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로맨스
아틀란티스 소녀
작가 : 갑주어
작품등록일 : 2019.11.10

평범한 대한민국의 소녀가 아닌,
전혀 다른 삶을 살아 온 소녀.
나는 그녀를 아틀란티스에서 온 소녀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녀를 사랑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의 평범한 남자와 아틀란티스에서 온 것 같은 소녀의 사랑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2화
작성일 : 19-11-10 22:07     조회 : 221     추천 : 0     분량 : 27777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띠리리리리리리리-

 

  아 정말인지 이 소리는 정이 들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무리 듣기 싫은 소음이라 할지라도 체념하고 듣다 보면 그냥 그저 그렇게 들리거나 아예 안 들리기 마련인데도 저 소리만큼은 도저히 친해질 수가 없다.

 

  찰칵.

 

  일어났다. 오늘은 머리도 좀 감고 깔끔하게 나가자. 어제는 부스스해서 그 김경숙라는 애가 나를 바보나 모자라는 사람 혹은 노숙자로 보았을지도 모르니까.

 

  새벽공기는 역시 언제 맡아도 차다. 하품을 하기 위해 크게 숨을 들이쉬면 입과 목, 그리고 기관지에 찬바람이 들어온다. 어떤 의미로는 상당히 싫은 느낌이나, 다른 의미로는 시원해서 기관지의 모든 질병이 낫는 것 같다.

 

  듣기 싫은 경첩 소리를 내며 인쇄소로 들어갔다. 오늘도 여전히 인쇄기 앞에서 열심히 인쇄를 하고 있는 소장 아저씨가 보인다.

  “안녕하세요.”

  내가 인사하자 소장 아저씨는 나를 노려본다.

  “김성주 네놈, 어제 그냥 도망갔지?”

  소장 아저씨가 나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며 말했다.

  “네?”

  “어제 네놈, 내기에 져서 아침식사를 사야 하는데 그냥 도망갔잖아!”

  “뭐라고요? 잘 안 들려요!”

  “넌 죽었어! 좀만 기다려라!”

  “인쇄기 소리 때문에 잘 안 들려요!”

  “넌 이미 죽어있다.”

  내가 다 들리면서도 일부러 장난을 쳤다. 소장 아저씨는 이따 두고 보자는 식으로 나를 향해 이를 갈다가 시선을 다시 인쇄기로 옮긴다.

  나는 카운터에서 떨어져 난로에 다가갔다- 가 아니고, 다가가려 했다. 허나 다가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어제 편의점에서 날 이유도 없이 무력화시킨 얼음 공주가 난로 바로 앞에서 쭈그려 앉아 두 손바닥을 난로에 향한 상태로 온기를 쬐고 있었기 때문이다. 흐음, 지금 다가가서 혹시 고민거리라도 있냐고 물어봐야 하는데 어제 그 사건 때문인지 함부로 다가가지 못하겠다. 큭, 일단 멀리서 기다리자.

  음,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지금 저런 모습은 상당히 귀엽다. 나는 나도 모르게 휴대폰을 꺼내어 기침하는 척하면서 김경숙라는 여자애가 난로를 쬐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순간 찰칵 하는 소리가 들렸는지 나를 힐끔 쳐다보았지만, 내가 헛기침으로 무마시키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다행이다. 걸리면 무슨 소리를 들을지 모르니까.

  “여어, 아저씨! 나 왔어!”

  재성이형이 문을 열고 들어오며 크게 말했다. 소장 아저씨는 재성이형을 힐끔 보더니 가운데 손가락만 펼친다.

  “아놔, 울 아저씨 하는 행동 보면 꼭 어린애 같다니까.”

  재성이형이 웃으며 말하자 소장 아저씨는 이번엔 두 손의 가운데 손가락만 펼친다. 재성이형은 그런 아저씨에게 바보 같다느니 멍청해 본다느니 장난을 친다.

  “저 망할 놈 때문에 어제 고스톱머니 3천만 원을 잃었어. 젠장.”

  소장 아저씨가 중얼거렸다.

  “아, 인터넷 고스톱 하다 보면 금방 잃고 금방 얻는 법인데 그까짓 사이버 머니 3천만 점 가지고 화를 내나? 다 큰 어른이.”

  “시끄러! 이거 받고 일이나 가!”

  소장 아저씨가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식으로 가장 먼저 나온 신문들을 줄로 묶어 한 다발을 만들어 재성이형에게 건넸다.

  “하하, 아저씨 나 보기 싫으니까 먼저 보내는 거지? 전에는 먼저 온 순서대로 줬잖아.”

  “시끄러! 빨리 출발이나 해!”

  “헤헷, 그럼 다녀와서 또 고스톱 한 판 하죠?”

  “닥쳐!”

  이어지는 소장 아저씨의 욕설을 어린애 같은 웃음으로 무마시키는 재성이형은 신문 다발을 팔 사이에 낀 채로 인쇄소를 나갔다.

  떠들썩한 재성이형이 사라지자 인쇄소 안에는 지징 지잉 인쇄하는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나는 그냥 멋쩍게 서 있기도 뭐하여 난로 근처 긴 나무의자에 앉아 난로의 온기를 쬐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김경숙이 나를 힐끔 보더니 두 시선을 난로의 불로 고정시킨다.

  “어이, 어제 말야.”

  내가 짧게 말하자 김경숙이 나를 곁눈질로 쳐다본다.

  “내가 저지른 실수 때문에 나를 증오한다거나 꺼리는 건 아니지?”

  라고 묻자 김경숙은 그저 코로 작은 한숨을 내뱉더니 입을 연다.

  “저요? 아니요, 사람이야 그 정도 실수는 하는 법인데 겨우 그런 것 가지고 너무 과민하게 신경질적으로 대한 제가 사과를 드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 너가 나에게? 아니야, 상대방을 배려하지 못한 내가 잘못이지. 하하. 아니 난 또 뭐 네가 그 일로 대단히 화난 줄 알았지. 그 나이 대 여학생들은 상처받기 쉽잖아? 아하하하....”

  내가 멋쩍게 웃으며 말끝을 흐렸다. 허나 김경숙라는 이 여자애는 표정의 변화 일절 없이 난로의 불길에 시선을 고정시킨다. 결국 나만 혼자 멋쩍게 웃으며 재롱을 부리고 있는 셈이다. 쳇, 내가 미안하긴 개뿔이 미안. 어제는 물론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은 내가 잘못이지만, 그것에 대해 그렇게 호전적이게 대응한 네 녀석을 콱 한대 쥐어박고 싶었단다.

  휴우... 어제 그 사건 덕분인지 나랑 이 김경숙이라는 여자애랑은 당분간은 도무지 친해질 것 같지가 않다. 마치 내방 자명종과 같은 사이인 듯. 쩝, 이래서는 고민거리는 커녕 전화번호도 못 알아내겠다.

  “여어~ 신참!”

  소장 아저씨가 신참 특별 보너스인지 그다지 무거워 보이지 않는 신문다발을 카운터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김경숙은 난로에서 일어나 검은색 더플코트와 반듯한 흑발을 휘날리며 카운터로 걸어간다.

  “배달해야 할 곳은 이 쪽지에 적어 두었으니까 실수 없이 잘 하도록 해. 추우니까 옷 단추 잘 잠그고.”

  소장 아저씨가 김경숙에게 신문다발과 배달장소 쪽지를 건네주며 말했다. 허나 김경숙라는 저 여자애는 다녀오겠습니다 라고 짧게 말하고는 인쇄소를 나가버렸다.

  “자, 다음은 네놈이다. 쥐새끼 같은 김성주 녀석.”

  소장 아저씨가 카운터에 평소보다 두 배나 커 보이는 신문다발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에? 왜 이리 커요? 갑자기 구독자가 늘어났나.”

  “그렇다면 얼마나 좋겠냐. 허나 그게 아니고, 오늘 설화가 감기에 걸려서 못 나온다고 하지 않더냐. 고로 네놈에게 부과했지.”

  “예에? 왜 하필 저에요?”

  “아까 아저씨가 말했잖아. 넌 이미 죽어있다고. 아까부터 예정된 거니까, 오늘만 수고해. 여기 배달해야 할 곳을 적어 놓은 쪽지를 줄 테니 반드시 완수하고 돌아와? 중간에 버리면 네 모가지를 따 버릴 테니 각오하고?”

  소장 아저씨가 내 팔에 신문다발과 쪽지를 들려주며 미소 같지 않은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어서 안 가? 빨리 가. 오늘은 코스가 좀 길어 보이는데? 하하하.”

  내가 멍한 표정으로 서 있으니까 나를 문밖으로 내보내는 아저씨. 휴우... 뭐, 설화누나가 아프다니까 그걸 생각해서 오늘만 봉사 할까.

 

  “이런 육?헐! 개?만한 미?놈아! 신문 넣지 말라고 내가 그렇게 써 놓았는데도 왜 이리 쳐놓는 거야? 이 개?끼야! 한글도 못 읽어?”

  “죄송합니다.”

