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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아틀란티스 소녀
작가 : 갑주어
작품등록일 : 2019.11.10

평범한 대한민국의 소녀가 아닌,
전혀 다른 삶을 살아 온 소녀.
나는 그녀를 아틀란티스에서 온 소녀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녀를 사랑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의 평범한 남자와 아틀란티스에서 온 것 같은 소녀의 사랑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1화
작성일 : 19-11-10 22:04     조회 : 204     추천 : 0     분량 : 16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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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단히 시끄러운 소리에 단잠을 깼다.

  참고로 나의 개인적인 콤플렉스를 소개하자면 나는 항상 자고 일어나면 한 1~2분은 한글을 잊어버리고 한국어도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크리스트교에서 말하는 이른바 ‘방언’을 중얼거린다. 뭐, 꼭 방언이라는 것은 아니다. 말이 그렇달 뿐. 아무튼 방언을 중얼거린다. 그뿐만이 아니다. 나 혼자 뭐라고 중얼중얼 헛소리를 해대며 잠꼬대까지 한다. 덕분에 고등학교 시절 졸다가 선생님께서 깨우시면 벌떡 일어나 알 수 없는 잠꼬대를 지껄여 여러 선생님들의 입에 우스갯소리로 자주 올랐었다. 분명 고쳐야지 생각하는데도 고치는 방법을 몰라 그냥 이대로 살고 있다.

 

  띠리리리리리리-

 

  사람은 아무리 원수지간이라 할지라도 계속 지내다 보면 미운 정 들어 다른 경우보다 배로 친해지게 마련인데 나랑 저 얄미운 자명종은 도저히 친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벽에 집어던져 그 시끄러운 자명종 소리를 멈추게 하고 싶을 뿐이다.

 

  띠리리리리리리-

 

  무시하고 싶었지만 무시할 수 없다. 왜냐하면 현재 시각은 새벽 4시 50분, 슬슬 일하러 가야 할 시간이기 때문이다.

 

  찰칵.

 

  시끄러운 띠리리 소리가 멈추자 방 안에는 다시 조용한 잠적만이 지배한다. 따뜻한 이불속에서 털모자 속으로 들어간 강아지나 고양이 마냥 아웅 거리며 뒹굴 거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나 그놈의 일 때문에 억지로 일어난다. 아니지, 일 덕분에 먹고 살고 있으니까 그분의 일 때문에 억지로 일어난다. 뭐, 이렇게 말해 둘까.

  왠지 어제라고 하기에는 좀 뭐하고, 정확히 두 시간 전에 대학교 학과 친구들이랑 술을 마시고 서로 아는 기담을 들려주며 밤을 새는 이른바 온-나이트 이벤트를 즐기다 와서 그런지 몸이 찌뿌둥하다. 차라리 잠을 자지 말고 휴식만 취할 걸 그랬나보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어두컴컴한 새벽길은 굉장히 추웠다.

  이상하게도 한밤중인 새벽 1시부터 새벽 4시까지는 추워도 그냥 추울 뿐, 얼어 죽겠다고 생각할 만큼 춥지는 않다. 헌데 해 뜨기 직전은 아마도 해가 뜨면 따뜻해 질 거라고 믿고 있는 희망 때문인지 체감 온도가 2배 혹은 3배 정도로 느껴진다. 그야말로 몸으로 느끼는 추위는 지금 이때가 가장 추운 때란 말이다.

  “후~.”

  추위에 너무 오랫동안 노출시킨 탓인지 빨갛게 달아오른 손등과 손바닥에 따뜻한 입김을 불어넣는다.

 

  나는 현재 대학교 2년 과정을 이상 없이 수료하고, 이번 오는 봄에 올 입대를 기다리는 사람이다. 그래서 요즈음 따라 군대가기 전에 맞이할 얼마 안 남은 크리스마스에 애인 하나 만들고 가고 싶은 생각이 아주 애절한데, 그것이 운명이란 게 뜻대로 움직여지지는 않고 매일같이 술이나 퍼 마시게 만든다. 고로 그저 하루하루 이런저런 대충대충 살아가는 한 평범한 대학생일 뿐이라고 알아두면 좋다.

 

  지금 일하러 가는 곳은 신문 인쇄소다. 그리고 지금 할 일은 신문 배달이다. 친구들은 이러한 나를 신문날이라고 부르며 놀리기도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아침 조깅도 되고 돈도 버니 일석이조인 셈이다. 하루 온종일 방에 처박혀 인터넷 게임을 하거나 허구한 날 술만 처마시는 그런 폐인 놈들보다는 경제적 면이나 신체적 면에서 내가 훨씬 이득을 보는 셈인 것이다.

 

  참고로 나는 자취방에서 혼자 산다. 물론 가족이야 있다. 허나 나는 가족이 싫어 집을 나와 자취방에서 생활하고 있다. 아, 자취방 방세는 웃기게도 아버지란 사람이 내주고 있어 문제는 없고 다만 식사비나 용돈만 내가 만들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자취방에서 살면서 신문 배달을 하며 용돈을 벌어왔다.

 

  우선 나의 가족 구성원들을 소개시켜 주마. 일단 자칭 가족의 기둥이라는 아버지란 이름의 중년남자가 있고, 나의 친모는 일찍 돌아가셔서 그 대신 새엄마라는 이름의 창녀 같은 여편네가 있다. 그리고 새엄마라는 이름의 창녀 같은 여편네의 딸내미라는, ‘세상에서 가장 싸가지 없는 초등학생’ 기네스 기록을 보유한 여자 초딩이가 있다.

