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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Netwalker
작가 : HudmentJhinRaker
작품등록일 : 2019.9.6

프로급 마피아 조직원 르미데안느 드 블랑. 사이버 해킹 보안국 특수 요원 고준혁. 세계적인 대기업 제타 그룹의 회장 최문호. 가족을 잃고 사이버 킬러가 된 소년 서지환. 깊은 곳에서 부터 꼬이기 시작한 그들간의 과거가 기어코 실체를 드러낸다.

 
NetWalker - 14
작성일 : 19-11-10 21:58     조회 : 184     추천 : 0     분량 : 11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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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준혁은 자신의 자리에 설치되어 있는 사무용 컴퓨터로 나올 리 없는 이번 특무와 관련된 뉴스를 찾아보았다. 역시나 언론사에 알려지는 것만은 철저하게 틀어막고 있는 것인지 네트워커의 ‘네’자도 찾아볼 수 없었다. 부하 직원이 타준 커피를 한 모금 홀짝이려는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휴대전화를 집어 든 그는 자료 분석을 맡긴 녀석에게서 온 것임을 깨달았다.

 

 “여보세요?”

 

 “고 형사님.”

 

 그의 목소리에서는 짜증이 짙게 묻어나오고있었다.

 

 “벌써 다 된 거야? 자료 넘겨 받은 지 30분밖에 안 지났잖아.”

 

 분위기상, 그가 곧 험담을 늘어놓을 것이라는 걸 눈치챈 준혁은 얼른 그의 말을 막아섰다.

 

 “…네. 그런데, 형사님”

 

 ‘조금 더 화제를 크게 돌릴 걸.’

 

  준혁은 크게 아쉬워하며 대답했다. 그는 울 것 같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거 도대체 어떤 인간이 쓴 거죠? 어째서 제게 이런 끔찍한 자료의 균사체 같은 걸 보내신 거죠?”

 

 “일단 진정해.”

 

 “이건 듣도보도 못한 욕설로 도배된 편지만큼이나 역사적으로도 인륜적으로도 그 이치를 거스르는 희대의 명작이네요. 물론 매우 심오하고 부정적인 면에서 말이죠. 이걸 보고도 진정하라고요? 말도 안 되죠. 이건 정말…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장 질 나쁜 쓰레기예요. 산업 폐기물 1톤 이 차라리 나을 정도로 절망과 고통만이 통곡하는 그런 대죄의 걸작 말이예요. 제발 이게 사람이 쓴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사람이라는 착각에 빠진 구닥다리 컴퓨터가 대충 휘갈긴 것이라고 말해주세요. 그게 아니면, 당장이라도 이걸 작성한 사람을 찾아가서 목을 비틀어버리고 싶을 정도예요.”

 

 “워워, 진정해. 그런 쓰레기를 네가 읽게 한 건 정말 미안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었어. 그 자료집은 이번 사건에서 알 수 있는 모든 정보들을 긁어모아서 기록해 놓았을 뿐인 물건이야. 그런데 너도 읽어 봤듯이 내용이 너무 난잡해. 그래서 너한테 부탁한 거야. 거기서 필요한 정보만 색출해내기엔 나로썬 너무 버거웠거든. 그래서, 뭐 알아낸 것 좀 있나?”

 

 그는 한숨을 내쉬면서 잠시 마음을 추스리는 듯하더니 말했다.

 

 “후… 일단 알아낸 건 많아요. 물론 쓸데없는 것까지 포함하면 말이죠. 제 방식은 아실테니까 설명이 오래걸려도 참고 들어주실거죠?”

 

 “물론"

 