  “도대체 몇 번째야? 이 ?발 놈아! 넣지 말라고 정중히 말했으면 넣지 말지. 니?럴.”

  “죄송합니다.”

  “내일부터는 정말로 넣지 마. 안 그러면 쫒아가서 엉덩이 불나게 해줄 테다. 이 개 ?만한 새?야.”

  “죄송합니다.”

  신문 배달 마지막 코스에서 시비가 붙었다. 신문을 넣지 말라고 여러 번 써 놓았는데, 매번 그 쪽지를 무시하고 신문을 넣었다는 것이다. 헌데 이상한 점은 아저씨가 적어 준 신문을 배달해야 할 곳이 적힌 쪽지에는 분명히 배달해 주라는 집이라는 것이다. 설마, 소장 아저씨가 나를 곤경에 빠뜨리려고 일부러 한 짓인가?

  여하튼 집주인 아저씨에게 이마가 땅에 닿을 정도로 고개를 숙여 가며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해 간신히 빠져나왔다. 으으, 인쇄소에 도착하면 소장 아저씨에게 좀 따져야겠다.

  소장 아저씨에게 당했다는 생각 때문에 짜증이 나, 투덜투덜 다리에 걸리는 것은 모조리 툭툭 걷어차면서 제법 추운 골목을 걸어가고 있었다. 헌데 앞에 어디서 본 듯한 여자애가 작은 쪽지를 들고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뭔가를 찾는 것 같다.

  가까이 가 보니 김경숙이다. 김경숙은 왼손에는 신문 다발을 들고, 오른손에는 소장 아저씨가 목적지를 적어 준 쪽지를 들고 두리번두리번 고개를 돌려가며 목적지를 찾고 있었다. 좋아! 내가 김경숙의 현재 고민거리인 목적지 찾기를 도와주면서 호감도를 얻어야겠다!

  “역시 처음이라 헤매는구나. 도와줄까?”

  내가 다가가서 말했다. 헌데 김경숙라는 이 여자애는 나를 힐끔 보더니,

  “필요 없어요.”

  라고 짧고 차갑게 거절했다.

  “야아, 그러지 말고. 처음이니까 내가 도와줄게.”

  “성의는 감사합니다만, 지금은 필요 없어요.”

  내 손길을 무시하고 앞으로 척척 걸어가는 김경숙. 그러나 목적지가 어딘지 잘 모르기 때문에 계속 두리번두리번 근처를 살핀다.

  “줘 봐. 내가 도와 줄 테니까.”

  내가 김경숙의 손에서 신문 다발과 쪽지를 빼앗으며 말했다. 김경숙의 얼굴을 보니 황당하다는 표정이다.

  “필요 없습니다. 아저씨.”

  뭐? 아, 아저씨?!

  “야! 임마! 어린노무 자식이 이제 스물 둘 되는 미혼남에게 아저씨라는 그게 뭐야?!”

  내가 빽 소리를 지르자 그저 눈만 멀뚱멀뚱 뜨고 나를 쳐다보는 김경숙이다.

  “아니 뭐, 그러니까- 선배라고 부르든가 아니면 평범하게 오빠라고 부르든가 해야지. 젊은 미혼남에게 아저씨라니 말버릇이 그게 뭐냐?”

  내가 투덜대자 그래도 자신이 실수한 건 인정하는 듯, 나를 살짝 쳐다보다가 고개를 숙이는 김경숙.

  “그래요, 선배. 제가 잘못했습니다. 허나 말버릇이 딱히 나쁜 건 아니니 오해 마세요.”

  “아하하~ 난 괜찮아.”

  “저기, 선배. 목적지는 제가 혼자서도 잘 찾고 있으나 걱정 마시고요. 혹시 근처 가까운 화장실이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아, 아닙니다. 그게 아니고. 근처 가까운 아파트 상가 연 곳이 어디 있습니까?”

  “무슨 소리야?”

  내가 질문하자 김경숙은 뭐가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히며 두 손을 휘젓는다.

  “아니,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냐. 여긴 안이 아니고 밖이야.”

  “아...”

  내가 당황해 하는 녀석을 무마시켜 주려고 때 지난 유행 말장난을 했다. 헌데 녀석 표정이... 마치 비싼 메이커 운동화 신고 처음으로 달려보는데 똥 밟은 얼굴이랄까.

  “미안, 재미없지?”

  “아닙니다. 선배다워요.”

  녀석이 작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뭐야, 나답다는 게 뭐야? 욕인가? 아, 녀석의 임무 지령 쪽지를 보니 요 앞이다.

  “야, 요 앞에다 하나 놔.”

  내가 쪽지를 보여주고 목적지의 집 앞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김경숙은 굉장히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신문 한 부를 옆구리에서 꺼내 문틈에 꽂는다.

  “다음은 바로 저긴데...”

  “선배, 목적지 가이드는 필요 없다고 아까부터 말씀드렸잖습니까?”

  내가 다음 코스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하는 중이었으나 매우 차가운 말투로 내 말을 딱 끊어버리는 김경숙이다. 그리고 무안해진 나는 그대로 멈춰 서서 김경숙만 쳐다보며 눈을 깜박였으나 흥 하며 머리카락이 휘날릴 정도로 고개를 돌려 혼자 가버리는 김경숙의 뒷통수를 쳐다볼 뿐이었다.

  “어이, 아무래도 처음이니까 도와주는 게 좋지 않을까?”

  “필요 없습니다. 제 말이 안 들려요? 도와 줄 필요 없다고요. 귀찮게 굴지 말고 어서 돌아가기나 하세요. 괜히 화장실 급한 사람한테...”

  “화장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무것도 급하지 않아요. 단지~. 음~ 음~.”

  내가 상당히 귀찮은 건지 싫은 건지 내 등을 떠밀며 어서 사라지라는 김경숙이다. 하, 정말 사람 성의 놀랍게 무시하는군.

  “아무것도 아니니 먼저 돌아가세요.”

  내 등을 억지로 떠밀며 마지막으로 김경숙이 한 말은 바로 저것이었다. 쳇, 결국은 호감도를 얻기는 개뿔 안 그래도 굉장히 적은데 더 떨어뜨린 것 같다.

 

  결국 화장실이 급하지만, 일단은 모든 일은 혼자서 처리하겠다는 김경숙을 두고 인쇄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듣기 싫은 소리를 내는 문을 열고 들어가 소장 아저씨에게 따지기 위해 다가갔다. 소장 아저씨는 아까만 해도 어제 잃은 점수 때문에 재성이형을 죽이려고 하더니 웃기게도 지금은 또 재성이형의 지도를 받으며 인터넷 고스톱에 열중하고 있었다.

  “아저씨.”

  내가 불렀으나 못 들었는지 두 눈을 모니터에 고정시킨 채로 마우스만 클릭하는 아저씨다.

  “아저씨~.”

  내가 인쇄소 홀 중앙에 설치된 등유난로에 손을 가까이 가져가며 길게 아저씨를 불렀다. 허나 아저씨는 재성이형이 내라는 패를 클릭하며 나를 무시하였다.

  “아저~씨~.”

  내가 난로 근처에서 손을 비비며 아주 길게 아저씨를 불렀다. 그제서 소장 아저씨는 나의 존재를 파악했는지 곁눈질로 힐끔 본다.

  “응, 망할 성주놈. 무슨 일이냐? 시간을 보니 좀 늦었네? 오랜만에 농땡이 부렸냐?”

  소장 아저씨가 두 눈은 컴퓨터 모니터에 고정시킨 채로 말했다.

  “경숙이 좀 알려주다 보니 늦었는데요. 저는 절대로 농땡이 따위 안 피웁니다. 지금 몇 년째인 베테랑이 그런 유치한 짓을 하겠어요?”

  “네놈은 그러고도 남을 놈이여. 근데 경숙이를 알려주다니? 경숙이가 누구냐?”

  소장 아저씨가 두 눈은 컴퓨터 모니터에 고정시킨 채로 고개만 갸웃거리며 말했다.

  “아저씨, 혹시 쟤 여자 친구 생긴 거 아닐까?”

  소장 아저씨의 의자 등받이에 기댄 채로 고스톱 게임을 지시하고 있는 재성이형이 말했다. 우와, 오늘부터 일 시작한 김경숙을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건가? 캬, 기억력 최고로군!

  “그런 거냐? 성주놈?”

  소장 아저씨가 여전히 두 눈은 컴퓨터 모니터에 고정시킨 채로 오른손가락만 이용해 클릭질을 해대며 말했다.

  “무슨 여자 친구라고. 하하! 내가 여자 친구가 있으면 이 시간에 이러고 있겠어요?”

  “듣고 보니 그러네. 네놈이 여자 친구가 생길 리가 없지. 어떤 미친 여자가 너 같은 또라이의 애인이 되겠냐.”

  소장 아저씨가 나를 곁눈질로 힐끔힐끔 쳐다보며 비웃었다. 아 정말인지 말 한 번 맛깔나게 하신다. 어른이라 아쉽다. 같은 나이였으면 한대 쳐 버릴 텐데.

