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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독기
작가 : Lulla
작품등록일 : 2019.11.10

신을 배척하고 인간만의 삶을 추구하는 안개와 강철의 나라 스팀 헤이즈.

눈부신 발전 뒤에 가려진 빈민굴에서 태어난 로렌스는 언제나 자신이 평균 이하의 인간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러던 그의 꿈 속에 검은 뱀이 나타났고, 그에게 새로운 삶을 거머쥘 기회를 주겠노라고 속삭인다.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붙잡고 싶었던 로렌스는 검은 뱀의 꼬드김에 넘어가 그의 말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다.

 
9화. 펜타프리즘
작성일 : 19-11-10 19:22     조회 : 198     추천 : 8     분량 : 7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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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곽 구역, 그저 숨을 쉬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인 오염된 구역이다.

 

  내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던 공기 정화 시스템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후문으로는 정부에서 정화 불가능한 구역으로 판단하고 설치를 포기했다고 한다. 가장 큰 이유는 외곽 구역 전체에 퍼진 녹색 안개이다. 원인 불명, 성분 불명인 안개에 호흡기가 장기간 노출되면 가벼운 감기 증상을 보이다 서서히 몸이 굳어간다고 한다. 덕분에 주민들은 항상 방독면을 써야만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다.

 

  남부 구역은 특히 주민들의 생활 수준이 떨어지기로 유명한데, 다 무너진 폐가에 여러 세대가 모여 옷가지나 침낭으로 겨우 잠 잘 공간만 만들어 두었다. 어찌나 악취가 심한지 비위가 약한 카일은 캠프 안에 도착했는데도 몇 번이나 헛구역질했다.

 

  “봉사요? 연락받은 게 없는데...”

 

  자신을 리엔이라고 소개한 봉사단 직원이 반문했다. 나름 봉사단의 고참인 듯 왼쪽 가슴에 금색으로 빛나는 봉사단 뱃지를 달고 있었다.

 

  "어제 명령이 떨어져서요. 조만간 이 이름으로 연락이 올 겁니다."

 

  감독관은 방호복 주머니에서 명함 지갑을 꺼내 리엔에게 한 장 건넸다. 리엔은 살짝 당황한 듯 양손으로 명함을 들고 찬찬히 이름을 확인했다. 그리고 자신의 명함 지갑에 조심스럽게 집어넣었다.

 

  "뭐, 어쨌든 봉사 오셨다는 것은 변하지 않으니까요. 다시 한번 자기소개를 하자면, 남부 봉사단의 구호팀장 윙 리엔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새턴 씨."

 

  리엔이 씩씩하게 한 손을 내밀었다. 감독관은 게슴츠레하게 리엔의 손을 쳐다보다가 똑같이 한 손으로 악수를 받았다.

 

  "일단 텐트로 이동하실까요?"

 

  리엔의 권유로 모리스 일행은 봉사단이 회의를 할 때 쓰는 거대한 텐트로 안내받았다. 세워지고 오랜 시간이 흘렀는지, 천막에 여기저기 땜질한 흔적이 남아있었다. 게다가 덧댄 천 위에 보수한 사람의 것으로 보이는 이름과 날짜가 적혀 있었다. 이름 옆에 다른 글씨체로 욕설도 쓰여 있어 로렌스는 봉사단원들이 꽤 유쾌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워낙 할 일이 많은 동네라서요. 바로 일 설명부터 해드리겠습니다.”

 

  텐트에 들어가자마자 리엔은 지도를 가져와 커다란 책상 위에 넓게 펼쳤다.

 

  "여기가 우리 캠프 위치고, 동쪽이 주민들이 생활하는 주거지입니다. 처음 오시는 분들은 남쪽이나 동쪽으로 가시는 게 나을 거예요. 캠프 내부는 직원이 아니면 처리하기 힘든 일이 좀 많거든요."

 

  "남쪽은 외벽으로 향하는 길 아닌가요? 학생들을 보내기엔 위험할 것 같은데..."