 “흠흠, 먼저 이번 사건에서 미확인 무기의 존재를 의심하고 보는 것은 타당해요. 충분히 그럴만한 정황이 있죠. 무려 세명의 사망자가 전대미문한 사인으로 살해당했으니까요. 그러나 사건의 실마리조차 잡지 못한 지금으로써는 아직 무기의 실존여부는 확인할 수 없어요. 이 멍청한 작성자는 무기의 존재가 실제로 확인된 것인 양 말하더군요. 이런 정보에 대해서 얼마나 믿느냐의 힘이 굉장히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진실의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정보를 곧이곧대로 믿는 것은 정말 위험한 행동이에요. 그러다가 운 좋게 자신이 믿었던 정보나 가설이 사실이었다면 그 일에 대해서는 미리 대처했으니 좀 더 매끄럽게 넘길 수 있겠지만, 사실이 아니었다면 그건 너무나 치명적인 실수가 될 겁니다. 그리고, 믿음의 힘은 정보를 전해 듣는 사람뿐만 아니라 이 정보를 제공해준 사람에게도 크게 작용하는 힘이에요. 정보를 알려주는 사람이 얼마나 그 정보를 신뢰하느냐에 따라 문맥이 달라지면서 작성자의 확신도가 잘 드러나게 되죠. 이 자료에 적힌 작성자의 코멘트를 보면 그 사실이 잘 드러나 있어요.

 

 코멘트의 첫번째 것을 보시면 ‘피해자들의 특수한 사망사유로 보아 미확인 무기를 사용하는 여성일 가능성도 다분함.’이라는 구절이 있는데 아직은 미지의 무기가 존재할 가능성도 있다는 하나의 가설로써 제시되어 있을 뿐이죠. 여기까지 정보를 들은 사람은 질 나쁜 농담이라도 들은 것처럼 듣고 흘리기 마련이예요. 하지만, 두번째부터는 조금 달라요. ‘뇌에 끔찍한 영향을 미치는 매우 위험도 높은 살상무기의 존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 같다.’라고 말하며 이 미지의 무기에 대한 의혹을 단순한 가설이 아닌 실제로 검토해 보아야 할 한 가지 견해로써 작성자의 인식의 등급이 약간 올라갔음을 알 수 있어요. 이쯤되면 사람들은 미지의 무기의 존재 여부에 대해 고민해보기 시작하죠. 그런데 세번째에서는 이젠 아예 미지의 살상 무기가 존재한다고 치부하고 있어요. ‘또 미확인 살상무기의 범위도 고려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정보를 입수하는 입장에서 첫번째, 두번째 코멘트를 놓치고 세번째 코멘트만을 들었을 때, 자연스레 살상무기에 대해서 심도 있게 고민을 하게 되고 대책을 마련하는데 오만가지 신경을 다 쓰게되죠. 그러나 이게 단순히 정보 제공자의 공상일 뿐이었고 실존하는 것이 아니였다면? 마련해 놓은 대비책은 모조리 새되는 거죠.

 

 죄수의 딜레마를 통해 간단하게 예를 들어보면, 우선 죄수의 딜레마는 두명의 죄수를 각각 다른 방에 가둬놓고 그들에게 좋은 조건을 내건 다음, 경찰들이 이간질을 시켜서는 둘다 자백을 하게끔 만드는 뭐 그런 심리 게임이잖아요? 여기서 두명의 죄수가 서로에 대한 믿음이 아무리 끈끈하더라도 양측의 진실을 알고 있는 경찰의 손바닥 위에서는 별것 아닌게 되죠. 그러니 특수한 경우가 아닌 이상 대부분 서로에 대한 믿음을 저버릴 거에요. 다만 죄수들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둘 사이의 신뢰도가 두사람 사이에 끼어 서로의 정보를 전달해주는 경찰의 이간질보다 더 믿을만 한 정보임을 고려해보면, 제법 간단한 문제가 되죠. 그러나 지금 제가 말한 경우는 두 죄수간의 맹목적인 믿음이 있어야지만 성립하는 경우예요.

 

 음… 뭔가 더 말하려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죄수의 딜레마는 여기에 써먹기엔 조금 잘못된 예시였네요. 죄송해요.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은 그냥 무슨 정보든 곧이곧대로 믿지 말고 의심부터 하고 봐야한다는 이야기였어요.”

 

 “…너 감 떨어졌냐?”

 

 “그럴지도요. 어찌됐든간에 제 의도 자체는 잘 전달된거죠?”

 

 “뭐, 그건 그래.”

