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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아틀란티스 소녀
작가 : 갑주어
작품등록일 : 2019.11.10

평범한 대한민국의 소녀가 아닌,
전혀 다른 삶을 살아 온 소녀.
나는 그녀를 아틀란티스에서 온 소녀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녀를 사랑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의 평범한 남자와 아틀란티스에서 온 것 같은 소녀의 사랑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5화
작성일 : 19-11-10 22:11     조회 : 207     추천 : 0     분량 : 14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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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집 안에 들어가자 경숙이네 삼촌은 나를 거실에 앉혀놓고는 자신은 부엌에 들어가 커피 두 잔을 끓여 왔다.

  “경숙이는 없나 보네요?”

  내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아, 경숙이는 지금쯤 일하는 중일 겁니다.”

  아르바이트라... 혹시 철야 근무를 하는 건가?

  “그래서, 사실은 경숙이의 담당 상담교사가 아니라 뭐라고요?”

  경숙이네 삼촌이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아, 사실은... 경숙이가 일하는 인쇄소에서 오랫동안 일하던 사람입니다. 일명 직장 선배인 셈이지요.”

  “인쇄소 직장 선배라...”

  경숙이네 삼촌은 커피를 들이마시며 말을 흐렸다. 휴우, 이게 남을 집에 들어오라고 해 놓고 별다른 말 한 마디도 안 하고 있다니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납득이 안 간다.

  “잠깐, 인쇄소라면 그 지하에 있는 신문 인쇄소를 말하는 겁니까?”

  갑자기 경숙이네 삼촌이 커피를 마시다 말고 물었다. 내가 그렇다고 답하자 경숙이네 삼촌은 다시 뭔가를 생각하기 시작한다.

  “저, 혹시... 어제 경숙이 혼내셨습니까?”

  내가 묻자 그는 커피 마시기를 중단하고 나를 응시한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아, 별다른 질문은 아닙니다. 그저 어제 귀하께서 경숙이를 크게 혼내려는 듯한 행동을 보이셔서...”

  나는 나를 노려보는 경숙이네 삼촌의 시선을 느껴 말끝을 흐렸다. 그리고 나를 노려보던 경숙이네 삼촌은 작은 한숨과 함께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는다.

  “그렇습니까. 저는 원래 경숙이에게는 엄하게 대하곤 합니다. 허나 손찌검을 한다든가 신체를 폭행하는 행위는 없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원래 엄하게 대하신다고요...? 왜 그러시죠?”

  내가 물어보자 그는 눈썹을 치켜세운다. 뭐, 솔직히 말하자면 어제 이 남자의 행동은 절대로 말로 끝날 기세가 아니었다. 발로 걷어차고 두들겨 팰 기세였다. 다행히 내가 말려 아무런 결과를 보지 못했지만 말이다.

  “원래 엄하게 대합니다. 예. 혹시라도 부모 없이 자라서 버르장머리 없는 여자애가 될 까봐 걱정하는 마음에 그렇습니다.”

  “부모가 없다니요?”

  내가 또 묻자 나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은향이네 삼촌이다. 쳇, 솔직히 자신의 집에 들어오라고 해서 들어온 내가 여러 질문을 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그 역시 말 그대로입니다. 경숙이의 어머니이자 제 누나는 2급 지체장애인입니다만 경숙이를 낳고 얼마 안 가 죽고 말았지요. 그리고 경숙이의 아버지는 지독한 술꾼에 주정뱅이였던지라 아내가 죽고 난 후에 술에 찌들어 살다가 알코올 중독으로 심장마비로 인해 죽었습니다. 그 후 미혼인 제가 경숙이를 떠맡게 되었지요. 솔직히 말해 장가도 안 간 제가 그리 큰 여학생을 키운다는 게 귀찮지만, 누나의 딸인 만큼 소중히 키워야겠다는 생각에 맡아서 키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혹시나 부모 없는 딸내미라 성격이나 생각이 버르장머리 없게 될 까봐 제가 일부러 엄하게 대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 그렇군요...”

  경숙이가 그래서 성격이 차갑고 별로 웃지도 않는구나... 헌데 이 나이 때에는 적당히 풀어주면서 키우는 게 정석 아닐까?

  “헌데, 은향이는 지금도 충분히 착하다고 생각합니다만...”

  내가 말하다가 또 말을 흐릴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질문을 하는 도중에 경숙이네 삼촌이 마시던 커피잔 너머로 나를 노려보기 때문이다. 혹시 노려보지 않고 그냥 쳐다보는 것인데 원래 눈매가 재수없게 생겨서 노려보는 것처럼 보이는 건가?

  “은향이가 착하다고요? 그런 예의 없고 양아치 같은 녀석이요?”