 

  "그렇지도 않습니다."

 

  리엔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남쪽에 길게 이어진 강과 봉사단 캠프 사이의 정중앙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여기를 넘어서지 않는다면 안전하게 작업할 수 있습니다. 파이프도 새로 갈았고 독성 농도도 평균 수치로 돌아왔으니, 전과 같은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한 다른 지역에서 근무하는 것과 차이가 없습니다."

 

  제시카는 듣자마자 그가 말한 '사고'가 어떤 것인지 눈치챘다. 부식된 파이프에서 새어 나온 가스가 폭발해 수십 명의 사람이 죽거나 다친, 공장 구역 하나를 통째로 폐쇄해야 할 만큼 파급력이 엄청났던 사건이다. 제시카는 직접 로렌스를 업고 그 지옥을 탈출한 장본인이라 누구보다 기억이 생생했다. 사태 수습을 위해 움직이던 봉사단과 방위대가 제시카와 로렌스를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잿더미 아래에 묻힌 해골 더미 사이에 누워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얘들 데리고 거기를 가라고요?"

 

  울컥하는 마음을 애써 억누르며 제시카가 조곤조곤하게 말을 꺼냈다.

 

  “제가 기억하기로 복구하는 데 십 년은 걸릴 거라고 들었거든요. 근처 배관이 잇달아서 터지고 구멍도 많이 생겨서 피해가 아주 크다고요. 혹시 사실이라 해도 한 번 사고가 일어난 곳에 학생을 보낸다는 게 니가사람새끼가아니라는증거라고알았냐멍청한새끼야?”

 

  “야, 야! 제시!”

 

  반사적으로 달려든 사람은 어김없이 모리스와 로렌스였다. 하지만 방독면 배기판을 손으로 덮는 것만으로는 한번 터진 말을 주워 담기는 불가능했다. 쉬지 않고 내뱉는 빠르면서 정확한 욕설이 기관총 탄환처럼 귀에 그대로 때려 박혔다.

 

  “예?”

 

  일 설명을 해주다 갑자기 욕을 먹었으니 당연히 리엔은 당황했다. 방금 순식간에 지나갔던 일을 되짚어보느라 탁자에 손을 올린 채로 굳어버려 로렌스를 비롯한 일행의 죄악감을 더욱 자극했다.

 

  “죄송해요, 얘가 감정을 잘 주체하지 못해서요! 악의는 없으니까 그냥 이야기 진행해 주세요!”

 

  로렌스는 어떤 태도로 제시카에게 대하기로 했는지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래서 평소 습관대로 제시카를 질질 끌고 텐트 밖으로 나가버렸다.

 

  “어라? 어라? 어라?”

 

  제시카는 입이 귀에 걸려 있었다. 어제 점심부터 시간을 헤아리면 거의 24시간 동안 말도 안 걸어 주던 로렌스이니 손을 잡은 것만으로 마음이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로렌스는 제시카를 사람들이 없는 텐트 바로 옆으로 끌고 갔다. 따끔하게 한마디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방독면 너머로 눈웃음짓는 제시카를 보자 하려던 말이 쏙 들어 가버렸다.

 

  “너...!”

 

  얼굴이 새빨개진 로렌스가 어벙하게 말을 더듬을수록 제시카의 미소가 점점 더 깊어졌다. 마치 “오늘의 로렌스는 과묵한 남자 아니었어?”라고 물어오는 것 같았다. 갈 곳 잃은 눈동자가 사방으로 흔들리면 거기에 따라 제시카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근처에 사람이 없다고 보는 사람까지 없는 건 아니어서, 작업하던 직원 몇 명은 머리를 흔들며 오두방정을 떠는 제시카를 신기한 동물을 본 것처럼 흥미롭게 쳐다봤다. 끈덕진 제시카의 기행에 마침내 두손 두발 다 든 로렌스가 체념하듯 소리쳤다.