 

 “그럼 일단은 그렇다 치고. 자료의 작성자가 미지의 무기에 대해 계속해서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 상부에서는 무기에 대한 두려움과 강력한 경계심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해요. 그 근거로는 자료 작성자는 아무나 하는게 아니잖아요? 간부들끼리 하는 회의나 세미나에 참여하여 그곳에서 어떤 대화가 오고 갔는지 듣고 그들의 인식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직관할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기록관들이고, 자료 작성자들은 바로 그 기록관들의 기록을 토대로 상부에서 내려온 정보들을 정리하여 한데 모아 놓는 사람들이지요. 그러나 그들은 간부들 사이에서 오고 갔던 현장의 기류 하나하나의 생생함을 모조리 느끼지 못해요. 그런 사람들이 필터링 없는 기록관들의 기록을 정보로써 옮겨 적었으니 간부들의 인식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게 생각하면 작성자의 코멘트도 사실상 간부들의 코멘트를 조합해 놓은 것일 뿐일 가능성이 높아요. 하지만, 제가 봤을 때 여기에 간부들의 인식이 다소 섞여 들어가 있긴 하지만, 이 것들은 작성자의 개인적인 코멘트가 맞아요.”

 

 “무슨 근거로?”

 

 생각에 잠긴 듯 전화 너머가 조용해졌다. 그리고, 잠시 후에 대답이 돌아왔다.

 

 “아까 지적했던 코멘트를 들여다보시면 다 하나 같이 이미 알고 있는 정보들을 슬금슬금 하나씩 나열하다가 마지막엔 자신의 견해를 들이미는 방식으로 코멘트를 전개해 나가고 있어요. 이 전개 방식은 기록관들이 기록해 놓은 간부들 간의 대화만을 보고 적었을 땐 나오기 힘든 전개 방식이죠. 말의 요점을 족집게처럼 그대로 집어다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 이상 간부들의 대화를 읽으면서 정보들을 한번에 나열하면서 줄줄이 이어 가기에는 무리가 있어요. 게다가 설령 이 자료의 작성자가 그런 능력을 지닌 사람이었다면, 애당초 코멘트 따위는 적어 놓지 않았을 겁니다.

 

 솔직히 말해서 작성자 코멘트 정도야 굳이 번거롭게 여러 과정을 거칠 필요도 없이 그냥 참고용으로써 최대한 편하게 써넣어도 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전개되는 형식도 많이 달라지겠죠. ‘누구의 관점에 따라서 이 사건을 보면 미지의 무기가 존재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그리고 작성자 또한 그런 연유로 누구의 견해에 동의한다.’라는 식으로 허들이 내려가요.”

 

 “그건 확실히 그렇네.”

 

 준혁의 말에 그는 기세등등해진 듯 흐흥 하고 소리를 내었다. 그리곤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그런데 고 형사님, 혹시 제 말을 모조리 믿고 계신 건 아니죠?”

 

 “그게 무슨소리야?”

 

 그가 키득이며 사악함을 잔뜩 바른 웃음소리를 내었다. 준혁은 순간 당황하여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준혁은 그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몇번 더 그의 말을 되새겨 보았다. 그러나 그는 준혁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고 말했다.

 

 “저는 고 형사님과 통화하면서 몇 가지 거짓 정보를 흘렸습니다. 그것들을 모두 맞춰보시면 제가 이 자료에서 알아낸 가장 큰 정보들을 형사님께 알려드리겠어요.”

 

 그가 다시 한 번 키득였다. 준혁은 당혹스러웠지만, 그저 그가 자신에게 무슨 거짓정보를 흘렸는지 생각할 뿐이었다. 그는 과거에도 이런 장난을 치곤 했다. 사람의 목숨이 달려 있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태연하게 말이다.

 

 “너 다 좋은데 말야, 이런 거 할 때마다 말하는 톤이 되게 잘난체 하는 것처럼 들리는 거 아냐?”

 

 “알아요, 예전에도 그렇게 말씀해주셨잖아요. 기억하고 있어요. 덧붙여서 저보고 사이코라고 말하셨던 것도 기억하고요.”

 

 “내가 사이코라 말했던거 마음에 두고 있었냐?”

 

 “그다지 신경 안 써요. 맞는 말인 것 같기도 했고.”

 

 “그러시겠지. 네가 말한 거짓 정보, 즉 어딘가 어설픈 정보나 네 거짓말이 어느부분에 있었는지 말하면 되는거지?”

 

 “네, 생각할 시간은 드릴게요 정리되면 다시 전화 주세요.”