  왜 이런 엿 같은 상황이 만들어 졌나 소개하자면 이야기는 몇 십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바람기가 전혀 없는 순딩이 같은 나의 샐러리맨 아버지는 내가 여섯 살 때 아내를 잃고 홀아비가 되었다가 사장의 권유로 양아치 같은 사장 딸내미를 두 번째 아내로 맞이했다. 일명 정략결혼인 것이다.

  물론 새엄마가 들어와도 잘 적응하며 친하게 지내는 가족도 있을 것이다. 허나 사회에서 새엄마라는 타이틀이 좋은 의미가 아닌 쪽으로 많이 흘러가곤 하는데, 내 머릿속의 개념이 그런 사회적 영향을 받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친모에 대한 기억 때문인지 나는 새엄마란 여편네가 무지 싫었다. 정말 증오했다. 만날 싸웠다. 그러다 결국 내가 그 창녀 같은 여편네랑 그 여편네의 딸내미를 보기 싫어 집을 나갔다. 순딩이 같은 내 아버지는 나에게 몇 번이고 돌아오라고 권유했지만 나는 돌아가지 않았다. 결국 나는 노숙을 하거나 친구네 집에서 얻어 자곤 하였는데, 그런 나의 모습을 본 아버지는 매우 안타까웠는지 나에게 작은 자취방 하나를 구해 주었다. 그리고 매달 방세를 내주며 나의 생계를 유지시켜 주었다. 허나 새엄마라는 창녀 같은 여편네에게 들킬까봐 용돈을 못 주는 형편이란다. 고로 용돈만은 내가 버는 것이다.

  그렇게 지금까지 5년을 살아왔다. 익숙해진 지금은 그다지 화날 것도 없고 분할 것도 없다. 그냥 이대로 갈라져서 살면 싸울 일 없어 매부 좋고 누이 좋은 살기 좋은 대전이 될 것이다.

 

  참고로 나의 친 어머니께서는 어릴 적 나에게 ‘아틀란티스 소녀’를 사랑하고 감싸주라고 했었다. 그게 무엇이냐고 물으니, 어머니께서는 다른 세상에서 와서 다른 경험을 하고 다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서 나보고 잘 감싸주라고 했다.

  헌데, 내 생각에는 그게 새엄마와 그 딸내미 같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의 그 유언과도 같은 말씀을 지키지 않았다. 아니, 지킬 생각도 없다.

 

  끼익-

 

  인쇄소의 문을 열었다. 낡아서 그런 것인지 녹슬어서 그런 것인지 경첩에서 듣기 싫은 소리가 났다.

  “저 왔어요.”

  내가 문을 열고 부스스한 머리 상태로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은 머리를 안 감고 나왔다. 하하, 역시 이런다니까.

  “왔냐?”

  인쇄소 안쪽에 설치된 인쇄기에서 바쁘게 신문을 찍어내고 있는 소장 아저씨가 인쇄기를 감독하며 나에게 말했다.

  참고로 인쇄소 한 가운데에는 등유 난로가 있고, 그 난로를 중심으로 나무 재질의 긴 의자가 ㄷ자로 놓여 있다. ㄷ자의 의자 배치에서 뚫린 쪽에는 카운터가 있고, 그 카운터 안쪽에는 인쇄기기와 신문사 본사와 연락을 위한 컴퓨터 여러 대가 있다. 보통 본사와 연락이 없을 때에는 저 컴퓨터들로 소장 아저씨와 고스톱이나 바둑 대결을 벌이기도 한다. 또는 아저씨 혼자 인터넷 고스톱이나 인터넷 바둑을 즐기기도 한다.

  “춥지 않냐?”

  아저씨가 두 눈은 기기를 응시한 채로 말했다.

  “예, 좀 춥네요.”

  내가 손을 비비며 대답했다.

  “난로 켜고 몸 좀 녹여. 잠시 후에 바로 출발시킬 거니까.”

  “알겠습니다.”

  나는 짧게 대답하고 난로로 다가가 점화 스위치를 눌렀다. 딱딱딱딱-하고 스파크가 튀기는 소리가 인쇄기에서 나는 카드리지 소음을 누르고 인쇄소 내에 퍼진다. 나는 난로에 손바닥을 가까이 대며 이제 곧 나올 온기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생뚱맞게도 난로에 불이 붙지 않는다.

  “아저씨! 이 난로 안 켜져요.”

  내가 인쇄실 쪽으로 소리치자 소장 아저씨가 잠깐 이쪽을 향하며 고개를 살짝 기울이더니 나도 모른다는 식으로 다시 시선을 인쇄기로 고정시킨다.

  “아저씨!”

  “나도 몰라! 기름이 다 떨어졌나 보지 뭐. 창고에 가면 한 박스 남은 게 있을 테니 그거 가져다 켜!”

  내가 소리치자 귀찮다는 듯이 대충 얼버무리는 아저씨다.

  “추운 아침이네요-.”

