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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미혼사유
작가 : Giulia
작품등록일 : 2019.11.10

나는 나이 39세에 아직 미혼이다. 내 경험을 토대로 현 시대를 살고 있는 일부 여자, 남자에 대한 자화상을 그려보고자 한다.  주변에서 내 삶이 평범하지 않다는 소리를 자주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어찌 보면 소설을 가장한 에세이이다. 특히  내 미혼 상태에 대한 궁금함을 표현 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 그 궁금함은 자신들과 다른 내 삶과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서부터 온다. 사회가 많이 변한 거 같으면서도 아직 고리타분한 사람들이 많다. 사실 굳이 이해를 바라지도 않지만 그들은 내 삶을 굳이 전통적인 방식에 맞추려고 안달이다.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나도 모를 이 소설을 쓰면서 추억을 되새겨 보기도 하고 나를 또 한 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니 이것만으로도 흡족하다. 하고 싶은 결혼을 못 했지만 후회는 되지 않는다. 글을 쓰면서 나도 한 번 성숙하는 계기가 되리라 믿는다. 아무튼 멀쩡하게 생겨서 왜 결혼을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답이 되었으면 하고, 다른 사람들을 자신들의 지식과 경험에만 국한하여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6. 시집오면 우리 엄마랑 절에 갈 수 있어?
작성일 : 19-11-10 19:20     조회 : 240     추천 : 0     분량 : 1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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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지내?’

   ‘어머, 오빠! 이게 얼마 만이에요!’

  

   회사에서 업무를 보고 있던 어느 날 오후, 갑자기 6년 만에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또 다른 동아리 남자 선배에게서 문자가 왔다. 그가 유학을 가기 전 친했지만 서로에게 이성의 감정을 느낀 적은 없었다. 그도 오래 만난 여자 친구가 있었고, G도 짝사랑하는 선배가 따로 있었으니까. 그는 짝 사랑하던 남자 선배와 같은 지역에서 동아리 활동을 하던 선배여서 얼굴도 자주 보고 자주 어울렸었다. 잘 놀고 까불거리는 선배였지만 동아리에서 오랜 시간 동안 예쁘게 사귀고 있는 선배여서 보기보다는 사람이 좋아 보이기도 했다.

   G가 영국에 가게 되었을 때, 그는 이미 미국 유학에 가 있었을 때여서 같이 타국에 있는 선배가 생각나 이메일을 한 번 보낸 적이 있었다. 한 때 친했던 사이여서 약간의 동질감 같은 게 느껴져서 그저 타국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안부를 물었다. 그런데 선배의 답장 마지막에 그곳에서 새로 사귄 여자 친구를 밝히는 한 문장이 있었다. 그 여자 친구는 G가 활동했던 지역의 동아리에서 같이 활동하던 여우같던 여자 후배였다. 그 여자 후배도 마침 그 시기에 선배가 있는 지역으로 어학연수를 가게 됐던 것이었다. 그 한 문장만으로 G는 선배에게 실망했고 다시는 연락하지 않았다.

   그에게 실망한 첫 번째 이유는, 어리고 순진한 마음에 선배가 미국으로 유학 가면서 한국에 남겨 두었던 여자 친구를 결국은 버리고 그 여우같은 후배에게 넘어갔구나 하는 실망감이었다. 선배 커플은 선배의 미국행에도 헤어지지 않았고, 분명 애틋하게 서로를 떠나보냈으며, 서로의 재회를 기다리고 있는 줄 알았다. 그 여자 후배도 같은 동아리에 사귀던 남자 친구가 있었다. 그 남자 친구는 G의 동기였다. 그런데 둘은 타국에서 만나 이전의 만남을 제대로 정리하지도 않고 같이 갈아탄 것 같았다. 그 때문에 동아리 사람들과도 사이가 틀어졌다.

