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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별이 흐르는 강
작가 : 윤지산
작품등록일 : 2019.11.10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소녀와 열등감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소년.
소녀는 돈을 벌기 위해 남자행세를 하고 소년은 안전을 위해 그녀에게 호위를 맡기게 된다. 성별, 신분, 성격, 성장 과정 등 모든 것이 다른 두 사람의 이야기.

 
19회
작성일 : 19-11-10 16:26     조회 : 192     추천 : 0     분량 : 7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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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울었니?”

 

  노파는 자신이 울음을 그칠 때까지 아무런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저 눈물이 멈출 때까지 옆에 있어 주었다.

  사정도 모르는 남의 앞에서 한참을 울었다는 것에 창피함이 몰려왔다.

 

 “네가 떠나야 한다는 것은 알겠다. 그래도 함부로 아무 곳에나 갈 수는 없는 것 아니냐. 넌 어디로 도망가야 하는 게냐?”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백작령을 떠나야 합니다.”

 

  쫓는 사람들이 백작의 사병임을 안다면 노파는 다른 반응을 보였을 수도 있다.

  그렇지 않은가. 자신이 사는 곳의 영주에게 소속된 이들이 쫓는 가면 누구라도 기피대상일 것이다.

  이렇게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이것을 노파에게 말하는 것이 지금 자신이 바로 길을 떠나게 되는 방법일 수 있다고. 하지만 그렇게 되면 그녀는 자신을 밀고할 수도 있다.

  자신은 이 순간에도 저울질하고 있다.

 

 “급하다 하였으니 삼 일 후에 촌장을 따라가는 것은 안 될 테고 일단 나와 빨래를 하러 가자꾸나. 가는 김에 어디로 가면 되는지 알려줄 테니 말이다.”

 

  노파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자 빨래바구니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걸 가지고 먼저 나가 있거라.”

 

  담담한 지시에 따라 바구니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뒷문이 아닌 정문을 가리키기에 걸음을 옮겼음에도 일말의 불안감을 감출 수는 없었다. 정문은 뒷문과는 다르게 거의 바로 울타리 입구와 이어져 있었다.

  3걸음 남짓 하는 짧은 거리를 걸어 마을과 집과의 경계에 섰다. 울타리 너머로 보이는 한적한 마을에 자신이 들어와 있다는 것이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살았던 그 어떤 곳과도 다른 곳.’

 

  아주 어렸을 때 엄마와 살던 집은 허름한 집들이 밀집된 지역이었다. 이렇게 숲에 둘러싸인 곳이 아닌 아주 좁은 길과 건물들이 밀집된 곳.

  그리고 그 후로 지냈던 곳은 집이라고 할 수 없는 동굴과 짐마차를 전전하며 옮겨 다니다가 저택에 있는 간이 건물에서 지냈었다.

 

 ‘꿈을 꾸는 거 같아.’

 

  감상에 젖어들려던 때에 귀를 어지럽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적막이 흐르는 마을과는 이질적인 소리가 들려오기에 울타리 위로 고개를 빼 진원지를 좇아 고개를 돌렸다. 소리가 나는 방향에서는 기병 셋이 마을로 들어오고 있었다.

  당당히 말을 타고 들어온 그들의 허리춤에는 기다란 검이 자리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울타리를 나서기 전에 그들을 발견하여 몸을 숙이는 것만으로 모습을 숨길 수는 있었다.

 

 ‘도망가야 해.’

 

  그들이 이런 변방의 마을에 온 이유를 자신이 모를 리 없었다. 조금 전까지 몽롱해지려던 정신은 오싹한 한기를 느끼며 바짝 긴장했다.

  그렇다. 이 상황이 자신의 현실인 것이다.

 

  뒷문을 통해 도망칠 요량으로 숙이고 있던 몸을 돌리려고 하였다. 하지만 옆에서 어깨를 누르는 노파의 손길에 움직일 수 없었다.

  심장이 바닥에 떨어지듯 철렁 내려앉았다. 자신을 밀고하려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천천히 노파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제 생각과는 다르게 노파는 굽은 등을 최대한 세우려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다. 허리를 펴고 울타리 너머로 보이는 기병을 노려보고 있었다. 저들에게 마치 분노를 느끼는 듯한 모습이라 알 수 없는 안도감이 들었다. 심장을 두방망이질하던 긴장이 완화되자 거세게 느껴지던 손길도 포근하게 느껴졌다.

 

 “가만히 있거라.”

 

  노파는 지나쳐가며 나지막하게 말하였다. 놀란 눈으로 노파의 행동을 눈으로 좇았다. 울타리에 바짝 다가가서 울타리 사이의 빈 공간에 바짝 붙어서 정황을 살폈다.

 

 “저기 애나 집에 살던 손주 녀석 아니냐.”