  끼기기 듣기 싫은 소리를 내는 문을 연 사람은 이설화 라는 대학교 4학년의 누나다. 설화누나는 나보다 이 일을 늦게 시작했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쯤 아침 조깅 겸 용돈벌이를 하고 싶다고 찾아왔었다. 취미는 특기 발휘하기와 자전거 타기이며, 특기는 취미 살리기와 자전거 묘기 부리기다. 아 참고로 설화누나는 대학 총장배 자전거 마라톤과 자전거 묘기 대회, 자전거 백두대간 정복 등등 여러 대회에서 입상한 기록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별명이 ‘라이더’이다. 재성이형은 거기에 ‘고스트’를 덧붙여 ‘고스트 라이더’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오해하지는 마라. 울 설화누나가 존 케이지를 닮은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여담으로 언제였는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설화누나가 나에게 일을 열심히 하면 도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어디서 그런 말도 안 되는 탁상공론을 들었냐고 물었더니 설화누나는 19세기 말, 일본의 어떤 사회학자가 일이란 돈을 벌면서 자기 수양을 하는 것이며, 근로에 시간을 많이 투자하고 또 열심히 최선을 다하면 다할수록 도를 닦아 도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즉, 그 사람 말에 따르면 일 자체가 돈을 버는 행위만이 아니라 도를 닦는 것이며, 인격수양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 쉽게 말해 돈을 더 받지 않아도 자기 수행 겸 노동시간을 늘리라는 것이다. 그 사상을 일본에서는 세키몬 신가쿠 사상이라고 불렸다는데, 그 사상을 가르쳤던 사람 이름이 뭐였더라? 아마도 ‘이시다 바이간’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잘은 모르겠다.

  이렇게 설화 누나는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의 근로 사상을 많이 알고 있다. 또한 기 수련이나 요가, 오컬트 등 여러 독특한 취미도 많이 가지고 있는 하루하루 사는 게 바쁜 누나다.

  간단히 소개하려 했는데 이야기가 좀 길어졌군. 뭐 아무튼 듣기 싫은 경첩 소리를 내며 추운 날씨 덕분에 빨갛게 상기된 볼을 두 손으로 감싼 설화누나가 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인쇄소로 들어온다.

  “그래, 어서 오니라. 조금만 기다려라. 곧 다 완성하니까.”

  소장 아저씨가 인쇄기를 둘러보며 소리쳤다.

  “성주는 먼저 와 있었구나. 왜 그래? 이 난로, 안 켜져?”

  설화누나가 불이 붙지 않는 난로의 점화버튼을 계속 눌러가며 딱딱딱 소리를 내고 있는 나에게 말했다. 아 참고로 내 이름은 김성주다. 여태 설명하지 않았었군.

  “예, 안녕하세요. 설화누나. 이 난로요? 아까부터 계속 안 켜져요.”

  내가 이제 포기했다는 식으로 두 손을 흔들며 말했다.

  “기름이 없나 보네. 누나가 창고에서 좀 가져올 테니 기다리고 있어.”

  설화누나는 방긋 웃으며 긴 생머리와 더플코트를 휘날리며 인쇄소 창고로 가 버렸다. 카운터 안쪽 인쇄실을 힐끔 보니 인쇄를 다 마친 듯, 소장 아저씨가 신문 다발을 끈으로 묶고 있다. 그리고 잠시 후에 그것을 들고 나에게 다가온다.

  “자, 오늘 뿌릴 신문들이다. 뿌릴 신문이라고 했다고 해서 진짜로 뿌리지는 마라, 응?”

  “아, 그건 지난번에 제가 심심풀이로 했던 농담이라구요.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마세요.”

  “나도 농담이다 임마. 자, 받아.”

  점장 아저씨가 나에게 20매 정도의 신문들을 묶은 다발을 건네며 말했다. 받아보니 어제보다 조금 적어진 것 같기도 하다. 휴, 요새는 종이 신문을 보는 사람도 적어졌구나.

  나는 신문 인쇄소 로비 한 귀퉁이에 설치된 긴 나무의자에 앉아 난로를 쬐다가 신문 다발을 받고 일어나 목도리와 장갑을 확실하게 조이고, 점퍼의 자크를 아래부터 위까지 다시 올렸다. 쩝, 조금만 기다리고 있으면 설화누나가 기름을 가져 와 난로를 켤 텐데. 아쉽다.

  “다녀오겠습니다.”

  내가 신문 다발을 들고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

  “어이, 내기 안 할텨?”

  점장 아저씨가 내가 나가기 직전에 나를 불러 세우며 말했다. 여기서 ‘내기’란 내가 아저씨가 제시한 시간 내에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면 아저씨가 나에게 삼각 김밥이나 빵 같은 아침 식사를 사 주는 것이고, 반대로 시간 내에 돌아오지 못하면 내가 아저씨의 아침 식사를 사는 것이다.

  “좋아요. 오늘은 몇 분까지 인가요?”

  내가 묻자 아저씨는 카운터의 책상에 앉아 주먹을 턱에 괴더니 자신의 왼손에 채워진 손목시계를 힐끔 본다. 그리고 천장을 향한 채로 두 눈을 깜박거리다가 입을 연다.

  “오늘은 5시 30분 까지.”

  현재 시각이 5시 8분쯤 되니까... 뭐야 이거, 대략 22분 정도밖에 안 남았잖아!

  “말도 안 돼요! 어떻게 20분 안에 완수하란 말이에요?”

  “시름 말든가. 나야 아쉬울 것 없는데?”

  내가 따지자 카운터의 책상에 앉아서 혀를 날름거리며 장난치는 아저씨다.

  “아, 뭐 좋아요. 까짓 거 금방 다녀오도록 하죠.”

  “잘 해봐. 크크. 벌써 2분이나 지났는데. 아, 혹시라도 도중에 신문을 폐휴지함에 넣고 그저 시간 맞추려고 달려오면 뒤지게 혼난다! 구독자들에게 물어서 한 곳이라도 안 왔다면 넌 모가지야!”

