 삭제하기 시작했다.

 

 

 팍-! 턱-, 팍-! 턱-, 팍-! 턱-

 삽으로 흙을 파내는 소리가 눈 덮인 천마산 밤하늘을 향해 조용히 울려 퍼졌다.

 

 “헉-! 헉-!”

 숨을 몰아쉬며 한참 삽으로 땅을 파던 남자는 삽을 땅에 꽂아 놓고서 한편에 놓여 있는 커다란 여행 가방을 쳐다봤다.

 달을 가렸던 구름이 차가운 바람에 서서히 움직이자 밤이 조금 밝아지며 남자의 얼굴이 드러났다.

 입에서 뜨거운 김을 내뿜으며 숨을 내쉬고 있는 남자는 박 사장이었다.

 그는 비대한 얼굴에 나 있는 땀구멍에서 뿜어져 나오는 땀과 기름으로 번들거리는 낮은 콧잔등에 걸쳐진 뿔테 안경이 자꾸 미끌려 내려가자 안경을 벗고서 목장갑을 끼고 있는 손등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그러고 다시 삽을 움켜잡고서 흙을 파 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허리보다 높게 파낸 후 흙을 퍼는 것을 멈췄다.

 그는 구덩이 위로 올라가더니 여행가방을 끌고 와 구덩이 앞에서 지퍼를 열었다.

 열린 가방안으로 달빛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자의 나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여자의 나신을 끌어내어 구덩이 안으로 밀어 넣었다.

 구덩이 안으로 굴러 떨어진 여자는 민영이었다.

 머리에서 흘린 피가 얼굴에 말라붙어 끔찍한 모습이었다.

 박 사장은 그 모습이 무서웠는지 얼른 눈을 돌리고 삽을 들어 민영이 들어가 있는 구덩이에 흙을 퍼 넣기 시작했다.

 그렇게 민영의 벌거벗은 몸 위로 흙이 뿌려졌다.

 몇 번을 그녀의 몸 위로 흙을 퍼 넣었을 때였다.

 구덩이에서 가느다랗게 사람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박 사장은 삽을 움직이던 팔을 멈추고 몸을 숙여 구덩이 안을 들여 다 봤다.

 민영이 눈을 가늘게 뜨고서 실낱 같은 목소리로 자신에게 뭐라고 말하는 게 들렸다.

 “살…려…주…세….”

 

 사실 민영은 죽은 게 아니라 기절한 것이었는데 흙이 자신의 몸을 때리자 정신을 차린 것이었다.

 죽었다고 생각한 민영이 아직 살아있자, 박 사장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다시 데리고 가서 병원을 가야하나, 아님….’

 잠시 고민하는 그의 등에서 식은 땀이 흘러내렸다.

 민영의 얼굴을 바라보다 몸을 일으킨 박 사장의 눈에 살 심이 떠올랐다.

 병원에 데려가 봤자 자신을 신고할 게 뻔하다고 생각한 그는 그냥 묻어 버리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그는 다시금 삽을 꽉 움켜쥐고서 흙을 구덩이에 좀 전보다 더 빨리 퍼 넣었다.

 손을 위로 올리며 입을 열려는 그녀의 얼굴 위로 흙더미가 퍽퍽 쌓여갔다.

 그렇게 미친 듯이 한참 동안 흙을 퍼 넣자 어느새 구덩이가 완전히 메꿔졌다.

 그는 삽으로 흙을 두드려 완전히 다진 다음 주위의 눈을 끌어 모아와 그 위에 덮었다.

 비오 듯 흘린 땀에 젖은 그 옷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났다.

 그는 삽과 여행가방을 양손에 챙겨 들고 자신의 차가 세워진 천마산로 14번 길을 향해 도망치듯 내려갔다.

 

 

 점점 더 밤이 깊어 가고 민영을 파묻은 산속에서 뛰다시피 내려온 박 사장이 차를 타고 천마산입구를 완전히 벗어날 때였다.

 

 “쿠쿠쿠쿠쿠쿠!!!!!”

 하얀 눈으로 뒤 덮인 천마산 꼭대기에서 커다란 굉음이 생기며 주위의 눈이 소용돌이 치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아아!!!!”

 점점 더 소용돌이가 커지더니 산 꼭대기에 쌓여 있던 눈을 전부 공중에 띄워 버렸다.

 공중에 뜬 눈들이 소용돌이에 휘감겨 커다란 굉음을 내더니 마치 침을 뱉어내 듯이 그 속에서 한 명의 사람이 튀어나왔다.