 

 전화를 끊은 준혁은 입에 담배를 물고 흡연실로 빨려들어가듯 들어갔다. 꼼꼼하게 머리를 써야할 때에 담배를 피우면 머리가 잘돌아간다고나 할까, 무어라 그럴듯하게 설명해주기 힘들었다. 준혁은 그저 두통이 있을 때 절로 찾게 되는 일종의 명상과 같은 행위라고 생각했다.

 

 그는 입애 문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한 번 크게 들이마셨다. 그러자 매캐한 담배연기가 기도를 간질이며 폐 속에 찐득하게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기침이 나올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지만, 기침은 늘 이렇게 올라오다 말았다. 숨을 길게 내뱉자 씁쓸한 담배연기가 기도를 역행해서 도로 입 밖으로 뿜어져나왔다. 담배연기가 뇌로 흘러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정신이 몽롱해졌다.

 

 담배연기가 넘실거리며 준혁의 시야를 뿌옇게 흐렸다. 자신의 입에서 나온 연기였지만, 몽롱한 지금의 정신 상태로는 세계와 자신 사이에 투명벽을 놓고 바라보는 것처럼 직선으론 닿을 수 없는, 완전히 격리된 세상에서 그것을 바라보는 것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다시금 입에 담배를 물고 다시 한 번 빨아들이고는 내뱉었다. 담배연기가 머릿속으로 새어들어가 내부를 휘젓는 듯했다. 그러나 그 연기는 두뇌의 순환을 어지럽히기는커녕 그 안의 섬세한 전류들을 원활하게 전달해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의식의 흐름을 가속화했다.

 

 마시고 내뱉기를 10분 정도 반복한 준혁은 담뱃불을 비벼끄고 흡연실을 나와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벌써 끝나셨어요?”

 

 전화를 받은 그는 전혀 놀라지 않은 말투로 놀란 것처럼 말했다.

 

 “어, 그래.”

 

 “그럼 시작해보세요.”

 

 그는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있었지만, 그가 자신의 추리를 기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준혁은 알고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너는 잠복근무 중이 아니야.”

 

 “어째서죠?”

 

 “빈곤한 우리 부서에 있어서 잠복근무라 함은 자동차 안이나 근처 가게에서 목표물을 지켜보는 게 고작이야. 그런데 내가 네게 전화를 걸기 전까지 넌 자고 있었어, 그런 짓은 일반 가게에선 용서받을 수 없을테니 길거리나 차 안에서 자고 있었겠지. 그런데 넌 길거리에서 자고 있었던 건 아니야. 너와 통화하는 도중에 차가 지나가는 소리라던가 길거리에서 자주 날 법한 생활음이 안 났거든. 하지만 그것만으로 네가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없어. 매우 한적한 동네라면 지금 시간대는 한창 조용할 때니까. 다만, 실외에 있을 때 소리가 멀리까지 퍼져나가는 개방감이 없었어. 너는 분명 차 안이나 실내에서 통화를 한 것이지. 그러나 빌라의 건물 현관이나 빌딩의 로비, 화장실은 제외해야지. 이 세가지 장소에선 목소리가 울려야 정상인데 전혀 울림이 없었어. 다만, 카펫이 두루 깔려있는 로비는 가능성은 있어. 그런곳은 카펫이 진동을 흡수해 버려서 목소리가 잘 울리지 않으니까. 하지만, 그곳도 제외야. 먼저 주변 소음이 일절 없었고, 조용한 만큼 사람들이 자주 드나들지 않는 곳이겠지. 그렇게되면 그곳에 있는 사람 한명 한명이 눈에 띄게 되니까 잠복하기엔 너무 부적절한 곳이야. 더군다나 그런 곳에서 자고 있을 확률은 논외지.”

 

 “혹시 비교적 넓은 휴게소의 화장실일 가능성은?”

 

 “네 성격에 거기서 잠이 오겠냐?”

 

 그가 낮게 웃었다.

 

 “당연히 아니죠.”

 

 “계속한다?”

 

 대답은 없었다.

 

 “이제 남은 곳은 차 안이랑, 어딘가의 아늑한 방뿐이야. 나는 여기서 상당히 고민했어. 오직 전화를 통해 이 두 공간의 울림의 차이를 구분하기란 힘들거든. 만일 혹시라도 네가 호텔 방 안에서 자고 있었다면, 침대 위에서 받았을 게 뻔해. 자동차 시트가 소리의 울림을 흡수하는 것처럼 매트도 똑같은 역할을 해낼테니까. 그렇게 되면 구분이 정말 어려워. 그래서 나는 섣불리 추측하지 않았어. 확실하지 않으면 자신의 추측을 믿지 말라했던 네 말을 응용한 거야.”

