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로맨스
미혼사유
작가 : Giulia
작품등록일 : 2019.11.10

나는 나이 39세에 아직 미혼이다. 내 경험을 토대로 현 시대를 살고 있는 일부 여자, 남자에 대한 자화상을 그려보고자 한다.  주변에서 내 삶이 평범하지 않다는 소리를 자주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어찌 보면 소설을 가장한 에세이이다. 특히  내 미혼 상태에 대한 궁금함을 표현 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 그 궁금함은 자신들과 다른 내 삶과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서부터 온다. 사회가 많이 변한 거 같으면서도 아직 고리타분한 사람들이 많다. 사실 굳이 이해를 바라지도 않지만 그들은 내 삶을 굳이 전통적인 방식에 맞추려고 안달이다.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나도 모를 이 소설을 쓰면서 추억을 되새겨 보기도 하고 나를 또 한 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니 이것만으로도 흡족하다. 하고 싶은 결혼을 못 했지만 후회는 되지 않는다. 글을 쓰면서 나도 한 번 성숙하는 계기가 되리라 믿는다. 아무튼 멀쩡하게 생겨서 왜 결혼을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답이 되었으면 하고, 다른 사람들을 자신들의 지식과 경험에만 국한하여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11. 결혼, 책임질 수 없는 책임질 상황
작성일 : 19-11-10 19:56     조회 : 247     추천 : 0     분량 : 9831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G는 몇 달 간 방구석이라는 동굴 속에서 회사도 다니지 않고 잘 먹지도 못하고 아픔을 달래다가 새로 들어간 스타트업에서 예상치 안은 사내 연애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연애가 하고 싶어 눈을 부릅뜨고 사람을 찾던 20대에는 눈에 드는 남자 한 명 만나기가 그렇게 어렵더니 30대의 연애는 예상치도 못한 장소와 상황에서 별로 관심도 없었던 사람과 시작됐다. 아직 움츠린 마음 상태였고 마음에 꼭 드는 남자는 아니었지만 너무 힘든 연애만 하다 보니 흘러가는 대로 한번 살아보자 하는 마음이 생겼다. 봄이기도 했고, 새로운 직장에서 마음을 반전시킬 수 있는 새로운 인연과 인생을 기대했을 지도 모른다. 그게 수렁인 줄도 모르고 말이다. 둘의 합의하에 그들의 연애는 회사에서 비밀이었다. 처음 하는 비밀 연애는 나름 스릴 있고 재미있었다. 적어도 처음엔 그랬다.

   그의 관심을 처음 느꼈던 순간은 그녀가 사무실로 면접을 보러 간 날이었다. 그녀보다 한두 달 전에 먼저 입사한 그의 자리는 사무실 입구가 바로 보이는 출입문 맞은편 벽을 등지고 있는 끝자리라 그녀가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그녀를 볼 수 있었고, 그녀도 그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시선을 느끼고도 그녀는 일부러 시선을 그리 주지 않았지만 그녀를 보고 눈이 커지는 그를 곁눈으로 볼 수 있었다. 그녀는 면접을 위해 회의실로 들어가 임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자 그는 일부러 지나가면서 회의실 문을 열고 인사를 건넸다. 인사팀도 아니었고 사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지만 시선을 주지 않은 그녀에게 얼굴 도장을 찍었던 것이다. 그녀도 가볍게 인사를 했다. 그가 지나가고 안 보이자 그녀는 씩 웃었다. 의도가 너무 보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특이하게 사전에 그녀를 스카우트 하려는 대표와 먼저 미팅을 먼저 한 후라 수월하게 입사하게 되었다. 지금껏 일했고 좋아했던 분야의 일을 주요 사업으로 가지고 있던 회사라 기대하고 들어갔다. 국내에 문화 마케팅을 하는 회사는 H카드나 그녀가 전에 일했던 K마당 이외에는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 많은 기대가 되었다.

