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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아틀란티스 소녀
작가 : 갑주어
작품등록일 : 2019.11.10

평범한 대한민국의 소녀가 아닌,
전혀 다른 삶을 살아 온 소녀.
나는 그녀를 아틀란티스에서 온 소녀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녀를 사랑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의 평범한 남자와 아틀란티스에서 온 것 같은 소녀의 사랑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9화
작성일 : 19-11-10 22:13     조회 : 223     추천 : 0     분량 : 7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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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문득 창밖을 보니 이미 어두컴컴해진 밤이 된 상태였다.

 

  경숙이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나는 너무나도 화가 나 몸을 부르르 떨며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경숙이의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 주었다.

  링거 병을 보니 어느새 거의 다 투여되어 조금만 더 있으면 완전히 다 복용될 것 같았다. 나는 링거 병의 약이 너무 빠르게 떨어지면 경숙이의 몸에 무리가 올까 봐 떨어지는 속도를 조금 낮췄다.

 

  경숙이의 과거는 참으로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하고 잔인하기 짝이 없었다. 평소에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내 과거는 불행한 과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경숙이를 보니 나는 지금까지 배부른 돼지였다. 배부른 소리나 씹고 앉았던 나의 인생은 경숙이가 지금까지 밟아온 삶에 비하면(물론 경숙이의 과거를 비하하는 것은 아니다.) 천국이나 다름이 없었다. 나는 아주 어린 일곱 살 꼬맹이 시절에 정신병자라고 누명을 받아 정신병원에 갇혀본 기억 따위 없다. 친부로부터 폭행을 당하거나 강간 미수를 당해 본 기억 따위 없으며, 멀리 해안 도시인 대천에 가서 강제로 노동을 당해 본 적도 없고, 또 학대받은 기억도 없다. 그리고 자칭 삼촌이라는 자에게 꼬투리를 잡혀 그걸 빌미로 협박을 받으며 강제로 일하기 싫은 곳에서 일을 한 적도 없다.

  경숙이가 저렇게 냉혈하고 차가운 이유가 있었다. 한창 부모와 사랑을 받고 살 나이에 폭행과 모욕과 온갖 욕설을 받았으니 남는 건 욕 밖에 없다. 만약 평범한 부모로부터 태어났으면, 아니 적어도 건강한 부모로부터 태어났으면 경숙이는 원래 얼굴이 예쁘장하고 곱기 때문에 가족뿐만 아니라 주위 온갖 친척과 이웃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살았을 것이다.

  경숙이는 마치 나와는 다른 세상에서 살다 온 사람 같았다. 마치 지저도시에서 살다가 지상도시로 올라온 지하인 같기도 했다. 아니, 4차원 세계에서 살다가 3차원으로 온 사람 같았다. 완전히 다른 우주에서 온 사람 같았다.

  그렇다. 옛날 나의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직전에 말씀하셨던 아틀란티스 소녀가 바로 경숙이다. 난 지금까지 나의 새엄마와 그녀의 딸내미가 나의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던 아틀란티스 소녀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나의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아틀란티스 소녀는 바로 나와는 다른 세상을 경험한 경숙이 그 자체이며, 어머니의 유언대로 내가 사랑하고 감싸 따뜻하게 안아 줄 대상이다.

  갑자기 그나마 제어할 수 있었던 분노가 나사가 풀린 것처럼 미친 듯이 치밀어 오르기 시작해 이제는 제어할 수 없게 되었다. 그저 경숙이를 이토록 고통 받게 만들고 지금까지도 사랑이 아닌 고통과 상처를 남겨주고 있는 자칭 경숙이의 삼촌이 내 눈 앞에 나타나기만 한다면 입부터 항문까지 직선 터널을 만들어 주고 싶을 뿐이다. 아니, 나에게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제 입맛에 맞게끔 달콤한 거짓말로 나를 속이고 경숙이만 나쁜 녀석으로 만들은 그 잘난 삼촌이란 녀석의 혓바닥을 도려내고 나를 노려보던 그 망할 눈동자를 후벼파고 싶은 심정이다.