  경숙이네 삼촌이 커피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런데 직장동료 치고는 너무 세사한 것까지 물어보려 하십니다만? 뭐, 귀하께서 궁금해 하시니 저는 알려드릴 수밖에요. 사실 경숙이는 초등학교 때 제 지갑을 털어 집을 뛰쳐나가 대천으로 간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폭죽을 팔거나 굴 혹은 조개 등을 잡아다 팔면서 대충대충 근처 모텔에서 자곤 했지요. 저는 부모를 잃은 아이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대천으로 가려고 했으나 일 때문에 가지 못하여 제 직장 부하를 보냈지요. 그리고 그 부하로 하여금 경숙이를 달래줘 데려오도록 하였습니다. 헌데 문제가 생겼지요. 경숙이가 제 부하를 칼로 찌른 것입니다.”

  아! 그 설화누나가 말한 피딱지 굳은 버터플라이 단검이 혹시 그 때 경숙이네 삼촌의 부하를 찌른 것인가?

  “왜 그러시죠? 순간 놀라는 눈빛이십니다만.”

  갑자기 말을 하다가 끊고 나의 상태를 물어보는 경숙이네 삼촌. 나는 일단 멋쩍게 웃으며 아무일도 아니라고 둘러댔다. 그러자 그는 나를 잠시 노려보다가 다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제 부하는 경찰에 신고하려 했으나 제가 나를 봐서라도 하지 말라고 잘 타일러 큰 문제는 생기지 않았습니다. 헌데 경숙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갑자기 교사가 찾아오는 등, 부재중인 경숙이를 학교도 다시 데려오려고 안간힘을 쓰더군요. 그래서 저는 대천으로 가 경숙이를 달래 대전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지요. 자세히 말씀드리자면, 제가 경숙이한테 엄하게 대하게 된 것도 그 때 이후입니다.”

  “그, 그렇군요...”

  경숙이한테 그러한 과거가 있다니 가히 충격적이다... 뭐, 부모를 여읜 외동딸의 마음이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정도로 막장 생활을 한 적이 있었다니... 더군다나 대천 뿐만이 아니라 모든 해안도시가 그렇지만, 어린 여자애가 혼자 다니다가 만약에 원양어선이나 성매매 업소 혹은 성매매 업자들에게 붙잡히기라도 하는 날에는 인생 끝난 거라고 봐도 좋을텐데... 정말인지 대단히 위험한 경험을 한 경숙이다...

  “헌데 귀하께서는 정말 경숙이와의 관계가 단순한 직장 선배입니까?”

  경숙이네 삼촌이 다 마신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헌데 그의 눈빛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가 덧붙여 있어 답하는 나로 하여금 왠지 모를 중압감에 시달리게 했다.

  “뭐...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야 있지만... 기회가 된다면 더 발전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그러니까 쉽게 설명해 좋아한다는 말씀이시군요?”

  “네?! 아 뭐...”

  내가 얼굴을 붉히며 대답을 흐리자 경숙이네 삼촌이 입을 연다.

  “뭐, 당연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경숙이야 얼굴도 원래 예쁜 편이고, 말수가 적어 굉장히 얌전해 보이겠죠. 그런 여자애를 좋아하는 거야 이해합니다. 허나 현재 경숙이의 보호자로서 말씀드리자면, 경숙이와의 교제는 일절 금지입니다. 아무런 경제적 사회적 여건도 없는 귀하께서 경숙이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을 저는 눈뜨고 지켜 볼 수가 없습니다.”

  콰르릉... 역시 전부터 우려했던 결과가 나오고 말았다. 교제 금지라... 지금 내 머릿속에는 뼈대만 갖춘 63빌딩이 경숙이네 삼촌이라는 번개에 의해 순식간에 무너져 버리는 영상이 흘러나온다... 약혼하려 하는데 장인어른과 장모님께서 사위를 절대로 받아주지 않으신다고 했을 때, 사위의 기분은 이런 것일까.

  “아예 일절 금지인 겁니까...”

  “그렇습니다. 경숙이를 사랑한다는 귀하께는 죄송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경제적으로 그다지 풍부하지 못하고 사회적으로도 그다지 지위를 소유하지 않은 귀하께 경숙이를 맡길 수 없습니다. 또한 듣자하니 법을 공부하시는 분이시더군요. 그런 분께 아직 정신적으로 미숙한 경숙이를 맡겼다가 만약에 또 이탈 행위나 귀하를 공격하기라도 한다면 저로서는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대천에서의 일탈 행위도 제가 어찌어찌하여 간신히 넘어갔었으니까요.”

  뭐라? 내가 법대생인 걸 어떻게 알았지?

  “저, 그런데 제가 법대생인 것은 어떻게 아셨죠?”

