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로맨스
미혼사유
작가 : Giulia
작품등록일 : 2019.11.10

나는 나이 39세에 아직 미혼이다. 내 경험을 토대로 현 시대를 살고 있는 일부 여자, 남자에 대한 자화상을 그려보고자 한다.  주변에서 내 삶이 평범하지 않다는 소리를 자주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어찌 보면 소설을 가장한 에세이이다. 특히  내 미혼 상태에 대한 궁금함을 표현 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 그 궁금함은 자신들과 다른 내 삶과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서부터 온다. 사회가 많이 변한 거 같으면서도 아직 고리타분한 사람들이 많다. 사실 굳이 이해를 바라지도 않지만 그들은 내 삶을 굳이 전통적인 방식에 맞추려고 안달이다.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나도 모를 이 소설을 쓰면서 추억을 되새겨 보기도 하고 나를 또 한 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니 이것만으로도 흡족하다. 하고 싶은 결혼을 못 했지만 후회는 되지 않는다. 글을 쓰면서 나도 한 번 성숙하는 계기가 되리라 믿는다. 아무튼 멀쩡하게 생겨서 왜 결혼을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답이 되었으면 하고, 다른 사람들을 자신들의 지식과 경험에만 국한하여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8. 자기는 연봉이 얼마야?
작성일 : 19-11-10 19:23     조회 : 242     추천 : 0     분량 : 10643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G는 오랜만에 동성 친구에게 남자 한 명을 소개받기로 했다. 주선자는 G가 사귄 남자 친구에 대해 독설을 자주 퍼붓던 그 친구다. 비가 추적추적 오는 한 여름날 밤, 둘은 청담의 이름만 포차이고 건물에 번드르르하게 자리 잡은 한 술집에서 만나 회포를 풀고 있었다. 알고 지낸 지 오래니 서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과거 얘기를 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로 지낸 동창으로, 대학에 입학한 이후로 G는 그 친구에게 소개팅을 두어 번 시켜 줬었고, 그 중 한 명과는 사귀기기도 했었다.

  

   “근데 그 오빠랑 잘 사귀는 거 같더니 왜 헤어졌어?”

   “아, 내가 말 안했었나? 그 오빠가 거짓말을 하나 하더라.”

   “무슨 거짓말?”

   “자기가 나온 학교 캠퍼스 구경 가자고 하면서 K대를 데려가더라고.”

   “어머...”

   “너 그 오빠 어디 나왔는지 알지? 사실 별로 좋은 대학 아니잖아.”

   “그럼 알지. 대학 연합 동아리 선배였는데. K대는 회사 다니면서 사이버 대학으로 졸업한 거고.”

   “물론 일부러 캠퍼스 보여주러 간 건 아니었고 그 근처로 놀러 갔다가 지나가게 됐는데 구경 가자하면서 거기 나온 척을 하더라고.”

   “너 알게 되니까 뭐래?”

   “뭐 미안하다 하지. 일부러 속일 생각은 아니었다고 하더라고.”

   “그래, 괜히 객기 부리다 부스럼 낸 거 같다.”

   "맞아, 그것 가지고 헤어질 생각은 아니었는데...나도 평소에 지랄 맞게 굴었지 뭐.”

  

   둘은 까르르 웃었다. 친구 성격이 제멋 대로긴 했다.

  

   “지금은 결혼해 애 낳고 잘 살더라. 나도 연락 안한지 꽤 됐어.”

   “그래 그 오빠 결혼하고 싶어 하긴 하더라.”

   “근데 넌 나한테 소개팅 한 번을 안 해주니? 난 몇 명 해줬는데?”

   “두어 번 밖에 안 되는데 무슨 몇 명이야.”

   “아무튼 난 해줬잖아. 인간적으로 너무한 거 아니야?”

   “알았어, 해줄게. 갑자기 생각나는 애가 있는데 볼래?”

  

   친구는 스마트폰을 잠시 만지작거리더니 한 남자의 K톡 프로필 사진을 그녀에게 보여줬다. 미남은 아니지만 훈훈한 편이었다. 친구는 그 남자를 알게 된 경위와 그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내 대학 동기 D 알지? 걔 H그룹 다니잖아. 걔 회사 동기야. 친구 한 명씩 데려와 술 마시자고 해서 두 번 정도 같이 만나 술을 마신 적 있어. 키도 커.”