  부득부득 이를 갈며 어떻게든 일단 진정하기 위해 링거 병을 확인했다. 별로 남지 않았다. 앞으로 십분 정도면 끝날 것 같았다.

  나는 링거 병을 옷걸이에 걸어놓고 아직도 분노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경숙이를 안았다.

  “이제는 걱정 마. 오빠가 너를 지켜줄게.”

  내가 분노로 인해 끓어오르는 심장을 간신히 진정시키며 말했다. 내 품에서 아직도 분노를 이기지 못해 눈물을 흘리던 경숙이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선배...”

  이왕 감사하다고 말하려면 오빠라고 답하는 게 내 기분도 좋을 텐데. 뭐, 선배라도 만족한다.

 

  딩동-!

  내 품에 안긴 경숙이가 천천히 팔을 들어 나를 안으려는 찰나, 갑자기 벨이 울렸다. 나는 경숙이를 잠시 놓아 주고 손으로 뺨을 타고 내리고 있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리고 나의 사랑을 이제야 알아챘는지 감동하여 난생 처음 보는 경숙이의 소녀다운 둥글고 반짝이는 눈을 응시하며 살짝 미소를 짓고 문으로 다가갔다.

  “재성이형? 형이에요?”

  내가 문 너머의 인물에게 물었다. 헌데 대답은 하지 않고 계속해서 벨만 울려댄다. 뭐, 문에 작은 구멍이라도 있다면 밖을 내다 볼 수 있을 텐데 아쉽게도 내 방에는 구멍은 물론이고 아무런 장치가 없다. 고로 나는 잠금장치를 해제하고 문을 열었다.

  “여~ 안녕하십니까?”

  나는 문을 연 순간 놀람과 동시에 경숙이를 보며 잠시나마 참고 있었던 분노를 다시 끓일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내 집 앞에 나타난 인물은 다름 아닌 경숙이네 삼촌과 그의 부하로 보이는 두 명의 똘마니가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는 무슨 낯짝으로 왔는가?”

  내가 소리치며 덤비려 했으나 경숙이네 삼촌이 내 복부를 먼저 걷어찼다. 구둣발로 복부를 채인 나는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경숙이가 귀하께 귀찮다고 했었고, 저 역시 귀하께 경숙이에게 일절 접근하지 말라고 부탁 겸 경고를 했었는데 모조리 무시한 것도 모자라 경숙이를 납치해 여기에 숨어 계셨다니 놀랍군요. 간이 배 밖으로 나오셨습니까?”

  경숙이네 삼촌이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경숙이네 삼촌 뒤에 서 있었던 두 깍두기는 넘어진 나를 서로 번갈아 가며 걷어찼다.

  아! 아깐 재성이형한테 얻어 터졌는데 이번에는 ?같은 경숙이네 삼촌의 깍두기 두 덩이한테 구타를 당하는구나! 아 열 받아!

  “자, 그럼 집으로 돌아가실까. 조카.”

  경숙이네 삼촌이 침대에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경숙이를 향해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행동을 허락 할 수 없어 두 깍두기에게 걷어차이는 중에 힘을 짜 내어 경숙이네 삼촌의 다리를 붙잡았다.

  “으응? 웬 낙지가 달라붙네? 이 낙지 아직도 팔팔한 생 낙지구나.”

  경숙이네 삼촌이 자신의 다리를 붙잡은 나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리자 두 깍두기가 내 팔을 구둣발로 걷어차고 그것도 모자라 짓밟았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가까이 오지 마!”

  경숙이가 충혈 된 눈으로 자신의 자칭 삼촌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그러나 경숙이네 삼촌은 가까이 다가가 경숙이 팔에 꽂힌 링거 주사바늘을 그냥 잡아 뽑았다. 그러자 경숙이의 짧은 비명과 함께 경숙이의 팔에서는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자, 어서 나가자. 조카?”

