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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자오의 세계로부터
작가 : 모어데반
작품등록일 : 2019.10.22

또 다시 다가온 세기말의 풍경.
가까운 미래, 서기 2086년, 겨울.

대한민국의 평범한 빚쟁이 종군기자 이시해는 다시금 위험 지역으로 취재 파견을 강요당한다.
<베트남 한국인 인부 실종사건>의 전말을 파해치기 위해 밀입국까지 감행한 시해.
그러나 잠입 취재 도중 시해는 <베트남 해적단>에게 붙잡히게 되고, 어딘가로 팔려가는데...
그리하야 도착한 곳은......이세계?
정의감 투철한 빚쟁이 종군기자의 이세계 생존기!

#SF판타지#이세계물#이능력물#미스테리#스릴러

 
사사받은 목숨(3)
작성일 : 19-11-10 21:16     조회 : 196     추천 : 0     분량 : 8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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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멋쩍음을 감추기 위해 시해가 헛기침을 했다.

 

 “이건 그···그겁니다. 전 당신들을 도와주러 왔기 때문에 쏠 수 없었던 겁니다.”

 

 그냥 잊고 있었던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애써 화제를 돌렸다.

 

 “어쨌거나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에요. 에스카를···아니, 비싼 조직과 만나셨다면 왜 이런 곳에 있는 거죠? 도망쳐야죠!”

 

 시해의 말에 크록들이 반문했다.

 

 “우리들은 그럴 수 없다. 대명률에 맹세코 결사 항전을 각오한 여든 아홉 조직의 대표의식으로써 나는 다른 심층의식의 감시 하에 임무를 완수해야만 해.”

 “또 그 대명률인지 뭔지 하는 규율이 문제입니까?”

 “대명률은 단순한 규칙이 아니네. 그대는 알지 못 할 테지만. 우리들 크록에게 있어 대명률은 삶과도 같은 것이지. 대명률 없이는 우리들의 의식도 존재할 수 없어.”

 

 답답한 소리에 시해의 언성도 저절로 높아졌다.

 

 “그래봤자 규칙일 뿐입니다! 한 번 어긴다고 큰 일 나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러나 크록들의 대답은 한결 같았다.

 “우리들에게 있어서 대명률을 어기는 일은 스스로의 영혼을 더럽히고 죽음에 가까워지는 일이야. 우리들은 지금 영혼이 더럽혀져 있으나 없으나한 존재로 타락해 죽는 것과 명예 있는 죽음 중 하나의 선택을 강요받고 있네.”

 

 이래서야 끝이 없었다.

 이런 식으로 시간을 끌게 되면 소탕 작전 개시 시각에 맞춰 탈출하는 건 불가능했다.

 아직까지는 그래도 설득할 시간이 있다고 판단한 시해가 최대한 초조함을 감추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꼭 두 가지 선택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할 이유가 뭐죠?”

 “결정된 사항이니까.”

 “그럼 결정 사항을 바꾸면 되겠군요! 당신네 조직의 다른 두꺼비 같은 크록들이 말하길 일정 수 이상의 조직이 있으면 대명률에 대한 결정을 바꿀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자 여든 아홉 조직의 눈동자에 힘이 들어갔다.

 

 “그 또한 가능한 것일 뿐 대명률에 의한 결정은 결코 단시간에 가능한 것이 아니야.”

 

 시해가 곧바로 말을 잘랐다.

 

 “가능은 하다는 거죠?”

 “······”

 

 그러나 시해는 곧 에스카가 없이는 그 결정을 번복하는 일 또한 할 수 없다는 것을 떠올렸다.

 지금 당장 기적처럼 에스카가 도착한다면 좋으련만.

 그런 요행을 바라고만 있기에는 상황이 너무 안 좋았다.

 그렇다면 여기선 가능한 선에서 크록들과 합의를 내릴 필요가 있었다.

 

 “좋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에스카, 아니, 비싼 조직이 없으니 다른 방안을 제안하죠.”

 “······비싼 조직의 채널은 이미······”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을 시간이 없었던 시해가 또다시 크록들의 말을 갈라섰다.

 

 “제게 지하수로의 지도가 있습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여기에는 네오 트라이앵글의 건물과 뉴타히티 시의 구간별 지도도 있죠. 그리고 무엇보다 비밀통로와 샛길에 대한 정보도 들어 있습니다.”