  카운터에서 자기 목 근처를 손가락으로 쭈욱 그으며 협박하는 아저씨. 참고로 말하자면 난 딱 한 번 폐휴지함에 버리고 돌아온 적이 있다. 그 때는 내기에 너무 집착했던 나머지 제한시간이 2분 남짓 남자 나머지 코스는 전부 포기하고 신문은 폐휴지함에 버린 후에 인쇄소로 달려가 내기에 이긴 척 했던 것이다. 물론 그 당시에는 아무런 일이 없었지만, 나중에 구독자가 인쇄소로 문의 전화를 함에 따라 나의 범행은 전부 밝혀졌고, 점장 아저씨에게 된통 혼났다. 뭐, 설화누나가 변호해준 덕분에 모가지는 면해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신문 다발을 팔 사이에 낀 채로 인쇄소를 나왔다. 아직 해가 덜 떠서 그런지 제법 춥다. 골목을 가로질러 내려오는 바람은 마치 면도칼 같아 목도리에 가려지지 않은 눈과 귀, 그리고 광대뼈에 상처가 나지 않는 상처를 남긴다.

  골목을 달린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목표지를 적은 종이를 꺼내 목표지를 확인한다. 첫 번째 목표지는 중촌동의 주공 아파트. 도로에서 가장 가까운 첫 번째 동의 25층 2호 집.

  매번 이 25층 집을 갈 때마다 생각나는 건데, 난 어렸을 때부터 낮은 1층집에서 살아서 그런지 10층만 올라가도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마치 떨어질 것 같은 느낌- 그러니까 고소공포증을 느낀다.

  고소공포증이란 게 들어보기만 하면 별 거 아닌 병인데, 막상 자신이 걸려보면 상당히 괴로운 병이라는 것을 알게 될 거다. 예를 들자면, 만약 내가 놀이동산에서 자이로드롭이나 관람차 같은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놀이기구를 탑승하게 되면 다른 정상적인 사람들이 볼 때에는 ‘저 녀석 어디 아픈가?’라고 생각할 정도로 무서워하고 어지러움을 느낀다. 전에는 내가 이 지긋지긋한 고소공포증을 없애려고 번지점프를 한 적이 있었는데, 막상 뛰어내리자 엄청난 공포와 현기증에 휩싸여 기절하고 말았었다. 직원과 구경꾼들은 심장마비로 죽은 줄 알았다나 뭐라나. 119 구조대까지 출동했지만 재미있게도 산소마스크를 씌우자마자 나는 언제 쓰러졌었냐는 듯이 벌떡 일어나 살아났다고 한다. 당시 내가 깨어나자 근처 구경꾼들이 천국에 갔었냐, 지옥에 갔었냐고 물어보곤 했다. 뭐, 거기서 이야기가 끝났다면 정말 좋았겠지만, 하필이면 나의 그 사건이 뉴스와 신문에 나오는 바람에(그 신문 기사를 하필이면 소장 아저씨가 가장 먼저 찾아내 한동안 웃음거리 1호가 되었었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나를 보자마자 그 신문기사의 내용을 웃음거리 삼아 말하곤 한다(신문기사의 제목이 ‘번지점프 도중 시체놀이’였다고 전해진다.). 헌데 재미있는 것은, 분명 ‘가명’이라고 쓰여져 있었는데 그 옆에 쓰인 이름은 ‘김성주’였다. 실명을 적어놓고 가명이라고 써 놓은 것이다. 다행히 사진은 모자이크 처리가 되었지만, 나를 아는 사람은 다 알아보더라. 흐으으, 물론 나는 그 신문기사와 뉴스를 보지 못해 아쉽다. 너무나도 아쉽다. 기사를 읽지 못해 아쉬운 것은 절대로 아니다. 단지 그 기사를 쓴 기자의 이름을 알고 싶기 때문이다... 부드득...

  머릿속으로 잡생각을 하면서 뛰다 보니 벌써 주공 아파트에 도착했다. 먼저 제일 도로에 가까운 동을 찾아 입구로 달려갔다. 시계를 보니 5시 12분. 아직 여유는 있다.

  “헉...”

  아파트 로비로 들어온 나는 놀래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왜냐하면, 25층까지 올라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누르려 했는데, 다음과 같은 푯말이 걸려 있었던 것이다!

  ‘금일 5시 45분까지 엘리베이터 긴급 점검. 이용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면 다냐! 나는 지금 25층까지 뛰어 올라가게 생겼는데! 아아, 왜 갑자기 이런 고난이 닥쳐오는 것인가?

  “어쩔 수 없다.”

  일단 신문다발은 팔 사이에 끼우고 계단을 전속력으로 뛰어 오르기 시작했다. 호오- 출발이 제법 좋다. 15초 만에 10층까지 올라왔던 것이다.

  헌데 10층이 지나자 갑자기 엄청난 피로와 산소부족이 나를 덮치면서 힘은 쭉쭉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20층까지 도달할 줄 알았는데 15초 만에 10층까지 올라온 기록과는 달리, 겨우 15층까지 올라왔을 뿐인데 시간은 2분 정도 소비한데다가 다리에 힘은 빠지고 갑자기 눈꺼풀은 잠을 요구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만들고 말았다.

  치타가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육지동물임에도 불구하고 별로 오랫동안은 못 달리는 이유가 있다. 바로 초반에 너무 많은 과속을 한 나머지 신체에 무리가 오기 때문이다.

  아무튼 지금 내가 그런 상황이다. 10층까지는 신나게 올라왔는데, 갑자기 12층부터 힘이 쭉 빠지더니 15층을 지날 때에는 헉헉대면서 난간에 의지하며 오르기 시작했고, 20층에 근접할 때쯤에는 거의 손을 땅에 짚으며 절반은 기어가는 식으로 올라가고 있다.