   하지만 사실상 운영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았다. 플랫폼이 기획한 대로 제대로 구현되지 않고 방향이 계속 번복되자 대표와 임원들 간의 갈등도 심했고, 방향이 바뀔 때마다 개발을 새로 해야 했던 플랫폼 개발 관련 팀들은 모두가 불만이었다. 그 동안 경험이 없고 게으른 대표가 경력 있는 임원들에게 일을 맡겨 놓기만 하자 임원들은 태만해지고 너무 자신들 마음대로 일을 진행시키다 보니 일이 잘 안 돌아가기도 했고, 나중에서야 대표가 끼어들어 방향을 자꾸 바꾸니 임원들과 일을 맞춰 오던 직원들은 물만이 쌓였던 것이다. 임원들은 억하심정인지 대표와 그 직원들 사이를 이간질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대표는 자신이 계획한 일을 밀어 붙이기 위해 그녀의 입사를 서둘렀던 것이다.

   그래서 직원들 간의 불화가 막 시작되고 있는 회사에 입사하게 된 G는 영문도 모른 체 서로를 헐뜯는 것 같은 회의 분위기에 휩쓸리기도 했고, 회의 후 대표가 나가자 불평불만을 하는 것을 듣게 되기도 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임원 중 한 명이 그녀의 입사를 반대했다고 한다. 자신과 영역이 겹친다는 이유에서였다. 자기 위치에 대한 위협으로 느꼈을 것이다. 그런 분위기에서 그는 티는 내지 않으면서도 회의 시간에는 그녀의 의견에 지지도 해 주고 일에 대한 설명을 친절하게 해주는 것으로 그의 관심을 표현했다. 그는 마케팅 팀장이었고 그녀는 홍보 팀장이었기 때문에 앞으로 같이 의논해야 할 일도 많았다.

  

   ‘오늘 팀장들끼리 한 잔 어때요? 환영회도 할겸.’

  

   어느 날 그는 문자로 팀장급들을 모아 그녀의 입사 축하 회식을 잡으며 퇴근 후 자리를 마련했다. 그 날 그녀는 팀장들과 친해지기 위해 끝까지 남았고 그 날을 계기로 그의 마음은 확실히 확인하였다.   그녀도 그에게 호감이 없지는 않았다. 남자로서 반한 것은 아니었지만 첫 인사도 기억에 남았고, 새로 입사한 그녀에게 호의적이며 서로 마주칠 일이 많아서인지 눈에 들어오는 점은 있었다. 미남은 아니었지만 나름 준수했고 자신만의 주관이 뚜렷한 사람이었다. 특히 보통 남자들이 가지고 있지 못한 자신만의 패션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고, 일하는 것도 평범해 보이지는 않았다. 사람들을 들었다 놨다 하는 말주변도 뛰어났다. 하지만 남자로서의 확신은 들지 않았다. 그는 그런 그녀의 마음을 읽었고 그 후로 더 적극적으로 그녀에게 마음을 표시를 하였다. 그리고 정성을 봐서 일단 은 만나보기로 했다.

   그들의 자리는 고개만 돌리면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자리였는데, 그는 업무 시간 중간 중간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아 눈빛 교환을 시도하기도 했고, 메신저로도 그녀를 칭찬하고 자신을 어필하는 말들을 잘 던져 그녀를 웃게 만들었다. 회의가 잡히면 시키지도 않았는데 미팅 자료를 같이 만들어 주고, 그녀의 일을 덜어 주기 위해 자진해 업무를 나누어 갖기도 했다. 그리고 둘이 회의를 할 때는 애정이 담긴 눈빛을 보내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어 나갔다. 자연스럽게 만나는 사이가 되자 회사가 끝나면 시간차를 두고 나가서 밖에서 만나 같이 퇴근하고 저녁도 먹었다.