   “너 편입했으니까 그럼 나보다 어리겠네?”

   “아마 두 살 정도 어릴 걸. 괜찮아?”  

   “두 살 어리면 뭐 걔도 30대네. 근데 너랑 뭐 있었던 건 아니지?”

   “당연하지, 그럼 내가 소개해 주겠니?”

   “그래, 그럼 한 번 물어봐.”

  

   G는 평소 연하를 좋아하지 않았으나 둘 다 서른이 넘었다고 생각하니 같이 나이 먹었구나 하는 생각에 연하에 대한 편견이 사그라졌다. 친구는 그 자리에서 바로 남자에게 톡을 남겼다. 조금 후 답변이 왔다. 친구는 나에 대한 정보를 그 남자와 몇 분간 주고받았다. 그리고는 긍정적인 답변이 돌아오자 친구가 한 마디 한다.  

  

   “너만 좋은 일 시켜 줄 순 없지. 친구 한 명 데리고 나오라고 해서 넷이 만나자.”

   “그래, 좋아. 미팅이 돼 버렸네.”

  

   역시 친구다운 발상이었다. G도 둘이 만나 어색한 거 보다는 같이 만나는 게 편하고 재미있을 거 같아 수락했다. 둘은 기분 좋게 수다를 떨고 오랜만에 있을 미팅에 둘은 기분 좋게 헤어졌다.

  

  

   미팅 장소는 교대 근처의 한 이자카야로 잡혔다. 각각 다른 회사에 다니는 넷은 평일 오후 회사를 마치고 7시 반까지 그 장소로 모이기로 했다. G가 가장 먼저 도착하고 그다음 그녀의 소개팅 상대, ‘H그룹 남’이 도착했다. 둘이 어색하게 몇 마디 나누고 있는 사이 다행히 그녀의 친구가 도착했다. 친구와 남자는 두어 번 술 마신 사이이면서 아주 친했던 사이인 양 하이파이브를 하며 인사를 나눴다.

   남자의 친구가 마지막으로 도착했다. 사람이 넷이나 되니 어색한 분위기는 금세 사라졌다. H그룹 남이 데려온 친구도 D생명에 다니는 키 큰 미남이어서 친구도 기분이 좋아 보였다. 넷은 오랜만에 하는 미팅 자리가 즐거웠는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급기야 넷은 헤어지기 아쉬워서 2차를 가기로 했다. 장소는 H그룹 남이 데리고 왔던 ‘D생명 남’의 집이었다. 혼자 자취를 하는 그는 넷이 통한다고 느꼈는지 모두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방이 하나 딸려 있는 혼자 살기 좋은 아파트였다. 거실에 상을 펴고 편의점에서 사온 맥주와 안주를 풀었다. G의 머릿속에 문득 스쳐 가는 생각이 있었다. 모두를 집에 초대한 거 보면 친구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그녀도 H그룹 남과 서로 호감이 있는 분위기여서 따라 나온 친구들 둘을 엮어 보기로 했다. 장난을 걸어 둘의 마음을 확인해 볼 생각이었다. 그녀는 D생명 남에게 방을 구경시켜 달라고 했다. 남자는 자신의 방을 열고 먼저 들어갔고 그녀의 친구가 두 번째로 따라 들어갔다. 이제 문만 닫으면 되겠다 생각했는데 그녀와 생각이 통했는지 H그룹 남이 먼저 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안에서 열려고 하자 문고리를 잡고 열어 주지 않았다. 정말 싫으면 완강하게 티를 내겠지 싶었다. 조금 지나자 방 안은 조요해 졌고 오히려 밖에서 문을 열 수가 없었다.