 으으으으~. 하늘의 별들아, 우주의 태양아. 어둠의 달아. 나에게 힘을 다오!

 

  “헥... 헥... 헥...”

  차갑고 날카로운 계단을 기다가 걷다가 기다가 걸으며 정말 힘들게 목표지인 25층에 다다랐다. 나는 잠시 차가운 바닥에 누워 숨을 헐떡거리다가 숨이 이제 좀 트일 때쯤에 주소를 확인했다.

  아,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집은 2503. 바로 25층 3호라는 뜻이다. 아, 그렇다면 이 반대쪽이 2502이겠군?

 

  나는 김칫국 먼저 먹는 식으로 옆구리에서 신문 한 부를 꺼냈다. 그리고 희망에 가득 찬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여기에는 분명 2502호가 있을 것이다.

 

  헌데...

 

  내 눈 앞에 나타난 문의 푯말에는 2504라고 적혀 있었다.

  응, 2504다.

  2502가 아니라 2504...

  25층 4호라고!?!? 어째서!? 어째서 여기가 2504호 인거야?!

  어라, 이상한데? 아까 분명히 1, 2 라인인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왜 갑자기 3, 4 라인으로 뒤바뀐 거야?

  “아아... 설마...”

  그 설마가 그렇다. 급히 뛰어오느라 1, 2 라인인지 3, 4 라인인지 확실하게 확인하지 않고 무작정 뛰어 올라온 것이다. 아아~ 지금까지 약 5분간의 피땀 나는 노력이 전부 도로 아미타불.

  그렇다고 주저하고 있을 수는 없다. 원래 내리막길을 쉬운 법이니까 재빠르게 1분 내로 뛰어 내려가는 거다.

  한 칸씩 내려가기는 시간이 아까우니 나의 컴퍼스를 살리고 살려서 한 걸음에 세 칸씩 뛰어 내려갔다. 쿵쿵거리는 소리 때문인지 이미 지나온 집에서 문을 열고 누가 이리 시끄럽게 구는 건가- 하면서 고개를 내밀기도 했다. 허나 일단 올 무시.

  순간 집 대문 앞에 걸려 있는 요구르트 주머니에서 갓 넣은 시원하고 신선한 요구르트를 딱 하나만 빼 먹을까 하는 유혹에 빠졌다가 집 안 사람이 밖으로 나오는 것을 눈치 채고 재빠르게 모른 척 하고 도망치기도 하였다. 쩝, 딱 하나만 먹으면 호랑이 기운이 솟아 날 텐데.

 

  1층에 다 내려온 후에 비처럼 쏟아지는 땀을 닦으며 바로 옆 라인인 1, 2 라인으로 이동했다. 다행히 이쪽 엘리베이터는 정상 운행을 하고 있어 계단으로 또 열심히 뛸 필요가 없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니 1분도 안 되어 도착했다. 나는 25층에 도착해 문이 열리자 마자 능숙하고 숙련된 솜씨로 2502호 대문 앞으로 신문 한 매를 던져 첫 번째 임무를 완수했다. 그리고 아직도 헐떡거리는 숨과 얼굴을 완전히 뒤덮고 있는 짠 맛 나는 용암을 진정시키고 다음 목적지로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얼핏 시계를 보니 5시 24분. 뭐, 이번 내기는 진 것 같으니 너무 급하게 가지는 말아야지.

 

  “다녀왔습니다...”

  내가 듣기 싫은 경첩 소리를 내는 문을 열며 작게 중얼거렸다. 현재 시각 5시 54분. 그 마의 25층만 아니었다면 내가 나름 스피드를 내며 시간 내에 완수하려고 노력했을 텐데, 마의 25층 때문에 시간을 너무 잡아먹자 일찌감치 포기하고 천천히 운동 삼아 돌아온 것이다. 첫 코스에서 너무 고생을 한 탓인지, 나머지 코스들은 전부 그냥 수월하여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불행 중 다행인 듯.

  “어이쿠.”

  인쇄소로 들어가자마자 따뜻한 온기에 취해 잠시 눈을 판 사이에 눈 바로 앞에 한 소녀가 있다는 것을 몰랐다. 부딪힐 뻔 했으나 내가 빠르게 비킨 덕분에 부딪히지 않고 피할 수 있었다.

  “미안.”

  내가 말하자 소녀는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말없이 밖으로 나가 버린다. 나는 어리벙벙하여 그저 소녀가 지나간 계단을 쳐다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방금 걔 누구에요?”

  내가 카운터에서 고스톱을 치고 있는(스피커에서 탁탁 소리, 즉 화투 내려찍는 소리가 들리므로 평소처럼 고스톱을 치고 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소장 아저씨에게 물었다. 소장 아저씨는 나를 힐끔 보더니 다시 시선을 컴퓨터 모니터에 고정시키며 입을 연다.

  “내일부터 새로 일 한다는 애다.”

  그럼, 신참이 하나 생기는 건가?

  “몇 살인데요?”

  내가 난로에 손바닥을 가져다 대며 점장 아저씨에게 물었다. 헌데 아저씨는 아 귀찮다는 듯, 나를 힐끔 보더니 입을 연다.

  “요번에 스물 되는 열아홉 이랬던가?”

  “응, 열아홉.”