 “할머니,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기병 중, 반가운 기색이 역력한 병사가 말에서 내려 노파에게 다가왔다.

 

 “아주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잘 지냈단다, 아가.”

 

  노파는 기병 중 통솔자로 보이는 이를 쏘아보며 말하였다.

 

 “사람들이 실종됐을 때도 고작 하나가 와서 사망신고만 받고 가더니 무슨 일이기에 얼굴 보기도 힘든 나리들이 셋씩이나 온 건가?”

 “…….”

 

  빈정거림이 느껴지는 노파의 말에 통솔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죄인이 도주하였습니다. 거주민분들께서 모르는 사이 집안에 숨어들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수색에 협조해 주십시오.”

 

  그의 언행은 아주 정중하였으며 주민에게는 아무런 피해도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노파는 그런 통솔자의 말은 무시한 채 안면이 있는 병사에게 가까이 다가서며 날카롭게 노려보았다.

 

 “어떤 생각으로 이들이 이곳으로 향했는지 몰라서 네가 안내를 맡은 게냐?”

 

  남자는 입에 꿀이라도 바른 것처럼 입을 열지 못했다.

 

 “이제 할미도 없고 너의 가족은 이곳에 없으니 이리 못된 일로 찾아와도 된다고 생각한 게냐?”

 

  노파의 노기 어린 질책과 호통에 남자는 물론이고 뒤에 있던 다른 병사까지 곤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만하시지요. 꼭 필요한 절차입니다.”

 

  보다 못한 통솔자는 노파와 병사의 사이를 가로막으며 말했다.

 

 “집안을 어지럽힐 일 없이 둘러보기만 하겠습니다.”

 

  옥신각신 실랑이가 이어지자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주위에 모이기 시작했다.

  노파는 말없이 병사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펴보고는 이내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알겠네, 집을 둘러보아도 되네.”

 

  노파의 허락에 얼굴이 굳어졌다. 기다리라고 하였다. 하지만 만약 저 말이 지금 도망가라는 신호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제 표정과는 상반되게 병사들의 표정이 한껏 밝아졌다.

 

 “대신 그전에 아들과 며느리를 포함한 실종자들을 찾아주게나.”

 “그 건에 대해서는 돌아가는 즉시 요청해 보겠습니다. 지금은 주거 수색에 동의하여 주십시오.”

 

  그의 말은 노파는 물론이고 소란스러운 소리에 하나둘 모여든 마을주민들의 화를 짚였다.

 

 “요청이라면 여러 번 하였네. 지금 바로 수색 인원을 편성해주지 않는다면 다른 집은 몰라도 내 집은 절대 허락할 수 없네.”

 

  노파가 으름장을 놓자 주위의 몇몇 어르신들 또한 그녀의 말에 공감하며 거부 의사를 내비쳤다.

 

 “노예임에도 죄를 짓고 도망친 중죄인들입니다! 수색조차 못 한다면 저를 비롯한 이 친구는 물론이고 이 마을에도 제재가 가해질 것입니다.”

 “호오, 죄인들이라는 말인가. 생김새를 알려주게. 내 보게 된다면 바로 신고할 터이니 말일세.”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는 대화에 남자가 인상을 찌푸렸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랜 시간을 지체하지 않을 것은 물론이고 집이 어질러지지 않도록 한 명만 들어가겠습니다. 협조해 주십시오.”

 “실종된 이들을 찾는 수색 인원만 편성해준다면 협조해준다 하지 않았나!”

 

  주위에 모인 마을 사람들도 모두 크게 동조하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이 섞여 있어 병사들이 하는 모양을 두고 보는 모양이었지만 언성이 높아지자 노파의 말에 동의하는 말들 또한 커졌다.

  대부분이 노인밖에 남지 않은 마을.

  그리고 대부분이 실종자의 가족인 마을에서 병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 이대로 거부하실 생각이십니까.”

 

  외부인인 자신이 보기에도 주민들은 협조할 의사가 전혀 없어 보였던 것이다.

 

 “왜 이리 이곳을 수색하려 하는 건가. 우리는 당연한 권리 중 하나를 원하는 것일 뿐이네. 그러니 협조를 구하고 싶다면 요청을 받아들여야 할 걸세.”

 

  강경한 표정을 지은 노파를 잠시 바라보던 통솔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말이라도 맞춰주시길 요청해도 되겠습니까?”

 

  혹시라도 노파가 거부할까 싶어 급하게 부가적인 설명을 덧붙였다.

 

 “저희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마을에 피해가 가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물론 이 친구를 위한 일입니다.”

 

  통솔자는 마을 사람들과 안면이 있는 병사를 앞세우며 말하였다.

  노파가 말이 없자 통솔자는 착잡함이 묻어나는 얼굴로 다른 주민들을 둘러보았다.