   두 번째 실망의 이유는, 그 한 문장에 G의 후배이기도 한 선배의 여자 친구가 그녀의 이메일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아마 그녀도 이메일을 봤을 것이고, 그래서 일부러 밝혔으리라. 물론 밝히는 건 당연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단순한 문장에서도 뭔가 일부러 밝히고 수습하려고 하는 뉘앙스가 느껴졌다. 다 같이 알고 지낸 사이인데도 그녀의 연락이 탐탁지 않은 모양이었다. 별 거 아닌 오랜만의 메일 한 통에 그녀가 보였을 유치한 반응과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선배가 기분 나빴다.

   영국으로 떠나기 전 짝사랑하던 선배와 만나게 되었다는 소식으로 G 역시 다른 의도가 없다는 것을 굳이 풍길 수도 있었겠지만, 그럴 가치조차 느끼지 못했다. 어차피 남자로서 좋아하던 선배도 아니었고, 그 여자 후배도 별로 인연을 길게 가져가고 싶었던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어쨌든, 그게 그들의 마지막 연락이었다. 그런데 선배의 갑작스러운 연락은 놀랍기도 했지만 이상하게 반갑기도 했다. 그들은 N메신저를 트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한국에 아예 들어온 거예요?’

   ‘응, 들어와서 회사 다니고 있어.’

   ‘아, 그런데 나한테 연락을 다 하고, 어쩐 일이에요?’

   ‘우리 동아리 후배들 중에 시각디자인과 나온 사람 아니?’

   ‘저요? 저 시각디자인과 나왔는데.’

   ‘하하하, 그랬었나? 잘됐네.’

   ‘알고 물어본 거 아니에요?’

   ‘아니야, 몰랐어. 너 회사 다니고 있니?’

   ‘네, 다니죠.’

   ‘그러면 지금 서로 오래 말할 시간 없으니까 우리 한 번 보자. 오늘 저녁에 시간 있니?’

   ‘네, 있어요.’

   ‘그럼 퇴근하면서 연락할게.’

  

   마침 G가 그가 살던 서래마을로 이사를 가 있던 터라 퇴근 후 그녀의 집 앞으로 오기로 했다. 거의 다 왔다고 전화가 왔고 그녀는 밖으로 나가 선배를 기다렸다. 검은 차 한 대가 다가왔다. 조수석 창문으로 서로를 확인하고 그녀는 차에 올라탔다. 오랫동안 못 보던 사람을 이렇게 급작스럽게 보게 되니 서로 반갑고도 재미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선배는 이전과 다르게 어른스러웠고 멋있었다. 오랜만에 그녀를 본 그도 여성스럽고 세련되어진 그녀가 신기했다. 카페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그들은 인사를 나누고 서로 칭찬도 하며 서로에 대한 정보도 주고받고 농담도 주고받았다.

   동네 카페에 도착해 주차를 하고 내려 카페로 들어갔다. 분위기가 좋은 카페였다. 그들은 자리를 잡고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눈 다음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그에게 시각디자인과 전공의 사람을 왜 찾는지 물어보았다.  

   그는 얼마 전까지 본업인 건설사를 다니면서 아는 형의 사업을 도와주고 있었다. 그 형의 회사는 디자인 회사였고, 외국계 기업에서 디자인 프로젝트를 수주해 꽤 돈을 벌었다. 인테리어를 전공한 선배는 회사를 다니면서도 사업적으로나 디자인적으로 아이디어가 부족한 그 형을 도와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도록 돕고 사례를 받았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아는 외국계 기업 담당자는 그에게 직접 프로젝트를 주고 싶어 했다. 물론 그 이유는 큰 뒷돈을 받고 싶어서였다. 그 형이 아닌 선배에게 프로젝트를 주면 큰돈은 그가 만지게 될 것이고 돈을 나눌 사람이 없어지니 그 돈의 일부를 자신이 받을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그 담당자는 선배와 같은 지역 동아리에서 활동하던 그녀도 아는 여자 동기였다.