  소장 아저씨가 중얼거리자 소장 아저씨 뒤쪽에 있어 보이지 않았던 사내가 거들었다. 저 사내는 박재성이란 사람으로,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입대하여 병장으로 제대하고 현재 대학교 3학년 새 학기를 기다리는 휴학생이다. 하루 중 의자나 침대에 누워 소설책이나 만화책을 보는 시간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인간 나무늘보인데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해병대를 나온 사람이다(그래서인지 그게 재성이형의 유일한 자랑거리이다.).

  “이름은 뭐랬는데요?”

  내가 카운터를 향해 묻자 둘은 귀찮다는 표정을 짓는다.

  “아저씨, 이럴 땐 이걸 내야 하는 거라고.”

  “자식이. 조용히 닥치고 구경이나 해라.”

  둘은 내 질문은 완전히 무시한 채 인터넷 고스톱 게임에만 몰두하고 있다.

  “그 여자애. 이름이 뭐랬어요?”

  내가 다시 묻자 둘은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굉장히 귀찮다는 표정을 짓는다.

  “김경숙 이랬나? 아저씨, 아까 그 계집애 이름이 뭐랬었지?”

  “몰라, 야야야야! 고 스톱 떴다. 이쯤에서 적절하게 스톱 누를까?”

  “아니, 못 먹어도 고! 무조건 원 고는 가야 해. 고 눌러 고. 패 좋으니까 일단 고해.”

  “지금 패 안 좋은데?”

  “아놔, 아저씨가 패 읽는 법을 모르네! 지금 패 진짜 좋으니까 나만 믿고 가자.”

  “자식이 반말은... 알았다. 고 한다.”

  내 질문은 완전히 무시한 채 신이 난 둘이다. 흠- 뭐 설화누나는 이미 일을 마치고 돌아간 듯하다. 설화누나가 있다면 아침 식사를 사 달라고 졸라도 될 법한데(설화누나는 그걸 이미 눈치 채고 재빨리 가버린 듯.), 설화누나가 이미 먼저 돌아간 듯하니 뭐 딱히 할 일도 없는 나도 집에 돌아갈 수밖에.

  ... 라는 건 사실 훼이크고. 나는 사실 소장 아저씨에게 아침밥을 사 줘야 하지만 둘이서 저렇게 신나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으니 재빨리 도망쳐야 한다. 기회는 지금뿐이다. 하하하.

  인쇄소를 나오기 직전에 인쇄실에서 두 남자의 비명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아마도 고스톱 게임에서 졌나 보다.

 

  인쇄소에서 나와 간단한 요기를 하기 위해 인쇄소 바로 옆의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치릉치릉~ 하는 듣기 좋은 꼬마벨이 울리며 계산대의 아르바이트생이 어서 오시라고 인사를 한다. 참고로 저 아르바이트생은 내가 인쇄소에서 일하기 시작할 때부터 이 편의점의 새벽반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고로 얼굴이야 이제는 아주 잘 아는 사이를 넘어서 몇 가지 이야기도 나누는 사이지만 아침에 일 끝내고 여기서 간단히 아침을 먹는 것 외에는 이 편의점에 올 일이 없어 그다지 친하지는 않다. 솔직히 말하자면 서로 이름도 모른다. 몇 년간 얼굴도 매일같이 보고 매일 인사도 나눈 사이인데 이름도 모른다니 참 웃기지 않은가. 이번 크리스마스 때에는 매일 밤부터 새벽까지 일하는 저 아르바이트생을 위해서 장갑이라도 선물할 생각이다.

  나는 편의점을 한 바퀴 돌아 불고기 맛 삼각 김밥 하나와 커피우유 하나를 샀다. 그리고 편의점 내의 테이블에 앉았다.

  “아.”

  순간 놀랐다. 김경숙인가 뭔가 하는 우리 인쇄소 신입사원(?)이라는 소녀가 바로 내 앞쪽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허리 근처까지 반듯하게 내려오는 검은 머리카락을 검은색 야구모자가 덮고 있다. 더불어 이 애가 입은 옷은 검은색 더플코트다. 일반 열아홉 살 소녀 치고는 패션 센스가 최악이다. 물론 나도 그다지 멋진 옷을 입고 최근 패션을 따라가는 것은 아니다만, 여자애가 저렇게 시커먼 복장을 하고 있으니 뭔가가 이상하다.

  말을 걸어 보려고 했으나 등을 돌린 채로 있었기에 말을 걸 수 없자 나는 자리를 그 애 앞으로 옮겼다.

  “안녕.”

  내가 웃으며 말했다. 앞쪽에서 보니 하얀 피부에 잡티하나 없어 상당히 예쁜 편이다. 하지만 표정은 마치 동네 옷가게의 마네킹처럼 아무런 감정 없이 차가운 표정이다. 그래도 몸집이나 얼굴을 보면 상당히 귀엽고 예뻐 안아주고 싶을 충동이 생길 정도다. 한눈에 뿅 갔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건가?

  나는 내 인사를 밝게 받아 주리라 기대했지만, 이 김경숙라는 애는 초코파이 한 귀퉁이를 오물오물 씹으면서 나를 힐끔 보고는 쓰고 있던 모자를 더 눌러 쓴다.

  “안녕?”

  내가 다시 물었다. 김경숙라는 이 여자애는 나를 모자 사이로 힐끔 보더니 고개를 살짝 까딱거리는 식으로 인사를 하고 다시 초코파이를 오물오물 씹는다.

  “내일부터 일 시작하지?”

  내가 웃으며 묻자 여자애는 다시 모자 사이로 나를 힐끔 보더니 고개를 살짝 까딱거리는 식으로 긍정의 의사를 밝힌다.

  “잘해보자. 나는 그 인쇄소 신문배달 5년차야.”

