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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똑바로 내 두눈을 봐
작가 : 폭력햄스터
작품등록일 : 2019.11.10

 
똑바로 내 두눈을 봐 #17
작성일 : 19-11-10 23:39     조회 : 270     추천 : 0     분량 :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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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과거 생각에 살짝 지친 여주는 팔목으로 두 눈을 누르곤 잠이 들길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타이밍이라는걸 못 맞추는 민석에 의해 실패했지만 말이다.

 

 "여보세요."

 "안자네?"

 "전화 왔잖아."

 

 속없이 헤실거리는 녀석에 한숨을 쉬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오늘 다녀온 나들이가 제법 괜찮은 모양이었는데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민석이의 목소리는 아직까지도 들떠있었다.

 

 "오늘 동물원 갔잖아. 갔는데 동양인이 내가 신기했는지 웬 애기들이 막 손 키스도 날려주고 내 손도 만지작거렸다?"

 "애기들? 귀엽겠네. 동물들은?"

 "으응, 동물원이라고해서 사자, 호랑이 이런 거 생각했는데 엄청나게 큰 박쥐가 있는 거 있지? 우리나라에 없는 동물들도 엄청 많았어. 뱀도 만져봤다?"

 "잘했네, 안 징그러웠어?"

 "그러엄! 내가 남자답게 똭! 응!?"

 "그랬어? 다른 동물들은?"

 "라마! 나 TV에서 보고 직접 본건 처음이잖아. 엄청 신기하더라."

 "하긴, 우리나라에는 라마가 없나? 난 본적 없는 것 같은데."

 

 조잘조잘 떠드는 목소리에 끊을 낌새가 보이지 않자 대충 옆으로 기대 누웠다. 내일도 쉬는 날이라 잠자리에 들 생각이 없나 보다.

 

 "다들 가족 단위로 놀러 많이 왔더라. 엄마, 아빠, 애기."

 "뭐, 거기라고 다르겠어? 우리나라도 그렇잖아."

 "아까 만난 애기가 그렇게 예쁘더라."

 "애기가 다 예쁘지. 왜 외국 여자랑 결혼하고 싶냐?"

 "아니이? 난 결혼할 여자 이미 있는데?"

 "아아, 그러셔?"

 

 어쩐지 듣고 싶지 않은 뒷말에 되물으라는 듯한 음성에도 입을 꾹 다문 여주였다. 더불어 똥줄이 타는 건 민석이 뿐이었다.

 

 "왜 안 물어봐?"

 "뭐를?"

 "나랑 결혼할 여자."

 "별로, 안 궁금해서."

 "와아, 너무하네. 물어봐!"

 "싫어."

 "물어봐아!"

 

 결국 들어줄 거면서 튕기기는. 이번에도 져 준 여주가 귀찮은 듯 뭐냐고 되묻자 건성으로 듣는 그녈 아는지 모르는지 신이 나서 일을 열었다.

 

 "나? 너랑 결혼할 건데?"

 

 그 뒤로는 어떤 대화를 했더라? 예상했으면서도 횡설수설했던 여주는 어떻게 전화를 마쳤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한가지 정확한 건 그가 좋아할 만한 대답은 아니었던 것 같다. 어스름한 새벽 뒤숭숭하게 잠에서 깬 여주는 방문을 열고 나왔다. 아직 깜깜하기만 한 거실 소파에는 이미 보라가 배를 긁으며 앉아있었다.

 

 "벌써 일어났어?"

 "언니야말로 벌써 일어났어요?"

 "나는 오빠가 새벽에 일 있어서 나가는 바람에 일어났지, 너는?"

 "저는, 뭐. 잘 만큼 자서요."

 

 

 *

 *

 

 

 "아까부터 왜 이렇게 표정이 별로야? 무슨 일 있어?"

 

 둘이 마주 앉아 밥을 먹는데 갑작스러운 보라의 말에 화들짝 놀란 여주가 고개를 내저었다. 새벽의 일시 영 시원치 않았나보다.

 

 "언니는 오빠랑 왜 결혼했어요?"

 "이 질문 너희 사귀기 전에도 했던 질문인 건 알지? 왜, 이번엔 결혼 하제?"

 

 고개를 끄덕이는 여주에 보라는 욕지거리를 했다. 새벽에 결혼 생각이 왜 없냐며 추궁하는 민석이가 떠올라 고개를 흔들며 한숨을 내쉬었다.

 

 "너희 만난 지 얼마 안 됐는데 결혼이야기가 나와?"

 "아니이, 딱히 그런 건 아니고 다들 사귀면서 간간이 하는 식의 결혼이야기이긴 한데. 부담스러워서요."

 "부담, 될 수도 있지. 아직 어리니까."

 "저는 결혼 생각이 아예 없어요."

 "왜?"

 "그냥, 사랑 못 해줄까 못 받을까 겁도 나고. 평생 책임질 자신도 없고."

 "왜 네가 사랑을 못 받아. 그런 걱정은 하지 마."

 "그래도, 사람 일은 모르는 거잖아."

 

 잔뜩 풀이 죽은 채 말을 내뱉는 여주는 그저 안쓰러웠다. 밥을 먹던 숟가락을 내려놓은 보라는 어느새 여주의 옆에 앉아 다독이고 있었다. 충분히 사랑스러웠고 사랑을 받았고 앞으로도 사랑을 받을 아이이다. 뭐가 그렇게 겁이 나는지 항상 위태롭기만 한 그녀를 지켜보는 보라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정 부담스러우면 솔직하게 말해야지. 부담스럽다. 오래 만나면 오래 만날수록 깊어질 거고 앞으로도 쭉 거론이 될 것 같은데."

 "이런 문제로 싸우기 싫어요."

 "바보같이 굴지 말고 확실하게 이야기하는 게 미래를 위해서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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