   G는 뒷돈을 요구하는 게 아는 사람 이여서 놀랬다. 그 동기는 집안도 좋아 모자랄 것 없이 잘 살고 있는 사람이었다. 있는 사람이 더 한다더니 충격적이었다. 그 뒷돈으로 야금야금 성형을 하는 모양이었다. 아무튼 그는 아는 사람이 담당이기 때문에 일은 확실하게 들어 올 것이고 곧 디자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터이니 같이 일해 볼 생각이 없는지 그녀에게 물었다. 자신은 건설사를 계속 다니면서 사업을 사이드로 할 생각이라, 회사를 실질적으로 운영해 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돈이 되는 프로젝트이니 월급은 지금 다니는 회사보다 잘 챙겨 준다고 제안도 했다. 뒷돈을 요구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걸리기는 했지만, 그 무렵 그녀도 회사에 무료함을 느끼고 이직의 생각을 품고 있던 터라 나쁘지 않은 제안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들은 사업을 같이 준비하면서 연락도 자주 하고 자주 만나게 되었다.

  

  

   그렇게 자주 만나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그녀는 어느새 선배를 좋아하게 되었다. 대학 동아리 시절에는 그녀를 뺀질이라 놀리며 언제나 장난스러운 모습이었는데 이제는 진중하고 책임감 있는 모습에다 큰 키와 좋은 체격에 입은 정장 발은 그녀의 마음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 주말에 만날 때 입는 평상복 센스도 평소 패션에 관심이 많던 그녀의 마음에 들었다. 과하지 않은 남다른 패션 센스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를 자상하게 챙겨 주었다. 과거의 일도 있었고, 이 선배를 좋아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고백하지 못하는 소심한 여자였다. 아마 평생 이럴 것이라고 그녀는 자책했지만 한 번 갖게 된 성격을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이번에도 선배의 마음을 알 수가 없어 주변을 뱅뱅 도는 꼴이었다. 그와 사귀게 된 날 저녁, 그들은 다시 만났을 때 갔던 분위기 좋은 동네 카페에서 또 만나 사업 얘기를 했다. 금요일이니 그는 와인 한 잔 마시자고 제안을 했고 그녀도 그러자고 했다. 일 얘기가 끝나고 와인을 마시면서는 사적인 얘기가 오갔다. 와인이 들어가자 그녀의 마음은 요동쳤지만 애써 꾹꾹 눌렀다.

   카페 영업 종료 시간이 다가왔고, 그는 그녀를 집 앞까지 바래다주었다. 자신의 집 앞까지 와 그냥 헤어지자니 G는 표현 못하는 자신의 답답함에 화가 났다. 그래서 투정 아닌 투정을 부렸다. 사실 그녀의 마음을 눈치 채고 있던 그는 집으로 걸어가는 동안 일부러 답답한 소리로 그녀를 자꾸 섭섭하게 만들었다. 그러더니 쀼루퉁한 표정으로 체념하고 집으로 들어가려던 그녀를 갑자기 세차게 끌어당겨 껴안았다. 그 동안 그의 마음도 커졌던 것이다. 동공이 풀려 그의 품에 안긴 그녀는 놀라 멈춰 있었다. 그는 포옹을 풀고 말했다.

  

   “내가 네 마음 모르는 줄 알았지? 그래서 섭섭했지? 이제 안 그래도 돼. 우리 잘 해보자.”

  

   그제야 그녀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하는 사람과의 사업이라니 그녀는 예상하지도 않았던 갑작스러운 변화에 얼떨떨했지만 좋았다. 그리고 몇 년간 쉬었던 연애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해내고 싶었다. 선배와도 마음이 맞아 그들의 연애는 순탄하게 이어졌다. 그리고 나이가 5살 많아 서른 중반을 바라보던 선배는 초반부터 그녀에게 결혼 얘기를 꺼내기도 했다. 그녀는 그 동안 결혼에 대한 생각을 딱히 해 본적은 없었지만 서서히 선배의 말에 물들었다.

   만난 지 1년이 다 되어 가고 결혼을 전제로 서로 이런 저런 얘기가 오가던 어느 날 그녀가 교회에 다닌 다는 말을 들은 선배는 물었다.

  

   “너 시집오면 우리 엄마랑 절에 갈 수 있어?”