  경숙이네 삼촌이 경숙이를 억지로 침대에서 끌어내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네놈의 조카라고? 웃기지 마라!”

  내가 깍두기 둘이 밟음으로 인해 땅바닥에 계속 엎어져 있는 상태에서 소리쳤다. 경숙이네 삼촌은 놀랬는지 나를 동그란 눈으로 노려본다. 아 정말 손톱으로 후벼 파고 싶다.

  “무슨 말씀이신지?”

  “경숙이의 과거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지? 경숙이의 과거는 전부 네놈에 의해 강제로 노동을 하고 강제로 다른 곳으로 팔려가 고통을 당한 것인데, 네놈은 뭐? 경숙이의 일탈 행위? 너 죽고 싶냐?”

  내가 소리치자 어깨를 으쓱하더니 한숨을 쉬는 경숙이네 삼촌.

  “아하하, 그렇습니다. 제가 일부러 거짓 정보를 알려 드렸지요. 당신처럼 불의를 보면 질질 싸는 사람들이 경숙이를 빼앗지 못하게 말이지요.”

  “경숙이를 빼앗지 못하게 해? 경숙이가 무슨 물건이냐? 뺏고 지키게?”

  내가 소리치자 이번에는 큰 웃음을 내뱉는 경숙이네 삼촌.

  “그렇습니다. 아직도 눈치 채지 못하셨나요? 경숙이는 제가 운영하는 흥신소와 제 동생들이 운영하는 휴게실이나 다방 외에서 다른 방법으로 자금을 모으기 위한 일하는 기계라는 사실을.”

  경숙이 삼촌이 웃으며 말하자 두 깍두기도 실실거린다. 뭐야? 한 소녀의 인생을 짓밟아가며 자신들 뱃속에 삼겹살만 쳐 넣으면 그만이다 이거야?

  “도저히 용서하지 못하겠어... 네놈들은 전부 쳐 죽여야 성이 풀릴 것 같아...”

  깍두기 둘에게 짓밟혀 있는 내가 힘을 내 억지로 일어서려 하며 이를 갈았다. 허나 들려오는 건 깍두기와 경숙이네 삼촌의 웃음소리였다.

  경숙이네 삼촌은 문 밖에 두었던 검은 가방에서 백열전구를 꺼내 내 방 한쪽 구석에 튼다. 헌데 백열전구의 겉 유리가 마치 맥주병 색깔이다?

  “아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이 유리는 평범한 유리가 아니라 설탕으로 만든 유리입니다.”

  경숙이네 삼촌이 반짝이는 검갈색의 유리를 톡 치며 말했다. 그리고 가스레인지를 켜더니 물을 뿌려 불을 끄고 가스가 유출되도록 한다.

  “설탕이 녹으면 필라멘트가 노출되면서 가스를 폭발시킬 겁니다. 하하하.”

  경숙이네 삼촌이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깍두기 중 한 놈에게 주머니에서 꺼낸 회칼을 건네며 입을 열었다.

  “다른 사람 모르게 깨끗하게 죽인 후에 동생들을 데리고 대전역으로와. 어이, 넌 운전해.”

  경숙이네 삼촌이 저항하나 하지 못하고 끌려가는 경숙이의 뒷덜미를 잡은 채로 다른 깍두기에게 말하며 나갔다. 그 명을 받은 깍두기는 나갔고, 지금 내 옆에는 회칼을 든 깍두기만 있다. 그 깍두기는 자기 부하들에게 뭔가를 전하려는지 휴대폰을 꺼내 들고 버튼을 누르더니 버튼을 누르고 통화를 시작한다.

  “응, 나다. 다름이 아니고 애들 전부 나랑 같이 대전역으로 가야겠다. 응, 형님의 말씀이시니 그대로 따라라. 응, 여기? 아, 여기가 어디냐면...”

  깍두기는 회칼을 돌리며 통화를 하고 있었으나 뒷말을 마치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문득 바닥에 고이기 시작한 가스 냄새를 맡아 마음이 급해진 내가 벌떡 일어나 높게 옆차기로 녀석의 턱을 찼기 때문이다.