   방 밖의 둘은 어이 없이 웃으며 거실 소파에 앉았다. 그런데 막 이야기를 하려고 한 순간 현관문에서 비밀 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D생명 남의 어머니인가 싶어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둘은 술에 취해 소파에서 잠든 척 했다. 누군가 소파에 잠든 둘을 확인하고 방으로 걸어가 잠긴 방문을 열고 했다. 궁금해 참을 수가 없던 G는 실눈을 떠 확인해 보기로 했다. 젊은 여자였다. 여자는 방문이 열리지 않자 문을 열라며 화를 내고 문을 두드렸다. 방문을 두드리는 게 G인 줄 알았는지 방 안에서 반응이 없었다. 그러자 여자는 테라스로 가 그 쪽으로 난 방 창문을 두드렸다.

  

   “야, 안 나와? 나와!”

  

   무슨 장면을 본 것인지 여자의 목소리는 한층 격양되었다. 이윽고 방문이 열리고 D그룹 남이 나왔다. 그리고 G의 친구가 뒤따라 나왔다. 여자는 방에서 따라 나오는 친구를 보더니 더욱 흥분을 했고 소리를 높여 성질을 냈다. 소파의 둘도 더 이상 자는 척을 할 수 없었다. 상황을 파악해야 했다.

   알고 보니 여자는 D생명 남의 여자 친구였다. 여자 친구가 있으면서 없는 것처럼 친구를 속이고 미팅 자리에 따라 나왔던 것이다. 다른 여자를 만난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는지 여자 친구는 울고 불며 남자 몰아붙이고 같이 있는 여자들을 비하했다. 같은 회사에 다니는 여직원들과 눈이 맞아 바람을 피운 건지 그냥 잠깐 놀았던 건지는 모르지만 이전에 이미 비슷한 사건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G는 여자의 막말에 화가 났지만 이 상황에 오죽 화가 났을까 불쌍해 상황을 잘 알지 못하면서 막말하지 말라고 한 마디 남기고 나머지들을 인솔해 그 집을 나왔다. 그리고 모두 찝찝한 마음을 가지고 집으로 흩어졌다.    

  

  

   그날 밤 일은 G와 H그룹 남에게는 둘 사이의 작은 이야기 거리에 불과했다. 오히려 그 얘기로 대화를 어색하지 않게 이어나갈 수 있었다. 첫 인상과 스타일도 서로 마음에 들었는데 D생명 남 때문에 상대방이 상대적으로 더 좋아 보이게 되는 효과가 있었다. 그는 한밤중에 쳐들어와 막말을 하는 D생명 남 여자 친구에게 화가 났을 텐데 참고 자리를 비켜 준 G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여자들끼리 머리끄덩이라도 잡고 싸우면 어쩌나 내심 걱정했던 모양이었다. 그녀가 배려 심까지 있어 보여 더 좋았다. G는 자신의 상대가 멀쩡하게 생겨 바람을 피우고 다니는 D생명 남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게 다행으로 느껴졌고 그가 괜찮아 보였다. 둘은 그렇게 점점 가까워져 사귀는 사이가 되었다.

   G가 H그룹 남을 좋아하는 마음은 순수했다. 이제 막 만난 사이라 그 남자의 취향이나 성향을 알고 싶었고 서서히 관계가 깊어지길 바랐다. 그도 자신의 마음을 강요하는 타입은 아니었고 스킨십도 조심하는 사람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되었다. 좋아하는 취미도 같아서 가끔씩 둘이 볼링을 치러 가기도 했다.