 

 “……알았네. 그러니 이만 우리 마을에서 나가게나.”

 

  통솔자는 주민들의 완강한 거부 의사를 돌리지 못하고 결국 타협을 하고서야 다시 말에 올랐다.

  조금 전까지 반색하며 마을에 들어오던 병사가 지금은 흙빛으로 질린 얼굴이 되어서는 힘없이 말에 올랐다.

 

 “얘야. 네가 명령을 거부하기 힘든 줄 안다. 그렇기에 바로 저들을 내쫓으려 하지 않은 거란다.”

 

  안쓰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던 노인이 그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비록 이제 애나 할멈도 가고 없지만 언제든 와서 쉬다 가거라.”

 “할머니 돌아가시고 나서 처음으로 온 것인데 이런 일로 찾아봬서 죄송합니다.”

 

  병사는 깊이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말에 올라 있는 상태였기에 그의 울상이 된 얼굴이 모두에게 보였고 다들 안쓰러운 표정으로 그들을 배웅했다.

  노파는 다른 주민들과는 다르게 그들이 떠나가는 것을 바라보지도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앞장서서 문을 열고 들어가기에 재빨리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감사합니다.”

 

  이번에는 바로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노파는 문을 살짝 열어 바깥상황을 살폈다.

 

 “내가 무얼 한 게 있다고 감사하다 하는 게냐. 네가 아니더라도 나는 저것들을 내 집에 들일 생각이 추호도 없다.”

 

  노파는 조심히 문을 닫으며 돌아보았다.

 

 “노예였느냐?”

 

  차마 맞노라고 인정하기 싫은 마음에 입을 다물어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하였다.

 

 “몹쓸 짓을 하는구나.”

 

  노파는 눈을 마주 보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이리도 어린 아이에게까지 손을 대다니…….”

 

  말을 흐린 노파의 입에서 노역하던 때 들었던 거친 말이 흘러나왔다. 그마저도 제게 들리지 않기 위함이었는지 아무 작은 소리였다.

 

 “잔인한 일이지.”

 

  분노 어린 목소리는 말을 잃은 듯 잠시 침묵이 맴돌았다.

 

 “한 생명을 물건처럼 생각하다니 말이야. 그저 필요하면 샀다가 맘에 안 들거나 병들면 팔아버리고, 죽이고…….”

 

  노파는 안타까움이 서려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노파의 말에 어떠한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었다. 아무런 생각도 아무런 감정도 없이 멍하니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어찌 소중히 여기지 못하여 이리도 가볍게 생각하는지.”

 

  노파는 가만히 자신을 안아왔다. 자신보다 조금 작은 체구의 노파의 품은 형들에게서 느끼던 따뜻함과는 다른 안정감을 느꼈다.

 

 ***

 

  아침에 간신히 눈을 떴다. 전날의 일들을 생생한 꿈으로 다시 한 번 꾸었다. 하지만 어제와 달랐던 것은 숲을 달리는 동안 검은 형태의 인형이 잡아 죽이려는 듯 뒤 쫓아왔다는 것이다. 그 꿈은 숲은 빠져나오며 끝이 났지만 꿈에서 깨어나도 해방감이나 안도감은 들지 않았다.

 

 ‘아, 그때 형은 숨긴 곳을 들키지 않기 위해 바위로 입구를 막아준 거구나.’

 

  다시 한 번 꿈으로 어제의 일을 경험하니 모든 것이 바르게 보였다. 형도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의 구멍을 자신이 빠져나오지 못한 이유는 형이 바위로 입구를 막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뒤늦게 깨달은 지금 자신의 가슴을 두들기고 있는 것은 감사함이 아닌 죄책감이었다. 그리도 자신을 위해준 이를 위험 속에 두고 왔다는 죄책감.

  숲에서 달리는 것과 같은 심장의 두근거림을 느끼며 살며시 방문을 열어 문밖을 확인했다.

 

 “일어났니.”

 

  의자에 앉아있는 노파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녀의 앞에 놓여진 보따리도 보였다.

 

 “이거 가져가거라.”

 

  노인이 건넨 보따리에는 여러 가지가 들어있었다. 그 중 아주 생소한 물품에 레이의 손이 갔다.

  손바닥만한 나무 판에는 여러 가지가 적혀있었다.

  누군가의 이름, 태어난 년도, 성별, 출생지, 눈과 머리색이 적혀있었다.

  레이의 얼굴에 의문이 떠오르자 노인이 덧붙였다.

 

 “신분패란다. 태어난 후 관사에 신고하면 받는 물건이지.”

 

  신분패의 존재는 말고 있었지만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라 신기한 듯 시선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내 신기함이 가시고 의아함이 얼굴에 떠올랐다.

 

 “다행이지. 네가 나와 같은 머리색과 눈색이라니 말이다.”