 

 시해가 바트로부터 손에 넣은 스마트폰을 들어보였다.

 뉴타히티 시의 구간별 지도 같은 게 있는지 확인을 해볼 시간 따위는 없었지만 지금은 물불 가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최대한 이 정보의 가치를 부풀려야 했다.

 

 “이 정보라면 후일을 도모하기에 충분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안타깝지만······”

 

 시해가 연이어 몰아치듯 크록들의 말을 끊었다.

 

 “그럼 이렇게 하죠! 제가 여러분들에게 네오 트라이앵글의 눈을 피해 지상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전쟁은 정보를 가지고 하는 겁니다. 그것 모를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겠죠? 적이 예상하지 못 한 샛길로 기습을 벌인다면 적에게 피해를 안겨주고 전략적 후퇴를 하는 것도 방법일 겁니다. 설마 죽음을 불사하는 것만이 당신들의 임무는 아니겠죠?”

 “······”

 

 시해의 언변에 압도당했는지 어쨌는지는 몰라도 어쨌든 크록들이 입을 다물고 침묵에 빠졌다.

 장고할 시간은 없었지만, 고민할 시간은 주어야 했다.

 거대한 눈동자가 지그시 시해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뜬금없이 화제를 돌려 다른 질문을 꺼냈다.

 

 “신기한 일이군. 자네는······비싼 조직의 숙주라고는 해도 아직 인간의 의식이 남아있는 듯 보이는데. 어째서 이렇게까지 우리들에게 협력하는 거지?”

 

 인간의 의식이 남아있다고?

 

 “······”

 

 다소 섬뜩한 상상을 하게 만드는 말이 아닐 수 없었다.

 설마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에스카에게 의식을 빼앗기기라도 한다는 것일까?

 어쩌면 네오 트라이앵글의 감시자들이 크록이라는 종족에 대해 더욱 엄중한 잣대를 들이대는 이유가 거기에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지금 당장 물어보기에는 당면한 문제가 더 시급했다.

 시해는 이 일을 잠시 동안만 불문에 부치기로 했다.

 

 “전 제 의지로 여기에 왔습니다. 사실은 에스카만 데려가려고 온 거지만······이렇게 당신네들을 먼저 만났으니 할 말은 해야겠어요. 이건 그냥 개죽음이라는 걸요!”

 “우리들에 대한 동정인가?”

 

 그 질문에 시해는 잠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딱 잘라 아니라고 말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시해가 대답했다.

 

 “그런 감정이 전혀 없다고 말 할 수는 없겠죠. 하지만 그보다는 더 근본적인 겁니다.”

 “더 근본적인 이유? 그게 뭐지? 비싼 조직이 자네와 함께 숭고한 의식을 치르기 위해 채널을 끊은 이유가 거기에 있을 지도 모르겠군.”

 

 또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이는 크록들의 말을 한귀로 흘려버리며 시해가 답했다.

 

 “지금 이대로 이 개 같은 상황을 그냥 지켜보고만 있으면 동족혐오에 빠질 것만 같았으니까. 인간끼리 뜯고 할퀴는 싸움만 해도 전 진절머리가 납니다.”

 

 목을 가다듬고 몇 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이 이상은 동족이 아니라 나 자신이 싫어질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당신네들을 도와주려는 겁니다. 날 위해서요.”

 “······”

 

 결연한 그 표정에서 크록들이 무엇을 보았는지 시해로서는 알 도리가 없었지만, 천만다행인 것은 그들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는 점이었다.

 

 “마지막 제안을 받아들이도록 하지. 우리들을 인간들의 심장부로 데려다주게.”

 “저쪽입니다.”

 

 크록들을 설득하는데 성공한 시해가 망설임 없이 방향을 가리켰다.

 

 “······”

 

 크록들은 시해가 가리키는 방향을 잠시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시해가 말했다.

 

 “가시죠.”

 

 

 + + +

 

 

 시해가 가리킨 방향은 동쪽이었다.

 동쪽은 바다가 있는 방향, 즉 지하수로를 통해 도시 쪽의 항구로 나가는 방향인 것이다.

 시해는 어떻게든 이들이 탈출 할 수 있는 장소로 최대한 데려갈 작정이었다.

