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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아틀란티스 소녀
작가 : 갑주어
작품등록일 : 2019.11.10

평범한 대한민국의 소녀가 아닌,
전혀 다른 삶을 살아 온 소녀.
나는 그녀를 아틀란티스에서 온 소녀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녀를 사랑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의 평범한 남자와 아틀란티스에서 온 것 같은 소녀의 사랑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4화
작성일 : 19-11-10 22:10     조회 : 225     추천 : 0     분량 : 17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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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짧게 경숙이의 주머니에서 나온 피비린내가 찌들은 버터플라이 단검에 대해 설명을 마친 설화누나는 머리를 묶어 포니테일로 만든 후, 곧바로 나를 집에서 데리고나와 자전거 안장 뒤쪽의 화물칸에 나를 태우고 미친 듯이 경숙이의 집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어찌나 빠른지 설화누나의 포니테일 머리가 마치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이듯이 휘날렸다.

  헌데 더 재미있는 사실은 재성이형이 신문을 나를 때 분명히 신발만 타고 달려갔다 오는데 설화누나보다 항상 기록이 더 좋다는 것이다. 또한 재성이형은 우리들 중 가장 많은 신문을 배달하는데도 한 군데도 놓치지 않고 정확히 배달하며 달려오는데도 설화누나는 물론 우리보다 항상 빠르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재성이형은 도대체 얼마나 빠르게 달린다는 말일까?

  잠시 생각해보니 골목길을 빠져나가거나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갈 때에는 재성이형이 자전거를 탄 설화누나와는 달리 담을 넘거나 아주 좁은 샛길을 이용할 수 있으므로 배달하는 일은 재성이형이 더 빠른 게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아아, 남자가 여자에게 얻어 타는 주제에 건방지게 누가 더 빠르니 느리니 생각하지 말자.

  “꽉 잡아!”

  갑자기 페달을 아주 힘차게 밟아내며 설화누나가 소리쳤다. 근데 뭘 잡으란 걸까?

  “네?”

  “꽉 잡아!”

  “뭘요?”

  “아무거나!”

  나는 도대체 뭘 잡으란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느닷없이 잡으라니 뭘 잡으라는 걸까. 솔직히 설화누나의 어깨나 허리를 잡기는 좀 그렇고 안장 뒷부분을 붙잡자니 손 위치가 좀 그렇고... 결국 지금까지 잡고 있던 내가 앉은 화물칸의 끝부분을 잡아야겠다.

  헌데 그것은 실수였다. 내가 내 몸을 아낀다면 설화누나의 허리라도 단단히 잡았어야 했는데 나는 화물칸 아래를 잡았을 뿐이니 내가 내 몸을 아끼지 않는 모양이다.

  무슨 말이냐고? 설화누나가 ‘아무거나!’라고 소리치고 나서 정확히 0.5초 후, 자전거의 바퀴에는 브레이크가 아주 강하게 작용하여 바퀴가 순간적으로 멈춰버렸고, 바퀴는 땅에 타이어 자국과 끼이익 하는 잔소리를 남기며 경숙이네 집으로 보이는 곳의 담벼락을 향해 가로로 돌진했던 것이다. 헌데 문제는 설화누나와 자전거는 끼이익 하는 잔소리와 함께 담벼락과 정확히 10cm의 차이를 남기고 멈춰버렸으나, 나는 자전거에서 떨어져 나가 그대로 담벼락에 들이받았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버려진 이불이 있었기에 전혀 다치지 않았다.

  “어머, 성주야! 괜찮니?”

  설화누나가 자전거에서 내려 바퀴를 전봇대에 자물쇠를 이용하여 묶고 난 다음에 버려진 이불에 처박혀 있는 나를 끌어내며 말했다.

 

  경숙이네 집 앞에 도착해 재성이형에게 위치를 물어보니 아쉽게도 아직 재성이형은 집이었다. 그래서 설화누나가 오 분의 시간을 줄 테니 죽을 듯이 달려오라고 협박하자 그리고 정확히 4분 59초에 재성이형이 마치 하늘을 가르는 질풍처럼 바람을 가르며 달려왔다. 그리고 재성이형이 내 앞에 멈추자 엄청난 바람이 나를 덮쳐왔다.

  “수고했어.”

  설화누나가 재성이형이 몰고 온 바람 때문에 휘날리는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말했다. 크, 정말 죽을 듯이 달려오는구먼.

  지쳐 헥헥대는 재성이형과 함께 초인종을 누르자 경숙이가 나와 우리를 맞이했다. 헌데 좀 웃거나 밝은 표정을 지을 줄 알았는데 평소 로봇 같은 움직임과 표정은 그대로다.

  우리는 경숙이네 집으로 들어가 거실에 앉았다. 흠, 생각보다 집이 많이 허름하고 좁구나. 내 집보다는 조금 크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니 소장 아저씨는?”

  설화누나가 지쳐서 개처럼 헥헥대는 재성이형에게 물었다.

  “아, 아저씨는 형수님과 같이 계셔야 한다고 못 온대.”

  재성이형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야, 못 오시는 거지 못 오는 거니?”

  설화누나가 재성이형을 툭 치며 말했다. 헌데 재성이형은 아 귀찮다며 설화누나의 말을 전부 무시한다.

  “뭣 좀 드릴까요?”

  경숙이가 정좌한 상태로 바르게 앉아 있다가 우리들에게 물었다. 헌데 재성이형은 잠깐 이것 좀 받으라며 등에서 초코파이 12개입 한 박스를 꺼내 경숙이에게 건넸다. 경숙이는 그걸 받고는 얼굴이 살짝 밝아진다.