  내가 질문하자 아차 실수 했다는 듯이 눈을 감았다가 다시 나를 노려보는 경숙이네 삼촌.

  “사실 죄송합니다만 제가 어제는 귀하를 전혀 신뢰할 수 없어 조사를 했었습니다. 허나 안심하십시오. 귀하의 자택이나 자택 진입로에 카메라 따위는 전혀 설치하지 않았으니까요. 단지 경숙이에게 사실만 들었을 뿐입니다.”

  뭐, 뭐야? 이 사람 혹시 경찰이나 형사 같은 그런 사람인 건가?

  “아무튼 그렇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군요. 귀하께서 경숙이를 사랑한다는 마음, 잘 알겠습니다. 허나 아직 정신적으로 미숙한 경숙이를 귀하께 맡길 수는 없군요. 아, 실수로 말씀드리지 않았군요. 경숙이는 이번에 대학을 수도권으로 갈 생각인지라 대전에 있지 않을 겁니다. 고로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경숙이와 일절 접촉을 피해 주시기 바랍니다. 유감입니다.”

  말을 마치고 일어서서 옷을 단정히 정리하는 경숙이네 삼촌. 나는 대화가 다 끝났음을 눈치 채고 남은 커피를 한숨에 다 들이켰다. 그리고 일어나 옷을 정리하였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을 맺어야 할 것 같군요. 어디, 집까지 모셔다 드릴까요?”

  경숙이네 삼촌이 자켓을 걸치며 물었다.

  “아, 아닙니다. 그냥 제가 걸어가겠습니다.”

  내가 손을 저으며 말하자 그는 입었던 자켓을 다시 벗어 접는다. 그리고 나를 향해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연다.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안녕히 돌아가십시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경숙이네 집에서 나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상하게 한숨만 나온다.

  분명 대단한 충격적은 사건은 있지도 않았는데 한숨이 계속해서 나온다. 뭔가 찜찜하다. 마치 대학교 원서를 쓸 때 상향지원을 해 놓고 붙어라 붙어라 기원하다가 시원하게 탈락한 느낌이다.

  ‘아무튼 그렇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군요. 귀하께서 경숙이를 사랑한다는 마음, 잘 알겠습니다. 허나 아직 정신적으로 미숙한 경숙이를 귀하께 맡길 수는 없군요. 아, 실수로 말씀드리지 않았군요. 경숙이는 이번에 대학을 수도권으로 갈 생각인지라 대전에 있지 않을 겁니다. 고로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경숙이와 일절 접촉을 피해 주시기 바랍니다. 유감입니다.’

  경숙이네 삼촌이 했던 말을 되씹어본다. 이건 명백히 경숙이와 만나지도 말고 친해지지도 말라는 표시이다. 물론 부모도 아니고 삼촌인 녀석이 이래라 저래라 하든 말든 내가 무시하면 상관없겠지만 현재 부모가 없는 은향이의 유일한 보호자이며 가족은 저 삼촌이란 사람 하나이기 때문에 그의 말은 경숙이 부모님의 말처럼 들린다.

  결국 경숙이와 연인 관계는 커녕 이제는 대화도 하지 말라는 협박 겸 요청을 받았다. 정말 허탈하다.

  세상에 한 군과 유 양 같은 연애도 드물다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향했다.

 

  “그래서, 고백도 못 해보고 보호자에게 퇴짜 맞은 거냐?”

  막창전문 식당에서 삼겹살을 함께 먹던 임 군이 나에게 물었다. 이번에는 한 군 대신 김 양이 함께 있다. 한 군과 유 양은 어디 놀러갔다나...

  “아, 그렇다니까 그러네.”

  “되게 불쌍하다. 차라리 미리 고백이라도 하고 만나지 그랬어.”

  김 양이 내 어깨를 토닥거리며 말했다.

  “아냐. 고백하고 나서 한참 잘 놀다가 부모님께 인사시켰는데 부모님이 헤어지라고 하면 그게 더 슬퍼. 차라리 거절당할 거라면 지금 성주 같은 케이스가 더 낫겠지.”

  임 군이 잘 익은 삼겹살 하나를 집어 먹으며 말했다.

  “그럴 수도 있겠네. 성주야, 그냥 경숙이 걔는 포기하고 차라리 대학 내에서 찾아보는 게 어때? 팔은 안쪽으로 굽는단 말도 있잖아.”

  김 양이 애써 나를 달래주기 위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결국 막창전문 식당에서 임 군과 김 양이야 배불리 먹었지만 나는 울적한 마음 때문에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그리고 마음은 여전히 텁텁하다. 왠지 굉장히 예쁜 연예인급의 여성을 만나도 별로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안 생길 것 같다. 나는 3류 순정만화 틱 하게 경숙이를 그냥 한번 쑥 흘겨보다가 마음에 꽂혔기 때문인 것 같다. 이상하게 아무런 일도 하기 싫다. 집에도 돌아가기 싫다. 그냥 이대로 거리에서 주저앉아 자버리고 싶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정말 얼어 죽고 말겠지.