   주말에는 주로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데이트를 했다. 방구석에서 뒹구느라 한동안 못 갔던 동네라 새로 생긴 가보지 않은 카페를 찾아다니고, 또 거리에 즐비한 매장과 플리마켓을 구경하며 소소하게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내 옆 자리에 우산 있으니까 쓰고 가.’

   ‘고마워, 생각도 못했어.’

   ‘뭐 이 정도 가지고. 나 장난 아니지?’

  

 오후에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 날이었다. 그는 미팅에 나갔다 바로 퇴근하는 날이어서 같이 퇴근할 수 없는 날이기도 했다. 그는 미팅을 하러 먼저 나가면서 톡을 남겼다. 그녀는 생각지도 않은 배려에 감동했다.

   그리고 그는 작은 변화도 알아채고 칭찬할 줄도 알았다. 어느 날은 그녀가 페디큐어를 새로 하고 간 날이었다. 짙은 파란색 바탕에 엄지발가락에는 금색으로 장미꽃이 그려 있었다. 업무 회의를 하기 위해 둘이 회의실로 들어가 앉아 회의를 막 시작하려고 하는 찰나, 그는 유리 책상 밑으로 보이는 그녀의 발을 보고 예쁘다고 칭찬했다. 그녀는 그의 센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원래 여자는 사소한 것에 감동한다. 지금까지 그의 행동으로 보아선 그는 세심하고 자상하며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런데 그는 알면 알수록 더욱 더 범상치가 않았다. 한두 달 뒤 그녀의 친한 언니 결혼식에 같이 가게 되었고 그 후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슬슬 서른 후반에 접어드는 G는 그 얘기를 피해 갈 이유가 없었다. 그는 결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기 위해 숨겨 놓았던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는 평생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 그가 털어놓은 이야기는 이랬다.

   그는 시골 출신이었는데, 아버지는 나이가 지긋한 과거 그 지역 국회의원을 지냈던 인물이고 그의 어머니는 아버지의 본처가 아니었다. 젊은 어머니는 나이가 많은 아버지를 사랑하게 돼 이미 본처와 자식들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아이를 낳았고 그게 그였다. 아버지가 그들을 나 몰라라 하지도 않았고 그를 무척이나 예뻐했지만 어릴 적 자신과 어머니는 본가에 살지 못하고 따로 살림을 꾸려 살아가야 했고, 어머니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하나뿐인 아들을 위해 그때부터 힘든 일을 마다 않고 해 결국 병까지 얻었지만 아직도 쉬지 않고 일하고 있다고 했다. 이제는 내가 알아서 먹고 살만하니 하지 말라고 해도 아들에겐 자신밖에 없다며 뭐라도 하나 해주고 싶고 물려주고 싶어 일을 쉬지 않는다고...

   그는 부모님을 사랑하지만 그와 동시에 부모님 때문에 자신이 겪어야 했던 아픔들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책임질 가족이 있으면서도 또 다른 책임질 상황을 만든 아버지, 특히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놓고는 하나뿐인 아들은 생이 끝날 때까지 책임지겠다고 사서 고생하는 어머니가 가슴 아프면서도 싫었다. 나이가 드니 그는 이제 명절 때면 본가에서 자기도 하고 그 가족들과 어느 정도 가까워 졌지만, 아직도 어머니는 본가에 잘 가지 못하며 가더라도 죄인처럼 얼굴을 똑바로 들지 못하고 볼 일만 얼른 보고 바로 돌아와야 했다. 그래서 그는 누군가를 책임질 만한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 책임이라는 게 가볍고도 무거워 보이는 아이러니함을 어릴 적부터 느껴 왔던 것이다.

   그의 말에는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애증이 묻어 있었고 결혼에 대한 생각이 왜 부정적인지 그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전 여자 친구도 결혼을 원했지만 그러지 못해 헤어졌다고 했다. 어린데다 부잣집 딸이어서 자신과 결혼만 해주면 풍족하게 살게 해주겠다고 온갖 말로 자신을 설득했는데 결국은 승낙할 수 없어 떠나보냈다는 것이다.

