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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검은 언덕 넘어
작가 : 하늘섬
작품등록일 : 2019.10.30

생시의 반대인 사시. 죽는 날짜를 부여받았다.

 
27화 (완결)
작성일 : 19-11-10 16:21     조회 : 224     추천 : 0     분량 : 1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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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남윤호? 당신 누구야?”

 

 생판 모르는 사람 이름을 부른다. 혹시 몰골이 거지꼴이라 다른 사람으로 보이는 건가 싶었다.

 

 “이게 뭐야? 플레이어가 이런 식으로 빠져나올 수 있나?”

 

 그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지만, 더 어이없는 사람은 철수였다.

 지옥에서 간신히 벗어나 끝없을 것 같은 계단을 올라왔더니 카지노가 나왔다. 지금까지 겪은 일과 연관성이란 눈곱만큼도 찾아 볼 수 없는 장소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가.

 테이블의 남자는 황당한 표정으로 이상한 말을 해댔다.

 

 “이런 경우 보상에 관한 규정은 없는데…”

 “아저씨. 내말 안 들려? 당신 누구냐고.”

 “남 대표. 진정해. 지금 많이 당황스러울…”

 “누구냐고 묻잖아!!”

 

 바짝 신경이 곤두선 철수는 홀이 쩌렁하게 울릴 정도로 소리쳤다.

 힘겹게 왔다. 사람들을 떠나보내며 간신히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앞의 남자는 애먼 소리만 해댄다. 답답해서 심장이 터질 것 같다. 그러면서 머릿속은 여기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카지노든 뭐든 내가 온 그곳과는 다른 데인 것 같아. 그렇다면 여긴 유란이 말한 우리 밖의 장소가 분명해.’

 

 전혀 예상치 못한 장소이자 뜻밖의 장소다. 하지만 분명 자신이 있던 세상과는 다르다. 같았다면 인두겁 뒤집어 쓴 로봇들이 튀어나왔겠지.

 철수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테이블에 앉아 있는 남자를 유심히 보았다. 적의를 보이진 않지만, 그렇다고 자신 편은 아닐 거다. 혹시 모른다. 로봇들을 조종하는 군인일지, 또는 여기가 카지노를 가장한 연구소일지.

 테이블의 남자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철수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다 앞의 커피 잔을 들며 말했다.

 

 “난 여기 카지노의 회원장이자, 사외이사이자, 정기영 대표라고 하지. 그냥 정 대표라고 불러.”

 “도대체 여기 카지노가 왜 있는 거지? 이게 대체 다 뭐야?”

 

 주변을 둘러봤다. 몇 걸음 떨어진 곳 난간이 있는 걸로 봐서, 지금 있는 곳은 2층 이상의 위치다. 그리고 정 대표라는 테이블의 남자는 자신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혹시…”

 “음?”

 

 정 대표는 식은 커피를 입으로 가져가다 말고 다시 내려놓았다.

 

 “당신네들이 바코드를 만들었나?”

 “뭐…?”

 

 정 대표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짓다 한숨을 푹 내쉬었다.

 철수는 그런 정 대표의 속을 알 수 없었다. 왜 그런 표정을 짓는지, 그리고 여기가 진짜 카지노인지, 모든 것이 궁금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히 마음먹은 것이 있다.

 

 ‘여기가 진짜 우리 밖이고 바코드의 비밀과 관련되었다면…’

 

 잘 됐다. 보건데 여기는 저 남자 한 명 뿐이다. 고문하고 두들겨 패서라도 알아내면 된다.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으니, 빠르게 진행해야 한다는 게 부담되지만 못할 것 없다.

 

 “이봐, 남 대표. 바코드 말인가?”

 “그래.”

 “걱정 말게. 검은 언덕을 넘어온 이상 바코드 시스템은 정지하거든. 죽지 않으니 신경 쓸 것 없어. 그리고 보상 규정에 관해서 찾아봐야 하는데, 적어도 리셋은 내 권한으로 할 수 잇겠군.”

 “보상 규정? 리셋?”

 

 그의 말은 대화라기보다 혼잣말에 가까웠다.

 

 “이리 와서 좀 앉게.”