  

   그녀는 기독교를 지독하게 믿는 타입은 아니었고 불교에 대한 편견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어릴 적 가족과 여름휴가로 큰 사찰에 간 적도 많았고, 절밥을 얻어먹은 적도 있어 거부감이라곤 없었다. 불교를 믿는 것은 아니지만 타 종교를 너무 몰아붙이는 기독교에 비해 불교는 오히려 평화의 종교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골수 기독교인이 들으면 펄쩍 뛰겠지만 그녀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자신의 어머니가 지독한 불교 신자임을 아는 선배는 그녀와의 만남을 부모가 알게 된 후에도 그녀가 기독교라는 사실을 절대 부모에게 꺼내지 않았다.

   절에 다닌다는 선배 어머니는 남편의 건강이 안 좋아진 후로 용하다는 보살이 있는 절을 찾아다니며 점을 자주 보러 다녔다. 불교에서는 보살이 점을 봐주기도 하는 구나 신기했다. 아들이 사업을 위해 사무실을 열자 홀로 사무실에 들어가 약식 고사를 지냈고, 북어를 걸어 놓기도 했다. G는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이지 싶었지만 굳이 반대하거나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았다. 서로의 삶이 다른 것뿐이고 신경 안 쓰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일은 급기야 터지고 말았다.

  

   “큰일 났어. 엄마가 너 기독교 인거 아셨어.”

   “응? 어떻게?”

   “엄마가 절에 점을 보러 가셔서 네 얘기를 하셨나 봐.”

   “그런데?”

   “점쟁이한테 내가 만나는 여자가 있다고 했더니, 점쟁이가, ‘아, 그 하얗고 갸름한 애.’ 그러더래.”

   “그러더니?”

   “그러더니 눈을 옆으로 치켜뜨고 ‘그런데 걔 기독굔데.’ 그러더래.”

   “뭐? 와, 무서워. 그래서?”

   “돌아와서는 나한테 다짜고짜 너 기독교냐고....”

  

   그녀는 이 선배 덕에 또 다른 세상을 알았다. 점은 한 번도 본 적도 없고 TV 드라마에서나 봐 왔을 뿐이었다. 점쟁이란 사람들이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사람에 대해 그렇게 잘 알 줄은 상상도 못했다. 어안이 벙벙했다. 그 후로 선배 어머니의 아들 괴롭힘이 시작됐다. 종교는 하나여야 한다며 이따금씩 아들에게 잔소리를 늘어놓으신다는 것이다. 평화의 종교인 줄 알았던 불교가 골수 기독교도 울고 갈 종교 차별을 하고 있었다니 실망이었다. 오히려 그녀의 집안은 기독교였지만 인성을 먼저 보라고 그녀에게 가르쳤었다. 험난한 길이 예고되었다. 한번은 어머니한테 한 소리를 들었는지 선배는 그녀에게 또 물었다.

  

   “너 시집오면 진짜 우리 엄마랑 절에 갈 수 있어?”

   “응, 갈 수 있다니까.”

  

   그녀는 생각해보니 괘씸해서 한 마디 보탰다.

  

   “그 대신 오빠도 한 번씩 교회 와야 해. 매주 오라는 게 아니라 큰 행사 있을 때만. 엄마가 성가 공연을 하신 다든지 하는 때에만 말이야. 많이 바라지도 않아.”

   “안 돼, 난 못 가.”

   “왜?”

   “난 안 돼.”

   “난 절에 가야하고 오빤 안 되고?”

  

   부모 탓이었겠지만 선배는 생각보다 이기적이었다. 종교에 대해서는 어떤 대화도 타협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에 헤어지게 된 것은 꼭 그 때문은 아니었다. 선배가 다니던 건설사에 위기에 몰리기도 했고 또 다른 가족, 선배의 동생 문제가 있었다. 동생은 선배와 다르게 개차반이였다. 한국에서 대학 생활을 제대로 못해 도피 유학을 보내 놨더니 학교엔 다니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해 그 돈으로 카지노에서 탕진했다. 그러자 더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 상황이 되어 한국으로 다시 들어왔다. 선배는 자신은 회사를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사업자를 동생 이름으로 내고 동생의 미래를 형으로서 책임져 주려고 했다. 그렇게 하면 동생도 정신 차리고 자신의 회사처럼 일을 잘 꾸릴 줄 알았던 것이다.