   한 가지 단 점이 있다면 술이 있어야 둘의 관계에 진전이 있다는 것이었다. 대화도 그랬고 스킨십도 그랬다. 술이 있어야 그는 더 자연스러워졌고 과감해졌다. 회사 동료나 친구들과도 만나면 술을 먹어야 하는 틀에 박힌 직장인이었다. 실제로 그의 생활은 술자리가 반이었다. 회사 회식, 동기 회식, 회사 동호회 회식, 결혼식에 갔다가도, 동호회 활동을 한 후에도, 출장을 가서 파트너 사와 미팅을 한 후에도 항상 술로 끝났다. 그래도 조금씩 관계의 진전도 있었고 술을 마시고 진상을 부리는 타입도 아니어서 그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날씨가 화창한 어느 날 그들은 햇볕이 잘 드는 전망이 곳을 산책했다. 그는 그녀를 데리고 자신이 아는 경치 좋은 곳으로 데리고 갔다. 손을 잡고 걸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남자는 자신의 집안 이야기를 꺼냈다. 친척들은 다들 집안이 좋고 유학을 갔다 왔는데 자신만 그러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그가 말해 준 친척들 집안 어른들의 직업은 다 괜찮아 보였다. 하지만 자신의 아버지는 얼마 전 대기업에 임원으로 은퇴해 어머니와 뉴질랜드로 이민을 갔는데 그곳에서 지인에게 사업 사기를 맞아 돌아오지 못했고, 집안이 아주 망한 건 아니었지만 여동생과 한국에 남은 그는 상대적으로 조촐하게 살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이야기도 듣고 싶어 했다. 그녀의 이야기도 그와 비슷했다. 보수적인 부모님 때문에 가지 못한 유학의 아쉬움이 그녀에게도 있었다. 집안 어른들의 이야기는 그가 꺼냈기 때문에 그녀도 굳이 끌어내 하게 되었다. K방송사 임원으로 은퇴한 아버지의 이야기이며, 서로 별 교류는 없지만 잘 나가는 친척 어른들의 직업 이야기까지 말이다. 얘기하고 나니 서로 비슷한 환경인 듯 했고 왠지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가 자신의 집안 이야기를 갑자기 왜 꺼냈는지 의아했지만 결국엔 서로를 알기 위해 그랬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연애가 두 달이 되어 갈 때 쯤 점점 그의 행동이 이상한 조짐을 보였다. 아니 조짐은 이미 있었으나 그녀가 좋게 생각하고 넘겨 왔다. 그는 잘 해주면서도 어딘가 계산적이었다. 데이트를 할 때 완전한 더치페이 정도는 아니지만 한 명이 영화 티켓을 사면 다른 한 명이 밥을 산다 거나, 한 명이 밥을 샀으면 다른 한 명이 다음에 밥을 사는 등 그래도 굳이 따지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는 대등한 돈 계산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턴가 그녀가 밥을 살 차례면 그는 몸보신을 해 달라면서 비싼 곳으로 밥을 먹으러 갔다. 이런 일이 빈번해 져도 그녀는 자신이 나이가 더 많으니 그 정도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쓰는 돈이기 때문에 굳이 서로 얼마를 쓰는 지 계산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의 이런 행동이 계산적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는 가끔 서로의 장점을 비교하듯이 이야기 했다. 예를 들어, 그녀는 어릴 적 캐나다에 1년 가족과 머문 적이 있고 그 후로 영어 공부도 좋아했고 영국 어학연수도 다녀왔기 때문에 영어를 잘 했다. 그러자 그녀가 영어를 쓰는 그녀를 몇 번 지켜보더니 말했다.

  

   ‘너는 나보다 영어를 잘 하는 거 같아. 근데 내가 외국 출장도 더 많이 나가고 커리어는 더 좋은 거 같아.’

  

   이런 말을 들을 때도 뭐 굳이 이런 걸 따지나 싶었지만, 빈번하지는 않아 그냥 넘겼다. 그리고 동기의 결혼식을 다녀와서는 동기 사이에 축의금은 얼마 정도를 해야 하며, 자신은 어느 정도 수준의 결혼식장에서 결혼을 해야 하는지 등 그녀는 아직 궁금하지도 않은 이야기들을 꺼냈다. 그냥 생각보다 결혼에 대한 생각이 많은 가보다 넘겼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 퇴근 후 데이트로 식사를 하던 중에 그가 자신의 연봉 이야기를 꺼냈다. H그룹 초봉은 얼마고 1년에 얼마씩 오르고 승진하면 어느 정도 오르게 되는지 구구절절 설명했다. 대기업 치고는 별로 높지 않은 연봉이라고 겸손까지 떨었다. 그래서 G는 별 생각 없이 들었지만 왜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약간은 불편하다 싶었다. 그래서 그녀는 다른 얘기로 이야기를 돌려 그와 좋은 시간을 보내고 헤어졌다. 그런데 그 주 주말 데이트 식사 중 그는 참지 못하고 결정타를 날렸다.

  

   “자긴 연봉이 얼마야?”