 

 정 대표는 철수의 물음에 답하는 대신 테이블의 빈 의자를 끌어냈다.

 철수가 경계심 짙은 표정으로 서 있자, 정 대표는 테이블에 있는 버튼을 눌렀다. 곧 발소리가 들리더니, 바 뒤쪽에서 웨이터 한 명이 나온다.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철수가 깜짝 놀라 웨이터를 보자 웨이터 역시 놀라 철수를 보았다.

 웨이터는 철수를 보고 황급히 인사하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남윤호 대표님. 수고하셨습니다.”

 “아메리카노, 에스프레소 더블 샷 한 잔씩 잔.”

 “네. 곧 준비해 오겠습니다.”

 “원래 하루 한 잔이 정량인데 이걸 두 잔이나 마시다니, 오늘 잠 다 잤네. 아. 그리고 관리부장에게 말해서 리셋 큐브 받아가지고 오고.”

 “알겠습니다.”

 

 웨이터는 그 말에 정중한 인사로 답한 다음 다시 바 뒤로 사라졌다.

 정 대표는 앞의 의자를 두드리며 철수를 바라보았다.

 

 ‘뭐야? 웨이터까지 날 남 대표라고 부르네?’

 

 정 대표의 말, 웨이터의 인사.

 단편적 반응이지만 꾸며내거나 거짓말 같진 않다. 철수는 정 대표가 권한 의자에 천천히 다가가 앉았다.

 

 “고생 많았네. 정말 수고했어. 트럼프들을 어떻게 피해왔는지, 캐릭터들은 어떤지 굳이 묻지 않겠네.”

 “여긴 어디지?”

 “카지노지. 보면 모르나.”

 “당신은?”

 “정 대표야. 좀 전에 말했는데.”

 “......”

 

 빤한 대답에 철수는 말을 잃었다. 궁금한 게 산더미 같은데,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머리가 멍해지며 하얗게 변하는 느낌이다.

 뭘 질문할까, 어떻게 행동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테이블 위에 정 대표의 것으로 보이는 휴대폰이 눈에 들어왔다.

 휴대폰 화면은 깜빡거리며 날짜를 나타내고 있었다.

 

 “어?”

 

 그리고 그 날짜를 본 철수의 눈이 크게 떠졌다.

 

 -2059. 12. 23-

 -01:01:02-

 

 오늘 아침 시계를 봤을 때 분명 2019년이었다. 그런데 정 대표 휴대폰은 40년 후를 표시하고 있다. 순간적으로 고장 난 건가 생각했다. 먼 미래의 날짜를 맞춰놓고 생활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철수는 주머니를 뒤져 휴대폰을 꺼내려 했다. 그런데 없다.

 정신없이 도망치며 어딘가 떨어뜨린 것이다.

 정 대표는 눈을 크게 뜨고 휴대폰을 쳐다보는 철수를, 그저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주문하신 커피 나왔습니다.”

 

 진한 커피 향이 테이블 위에 맴돈다. 웨이터는 커피를 내려놓으며 철수 앞에 조그만 물건을 하나 내놓았다. 하얀 사각형 조각이다. 언뜻 보면 각설탕 같다.

 

 “리셋 큐브입니다.”

 

 웨이터는 그 말을 끝으로 다시 바 뒤로 사라졌다. 철수가 무슨 물건인지 몰라 멀뚱히 보기만 하자 정 대표가 말했다.

 

 “그거 입에 넣게.”

 “이걸? 왜?”

 

 먹는 것도 아니고 입에 넣으란다. 약은 아니라는 소리.

 미심쩍은 표정으로 정 대표를 보았다. 그는 커피 잔을 잠시 코앞에 대더니 한 모금 마시고 입을 열었다.

 

 “간단하게 끝낼 수 있지만 설명을 해 줘야겠군. 하긴 남 대표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자, 그건 리셋큐브라고 하는데 기억을 되돌려 주는 장치야. 플레이어의 룰렛 입장 규칙은 기존 기억을 차단하는 거거든.”

 “룰렛? 플레이어?”