  내가 왜 이리 슬퍼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 어차피 경숙이와 나는 아무런 관계도 아니었고, 나만 경숙이한테 뿅 갔던 것이지 경숙이는 나에게 대한 관심은 눈곱만큼도 없었단 말이다. 왜 내가 괜히 슬퍼하는 걸까.

  “아...”

  무의식적으로 찬바람이 부는 밤길을 걷다 보니 인쇄소에 도착하게 되었다. 보아하니 인쇄소는 이미 닫아 어두캄캄했다. 인쇄소 입구 옆의 편의점만이 밝게 빛나고 있을 뿐이었다.

  편의점 문을 연다. 그러자 치릉치릉 하는 차임벨 소리와 함께 옛날부터 여기서 일했던 아르바이트생이 밝게 웃으며 인사한다. 그렇다는 것은... 지금 시각이 대충 자정을 조금 넘었다는 것이다.

  “이 시간에 뵌 건 처음인 것 같네요?”

  그렇다. 나는 이 시간에 여기에 들른 적이 없다. 아니, 애초에 여기를 지나갈 일이 없었던 것이다.

  “네... 그러네요.”

  내가 대충 건성으로 대답하고 편의점 내부로 들어가 냉장고를 열어 온 김에 뭐라도 마실까 뒤져보았다.

  그러다 결국 별로 식욕도 없어 대충 오백 원짜리 캔커피를 하나 사 테이블에 앉았다.

  “기분이 상당히 안 좋아 보이셔요.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아르바이트생이 계산대에서 물었다. 나는 캔커피 하나를 단숨에 들이마시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아... 뭐... 이런 저런 일이...”

  내가 두 손을 돌리며 대충 넘어가려 하자 아르바이트생은 방긋 웃으며 입을 연다.

  “혹시 지난번에 그 경숙이라는 여자애한테 차이신 건가요?”

  헉! 나는 놀라 마시던 커피를 뿜을 뻔했다. 만약에 진짜로 뿜었다면 저 아르바이트생의 눈치를 보며 내가 걸레질을 해야 할 것이다.

  뭐, 아르바이트생의 말은 완벽한 답은 아니지만 비슷하다. 역시 여성의 직감이라는 것은 놀랍다.

  “네... 비슷한 상황입니다.”

  “안타깝네요. 상당히 귀엽고 예쁜 애였는데요.”

  아르바이트생이 살짝 웃으며 말했다. 뭐, 그렇게 말하는 아르바이트생도 아주 못생긴 편은 아니고 보통 급인데 뭘.

  “그런데 한 가지 여쭤봐도 되요?”

  다 마신 캔커피 캔을 찌그러트리며 이젠 집으로 돌아 가야겠다 생각하고 일어섰는데 아르바이트생이 입을 열었다.

  “네, 말씀해 보세요.”

  내가 대답하자 아르바이트생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연다.

  “이름이 뭐에요?”

  “제 이름이요?”

  “네. 저랑 손님이 처음 본 지 대략 3년이 넘어가는 걸로 아는데 아직까지 인사도 제대로 안 하고 서로 이름도 모른다는 게 우습지 않아요?”

  물론... 맞는 말이다. 나는 예부터 인쇄소에서 일을 하고 나오면 저 아르바이트생을 항상 보곤 했는데 그때 당시 나는 지금보다는 훨씬 어린 녀석이었고 저 아르바이트생 역시 많아야 고3 이었을 것이다. 그런 입장에서 지금까지 매일 서로 달라진 얼굴을 보는데도 인사도 제대로 한 적 없고(솔직히 말하면 저 아르바이트생은 인사를 잘 하지만 내가 인사를 제대로 한 적이 없다.) 서로 이름도 모른다면 그건 좀 그릇된 일이 아닐까 싶다.

  “김성주입니다.”

  “성주라... 괜찮은 이름이네요. 저는 민지영이라고 해요.”

  민지영. 지영이라... 괜찮은 이름이다.

  “죄송한데 혹시 나이를 여쭈어봐도 되나요?”

  아르바이트생, 아니 지영씨가 물었다. 나는 이제 군대 갈 스물두 살 이라고 말하자 그녀는 자신이 스물두 살 이라고 밝힌다. 흠, 그렇다면 나랑 동갑이잖아(생각보다 겉늙어 보이는 여성이로군.)? 그렇다면 지영씨보다는 그냥 지영이라고 부르는 것도 좋겠네.

  “말 놓으세요. 같은 나이인데.”

  내가 말하자 그녀는 피식 웃는다.