  

   지난번과 비슷한 이야기 끝에 그가 물었다. 그 순간 그녀에게 본능적인 불길한 예감이 왔다. 자꾸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그였기에 지금까지 그가 한 이야기가 머릿속에 조합돼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그 때서야 느껴졌다. 그녀라는 사람보다 그에게는 그녀의 조건이 중요한 거 같았다. 자신의 집안 얘기도 자신을 낮추는 것처럼 말했지만 집안 자랑 겸 그녀의 집안을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고, 자신의 연봉 얘기 또한 그녀가 얼마나 버는지 알기 위한 수작이었을 것이다.

   모든 게 갑자기 머릿속에서 연결되기 시작했다.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속단할 수 없어 그녀도 그를 검증해 보기로 했다. 그녀도 대기업은 아니지만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꽤 유명한 문화 공간 회사의 마케팅 총괄이었기 때문에 걱정할 정도로 낮은 연봉 수준도 아니었고 오히려 학벌이나 경력을 인정받아 다른 직원들 보다는 더 챙겨 받고 있었지만 그에게 월급이 얼마 되지 않은 척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태도가 변했다. 그 날 저녁은 아무렇지 않은 듯 그녀와 헤어졌지만 다음 날 하루 종일 연락이 되지 않았다. 하루도 빠짐없이 먼저 연락하던 그였다. 일요일 내내 쉬지도 못하고 불안이 앞섰다. 설마 했던 게 사실이 되어 가고 있었다. 안 그래도 힘든 월요일은 더 지옥 같았다. 순수하게 좋아하게 된 사람이 한 행동이어서 더 마음이 아팠다.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점심시간이 다가오기 전에 전화를 걸었다. 그가 받았다. 월요일인데 자다 일어난 목소리였다. 엉겁결에 받은 거 같았다.

  

   “여보세요.”

   “출근 안 했어?”

   “응.”

   “왜? 아파?”

   “아니, 어제 술 많이 마셔서 회사엔 아파서 못 간다고 했어”

   “일요일에 술 마셨다고?”

   “응.”

   “누구랑?”

   “형이랑.”

   “누구?”

   “일요일에 걱정 없이 술 마실 백수가 누가 있겠냐! 그 형밖에 더 있어?”

  

   그는 적반하장으로 짜증을 냈다. 이 말에 그녀는 더 크게 실망했다. 그가 말한 백수 형은 그와 친한 대학 선배였다. 이전에 그가 친한 형을 소개시켜 주겠다며 식사 자리를 마련해 만나게 해준 사람이었다. 그들은 법학과 출신이었는데 그 선배가 오랜 기간 동안 고시를 준비하다 서른 중반이 다 되도록 패스를 못 해 이제 회사 취직 준비 중이라며 고생한다고 이야기 해 줬을 때, 그녀는 그가 친한 형이 안타까워서 하는 말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선배와의 관계에도 계산이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겉으론 친하지만 대기업을 다니는 그는 고시에 성공하지 못한 선배를 백수로 얕보고 있었다.

   그가 자신이 백수라고 무시하는 선배와 왜 갑자기 술을 마셨는지 그리고 자신에 대해 어떤 말을 주고 받았을지 머릿속에 훤히 그려졌다. 여자 친구가 다 좋은데 연봉이 낮다며 고민을 털어 놓으면서 선배와 밤새 술을 들이켰을 그림이 상상이 갔다. 그가 한 다른 이야기들도 생각이 났다. 그는 둘을 연결해 준 친구와 그 친구를 알게 해 준 회사 동기에 대해서도 평가를 하며 자기가 만날 정도의 여자가 아니라고 했었다. 그는 자신이 간 친목 자리에 있던 사람들에 대해서도, 파트너 회사의 직원에 대해서도, 동기의 여자 친구에 대해서도 항상 평가 질이었다.  

