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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로미오를 죽이는 방법
작가 : 빠빠빵
작품등록일 : 2019.11.10

모든 것을 잃어버린 특전사 출신의 여자.
자신을 이용하려는 남자와 사랑에 빠져 그를 지키려 하지만, 정작 그의 진짜 적은 자기자신이었다.

 
1. 새벽이 온다
작성일 : 19-11-10 23:51     조회 : 344     추천 : 0     분량 : 5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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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ang bang- my baby shot me down...”

 

 암막커튼이 쳐진 거대한 방 안. 음악이 공허한 메아리처럼 울렸다. 미니멀하다고 할 정도로 간소한 방 가운데에는 의자에 앉은 남자만 보였다. 남자는 옆에 놓인 lp판을 껐다. 끔찍한 적막이 찾아왔다.

 

 남자는 손에 쥔 약병에서 알약을 여러 개 손에 탈탈 넣어 입에 구겨 넣었다. 그리고는 바닥에 있는 생수병을 입에 쏟아 넣었다. 그러더니 그는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눈물이 그의 눈에서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는 앓듯이 중얼거렸다.

 

 “새벽이 오는구나.”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흘리던 남자는 소매로 얼굴을 마구 닦았다. 그는 결심한 듯 책상 위의 점퍼를 챙겨 입더니, 서랍을 열었다. 서랍 안쪽에는 비밀 서랍을 열었다. 그곳에는 다름 아닌 45구경짜리 m1911 이 꼭 맞춘 것처럼 모셔져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똑같은 크기의 총이 놓여 있었을 법한 빈 부분이 있었다. 남자는 이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딱 세 발. 그게 다야.”

 

 그는 총을 점퍼의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문을 나섰다.

 

 

 

 ***

 

 

 

 “추...충성!”

 

 특수전 사령부 복도. 주위의 병사들이 하나같이 넋이 나간 듯 경례를 해댔다. 그들은 마치 모세가 홍해를 가르는 것처럼 양옆으로 밀려 나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복도 가운데에 서 있는 고귀할 정도로 아름다운 존재 때문이었다.

 

 그들은 마치 아이돌을 보듯 이를 향해 경애의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그러나 조금 더 다른 건, 그 존재의 머리 위에는 대위 계급의 철제 마크가 달린 특전사 베레모가 있다는 것이었다.

 

 “강하진 대위님, 승진 축하드리지 말입니다!”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하진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눈앞에는 아버지의 전속부관인 이중위가 서있었다.

 

 “곧 소령이지 않으십니까.”

 “이중위. 아직 승진 전이라니까요. 왜 그러십니까.”

 

 그러나 내심 듣기 좋은 듯 하진이 아름다운 미소를 지었다. 이에 모두들 말은 못하고 심장만 부여잡았다. 그녀의 반듯한 특전사 유니폼 위에는 훈장이 햇살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특전사 중의 특전사로 불리는 특수전 사령부 예하 대테러 부대, 707 특임대 소속 대위. 그것이 그녀의 소속이었다.

 

 한 병사는 참지 못하고 그런 그녀를 눈동자로 흘끔댔다. 아닌 게 아니라 마치 DMZ 보호구역처럼 맑고 청아한 피부는 물론, 우아한 U자형의 턱과 또렷하고 균형적인 이목구비가 얼굴만 대충 훑어본다면 그저 전에 없이 눈에 띄는 미인으로밖에 생각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러나 병사는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자세와 그녀의 강렬한 두 눈에 이내 주눅이 들어 시선을 돌렸다. 그것은 그녀가 그야말로 그저 한낱 전사만이 아닌, 무관으로서의 기품 그 자체였기 때문이었다.

 

 그때 그녀가 지나가던 남자 화장실 앞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야, 진짜 너 오늘 죽고 잡냐. 이 고문관 새끼가. 너 때문에 내가 이게 뭐냐.”

 “죄...죄송합니다. 성 하사님.”

 

 딱 보니 이등병이 뭔가 잘못한 모양이었다. 화가 난 신입 하사가 사각지대인 화장실에서 이등병을 갈구고 있었다.