 “룰렛은 남 대표가 있던 세상을 말하는 거네. 이 카지노로 들어오기 전의 장소 말이야. 그리고 플레이어는…”

 

 정 대표는 들고 있던 커피잔으로 철수의 팔목을 가리켰다. 희미한, 이제는 검은색이 남아있지 않은 바코드가 철수의 눈에 들어온다.

 

 “룰렛에서 그걸 바코드라고 부르지? 그게 플레이어라는 표시지.”

 “이건 검은 줄이 다 깎이면 그냥 죽는 표식인데? 무슨 플레이어 표식이라는 거야?”

 “여기 카지노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여기는 카드를 가지고 게임하는 일반적인 카지노가 아니고, 플레이어에게 배팅하는 카지노야.”

 “플레이어에게 배팅해?”

 “그렇지. 플레이어에게 표식이 생기면 보통 24시간 안에 죽어. 그건 알지?”

 

 철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여기 카지노는 그 플레이어의 행동선택에 따라 배팅을 해.”

 “플레이어의 행동에 배팅을 한다고?”

 “예를 들어 남 대표가 아침에 에피테? 여튼 무슨 종교단체에 가기 전에 하수구에 다리가 빠진 애를 봤지?”

 “그런 일이 있었지…”

 “그럼 거기 배팅을 하는 거지. 그 아이를 도와줄 것인가 도와주지 않을 것인가에 배팅을 해. 도와주지 않는다는 배당률이 낮고, 도와주는 경우에는 배당률이 높지.”

 “그렇게 해서 내 선택에 따라 도박을 하는 건가?”

 “그런 구조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워. 실제 판을 벌리면 복잡해지고 더 다양한 선택이 있긴 한데, 대충 그렇다고 보면 되네.”

 “배팅률은 왜 그렇지?”

 “어쨌든 겜블러는 수고 없이 남의 돈을 가져가는 자들이거든. 운에 기대는 이기주의자야. 그러니 남은 돕는 것보다 돕지 않는 경우가 많지.”

 

 철수는 정 대표의 마지막 말이 이상해 곱씹다가, 머리가 띵할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정 대표의 말은 바코더는 결국 겜블러, 이 카지노의 도박꾼이었다는 말이다.

 

 ‘그러면 저자가 나를 남 대표라 부르는 것도…’

 

 충격적인 사실에 허우적대고 있는데 정 대표는 아랑곳없이 말을 이어갔다.

 

 “아! 플레이어도 보상이 없지는 않아. 남을 도와주게 되면 바코드가 차오르지.”

 “뭐라고!?”

 

 이건 전혀 예상치 못한 거다. 바코드가 깎이는 게 아니라 차오를 수도 있다니.

 

 “바코드는 처음에 24시간을 주지.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깎여. 어려움에 처한 남을 도와준다면 바코드는 감소가 멈추거나 조금씩 차오르지. 반대로 거절하면 바코드 감소가 빨라져.”

 “그러면 남을 계속 도와줘 바코드가 찬 상태로 있으면 어떻게 되지?”

 “경우에 따라 다르고 좀 복잡한 계산식이 있지만, 어쨌든 24시간 동안 바코드가 깎이지 않을 정도로 남에게 봉사하며 하루를 보낸다…, 그러면 룰렛에서 벗어나고 잭팟이 터지는 거야.”

 

 정 대표는 바 위의 큰 전광판을 가리켰다. 카지노 영업이 끝나서인지, 전광판의 LED 불빛은 희미했다.

 

 “저 숫자는 뭐야?”

 “대충 55경 4800조 정도 되네.”

 

 뭘 말하는 건지 잠시 뒤에 알았다.

 끝도 없이 나열된 숫자. 돈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단위다.

 

 “저 금액의 절반을 살아남은 플레이어에게 지급하지. 그런데 말이야, 카지노가 개장한지 꽤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 잭팟이 터진 적은 없어.”

 

 철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놀라운 사실이다. 하지만 중요한건 따로 있었다.

 

 “그래. 그건 그렇다 치고 다시 질문하지. 왜 무고한 사람들에게 바코드를 새겨? 그리고 그 원리가 뭐야? 어떤 경우에도 없어지지 않는데.”