  “아니에요. 어찌 직원이 손님에게 반말을 하겠어요?”

  “그래도...”

  “헌데 어떻게 일을 하셨던 거죠? 편으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려면 19세가 돼야 가능하지 않나요?”

  내가 질문하자 지영이는 피식 웃더니 입을 연다.

  “그건 당신이 저 신문 인쇄소에서 일할 수 있었던 이유와 비슷해요.”

  지영이가 편의점 옆의 신문 인쇄소를 가리키며 말했다. 뭐, 그렇다면 그런 것일까.

  “그럼, 내일- 아니 이따가 새벽 6시 이후에 또 뵙겠네요.”

  내가 찌그러트린 캔을 분리수거함에 넣고 편의점을 나가며 말했다. 그러자

  “네- 손님 안녕히 가세요.”

  라는 말이 등 뒤로 들려왔다.

 

  오늘은 이상하게도 잠이 오지 않는 밤이다. 이렇게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니 별 이상한 생각 다 든다. 가끔씩 지금까지 본 공포 영화의 장면들이 지나가기도 하고, 친구들과의 추억들도 마구 떠오른다. 그런데 경숙이와의 첫 대면부터 지금까지의 일들을 생각하려고 해도 별다른 생각할 거리가 없다. 그도 당연할 제, 경숙이는 나랑 아무런 관계가 아니고 그저 아르바이트 직장 선후배 관계일 뿐이다. 설화누나네 병문안을 갔던 일, 그 다음에 경숙이네 집에서 간단한 식사를 했던 일 말고는 떠오르는 게 없다.

  헌데 배부른 소리를 하는 거다. 그 정도의 기억이라도 있는 게 다행이다. 왜냐하면, 이제부터는 전부 경숙이네 삼촌에 의해 제지될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가 만나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 경숙이의 보호자인 그가 그렇게 말하는데 들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아니다.

  삼촌 따위가 뭔데 명령인가. 지가 뭔데 남보고 만나지 말라 간섭인가. 자신이 경숙이의 부모라도 되는가? 아니, 형제라도 되는가? 아니다. 전혀 아니다. 그런데 왜 참견인가. 건방진 놈 같으니라고. 내가 그따위 명령 듣나 봐라.

 

  새벽에 자명종과 한판 승부를 벌이고 일어났다. 아무래도 어젯밤- 아니, 아까 잠들기 전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새벽을 불태우다가 문득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예전에도 느꼈던 바이지만, 이런 자는 둥 마는 둥 하는 식으로 잠에 들기보다는 차라리 안 자는 쪽이 낫다. 이런 자는 것도 아니고 깨있는 것도 아닌 수면은 오히려 몸에 부담을 주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이런저런 불만을 털어놓으며 세면을 하고 집을 나섰다. 오늘은 이상하게도 평소보다 더 조용한 새벽이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기 때문인가. 집집마다 어두컴컴한 실내에 혼자서 반짝반짝 오색을 발하며 놀고 있는 트리가 간간히 보인다.

  “추운 아침이에요-.”

  내가 듣기 싫은 문 경첩 소리를 내며 인쇄소로 들어갔다. 그러자 카운터 안쪽에서 열심히 신문을 찍고 계신 소장 아저씨께서 고개를 내밀어 나를 본다.

  “너 자꾸 설화 따라할래? 죽고 싶어?”

  “왜요? 설화누나인 것 같아서 설레요?”

  “미친 놈. 관두자.”

  나에게 정곡을 찔린 탓인지 손을 흔들며 다시 인쇄기 앞으로 가서 인쇄되는 신문들을 바라보는 소장 아저씨다.

  난롯가 ㄷ자형 긴 목재의자에는 재성이형이 고양이처럼 몸을 웅크리고 잠시 눈을 붙이고 있었다. 내가 남은 목재의자에 앉았는데도 반응하지 않고 계속 취침만 할 뿐이다.

  문득 재성이형이 꿈틀거리다가 일어났다. 부스스한 머리를 한 재성이형은 눈을 비비고 일어나 옹달샘을 마시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치 좀비처럼 천천히 움직이며 마실 물을 찾는 재성이형을 바라보다 보니 문득 듣기 싫은 문 경첩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경숙이가 들어왔다.

  “어서 오려무나. 춥지?”

  카운터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인사하는 소장 아저씨. 허나 그런 따뜻한 남녀차별의 배려를 냉정한 경숙이가 고개를 한 번 끄덕이는 걸로 무마시킨다.

  경숙이는 오늘도 역시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헌데 역시나 코트 앞부분은 잠그지 않고 그대로 풀었다. 재성이형이 말한 대로 뭔가 그릇된 모습이다.

  “경숙아.”