 

  “그래, 말 무시한 건 내가 잘못했어. 네가 필요 이상으로 걱정하길래 자존심 상해서 그랬어! 그래도 방금 행동은 좀 아니지 않아? 저렇게 친절하신 분에게 무슨 말버릇이야?”

 

  “뭐야, 사과 거기서 끝이야? 난 하루가 넘게 뭔지도 모르고 속만 썩였는데?”

 

  제시카가 짐짓 실망한 척 로스레를 몰아세웠다. 로렌스는 굴하지 않고 대화 주제를 이끌어가려고 애를 썼다.

 

  “저분 금색 뱃지를 달고 계셨잖아. 적어도 봉사단에서 십 년 이상 근무한 사람만 달 수 있는 거라고. 그런 분이 아무 생각 없이 학생들을 보내겠다고 생각해?”

 

  “나는 못 자겠다길래 밤새 달래줬는데, 말도 못 붙이게 해버리네. 이 상처를 누구한테 치료받아야 하나?”

 

  “이야기 좀 들어! 방위대까지 나서서 처리했으니까 지금쯤 끝날만하다고. 너도 알고 있잖아?”

 

  “서러워서 못 살겠다- 이참에 확 삐뚤어질까. 힘들게 돈 벌 필요 없이 옷이며 밥이며 죄다 훔치는 거지. 까짓거 나 혼자만 징계받으면 되는걸. 정말 좋은 생각 같아, 그렇지 않아?”

 

  “너 진짜...!”

 

  맥락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대화가 이어졌다. 로렌스도 제시카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방금의 일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며 미루고 있지만, 핏기 어린 자존심에 이기적이게 굴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되는대로 막 뱉으라는 머리와 얼른 사과하라는 마음이 서로 싸워 입만 뻐끔대는 붕어와 같은 형상이 되어버렸다. 한계까지 얼굴을 붉히며 망설이던 로렌스는 결국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진짜 죄송합니다.”

 

  “용서하마!”

 

  곧바로 손가락을 휘둘러 강조하며 제시카가 묵직하게 외쳤다.

 

  ‘어? 이렇게 빠르게?’

 

  얼이 빠진 로렌스는 멍청하게 제시카를 올려다보았다.

 

  “솔직히 나도 화낼만할 입장은 아니니까 말이야.”

 

  제시카가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애초에 제시카는 로스레에게 화가 난 적이 없었다. 놀려먹기 좋은 밥상이 깔려있길래 거기에 장단을 맞췄을 뿐이다. 모리스 일행이 왜 외곽 구역에 왔는지 잊어버릴 정도로 제시카는 양심이 모나지 않았다.

 

  “그래도, 남쪽으로 가는 건 좀 아니야. 까놓고 발에 차여 굴러다니는 게 해골 바가지여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잖아.”

 

  “동쪽이나 남쪽으로 간다고 했잖아. 꼭 남쪽에서 일해야 한다고 말하진 않았어.”

 

  “...어?”

 

  이번에는 제시카 쪽에서 멍청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생각해보니 지도의 남쪽에만 신경을 집중해서 다른 말은 전혀 기억에 없었다. 입을 헤 벌린 제시카를 측은하게 바라보던 로렌스가 한마디 툭 던졌다.

 

  “...사과해야겠지?”

 

  “잠깐, 잠깐, 잠깐.”

 

  로렌스의 말을 다급하게 막으며 제시카는 눈을 질끈 감은 채 기를 모으듯 이마에 손을 올렸다. 변명할 거리를 찾는 중이었는데, 불과 몇 초 만에 결론이 나고 눈을 번쩍 떴다.

 

  “...좋아! 내 잘못이네.”

 

  “그렇게까지 시원스러울 거면 사고 치기 전에 생각 좀 해라.”