  “경숙이가 초코파이를 좋아하는 것 같더라고. 오다가 편의점에서 샀다.”

  재성이형이 웃으며 말하자 경숙이는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초코파이 박스를 뜯어 자신이 하나 가지고 우리에게도 하나씩 돌린다. 흠, 정말로 초코파이를 좋아하나 보네.

  “자, 이건 언니가 주는 선물이야. 요새 날이 추워서 혹시나 경숙이 피부가 갈라질까봐 준비했어.”

  설화누나가 자켓 주머니에서 아직 포장도 안 뜯은 베이비로션을 꺼내 경숙이에게 건넸다. 경숙이는 그걸 받고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운다. 흠, 사용해 본 적이 없는 건가.

  “세수한 다음에 손바닥에 묻혀서 얼굴과 목, 손에 발라주면 되.”

  설화누나가 자세히 설명했다. 그러자 경숙이는 이해가 됬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나를 쳐다보자 재성이형과 설화누나의 시선 또한 나를 향해 돌아간다.

  내가 그저 멋쩍게 웃으며 가만히 있자 재성이형이 입을 연다.

  “넌 뭐라도 준비 안 했냐?”

  재성이형이 ‘이런 꼴통 자식.’이라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아. 나, 나는 마음을...”

  내가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재성이형이 나를 발로 걷어찼다. 그리고 나를 넘어뜨린 후에 내 다리를 4자로 만들고 그 사이에 재성이형 자신의 다리를 끼워 넣어 내 다리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악!”

  “이 자식이! 이제 군대 가는 놈이 눈치 없게 남의 집에 초대받으면서도 빈손으로 와?”

  재성이형이 4자 굳히기를 풀고 내 위로 올라와 볼을 꼬집어 당기기 시작했다.

  “아악!”

  “그리고 언제적 유머를 아직도 써먹으려고 하냐? 응? 너 고고학자냐?”

  재성이형의 필살 볼 꼬집고 당기기에 당해 나는 고통의 도가니에 빠졌다. 헌데 재성이형이 순간 경숙이의 시선으로부터 안 보이는 손으로 주머니에서 뭔가를 슬쩍 빼내어 내 옆에 떨어뜨렸다. 힐끔 보니 잘 포장된 선물이다. 재성이형을 보니 경숙이의 시선으로부터 안 보이는 눈으로 살짝 윙크를 한다. 아아, 저걸 주라는 의미인가? 크흑! 이렇게 재성이형이 고마울 줄이야!

  재성이형은 금방 볼 구속구를 풀었고 나는 빨개진 볼을 어루만지며 잘 포장된 선물을 은글슬쩍 집어 들고 재성이형에게 말했다.

  “그건 장, 장난이었고. 선물이야 물론 있습니다.”

  “오, 그렇군. 이 형이 잠시나마 오해해서 미안하네.”

  재성이형에 내 위에서 일어나 자기 자리로 돌아가 바르게 앉으며 말했다. 나는 숨을 고른 후에 경숙이에게 잘 포장된 선물을 건넸다.

  “자, 숙아. 선물이야.”

  “숙이?”

  내가 선물을 건네며 말하자 옆에서 설화누나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후훗, 그건 저만이 부를 수 있는 경숙이 줄임말입니다.

  경숙이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내 선물을 받아들고 포장을 풀렀다. 휴우, 재성이형 덕분에 한 고비 넘겼다.

  “...”

  포장이 풀리자 갑자기 경숙이가 침묵. 그리고 무슨 선물인가 바라보던 설화누나도 침묵. 또한 힐끔 곁눈질로 쳐다보던 재성이형이 좀 아니다 싶을 정도로 과하게 놀란다. 나는 무슨 선물일까 싶어 고개를 들어 쳐다보았다.

  컥.

  포장지 안에 잘 포장되어 있던 것은 다름 아닌 여성용 속옷 세트였던 것이다. 그것도 흰 색으로 말이다.

  ... 아아, 재성이형이 뭘 노리고 한 짓인가 이제 알겠다. 젠장, 아주 잠깐이었지만 재성이형에게 감사를 표한 내가 부끄럽다.

  “이건... 성장기 청소년용 노와이어 브래지어네. 밑에 쪽은 순면 팬티고. 이거, 성주가 사서 준비한 거야? 사이즈는 어떻게 알고?”

  설화누나가 나에게 매우 걱정스런 눈빛으로 말했다.

  “아, 아, 그, 그게요. 그건 제가 준비한 게 아니라...”

  “너 아니면 누구야, 새꺄!”

  내가 당황하여 손을 이리저리 흔들며 대답하는 도중에 재성이형이 또 날 걷어차 넘어뜨리고 이번에는 등 뒤로 올라타 내 두 다리를 붙잡고 나를 마치 반대로 된 새우처럼 꺽기 시작했다. 나는 척추와 다리의 모든 뼈와 힘줄에 강한 고통을 느끼며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헌데, 나는 얼핏 보았다. 지금 나를 괴롭히고 있는 재성이형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음을.

 

  다행히도 설화누나가 경숙이에게 대학생들끼리 친한 사이에서는 남녀간에 속옷이나 수영복 등을 주고받는 일도 많다고(물론 실제 대학생들은 아주 친한 연인사이나 아주 친한 동성 친구간이 아니면 그런 걸 주고받는 일은 거의 없다.) 설득하고 또 설득하여 토라진 경숙이의 기분을 간신히 풀어주어 상황은 종료되었다. 그리고 경숙이는 정리하고 오겠다며 그 민망한 선물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야, 해병.”

  설화누나가 발끝으로 뭐가 그리 즐거운지 콧노래를 부르고 있는 해병대를 향해 말했다.

  “응. 왜?”