   결국 결혼은 싫지만 너는 좋으니 계속 사귀자는 무슨 삼류 드라마 같은 상황인가 싶었지만 그의 말을 들으니 그런 사고를 갖게 된 그를 그녀가 어찌할 도리는 없다는 것이 충분히 느껴졌다. 그런 그를 억지로 바꾸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그녀도 무턱대고 만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었기 때문에 고민은 시작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자상하고 배려하는 그를 마냥 내칠 수도 없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러던 그들의 관계를 결국 깔끔하게 정리하게끔 만든 것은 그의 결혼관 때문이  아니었다.

  

  

   그맘때쯤 어지럽던 회사가 정리되고 있었다. 대표는 칼을 빼 들어 자신의 의견에 반기만 들고 직원들과 자신을 이간시킨 임원들을 모두 정리했다. 그녀의 입사를 반대했던 임원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녀는 억하심정에 일을 출근도 잘 안했고, 나와도 밖에서 시간을 때우다 오기 일수였다. 기획의 방향이 자꾸 바뀌기도 했지만 일을 제대로 쳐내지 못하는 플랫폼 팀은 불화와 불만으로 인원이 알아서 줄었다. 결국 대표와 새로운 사업을 기획하고 이끌어 가야 하는 사람은 그녀와 남자 친구 둘이었다. 회사 일에 자신들의 의견과 방향을 녹여 넣고 실현해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었다.

   대표는 문화 쪽으로 인프라를 늘리고 싶어 그쪽으로 경험이 있는 그녀를 영입한 만큼 그녀와 신규 온라인 플랫폼과 새로 오픈할 문화 공간 기획을 시작했다. 그녀도 그쪽으로 커리어를 늘리고 싶었던 지라 대표의 의견을 수렴하면서 그 동안 쌓은 경력을 활용해 일을 진행해 나갔다. 플랫폼의 기획을 대표가 원하는 방향으로 바로 잡아 주기 위해 개발팀 사람들과 대신 맞서 주기도 했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해 공간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많은 아이디어도 제시했다. 그래서 전과는 달리 다른 사람들 보다 대표와 둘이 미팅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반면 엔터테인먼트 출신인 그는 대표의 의도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오직 드라마 제작에만 관심이 많았다. 대표가 원하는 대학생들 대상 프로젝트를 진행시키면서 대표의 관심을 드라마 제작 투자로 이끌 심산이었다. 대표가 원하는 프로젝트 진행을 위해서는 외부 미팅이 불가피했다. 여름이 돌아왔고, 뙤약볕을 마다 않고 외부 미팅을 나가는 일이 많아지자 그는 몸이 고됐다. 그래도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열심을 다 했다. 거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되었다.

   몸을 사르며 일을 진행시키고 사무실에 돌아오면 대표는 자신의 여자 친구와 미팅을 하는 중이었다. 일이지만 남자 대표와 오랜 시간 동안 미팅을 하는 꼴이 우선 보기 싫었다. 그리고 자신은 이렇게 고생하며 일을 하고 와도 자기가 원하는 일보다는 그녀와 하는 일에 더 많은 시간과 관심이 쏠리자 기분이 나빴다. 자기가 들이민 드라마 제작 투자 제안서는 안중에 없어 보였다. 드라마 제작은 사실 너무 큰돈이 한 번에 들기 때문에 대표로서도 쉽게 결정하고 발을 들일 수 없기도 했다. 여자 친구가 대표의 의견을 기획으로 풀어 주고 직원들과 싸워주며 밀어 주는 것도 짜증났다. 속이 꼬일 데로 꼬여 갔다.