 

 “너 이 새끼 위에다가 꼰잘 칠 생각 하면 죽여 버린다. 알지? 내 성격.”

 

 그러자 하진은 멈춰서서 화장실 안을 바라봤다. 그녀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무슨 일입니까?”

 

 그러자 하사가 특전사 베레모에 살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가, 여군이라는 걸 확인하더니 표정이 일순 풀어졌다. 그리고는 친한 척 이등병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이등병은 말도 못하고 침울해보였다.

 

 “아하하, 충성, 대위님. 아닙니다. 저희 남자들끼리 볼일 보고 있는 중입니다. 맞지?”

 “아...네...”

 

 하진이 차갑게 하사를 노려보더니, 성큼성큼 남자 화장실로 향했다. 뒤를 따르던 이중위는 물론 하사와 이등병마저 당황하여 움찔댔다.

 

 “볼일을 여기서 보십니까? 소변기에서 보셔야 되는 거 아닙니까?”

 “하하...저...대위님. 그게 아니라 말입니다. 남자들끼리 그런 게 있지 않습니까.”

 “그게 뭡니까? 저는 여자라서 잘 모릅니다.”

 

 이에 하사가 짜증난 듯 입술을 깨물었다.

 

 “후...군기도 잡아야 군이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지 말입니다.”

 “그래요? 그럼 저도 군기를 잡아볼까요?

 

 그 말에 하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요, 남자가 아니라 여자 남자 사이에는 그런 거 없습니까?”

 “그...그건 아니지만...하하...”

 “그럼 여기서 오리걸음 걷습니다. 실시.”

 “여...여기서요?”

 

 하사가 얼굴을 찌푸렸다. 눈치를 보는 이등병의 얼굴을 보더니, 그는 분노로 얼굴을 떨었다. 안 그래도 부사관들은 대체로 육사 출신의 엘리트인 장교들을 띠꺼워했다. 그런데 그것도 새파란 어린 여자가 대위랍시고 이등병 앞에서 체면을 깎아 내리다니. 그는 작게 볼멘소리로 중얼거렸다.

 

 “장교면 다냐..여자 주제에...”

 

 그러자 하진의 얼굴이 단박에 찌푸려졌다.

 

 “방금 뭐라고 했습니까?”

 “아? 아닙니다. 그냥 저 혼자 한 말입니다. 잘못 들으셨습니다. 그런데 오리 걸음은 어떻게 하는지 까먹어서 말입니다. 대위님이 시범 좀 보여주십시오.”

 “지금 저한테 오리걸음을 시범을 보여 달라, 이 말입니까?”

 “네. 아무래도 저보다 대위님이 여자다 보니 오리걸음은 잘 하실 것 같지 말입니다. 여자는 남자보다 골반이 벌어져 있지 않습니까?”

 

 하진이 기가 차서 하사를 노려봤다. 하사가 능청스럽게 미소 지을 뿐이었다. 이는 대위 취급조차 하지 않는 명백한 무시이자, 성추행이나 마찬가지였다. 듣던 이 중위가 화를 참지 못하고 그 사이를 끼어들고자 했다.

 

 “지금 대위님께 무슨 말을...!”

 

 하진이 그런 이 중위를 막더니 고개를 저었다.

 

 “왜, 힘드십니까?”

 

 하사가 하진에게 이죽댔다. 그러자 하진이 하사를 노려보더니, 그가 눈치도 채기 전에 주먹을 날렸다. 하사가 놀라서 주먹을 피하다가 다리를 쩍 벌린 채로 엉덩방아를 찍었다. 하진이 미소 지었다.

 

 “그쪽도 골반이 잘 벌려 있으신데요. 오리걸음은 잘 하시겠네요.”

 

 화장실 냄새나는 바닥에 엉덩이를 젖은 하사가 씩씩대며 하진을 노려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하진은 이등병에게 고갯짓을 했다. 이등병이 눈치를 보며 나갔다.

 

 “상관항명. 언어폭력. 아, 그리고 성추행까지. 총 세 건이네요. 이번 일은 상부에 보고를 할 테니 징계 각오하시던지요.”