   하지만 한번 센 바가지는 자꾸 세기 마련이었다. 회사 일은 G가 밤을 새어 가며 다 하는데 선배의 동생은 자꾸 게을러져만 갔다. 출근해 책상에 앉아 조는 시간이 많았고 자신의 지인들을 사무실로 불러 놀 생각만 했다. 회사 돈을 빼돌리다 그녀에게 들키기도 했고, 회사 일이 아닌 다른 일로 사이드 머니를 굴리려고만 했다. 회사로 신분이 보장되자 대출을 받아 놀러 다니기까지 했다. 선배는 동생을 다잡아 보려고 했지만 동생은 더 엇나갔다. 동생은 부잣집 망나니 막내아들일 뿐이었다.

   그녀는 점점 지쳐 갔다. 회사 일을 혼자 다 하던 터라 몸도 힘들어 자꾸 아팠고 성격도 예민해졌다. 선배도 지쳐 갔다. 자신도 회사에서 힘든 상황인데 동생만 불쌍하다며 눈물로 걱정하며 해결해 주기만을 바라는 어머니도 야속했고 자꾸 엇나가기만 하는 동생도 미웠다. 게다가 뒷돈을 요구하는 여자 동기의 요구는 말도 안 되는 액수였다. 사소한 금액에까지 커미션을 요구하며 그 액수를 주지 않으면 앞으로 일을 줄 수 없다는 얘기까지 했다. 정말 더러운 세상이었다. 결국 그 액수를 쥐어 줬는데도 그들은 일을 받지 못했다. 그쪽 회사가 다른 회사와 합병되면서 여자 동기의 마음대로 일을 줄 수 없는 구조가 되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한번 준 돈은 다시 돌려받을 수 없었다.

   회사의 재정 상태가 점점 악화되었다. 그런대도 선배 동생의 게으름과 불성실함은 멈출 줄 몰랐다. 점점 버는 돈이 줄자 월급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G는 고민 끝에 선배에게 더 이상은 일을 할 수 없다고 선언했고, 선배도 그 상황을 이해했다. 그렇게 그들은 사업을 접었다. 그리고는 그들의 관계도 서서히 끝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을 예상 못했던 건 아니었다.

   선배는 그녀를 다른 회사에 흡수시키고 연락을 피했다. 처음엔 모든 일이 잘될 줄만 알고 빨리 결혼하고 싶어 했지만 건설사의 위기와 사업의 실패로 그녀를 볼 면목이 없었다. 그는 건설사의 상황을 어떻게든 전환시켜 보려고 회생에 전력을 다 했지만 상황이 좋아지려면 1년이 더 걸릴지 10년이 걸릴지 알 수 없었다. 앞이 캄캄했다. 그래서 그녀를 점점 피하게 됐고 결국 자신을 기다리다 인생 망치지 말고 더 좋은 남자를 만나라는 이야기를 건넸다.

   그녀가 자기 가족들의 단점을 너무 알아 버린 것도 창피했다. 결혼할 상대라 생각하고 그녀에게 다 털어놨던 것이 이제는 그의 발목을 잡았다. 개차반 동생에, 막내아들 잘못 키워 놓고 불쌍해만 하는 어머니... 일로 어려움을 겪게 한 미안함도 컸지만 창피함도 컸다. 결국 나중에 서로 어울려 살기 어려우리라 생각되었다. 반면 선배의 가족보다 선배 자체만을 보고, 믿고 좋아한 G는 힘든 선배 곁에 어떻게든 있어 주고 싶었다. 선배의 마음만 확고하다면 기다리는 것은 그녀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선배는 그녀의 연락을 자꾸 피하기만 했다.