   서로에 대해서도 비교하듯이 장점을 이야기한 것도 이제 보니 그렇게 서로 대등하기 때문에 둘이 만나는 관계가 성립된다는 뜻이었던 것 같았다. 항상 나쁜 평가는 아니었지만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자신은 어느 정도 위치에 사람인 듯 했다. 그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결국은 자신은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대학을 나오고 대기업에 취업해 그곳에서도 인정받는 어느 정도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이 남들을 평가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는 전화를 끊은 후 바로 전화, 톡, 메신저 등 연결된 모든 연락 수단에서 그를 차단했다. 연락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없어졌다. 마음에 드는 부분이 많아 좋아했던 건 사실이지만 다른 무엇보다 사람이 덜 된 거 같아서 더 이상 만날 수 없을 거 같았다. 물론 아무렇지 않지는 않았다. 오랜만에 열린 마음이라 아프고 힘들었지만 한 번 결심하면 뒤돌아보지 않는 그녀였다. 그녀는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만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되면 과감히 돌아설 줄 아는 여자였다. 그렇게 인내하며 마음에 어렵게 들인 사람 한 명을 또한 어렵게 내보냈다.

  

  

  

                               ----------------

  

  

   G는 ‘H그룹 남’과 사귀고 헤어지면서 친구도 잃었다. 같이 미팅에 나갔던 친구는 미팅 날 자신이 그런 일을 겪었는데 자신을 위로하고 신경 써 주지 않았다며 마음이 상해 있었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음에 든 남자와 사귀게 되어 둘이 만나느라 친구를 신경 쓰지 못한 게 사실이라 그 말을 듣고 조금 미안하긴 했다. 그렇지만 친구의 토라짐은 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친구는 그녀가 헤어지게 된 사실을 H그룹에 다니는 대학 동기를 통해 들은 모양이었다.

  

   “너 차였다며?”

   “뭐? 헤어진 건 맞는데 누가 차고 차이고 그렇게 따질 거리가 아니야.”

   “걔가 너 찼다고 그랬다던데 뭐.”

   “그래 그러라고 해라. 나이 어릴 때나 누가 찼네 차였네 하는 거지 이 나이에 그게 뭔 상관이야. 어차피 앞으로 볼 사이도 아닌데.”

   “넌 그렇게 항상 허세야. 그냥 차였다고 인정하면 안 돼?”

   “아니 사실을 말하면 허세야? 네 앞에서 불쌍한 척이라도 해야 한다는 거야?”

  

   그는 그녀와 헤어질 생각까지는 아니었다. 그녀의 연봉 얘기를 듣고 고민이 되긴 해 아는 형과 술을 마셨지만 그녀가 연락해 만나자고 하면 못 이기는 척 만나려고 했다. 이런 저런 계산을 해 봤을 때 어느 정도 서로 만날 만한 동등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되다가 그녀의 연봉 얘기로 자신이 우위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당연히 그녀에게 연락이 올 줄 알았다. 하지만 그녀에겐 소식 한 통이 없었다. 며칠 후 톡을 했지만 확인도 안 했고 메신저는 계속 로그아웃 상태였다. 그는 그게 억울했는지 어느 날 출근을 하자마자 회사 동기를 굳이 찾아가 자기가 G를 찼다고 말했다. 자신의 그렇게라도 자신의 우위를 지키고 싶었다.

  

  

   친구는 이번 일을 넘어서 친구로서 말도 안 되는 이야기까지 했다.

   “난 너 안 믿어.”

   “그래 믿지 마. 지금처럼 다른 사람 말만 계속 믿어.”

   “네가 그러고도 친구야?”

   “내가 뭘 어떻게 했다고 이러는데? 지금 네가 하는 행동은 친구로서 하는 행동이야?”

   “너 항상 허세였어. 이번 일도 그렇지만 길거리 지나가면서도 어떤 건물 보면서 저기 어딘지 아냐고 잘난 척하고. 너 저기 알아? 이러면서.”

   “아니 일 때문에 리서치 하다가 좋은 곳인걸 알게 돼서 나중에 같이 가자고 말하고 싶어서 물어 본 게 잘난 척이야?”

  

   친구 또한 이번 일을 계기로 G의 우위에 서고 싶었던 것 같았다. 전문대 출신인 친구는 그 동안 자기도 모를 열등감이 있던 모양이었다.