 

 이에 화난 하사가 벌떡 일어나 하진에게 들이대려 했다. 이 중위가 놀라 하진에게 소리를 질렀다.

 

 “강 대위님!!”

 

 그런데 그때 연대장이 어디선가 튀어나와 둘 사이를 막았다.

 

 “스톱!!”

 

 그의 삼촌인 연대장이었다. 하사는 옳다구나, 반갑게 연대장을 바라봤다. 이모부이자 대령인 연대장이 부디 자신의 편이 되어 이 악마같은 여자에게 구해주기를 기대한 것이었다.

 

 “삼..아니, 연대장님. 그게 저...”

 

 그러나 연대장은 노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하사에게 외쳤다.

 

 “야, 임마! 강 대위한테 사과 안해? 말 뽄새가 무슨 그 따위야.”

 “네,네?”

 “아하하, 미안하네, 우리 애들이 좀 이래. 내가 정신교육 단단히 시킬게.”

 “...감사합니다. 연대장님. 대신 저런 ‘군기’는 제외해주십시오. ”

 “하하하. 당연하지.”

 

 그 말에 그저 하사는 이를 빠득빠득 갈았다.

 

 “저는 바빠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하진은 경례를 한 뒤 사라졌다. 연대장이 그의 뒤통수를 갈겼다.

 

 “너 이 새끼 진짜 미쳤어? 어딜 대들어. 내 앞길 막으려고 환장한 거야?”

 “네? 아니 왜 ..”

 “너 진짜 모르고 하는 소리냐? 저 얼굴이 저렇게 이쁘장하게만 보여도 군인 집안 딸이야. 아버지가 원 스타에, 지금 공군작정사령관 유력후보란 말이다.”

 

 그 말에 소름이 돋은 하사가 뜨악하고 입을 벌렸다. 그제야 그가 무슨 실수를 했는지 뼈저리게 느낀 것이었다.

 

 “너 임마, 앞으로 군생활 편하게 할 생각은 걷어치우는 게 좋을 거다. 게다가 저 대위 약혼자도 바로...”

 

 하진은 굳은 얼굴로 걸어갔다. 그때 그런 하진의 어깨를 누군가 잡았다. 사복을 차려입은 남자였다. 하진의 얼굴이 살짝 밝아졌다.

 

 “곧 소령으로 승진한다면서. 강하진 대위님.”

 “하하, 그건 기밀 아닙니까? 기무사 직권 남용인데요. 김규형 대위님.”

 “글쎄. 약혼자가 승진한다는데 그 정도는 취급할 수 있어야지. 그나저나 좀 시끄럽던데.”

 

 약혼자인 기무사 김규형 대위가 웃으며 하진의 뒤를 바라봤다. 눈이 마주친 하사가 덜덜 떨며 고개를 돌렸다. 규형의 눈치를 보던 중위도 둘을 위해 스르륵 자리를 비켜주었다. 하진이 어깨를 으쓱했다.

 

 “별 거 아니었습니다. 괜찮아요.”

 “그럼 뭐, 다행이고.”

 

 규형이 하진의 눈치를 보며 손가락을 살짝 건드렸다. 그의 달콤한 스킨쉽에 하진은 어색한 듯 미소를 지었다. 아직까지도 익숙하지 않았다. 눈앞의 그와 곧 결혼할 사이라는 게.

 

 한 번도 화를 낸 적이 없는 온화한 미소의 다정한 남자.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인 아버지와는 전혀 달랐다. 언제나 그녀를 같은 군인으로 존중하고 인정해준다는 점도 좋았다. 그렇기에 이 정도면 그와 평생을 약속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내린 선택이었다.

 

 “그런데...저... 강 준장님은 요새 괜찮으셔?”

 

 규형이 속삭이며 중얼거렸다. 하진이 놀라 고개를 돌렸다.

 

 “네? 아버지가..왜...”

 “아...아냐. 신경 쓰지 마, 별 거 아니야.”