 

 그 질문에 정 대표의 안색이 어두워진다. 그는 남은 커피를 단숨에 마시고는 말을 이었다.

 

 “이봐 남 대표, 룰렛의 플레이어는 누가 강제로 시키는 게 아냐.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거야. 그리고 바코드는 룰렛에서 못 없애. 40년이라는 시간차 설정은, 여러모로 수준차를 만들거든.”

 “뭐?”

 “그리고, 이번에도 실패군.”

 

 실패라고 말하는 정 대표의 얼굴에 쓸쓸함이 묻어났다.

 그리고 그런 정 대표를 보는 철수는 왠지 모르게 심장이 철렁였다. 실패라는 건 그가 아닌 철수 자신을 말하는 뉘앙스였기 때문이다.

 

 “이, 이봐. 뭐가 실패라는 거야?”

 “이렇게 하나하나 설명하면 끝이 없어. 직접…”

 

 정 대표는 철수의 앞에 놓아진 큐브를 가리켰다.

 철수는 잠시 망설이다 큐브를 집어 입안에 톡 던져 넣었다. 그러자 큐브는 혀가 따가울 정도로 진동했다. 이물감에 반사적으로 뱉으려는데, 뾰족한 뭔가가 입천장을 찌르더니, 순식간에 머릿속까지 파고들었다.

 

 “억!!”

 

 눈앞에서 벼락이 쳤다. 순식간에 몸은 통나무처럼 뻣뻣하게 굳었다.

 생소한 고통에 입안의 물건을 빼내려 했지만, 몸이 굳어 팔을 움직일 수 없다.

 어느 순간, 뭔가 툭 하고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잔뜩 습기 찬 창문을 마른걸레로 닦아내듯, 흐렸던 기억이 선명하게 나타난다. 그 과거의 기억들이 머릿속에 철렁철렁 차올랐다. 큰 파도가 치는 것 같다.

 

 “아악!!”

 

 제멋대로 쪼개져 날뛰던 기억들이 퍼즐을 맞추듯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했는지 떠올랐다.

 

 ‘이번에는 확실해. 이봐, 정 대표. 풀 배팅가자고. 올인이야 올인!’

 ‘한 대표 오늘은 제법 땄는데? 매일 본전치기 하더니 웬일이야?’

 ‘이정도야 가뿐하지.’

 ‘아직 50조나 남았어!’

 

 남윤호 대표. 그리고 룰렛에서의 김철수.

 자신은 RVIP 중 한명이었다. RVIP는 자신과 앞의 정대표 말고 두 명이 더 있다. 그들과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거액을 배팅하며 겜블러의 삶을 즐겼다. 자극적인 그 행위가 삶에 의미를

 준다 느꼈다. 그 즐거움은 영원할 것 같았지만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았다.

 

 ‘남 대표. 너무 무리하지 마. 사흘 동안 딴 돈을 다 잃었는데?’

 ‘이 정도 복구는 순식간이야!’

 ‘저 새끼 저거 왜 저래? 도박꾼 새끼는 도박꾼 새끼답게 굴어!’

 ‘저놈이 부처야?’

 

 사람에게 커다란 일이 닥치면 변화가 생긴다. 극단적인 경우도 많았다. 자신은 그런 경우를 잘 예상하고 맞춘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운이 없었는지 배팅에 연달아 실패했다.

 칩을 딜러에게 던지며 화면의 테이블을 봤다. 바코더가 강에 뛰어들어 자살하는 사람을 구해주고 있었다. 옆의 배팅 화면에서는 X3 라고 나와 있다. 바코더가 그저 지켜보면 3배의 수익을 거둘 수 있는데, 자살자를 구해주는 바람에 배팅한 돈을 모두 잃었다.

 그게 수십 번 반복되었고, 반복될 때마다 잃은 돈을 찾으려 더 큰 배팅을 했다.

 

 ‘이봐. 남 대표. 사람이 죽을 위기에 처한다고 무조건 악해지지는 않아. 아무리 바코더라고 해도 말이지. 그 사람을 분석하고 배팅을 해야 하는데, 지금 남 대표 배팅은 너무 일률적이잖아?’