   그는 점점 업무 시간에 밖으로 돌았다. 퇴근 후 연락해 보면 항상 술에 취해 있었다. 원래 술을 좋아하고 한 번 마시면 취할 때까지는 성격인 것은 알았지만 그 동안은 그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인지 잘도 참고 있었다. 초반엔 회사 회식 외에는 술 마시는 횟수가 많지 않았지만 이제는 아주 거의 매일같이 삐뚤어질 때까지 마시는 것이었다.

  

   “요즘 술을 너무 자주 마시는 거 같아.”

   “나 요즘 힘들잖아. 이렇게 더운데 대학 학생회 대표 만나겠다고 찾아가서 기다리지 안나..”

   “그래, 많이 힘들겠다. 그래도 좀 적당히 마시면 안 돼?”

   “술은 취하려고 마시는 거야.”

  

   술을 마시면 지갑도 잃어버리고 집 열쇄도 잃어버리는 일이 허다하게 생겼다. 돈 아깝다고 월세 집에 도어 록을 설치하지 않고 열쇄를 고수했는데, 술 먹고 잃어버리는 것을 대비해 열쇄를 복사해 사무실에 꾸러미를 보관하고 잃어버리면 싸구려 모텔에서 자고 다음 날 출근해 회사에서 열쇄 하나를 빼 갈 정도였으며, 열쇄를 미쳐 복사 못 해 놨을 때는 문 고리 자체를 바꿔야 했다. 그 돈이면 차라리 도어 록을 설치하는 게 낫겠다 싶었지만 전세 집이니 도어락은 달기 싫다고 했다. 이런 패턴을 보니 과거에도 이런 일은 평소 그의 일상이었다.

   그리고 더 이상의 퇴근 후 데이트는 없었다. 그녀가 바빠져 늦게 퇴근하는 날이 많아지기도 했고 그의 술 마시는 날이 많아지기도 했지만 그의 본성이 슬슬 나왔다. 원래 주말에 집밖에 안 나오는 성격인데 그 동안 그녀와 사귀기 위해 노력을 했던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그녀는 그가 원래 자상하고 배려하는 남자인 줄 착각해 왔다. 그런데 속이 꼬이자 이제는 대놓고 집에서 나오기 싫다고 하고 만남 자체를 미뤘으며, 만나려면 자신의 집 쪽으로 오라는 말을 너무나도 자주 당연하게 뱉었다. 나중에는 회사에서 매일 보는데 따로 만날 필요가 있냐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여기까지는 일이 힘들어 그랬다고 생각하고 넘어 갈 수 있었다. 하지만 가장 그녀를 힘들게 했던 것은 정신적인 스트레스였다. 그가 술을 너무 마시는 것도 스트레스였지만, 술을 안 먹은 날에는 그녀는 퇴근길에 그에게 전화를 걸어 이런 저런 얘기를 할 수 있었는데 그는 꼭 뭐하다 왔는지, 대표와 무슨 얘기를 했는지 자꾸 캐물으며 그녀가 하는 말마다 태클을 걸었다. 그래서 결국 말다툼으로 통화는 끝이 났다. 그녀가 이제 그만 만나야겠더라고 생각한 그 날은 못난 인간성까지 드러났다. 그 날도 무슨 일을 했는지, 대표와 무슨 말을 했는지 물어봐 대답을 하는 중이었다. 그는 일 돌아가는 게 자기 생각과 다르다고 생각이 들었는지 갑자기 엉뚱한 대목에서 버럭 화를 냈고 막말을 퍼부었다.

  

   “아니, 왜 갑자기 화를 내?”

   “너 그렇게 해서 뭐가 될 거 같아? 안 돼!”

   “뭐가 안 된다는 거야. 정확히 말을 해 봐.”

   “그렇게 해서 나중엔 어떻게 할 건데?”

   “그걸 지금 기획하는 거 아니야. 어떻게 운영할지.”

   “넌 아부로 회사 생활 하는 구나?”

   “뭐?”

   “세상엔 아부로 사회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지.”