 완전히 설득하는 일은 그 다음이어도 된다.

 시해는 에스카가 자신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빨리 눈치채주기를 바라면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시계를 보았다.

 02시 35분.

 작전 개시까지 앞으로 25분이었다.

 

 

 + + +

 

 03시 00분.

 잭은 작전 개시 시각이 되는 순간, 단상 위에 서있었다.

 그 앞으로 열을 맞춰 도열한 수 십 명의 완전 무장 상태의 군인들이 명령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기다림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잭이 손목시계를 힐끔 확인한 뒤, 명령을 내렸다.

 

 “현재 시각 03시 00분. 작전명 <독 안의 쥐>를 개시한다. 각 전투인원은 자리에 위치하고, 질서와 명령에 맞춰 진입하도록.”

 

 감시자들은 구령에 맞춰 대답하지는 않았지만, 질서정연하게 작전 구역으로 투입되었다.

 

 

 + + +

 

 

 쿠우우우우우···!

 지하수로의 서쪽, 먼 곳으로부터 낮은 진동이 울려퍼졌다.

 시해는 그것이 폭탄이 터지는 소리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스마트폰을 확인하자 03시 00분.

 작전 개시 시각이었다.

 시해가 크록들을 향해 말했다.

 

 “서두르죠. 군인들이 몰려올 겁니다. 우리는 저들이 지하수로를 탐색하는 동안 지상으로 올라가서 샛길을 통해 건물로 진입하면 됩니다.”

 “······”

 

 크록들은 아까부터 말이 없었다.

 순순히 하는 말에 따라주고는 있었기에 시해도 별 다른 질문을 하지 않았다.

 묵묵히 동쪽으로 옮겨지는 발걸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던 중 침묵을 참지 못한 것은 시해였다.

 마음 같아서는 에스카와 자신의 관계에 대한 것을 묻고 싶었지만, 그러자니 모르는 단어와 개념을 정립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급적 빠르게 이해할 수 있는 질문이 무엇이 있을까 잠시 고민하던 시해가 이런 질문을 했다.

 

 “여든 아홉 조직? 이라고 했나요? 당신들은······인간들하고 싸워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나요?”

 

 크록들은 대답을 꺼리는가 싶더니 이렇게 말했다.

 

 “호전성은 우리 종족과는 맞지 않는 성질이지. 그에 비해 인간들은 매우 호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 같더군. 그렇다면 전투의 결과는 정해져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지.”

 

 정리하자면 전투에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의미였다.

 

 “그건······죽으러 가겠다는 말하고 같은 거잖아요? 그런 희생에 무슨 의미가 있죠?”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지.”

 

 크록들 특유의 문맥을 건너뛰는 화법이 또 튀어나왔다.

 시해가 얼굴에 물음표를 띠었다.

 

 “······?”

 “인간들에게 인간들만의 싸움 방법이 있듯이 우리들, 크록에겐 크록 나름의 싸움법이 있다는 의미이네.”

 “죽으러 가는 게요?”

 

 그 질문에 처음으로 크록들이 시해를 진지한 눈길로 쳐다보았다.

 아니, 그보다는 호전적인 눈길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려보였다.

 

 “우리들이 이 세계에 존재하는 서른 종족의 정점에 선 군림자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거야. 이 싸움을 그대들이 압도적으로 이기고 있다고 생각하겠지. 크록들이 다른 이종족들을 어떻게 재패했는지 까마득히 모른 채로 말이야.”

 

 무언가 감추어둔 패가 있다는 것 같은 말투였다.

 그렇지만 시해가 보기에 그것은 허세에 지나지 않는 호기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도 그럴게 숨겨둔 패에 대한 정보가 없으니 판단도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크록들은 자신들의 말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시간이 우리를 감추어 주리라. 죽음 뒤에 피어나는 꽃처럼.”

 

 그 말의 의미를 시해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인간의 역사에서 사라져버린 민족은 되살아나지 않는다.

 

 

 + + +

 

 

 한편 지하수로로 진입한 네오 트라이앵글의 군대는 각 구역을 진압해 나가며 포위망을 좁혀가고 있었다.

 작전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해당 구역에 괴물들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내기 전까지는.