   이전에도 다른 친구와 비슷한 경우가 있었다. 집안 형편이 안 돼 혼자 대학에 가지 못한 한 친구는 열등감에 빠져 배겨 내지 못했다. 친구들이 그녀를 보는 시선이 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이 의식하고 있었다. 그래도 그 친구는 결국 친구들과 잘 지내려고 노력했고 서로 다른 환경이지만 잘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일은 달라 보였다. G가 사귀게 된 남자가 자기가 소개해 준 남자인데 자기는 잘 안 된 상황에 배가 아팠고, 남자 친구 때문에 자기를 잘 챙기지 못했던 일 하나로 그동안 서운했던 일을 다 끄집어내 매도하고 있었다.

   G는 속으로 생각했다. 너와도 끝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서른 초반까지 쌓아 온 우정이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친구끼리 서로 좋은 일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서운함에 말다툼도 하고, 서로 참아 주기도 하고 용서하기도 할 것이고, 좋은 것은 함께하고 함께 웃으며 결국은 오래 잘 지내는 것이 진정한 친구일 것이다. 그런데 자기가 기분이 나쁘다고 친구 말은 안 믿고 다른 사람 말을 믿는다며 친구의 입장 보다는 몇 번 술자리를 가진 남자의 편을 들고, 친구의 의도는 무시한 체 아는 체를 한다며 몰아붙이니 우리가 친구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G는 전에 스페이스 마케팅 분야에 종사하고 있어 스터디와 리서치 덕에 좋은 곳을 많이 알게 되었고 친구와 가 보고 싶어 보이는 곳 마다 알려주고 같이 가자고 한 것뿐이었다. 그런 게 그렇게 듣기 싫으면 왜 그 동안 말 한 번 안 한 것일까? 기분 나쁜 일이 있으면 서로 이야기 하고 사과하고 풀면 될 일을 그 동안 얘기도 안 하고 쌓아 놓고 있다가 그녀가 무슨 큰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부풀려 말하고 있었다.

   그러는 자신은 언제나 100% 옳고 잘한 행동만 했을까? 자기도 나갈 기분이 아니라고 일방적으로 약속을 취소한 적도 많았고, 직업 군인이었던 남자 친구와 만나느라 하루가 멀다 하고 면회를 가느라 G와는 소원했던 적도 있다. 물론 섭섭하기는 했지만 그게 사람이라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사랑 때문에 눈이 멀고 주변 사람에게 소홀해 지는 게 사람이다. 그래도 친구가 이별하고 동굴을 헤맬 때에 G는 그녀의 안부를 묻고 위로를 해 주었다.

   모두가 그렇게 살아간다. 사랑하는 사람이든 친구든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단점까지 감싸 안아줄 수 있는 게  진 정한 관계 일  것이다. 그렇지 못할 거면 서로 안 보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다. 서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관계를 유지할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3개월도 안 되는 연애를 끝내면서 18년 된 친구 한 명과도 이별했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14 에필로그 2019 / 11 / 10 226 0 2241   
13 12. 단 한 사람에게 단 한 사람이고 싶다. 2019 / 11 / 10 238 0 7092   
12 11. 결혼, 책임질 수 없는 책임질 상황 2019 / 11 / 10 252 0 9831   
11 10. 사랑의 불청객, 부모라는 이름. 2019 / 11 / 10 265 0 9390   
10 9. 멈출 줄 모른다면 당신이 바로 스토커 2019 / 11 / 10 248 0 5968   
9 8. 자기는 연봉이 얼마야? 2019 / 11 / 10 243 0 10643   
8 7. 나쁜 남자는 되기 싫고... 2019 / 11 / 10 229 0 7957   
7 6. 시집오면 우리 엄마랑 절에 갈 수 있어 2019 / 11 / 10 245 0 10831   
6 5. ‘진심은 대게 서툰 법이다.’ 2019 / 11 / 10 235 0 7613   
5 4. 커피 한 잔 놓고 고사지내는 명문대생. 2019 / 11 / 10 234 0 7137   
4 3. ‘너와 결혼까지 생각했어.’ 2019 / 11 / 10 242 0 7145   
3 2. 가슴 속 불덩이는 홀로 타 버리기도 한… 2019 / 11 / 10 226 0 5965   
2 1. 첫 사랑, 그 바보 같던 시절. 2019 / 11 / 10 237 0 7386   
1 내 나이 39세, 난 아직도 대화가 통하는 남… 2019 / 11 / 10 424 0 2518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