  재성이형이 입가에는 미소를 머금은 채 설화누나에게 대답했다.

  “솔직히 아까 그거 네가 준비한 거지?”

  “물론.”

  하아! 굉장히 뻔뻔스럽고 태연한 재성이형이다!

  “이런 바보 같은... 그럼 네가 변태도 아니고 아직 잘 모르는 사이의 여학생에게 저런 걸 준비했단 말야?”

  설화누나가 화를 내며 말했다. 흠, 그래도 설화누나는 진실을 알고 계셔서 다행이군.

  “아, 사실 그건 내가 경숙이한테 주려고 준비한 게 아니야. 학교 후배 녀석이 구해달라고 해서 샀던 건데 갑자기 상황이 마침 성주가 선물을 안 준비 했다고 하기에 좀 장난 좀 쳤지.”

  우와... 지금 내 앞에 총이 한 자루 쥐어져 있다면 확 쏴 버리고 싶다.

  “이런 나쁜 놈 같으니! 지금 성주는 경숙이랑 친하게 지내려고 안달을 하고 있는데 네가 자꾸 물 흐릴래?”

  설화누나가 뻔뻔한 재성이형의 멱살을 잡으며 말했다. 재성이형은 의외의 상황을 맞이한 탓인지 놀래 눈을 크게 뜬다.

  “사실이야?”

  재성이형이 물었다. 나는 작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이거 미안하게 됐군. 전에 내가 성주에게 물어봤을 때에는 대충대충 건성으로 대답하길래 관심 없는 줄 알았지.”

  “야, 너 같으면 사랑한다고 곧이곧대로 말하냐? 이 바보 똥개 말미잘 멍게 해삼 날파리 하루살이 해파리 갯지렁이 역겨운 지네만도 못한 꼴통 천치야.”

  “악담을 해라...”

  “너 자꾸 장난으로 새려고 하지 마! 너 계속 그러면 진심으로 혼날 줄 알아!”

  설화누나가 재성이형의 멱살을 잡은 채로 소리치자 재성이형은 갑자기 어울리지 않는 대단히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말한다.

  “성주야, 형이 정말 미안하다. 이제부터라도 둘 사이 갈라놓는 일 없이 도와주거나 구경만 할게.”

  나는 그저 말 없이 지켜만 보았다. 흠, 재성이형의 저런 모습은 난생 처음 보는 듯하다. 그런 만큼 정말로 진심이겠지.

  “솔직히 넌 구경만 하는 게 도와주는 거야. 뭐, 그건 그렇고 이따가 뭐 진실을 밝힌다는지 그딴 거 하지 말고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까, 넌 식사 후에 약속이 있어 바뻐 미안하다고 말하고 잽싸게 튀어 나가. 알겠어?”

  설화누나가 재성이형에게 말하자 재성이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정리를 다 한 듯, 경숙이가 방에서 나와 거실로 돌아왔다. 그걸 본 설화누나는 빙긋 웃으며 경숙이를 향해 입을 연다.

  “혹시 입어봤어?”

  헌데 경숙이는 얼굴을 붉힐 뿐, 대답을 하지 않는다. 큭. 저렇게 나오면 내가 더 당황스럽다.

  “배고픈데 밥이나 시켜 먹을까? 경숙아. 오늘은 우리가 왔으니까 우리가 시켜 먹도록 하자. 전화번호부 어디에 있니?”

  설화누나가 묻자 경숙이는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 설화누나와 함께 주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으음, 성주야. 너 정말로 경숙이 좋아하냐? 지난번에 내가 물을 때에는 그저 동료로 본다고만 그랬잖아.”

  재성이형이 나만 들릴 정도로 작게 말했다.

  “하, 그렇게 따지면 형은 설화누나를 그저 동료로만 보세요?”

  내가 묻자 재성이형은 약간 당황스런 표정을 짓는다.

  “뭐, 걔야 원래 예쁘장하니까 나 같은 남자 얼짱 몸짱들이 한 번쯤은 탐내보는 거 아니겠어?”

  재성이형이 어떻게는 말을 돌리고자

  “아, 근데 형은 아까 그 속옷 세트를 누구한테 주려고 하셨어요?”

  내가 묻자 재성이형 자기 뺨을 긁으며 입을 연다.

  “아 그거? 형이 잘 아는 후배가 애인한테 선물하려고 하는데 잘 모른다길래 내가 대신 사 주려고 한 거지. 뭐, 경숙이한테 준 건 상관없어. 또 사고 녀석한테 세 배로 뜯어내면 되니까.”

  재성이형의 저런 잔인함은 때때로 연예인 박명수씨를 능가하는 듯하다.

  “근데 형한테도 그 정도로 친한 후배가 있었나요?”

  “임마 당연하지! 아참고로 그 녀석은 지난번 대학 총장 배 축제 당시 간식시간 전, 온 학생들이 먹을 떡을 만들도록 총장과 모든 교수들이 와서 떡치기를 하지 않았더냐?”

  “맞아요.”

  “그 때 형의 교수가 전날 술을 코로 퍼마시고 오신 덕분에 결근해서 형이 교수 대신으로 나가게 되었지. 그리고 한 명의 조수가 필요했었는데 그 조수가 바로 그 녀석이었다. 뭐, 자랑은 아니지만 그 때 형의 실수로 그 녀석 손목이 부러지는 사고가 났었지?”

  분명 떡치기 대회 도중 서로 신호가 안 맞았는지 내려치는 사람이 잘못 내려쳐 손목이 부러지는 사고가 있었다.

  “헌데 어떡하다가 다치신 거였죠?”