 잭의 무전기로 해럴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하수로 B구역을 완전 점령했습니다. 그런데 괴물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C구역을 도망간 것으로 보입니다.”

 

 잭은 지휘관답게 당황하지 않고 명령을 집행했다.

 

 “그렇다면 예정대로 C구역 진압을 시작하도록. 천천히 포위망을 좁혀 나가게.”

 

 무전기로부터 다시 해럴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하들로부터 괴물 놈들이 완전히 도망가 버리기 전에 뒤를 쫒아가야 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저도 같은 생각이구요. 괴물 놈들은 도망갈 셈입니다!”

 

 부하의 항명에 잭이 단호하게 으르렁 거렸다.

 

 “명령을 우선하는 게 좋을 거야, 해럴드! 불복하나?”

 “······명령에 따르죠.”

 

 해럴드의 목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된 뒤, 잭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불복은 곧 죽음이야, 해럴드. 난 현명하지 못 한 놈이 제일 싫어.”

 

 

 + + +

 

 

 잭의 의심대로 해럴드는 잭의 고집불통인 명령을 더 이상 따를 생각이 없었다.

 해럴드가 무전기를 집어던졌다.

 무전기가 퍽!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계획 변경이다. 별동대 투입시켜. 이대로 천천히 진압해가다간 놈이 도망갈 거야. 어서!”

 

 그의 아래로 분노 어린 눈동자를 한 수 십 명의 군인이 통로를 내달렸다.

 총책임자는 잭일지 몰라도 부하들의 직속상관은 자신이었다.

 이래라저래라 간섭받는 것에도 한계가 있었다.

 해럴드는 자고로 지구에서 용병 집단에 속해 있었다.

 그리고 현장에서의 자율성을 보장받지 못해서야 용병이라고 말 할 수 없었다.

 동료의 복수를 하지 못 한다면 더더욱 용병이라고 말 할 수 없었고 말이다.

 

 “놈이 동쪽 항구로 빠져나가기 전에 붙잡아야 해! 속력을 높인다! 보고는 30분 정도 늦춰서 올려!”

 

 

 + + +

 

 그렇게 해럴드의 명령에 따라 네오 트라이앵글의 행군이 빨라졌을 즈음, 에스카는 수로를 빠른 속도로 질주하고 있었다.

 자고로 크록들에게 있어서 물가는 고향이나 다름이 없는 공간이었다.

 더러운 5등급 샘물이든, 생물이 살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한 1등급 샘물이건 에스카에게는 최적의 환경이었다.

 에스카는 시해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숭고한 운명은 시해와 자신을 하나로 묶어놓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마찬가지로 숭고한 운명으로 묶여있었던 동족들의 존재도 느낄 수 있었다.

 이제는 끊어져버렸지만, 완전히 닫혀버린 것은 아니기에 희미하게 느껴졌다.

 에스카가 울부짖었다

 꾸옹!

 

 “간다! 곧!”

 

 

 + + +

 

 

 시해는 1시간을 내리 달려 동쪽 항구에 다다랐다.

 오늘 하루 동안 얼마나 다리를 혹사시켰는지 감도 잡히지 않았지만 어째서인지 피로감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조금 전에 다리에서 힘이 풀렸을 때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을 것만 같았는데, 신기한 일이었다.

 항구의 근처에 도착한 시해는 스마트폰을 뒤지는 척을 하며 시간을 끌었다.

 네오 트라이앵글의 감시자들보다 에스카가 먼저 도착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시해가 말했다.

 

 “잠깐만 기다려줘요. 지금 나갈 수 있는 샛길을 찾아봐야 하니까.”

 

 그런데 말을 건넨 크록들의 반응이 이상했다.

 

 “더 이상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좋네. 거짓말을 그대의 영혼을 더럽힐 테지.”

 

 시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그대가 우리를 탈출시키기 위해 이곳으로 데려온 것을 이미 아네. 동쪽으로 가자고 했을 때부터 알고 있었지. 그곳에서 건물 내부로 들어가는 길은 없을 테니까.”

 “······”

 

 시해는 크록들의 말에서 위화감을 느꼈다.

 

 “그렇다면 어째서 따라온 거죠? 대명률을 어기는 일이라고 했잖아요?”