   그러던 그녀도 이내 선배를 놓게 되는 계기가 생겼다. 갑자기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던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 모든 게 덧없게 느껴졌다. 잘 해드리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죽으면 끝이구나 하는 생각에 어떤 것도 애써 갖고 싶지 않았다. 모든 것이 덧없게 느껴졌다. 외할머니의 빈소로 내려가는 차 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외할머니와 선배 둘 모두와의 이별은 인정하는 눈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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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는 선배와 재회하기 전 교회 성가대에 설 정도로 독실한 기독교인 남자를 미팅으로 만났다. 그가 굉장히 좋았다기보다 그냥 그 중에서 제일 나았고 깔끔해 보여 그 자리에서는 그에게 관심이 쏠렸다. 결국 그 조그만 관심에 그가 그녀를 많이 좋아하게 되었다. 연애도 오래 쉬었고 정말 별 남자 없나 싶은 마음에 자신을 좋아해 주는 남자를 만나 보기로 했다. 종교도 같으니 그것 때문에 문제될 일도 없겠다 싶었다. 여자는 자기를 좋아해 주는 남자를 만나야 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이번에도 남자의 마음이 속도를 냈다.

   회사에서 업무를 보고 있던 어느 날 메신저로 말을 먼저 건 그가 그녀에게 여행을 제안했다. 남자와의 여행뿐만이 아니라 밤을 지새워 본 적도 없는 아직 순진한 그녀는 덜컥 겁이 났다. 그가 싫었던 건 아니지만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아직 되지 않았다. 그녀는 어떻게든 장난스럽게 넘겨보려 했지만 그는 눈이 뒤집혀 자신을 가지고 논 거냐며 화를 내었다. 업무 시간에 전화까지 해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사랑하는데 왜 여행을 못 가냐는 것이었다. 사랑...? 그녀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 이기적인 그가 이해도 안 갔지만 그녀는 어떤 이유에서든 폭력적인 성향을 가진 남자가 싫었다. 그래서 더 이상 만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는 설득할 마음에 그녀를 한 술집으로 불러내었다. 그녀도 얼굴은 보고 끝내자 생각하고 나갔다. 그는 술을 마시며 뜬금없이 자신의 삶 이야기를 꺼냈다. 자신의 아버지는 고위 공무원이고 자신은 미술을 전공하고 싶었는데 아버지의 기대에 차지 못해 거부를 당했고 그나마 비슷한 건축과를 갔다는 이야기. 모범생이었던 자신도 한 번 꼭지가 돌아 승부를 끝까지 봐야 하기 때문에 고등학교 때 한 명에게 열이 받아 쉬는 시간 마다 찾아가 끝을 볼 때까지 치고 박고 싸워 둘 다 병원 신세를 지었다는 이야기. 도대체 이런 얘기를 왜 듣고 있어야 하는지 그녀는 더 이상 할 말 없다며 술집을 나와 집으로 향했다. 생각해 보니 자기 집안의 위치와 자신의 무서움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았다. 전혀 와 닿지 않았지만 말이다.

   하지만 혼자 술에 취한 그는 그녀가 간다고 하고 나간 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녀가 돌아오지 않자 찾아 헤맸다. 그녀에게 전화했지만 헤어짐을 결심한 그녀는 받지 않았다. 납치라도 당한 건 아닌지 그 주변을 뒤졌다. 걱정이 된 그는 결국 그녀의 집으로 가서 초인종을 눌렀다. 얼굴은 내비치지 않았다. 인터폰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자 그는 꼭지가 돌았다. 그는 나오라고 소리 지르며 주먹으로 초인종 카메라를 때려 부수고 현관문도 치고 발로 찼다. 같이 온 친구가 그를 말려 건물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둘을 만나게 한 친구였다. 그가 친구에게 전화에 도와 달라고 한 모양이었다.