  “아, 그 녀석이 다친 이유는 아주 간단해. 형이 그 녀석이랑 장난 좀 쳤었거든. 그 녀석이 조낸 뜨거운 떡을 휘젓고 손을 빼내는 순간 형이 방아로 내려찧는 거였는데 그 녀석 손목에 있던 손목시계가 떡에 걸려 안 나온 거야. 그래서 녀석은 시계를 찾고자 다시 손목을 집어넣었는데 그 때는 이미 내가 힘껏 내려친 방아가 도달한 상태였지.”

  흐으~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

  “뭐, 다행히도 심하게 부러진 것은 아니라서 한 달 만에 완치되었다는 이야기다. 거기에서 얻은 교훈은 떡을 칠 때에는 힘만으로 하지 말고 부드럽고 정성과 사랑을 담아서 하는 거다?”

  재성이형이 마치 긴 강의를 마친 교수님처럼 말했다. 음, 어떤 면으로 봐서도 다른 면으로 봐서도 옳은 말이다만... 왠지 남이 들으면 대단히 큰 오해를 살 것 같다.

  “헌데 떡을 칠 때 힘이 너무 빠지면 하기 싫지 않나요?”

  “물론. 힘을 너무 빼면 안 좋지. 헌데 진정 떡을 칠 때에는 팡팡팡 때리는 달라붙는 소리와 그 타격감 맛에 하겠지만 힘만이 다가 아냐. 막상 힘으로만 마구 팡팡팡 때리면 오히려 뜨거운 덩어리들이 튀거나 아니면 엉뚱한 데로 튀어 지저분하게 되어 하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나 짜증이 나게 돼. 고로 힘이 적당히 실렸으면서도 부드럽고 정성스럽게 해야 한단 말이지. 손으로 휘저을 때에는 뜨겁고 물컹거려 좀 이질감이 느껴지겠지만, 따뜻하고 손을 조여 오는 포근한 느낌을 손가락뿐만 아니라 손 전체로 느끼며 처음에는 겉에만 하다가 조금씩 더 뜨거운 속으로 들어가는 거지. 더 깊게 들어가 천천히 정성스럽게 손을 움직이면 어느새 따뜻하고 매끈매끈하게 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마치 식품요리학과 교수가 떡 제조과정을 설명하듯이 나에게 한 가지씩 차근차근 설명해주는 재성이형이다. 분명히 난 재성이형을 학과 총 꼴통으로 알고 있는데 진작 자신은 어떻게 저런 지식을 알고 있는지 참 궁금하다.

  “흐음... 떡을 칠 때에는 정성과 사랑을 담아 너무 세지도 않고 너무 약하지도 않게 부드럽게 하라... 다음 총장 배 축제 때 기회가 된다면 제가 직접 실습해 봐야겠군요.”

  내가 재성이형에게 말했으나 재성이형의 표정이 이상하다. 마치 음란물을 처음 접한 초등학생 같은 눈빛인데... 설마... 가 사람 잡네. 내 바로 옆으로 어느새 다가온 설화누나와 경숙이가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고 있다.

  “아아아, 오해들 하지 마시고. 내 말은. 그저 평화롭게 떡을 치는 거지 음란 비디오나 그런 게 아니란 말이야.”

  내가 손을 휘저으며 설명했으나 설화누나와 경숙이의 표정을 변함이 없다.

  “아, 정말인데! 다른 게 아니고 떡 치는 걸 말하는 거야.”

  “알아요. 잘 아니까 뭐 드실 건지 결정이나 하세요.”

  경숙이가 자리에 앉아 매우 사악해 보이는 미소를 머금으며 나에게 중국집 주문 메뉴판을 내밀었다.

  “나, 이번에는 아무 짓도 안 했다?”

  재성이형이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설화누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흐으, 나는 이쯤에서 사라지고 경숙이는 포기해야 할까봐...

 

  다행히도 설화누나의 재치 있는 유머와 재성이형의 몸개그 덕분에 상황은 대충 잘 정리되었다. 헌데 아쉬운 점이라면 경숙이는 재성이형의 농담을 재미있어 한다는 점이다. 쩝, 모든 사건의 원흉이 그 인간 때문인 것도 모르고...

 

  식사는 탕수육 대짜배기(아, 그러고 보니 대짜배기는 감자탕집에서 쓰는 말이구나...) 한 그릇과 서비스로 온 군만두 한 그릇을 가운데에 두고 넷이서 네모나게 않아 자장면 한 그릇씩 책임 전멸시키는 것이었다. 뭐, 자장면이야 개인에게 한 그릇씩 돌아갔으니 문제가 없었지만, 문제가 큰 것은 탕수육과 군만두였다. 아니 뭐- 여학생이라고 해서 적게 먹는다는 말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경숙이는 몸집도 작고 마른데다가 솔직히 별로 안 먹으니 탕수육과 군만두에 별로 손을 대지 않았다. 설화누나 또한 그랬으니(참고로 설화누나는 살찔까봐 탕수육과 군만두가 무섭다고 하신다. 그 말에 너는 개그맨 시험이나 보라며 웃는 재성이형. 또한 그런 재성이형의 말에 귀여운 미소를 짓는 경숙이. 아아, 정말 통곡을 하고 싶다.) 고로 군만두는 몰라도 탕수육 쪽은 재성이형과 내가 해치워야 할 분량이 좀 많은 편이라 혹시라도 남을까봐(물론 남은 것은 나중에 데워 먹으면 되겠지만 여학생에게 그런 짓을 하다니 예의가 아니라고 본다. 내가 가져가기도 좀 그런 것이고.) 걱정했었는데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재성이형이 무지막지한 식신강림을 통하여 이 식탁 위의 중국집의 어린양들인 탕수육을 소스와 함께 거침없이 삼켜버렸기 때문이다. 정말인지 삼켰다는 비유가 맞을 정도의 스피드다.

