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꽃이...가 혹시 누구야...?”
휴대폰의 뜬 ‘우리 꽃이’ 전화를 서둘러 끈 뒤, 코트 주머니 안으로 쓱 짚어넣던 종명이를 바라보며 나는 짐짓 떨리는 목소리가 되어 종명이를 향해 묻고 있었다. 여자의 촉이라는 건 이상하다.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대게는... 그 나쁘게 슬금슬금 피어나는 촉이 맞을 때가 수두룩 더 많다...
‘우리’라는 단어가 자꾸만 내 촉을 건드리고 있었다. ‘우리’라는 단어가 나를 포함하여 들어갈 때에는 그 단어 자체로도 한 없이 따듯하며 둥글둥글게 느껴지지만, 내가 아닌 ‘우리’는 그러니까... 그... 뭐랄까... 한 마디로 어떤 끼어 들어갈 수 없는 막을 형성한 듯한 그들만의 공간같이 동 떨어지게 느껴져 어떤 기분 나쁨을 훅 형성한다.
“그냥... 아는 후배야. 신경쓸거 없어. 대학교 때 알던...”
남자 후배를 그래도 대게 꽃이라고 저장하지는 않겠지...? 이상하게 마음이 뒤틀리는 듯한 순간이었다. 마음의 촉이 계속해서 안좋은 쪽으로만 기울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럴수록 이러한 내가 집요하게 느껴져 스스로가 한심해 질 지경 이었다. 나는 더 이상 묻는 것이 종명이에게 집요한 느낌을 줄까 주저하였다. 그러자 그 틈 안으로 생각지 못한 정적이 찾아들어 버렸다. 얼굴이 굳어있던 내게 종명이가 분위기를 전환시키듯 빠르게 이렇게 말하였다.
“영선아, 너가 오해 할 만큼 꽃이랑 대단한 사이 아냐.”
또 다. 마음의 촉이 기분 나쁘게 종명이의 입에서 세어나온 저 꽃이라는 말에 빠르게 반응한 것은... 애칭인지 이름인지 모를 그 이름은 내 머릿속에서 쉽게 털어지지가 않았다.
그렇게 그 날의 청계천 등불 데이트는 찝찝한 감정을 남긴 채 끝이 났다. 집으로 함께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우리의 대화는 뚝뚝 끊어지기 일 쑤 였다. 그날보았던 영화 ‘사랑은 개차반’ 이야기를 하다가 뚝! 그날 먹었던 맛있었던 음식 이야기를 하다가도 뚝! 아마도 마음 깊은 곳에 연결되어져있다 믿었던 어딘가가 뚝! 그렇게 끊겼던 것 같다. 그날은!
그리고 월요일! 일이터졌다. 종명이와의 연애에서 터진것이아니라! 회사에서 일이 터진 것이다. 마치 단팥빵 안에 팥소가 툭 밖으로 비집어 터지듯!!! 멀쩡하고 견고하던 댐이 한순간 툭 무너져 터지듯!!! 꾹, 내내, 참고있던 김주란씨가 결국 가장 먼저 터진것이었다!!!!
“사장님, 저희 사무직이라고 해놓고 뽑으시지 않았나요?”
아침부터 자칭 ‘코피’라고 즐겨 부르는 ‘커피’를 타마시던 사장님은 오늘도 아침 일찍부터 출근도장을 찍은 우리 세 사람 장덕철씨와 김주란씨 그리고 나를 향해 브래지어 상자들을 옮기라는 지시를 내리고는 그렇게 ‘코피’를 홀짝홀짝 들이키고 계실 때, 그러한 사장님에게 겁도 없이 김주란씨가 이렇게 운을 뗀 것 이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쾌재를 외쳤다! 올레!!! 나 또한 마음속으로 골백번은 따지고 싶었지만 끝내 말하지 못했던 그 부분을 먼저 터트려버린 김주란씨가 멋졌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되는 마음이 슬금슬금 요동치듯 찾아들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이래서 안된다니껭, 자기 할 일이랑 안 할일 나누는 경계가 어디서 생기는겨? 사무직은 박스 옮기면 뭐 안되는겨? 그런 법칙이 어딨어?”
사장님의 말에 김주란씨가 긴 함숨을 ‘...하’ 쉬며 한마디로 빡친 표정을 내짓는 것이 느껴졌다! 그때! 슬금슬금 눈치를 보던 나와 장덕철씨 중 이번에는 장덕철씨가 나섰다! 이럴 때 보면 나는 참... 마지막까지 비굴하게 눈치를 보며 버티는 뼛속까지 비굴한 사회인의 정형인 듯 하다...
“사장님...! 무거운 박스 옮기기는데 저는 그렇다쳐도 입사동기들한테는 정말 너무하신것같습니다... 제가 들기도 무거운 박스들인데...”
그러자 백발의 사장님이 이렇게 바로 받아쳤다.
“아휴, 고작 그거 시켰다고 뭐가 힘들다고 그래? 나도 거뜬하게 옮기는 걸 젊은 장정들 셋이 그걸 못해?!!”
그때, 끝까지 버티던 비굴한 사회인의 표본과도 같던 내가 이렇게 받아쳤다. 받아칠만한 힘이 어디서 나온것이냐고 누가 묻는다면... 나는 그것이 아마도 종명이와 있을 때, 따져묻지 못했던 그 꽃이라는 후배로부터 부글부글 생겨났던 나의 분노의 힘이라고 표현 지으련다!!!
“못 합니다.”
짧고도 단호한 나의 말에 사장님이 ‘이번엔 왜, 너까지 거들고 그래?’하는 눈짓으로 나를 쏘아보고 있는 것이 한아름 느껴졌다.
“아니, 못하는 게 아니라 안합니다.”
“뭐라고?”