   “그래서 내가 지금 아부를 한 다는 거야?”

   “아냐?”

   “대표가 그 기획을 같이 하자고 해서 난 들어왔고, 회사 대표의 의도를 반영해서 프로젝트를 진행해 주는 게 뭐가 아부라는 거야? 너 하고 싶은 대로 안 되니까 지금 이러나 본데, 고까우면 너도 아부 해서 너 하고 싶은 거 하던가! 아님 네 회사를 차리던지!”

  

   너무 어이가 없었다. 그녀는 드라마 제작이 아닌 문화 마케팅을 위해 고용된 사람이었다. 도대체 뭐가 아니라는 건지 딱 부러지는 설명도 없이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화를 냈다. 그리고 설령 아부해서 편하게 일했다손 쳐도 자기 여자 친구가 편하게 일하는 걸 고깝게 생각해야 할까? 그리고 그녀는 딱딱한 집안 분위기에 집에서 조차 아부란 걸 해 본 적이 없다. 그런 건 성격에 안 맞았다. 그 대목에서 그녀는 인내의 한계를 느꼈다.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어 그녀도 같이 화를 내고 조목조목 따진 후에 더 이상 대화를 할 수 없고 할 필요도 없어 전화를 끊었다. 한 인간에게 완전 실망했고 정이 뚝 떨어져 앞으로 상종하고 싶지도 않았다. 전화를 끊은 순간부터 그는 그녀에게 더 이상 아무런 존재가 아니었다.

  

  

   그 다음 날부터 그는 그녀에게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인사도 안 하고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징그럽고 구역질이 났다. 그러자 그도 모른척 행동했다. 차라리 다행이었다. 상종하기 싫은데 왜 그러느냐고 묻기라도 하면 정말 짜증날 거 같았다. 이제는 서로 다른 프로젝트를 하기 때문에 마주칠 일도 별로 없었고 그녀는 일에 열중하는 시기였기 때문에 신경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해도 복도에서 가끔 마주치는 일과 대표와 같이 셋이 이야기 하는 일은 피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조금은 불편한 나날들이었다. 그런데 또 생각지도 않은 사건으로 앓던 이가 빠졌다. 경거망동한 그의 업무 태도가 점점 더 엉망이 되어 자기 발등을 찍게 된 것이다.

   우선 그가 지금의 업무를 하기 싫어하는 게 보였다. 그래서 그는 대표에게 드라마 제작 대본을 들이밀며 전보다는 자주 압박을 넣었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그의 능력을 인정하던 대표도 마음에 불편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여름 내내 외부 미팅을 하며 힘들게 이어오던 업무의 결과인 동영상 제작을 남아 있던 인턴들과 진행하고 있었는데, 퀼리티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영상이 결국 엉망으로 나왔고, 그런 결과를 낸 인턴은 대표에게 직접 꾸지람과 훈계를 들으면서 그 동안 쌓아 왔던 불만을 더 키우게 되었다. 그와 그 인턴은 자기들의 잘못은 보지 못하고 인정 않은 채 같이 불만을 품었다. 그는 그 인턴을 달랜답시고 인턴들을 모두 불러다 술자리를 마련했다. 그리고 그들을 데리고 회사, 대표, 그리고 그녀 욕을 해댔다. 불만을 가진 인턴들은 한 마디씩 보탰다. 자신의 말이 어떠한 결과를 불러올 줄 모른 채 말이다.

   인턴들 중 모두가 회사에 불만을 품었던 것은 아니었다. 기존 멤버가 나가고 새로 들어와 G의 밑에서 재미있게 일하고 있던 인턴이 있었다. 그는 회사가 좋았고 하는 일도 좋았다. 그런데 다른 팀장이 인턴들을 불러 욕을 하며 불화를 조장하고 부추기자 마음이 불편했고 이건 아니다 싶었다. 결국 핑계를 대고 그 자리를 빠져 나와 회사에 남아서 야근을 하던 그녀에게 그 상황을 보고했다.