  내가 난로로 다가와 두 손바닥에 온기를 받는 경숙이를 향해 말하자 경숙이는 나를 향해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어제 말이지...”

  “삼촌을 뵈었죠?”

  내가 말하려다가 문득 경숙이가 먼저 말을 막았다.

  “어떻게?”

  “삼촌께 들었어요. 선배가 다녀왔었다고.”

  차갑게 말하는 경숙이의 표정에서 강렬한 적의가 느껴진다.

  “어디까지 들으셨어요?”

  경숙이가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어디까지 들었냐니 하는 것은 아마도 자신에 대해 얼마나 들었는가를 말하는 건가?

  “어디까지 라니?”

  “시치미 떼지 마세요. 어제 제 삼촌을 뵈었고 다시는 저랑 만나지 말라는 말도 들었다면서요.”

  뭐지, 경숙이네 삼촌은 경숙이에게도 나랑 만나지 말라고 말한 건가?

  “뭐, 별 이야기는 안 들었어. 그냥 네 과거랑...”

  “그게 별 이야기가 아니에요?”

  갑자기 경숙이가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뭐, 내가 못 들을 걸 들었나?

  “무, 물론 쉽게 들을 이야기는 아니지만. 너는 왜 나한테 화를 내는 거야? 내가 알려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네 삼촌이 다짜고짜 나한테 말한 건데.”

  내가 말하자 경숙이가 문득 자신의 오류를 깨달았는지 난롯불을 응시하다가 다시 나를 쳐다본다.

  “선배는 믿으세요?”

  “뭘?”

  “그 이야기요.”

  그 이야기라 하면 경숙이가 과거에 일탈 행위를 했던 것과 달래주러 갔던 경숙이네 삼촌의 부하 직원을 찔렀다는 그...

  “... 일단은.”

  내가 말을 흐리자 아까랑 비슷한 적대감 있는 눈빛으로 나를 응시하는 경숙이다.

  “믿어야겠지.”

  내가 말하자 경숙이가 갑자기 정색을 하며 난롯불만 응시한다. 아마도 경숙이는 내가 그 이야기를 믿지 않거나 신뢰하지 않을 거라 생각한 모양이다.

  헌데 어떡하나. 그 과거는 명백한 사실이고 자신이 저지른 죄라는 걸. 그런게 그게 뭐가 대수란 말인가. 과거의 자신이 저지른 잘못은 뉘우치고 이제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경숙아. 과거의 잘못은 뉘우치고 이제 다시는 그런 잘못을 안 하면 되는 거잖아. 선배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내가 말하자 나를 힐끔 보더니 다시 난롯불만 응시하는 경숙.

  “성주! 출발해라!”

  카운터에서 소장 아저씨가 소리쳤다. 고개를 돌려 카운터를 보니 드디어 옹달샘을 찾아 마신 산토끼 재성이형이 신문 다발을 들고 터벅터벅 걸어 나가고 있었고, 카운터에서는 카운터 너머로 소장 아저씨가 묵직한 신문 다발을 내밀고 있었다.

  신문 다발을 받고 나니, 이거 평소보다 2배는 양이 많아졌음을 알 수 있었다.

  “아니, 왜 이렇게 많아졌어요? 구독자가 늘어났나?”

  내가 묻자 아직까지는 여전히 인쇄기를 바라보고 있는 소장 아저씨가 입을 연다.

  “그렇다면 얼마나 좋겠냐. 구독자가 늘어난 게 아니고, 어제 설화가 가족끼리 스키장에 갔다가 차가 밀려 자정이 넘어서 집에 도착했다니 뭐냐. 그래서 아저씨가 설화는 오늘 병결로 해 주고 쉬라고 했다.”

  “그리고 나랑 재성이형한테 나눠서 부과한 거에요?”

  “아니. 너에게만 부과했다.”

  나는 충격을 머금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만약 내가 그런 상황이었다면 이 세상의 모든 욕을 전부 듣고 병결은 개뿔 그 날도 칼출근을 명령했을 것이다.

  “역시 아저씨는 페어플레이 정신이 부족해요.”

  내가 말하자 가운데 손가락을 펼치는 소장 아저씨다.

  “네놈이 지난번에 한 번 늦잠자고 결근한 것의 벌로 생각해라. 잔말 말고 출발이나 해!”

  그렇게 나는 평소보다 두 배나 많은 양의 신문을 배달하게 되었다. 뭐, 지난번에 내가 늦잠을 자고 결근한 것의 벌이라면 할 말이 없군.

 

  일을 마치고 돌아오다가 이미 일을 끝내고 돌아가는 경숙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경숙이를 불러 세우고 말을 걸었다.

  “경숙아. 추운데 왜 코트 앞부분을 항상 열고 다니는 거니?”

  내가 말하며 코트 단추를 채워주려 하자 참 착하게도 거절하는 경숙이다.