 

  식사를 마친 후에 미리 설정했던 극본대로 재성이형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바람과 함께 사라졌고, 설화누나 역시 대충 과외수업이 잡혀 있다며(대충 둘러댄 거 치고는 너무 어설프다.) 가버렸다. 결국 나와 경숙이 둘이 남아 뒷정리를 하게 되었다.

  경숙이가 행주로 식탁을 닦고 싱크대에서 식사 중 사용했던 식기들을 닦는 동안 나는 다 먹고 빈 자장면 그릇과 빈 탕수육 그릇, 그리고 빈 군만두 그릇을 수거해가는 배달부원이 편하도록 깨끗하게 정리하여 경숙이네 집 밖에 놓았다.

  그리고 자기 집 안으로 돌아오니 경숙이는 거실에 앉아 그저 TV를 보고 있었다. 뭔가 가을바람 지나가는 듯한 분위기가 주위를 맴돌자 나 역시 그저 거실의 한 부분에 앉아 TV를 응시했다.

  “변태 성주 선배, 안 돌아가십니까?”

  경숙이나 자기 덩치보다 조금 작은 쿠션을 껴안은 채로 나에게 물었다. 쩝, 솔직히 말해 저 쿠션이 부럽다. 아아, 당신까지 날 변태로 몰아가지 마! 난 그저 음... 뭐랄까... 음... 그저... 아 몰라! 식빵. 근데 경숙이가 뭐라고 했더라?

  “응?”

  “댁으로 안 돌아가시냐구요.”

  “아아, 가야지. 헌데 너까지 왜 나를 부를 때 수식어가 붙는 거니?”

  내가 묻자 경숙이는 피식 웃더니 다시 입을 연다.

  “그거야 평소 행실에 따라 붙는 호칭 아니겠습니까?”

  “평소 행실? 야야야, 내가 부모님께서 주신 이름 석 자를 걸고 맹세하고 말하는데. 결단코 내가 의도적으로 변태적인 행동을 하거나 말을 한 적은 없어.”

  내가 두 손을 휘저으며 말하자 경숙이는 나를 보더니 고개를 돌려 TV를 응시한다. 그리고는 고개는 TV를 향한 채로 입을 연다.

  “압니다.”

  “엥?”

  “다 알고 있습니다. 재성 선배가 꾸민 일이거나 아니면 재성 선배와 평소 평범한 대화를 하고 있었을 뿐인데 그게 오해를 살 만한 소지가 있어 그러한 것이지요?”

  “마, 맞아. 그럼 넌 처음부터 진실을 다 알고 있었단 거야?”

  “그렇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걸 아~는 사람이 그래?!”

  내가 순간적으로 나도 모르게 경숙이를 향해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그러자 마치 집 안의 모든 창문과 문이 열려 밖의 찬 공기가 들어오고 경숙이네 집에 보이지 않는 에어컨이 최고 풍력으로 작동하기 시작한 것처럼 굉장히 추워진다.

  “... 미안. 재미없지?”

  내가 손가락을 펼친 팔을 접으며 말했다. 아, 솔직히 너무 민망하다.

  “아닙니다. 선배다운데요.”

  “뭐, 뭐가 선배답다는 거야...”

  내가 머리 위로 아주 큰 땀방울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경숙이는 갑자기 일어나 부엌에 가서 뭘 뒤적거리더니 초코파이 두 개를 가지고 와 나에게 하나 주고 저 하나 먹는다.

  “방금 밥 먹고 초코파이를 먹니?”

  내가 묻자 다시 쿠션을 끌어안고 막 초코파이를 한 조각 물며 나를 쳐다본다.

  “저는 별로 배부르지 않습니다만...”

  “배 안 불러? 아까 배불러서 자장면 한 그릇 먹고 군만두와 탕수육은 조금밖에 안 먹은 거 아니었어?”

  “그거야, 제가 배불러서가 아니라 중식을 싫어하니까요.”

  흐-음. 그렇구나. 그렇다면 언제 경숙이 데리고 중국집에 가야겠다. 크크크. 그렇다면 나만 배불리 먹을 수 있겠지.

  “하하, 그러면 학교급식 많이 싫었겠네? 학교급식은 중식 아니면 석식이잖아?”

  분위기를 좀 띄워보려고 한 말인데 괜히 한 것 같다. 또다시 마치 집 안의 모든 창문과 문이 열려 밖의 찬 공기가 들어오고 경숙이네 집에 보이지 않는 에어컨이 최고 풍력으로 작동하기 시작한 것처럼 굉장히 추워진다.

  “미안...”

  “됐으니까 이제 그만 가시...”

  경숙이가 말을 하다가 갑자기 일어섰다. 왜 그런가 경숙이의 시선이 멈춰진 곳을 보니 집 입구다. 내가 집 입구로 시선을 돌리는 데에는 1초도 걸리지 않았지만 집 입구에 있는 자를 쳐다본 순간 1분이 아닌 1시간 이상으로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경숙이 너 일 안 나가고 여기서 뭐하는 거냐?”

  입구에는 나랑 체격이 비슷하지만 나이가 생각보다 꽤 들어 보이는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경숙이를 마치 일 주일 씩 이나 결근한 사원을 대하는 사장님 같다.

  “오늘은 일이 없는 날이라고 말했을 거라 기억합니다만...”

  “이년이 감히 삼촌한테 대들고...”

  나는 느닷없이 경숙이에게 달려드려는 경숙이의 삼촌이라는 남자를 제지했다. 그러자 경숙이의 삼촌이라는 남자가 내 팔을 강하게 뿌리치더니 두 손을 주머니 속으로 찔러 넣은 채로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당신은 누구요? 우리집은 영업하는 집이 아닌데?”