 

 충고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까지 돈을 따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단지 지금 이 순간 운이 없어서 잃을 뿐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결국 수중의 돈을 모두 잃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발걸음은 떼 지지 않았다. 이 순간만 넘으면 부귀영화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한 번 만, 한 번만 더 기회를!!’

 

 RVIP는 지속적으로 돈을 쓰면 회원등급은 유지된다. 일반 회원은 배팅 상한금액이 있어, 아무리 따도 잃은 돈을 회복할 수 없다. 배팅 한도가 없는 RVIP를 유지해야 회복할 수 있다.

 결국 발걸음을 돌려 카지노로 향했다.

 10년을 넘게 꾸려온 탄탄한 회사를 팔았다. 직원들의 아우성은 들리지 않았고, 가족들에게는 그 사실을 숨겼다.

 회사의 가치는 컸다. 빛도 없었고 성장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기업경매에서 높은 금액에 매각되었다.

 조 단위의 금액이 손에 들어왔다.

 

 ‘반드시 회복한다. 더 찬란하게! 더 화려하게! 그리고 이 카지노를 뜬다.’

 

 굳은 결심으로 바코더와 카지노에게 전쟁을 선포했다. 하지만 수중의 돈은 장작불에 달려드는 부나방처럼 태워졌다. 회사를 꾸리는데 10년, 그리고 그 가치를 돈으로 환산해 쓰는 데는 1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마지막 날, 손에 남은 건 RVIP에서 최소 단위로 쓰이는 일억 원짜리 칩 한 개였다.

 

 ‘플레이어에 도전하겠네.’

 ‘뭐? 자네 미쳤나?’

 ‘RVIP가 플레이어가 되는 경우는 이 카지노 역사상 없었어.’

 ‘플레이어들을 지금까지 봐 왔잖아? 그들이 왜 플레이어가 되었나? 가진 돈을 다 잃고, 갈 곳은 없고, 빛 까지 진 채 들어가는 곳이 룰렛이야.’

 ‘살아나오면 잭팟이 터져.’

 ‘이봐 남 대표. 정신 차려. 이 시스템을 만든 자가 누군지 몰라서 하는 소리야? 도박으로 돈을 딸 수 있어도, 플레이어가 되서 돈을 버는 사람은 없었어. 단 한번도! 그 끝에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지 않았나.’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일반 회원들이 궁지에 몰려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플레이어가 되었다.

 그때, 한 노인이 카지노에 찾아왔다. 노인은 남윤호의 아버지라고 했다. 그는 자신을 대가로 자식을 룰렛에서 빼내주길 원했고, 카지노는 게임 규칙에 따라 노인과 바코더인 남윤효를 치환했다.

 

 ‘룰렛 치환규정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 번째로 플레이어가 된 자는 1회에 한해서 타인에게 바코드를 전이시킬 수 있습니다. RVIP는 두 번의 횟수가 더 주어져, 세 번이 가능합니다. 다만 바코드 전이로 룰렛에서 벗어날 경우 잭팟은 터지지 않습니다. 두 번째로, 플레이어가 성공적으로 룰렛에서 벗어나면 잭팟이 터집니다. 잭팟은 룰렛에 있는 플레이어나 캐릭터 1인과 치환 가능합니다.’

 

 바코더와 치환된 사람은 똑같이 바코더가 되거나, 룰렛에서 특정 역할을 부여받은 캐릭터가 된다. 그리고 트럼프는 이들을 제외한 룰렛의 모든 존재들로써, 정교한 안드로이드 로봇을 말한다.

 

 ‘아버지…!’

 

 아버지는 룰렛의 캐릭터가 되었다. 곽 성이라는 이름으로, 에피메테 교에서 보좌주교의 모함을 받아 지하실에 갇혀 있는 역할을 부여받았다. 과거의 기억을 잃고 룰렛의 시스템에 따라 한 없이 쳇바퀴를 돌리는 존재.

 룰렛에서 빠져나온 철수는 웨이터가 준 상자를 열었다.

 아버지가 남긴 한 장의 편지가 들어있었다.

 그렇게 아버지를 희생해 벗어났을 때, 남긴 편지를 손에 쥐고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반드시 구해내겠다고. 그렇게 다시 룰렛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플레이어의 규칙은 과거의 기억을 없애고 24시간의 시간제한을 두는 것이다.

