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릴리를 특별한 사람에 분류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 번 더 릴리를 만나게 된다면 릴리를 어느 관계에 분류할지 알 수 있을 거 같았다. 욕심이었다. 릴리는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이기도 했고, 나는 릴리에 대해 잘 알지 못 했다.
하지만 릴리의 눈이 사랑스러울 정도로 아름답다는 것은 누구보다 더, 아니 마이클보다 더 잘 알고 있다.
처음에 릴리를 만나기 전, 나는 릴리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그리고 중요하지도 않았다. 나는 누군가 나를 대할 때 나에 대한 부정은 없었으면 했다.
다른 바람은 없고, 나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기를 바라는 바람만 있었다. 하지만 릴리를 만나고 나서 나는 릴리가 나를 긍정적으로 생각했으면 하는 마음이 크게 자리 잡았다.
내 태도 하나하나가 릴리에게 마음에 들었으면 했다.
나는 여자 친구를 사귈 마음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르겠다.
나는 릴리가 마음에 들었다.
한 번 더 만나고 싶어 졌다.
릴리는 내게 멋진 사람이라고 했다. 나는 누군가에게 멋진 사람이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 좋은 사람은 있었지만, 그때는 이런 기분이 아니었다.
“응.”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눈가를 휘며 웃지도 않았고, 눈에 쌍심지를 키지도 않았다. 내 키 보다 손 하나 정도 작은 릴리를 내려 보기만 할뿐이었다.
그때였다.
릴리는 까치발을 들어, 내 입을 맞췄다. 벌린 입 틈 사이로 릴리의 혀가 들어왔다. 나는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성별이 바뀌었다고 해도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릴리는 대담했고, 나는 수줍었다.
대담했던 그웬과는 전혀 달랐다.
릴리는 내 허리를 감쌌고, 나는 릴리의 머리를 감쌌다. 내 손에 릴리의 작은 머리통이 들어왔다. 릴리의 목이 아프지 않게, 그건 나의 작은 배려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릴리와의 키스는 히비스커스처럼 상큼했다. 그 상큼함은 여전히 내 입 안에 머물고 있었다.
릴리의 볼은 히비스커스처럼 불게 물들었다. 릴리는 새하얀 백합이 아니었다. 새빨간 팬지였다.
난 그 팬지가 마음에 들었다.
릴리가 마음에 들었다.
난 릴리와 다음에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언제 만나기로 약속한 건 아니었지만, 조만간 만날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여자 기숙사를 떠나 남자 기숙사로 걸어가는 내내 내 머릿속에서는 릴리와의 짧은 키스가 맴돌았다. 그 키스는 영화가 되어 내 머릿속을 나가지 않으려 발버둥치고 있다.
나는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무슨 일이 있었냐는 조셉의 물음에도 대답 따위 하지 않았다. 내 표정을 읽은 조셉은 ‘여자 만났구나.’라고 한 마디 내뱉고는 ‘말해주지 않을 게 뻔해’라며, 앤디와 마이클이 있는 방으로 건너갔다. 그 덕분에 나는 혼자서 조용히 침대에 누워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내 생각의 일부는 당연 릴리였다.
릴리를 알게 된 시간은 하루도 채 되지 않았지만, 난 이미 릴리를 다 알고 있다는 듯 느껴졌고, 릴리 또한 그렇게 느껴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오늘 릴리에게 멋진 날, 좋은 날이 됐을까? 처음에는 걱정됐지만 얼마 못 가 이 걱정은 필요 없는 걱정이라는 것을 깨달아버렸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아직 릴리에게 무한한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지 않았다. 그저 사랑스러운 눈을 가진 여인에게 느끼는 설렘이라는 감정이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