 그러자 눈발을 일으키던 소용돌이가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렸다.

 

 “이거 독한 럼주를 한통은 마신 기분이야.”

 머리가 많이 어지러운 듯 혀를 꼬는 남자의 목소리가 사라져가는 눈안개 사이로 들려왔다.

 

 목에서 우드득하는 소리를 내며 이리저리 돌려 근육을 풀어준 남자는 주위를 돌아봤다.

 “젠장-! 야크 그 개새끼가 그런 함정을 파 놨을 줄이야. 그나저나 여긴 어디지? 설마 천국은 아닐테고?”

 미간을 잔뜩 모으며 투덜거리는 목소리의 주인은 질이었다.

 그리고 누군가를 찾는 듯 질는 좀 더 주위를 세세히 돌아봤다.

 “음… 나 혼자만 빠져나온 건가?”

 

 질은 답답한 마음에 숨을 크게 들이셨다.

 

 “!”

 숨을 크게 들이마신 질의 코로 한줄기 피 냄새가 흘러 들어왔다.

 “음… 저쪽에서 나는 듯한데?”

 그는 피 냄새를 따라 산밑으로 몸을 날려 달려갔다.

 그렇게 피의 향기를 따라 도착한 곳은 민영이 묻혀 있는 구덩이 위였다.

 질은 구두발로 눈을 쓱쓱 치운 다음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손으로 흙을 만져봤다.

 그는 흙이 젖어 있자 이곳이 흙으로 덮어진 지 얼마 안된 장소라는 걸 알았다.

 흙에 손바닥을 대고 그는 눈을 감고 정신을 한곳으로 집중했다.

 정신을 땅속으로 흘려보낸 그는 흙 속에서 꺼져가는 맥이 손바닥을 통해 전해지는 게 느껴졌다.

 감았던 눈을 번쩍 뜬 그는 손으로 흙을 파내기 시작했다.

 전광석화처럼 움직이는 그의 손놀림에 흙이 점점 그의 주위에 빠르게 쌓여갔다.

 그렇게 움직이던 그의 손이 갑자기 딱 멈췄다.

 달빛으로 보이는 그의 손끝이 사람의 피부가 닿아 있는 게 보였다.

 그가 흙을 쓸어내자 그 속에 묻혀 있던 민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민영을 안아들고 가볍게 날아올라 구덩이를 벗어났다.

 그는 그녀를 바닥에 눕히고 나서 자신의 재킷을 벗어 그녀의 몸 위로 덮어줬다.

 그녀의 옆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은 질은 그녀의 멈춰진 심장부근에 손을 얹고 살짝 힘을 가했다.

 그러자 그의 손바닥에서 충격파가 흘러나와 그녀의 심장을 관통했다.

 충격파에 맞은 그녀의 심장이 잠시 뒤 다시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가 워낙 피를 많이 흘린 상태라 이내 곧 심장의 움직임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충격파에 잠시 되살아난 민영이 눈을 천천히 뜨더니 힘없는 손을 느릿느릿 움직여 자신의 가슴에 얹어진 질의 손을 잡아갔다.

 “사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그녀의 입에서 연신 흘러나오는 말을 들은 질은 자신의 벗에게서 들었던 언어와 같아 반가웠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거웠다.

 안타깝게도 그녀의 생명은 잠시 뒤면 완전히 꺼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제발… 아직… 아직은 안돼…요…”

 민영이 눈동자를 움직여 질의 눈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미안하오. 하지만, 내가 도와줄 수는 없을 것 같소.”

 질은 자신의 손을 잡은 그녀의 손을 잡고서 가슴에 얹혀진 손을 빼냈다.

 “응?”

 그러다 그는 그녀의 손에 반지가 끼워져 있는 게 보였다.

 “이건… 이걸 어떻게 당신이…?”

 

 민영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반지는 분명 자신이 옛날 사랑했던 여인에게 준 것이었다.

 이곳이 어딘 진 모르지만 분명한 건 이곳은 자신이 옛날 살았던 곳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인 건 확실했다.

 

 “툭….”

 하지만, 질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봤을 때는 이미 민영이 숨을 거두며 그녀의 가슴에 얹어 있던 손이 차가운 눈 위로 떨어진 후였다.

 

 곧이어 질의 절규에 가까운 외침이 천마산을 뒤 흔들었다.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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