  “호의는 감사합니다만 저는 원래 추위를 잘 안탑니다.”

  “감기 안 걸려?”

  “태어나서 지금까지 정확히 두 번 걸려봤습니다. 허나 요즈음은 아예 걸리지 않습니다.”

  경숙이가 자신만만한 눈빛으로 말했다. 오호라, 걸려들었다.

  “그런데 마스크는 왜 하고 있어?”

  내가 말하자 경숙이는 아차 실수했다는 듯이 놀라며 시선을 피한다.

  “감기도 안 걸렸으면 마스크는 왜 하고 있어? 요즈음은 한겨울이라 황사 따위도 없는데.”

  “아, 알레르기가 있어서...”

  “무슨 알레르기? 눈 알레르기?”

  내가 점점 수사망을 좁혀가자 당황해하는 경숙이다. 헌데 왜 갑자기 이런 취조 분위기가 되었지? 난 그저 경숙이한테 물어보려고 했던 건데...

  경숙이는 한숨을 쉬더니 마스크를 벗는다. 헌데, 마스크 안쪽에는 시퍼런 멍이 든 입가와 무언가에 맞아 찢어진 입술이 있었다.

  “뭐야 이거? 혹시 삼촌이 때린 거야?”

  내가 물어보자 시선을 피하며 입을 여는 경숙이다.

  “오다가 넘어져서...”

  “거짓말. 넘어졌는데 이런 상처가 나? 그리고, 넘어져서 여기가 다칠 거였으면 광대뼈나 턱에 아주 큰 충격이 가겠지 이렇게 피부에만 상처가 나지는 않아.”

  내가 경숙이의 상처를 일단 굳은 피라도 닦아주려고 손으로 건드리려 하자 내 손을 저지하는 경숙.

  “건들지 마세요. 그리고 넘어져서 생긴 상처니까 상관하지 마세요. 이제 속이 후련하세요?”

  “후련하긴. 약은 발랐어? 내가 약이라도 사줄 테니까 저기 약국까지만 같이 가자.”

  내가 경숙이한테 전방 50m쯤에 위치한 약국을 가리키며 말했다. 다행히도 약사가 방금 들어가서 가게를 열었는지 간판과 약국 내부가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저, 저기...”

  “사양 말고 빨리 와. 어서.”

  내가 경숙이의 손을 잡고 억지로 약국으로 데려갔다.

 

  약국에 들어가 방금 가게를 연 약사에게 경숙이의 상처를 보여주자 약사는 ‘이건 아무래도 격투에 의한 상처 같습니다만...’이라고 나에게 중얼거렸다. 그러나 경숙이는 끝까지 넘어져서 다친 거라고 고집을 부렸기 때문에 그저 입술이 찢어졌을 때 바르는 약만 사 주고 약국에서 나왔다.

  “그런데 선배.”

  약을 바르고 다시 마스크를 쓴 경숙이가 나에게 말했다.

  “응?”

  “저한테 친하게 지내지 말아주세요.”

  “왜?”

  내가 묻자 경숙이는 나를 노려보며 입을 연다.

  “제가 부담스럽습니다. 저는 사람을 해친...”

  “필요 없어.”

  내가 경숙이와 만난 이후 처음으로 경숙이의 말을 끊어봤다.

  “너의 과거의 죄 따위 전혀 상관없어. 그거야 과거의 죄를 뉘우치고 이제부터라도 안 하면 되는 거 아냐?”

  내가 말하자 경숙이는 조금은 놀란 눈치로 나를 쳐다본다.

  “난 너를...”

  “거 뭐하는 거요?”

  내가 막 경숙이한테 감동적인 멘트를 선사하려는 순간에 어느 싸가지 없고 분위기 파악 못하는 바보 멍청이 능구렁이에게 말을 막혔다. 그 괘씸한 놈이 누군가 싶어 뒤를 돌아보니 놀랍게도 경숙이네 삼촌이다.

  “제가 귀하께 경숙이랑 만나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경숙이네 삼촌이 나한테 다가오면서 말했다. 그리고 그는 경숙이와 내 사이에 서더니 나를 노려보며 입을 연다.

  “마지막 경고입니다. 다시는 경숙이한테 아무런 접근도 하지 마십시오. 인사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마십시오.”

  경숙이네 삼촌이 말했다. 그 말은 들은 나는 갑자기 내 안에서 뭔가 알듯 모를 듯한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생각해보니까 말이야, 당신이 뭔데 참견이지?”

  내가 말하자 경숙이네 삼촌이 갑자기 어이없다는 듯이 웃는다. 그리고 나를 향해 입을 연다.

  “제가 무슨 참견이냐고 말씀하셨습니까? 하하하! 저는 경숙이의 보호자로서 드리는 말입니다.”