  내가 오른손을 내밀며 말했다. 허나 여자애는 토끼처럼 초코파이를 오물오물 씹을 뿐, 내 악수에 응하지 않는다.

  “어이.”

  내가 빈 우유 곽을 살짝 쥐고 있는 이 여자애의 왼손 손등을 톡톡 치며 말했다. 허나 이 여자애는 내 손길을 피한다.

  “이봐, 아까 내가 인쇄소 문에서 비키지 않았다고 화난거야, 뭐야. 알지도 못하는 사이인데 초면에 너무 차갑게 구는 것 아냐?”

  내가 짜증을 내자 이 김경숙라는 여자애는 남은 초코파이 조각을 입에 넣고, 모자의 처마 끝을 살짝 올려 나를 노려보며 입을 연다.

  “화는 안 났지만 지금 당신 손을 보고 말씀해 주시지 않겠어요? 초면에 거부감을 느끼는 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마치 아파트 난간을 붙잡고 열심히 뛴 사람 같군요.”

  김경숙이 갑자기 짜증을 냈다. 뭐? 손? 손을 보았다. 아아, 아까 아파트에서 난간을 붙잡고 열심히 뛰었는지라 손에 때가 덕지덕지 묻어 완전 까마귀 날개가 되어 있었다. 얼레? 그런데 김경숙라는 저 계집애는 그걸 어떻게 간파한 거지? 그저 때려 맞춘 건가?

  “아, 미안... 그런 이유였다면 좀 빨리 말하지 그랬어?”

  “자신이 스스로 알아차리길 기다렸습니다만, 스스로 알아차리지는 못하는군요. 저는 이만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김경숙이 빠르고 또박또박 정확한 말투로 대사를 마친 후 쓰레기들을 분리수거 한 뒤, 편의점을 나가 버렸다.

  결국 편의점에는 바닥을 봉걸레로 닦고 있는 아르바이트생과 나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휴, 뭐랄까- 김경숙라는 저 여자애한테 첫인상을 정말 나쁘기로는 최고로 나쁜 인상을 준 것 같다.

  “저기, 손님?”

  혼자 삼각 김밥을 먹고 있는 도중에 내 옆에 아르바이트생이 다가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네?”

  내가 대답했다. 그러자 아르바이트생은 매우 밝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연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 인사할 때에는 최소한의 에티켓을 지켜야 하지 않겠어요? 뭐, 원래 개인적으로 잡은 첫인상 컨셉이 바보 컨셉이라면 할 말 없지만요.”

  “아아, 손이라면 솔직히 제가 잘못한 것이지요. 인정합니다.”

  내가 말했다. 그러나 아르바이트생은 내 눈가를 손가락으로 튕긴다. 윽, 뭔가 떨어져 나간 느낌이 든다.

  “그거 말고도 말이에요. 원래 머리에 기름기가 많다면 할 말 없지만, 일단은 머리를 감아야 하지 않을까요? 아니, 급해서 머리를 못 감았다 치더라도 적어도 머리를 정리는 해야 하지 않을까요? 또, 눈가의 눈곱은요? 마지막으로 입가와 코 주위의 침과 콧물은 어쩌실 셈인가요?”

  아르바이트생이 마치 동생을 꾸짖는 누나처럼 밝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아르바이트생의 말을 따라 머리부터 눈, 입, 코로 손등을 옮겨보았다. 헉, 정말 아르바이트생 말대로다! 머리는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데다가 엉망진창이고, 눈가는 눈곱이 하이브에서 쏟아지는 아드레날린 저글링마냥 덕지덕지. 또한 입가와 코 주위에는 침과 콧물이 묻어 있다.

  우와, 이거 완전 심형래 감독의 ‘영구와 땡칠이’에 나오는 주인공 같은데...

  “후훗, 이제야 눈치 채셨나요?”

  뭐가 그리 재밌는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작게 웃는 아르바이트생이다. 아, 여태 설명하지 않았는데 참고로 저 아르바이트생은 여성이다. 아직 물어 본 적은 없지만 대충 나보다 한 두 살 위로 예상된다. 그리고 나보다 나이가 많은데도 손님은 왕이라고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나에게 경어를 써 주는 친절한 사람이다.

 

  그렇게 김경숙에게 굉장히 더럽고 추한 첫인상을 줬다는 충격에 사로잡혀 삼각 김밥과 커피우유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제대로 구분도 못 하며 일단은 다 먹고 뭐가 그리 재밌는지 헤죽헤죽 웃는 아르바이트생을 무시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우니 어제 밤늦게까지 대학 학과 친구들이랑 온-나이트 이벤트를 즐기다 못 이룬 수면이 나를 불러 그대로 꿈나라로 가 버렸다.

  나중에 잠에서 깨 보니 오후 1시쯤이었다. 일어나 아점을 먹고, 평소 하던 것처럼 컴퓨터 앞에 앉아 온라인 게임을 실행했다. 나는 이래 보여도 게임 상에서는 성주다. 이름이 성주라는 게 아니라, 게임 내에 존재하는 어느 한 성의 주인이란 말이다. 아무튼 성주이기 때문에 하루에 한 번씩은 꼭 들어가 성과 성 아래 마을을 점검해야 한다.

  그렇게 게임을 하다 보면 오후 7시가 되어 있다. 뭐 당연한 말이겠지만 저녁을 먹고, 또 게임을 하거나 친구들이 술 마시자고 하면 나가서 마시고 새벽에 돌아오는 식이다. 참고로 지금 막 어제 온-나이트에 참가했었던 친구들이 2차 간다고 난리다. 어제 한창 무르익을 때 나와서 씁쓸한 탓인지 내 다리는 어느새 친구들이 있는 술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어서와.”