  이 집은 영업하는 집이 아니라니?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걸까? 혹시 경숙이의 삼촌이라는 이 남자는 나를 뭐 집창촌을 잘못 찾아온 남자로 생각하고 있는 건가?

  나는 사실대로 대답할까 생각했지만 얼핏 본 경숙이의 얼굴에서 ‘대충 둘러대세요.’라는 문구를 읽을 수 있었기에 대충 둘러댔다.

  “저, 저는 경숙이의 담당 교사입니다.”

  순간 내 가슴에서 한숨이 나왔다. 대충 둘러대자고 한 말이 저 말이란 말인가... 헌데 남자는 다짜고짜 내 멱살을 잡더니 나를 노려보며 입을 연다.

  “담임선생? 제 기억으로는 여자로 알고 있습니다만?”

  남자가 내 앞에 다가오며 협박어조로 물었다. 뭐야, 이 상황? 이러다간 생각하지도 못한 싸움이 나올 것만 같다.

  “삼촌! 그만하세요!”

  “넌 쳐 맞기 싫으면 가만히 있어!”

  경숙이가 내 멱살을 잡은 자기 삼촌을 말리려 했으나 담배냄새가 굉장히 풍기는 입에서 나온 말 한마디에 저지당했다. 저 경숙이가 한순간에 멈추다니 이 사람은 생각보다 굉장히 무서운 사람인 거 같다. 또한 현재까지의 상황으로 봐서는 경숙이와 경숙이의 삼촌은 사이가 그다지 화목한 편이 아닌 것 같다.

  “저, 일단 진정하시고요. 저는 학생 상담담당 교사입니다.”

  내가 대답하자 남자는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이며 플라크와 니코틴으로 찌든 이가 두드러지도록 턱으로 딱딱 뼛소리가 나게 하고 이제야 내가 수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했는지 멱살을 놔 줬다.

  “그렇군. 저는 보시다시피 경숙이의 삼촌이오.”

  보시다시피? 솔직히 말해 그냥 보자면 당신은 담배와 술에 쩔어 사는 폐인으로밖에 안 보입니다만...

  “아, 예. 반갑습니다. 현재 경숙이의 보호자분은 어떻게 되시죠?”

  내가 질문하자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는 경숙이의 삼촌.

  “경숙이의 부모님은 어디 계시냔 말입니다.”

  “이만 됐습니다. 선생님, 그만 돌아가 주세요.”

  경숙이가 어느새 내 뒤로 다가와 등을 밀며 말했다. 헌데 입구에 선 경숙이의 삼촌은 경숙이를 제지하고 나를 막는다.

  “김경숙 넌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거. 선생, 일단 경숙이는 부모가 없어서 보호자는 난데. 것보다 당신, 일행은 어디에 있나?”

  “일, 일행이요?”

  솔직히 대답하자면 이미 해산했다는...

  “내가 모를 줄 아나? 밖에 자장면 그릇 네 개와 탕수육 그릇 하나, 그리고 군만두 그릇 하나가 있더군. 고로 적어도 일행이 두 명은 더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 어디에 있나? 혹시 안방에서 귀중품을 뒤지고 있나?”

  경숙이의 삼촌이 한쪽 손으로는 나를 막고 다른 손은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뭔가를 만지작 거리며 말했다. 예상해 보건데, 이 남자가 주머니에서 꼼지락 거리고 있는 저것은 혹시 칼이 아닐까?

  “아. 그, 그건 제가 여기에 왔을 때에는 점심시간이었는지라 경숙이에게 식사를 샀던 것입니다.”

  “그럼 그걸 당신이랑 경숙이가 다 먹었다고?”

  “아 예. 제가 좀 대식가라...”

  그러자 뭘 납득했는지 경숙이의 삼촌은 고개를 끄덕인다.

  “알았으니 가 보쇼. 김경숙 넌 삼촌이랑 얘기 좀 하자.”

  경숙이의 삼촌이라는 남자가 나를 놔 주고 경숙이의 손을 잡으며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무서운 마음에 재빨리 경숙이의 집에서 나와 내 집까지 쉬지 않고 달렸다.

 

  “그래서, 그 후에 재빨리 도망쳐 온 거야?”

  저녁쯤에 재성이형을 동반한(솔직히 재성이형은 없었으면 좋겠다.) 설화누나가 나를 불러 근처 분식집에서 라면과 떡볶이를 먹이며 아까 경숙이네에서 재성이형과 설화누나가 간 후의 상황을 알려달라고 해서 전부 알려줬더니 설화누나가 저런 대사를 읊으며 대화를 마쳤다. 나는 설화누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아직 김이 나는 라면 면발을 젓가락으로 집어 올려 입에 넣었다.

  “뭐야? 좋은 상황이야?”

  지금까지 조용히 대화를 듣고 있던 재성이형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나는 재성이형의 물음에 그저 어깨를 으쓱 하는 동작으로 대답을 회피했다. 솔직히 경숙이네 집에서 있었던 삼촌과의 사건이 뭔가 뒤숭숭하고 잘 끝맺지 못한 기분이라 찜찜하여 뭐라고 답할 수가 없다.

  설화누나를 보니 뭔가를 좀 생각하다가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연다.

  “별로 좋은 상황은 아니야. 일단 기본적인 상황으로 봐서는 경숙이네 삼촌은 성주를 절대로 신뢰하지 않고 있을 거야.”

  “그런가? 나는 넘어갔어도 한참 넘어갔다고 생각했는데.”