“저 이래뵈도 꽤 고급인력입니다.”
그러자 사장님이 기가 찬다는 듯 혀를 끌끌 차며 내게 이렇게 묻는 것 이었다.
“그말은 즉슨, 박스 옮기기는 고급인력인 자네한테 시키지 말라 이런 말인겨? 이제 보니 자네가 가장 못쓰건네!”
“못 쓰겠으면 쓰지마세요. 그런데 그 뜻이 아니라 저 고급인력인데 저를 뽑으셨으면 뽕을 뽑으셔야죠. 계속 이렇게 박스 옮기기만 시키실게 아니라 저한테서 뽕을 뽑도록 가르치고 뽑아먹으라 이 말씀 입니다!!”
장덕철씨와 김주란씨가 그런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나도 안다. 내가 지금 무슨 개소리를 시전하고 있는 것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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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개소리가 통했다.
“이제보니... 이영선씨가 그 재치상인가 받아부리더니 꽤 재치가 있는 젊은이구마잉”
“예?”
나는 눈이 똥그래져서는 사장님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뭐야? 지금 이딴 개소리가 먹힌거야? 뭐야, 뭐... 이런 회사가 다 있어... 역시 첫끗발이 개끗발이라더니 진심 개끗발스러운 회사다라고 속으로 생각하였다.
그때 사장님이 패기 좋게 외쳤다.
“일동! 모두 하던 일은 멈추고 사무실로 직행! 그 바이러스 먹었다는 엉터리 컴퓨터부터 켜는걸로!!!”
뭐지...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가는 이 전개는...
사장님은 의기양양하게 한 손에 그 ‘커피’ 아닌 ‘코피’를 손에 낀 채 우리의 등을 떠밀 듯 그렇게 사무실로 다 같이 직행하였다. 그리고는 바이러스가 잔뜩 먹은 그 느려터진 컴퓨터 전원을 꾹, 눌러 켠 우리를 향해 이렇게 말하였다.
“다들 우리 공용 메일 알제? 일단 모두 다 같이 공용 메일로 접속!!!”
그러자, 한순간 정적이 흘렀다. 그 묵묵한 정적속에서 장덕철씨가 이렇게 말하였다.
“사장님... 저희 아직 공용 메일 주소도 안 알려 주셨습니다만...”
그러자 사장님이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웃더니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또 그랬당가? 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내가 이렇게 깜빡깜빡한당께. 장덕철씨 방금 그 질문 아주 예리했어.”
대체... 어떤 부분이... 어느 그 찰나가... 예리했나요? 사장님 혼자 알아차린 그 예리함은 무얼까 고민해보았지만 역시 머리만 지끈 지끈해질 뿐 이었다. 그렇게 사장님이 알려준 SY-BEST 라는 메일 계정으로 들어가보니 메일함을 열자마자 우리를 반겨주는 스팸들이 가득하였다.... 그리고 저 SY-BEST 라는 메일 계정... 뜻 풀이를 해보면 결국 이수용 사장님의 이니셜을 딴 SY가 최고라는 뜻인데... 너무 나르시즘에 빠진 메일계정이 아닌가!!!
아무튼 이제는 컴퓨터 바이러스를 떠나! 메일까지 그 스팸들로 가득한!!! 계정 사이에 파묻혀 있던 [왕뽕 브라몰 차기 계획 방향] 메일이 떡하니 있는 것이 보였다. 사장님은 우리를 향해 이렇게 외쳤다.
“거, 보이제. 왕뽕 브라몰 차기 계획 방향 그 메일. 그거 내가 아주 시간과 공을 들여 작성한 나의 삼십년이 축적된 결과니께 어디 빼돌리거나 유출되면 절대 안되는겨! 알겠제? 그럼 다들 그렇게 알고 그 메일을 필독해보도록.”
말이야 방구야... 메일을 필독하라는 말만 남기고 그렇게 사장님은 이층 사무실 공간으로 ‘코피’를 한손에 낀 채 올라가셨고 우리 셋은 덩그러니 남아 그 메일을 열어보게 되었다.
그 메일 안에는 알집으로 압축된 ‘이수용사장의 브래지어에 관한 철학’ 문서부터 ‘브래지어 시장의 판도를 흔드는 마법의 법칙’같이 그 뜻이 모호해지는 문서들이 다분히 고의적인것처럼... 많이도 쌓여있었다.
한숨이 길게 늘어지듯 세어나왔다. 과연, 나 이 회사에 적응해 나갈 수 있는 것 일까? 이제 찔끔 상자 옮기기에서 벗어났다고는 쳐도 과연... 적응할수있을까하는 물음이 이어질 때! 그때 보기 좋게 잊고있던 내게서 아무렇지 않게 개소리가 나오게 하던 그 인물, 마약옥수수집 그 놈이 내게 메시지를 보낸 것이 보였다!
[맨날 일만하냐? 우리 이번 달 말에 공연 큰거 잡혔어. 나름 구매니저가 와보는 성의는 보여라.]
뭐시라, 구매니저? 누가 보면 매니저랑 스타랑 나오는 프로그램 ‘전지적 참견시점’에라도 나온 사이인줄 알겠다, 아주? 그나저나 이놈들은 내가 매니저 탈퇴를 하고 나니까 어째 더 잘 터지네. 큰 공연이라니 괜스레 마음이 좋았다! 뿌듯했달까? 내 눈앞에 펼쳐진 것은 스팸메일이 가득 쌓인 이런 메일함뿐이었지만! ‘청정구역’ 그 밴드녀석들이 가는 길은 제발 이런 스팸길이 아니라 오색찬란한 꽃길만이 펼쳐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이것이 바로 구매니저의 마음같은 것 일까?! 아니면 내 안에 나름 다른 마음이 있는 것 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