  “아, 정말 두 분 기억력 좋으시네. 오늘부터 일 시작한 예비 대학생 여자애 이름이 김경숙이잖아요. 물고기 뇌를 소유한 님들.”

  내가 말하자가 그제야 뭔가 알아냈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는 둘이다.

  “어? 아저씨, 걔 이름이 김경숙 이었어?”

  “그, 그랬던 것 같은데?”

  오늘부터 일을 시작한 여학생 이름이 김경숙 이라는 것을 알아챈 두 분의 물고기 뇌 소유자들은 크게 놀랐다.

  “아, 그래서 걔 지도해 주느라 늦은 거냐?”

  결국 알겠다는 듯 수긍하는 소장 아저씨의 질문에 답하듯이 고개를 끄덕여줬다.

  “야야야야, 왔다 왔어. 이럴 땐 이거 내야 하는 거냐?”

  김경숙에 대해서 뭘 좀 물어보려는가 싶더니 다시 인터넷 고스톱 게임에 집중하는 둘. 재성이형은 소장 아저씨의 뒤에서 손가락질로 패를 가리키며 신나게 떠든다.

  “이럴 땐 그게 아니라 이거야, 이거! 아저씨, 이거 내라구!”

  “알았다, 알았어! 고 녀석, 엄청 떠드네. 그런데 만약 이번 판을 진다면 너는 죽은 목숨이라 했다!”

  “거, 사람 되~게 못 믿네. 걱정 말고 나만 믿고 비범하게 가자.”

  “미친 놈. 그러다 또 지게 만들려고?”

  “이번엔 진짜 감 좋아. 99%이긴다.”

  “99%? 설마 1%에 드는 건 아니겠지? 뭐, 알았다. 믿어 보지.”

  결국 재성이형에게 굴복하고 재성이형이 말한 패를 내는 소장 아저씨. 몇 번을 둘이서 소리치며 시끄럽게 떠들다가 결국 고스톱 판이 결정났다. 헌데 놀라운 것은, 아저씨가 질 줄 알았더니 순식간에 패를 싹쓸이하여 고스톱을 결정짓게 되었고, 이미 원 고를 외친 적이 있었던 소장 아저씨는 스톱을 눌러 버렸다는 것이다. 그렇다. 아저씨가 이겼다.

  “아자!”

  소장 아저씨가 크게 기뻐하자 옆에서 재성이형이 조금은 거만한 자세로 입을 연다.

  “아저씨. 내가 참고 정도로 한 마디 하겠는데, 내가 해병대 가기 전에 쓰던 아이디가 신 계급 이었다고. 지금은 친구 줬지만.”

  “꼭 너 같이 입만 산 녀석들이 꼭 아이디 친구 줬다고 염병을 하더라. 돈 빌려달라고 하면 엄마가 만 원에 구천 원은 남겨오랬다고 말하든가.”

  재성이형이 잘난 척을 하자 소장 아저씨가 팔짱을 끼며 중얼거렸다. 그런 아저씨의 악설을 모두 맞받아 돌려 치듯이 재성이형은 태연하게 대한다.

  “아니, 진담이야. 내가 아저씨 서포트 해주는 거 보면 몰라? 내가 그냥 헛배기 실력이 아니라고.”

  “웃기고 있구나. 만날 지다가 이제 한 번 이기게 해 준 놈이.”

  “아, 그건 해병대에서 훈련 받느라 뇌가 돌이 되어서 그 돌을 녹이느라 시간이 걸려서 그래. 아저씨가 믿지 못한다면 내가 인증 까야지 뭐. 아마 지금도 신 계급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이디 검색창에서 비익조 쳐봐. 그 아이디 주인 이름이 박재성으로 되어 있을 거야 아마.”

  “하, 녀석. 비익조가 뭔지는 알고 쓰는 건지 나 원. 헌데 그 아이디 정말이냐?”

  “물론이지. 왜? 이제 보니 간지가 잘잘 흘러?”

  “염병. 눈곱만큼의 관심도 없다 이놈아.”

  “하하하, 그러시든지.”

  재성이형이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소장 아저씨를 뒤로 하고 카운터에서 나오며 중얼거렸다. 재성이형은 문을 열고 나가려다가 문득 난로 앞 긴 나무의자에 안자 열기를 온몸으로 받고 있는 나에게 다가온다.

  “아직 안 돌아갔네? 김경숙인가 걔 기다리는 거야?”

  헉. 정곡을 찔렸다. 허나 침착하자. 절대로 본심을 드러내만 않되.

  “아니요. 집에서 불 때면 기름 값 나오니까, 여기서 난로 좀 쬐다 가려고요.”

  내가 말하자 카운터 안쪽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소장 아저씨가 나를 죽을 듯한 눈빛으로 노려본다.

  “하아, 춥구만.”

  재성이형이 내 반대편 긴 나무 의자에 앉아 두 다리를 쭉 피며 말했다.

  “김경숙인가 뭔가 하는 걔 예쁘냐?”

  재성이형이 신발을 벗고 난로 근처에 발바닥을 가져가며 물었다. 뭐야, 그렇게 직설적으로 또 물어보시면 답하는 제가 뭐가 됩니까?

  “보통인 것 같은데요.”

  “보통은 무슨. 형이 보아하니 꽤 아리따운 아가씨드만. 걔랑 사귀어 봐라.”

  “아, 됐어요.”

  내가 손을 휘저으며 말하자 재성이형은 등받이에 편히 등을 기대어 살짝 웃으며 입을 연다.

  “참고로 어떤 상대와 친해지거나 사랑하고 싶다면 그이의 사진을 휴대폰 액정에 바탕화면으로 해봐. 그러면 그게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다니까.”

  “아... 그거, 일본의 모 애니메이션에서 나온 거 아닙니까?”

  “얼레? 너도 그거 봤냐?”

  “물론이죠. 제가 게임만 하는 줄 아십니까.”

  “하하하! 형은 몰랐지 임마. 아무튼 그거 신빙성 있는 거니까 그냥 알아만 둬.”

  호쾌하게 웃으며 말하는 재성이형. 나는 피식 웃다가 작은 숨을 토하고 카운터 안쪽의 소장 아저씨를 보았다. 소장 아저씨는 또 인터넷 고스톱 판을 시작했는지 입을 벌리며 가끔씩 으악 아자 악 하면서 놀고 계신다. 쩝, 사모님이 아시면 큰일 날 텐데. 아까의 복수 겸 전화 드릴까?

  “그러고 보니 너 예~전에 내가 한다던 그 리포트, 다 쓴 거냐?”

  재성이형이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한 개비를 난롯불을 이용해 불을 붙인 후 입에 물며 말했다. 그리고 한 개비를 더 꺼내 똑같이 난롯불을 이용해 불을 붙인 후 나에게 하나를 건넨다. 나는 재성이형이 준 담배 한 개비를 받아 들었다.

  “아, 성 범죄에 대한 처벌법 리포트 말씀하시는 거죠?”

  “응, 맞아.”

  성 범죄 처벌법 리포트. 내가 다니는 학과가 학과인지라 교수님께서 법 계열의 리포트를 숙제로 내 주실 때가 많은데, 지난 2학기 말에 시험을 치르고 숙제로 성 범죄 처벌법 리포트를 작성하라는 명령이 들어왔었다. 뭐 보통 다른 법률에 관한 리포트나 아니면 다른 처벌법에 대한 리포트는 금방 잘 써내려가 중간 이상의 학점을 따내는 데 성공한 나였지만, 유독 성 범죄 처벌법 리포트에서 막혔던 나였다. 그 중에서도 강간죄의 처벌과 강간 미수의 처벌의 차이에 대해 논할 때에는 정말 막막해 웃기게도 공학계열 학과에서 전 꼴통으로 통하는 싸움과 체육만 잘 하는 해병대 출신 재성이형에게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었다. 사실, 타인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은 법 계열을 공부하는 나에게 그다지 깨끗한 행동이 아니다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재성이형에게 도움을 청했던 것이다.

  헌데 놀라운 것은, 공학계열 학과 전 꼴통으로 통하는 재성이형이 예상 외로 리포트 떡밥을 잘 던져주었던 것이다. 나는 그 점에 대해 상당히 놀랐다. 그저 헛소리나 하고 강간과 강간 미수의 차이만 잠깐 알 만한 재성이형이 그쪽 계열에는 완전히 박사 학위 이상인 듯, 거의 리포트를 대신 써 준 거나 마찬가지의 힘을 발휘했던 것이다. 뭐, 재성이형의 과거는 나야 잘 모르지만 범법자가 법을 잘 안다고 하던데 설마... 아하하, 하지만 설마 그게 그렇게 성립되는 건 아니겠지... 설마야. 재성이형이 저렇게 인간 나무늘보에 싸움과 체육만 잘 하는 인간이라 하더라도 남자로서 지킬 선천적 사명은 전부 지키고 사는 남자란 말이다. 오해하지 말도록. 아, 결국 이야기를 잘못 꺼낸 내가 잘못이구나. 죄송해요.