  설화누나의 말에 놀람을 나타내는 재성이형.

  “그런 둘러대기는 너 같은 바보들이나 속는 거야. 보통 사람의 머리로는 절대로 속지 않아.”

  설화누나가 말하자 재성이형은 뭔가 찜찜하다는 듯이 머리를 기우뚱했다. 나는 설화누나의 말에 100% 동조하므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머리를 기우뚱했던 재성이형이 순간 나를 노려본다. 고로 나는 움찔한다.

  “성주의 말만으론 확실하게 알 수가 없다. 단지 경숙이네 삼촌이 성주를 이상한 사람으로 보고 어제 경숙이를 혼내거나 타일렀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이지.”

  “그렇다면 아마도 경숙이의 삼촌은 경숙이에게 저랑 친하게 지내지 말라고 했다는 예상인가요?”

  “그렇지.”

  내가 질문하자 설화누나가 빠르게 답했다. 흠, 그게 사실이라면 이거 좀 무섭군요. 재성이형의 훼방에 이어 이제는 가족적인 부분까지 나와 경숙이를 멀어지게 만든단 말인가.

  “헌데 예상일뿐이야. 진짜 사실은 내일이 되어야 알 수 있겠지.”

  설화누나가 말하자 재성이형과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스크?”

  내가 새벽의 찬 공기를 가르며 인쇄소까지 뛰어와 매우 듣기 싫은 문 경첩 소리를 내며 인쇄소로 들어가자 흰 마스크를 쓴 채로 난로 앞에 쭈그려 앉아 난로를 쬐고 있는 경숙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경숙아.”

  내가 난로 근처의 긴 나무의자에 앉으며 경숙이에게 말을 걸었다. 경숙이는 평소처럼 나를향해 고개만 살짝 숙이며 인사를 대신했다.

  “어제는 어떻게 잘 풀렸어? 내가 좀 당황해서 뭔가 일을 꼬이게 만든 것 같던데... 혹시 무슨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삼촌께 많이 혼났니?”

  내가 질문하는데도 나를 안 쳐다보며 난로속의 불타는 등유를 바라보기만 하는 경숙이. 근데 어쩐지 마스크가 상당히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감기 걸렸어?”

  내가 질문하자 나를 힐끔 보며 천천히 고개만 끄덕이는 경숙.

  “말을 안 하는 거 보면 목이 부었나봐?”

  내가 계속해서 질문하는데도 전혀 쳐다볼 기색은 없고 고개를 끄덕임으로 대신하는 김경숙.

  “어이, 경숙아! 출발할 시간이다?”

  카운터 안쪽에서 밝은 말투의 소장 아저씨가 난로를 쬐고 있던 경숙이게 소리쳤다. 경숙이는 소장 아저씨의 말을 듣자마자 일어나 카운터로 걸어간다. 헌데 카운터 안쪽의 소장 아저씨가 나를 보더니 갑자기 열을 내기 시작한다.

  “김성주 저 개?끼는 어른한테 먼저 인사하는 게 아니라 여자애한테 먼저 인사를 해? 덕분에 난 네놈이 오늘도 늦잠 자느라 안 온 줄 알았다. 제길. 안 왔으면 오늘은 집을 박살내려고 했는데 아쉽게 됐다.”

  소장 아저씨가 경숙이에게 신문 다발을 건네며 나를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아, 네. 네. 거 엄청 죄송하네요. 거.”

  “저 개?끼 말버릇 좀 봐. 저런 육?헐놈.”

  내가 대충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척 하자 경숙이를 보내고 카운터에서 볼펜을 집어 던지는 소장 아저씨다.

  “어쭈? 피해? 너 오늘 뒤졌다. 이 썩을 베테랑 놈!”

  소장 아저씨가 이제는 수정액이나 지우개 등등 카운터의 여러 필기구들을 집어 던지며 소리쳤다. 쳇, 베테랑 직원을 너무 우습게 아는 소장 아저씨다. 하핫, 그런데 역시 소장 아저씨가 연세가 연세이신지라 명중률이 너무 희박하시다. 나를 맞추기는 커녕 내 근처도 제대로 못 오고 있다. 푸하하.

  “뭐가 이리 날아다녀?”

  순간 듣기 싫은 문 경첩 소리가 들리더니 나를 향해 날아오던 지우개- 그러니까 소장 아저씨가 나름 나를 향해 던진 지우개가 허공에서 멈추었다. 자세히 보니 인쇄소로 들어온 재성이형이 잡은 것이었다.

  “멋지네. 해병.”

  뒤이어 들어온 설화누나가 말했다. 소장 아저씨는 설화누나가 나타나자 반갑게 인사하고는 이미지 관리하는 연예인마냥 갑자기 인쇄하는 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하하, 그렇게 하지 않아도 소장 아저씨의 본얼굴은 온 세상이 압니다요.

  “경숙이 왔어?”

  설화누나가 자전거를 타고 와서 그런지 흐트러진 머리를 바르게 정돈하며 말했다.

  “예. 왔다가 일 하러 출발했어요.”

  “대화 좀 했어?”

  설화누나의 질문에 나는 고개만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요. 저만 말했지 경숙이는 아무런 대답도 없었습니다. 단지 감기가 걸린 듯, 마스크를 착용한 채 말이죠.”

  “마스크를 썼다고? 흠, 그럼 목이 부었나 보네.”

  “잠깐만.”

  나와 설화누나의 대화에 긴 목재의자에 거만하게 앉은 상태로 재성이형이 끼어들었다.

  “혹시 경숙이 옷차림이 평소 그대로였냐?”