 “대명률은 대명률에 참가하는 조직의 동의 의사에 따라 충분히 바뀔 수 있네. 그것을 이뤄내는 일이 어려울 뿐이지. 여기, 내 안에 있는 여든 아홉 조직과 그대의 안에 있는 중첩된 마흔 아홉 조직이 있었을 때부터 이미 대명률에 참여할 조직 수는 충분했네.”

 “제 안에 있는 조직이요?”

 

 시해가 두 눈을 끔뻑거렸다.

 

 “잠깐만요. 제 안에 당신네들 조직이 있다니요? 그게 무슨 소리죠?”

 

 크록들은 대답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대가 우리에게 제안한 첫 번째 제안을 받아들이도록 하지. 후일을 도모하는 것. 우리는 그 대가로 그대의 손안에 있는 정보보다 그대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기로 했네.”

 

 갑작스런 태세전환에 넋이 나간 시해가 되물었다.

 

 “언제는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그러지 않았어요? 왜 갑자기?”

 “지금까지 하지 않았나. 한 시간 동안.”

 

 시해는 그 말을 듣고 크록들이 지금껏 조용했던 이유가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면에서 그들끼리 논의를 주고받고 있었기 때문이었음을 깨달았다.

 사람 놀리는 것도 아니고 그런 논의를 하고 있었으면 얘기를 해줘야하는 거 아냐?

 투덜거리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그보다 충격적인 점은 자신의 안에 크록의 조직이 있다는 그들의 말이었다.

 

 “아니, 근데, 방금 제 안에 당신네들 조직이 있다는 말은 대체······”

 

 그러다가 갑자기 그들의 대화를 막는 거대한 폭음이 들려왔다.

 쾅! 쾅!

 시해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자신이 설치한 부비트랩이었다.

 

 “벌써?”

 

 너무 여유를 부렸던 것일까, 감시자들이 한치 앞까지 다가와 있다는 것이 실감이 되는 순간이었다.

 어쩌면 크록들을 도망치게 하기 위해 안내를 시작했을 때부터 각오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시해는 어쩐지 그 폭음 소리에 후련함을 느꼈다.

 폭탄 소리를 듣고 크록들이 말했다.

 

 “우리들이 시간을 벌어줄 수 있네.”

 

 아까 와는 정반대되는 소리에 시해가 눈살을 찌푸렸다.

 

 “방금 전에 도망간다고 그랬잖아요?”

 “후일을 도모한다고 했지.”

 “······”

 

 알다가도 모를 대화법이었다.

 이젠 딴지를 걸기에도 점점 지쳐갔기에 시해가 깊게 숨을 들이쉰 뒤 말했다.

 

 “됐어요. 내 한 몸 쯤 내가 챙길 수 있으니까. 세 번이나 전쟁터를 왔다 갔다 하면서 살아 돌아 온 종군기자를 얕보면 곤란하죠. 가요. 당신네들이 후위에 남으면 몸으로 막아야 하겠지만 난 이것들이 있거든요.”

 

 시해가 총과 수류탄 등을 들어보였다.

 

 “잘 따돌리고 무사히 도망칠 수 있으니까. 먼저 가요. 설득하기 되게 고생했으니 맘 바뀌면 곤란해요.”

 

 크록들이 그런 시해를 멀뚱히 바라보았다.

 

 “그 말은 거짓이 아니었으면 좋겠군. 진심으로. 후일을 도모하고 싶으니 말이야.”

 “하! 마음 같아선 에스카도 같이 딸려서 보내주고 싶은데, 여기 없는 게 아쉽지만 말이죠.”

 

 시해가 푸념을 내쉬고, 크록들을 쏘아보았다.

 어서 가라는 의미를 알아들었는지 크록들이 빨판 모양의 척수를 뻗어 지하수로 너머로 사라졌다.

 

 “꼭 다음에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군. 비싼 조직과도 같이 말이야.”

 

 크록들이 마지막 말을 남겼다.

 시해는 그 말을 들으며, 조용히 혼잣말했다.

 

 “이세계에서 이종족들하고 브로맨스하는 건 내 취향이 전혀 아닌데······어쩌다가 이 꼴이 된 거지······하······”

 

 크록들이 완전히 자취를 감춘 후 시해는 몰려오는 감시자들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잠시 감상에 잠겼다.

 그리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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