 

  로렌스는 맥이 탁 풀려 어깨를 늘어뜨렸다. 마침 저쪽도 일이 끝나 텐트에서 나오고 있었다. 방독면 때문에 표정은 안 보이지만 리엔은 그다지 기분이 나빠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과장되게 손짓을 하며 모리스와 즐겁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이었다. 모리스 쪽을 보려고 로렌스가 시선을 돌리니 자연스레 그들을 엿보던 직원이 눈에 띄었다. 쌓아둔 상자에 걸터앉은 직원이었는데, 로렌스와 눈이 마주치자 슬며시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로렌스는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쪽까지 우리 이야기가 들렸나?’

 

  “베라!”

 

  크게 외쳐 부르는 리엔의 목소리가 들리고, 로렌스랑 눈이 마주친 직원이 곧바로 반응했다. 훌쩍 뛰어내려서 쪼르르 달려가는데, 평균 정도의 키를 가진 리엔과 머리 하나 정도 차이의 작은 체구를 가져 로렌스는 잠시 저 사람이 진짜 직원이 맞는지 의심했다.

 

  모리스 역시 제시카와 로렌스를 손짓으로 부르고 있었다. 말 안 해도 갈 생각이었기에 두 사람은 고분고분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먼저 도착한 베라라는 직원에게 리엔이 뭔가 설명해주고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베라는 양손으로 귀를 막은 채로 리엔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오늘부터 일주일간 같이 작업할 제시카 씨와 로렌스 씨야. 여기는 물자팀의 베라라고 합니다. 서로 인사 나누시겠어요?”

 

  리엔은 베라의 태도에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았다. 베라는 작은 체구에 걸맞지 않게 호쾌한 걸음걸이로 다가와 양손을 불쑥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엉겁결에 제시카와 로스레가 그걸 붙잡자, 위아래로 마구 흔들며 반가움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이 친구가 뭐랄까, 말수는 적은데 엄청 시끄럽거든요. 제시카 씨 또래니까 서로 친하게 지내면 되겠네요.”

 

  악수가 끝나자 베라는 재빨리 귀를 막고 한걸음 멀리 떨어졌다.

 

  “예, 그거참 딱 들어맞는 비유네요.”

 

  모리스가 빠르게 수긍했다. 베라는 방호복 안에 클럽을 차린 듯 무릎을 굽혔다가 피고, 흥겹게 어깨춤을 추는 등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특히 덩치가 큰 모리스가 마음에 들었던 듯, 슬쩍 다가와 푸짐한 뱃살을 쿡 찌르고 멀어지고를 반복했다. 모리스는 순간 제시카가 두 명으로 불어난 듯한 느낌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잠시 후면 말 담당 제시카와 행동 담당 제시카가 양쪽에서 조여들며 자신을 괴롭히는 미래가 펼쳐질 것 같았다.

 

  “제시카 씨 말대로 남쪽 지역은 안 가는 게 낫겠네요. 징계라곤 해도 모처럼 봉사 와주셨는데 다치면 안 되잖아요?”

 

  “아 예... 그렇죠. 아깐 죄송했어요.”

 

  “에이, 신경 쓰지 말아요-.”

 

  그새 리엔은 모리스 일행의 사정을 다 파악한 모양이었다. 리엔은 한 마디의 질책 없이 웃는 얼굴로 사과를 받아주었다. 그때, 베라가 리엔의 옷자락을 잡고 끌어당겼다. 동시에 반대편 손으로는 모리스의 손을 붙잡고 붕붕 흔들어댔다.

 

  “빨리 가고 싶다고? 보채지 좀 마라 이 녀석아.”

 

  리엔이 베라의 머리를 붙잡고 이리저리 흔들었다. 베라가 즐거운 듯 키득거리며 웃자 리엔도 따라 소리 내어 웃었다.

 

  “하긴, 오랜만에 보니까 그럴 만도 하지. 돌아오면 어느 숙소로 안내해드려야 하는지 기억하지?”