 

  그녀의 말과는 다르게 현재 그녀의 머리는 희어져서 하얗게만 보였다.

  노파는 허허 웃음을 터뜨리며 만면에 미소를 띠며 레이를 바라보았다. 의아함이 해소되지 않아 의문을 던지니 그녀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내 손자는 나를 닮아 노란색 머리에 맑은 하늘색 눈을 가졌단다.”

 

  잠시 노파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퍼뜩 그녀의 의중을 깨달았다. 자신의 생각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신분패를 다시 한 번 살펴보았다.

 

 “리엘, 베시0, 남자, 사라 백작령, 노란색 머리카락, 푸른색 눈동자.”

 “대단하구나. 글을 읽을 줄 아는 것이냐.”

 

  신분패의 주인의 나이는 13살. 자신보다 한참 어린나이였다. 이것을 왜 자신의 짐에 넣은 것인지 알아차린 순간 레이의 가슴이 술렁였다.

 

 “왜 이것을 넣으신 겁니까?”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의 의도를 묻는 물음이 아닌 그녀를 걱정하는 물음이었다.

 

 “어차피 주인 없는 것인데 그저 옷장 깊숙한 곳에 두면 무엇 하겠느냐. 필요한 사람을 찾아가야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지만 필요 없는 물건임을, 더는 미련밖에 되지 않는다는 물건임을 알면서도 옷장 깊숙이 간직한 것이었다.

  그런 소중한 것을 노인은 그녀에게 선뜻 내어주었다.

 

 “내 헛된 희망이고 그저 떠나보내지 못한 그리움일 뿐이지. 그러니 가지고 가거라.”

 

  애잔한 노인의 말에 그녀가 지금 자신만이 아닌 다른 이에게도 작별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우물거리고 있자 그녀는 신문패를 들고 있는 제 손을 따뜻하게 감싸 쥐었다.

 

 “여자아이에게 사내아이의 것을 준다는 게 조금 마음에 걸리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을게야.”

 “어떻게…….”

 

  어떠한 낌새도 느끼지 못했기에 더 당황스러웠다. 아무리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아도 여자아이로는 보이지 않는데 노파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이 나이까지 허투로 살았는줄 아니. 그래도 들키지 않으려면 옷과 머리는 손봐야겠구나.”

 

  그렇게 말을 마친 노파는 주방으로 달려가 칼을 들고 왔다.

 

 “의자에 앉거라. 머리는 잘라야 할 것 같구나.”

 

  머리를 잘라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는 바였기에 주저하지 않고 선뜻 의자에 앉았다. 노파의 손에 한데 그러모은 머리카락은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서서히 잘려나가기 시작했다.

  머리가 조금 가벼워지는 느낌과 함께 툭하고 작게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자연스레 소리를 따라 떨구어진 눈에는 등을 덮던 긴 머리카락이 잘려나간 잔해가 보였다.

 

 “아쉬우냐?”

 

  노파는 안쓰럽다는 듯이 말했지만 전혀 그런 마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홀가분한 느낌이었다.

 

 “다시 옛날로 돌아가는 것 같아 조금 기분이 이상한 느낌입니다.”

 

  목 언저리를 스치는 머리카락의 끝을 가만히 만져보았다. 이정도 길이를 유지하던 유년시절이 떠오르는 것 같아 이상한 기분이었다.

 

 “이제 제가 자르겠습니다.”

 “무슨 소리냐. 위험하니 얌전히 있기나 해라!”

 

  노파는 일어나려는 제 어깨를 누르며 만류하였다. 그러고는 뒷머리부터 다듬어주기 시작했다.

 

 “이제 어디로 갈 것이냐.”

 “……갈 곳은 없습니다.”

 “허허, 아직 젊은 것이 그리 비관적이어서 되겠느냐.”

 

  할머니의 호쾌한 타박에도 막막함만을 느낄 뿐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이제는 혼자서 모든 것을 결정해야한다는 중압감이 몸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갈 곳이 없으면 어디든지 가고, 할 것이 없으면 하고 싶은 것을 찾거라.”

 

  잠시 고민을 하던 노인은 한마디 덧붙였다.

 

 “갈 곳도 할 것도 없으면 노예가 없는 나라를 찾아 떠나는 건 어떠냐.”

 

  의외의 말에 놀라서 그녀를 올려다보자 그녀가 씨익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렇게 위험한 생활을 하는 것보다 말은 안통해도 마음 편히 사는 게 나을 거 같지 않으냐.”

 

  노예가 아닌 생활. 노엘 형이 했던 말이 떠올라 얼굴에는 막연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 순간 세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자신이 갈 곳은 있었다. 세 사람을 찾아야만 한다.

  노엘 형은 어디 있는지는 모르지만 다른 두 사람의 행방은 알고 있지 않은가.

 

 “해야 할 일이 생각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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