  “보호자면 다냐? 왜 남의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하는 거야?”

  “갈라놓다니요? 어차피 갈라질 것입니다. 제가 경숙이는 수도권의 대학으로 간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대학이 상관인가? 같은 하늘 아래에 있는데 어느 대학을 가든 무슨 상관이야?”

  “상관이 없다...? 물론 상관이야 없지요. 헌데 둘이 한 명은 수도권에, 한 명은 대전에 있는데 시간적 공간적 제약이 아무것도 없이 교제가 가능할까요?”

  “당신은 뭘 모르는군. 사랑은 그런 제약을 받지 않는 법이야.”

  내가 말하자 그는 눈썹을 치켜 올리며 어깨를 으쓱한다.

  “그렇군요. 그걸 몰라서 제가 아직도 미혼남인 것 같습니다.”

  그가 말을 마친 후에 갑자기 눈빛을 바꾸더니 나를 노려보기 시작한다.

  “헌데 한 가지 알아두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사랑이란 건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맹목적으로 흠모하는 것만이 사랑이 아니라 서로 간에 믿음과 화합이 있어야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제가 드리는 말이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 가시나 보군요. 그렇다면 쉽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귀하께서는 분명 경숙이를 사랑한다고 하셨습니다. 헌데, 경숙이는 귀하를 사랑하고 있을까요?”

  “그, 그건...”

  아마도 아닐 확률이 크지만 분명 아예 안 사랑하지는 않을 것이다. 비록 내가 여러 번의 실수를 저질렀다고 해도 처음 만났을 때를 제외한다면 재성이형의 계략이었거나 재성이형과 대화하다가 문득 오해의 소지가 있는 부분만 들었을 뿐이다. 또한 경숙이는 그 사실을 모두 알고 있으므로 고로 나는 경숙이한테 직접적인 잘잘못을 저지른 적은 없다.

  “답이 잘 생각나지 않으신다면 당사자에게 물어보도록 할까요?”

  경숙이네 삼촌이 빙긋 웃더니 자리를 비켜 경숙이와 나를 마주보게 한다. 경숙이를 보니 시선을 전혀 다른 곳으로 하고 있다.

  “경숙아, 너는 네 앞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니?”

  경숙이네 삼촌이 빙긋 웃으며 경숙이에게 물었다. 경숙이를 보니 아직도 시선을 다른 곳으로 내리깔고 있다.

  제발 부탁한다. 경숙아... 나는 너에게 그다지 호감 살 일은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너에게 상처를 주지도 않았어... 아, 말하려던 건 그게 아니라... 난 너를 사랑해 경숙아... 그러니 부탁이야... 이대로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끝낼 수는 없잖니. 난 너의 잘못된 과거 모두 용서해. 아니, 용서하기보다 전부 사랑으로 덮어 줄 수 있어.

  그러니 부탁이야. 제발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발...!

  “아니요.”

  아...

  “사랑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귀찮고 접근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경숙이의 차갑고 메마른 한마디가 나의 귀를 찔렀다. 내 귀를 찌른 그 차갑고 메마른 한마디는 고막을 뚫고 뇌 속까지 들어가 울려 퍼진다. 어두컴컴한 새벽하늘이 갑자기 노랗게 물들고 마치 물에 잠긴 것처럼 울렁거린다.

  “들으셨지요? 귀하께서 경숙이를 사랑하는 마음, 감사합니다만 정작 중요한 경숙이는 귀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군요. 또한 귀하께서 접근하심이 귀찮답니다.”

  나를 바라보며 사악한 미소로 빙긋 웃는 경숙이네 삼촌. 그의 미소에서 뭔가 알 수 없는 살의가 덮쳐온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이제부터는 경숙이에게 일절 접근하지 마십시오.”

  경숙이를 데리고 유유히 사라지는 경숙이네 삼촌.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가만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경숙이네 삼촌이 뭐라고 하든지 말든지 무시하고 경숙이만 좋다면야 계속해서 만나고 친해져서 결국에는 내가 경숙이와 사랑하는 연인이 되겠다고 생각했었지만, 정작 경숙이 자신이 나는 상대하기 귀찮고 더군다나 사랑하지 않는다니 지금까지 내가 경숙이네 삼촌이 뭐라고 하든지 말든지 무시하고 경숙이가 좋다면 무엇이든지 하겠다는 다짐은 물거품이 되고 만 것이다.

  그렇다. 내가 지금 우는 이유는 경숙이네 삼촌이 경숙이랑 만나지 말라고 해서가 아니다. 경숙이 자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고 상대하기 귀찮다고 한 그 한 마디가 나를 울리는 것이다. 고로 나는 그 한 마디에 우는 것이다.

 

 
작가의 말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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