  “너 임마 그때 그거 나 아니었으면 사흘 밤낮으로 쩔쩔 메고 있었을 거야. 낄낄낄.”

  재성이형이 한쪽 다리를 반대쪽 다리 무릎 위로 올리고 담배를 한 모음 빨아들이며 말했다.

  “하하, 맞아요. 그건 맞는 말이죠.”

  “형이 세상은 몰라도 여자는 잘 알거든. 귀신도 잡는 해병대이니까 말야. 낄낄낄~.”

  항상 꼴통이라고 놀림 받던 싸움과 체육만 잘 하는 형님께서 누군가의, 그것도 법 계열을 공부하는 대학생의 리포트 제작을 도와 줘 중간 이상의 학점을 받게 해 줬다는 사실이 그렇게나 즐거운 것인지 왼손의 검지와 중지를 이용해서 담배를 쥔 채로 호쾌하게 웃는 재성이형이다. 근데 해병대인 것과 여자를 잘 안다는 것이 어떤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일까.

  “하하, 그때 정말 아찔했어요. 허나 형의 도움 덕분에 잘 처리할 수 있었죠.”

  “당연하지! 하하하하하!”

  “강간미수 쪽은 형 덕분에 금방 해낼 수 있었고요, 강간 쪽은 아무래도 강간 미수보다 어려울 것 같았는데 막상 해 보니 쉽더군요. 다 형 덕분이에요.”

  내가 웃으며 재성이형에게 말했다. 헌데 내가 말함과 동시에 신문을 다 돌린 듯한 김경숙이 듣기 싫은 문 경첩 소리를 내며 들어와 나와 재성이형을 한 번씩 훑어보고는 ‘이제 보니 더러운 강간범?’이라며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지나갔다. 그리고 카운터로 걸어가 소장 아저씨에게 완료를 보고하였다.

  헌데 여기서 알아낸 사실. 전부터 예상은 해 왔지만 역시 소장 아저씨는 젊은 여자에게 약하다. 누가 남자 아니랄까봐. 그 예로 설화누나는 우리보다 십 분이나 아니면 더 늦어도 별다른 잔소리 없이 웃으면서 수고했다고 하는데, 나나 재성이형이 그랬다면 인간이 들을 수 있는 욕은 전부 듣게 된다. 그리하여 재성이형이 다 큰 어른이 여자 밝히지 말라고 농담 겸 비꼬기로 말한 적이 여러 번 있다. 뭐, 그렇게 재성이형이 뭐라고 하건 말건 소장 아저씨는 설화누나뿐만 아니라 김경숙에게도 그들이 아무리 늦는다 하더라도 전혀 혼내거나 욕하지 않고 웃으며 대해준다. 쳇, 확실한 남녀 차별이다. 국회 여성부가 보면 좋아하겠군.

  “하핫, 고마우면 언제 밥이라도 한 끼 사라고.”

  내가 다른 생각하는 사이 재성이형이 담배 한 모금을 빨아들이고 웃으며 말했다.

  “잠깐, 야! 박재성 너 이 자식, 또 실내에서 담배 피우고 있지? 너 죽고 싶냐?”

  재성이형과 내가 즐겁게 난롯가에서 온기를 느끼며 떠들고 있던 도중 카운터 안쪽에서 천지를 가르는 개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아, 꼭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말이 그렇다 이 말이다.

  “뭐라고요? 잘 안 들려요!”

  재성이형이 나에게 담배 끄라는 제스처를 취하며 소리쳤다.

  “내가 실내에서는 담배 피우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을 해야 들어 쳐 먹겠냐? 응? 네놈 해골바가지 속 호두에 인쇄 카드리지로 인쇄해줄까?”

  손에는 잉크를 다 써버려 버릴 예정이었던 인쇄용 잉크 카드리지를 든 소장 아저씨가 카운터 문을 열기 정확히 십 초 전에 재성이형과 나는 재빨리 땅에 버리고 그 위를 발로 밟은 후 다리를 고정시켰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팔짱을 끼고 휘파람을 불며 소장 아저씨를 쳐다보았다.

  아저씨는 잉크 카드리지를 들고 카운터 안쪽에서 나와, 나와 재성이형을 살폈으나 이미 하얀 담배연기는 환풍기를 통해 빠져나간 상태였고, 담배꽁초는 나와 재성이형이 각자 알아서 밟고 있으므로 증거를 찾을 수 없자 민망한 탓인지 김경숙에게 이것 좀 버려달라고 부탁하고 카운터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김경숙은 소장 아저씨가 건네준 다 쓴 잉크 카드리지를 근처 쓰레기통에 넣고 나와 재성이형이 위치한 난롯가로 다가왔다. 그리고 쭈그려 앉아 두 손을 난로에 가까이 가져갔다.

  “가만, 그러고 보니 네 이름이 김경숙 이랬나?”

  재성이형이 의자에 앉은 채로 김경숙에게 물었다. 김경숙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오빠 이름은 박재성이야. 잘 부탁한다.”

  재성이형이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김경숙에게 오른손을 내밀자 김경숙은 그 인사에 답하듯이 악수를 받는다. 쳇, 나도 어제 첫인사를 저렇게 평범하게 했어야 했는데 정말 원통하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재성선배.”

  김경숙이 재성이형의 악수를 받은 채로 말했다.

  “이쪽은 알지? 망할 김성주야.”

  재성이형이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에, 갑자기 뜬금없이 망할 김성주?

  “예, 알아요. 망할 김성주선배.”

  김경숙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형, 뭐에요? 저에게는 왜 ‘망할’이 들어가요?”

  내가 따지자 나는 모른다는 식으로 다른 곳을 쳐다보는 재성이형. 그리고 마치 재성이형과 약속이라도 한 듯이 난롯불만 응시하는 김경숙.

  뭐야, 이 상황...?

  “아참, 성주 너 시간 남으면 나랑 같이 좀 갈까?”

  재성이형이 주머니에 놓은 손을 밖으로 빼내며 말했다.

  “어디 가는데요?”

  내가 묻자 재성이형은 갑자기 주먹을 입 앞에 가져다 대며 헛기침을 한 후에 입을 연다.

  “이설화’s 하우스.”

  “아, 설화 누나네 집이요? 거긴 왜요?”

  “어젯밤 감기 걸려서 열이 올라 일어나질 못한다잖아. 가서 일이라도 밀려 있다면 도와줘야 하겠지. 뭐, 그건 그렇고 넌 문병 안 갈 거냐?”

  우와, 재성이형이 이렇게 부지런하고 따뜻한 남자였던가? 놀라운데? 아니면 뭔가 다른 목적이 있는 걸까?

  “뭐냐, 네 표정이 딱 ‘니까짓 게 가긴 뭘 가.’라는 표정이다? 뭐, 내가 가고 싶어서 가는 게 아냐. 단지 저 망할 아저씨가 가라고 협박 하길래 가는 거야.”

  재성이형이 카운터 안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런 재성이형을 보고 죽일 듯이 이를 가는 소장 아저씨다.

  “갈겨, 안 갈겨?”

  재성이형이 물었다. 헌데 난... 그저 가기 싫다. 그냥 뭐 귀차니즘이 머릿속을 완전히 채워 가는지 어디든 누워있지 않으면 상당히 불편하다. 그냥 이 나무 의자에 누워 늦잠이나 자고 싶다.

  “안 갈겨?”

  재성이형이 자켓을 바로잡으며 말했다. 휴,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가기 귀찮아서 싫습니다.

  “뭐, 이설화가 너 되~게 좋게 보던데. 헌데 이번 기회에 이미지 체제변환 하도록 김성주는 자기 문병도 오기 싫어하는 놈이라고 일러야지. 아마 예상 이상으로 대박 충격 먹을 거야.”

  그, 그런...

  “하하, 설마 내가 그러겠냐? 자, 이 해병대 형이 아침밥으로 빵이라도 하나 사 줄 테니까 어서 가자고.”

  재성이형이 내 손을 잡은 채 강한 힘으로 억지로 나를 끌며 말했다.

  “참, 경숙이도 갈래?”

  재성이형이 김경숙에게 물었다. 우와, 어느새 ‘경숙이’까지 발전했다지? 그렇다면 나도 이제부터는 ‘경숙이’로 불러야겠다.

  “병문안 입니까?”

  경숙이가 일어서서 재성이형에게 물었다.

  “응, 병문안이야.”

  “누구의 병문안인가요?”

  “아, 경숙이 너 혹시 이설화라고 본 적 없어? 그 왜 있잖아. 키 크고 못생긴데 머리는 길고.”

  재성이형이 좀 일부러 갈구는 식으로 설명을 했다. 헌데 경숙이는 설화누나를 본 적이 전혀 없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아무튼 우리 인쇄소에서 일하는 자전거 타는 걸 좋아하는 괴물이 하나 있어. 헌데 그 괴물이 송강호와 박해일, 그리고 배두나에게 상처를 입어 지금 집에서 쉬고 있다는군. 그래서 병문안 가보려는데 같이 갈래?”