 

  베라가 열정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거만한 장군처럼 뒷짐을 지고 카일의 어깨를 붙잡으며 반대쪽 입구를 가리켰다. 구토감을 참느라 사색이 된 카일은 한마디 말도 못 하고 배기판을 덜그럭거리며 숨만 몰아쉬었다.

 

  “그럼, 일 수고해주시길 바랍니다.”

 

  봉사단 캠프를 빠져나올 때까지 리엔은 끝까지 남아 뒷모습을 지켜봤다. 로렌스는 그를 향해 손을 흔들다가,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그제야 정면을 바라봤다.

 

  잠시 잊고 있었던 외곽 구역의 풍경이 그의 앞에 펼쳐졌다.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부러져버린 기둥 때문에 무너진 폐가에 사람이 모여있었다. 움직일 공간이라곤 잔해 사이에 벌어진 조그마한 틈밖에 없는데, 네다섯 명은 돼 보이는 가족이 거기에 옷가지를 펼쳐 집을 흉내내고 있었다. 다른 쪽도 사정이 나아 보이진 않았다. 아예 문은 잔해로 막혀있고, 창문 밑의 벽을 잘라내 헝겊으로 출입구를 만들어 생활하는 가족, 과거 분수대였을 조형물에 기대 잠을 청하는 남자, 썩어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지붕 위에 올라가 모리스 일행을 지켜보는 어린아이들까지. 눈을 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처참한 환경 속에서 간신히 목숨만 붙들고 있었다.

 

  로렌스는 그 중 지붕 위의 어린아이들에게 초점을 맞췄다. 한 명은 로렌스보다 한참 어려 보였는데, 방호복이 맞지 않아 등을 잔뜩 구부린 채 양팔로 동생을 가득 끌어안았다. 로렌스는 그 아이들이 쓴 방독면의 너머에 어떤 눈을 하고 있을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때 나는 뭐를 먹고, 뭐를 생각하며 살아갔을까.’

 

  아직도 로렌스에겐 이곳이 현실이었다. 언제든지 방독면을 벗고 잠이 들면 영원히 눈을 뜨지 못하는 현대판 지옥이다. 지옥에서 태어난 악마는 인간의 세계에 내려와 인간들의 정기와 생명을 빨아먹으며 연명한다고 들었다. 그들은 인간의 모습을 모방해 자연스럽게 섞여 들어가 인간을 기만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악행은 발각되고, 결국 악마는 자신이 태어났던 지옥으로 돌아가 또 다른 기회가 찾아올 때까지 이를 갈며 잠적한다.

 

  제시카와 로렌스는 지옥에서 태어났다. 단 하루의 숨을 쉬기 위해 살아가는 저 아이들과 같았다. 잠시 인간의 세계에 갔다 와도 본질은 악마임이 변하지 않았다. 다시 돌아오는 날, 자신과 똑같은 행보를 밟을 저 아이들에게 진실된 말을 건넬 수 있을까. 쓸모를 증명하지 못한다면 너희가 살아야 할 곳은 여기라고 말할 자격이 나에게 있을까.

 

  로렌스는 아이들의 눈을 외면했다. 그는 절대로 말할 수 없었다. 한번 낙원을 맛본 만큼 얼마나 간절한지 알기에 막아서는 안 된다. 그게 자신과 같은 고향에서 태어난 이들에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우였다. 설사 일어나지 않을 미래라고 해도 로렌스는 끊임없이 고통스러워 할 것이다. 그게 로렌스가 지옥에서 태어난 자신의 분수고, 태어난 의미였다.

 

  문득 로렌스는 고개를 들었다. 로스레의 앞을 걸어가던 제시카가 지붕 위의 아이들을 발견한 듯했다. 갑자기 호기심이 치밀었다. 제시카는 아이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지금만큼 방독면을 썼다는 사실이 원망스러웠던 적은 없었다.

 

  그녀는 걸으면서 아이들에게 눈을 떼지 못했다. 미약한 콧소리가 섞인 제시카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안녕!”

 

  제시카가 밝게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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