 

 작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비웃음이 아닌 뿌듯해하는 웃음이었다.

 

 “그리고 나는 네가 내 전화를 받으면서 두가지 진실을 깨달은거지 넌 잠복근무 중이 아니라는 사실과 함께 경찰도 그만뒀다는걸.”

 

 “그 증거는?”

 

 “간단해, 내가 먼저 전화를 걸었을 때 너는 교대까지 1시간 정도 시간이 남아 있다고 말했어. 그런데 지금 시간을 봐. 그렇게 말하고 1시간 15분이나 지났어. 우리가 이 통화를 시작했을 땐 이미 50분 정도 지난 상태였는데, 그동안 아무도 교대하자고 네게 말을 걸러 오지 않는다고? 하다못해 무전도 전혀 안들리잖아. 너는 잠복 중인데 잠시 휴식 시간이라고 무전을 꺼놓는 멍청이는 아니잖아? 나랑 통화하기 위해 무전을 껐다고 하기엔 그것도 부자연스러워. 내게 잠븍 중이라는 것을 굳이 숨길이유도 없고, 애당초 나와의 통화보다 잠복을 더 중요시 여겨야 하는 게 보통이지. 그러나 그것들뿐만으론 네가 잠복 중이 아니라는 사실은 충분히 증명할 수 있어도, 경찰을 그만 뒀다는 결론까지 닿기엔 아직 부족하지. 그래서 나는 더 파고들었어.

 

 지금 시각은 오후 5시 20분, 오늘은 주말이나 휴일이 아닌 매우 바쁜 평일의 낮이야. 잠복근무를 하고 있지 않은 너라면 지금쯤 사무실에서 한창 열심히 일하고 있을 때지. 그런데 주변이 너무 조용하지 않아? 잠복근무가 아니라는 결론에 다다른 지금, 사무실에 있다면 동료가 옆에서 커피 한 잔 하자며 말을 걸거나 주변에서 바쁘게 키보드 두들기는 소리와 소란스러운 무전소리가 나야 할텐데 너무 조용하잖아? 게다가 사무실에서 자고 있었다고? 처음 내가 전화를 걸었을 때 말했던대로 매우 근면한 네가 사무실에서 자고 있었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지. 한가지 더 덧붙여서 내가 보내준 자료를 보았을 때 살해당한 두명의 고등학생 피해자 중 한 명은 네가 근무하고 있을 터인 파출소의 관할구역에서 죽었어. 그런데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지 못할 망정 태평하게 잠이나 자고 있는 건 앞에서 말했듯이 네 성격에도 안 어울려. 그렇게 해서 도달한 결론이 너는 지금 잠복근무 중이 아니고, 경찰도 그만두었으며, 철야를 하지도 않았어. 그렇게되면 어딘가에 숙박을 하고 있을 이유도 없어졌으니 너는 그냥 네 집 침대에 누워있어. 방금 자고 일어난 것도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거짓말이겠지. 막 자다 깬사람이 30분만에 이 자료에 대한 큰 사실을 알아내기란 힘든 일이거든.”

 

 통화 너머가 잠잠하더니 이내 힘찬 박수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고 형사님이셔요.”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마. 네게 비하면 이건 새발의 피니까.”

 

 “겸손하셔라.”

 

 이 말을 뒤로 한참 정적이 흘렀다.

 

 “그런데 혹시 내가 말한 것 말고 거짓된 정보가 더 있냐?”

 

 “딱 한가지 더 있어요.”

 

 “가장 큰 정보를 듣기엔 글렀군.”

 

 준혁은 크게 아쉬워했다.

 

 “걱정마세요. 하나 빼고 다 정답을 맞추셨으니 2등상으로 드릴거에요.”

 

 “그래…”

 

 준혁의 입 안에선 씁쓸함이 감돌았다.

 

 “그래서 내가 맞추지 못한 한가지 진실과 임무 관련 자료의 가장 큰 정보는 무엇이지?”