 기억을 잃어버리고 한정된 시간이 주어진 자신은 끝없는 이기주의자였다.

 선행은커녕 살기위해 악행을 저지르기에 바빴고, 바코드는 빠르게 깎여나갔다. 하지만 죽지는 않았다. 두 번째 플레이어에서 벗어나게 해 준 것은 아내였다.

 

 ‘남 대표. 이제 그만 했으면 하네. 와이프는 자신과 남 대표를 바꾸면서 남 대표가 이곳을 떠나…’

 ‘닥쳐! 모든 돈을 다 잃고 아버지와 아내까지 잃었어!! 어떻게 그만 둬?!’

 

 철수는 악을 썼다. 자신도, 카지노도, 그리고 이 시스템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아버지만큼 비참한 역할은 아니지만, 아내인 유란 역시 기억을 잃고, 매일을 반복하는 연구소 직원의 역할이 부여됐다. 거기서 꺼내야 한다.

 그래서 다시 플레이어가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결심하고 마음을 굳게 다져도, 기억을 잃고 성격대로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은 추했다. 이전 보다 좀 더 오래 견디긴 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아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이다. 자신이 카지노에 빠져 있는 동안, 유치원을 다니던 딸은 어느새 중학생이 되어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웠던 딸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아빠를 구해냈다.

 그 대가로 연구소 지하서 온갖 실험을 당했다. 그 결과 원숭이처럼 온 몸에 털이 나 흉측한 모습이 되었다. 그렇게 변해버린 모아는 생사조차 알 수 없었다.

 철수는 모아가 남긴 녹음파일을 들으며 바닥에 앉아 펑펑 울었다.

 

 ‘치환규정에 따라 치환인원을 모두 사용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카지노는 껍데기만 화려한 감정 없는 서장을 보냈다.

 

 ‘이럴 수 없어!!’

 

 반드시, 반드시, 딸을 구해내겠다. 이번에는 돌아오지 않고 그냥 죽을 것이다.

 더 이상 잃을 건 없다.

 그래서 다시 룰렛으로 뛰어들었다.

 

 

 

 

 

 

 

 

 

 

 “허억!! 허억!!”

 

 철수의 가슴에 슬픔, 분노, 회의 등 온갖 감정이 섞여 소용돌이 쳤다.

 옷은 땀으로 범벅이고, 얼굴은 눈물 콧물로 범벅이다.

 떨어져 나갈듯한 심장을 부여잡고 큰 숨을 몰아쉬기 몇 번, 테이블에서 번쩍이는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죄송합니다. 시스템 상…”

 “이게 벌써 뜨네. 플레이어 인식이 이렇게 빠른가?”

 “자동으로 인식하고 임원님들 허가가 따로 필요 없게 설정 돼 있더군요.”

 “비 정상적으로 나와서 그렇나?”

 “네. 축보가 없는 걸 보아, 남 대표님은 예외로 처리된 것 같아요.”

 

 언제부터 와 있었는지, 정장을 입은 남자가 당혹스런 표정으로 정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정 대표는 옆에 서 있는 남자를 가리키며 철수에게 말했다.

 

 “보안부장이네. 규정을 살펴보니 이렇게 룰렛에서 빠져나올 경우 잭팟 지급은 되지 않네. 하지만 룰렛에서 나왔으니 이제 남 대표는 자유의 몸일세.”

 “내…내… 가족은…”

 “남 대표. 심정은 충분히 이해해. 하지만 아버지도, 아내도, 딸도, 모두 남 대표가 이곳에서 벗어나길 원하지 않았던가? 그들은 간절히 그걸 바랐고, 또 바라고 있을 걸세.”

 

 보안팀장은 품에서 카드 하나를 꺼내 조심스레 철수 앞에 놓았다.

 카드에는 RVIP라는 글씨와 남윤호라는 이름이 금색으로 각인돼 있었다.

 

 “5분 남았군. 시스템은 플레이어가 룰렛에서 벗어났다고 인식하면, 자동으로 카운트다운을 시작 하지.”