  턱에서 우득 소리가 나며 녀석이 쓰러졌다. 나는 그 틈을 타 가스 밸브를 잠그고 백열등의 코드를 뽑아 껐다.

  “이 자식이!”

  깍두기가 나를 향해 회칼을 들고 달려왔다. 나는 급한 마음에 근처에 있던 F킬라 스프레이를 들고 녀석의 눈을 향해 발사했다.

  “아악!”

  눈을 강하게 감으며 손으로 눈을 비벼대는 깍두기. 덕분에 손에 들고 있던 회칼을 놓쳤다. 나는 그 틈을 이용하여 녀석을 걷어차 벽으로 몰아넣고 주먹으로 복부를 계속 가격했다.

  허나 녀석도 눈을 뜰 수 있게 되었는지 내 등을 팔꿈치로 내려찍었다. 나는 엄청난 고통에 의해 다시 땅바닥에 넘어졌고 곧이어 녀석이 내 멱살을 잡고 일으키더니 내 얼굴에 마치 축구공 크기 만한 주먹을 날리기 시작했다.

  두 대 정도 맞으니 혼이 빠져나갈 지경이다. 허나 나는 이를 악물고 정신을 유지시켜 다행히도 세 번째 주먹은 피할 수 있었다.

  나는 녀석의 주먹을 피하자마자 주먹을 아래에서 위로 내질러 녀석의 턱을 가격했다. 인간의 몸 중에서 유일하게 단련이 안 되는 곳이 턱이라고 하던데 정말인 모양이다. 저렇게 근육과 살로 뒤덮인 깍두기도 턱을 세게 맞으니 뒤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넘어가는가 싶더니 녀석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나는 녀석을 밀어 벽에 붙이고 녀석의 얼굴에 주먹을 빠르게 휘둘렀다. 녀석의 고개가 돌아갔다 돌아오면서 피를 뿜고 급기야는 눈동자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녀석이 슬슬 쓰러지더니 눈이 돌아간 채로 땅바닥에 쓰러졌다.

  나는 그래도 화풀이를 하기 위해 녀석의 머리를 발로 짓밟고 걷어찼다. 허나 눈은 돌아가고 코와 입에서는 연신 피를 흘리고 얼굴을 부을 대로 부어오른 녀석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어 숨을 가다듬고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급하다.

  분명 경숙이네 삼촌은 대전역으로 간다고 했다. 그렇다면 대전을 떠나 어딘가로 간다는 소리다. 설마 서울로 가서 경숙이를 사창가에 팔아넘기려는 날이 오늘인가? 아아, 그렇다면 큰일이다. 지금 빨리 경숙이네 삼촌을 저지하고 경숙이를 되찾아 와야 한다.

 

  근데 집 밖 도로로 나오자마자 또 다른 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 집 앞 도로에 각목을 든 두 명의 사내가 있었던 것이다.

  “어이고, 설마 창근이 형님을 무찌르고 나오신 겐가?”

  각목을 든 깍두기 하나가 나에게 비아냥 거렸다.

  “어떻게 여길...?”

  “하하하하핫! 우리가 누군지 몰라? 흥신소 애들이야! 휴대폰 위치추적 GPS 쯤이야 껌 아니겠냐?”

  깍두기 하나가 소리쳤다.

  “그건 그렇고 이 새끼 정말 독종이네. 창근이 형님을 어떻게 쓰러뜨렸다냐?”

  “일단 죽이고 보자.”

  두 깍두기가 대화를 마치자마자 나를 향해 각목을 쳐들었다. 나는 팔을 쳐 올리며 방어하려 했다. 허나 무언가 검은 물체가 휙 날아오더니 깍두기 하나를 걷어 차 버렸다.

  차인 깍두기는 각목을 놓치고 말았고, 그 각목을 집어 든 검은 물체는 각목을 든 채로 놀래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는 다른 깍두기를 마구 구타하기 시작했다. 뼈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그 깍두기는 동태눈을 하였다.