  말도 안 되는 허구성이 아주 강한 이야기를 주절주절 늘어놓는 재성이형. 경숙이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좋아. 아침은 이 오빠가 사 주마. 가자. 아저씨! 내일 새벽에 또 올게.”

  재성이형이 카운터 안쪽에서 컴퓨터로 인터넷 고스톱을 또 시작한 소장 아저씨를 향해 손을 흔들며 말했다.

  “오냐, 내일 또 오너라.”

  한 판 이겨서 그런지 웬일로 방긋 웃으며 답해주는 아저씨다. 뭐 인간의 감정이란 게 저렇게 쉽게 변할 수 있는 건가? 아, 난 잘 모르겠다.

 

  “먹고 싶은 것으로 골라 보니라.”

  재성이형이 나와 경숙이를 억지로 편의점 안의 빵 진열대로 밀어 넣으며 말했다.

  “형, 저는 개인적으로 빵보다 삼각 김밥이 더 좋은데요.”

  “아아, 그렇다면 네 먹고 싶은 걸로 마음대로 골라.”

  어깨를 으쓱하며 빙긋 웃는 재성이형. 혹시 이렇게 선심 쓰는 척 하다가 나에게 계산을 넘기는 건 아닌가 의심된다. 괜한 사람을 의심하는 것은 죄가 되지만 지금 내가 재성이형을 의심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예전에 그런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가 사는 척 하면서 은근슬쩍 계산을 나에게 넘겨 내가 다 계산했다는, 지금 생각해도 너무 어이가 없는 사건이었다. 고로 내가 이 상황에서 재성이형을 의심한다해도 재성이형이 불쾌할 것은 없으니 그냥 넘어가도록 하자구.

  “텔미~ 텔미~ 테테테테텔미~. 나를 사랑한다고~ 날 기다려 왔다고~.”

  내가 냉장고에서 삼각 김밥과 커피우유 각각 하나씩을 집어 드는 동안 뒤쪽 빵 진열대에서 빵을 고르며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대중가요를 따라 부르는 재성이형이다. 내가 ‘아아, 제발 부탁이니 안무만은 안 췄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뒤를 돌아보니 하나도 안 틀리고 정확하게 안무를 추고 있다. 아아, 정말인지 인간 나무늘보 재성이형이 해병대에 입대하여 무사히 제대한 사실과 저런 대중가요 안무는 하나하나 세세한 부분까지 금방 외워버리고 소화시키는 능력은 믿겨지지가 않는다. 또한 편의점 같은 공공장소에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대중가요를 부르고 안무를 추는 뻔뻔스러움도 대단히 놀랍다.

  경숙이는 어디에 있나 살짝 보니 스낵 진열대에 있었다. 경숙이는 놀랍게도 나랑 처음 봤을 때처럼 초코파이를 고르고 있다. 흠, 초코파이 매니아인가.

  “골랐냐?”

  재성이형이 나를 향해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삼각 김밥 하나와 커피우유 하나를 재성이형에게 넘겼다. 또한 다가온 경숙이는 초코파이 하나와 초코우유 하나를 넘겼다. 재성이형은 모두 네 개를 받고 난 뒤에, 위에 자신의 아침식사를 얹고 계산대로 가 종업원 아가씨에게 느끼한 말투와 표정으로 쇼를 하였다. 뭐, 영화관 계산대에서 쇼를 하면 공짜로 표를 준다던데. 혹시 그게 편의점까지 번진 것인가? 뭐, 아니면 재성이형의 혼자 놀기 솔로 무대인 것이겠지. 난 잘 모르겠다. 결론은 횡설수설. 죄송.

  “자, 먹어라.”

  재성이형이 나에게 계산이 완료된 삼각 김밥 하나와 커피우유 하나를 던지며 말했다. 헌데 경숙이에게는 살며시 초코파이와 초코우유를 건네준다. 하, 사람 차별인가?

  나는 그 둘을 받아 편의점 한쪽에 설치된 플라스틱 테이블로 가 삼각 김밥 포장을 뜯었다. 재성이형을 보니 어느새 내 앞에 앉아 빵 비닐을 벗기기 시작하고 있다. 경숙이는 테이블이 2인용인 탓에 한 칸 떨어진 테이블에 앉았다.

  “너 말이다.”

  재성이형이 빵을 한 입 베어 먹으며 나에게 말했다. 나는 말없이 삼각 김밥을 씹으며 재성이형을 쳐다보았다.

  “쟤, 경숙이 말이다. 좋아하냐?”

  나는 커피우유를 마시다 순간 바로 앞에 앉은 사람의 얼굴에 뿜을 뻔 했다. 만약에 실제로 뿜었다면 귀신 잡는 해병대에게 귀신 대신 잡히겠지. 뭐,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지금 재성이형이 내뱉은 말이 중요하다. 혹시라도 옆의 경숙이가 들었을까 염려하여 옆을 살짝 보았지만 다행히도 경숙이는 카운터의 뉴스를 보고 있어서 듣지 못한 것 같다. 뭐, 일단 입 안의 삼각 김밥과 커피우유의 혼합물을 삼키고...

  “좋아 한다고 하기 보다는 그저 한 명의 후배로...”

  “임마, 재미없게 그딴 식으로 말하지 마라.”

  재성이형이 내 말을 가로막았다.

  “뭐, 그럼 형은 설화누나 좋아하시나요?”

  내가 재성이형이 빵을 한 입 베어 먹는 동안 빠르게 물었다. 재성이형은 입 한 쪽에 빵을 밀어 넣으며 입을 열었다.

  “좋아 한다고 하기 보다는 그저 한 명의 동료로...”

  “형, 재미없게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지 마세요.”

  내가 재성이형의 말을 가로막았다. 재성이형은 은근히 놀랬는지 ‘오~ 그러시겠다?’라며 또 다른 보복을 준비하고 있는 듯하다.

  허나 재성이형의 보복이 없었고, 그저 빵을 먼저 다 먹은 것뿐이었다. 나는 갑자기 입을 다물고 묵묵히 나를 쳐다보고 있는 재성이형을 힐끔 쳐다본 후 천천히 커피우유를 들이켰다.

  “얌마, 빨리 좀 먹어!”

  갑자기 재성이형이 짜증을 냈다. 뭐, 재성이형이 워낙 식사를 빨리 해서 내가 늦게 먹는 것처럼 보일 수는 있다만 짜증을 낼 것까지야 있을까.

  “그냥 입에 꾸역꾸역 다 쳐 넣어!”

  내가 천천히 삼각 김밥을 씹으며 커피우유를 들이켰을 때 재성이형이 또 짜증을 내는 바람에 하마터면 그의 얼굴에 다 뿜을 뻔 했다. 뭐, 정말로 뿜었다면 귀신 잡는 해병대 아저씨에게 귀신 대신 잡히겠지만.

  “콧구멍에다 모조리 쳐 넣어 줄까 보다. 아 빨리 좀 먹어!”

  하하, 이제 알겠다. 재성이형은 진심으로 짜증을 내는 게 아니라 보복 겸 화풀이로 나에게 괜히 늦게 먹는다고 짜증을 낼 뿐이다. 푸후후, 마치 어린 애 같잖아.

  “빨리 먹어~! 그냥 입인지 코인지 아무데나 벌컥벌컥 마셔 버려~!”

  내가 삼각 김밥을 다 먹고 커피우유를 일부러 홀짝홀짝 마시자 재성이형이 매우 짜증을 내며 말했다. 허나 나는 다 안다. 저런 재성이형의 가면 안에는 웃고 있다는 사실을.

  “가자.”

  내가 남은 커피우유를 다 마시자 재성이형은 언제 짜증냈냐는 듯이 표정을 고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쓰레기를 처리했다. 그러자 이미 쓰레기까지 전부 처리한 경숙이는 옷을 털며 살며시 일어났다. 그리고 내가 쓰레기를 다 처리하자 재성이형은 한 번 기지개를 편 후에 우리를 설화 누나네 집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앞장섰다.

  뒤쪽에서 밝은 목소리의 아르바이트생이 안녕히 가세요~라고 말했으나 나만 살짝 뒤를 돌아볼 뿐이었다. 흠, 순간적으로 힐끔 본 거라 그랬을지도 모르겠지만. 저 알바생도 가끔 이뻐 보일 때가 있구나...

 

  “참, 여기서 뭣 좀 사 가자.”

  재성이형이 설화누나네 집이 있는 아파트단지에 도착하자 단지의 상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맞아, 문병을 갈 때에는 건강음료라든가 아니면 과일을 들고 가는 게 최고지.

  “네, 그러죠. 뭐로 할까요? 여성이니까 석류 음료 박스를 사 가는 게 좋을까요?”

  “아니, 석류 음료는 안 돼. 그놈의 CF 때문에 이설화 그 계집애에게 석류 음료를 가져다주면 지가 미인인 줄 알고 염병을 떨 거야.”