  재성이형이 나를 향해 진지한 눈빛으로 물었다. 경숙이의 평소 옷차림이라면... 평범한 셔츠나 목티에 청바지, 그리고 검은색 더플코트. 물론 코트의 단추는 하나도 잠그지 않음. 음, 그렇다. 오늘도 그대로였다.

  “네, 그대로였군요.”

  “그럼 경숙이가 마스크를 착용한 이유는 다른 데에 있다. 삼촌이란 놈이 때렸거나...”

  “형이 어떻게 알죠?”

  내가 묻자 갑자기 자세를 바로하며 나를 향해 진지한 눈빛으로 입을 여는 재성이형.

  “야이 꼴통아. 넌 감기 걸렸는데 코트를 펄럭이며 걸어 다니냐? 그것도 안에 목티 하나만 입은 채로 말야?”

  재성이형이 말하자 옆에서 설화누나가 손뼉을 딱 치며 입을 연다.

  “맞아! 오~ 웬일로 꼴통 해병대의 머리가 잘 돌아가네? 맞아 성주야. 생각해보니 감기가 걸린 사람이 코트 단추를 하나도 잠그지 않았다 함은 좀 말이 안 되지. 물론 내복에 겨울용 속옷에 순면 목 티 까지 다 차려입었다 할지라도 감기가 걸린 사람이 코트 앞부분을 열고 다닌다는 것은 말이 않되.”

  설화누나가 밝은 얼굴로 말했다.

  “헌데... 경숙이는 자신이 원래 추위는 잘 안타고 했잖아요?”

  “야이 꼴통아. 그것도 자기 나름이지. 추위를 잘 타는 녀석이라 할지라도 감기가 걸리면 옷을 다 잠그기 마련이야.”

  내가 설화누나에게 질문했는데 내 머리를 가격하며 설명한 사람은 재성이형이다. 씨... 아무리 내가 좀 이해가 느렸다고 해도 경숙이의 마스크가 부자연스럽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고요!

  “누나 생각도 마찬가지야. 일단 경숙이가 돌아오면 생각해 보도록 해야겠어.”

  설화누나가 마치 명탐정이 된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흐음, 근데 너무 파고들었다가 괜히 우리가 손대지 못할 부분이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망할 성주놈! 일이나 가라!”

  카운터에서 소장 아저씨가 소리쳤다. 쳇, 정말인지 사람 차별 너무 심하다고 느껴진다. 나는 이래봬도 여기 모범 사원인데 말이다.

 

  일을 다 마치고 돌아오자 경숙이는 인쇄소에 있지 않았다. 인쇄소에 있는 것은 번개같이 일을 마치고 돌아온 재성이형이 역시 인터넷 고스톱을 즐기고 있는 소장 아저씨 뒤에서 고스톱 게임을 구경하며 도와주고 있었다.

  “형, 경숙이는요?”

  내가 재성이형에게 묻자 재성이형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입을 열었다.

  “먼저 갔어.”

  “예?”

  내가 되묻자 이번에는 카운터 밖의 나를 응시하며 입을 연다.

  “이미 돌아갔다니까.”

  재성이형이 말을 마치고 무섭게 카운터 안으로 고개를 옮겼다. 아마도 인터넷 고스톱이 한참 무르익을 때인지라 집중해야하는 듯 하다.

  참, 이럴 때가 아니다. 이미 돌아갔다면 어떻게는 경숙이를 만나서 어제 이야기를 확실하게 들어야 한다. 참, 근데 설화누나는 어디 있을까?

  “형, 설화누나는요?”

  내가 재성이형에게 묻자 재성이형은 살짝 고개를 돌려 카운터 밖의 나를 쳐다보면서 빠르게 입을 연다.

  “가족일이 있다고 한 거 같아. 설화네 어머니께서 오셔서 데리고 가셨거든.”

  재성이형은 말을 마치고 다시 고개를 돌려 모니터를 응시한다.

  뭐, 그렇다면 혼자 지금 빨리 경숙이를 쫓아가 볼까.

 

  인쇄소에서 나와 경숙이네 집으로 향하여 정신없이 뛰었다. 물론 내가 갔다고 해서 경숙이가 나한테 말을 터놓고 할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가서 어제의 일이 어떻게 완료되었는지 물어봐야 한다. 이대로 그냥 헤어지는 건 왠지 꺼림칙하다.

  헌데 경숙이가 이미 집으로 들어갔는지 경숙이네 집 앞에 도착했는데도 경숙이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집 안에 있는가 확인하기 위해 초인종을 눌러보려다가 문득 경숙이네 삼촌이 생각나 그만두고 문 주위를 왔다 갔다를 계속하다가 용기를 내어 초인종을 눌렀다.

  띵동- 하고 맑은 음이 집 안을 뒤흔든다. 그래, 일단 인터폰에서 누구시냐고 말소리가 들리걸랑 뒤를 생각하자.

  “누구시오?”

  나는 순간 인터폰에서 난 소리인줄 알았다. 헌데 생각을 해보니 소리는 인터폰이 아닌 내 뒤에서 났다. 흠칫 놀라며 뒤를 돌아보자 놀랍게도 그곳에는 경숙이의 삼촌이 계셨다.

  “아, 당신은...”

  경숙이의 삼촌이 나를 훑어보며 중얼거렸다. 하아, 눈빛을 보니 역시 나를 신뢰하지 않고 있다.

  “어, 어제는 거짓말해서 죄송합니다. 사실 저는 경숙이의 담당 상담교사가 아니라...”

  “그런 얘기는 일단 들어가서 하시죠.”

  대충 둘러대고 도망갈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호의를 베풀며 안으로 들어가자는 경숙이네 삼촌. 일단 나는 그의 말을 들어 집 안으로 들어갔다.

 
작가의 말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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