 

 “먼저 고 형사님이 전화를 거셨을 때, 제가 무슨일로 전화를 걸었는지 여쭈었잖아요. 제가 그말을 통해 왜 형사님이 전화를 거실 줄 몰랐다는 입장을 자연스럽게 드러내 보인 거에요.”

 

 “잠깐만 그 말은…”

 

 “네, 저는 고 형사님이 제게 연락하실 거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내게 이 임무가 내려올 걸 알았다는 이야기냐?”

 

 “형사님께서 정예 수색팀 팀장 같은 높은 직급을 금방 따내시리라 믿고 있었다고 제가 이전의 통화에서 말씀드렸죠? 만일 그 정도 위치에 빠르게 자리를 잡게 되면 분명 난해한 임무들이 별처럼 우수수 쏟아지게 되어 있어요. 우수함이 입증된 인물일수록 큰 기대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요. 그러니 정확히 콕 집어서 이 사건은 아니어도 언젠가 이런 난해한 임무를 고 형사님이 내려받을 것이며 때가 되면 제게 연락을 하시리라는 것도 은퇴 선언을 하실 때부터 대충 눈치채고 있었어요. 다시 생각해보니 방금까지 그 무엇도 함부로 믿지 말고 의심부터 하고보라 말해놓고 정작 본인은 이렇다 할 근거도 없이 고 형사님을 굳게 믿고선 직장까지 내던진 상태였네요.”

 

 “너, 나 때문에 경찰 그만둔거냐?”

 

 “네, 고 형사님이 안 계시니까 별 재미도 없더라고요.”

 

 준혁은 내심 기쁜 마음을 표정에서 숨길 수 없었다. 다행히도 전화를 하고 있었으니 그의 얼굴이 상대에게 보여질 걱정은 없었다.

 

 “너는 여태까지 재미로 경찰 해먹었던거냐?”

 

 “완전히 틀린 이야기는 아니네요.”

 

 둘은 동시에 콧방귀를 뀌었다.

 

 준혁이 말했다.

 

 “치, 그럼 어렸을 때 경찰이 되겠다고 그렇게 악착같이 공무원 시험 준비를 했던 나는 뭐가 되는거냐.”

 

 “그 과거가 지금의 고 형사님이 계시게 만들어 주었잖아요. 그리고, 제 예상이 맞다면 지금의 상황에 제법 만족하고 계실텐데요?”

 

 그가 낮게 웃었다. 얄상궂음이 절로 묻어나오던 방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상당히 중후한 울림이었다.

 

 “그건 그렇지. 그나저나 ‘고 형사님’이라고 부르는 건 슬슬 그만둬 줘. 고속승진한 나를 안 좋게 보는 녀석들이 종종 내가 짭새였다고 놀려댈 때 그 명칭을 쓴다고.”

 

 “같은 공무원들끼리나 할 법한 꽤나 고지식한 놀림이네요. 그럼, 뭐라고 부를까요? 고 팀장님?”

 

 “그게 좋겠네.”

 

 “뭐, 어짜피 앞으로도 그렇게 부르게 될 터였으니 지금부터 익혀두는 게 좋겠죠.”

 

 준혁은 그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해 잠시 그가 무슨 말을 한 것인지 생각했다. 그리고 그 답을 찾았을 때, 그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너, 내가 너를 이번 특무 팀에 영입할 거라는 건 어떻게 알았어?”

 

 이번에도 낮은 음의 중후한 웃음이 들려왔다. 울림 자체는 아까와 다를 바 없었지만, 겉에 새로이 가미된 ‘사악’이라는 색감은 준혁의 경악을 가중시켰다.

 

 “그 정도는 간단해요. 제게 넘겨준 이 자료가 보안국의 관리 하에 보호받는 기밀자료라면 말이죠. 사실 고 팀장님께 이 자료를 건네받고 이십분 정도 서칭을 했어요. 그렇게 해서 찾아낸 기사라고는 최근에 있었던 살인사건들의 행렬뿐이었지만요. 그래도 자료 속의 장소에서 살인사건이 났다는 기사가 듬성듬성 보였고, 내용도 피해자의 신분과 나이도 딱 맞아 떨어졌어요. 그러나 그 몇편의 기사들은 모두 현장 사진이 일절 첨부되어 있지 않았고, 기사마다 언론사와 신문사가 제각기였으며, 내용이라고는 갖가지 억측과 기자의 추측만이 난무하는 공상 소설들뿐이었죠.