   그 친구가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헤어질 때 헤어지더라도 잠깐 밖으로 나가서 그와 얘기를 나누라고 했다. 하지만 때려 부수고 소리 지르는 폭력적인 모습에 있던 정도 다 떨어져 더 이상 마주치기 싫었다. 나가 봤자 설득할 것이고, 그녀가 말을 듣지 않으면 또 화를 내며 폭력성을 드러내 보일게 뻔했다. 그녀는 옆집에서 전화가 와 한번 만 더 시끄럽게 굴면 경찰에 신고하겠다 말했다고 거짓말을 하며 그들을 겨우 돌려보냈다. 예전의 헤어짐에서 겪었던 경험에서 나온 자연스러운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일은 그렇게 쉽게 일단락되지 않았다. 그의 폭력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회사로 찾아와 나오지 않으면 쳐들어가겠다고 협박했다. 그녀는 사무실로 쳐들어올까 봐 벌벌 떨며 몇 번을 불려 나갔다. 사무실에 안 나온 척 해 달라고 그녀 자리의 전화를 당겨 받은 동료에게 부탁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는 회사 앞에서 무작정 기다렸다. 그녀의 사정을 가족들도 알게 되어 어머니가 차로 데리러 와 같이 퇴근하는 것을 보고는 또 다시 전화해 퇴근하는 모습을 봤다며 거짓말을 했다고 막말을 퍼붓고 협박했다.

   협박의 끝은 다시 화해해 잘 사귀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오만 정이 다 떨어져 그를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막말을 퍼부어 놓고 어떻게 다시 사귀자는 말이 나올 수 있는 것일까? 그녀의 거부에도 그는 계속 찾아오고 연락했다. 전화를 받지 않으면 문자로 협박했다. 그녀의 오빠는 독립했고, 아버지는 퇴직하고 평일에 지방 봉사를 가기 때문에 평일에 집에 남자가 없는 것을 아는 그는 어머니를 어떻게라도 할 듯이 협박하기도 했다. G에게 염산을 뿌리겠다고 말한 적도 있었다.

  

  

   여자의 연약함을 알고 협박하는 남자는 결국 더 강한 남자가 끝냈다. 바로 G의 아버지였다. 그녀는 그의 협박에 너무 지쳐 평일에 연차를 내어 집에서 쉬고 있었고, 평일이었지만 그녀의 아버지가 서울에 일이 있어 마침 집에 올라왔던 날이었다. 그에게 전화가 왔다. 받지 않으면 난리가 날까 봐 받았더니 집 앞이라 했다. 그리고 나오지 않으면 자기가 당장 뛰어 올라오겠다 했다. 그녀는 겁에 질려 마침 볼일을 보러 나가는 아버지를 따라 나섰다. 집에 혼자 남겨지면 정말 무서울 거 같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에 내리자 계단을 막 뛰어 올라가려던 그와 마주쳤다. 엘리베이터에는 CCTV가 있을 거 같아 계단을 택한 것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잘 마주쳤다며 그를 데리고 건물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더 강한 협박으로 응징했다. 그 협박은 자신의 아버지의 눈에 들고 싶어 한 그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얘기였다.

  

   “네가 내 딸을 협박한다는 그 애냐? 나 기자 출신인 거 알고 있지? 아직 내 후배들이 방송국에 수두룩해. 너희 아버지 고위 공무원이라고? 넌 네 아버지를 사람들한테 고위 공무원이라고 소개하니? 아무튼 과천에서 일한다고? 네 전화번호랑 집 주소로 너희 아버지 알아내는 거 나한테 식은 죽 먹기야. 추적해 네 아버지 찾아갈까? 네가 여기서 그만 둘래, 아니면 내가 네 아버지 찾아갈까?”

  

   그는 전자를 택했다. 마지막도 졸렬했다. 그렇게 화해하자고 협박하더니 끝이 나자 너 같은 여자 잘 안다며 헤어지게 돼 다행이라는 문자가 왔다. 그녀는 어이없어 문자와 전화번호를 바로 삭제했다. 그렇게 그는 그녀의 인생에서 바로 삭제됐다. 이번 일로 깨닫게 된 것이 하나 있었다. 불교냐 기독교냐가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좋아야 한다. 이건 아버지의 말이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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