  재성이형이 팔짱을 끼고 나름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하하, 뭐 설화누나는 실제로 아리따우시니까 아무리 공주병이 도진다 해도 그냥 넘어가셔도 될 것 같습니다만... 아, 저만 그런가요?

  “그럼 파인애플은 어떨까요? 달콤해서 감기 기운으로 입맛이 떨어져도 딱 좋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녀석이 외국 물 먹었나. 그냥 사과면 몰라도 왜 파인애플이냐? 파인 건 벌레 먹은 거다.”

  “켁...”

  갑작스런 재성이형의 개그에 한 방 먹은 나는 그저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말 없이 묵묵하게 우리를 뒤따라오던 경숙이를 보니 살짝 미소를 짓고 있다. 쳇, 아까 내가 할 때는 한숨 쉬더니만.

  “그러지 말고 우리 귤이나 사가자. 한국인은 자고로 제철 과일을 먹어야 건강한 법이니라. 그리고 이설화 그 지지배가 좋아하는 과일도 귤이므로 귤을 사가도록 하자. 아줌마, 귤 한 바구니 주십쇼.”

  내 의견들은 전부 거절하고 결국에는 자기가 맘에 드는 걸로 사는 재성이형이다. 쳇, 그럴 거였으면 뭐 하러 물어본 거야?

 

  띵동- 띵동-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설화누나네 집 벨을 누르자 인터폰 스피커에서 잘 모르는 여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누구세요?”

  목소리로 추측해 보건데 이건 분명히 중년 여성의 목소리다. 즉 설화누나의 어머니임이 틀림없다.

  “저희는 설화 친구들인데요, 설화 있습니까?”

  재성이형이 인터폰의 마이크 부분에 입을 가져다 대고 똑바르고 큰 목소리로 말했다.

  “오, 그래. 설화의 친구들이구나. 설화는 지금 막 아침식사를 하고 쉬고 있단다. 잠시만 기다려 주겠니?”

  인터폰 스피커에서 다정한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묻자 나와 재성이형은 밝은 긍정의 의사를 밝혔다.

  헌데 아주머니께서 인터폰 스피커를 끄지 않은 탓인지 집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효과음과 대사가 미미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엄마, 누구라고?”

  스피커에서 미미하게 들리는 저 목소리는 아마도 설화누나의 목소리일 것이다.

  “네 친구들 이라고 하던데. 남자애 둘이랑 여자애 하나였나. 아니, 넌 왜 다 큰 애가 속옷차림으로 방에 누워 있는 거니?”

  이건 아마도 아주머니의 목소리... 헌데, 뭣이라고요...?

  “풋.”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헌데 바로 그 뒤에 뒤통수에 중간 충격이 전해졌다. 옆을 보니 재성이형이 때린 것이다.

  “야한 생각 하지 마라. 이 변태 녀석아.”

  갑자기 재성이형이 형답지 않게 진지한 얼굴과 눈빛으로 말했다. 뭐야, 마치 자기 딸 감싸주는 아버지 같잖아?

  “솔직히 말하면, 재성이형도 야한 생각 했잖아요.”

  내가 뒤쪽의 경숙이에게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내 옆에 멋진 차렷 자세로 서 있는 재성이형에게 말했다.

  “전혀.”

  재성이형은 거짓말이 뻔히 드러나는 눈빛과 표정으로 말했다. 체, 결국에는 자신도 야한 상상 했으면서 괜히 나한테만...

  “더 이상 질문하면 사살한다.”

  갑자기 상황에 맞지 않게 해병대 스타일로 나가는 재성이형이다.

 

  잠시 후에 현관문이 열리며 다정해 보이는 중년 여성이 나왔다. 추측 할 필요도 없이 이 분이 설화누나의 어머니일 것이다.

  “안녕하세요.”

  먼저 들어간 내가 공손히 인사를 하였다.

  “안녕하세요.”

  나 다음으로 인사를 한 경숙이이다.

  “어머, 귀엽게도 생겼네. 남자애들한테 인기 많지?”

  아주머니께서 경숙이의 볼을 쓰다듬으시며 말씀하셨다. 헌데 경숙이는 밝게 미소만 지을 뿐, 동요하지 않는다. 쩝, 뭐라고 대꾸라도 하지...

  “장모님 안녕하십니까? 처음 뵙겠습니다. 박재성이라고 합니다.”

  “엥?”

  내 뒤에 서 있던 재성이형이 느닷없이 장모님이란 칭호를 붙여 현관에 서 있던 나와 아주머니를 움찔하게 만들었다. 유일하게 놀라지 않은 사람은 경숙이 뿐이다.

  “유, 유머감각이 뛰어나구나...”

  아주머니께서 멋쩍게 애써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하아, 재성이형을 보니 무슨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온 개선장군처럼 목에 힘을 주고 해병대 차렷 자세로 서 있다. 하하, 마치 얼굴에 서포트 라이트가 비춰지는 것 같다.

  “어서 드려오려무나. 오느라 많이 추웠지?”

  더 이상 재성이형의 4차원 개그를 듣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까우니 빨리 자리를 피해주시는 아주머니시다. 우리 셋은 그대로 아주머니의 안내를 받아 설화누나의 방으로 들어갔다.

  설화누나는 우리 셋을 보더니 밝은 미소를 짓는다. 지금 복장은... 흰 셔츠에 이불에 가려져 있어 하체는 보이지 않는구나. 뭐, 어쨌든. 아리따우신 모습은 여전하구나.

  “안녕하세요.”

  언제 나랑 타이밍 연습이라도 했나 같은 순간에 나와 같이 인사를 한 경숙이이다. 경숙이를 살짝 보자 민망한자 시선을 돌린다. 쳇, 얼음장 같은 녀석도 부끄러움을 아나?

  “어이, 나야.”

  예의 바른 인사를 한 나와 경숙이와는 다른 모습인 재성이형의 아주 친한 친구에게나 할만한 인사다. 설화누나는 재성이형의 인사를 받자마자 밝게 대답한다.

  “앉아.”

  설화누나가 언제 준비되었는지 침대 주위에 놓은 의자 세 개를 가리키며 말했다. 우린 각자 의자 하나를 잡고 앉았다.

  “내가 엄마한테서 남자애 둘이랑 여자애 하나라고 해서 학교 친구들인줄 알았는데. 의외네. 헤헤. 어머, 근데 넌 누구니?”

  한쪽 머리를 귀 뒤로 쓸어 넘기며 경숙이에게 질문하는 설화누나다.

  “아, 이쪽은 경숙이이라고. 오늘부터 일 시작한 신참이에요.”

  내가 소개시켜 드리자 경숙이는 일어서서 다시 한 번 인사를 한다. 그러자 설화누나는 자기 이름을 밝히며 경숙이의 손을 잡고 악수한다.

  “참, 이거 너 먹으라고 사 왔다. 너 귤 좋아하잖아?”

  재성이형이 다리는 꼰, 거만한 자세를 하고 귤 한 바구니를 건넸다.

  “얘는... 내가 알기로는 귤은 나보다 네가 더 좋아하는데? 훗, 그쪽 견해는?”

  설화누나가 거만한 자세의 재성이형에게서 귤 바구니를 받아 들고 웃으며 말했다. 하하, 역시 진실은 그랬군. 어쩐지 아까 모든 의견은 무시하고 그냥 탁 귤 한 바구니를 사드만 자신이 먹고 싶은 걸 산 거였구나.

  “몰러. 아아, 온 김에 여기 일이라도 도와 드려야 할 텐데. 뭐 도울 일 없나?”

  재성이형이 갑자기 의자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밖에서 재성이형이 아주머니께 ‘장모님, 이 보기만 해도 든든해 보이는 해병대 사위에게 시키실 일 없습니까?’라고 여쭈는 말이 들리자 설화누나가 쿡쿡거리며 작게 웃는다.

  “다행이다. 오늘 이불빨래 하려고 했는데.”

  “하하하.”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재성이형 오늘 고생 좀 하시겠습니다.”

  “그러게.”

  밝게 웃는 설화누나. 역시 웃으니까 아픈 사람처럼 보이지 않고 지금 막 일어난 사람처럼 보인다.

  “누나는 감기이신가요?”

  내가 질문하자 설화누나는 귤 바구니를 봉한 매듭을 풀며 나를 쳐다본다.

  “응. 감기.”

  “어제만 해도 멀쩡하셨잖아요?”

  “응, 그랬지. 그런데 어젯밤에 샤워를 하고 제대로 안 말리고 잤더니 아침에 도저히 못 일어나겠는 거야.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서.”

  “지금은 괜찮으신가요?”

  “응. 너희들 보니 괜찮다. 헤헤. 아, 근데 이거 왜 이리 안 풀리지?”

  설화누나가 귤 바구니를 봉한 매듭을 쳐다보며 말했다.

  “도와드릴까요?”

  “아니, 괜찮아. 그것보다 오늘 내 몫은 누가 했어?”

  “제가 했지요.”

  “후훗, 고맙네. 힘들었지?”