   상황의 심각성을 파악한 그녀는 대표에게 바로 전화를 했다. 대표는 그를 내보내야겠다고 했다. 하지만 게으르고 우유부단한 대표는 오전 내내 혹은 오후 내내 까지 회사 출근을 안 하는 날이 많아 오후에 외근을 나가 버리는 그와 마주칠 기회가 바로 생기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그를 쫓아낼 딱 부러지는 이유도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통보가 차일피일 미뤄지는 상황이었는데 그는 상황 파악을 못하고 또 다시 쐐기를 꽂는 행동을 저질렀다.

   점심시간 그는 그와 친하게 지내는 디자인 팀장과 둘이 점심을 먹으러 나가 밥을 먹으면서 낮술을 마셨다. 종종 한두 잔씩 하기는 했으나 그 날은 둘 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취할 정도 까지 마셨다. 대표가 운영을 제대로 하지 못하니 그들은 회사도 만만했고 대표도 만만했다. 그 날도 대표는 사무실에 나오지 않았으니 차라리 사무실에 들어오지 말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는 사무실에 들어와 술주정을 해 버렸다. 특히 그녀 밑에 일하던 인턴을 또 데려다가 자꾸 헛소리를 하고 일을 못하게 만들었다. 그녀를 골탕 먹이려는 이유보다는 그 인턴의 고향이 자기와 같아서 나름 챙겨 준다는 이유였다.

   결국 그녀가 나서서 데려오려  하자 그는 시비를 걸었다. 그녀는 그 인턴이 해야 할 스케줄이 있고 그 후 대표에게 보고를 해야 하니 그만 하라고 말했고, 그는 못 믿겠다며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해 보자고 하며 시비를 건 것이다. 그리고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댔다. 대표가 받지 않아 확인이 늦어지자 말다툼이 이어졌고 사무실 안 그들 밑의 직원들과 인턴들은 침묵하며 불안에 떨어야 했다. 마침 대표와 전화 연결이 됐고, 대표가 그의 계속된 전화와 혀 꼬부라진 소리로 그 날의 사태를 알게 되었다. 그로써 그는 얼굴도 자주 못 보는 대표에게 자신을 쫓아낼 명확한 명분을 주게 되었다. 며칠 후부터 그를 영원히 볼 수 없게 되었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14 에필로그 2019 / 11 / 10 224 0 2241   
13 12. 단 한 사람에게 단 한 사람이고 싶다. 2019 / 11 / 10 236 0 7092   
12 11. 결혼, 책임질 수 없는 책임질 상황 2019 / 11 / 10 248 0 9831   
11 10. 사랑의 불청객, 부모라는 이름. 2019 / 11 / 10 263 0 9390   
10 9. 멈출 줄 모른다면 당신이 바로 스토커 2019 / 11 / 10 245 0 5968   
9 8. 자기는 연봉이 얼마야? 2019 / 11 / 10 240 0 10643   
8 7. 나쁜 남자는 되기 싫고... 2019 / 11 / 10 227 0 7957   
7 6. 시집오면 우리 엄마랑 절에 갈 수 있어 2019 / 11 / 10 241 0 10831   
6 5. ‘진심은 대게 서툰 법이다.’ 2019 / 11 / 10 234 0 7613   
5 4. 커피 한 잔 놓고 고사지내는 명문대생. 2019 / 11 / 10 233 0 7137   
4 3. ‘너와 결혼까지 생각했어.’ 2019 / 11 / 10 239 0 7145   
3 2. 가슴 속 불덩이는 홀로 타 버리기도 한… 2019 / 11 / 10 224 0 5965   
2 1. 첫 사랑, 그 바보 같던 시절. 2019 / 11 / 10 234 0 7386   
1 내 나이 39세, 난 아직도 대화가 통하는 남… 2019 / 11 / 10 420 0 2518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