 “이게…뭐…야?”

 

 기억을 더듬어 보면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철수는 지금 그럴 정신적 여유가 없었다.

 대신 정 대표가 설명을 이어나갔다.

 

 “말했다시피 남 대표는 이제 플레이어가 아니야. 결정하면 되네.”

 

 정 대표는 번쩍거리는 타이머 밑, 테이블의 한 자리를 가리켰다. 그가 가리키는 곳에는 [IN] / [OUT] 두 단어가 있었고, 그 단어 아래 한 개씩 카드 삽입구가 있었다.

 

 “여기가 원래 남 대표 자리네. IN을 선택하면 다시 룰렛으로 들어가 플레이어가 되지. OUT을 선택하면 잭팟은 못 터트리지만 자유의 몸이 되는 거야. 다시 RVIP로 돌아올 수 있어.”

 

 타이머는 빠르게 시간을 깎았다.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고 누구도 관여할 수 없는 절대적인 수치지만, 철수는 남들보다 몇 배는 빠른 시간 속에 있는 것 같았다.

 그 상대성이 진저리쳐질 만큼 고통스럽다.

 

 “시간을… 좀…더…줘.”

 

 그 말에 정 대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건 바꿀 수 없어. 룰렛에서 성공적으로 탈출한 플레이어는 당연히 잭팟을 선택할 것이다 라는 가정 하에 시간을 설정한 거거든. 축하받는 시간일 뿐이라 시간을 많이 두지 않았지.”

 “선택 하지 않으면?”

 “어? 그건 나도 모르겠는데.”

 “남 대표님의 RVIP 회원자격이 일반회원으로 강등됩니다. 더불어 기록은 삭제됩니다.”

 

 옆에 있던 보안부장이 정 대표 대신 설명했고, 정 대표가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뭐? 강등? 기록 삭제? 그런 규정이 있었나? 선택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런 패널티가 주어지나?”

 “규정이 아니라 시스템이 그렇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플레이어가 선택하지 않는다는 건, 외부의 개입으로 룰렛을 빠져나왔다고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일종의 규칙 위반이죠. 가짜 플레이어나 카드 위조 뭐 그런 것들로요. 예를 들어 카드를 삽입했을 때 위조카드면 발생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허… 오류 같은 건가? 정상적 루트로 나오지 않으니 이런 해괴한 일이 생기는구먼. 그럼 과거기록 삭제는 뭐야?”

 “그건 플레이어와 관계된 룰렛의 캐릭터가 없어진다는 소리입니다.”

 

 정 대표가 황당한 표정으로 보안부장을 보는데, 철수가 벌떡 일어서며 물었다.

 

 “잠깐, 없어져? 그러면 룰렛의 가족들은?”

 

 철수의 물음에 보안부장은 머뭇거리더니 말을 꺼냈다.

 

 “사라질 겁니다.”

 

 죽는다는 소리다. 철수는 이를 악물었다. 뭐든 선택해야 한다는 거다.

 이 상황이 너무나 싫었다. 그리고 스스로가 저주스럽다. 남의 괴로움을 보고 자신의 기쁨으로 삼았던 과거가 더없이 후회됐다. 바코더로 죽은 영혼들이 자신을 괴롭히는 것 같다.

 테이블의 시간은 어느새 1분대를 표시하고 있었다. 타이머는 전자시계였지만 철수의 귀에는 째깍거리는 초침소리가 들렸다.

 

 ‘다시 한 번… 아니야. 아버지도, 아내도, 딸도, 모두 내가 평범한 생활로 돌아오기를 바라고 희생했어. 내가 다시 플레이어가 되는 것이 과연 맞는 걸까?’

 

 세 번의 기회가 주어졌고 세 번을 실패했다. 네 번째에 아내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룰렛에서 벗어났다.

 타이머의 숫자는 붉은색으로 변했다. 시간은 어느새 30초대로 떨어지고 있었다.

 

 ‘어쩌면…’

 

 과연 지금까지 가족을 구하러 룰렛에 들어간 것일까?

 아니면 필패의 상황을 이기려 드는 오만함과 고집이었을까?

 카드를 쥔 손이 움직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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