  물론이고 말고요. 소장 아저씨가 아주아주 유쾌한 장난까지 치셔서 덕분에 평생 얼굴 한 번 볼까 말까한 어떤 동네 아저씨에게 인간이 들을 수 있는 욕은 전부 얻어먹었지 말입니다. 덕분에 십 년은 더 살 것 같아요.

  “아니요. 힘들긴요.”

  “그래? 내 몫까지 하는 사람, 많이 힘들까봐 굉장히 걱정했었어.”

  “그래서 안 힘들었나 봐요. 하하하.”

  “어머, 그런.. 헤헷.”

  마치 어린애처럼 밝게 웃으시는 설화누나. 헌데 이 다정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한 번에 침몰시키는 자가 있었으니...

  “어이, 성주. 나와서 좀 거들어라.”

  갑자기 문을 열고 고개만 내민 채 나를 부르는 재성이형이었던 것이다.

  “예...?”

  “너도 도와야만 하니까, 어서 나와서 거들어.”

  뭐지... 자신이 혼자 뛰쳐나갔다가 괜히 힘드니까 나를 부르는 것 같다. 뭐, 아닐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내가 지금까지 재성이형과 같이 일하면서 그렇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어서 나와. 임마.”

  내가 혼자 머뭇거리고 있으니 이젠 명령어조로 나오는 재성이형이다.

  “야, 군인이 건방지게 성주에게 이래라 저래라 그래?”

  설화누나가 재성이형에게 말했다. 아, 근데 순간 재성이형한테 야라고 부른 게 뭔가 어색한 느낌이 드는 건 나뿐인가.

  “아니에요. 저도 온 김에 집안일 좀 도와 드리지요.”

  내가 밝게 웃으며 설화누나를 말리고 나갔다.

  “이불빨래 엄청 힘들 텐데...”

  문을 닫고 나가면서 등 뒤에서 설화누나가 작게 중얼거리는 게 들려왔지만 일단은 집안일을 도와드려야함이 마땅하다고 본다.

  “나 참. 어이가 없어서. 나는 이불빨래 해도 되고 성주는 하면 안 된다는 법 있나?”

  재성이형이 방문이 닫치자마자 무섭게 불평을 들어놓는다.

  “형은 여기 데릴사위 오신 거잖아요...”

  “그건 농담이지 임마. 너 벽창호냐? 완전 유머 감각이 없네. 쳇.”

  재성이형이 두 손은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로 중얼거렸다.

 

  헌데 그렇게 불평불만을 늘어놓던 재성이형이 아주머니께서 이불빨래를 하시는 곳에 다다르자 태도가 완전히 돌변하여 정말 사위 같은 모습을 보여 주었다. 얼마나 아주머니의 일손을 덜어드리는지 나는 막상 오고 나서부터는 할 일이 없어 우두커니 있을 때가 있었다.

  허나 역시 이불을 짤 때에는 내가 필요했다. 재성이형 혼자서 그 큰 이불을 짤 수는 없는 일이라(세탁기의 탈수기를 이용하면 편하겠지만, 유감스럽게도 고장 난 상태란다.) 내가 있어야 (아주머니의)손이 덜 가기 때문이다.

  “얘들아, 정말 수고했다.”

  아주머니께서 이마의 땀을 닦으시며 말씀하셨다. 재성이형은 어깨를 으쓱하며 ‘장모님과 설화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마치 이미 결혼한 신혼부부마냥 데릴사위 역할을 하고 있었다.

  “참, 설화의 이불 커버를 교체할 때가 됬는데...”

  아주머니께서 나와 재성이형이 걷어온 다 마른 이불 커버들을 정리하시며 말씀하셨다. 그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재성이형은 벌떡 일어나 나한테 이불 커버 한 쪽을 들라고 말하고 곧장 설화누나의 방으로 진격하였다.

 

  “음, 역시 수고하네. 성주랑 해병대. 귤 먹어.”

  설화누나 나에게는 손을 뻗어 주고 재성이형에게는 던져 주며 말했다. 재성이형은 ‘쳇, 왜 난 던져 주는 거냐.’라고 중얼거렸으나 설화누나가 내 맘이라며 놀려대자 대꾸를 관두고 귤을 한 번에 까(저거 분명히 ‘스펀치’에 나온 비법일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 나무늘보 재성이형이 아무리 귤을 좋아한다고 해도 저런 묘기를 혼자서 스스로 터득할 리는 없기 때문이다.) 껍질 안쪽의 내용물을 한 번에 입에 넣어 버렸다. 경숙이는 우리가 오기 전에 먼저 설화누나에게서 귤을 받았는지 의자에 바르게 앉아 천천히 귤껍질을 까고 있다.

  “잠깐 이불 커버 좀 바꾸자. 장모님께서 지금 네가 끌어안고 있는 이불 커버는 빤 지가 오래 되었다고 하셨어.”

  재성이형이 나와 함께 들고 온 이불 커버를 가리키며 말했다. 헌데 설화누나는 뭔가 숨긴 것을 들킨 사람처럼 이불을 끌어안고 얼굴을 붉힌다.

  “아, 지금은 않되.”

  “안 되긴 뭐가 않되? 어서 이불 잠시만 이리 줘. 추우면 내 자켓 걸치고 있던가.”

  과연 재성이형. 남의 상황은 내 알바 아니라는 듯이 설화누나에게서 이불을 빼앗아 가려고 한다.

  “야. 지금 안 된다니까 그러네.”

  설화누나가 얼굴이 완전히 빨개져서는 이불 커버를 교체해야겠다고 이불을 빼앗아 가려는 재성이형을 저지하며 말했다.

  “아니, 뭐가 안 된다는 거여? 나 참.”

  재성이형이 억지로 이불을 빼앗았다. 그러자

  “꺅.”

  설화누나가 자신의 하체를 손으로 가리며 소리쳤다. 순간 이불을 빼앗은 재성이형과 나, 그리고 경숙이 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방의 생명체와 공기가 얼어붙었다.

  설화누나가 입은 흰 셔츠 말고는 속옷밖에 안 입은 듯, 이불이 들춰지면서 드러난 길고 매끄러운 흰 다리와 손으로 미처 다 가리지 못해 약간 보이는 흰색 속옷을 쳐다보며 나와 재성이형은 그저 가만히 있었다.

  “음...”

  경숙이가 살며시 일어나 얼어붙은 재성이형에게서 이불을 빼앗아 설화누나에게 다시 돌려주었다. 그러자 설화누나는 이불로 자신의 하체를 가린 채로 일어나 얼어붙은 재성이형을 연신 걷어차기 시작했다. 아무리 가늘고 긴 매끄러운 다리이지만 자전거 타기를 통해 단련된 근육 덕분에 설화누나의 타격감은 소리만 듣고도 알 수 있을 파괴력이었다.

  “바보! 바보! 바보! 바보! 바보! 바보! 바보! 바보! 바보! 바보! 바보! 바보! ...”

  “사, 살려줘...”

  재성이형이 바닥에 웅크린 채로 얼굴이 빨개져 씩씩거리는 설화누나에게 연신 걷어차이며 신음했다. 이윽고 총 40콤보 밟기와 걷어차기가 끝나자 설화누나는 빨개진 볼을 손바닥으로 가리며 침대에 누웠다.

  “으으으... 여긴 어디일까...? 천국...?”

  재성이형이 바닥에 들러붙은 채로 중얼거렸다.

  “넌 천국 절대로 못 가.”

  설화누나가 이불로 얼굴 절반을 가리며 중얼거렸다.

  “봐, 봤지?”

  설화누나가 빨갛게 상기된 얼굴을 눈 밑에는 전부 가린 채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나는 헛기침 두 번을 하고 입을 열었다.

  “벼, 별로 못 봤고요. 아주 희고 아름다운 것만 봤어요.”

  사실 하나에서 열까지 재성이형 덕분에 좋은 구경 했지만 일단은 대충 둘러댔다.

  “... 성주도 바보...”

  설화누나가 이불 아래로 가린 빨간 얼굴을 더 빨갛게 만들며 말했다. 흠, 뭐 지금은 설호하누나가 무슨 욕을 하셔도 잘 들리지 않사옵니다.

  경숙이는 얼굴이 빨개져 이불 속으로 숨은 설화누나와, 상황파악이 끝나지 않아 어리둥절한 나와, 설화누나에게 떡실신 당한 재성이형을 한 번식 쳐다본 뒤, 입을 열었다.

  “감기에 걸렸을 때는 몸을 따듯하게 하고 푹 한숨 자는 게 가장 좋다고 들었습니다.”

  경숙이가 아까 그 사이에 설화누나와 친해졌는지 설화누나의 이불을 좋게 정리하며 중얼거렸다.

  “응? 아, 으응...”

  설화누나가 마치 경숙이한테 훈계 받은 느낌이라 그런지 조금은 멋쩍어하며 이불을 끌어안고 눈을 감았다.