 

 저는 거기서 이상한 냄새를 맡고는 그쪽이 관할구역인 곳, 그러니 제 전 직장에 연락해서 이런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 물어봤더니 전혀 몰랐다더군요. 그 지역의 경찰들이 자신들의 관할 구역 아래에서 일어난 일을, 그것도 접수된 신고내역을 위에서 보고받아 정리하는 인간이 살인 사건이라는 흉악한 사건이 일어났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말도 안되는 일이죠.

 

 그래서 저는 집요하게 녀석을 협박까지해가며 파고들어 봤지만, 녀석은 정말로 모르는 눈치였어요. 그럼 답은 하나뿐이죠. ‘윗선에서 이 사건과 관련된 소문이나 정보를 기밀에 붙이고 있다.’ 다른 가능성이 여럿 있는 상황에서 상당히 섣불리 내린 판단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저는 언론의 힘을 알고 있었던거지요.

 

 그들은 일년, 삼백 육십 오일, 눈에 불을 밝힌 채 곳곳을 쑤시고 다니며 먹이를 찾아다니는 굶주린 하이에나들이에요. 그들은 여기저기 어슬렁거리며 콕콕 찔러보다가 어디선가 기삿거리의 냄새를 맡으면 우르르 몰려와서는 그와 관련된 정보들을 닥치는대로 물고 뜯고보는 별종들이지요. 그런 그들 사이에서는 전화와 이메일보다 빠른 암묵적인 소문이 존재하고, 그들은 지옥의 간수가 머무는 침실을 들쑤실 정도의 배짱을 지닌 자들이기도 해요. 그런데 그들이 내놓은 기사들, 그것도 미지의 살상 무기가 사옹되었을지도 모르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특종의 살인 사건을 다루는 기사들이 사건 현장의 사진은 일절 첨부되어 있지도 않고, 기자의 상상력으로 이루어진 소설뿐이라니. 이 역시 말도 안되는 일이죠. 결국 제 결론은 이겁니다.

 

 ‘이번 사건의 숨겨진 경위를 본 상부에서는 이를 상당히 심각하게 받아들여 언론과 경찰들을 억압한 채, 사건의 해결을 기밀에 붙였다.’

 

 여기까지 도달한 저는 이제 더이상 생각할 것도 없었어요. 고 팀장님께서는 이번 임무의 최고 기밀사항을 제게 넘겨주신 것이고, 마침 저는 제법 높은 등급의 공무원 시험을 이미 치룬 전직 경찰인데다가 이번 사건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추리력과 논리를 지닌 인물이죠. 그외에도 모든 경위를 조합해 봤을 때, 만일 고 팀장님께서 저를 떠올리신다면 그 순간 저는 고 팀장님의 팀에 영입되는 것은 시간 문제겠다 싶었죠.”

 

 “어우, 소름 돋은 것 봐. 진짜 너 가끔씩 이랗게 무서울 때가 있다니까. 사실 나는 네가 여전히 경찰직을 달고 있을 줄 알고 이 자료가 기밀자료라는 사실을 내세우면서 강제로라도 이 일에 끌어들이려 했었거든. 그런데 경찰을 그만둔 상태였던 것도 모자라 속내까지 간파 당한걸로 보아 이번엔 나의 완패로군.”

 

 “뭐, 완패는 아니였어요. 고 팀장님께서는 제게서 2등상까지 받아낼 자격을 갖추신 분이시니까요. 저도 놀랐다고요, 10분 만에 제 거짓말의 넷 중 셋을 알아맞추시다니.”

 

 “늘 말했던 대로, 담배 덕이지. 그나저나 슬슬 가르쳐 줄 때가 되지 않았냐? 이번 사건 자료의 가장 큰 정보.”

 

 “아, 그거 말이죠? 고 팀장님 방식대로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가 잠시 장난스레 뜸을 들였다. 그러나 준혁은 묵묵히 대답을 기다리며 그의 말에 집중하였다.

 

 “이번 임무의 배후에 복잡한 뿌리가 박혀 있는 것 같아요. 그 증거로는 이 위조된 기밀임무 자료가 증거죠.”

 

 준혁은 상상도 못한 그의 결론에 온몸이 굳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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