  술집에는 한 군과 임 군밖에 없었다. 흐음, 내가 알기론 한 군은 유 양과 거의 한 시도 떨어지지 않고 붙어 다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웬일이실까...

  “네 애인은 어디에 두고 왔어?”

  내가 임 군에게 술잔을 건네받고 한 군에게 물었다. 한 군은 그저 어깨를 으쓱하며 뭔가 껄끄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게... 걔(유 양)가 어제 온-나이트를 끝나고 나서 쓰러졌어. 과음에 수면부족이라나 뭐라나.”

  “아니, 그런데 넌 걔를 돌봐주지 않고 여기 왔단 말이냐?”

  내가 한 군에게 묻자 한 군은 두 손을 저으며 당황한다.

  “아, 오해하지 마. 지금 푹 자도록 일부러 나온 거니까 말이야.”

  “뭐, 그렇다면 그렇겠지.”

  내가 중얼거리며 술잔을 비웠다.

  “뭐야, 성주 이놈. 마치 장모님 같아. 아니, 매제인가?”

  임 군이 술잔을 비우며 껄껄 웃어댔다. 나와 한 군은 동시에 임 군을 쥐어박았다.

  “아, 왜 때려?”

  그건 스스로 알아 보거라.

 

  “아, 그러고 보니 성주 너, 아직 애인이 없지?”

  임 군이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입에는 막창-갈매기살을 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러브러브계 선배인 이 녀석에게 비법을 전수 받아.”

  임 군이 한 군을 가리키며 말했다.

  “야, 러브러브계가 뭐냐?”

  한 군이 술잔을 다 비우고 임 군에게 물었다. 임 군은 대답 대신 빙그레 웃으며 두 손바닥을 교차시켜 뿡뿡뿡 소리가 나게 한다. 그러자 한 군이 술잔으로 임 군을 폭행한다.

  “어이. 그러고 보니 너 걔(유 양)랑 어떻게 사귀게 된 거냐? 설마 쌍팔년도 식 연애비법은 아니겠지?”

  내가 한참 임 군을 폭행 중이던 한 군에게 물었다. 한 군은 자세를 바로잡더니 매우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연다.

  “나는 참고로 걔(유 양)를 처음 만난 때는 내가 친구가 입원한 병원에 문병을 갔을 때였지. 헌데 내가 친구 문병을 마치고 돌아가려는데 마침 응급실 앞을 지나가게 되었어. 헌데 응급실 앞에 나랑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여자애가 쓰러져 울고 있었던 거야. 내가 그 여자애한테 사정을 물어보니 그 여자애 아버지께서 뺑소니를 당하셔서 응급실에 실려 왔는데 수술비가 한 푼도 없다는 거야.”

  한 군이 술잔을 식탁에 톡톡 하고 소리가 날 정도로 치면서 설명했다. 우와, 이거 취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굉장히 진지 한 걸?

  “그래서 내가 그때 카드를 긁어 울 장인어른의 수술비를 보태 드렸지. 그리고 예쁜 따님을 얻었고. 크크크.”

  뭐냐, 마치 의도적으로 예상하고 실행한 듯한 네놈의 웃음은...? 아무튼, 그건 그렇고. 흠... 고민거리를 대신 해치워 주고 애인을 얻었다? 그렇다면 나도 가까이 있는 설화누나나 김경숙의 고민거리를 알아본 후에 그 고민거리를 멋지게 해결하면서 호감도를 사 볼까?

  “근데, 너 그때 그 수술비는 잘 갚았냐?”

  임 군이 나와 한 군이 떠드는 동안 모든 고기를 싹 쓸어버리며 말했다.

  “물론 그때 이후로 신용불량자가 되어 지금까지도 빚 갚기가 힘든 상황이지. 근데, 넌 어느새 쥐새끼처럼 고기를 다 쓸었냐?”

  한 군이 다시 빈 술잔을 들고 임 군을 폭행하기 시작했다.

 

  술집에서 그렇게 두 시간 이상을 한 군, 임 군과 떠들고 나서 살짝 취기가 돌 때쯤에 우리는 전부 해산했다. 한 군은 술을 깬 후에 유 양과 장인어른(이놈들은 벌써부터 신혼부부 기분을 내는가 보다. 쩝쩝, 부럽기도 하고 역겹기도 하고...)을 뵈러 간다고 했고, 임 군은 집으로 돌아간다고 하길래 나도 집으로 돌아갔다.

  뭐, 이런 느긋하고 권태 라이프 리턴즈 같은 생활이 언제나 계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이렇게 살다 보면 폐인이 될 까봐 무서워 은근히 꺼리기도 한다.

  쩝, 여자 친구나 아니면 친구를 넘어서 애인이라도 하나 있다면 좋을 텐데 말이다... 이제 곧 입대를 앞둔 상황에서도 솔로라니 내 신세가 너무 처량하다. 그러니 일단 김경숙과 설화누나의 고민거리를 알아본 후, 그 고민거리를 내가 해결해 주면서 호감도를 얻어 연인으로 발전하는 계기를 만들어야겠다! 헌데 너무 아쉬운 건, 첫 인상이 상당히 좋았더라면 지금보다는 조금 더 쉽고 빠를 텐데. 아쉽게도 내가 경숙이가 보았을 첫 인상이 너무나도 바보같고 지저분해 안 만난 것보다 못하게 되었다.

 
작가의 말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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