  “꼴통. 괜찮냐?”

  검은 물체는 재성이형이었다. 재성이형은 피가 뭍은 각목을 쥔 채로 나를 쳐다보았다.

  “형, 경숙이를 빼앗겼어요. 자세한 건 나중에 설명해 드릴게요. 일단은 대전역으로 가서 경숙이를 구해오는 게 먼저에요.”

  내가 설명하자 고개를 끄덕이더니 아직 제정신을 차리고 있는 재성이형에게 걷어차였던 깍두기가 킬킬거렸다.

  “바보들... 너희는 나랑 쟤가 끝일 것 같냐...”

  “이건 또 뭔 개소리야.”

  재성이형이 킬킬거리는 깍두기의 머리를 각목으로 마치 골프를 하듯이 풀 스윙으로 후려치자 우지끈 하고 뼈가 박살나는 소리가 나더니 깍두기는 눈을 뒤집었다.

  “경숙이가 어떻게 되었다고?”

  뒤이어 자전거 브레이크 소리와 함께 나타난 설화누나가 물었다. 나는 설화누나에게 간단히 상황을 설명하자 설화누나는 자전거 뒤에 실려 있었던 도시락과 먹거리를 내 집 앞으로 던져놓더니 나보고 빨리 가자며 앉으라 했다.

  “어, 해병. 저기...”

  설화누나가 출발하려고 하다가 문득 재성이형 뒤쪽에서 몰려오는 검은 그림자들을 보며 말했다. 그쪽을 쳐다보니 각목 아니면 야구배트를 든 깍두기들이 킬킬거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어렴풋이 세어도 오십 명은 되어 보이는 인원이다.

  “형... 빨리 도망가죠.”

  내가 말했다. 허나 재성이형은 나와 설화누나를 등진 채로 몰려오는 깍두기들을 응시하며 각목을 바로잡았다.

  “먼저 가라. 나는 저 쓰레기들을 좀 청소하고 가야겠다.”

  재성이형이 말했다. 뭐시라? 지금 각목과 야구배트로 무장한 깍두기 오십 명을 상대하시겠다고요?

  “형. 저쪽 숫자가 너무 많은데...”

  “시끄러워. 닥치고 대전역으로 가서 경숙이나 구해.”

  재성이형이 여전히 우리를 등진 채로 말했다.

  “형.”

  “어서 가. 저런 사창가 똥개들 쯤이야 백만이 몰려와도 소용없다.”

  재성이형이 각목으로 자신의 목을 톡톡 치며 말했다. 아무리 재성이형이 해병대 생활 시절에 부대 중 가장 싸움을 잘 하고 사격 역시 에이스였다고 하지만 저건 숫자가 너무 많다. 아무리 공3 방3업 된 스팀팩 사정거리 업 마린이라고 해도 혼자서 아무리 생 저글링이라고 해도 오십 마리는 이기기 힘들다. 아니, 이기지 못한다. 그런데도 재성이형은 나와 설화누나를 등진 채로 입을 열었다.

  “어서 가라. 이봐, 이설화. 빨리 페달 안 밟고 뭐해? 경숙이 구하러 안 갈 거냐?”

  재성이형이 말하자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설화누나가 움찔하더니 떨리는 입을 연다.

  “해, 해병...”

  “어서 꺼져. 꼴도 보기 싫으니까.”

  재성이형이 거의 다가온 깍두기들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설화누나는 작게 ‘미안.’이라고 말하고 자전거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속도는 순식간에 증가하여 뒤쪽에서 와아 하는 함성과 각목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골목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자전거는 대전역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하아... 당신께 기도한 적은 없지만, 지금 당신이 필요할 때에 난생 처음으로 기도를 해 봅니다. 하느님, 제발 재성이형이 다치지 않게 도와주십시오. 그리고 저와 설화누나가 무사히 경숙이를 구해 낼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작가의 말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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