  뭐, 나나 경숙이야 뭐 별로 서로 말이 안 가는 편이니 조용할테고. 수다와 사건의 주범인 재성이형은 바닥에 쓰러진 채로 있으니 아마 설화누나는 조용히 편하게 잠드실 수 있을 것이다. 으읏, 이렇게 말하니까 꼭 정말 임종 지켜보는 것 같은데? 나만 그런가?

 

  “-. -. -.”

  조용한 실내에 희미한 설화누나의 숨소리만이 들린다. 재성이형은 아까부터 계속 바닥에 엎어져 꿈쩍도 안 하는 상태였고(혹시 기절 한 건 아닌가 걱정했지만, 아무리 자전거 라이더라고 해도 일단은 마른 여성이고, 재성이형이 행동은 저래 보여도 해병대 출신인 데다가 그 부대에서 가장 에이스였으니 그렇게 맞았다 한들 기절할 일이 없다. 아마도 아침부터 일한 피로 때문에 자는 것 같았다.), 경숙이는 설화누나의 방 여기저기에 널려 있는 모터사이클 잡지를 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마도 거기에 나오는 용어들이 전부 생소한 탓이겠지.

  “이만... 갈까?”

  내가 설화누나의 침대 옆에 떨어져 있던 만화책을 좀 보다가 별로 재미가 없어서 다시 닫고 유일하게 깨어 있는 경숙이에게 물었다.

  “그러지요. 마침 설화언니도 깊은 잠에 드신 것 같습니다.”

  경숙이가 잡지를 덮어 침대 옆 선반에 올려놓고 바르게 일어나며 말했다.

  “형, 재성이형! 이제 일어나요. 가게.”

  내가 혹시나 설화누나가 깰까 걱정하며 재성이형을 작은 소리로 부르며 흔들었다. 재성이형은 마치 하루 종일 자던 사람처럼 두 눈을 빨갛게 충혈 시키며 일어났다. 그리고 일어나 주위를 살짝 둘러본 후에 입을 열었다.

  “아아, 마치 눈깔 장애인 미군 운전사가 조종하는 장갑차한테 치어 죽은 느낌이야.”

  “형, 그런 오해의 소지가 있는 발언은 삼가 주세요.”

  “뭐? 난 잘 모르겠다. 음? 설화는 자는 거냐?”

  재성이형이 머리를 긁적이며 바르게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그리고 새근새근 작은 소리를 내며 자는 설화누나의 다리 끝을 손가락으로 찌르려 한다.

  “형! 하지 마세요. 그러나 괜히 자는 사람 깨우시려고요?”

  내가 또다시 장난기 발동한 재성이형을 급히 말리며 말했다. 재성이형은 마치 어린애처럼 헤헤 웃더니 조용히 일어난다.

  “잘 자네. 아, 미녀는 잠이 많다던데 그것은 잠깐 회의할 필요가 있겠어.”

  재성이형이 외투를 바로잡으며 말했다. 아니, 저 말은 무슨 말이지?

  “그만 나가자꾸나.”

  사실대로 말하자면 나와 경숙이가 재성이형을 데리고 나가려고 재성이형을 깨운 건데 지금은 재성이형이 나와 경숙이를 데리고 나가고 있다. 쩝, 뭔가 상황이 어리벙벙하다.

 

  우리는 와줘서 고맙다며 직접 만드셨다는 찹쌀떡을 한 개씩 나눠주시는 아주머니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설화누나네 집에서 나왔다.

  아파트 1층 로비를 나와 단지 내 공원을 가로질러 단지 정문으로 향하는 도중에 주먹 크기만 한 찹쌀떡을 한 입에 먹던 재성이형이 왱알왱알 거리기 시작했다.

  “컥, 후 마혀 주후 거마 가아(컥, 숨 막혀 죽을 것만 같아.).”

  재성이형이 저러고 있으니까 예전에 개그프로그램 ‘엑스맨’에 참가했다가 찹쌀떡을 먹는 도중에 숨이 막혀 돌아가신 대한민국의 위대했고 모든 성우들의 우상이었던 성우님이 생각난다.

  “아, 죽을 뻔했네.”

  주먹 크기만 한 찹쌀떡을 아까 설화누나가 건네준 귤 먹듯이 한 입에 다 집어넣었던 재성이형이 어떻게 찹쌀떡을 삼켰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다 삼키고 나서 말했다.

  “그러게 이걸 왜 한 입에 다 넣으셨나요?”

  내가 재성이형에게 묻자 재성이형은 검지 하나를 펼치며 입을 열었다.

  “남자라면 원 샷, 원 킬 아니겠냐. 오발은 용서가 되지 않는다.”

  “허...”

  나는 황당해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아무리 재성이형이 해병대 시절에 사격 명중률 98%를 자랑하는 에이스였다 할지라도 평상시에도 저런 군대식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을 줄이야. 아, 물론 군인들이 다 저렇다는 건 아닙니다. 재성이형이 좀 특별한 사람이기 때문에...

  “야, 경숙이는 여자애니까 몰라도 넌 왜 그 조약돌만 한 찹쌀떡을 4등분해서 먹냐?”

  재성이형이 갑자기 나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목에 걸릴 까 봐요.”

  “목에 걸리긴 짜샤. 이까짓 찹쌀이 사람을 죽일 수 있겠냐?”

  예, 죽입니다. 실제로 사례가 있으니까 조심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으이그, 남자 녀석이 그렇게 겁이 많아서야. 그런 정신으론 넌 군대 못 간다. 방위다.”

  아아,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방위님들께는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재성이형이 절대로 방위님들 욕보이려고 한 말은 아닐 겁니다.

  “쳇, 저도 해병대 가면 두고 보자구요.”

  내가 마지막 남은 찹쌀떡 조각을 입에 넣으며 말했다.

  “해병대가 개나 소나 아무나 가는 데인 줄 아냐?”

  형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듭니다만...

  “해병대는 자고로, 귀신도 맨손으로 때려잡을 수 있는 강인한 남자 중의 남자들만이 가는 곳이란다. 이 풋사과야.”

  “말이야 맞지만 너무 과장된 것 같은데요...”

  내가 중얼거렸으나 재성이형은 듣지 않았다. 왜냐하면 재성이형 점퍼 주머니속의 휴대폰이 큰 소리로 해병대 군가인 ‘부라보 해병!’을 불러댔기 때문이다. 재성이형은 전화를 받더니 미안 어디 좀 가봐야겠다며 나와 경숙이를 두고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헌데 전화 속에서 ‘오빠 언제와~?’라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봐서는 재성이형의 목표지가 어딘지 대충 짐작은 간다.

  “집에 가?”

  내가 나랑 40cm정도 떨어진 곳에서 평행하게 걷고 있는 경숙이에게 물었으나 못 들었는지 대답이 없다.

  “숙아. 이제 집으로 가는 거야?”

  내가 ‘숙아’라고 해서 그런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경숙이다.

  “네. 집으로 갈 겁니다. 근데 ‘숙아’ 라니요?”

  “아, 그건 말이야. 하하. 그냥 친해져 보려고 친숙한 별명을 지어 본 거야. 기분 나빴다면 전언철회 할게.”

  내가 뭔가 모를 어색함과 민망함에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헌데 경숙이는 턱에 주먹을 대고 뭔가 생각을 하더니 뭔가 떠올랐는지 나를 쳐다보며 입을 연다.

  “기분은 나쁘지 않지만 별로 듣고 싶지는 않습니다.”

  음, 그러면 저 대답은 하지 말란 소리인가?

  “그, 그렇다면 삼가도록 할게.”

  내가 멋쩍게 말하자 고개를 끄덕이는 경숙.

  “아, 혹시 요즈음 뭐 크게 근심되는 걱정거리나 고민거리 있어?”

  “있, 없습니다.”

  내가 묻자 빠르게 대답하는 경숙이다. 헌데 저건 예스인가, 노인가?

  “있다는 거야?”

  “없습니다.”

  또 빠르게 대답하는 경숙. 이렇게 빠르게 대답하는 걸 보면 뭔가 있긴 있으면서 숨기고 있다는 생각밖에 안 드는데 말이다.

  뭐, 자신이 없다고 그러는데 꼬치꼬치 캐물을 필요

 
작가의 말
 

 응.,.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13 에필로그 2019 / 11 / 10 205 0 1815   
12 10화 2019 / 11 / 10 215 0 8282   
11 9화 2019 / 11 / 10 223 0 7467   
10 8화 2019 / 11 / 10 215 0 5533   
9 7화 2019 / 11 / 10 209 0 6170   
8 6화 2019 / 11 / 10 221 0 6728   
7 5화 2019 / 11 / 10 208 0 14730   
6 4화 2019 / 11 / 10 225 0 17035   
5 3화 2019 / 11 / 10 219 0 14235   
4 2화 2019 / 11 / 10 222 0 27777   
3 2화 2019 / 11 / 10 221 0 28040   
2 1화 2019 / 11 / 10 205 0 16867   
1 프롤로그 2019 / 11 / 10 340 0 4261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군필 마법소녀
갑주어
서사모아
갑주어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