 

 하진은 기분이 영 싸했다. 정보를 캐내는 게 주 업무인 그가 별 거 아닌 얘기를 할 리가 없었다. 그러나 규형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돌렸다.

 

 “그나저나, 오늘 저녁에 시간 돼?”

 “아, 네. 됩니다. 왜...”

 “알면서.”

 

 규형이 손을 반지 상자 여는 흉내를 냈다. 그러자 하진이 민망하여 고개를 돌렸다. 프로포즈라니. 막상 눈앞에 다가오니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런데 그때 뒤에서 무뚝뚝하고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강하진.”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아버지인 강 중장이었다. 그는 오늘따라 더욱 초췌해보였다. 하진이 강 중장을 보고 반색을 했다.

 

 “아버지, 안 그래도 규형씨와 아버지 얘기를 했었는데요...어떻게 여기까지....”

 “준장님. 안녕하십니까? 몸은 괜찮으시죠?”

 

 중장은 살갑게 말을 거는 규형을 힐끗 보더니, 대답 없이 하진을 자신 쪽으로 이끌었다. 평소의 준장 같지 않은 모습이었다. 하진은 점점 불안해졌다. 준장이 초조하게 속삭였다.

 

 “단둘이 할 얘기가 있다.”

 

 

 ***

 

 

 대서양 위의 최고급 요트 안. 시끄러운 EDM 음악은 물론이거니와 훈훈하고 섹시한 클러버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중 부르는 게 값이라는 맨 중앙 테이블에는 이란계 미국인인 무기 거래 에이전트 캄란과 숨 막힐 정도로 완벽한 남자, 차이언이 있었다.

 

 그는 동북아시아 최고 방산기업인 제웅 그룹의 5대 독자이자 전무이지만, 오히려 재력과 능력을 상회하는 비현실적인 미모로 더 유명했다. 북유럽을 제패할 것 같은 피지컬에 그림 같은 얼굴은 어딜 가도 시선 강탈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의 독보적인 존재감은 이곳에서도 당연히 폭발적이었다. 떡 벌어진 어깨에 맞춰진 톰포드 수트는 그런 그의 섹시한 자태에 화룡점정을 찍었다. 현란한 조명이 황홀하게 흩날리자 여자들의 시선이 그에게 고정되기 시작했다.

 

 그때 캄란이 샴페인 걸의 엉덩이를 훑더니 싱글거렸다.

 

 [이언, 믿을 수 없군. 내 취향을 완벽하게 파악하다니. 제길, 여긴 죽여주게 환상적이야! 요트 이름이 뭐라고 했지?]

 [맘에 든다니 영광이군, 캄란. 여기 이름은 발키리야. 전쟁의 처녀지.]

 [맙소사, 정말이지 이름마저 완벽하군.]

 

 이언이 박수를 치자, 옆에 있던 웨이터가 기다렸다는 듯이 12L짜리 아르망 드 브리냑을 두손으로 들어부었다. 캄란이 샴페인이 찰랑 대는 잔을 들며 외쳤다.

 

 [전쟁의 처녀를 위하여.]

 

 그때였다. 띠링-. 테이블 위의 아이폰에서 문자 수신음이 울렸다. 이언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다시 잔을 내밀었다. 캄란이 고개를 갸웃했다.

 

 [메세지 안 봐도 돼?]

 [아, 아냐. 이따 전화하면 돼.]

 [왜? 누군데? 여자야?]

 

 캄란이 능글거리며 그를 쳐다봤다. 이언이 찌푸리며 얼굴을 저었다.

 

 [아냐. 한국에 있는 형이야.]

 [뭐?]

 [형이 새벽을 무서워 하거든.]

 [하하, 성인 남자가 새벽을 무서워 한다고? 농담하지마. 누가 보면 여동생 얘기하는 줄 알겠네.]

 

 그러자 이언의 얼굴이 험악하게 굳어졌다. 마치 금방이라도 그를 죽일 기세처럼 총을 꺼내 캄란의 이마에 들이댔다. 45구경짜리 m1911 이었다.

 

 [한번만 그딴 얘기 하면 죽여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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