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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기억의 시간
작가 : charlotte
작품등록일 : 2019.10.6

매일 사라지는 기억, 잊혀진 시간 속 어딘가에서 찾아야하는 스스로의 답. 불완전하기에 완전해질 수 있는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
어느 누구 하나 믿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날들을 보내던 그녀가 찾은 기억의 조각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왜곡된 기억1
작성일 : 19-11-10 14:33     조회 : 239     추천 : 0     분량 : 8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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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색한 침묵 속에서 경원은 글을 쓰고 있었다. 그의 옆에 앉아 그것을 지켜보다 멍해지면 무언가 다른 기억이 자꾸만 끼어들어 지금까지 모인 기억을 흩어놓았다. 일시적이지만 가끔씩은 순간적으로 정체성에 혼란이 일기도 했다. 그런 상태가 며칠이고 반복 되었지만 김석호에게 가지는 않았다. 실 뭉치가 복잡하게 꼬인 것처럼 엉켜버리기 시작하던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몇 번인가 건전지를 뺀 장난감처럼 쓰러진 것 같다. 눈을 떠보면 경원은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고,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유를 묻는 그에게 처음 몇 번은 아무것도 아니라 했지만 그런 일은 하루에도 몇 번이고 계속 됐다. 결국 나는 그에게 그것들을 말해야만 했다. 이후 경원은 글 쓰는 것을 멈추고 나를 간호하는 일에 매달렸다. 하루는 자꾸만 흩어지는 기억 탓에 그를 붙잡아두고 그것들을 다시 하나로 모아갔다. 내가 묻는 나의 기억들은 그의 기억과 합쳐지며 조금은 다르게 맞춰지고 있었다. 어쩌면 내게 떠오른 모든 기억들은 김석호에 의해 새롭게 해석된 것인지도 모른다. 전부 왜곡되었을지도 모르는 것들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려면 은성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다.

 그녀의 도움으로 완벽하게 각자의 자리에 맞춰진 기억은 온전한 모습으로 돌아왔고, 나는 더 이상 의식을 잃지 않았다. 그렇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 나는 또 다시 쓰려졌고, 이번엔 전혀 다른 새로운 기억들이 원래의 것들의 틈을 파고들었다. 전혀 이상할 것 없는 평범한 하루였다. 하지만 그 기억은 이상하게도 나의 것이 아닌 듯한 느낌이 들었다.

 “경원아, 이상해.”

 “뭐가?”

 “내가 혹시 그 사람이랑 무슨 관계가 있었어?”

 “그게 무슨 말이야?”

 “아니, 내가 그 사람을 좋아했다거나 뭐 그런 게 있는 거야?”

 “그럴 리가. 나는 그 남자 네 장례식에서 처음 봤어.”

 “어?”

 “그때 처음 보고 갑자기 연락 와서는 나한테 그런…. 왜 뭐가 문제인 거야?”

 “내가 아주 오래전부터 그 사람을 알고 있었던 것 같아. 나 우울증 같은 거 앓고 있었어?”

 “네가 그런 건 말을 안 해서 모르고 있었는데 한참 지나서 알았어.”

 “그래?”

 “응, 근데 그건 왜?”

 “내가 그 사람이랑 만났어. 근데 나는 그때 분명 너랑 만나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사람을 좋아해.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고 우울증을 핑계로 그 사람을 만나러 가. 이상하지 않아?”

 “…그럴 리가.”

 “그리고 하나 더. 네가 내 우울증에 대해 알고 나서인 건가? 내가 언제 나쁜 생각 할지 모른다면서 집에 카메라를 설치했어.”

 “그럴 리가. 내가 왜 그런 짓을 해. 내가 그것 때문에 그러고서도 매일 너를 보러 갔던 건데.”

 “맞아, 그랬다고 했어. 근데 그렇게 기억이 나.”

 “말도 안 되잖아.”

 “정말 카메라….”

 “그거 엄연히 불법이야. 나 그런 짓은 절대 안 해. 차라리 내가 네 집에 죽치고 있었다면 모를까. 혹시 김석호가 자기 마음대로 만들어낸 기억 아니야?”

 생각해야 했다. 어떤 것이 진짜고 가짜인지 알아야 한다. 그에 의해 왜곡된 기억은 어디서부터가 시작인지 알 수 없으니 최대한 깊이 생각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그가 절대 알지 못할 기억들부터 떠올려야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럴 수 없다. 경원은 그것을 위해 내가 기억하지 못할 기억들을 이야기해 주었다. 흐릿한 기억을 끌어오려 애쓰며 차분하게 말하던 그가 길게 숨을 내뱉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의 말은 그를 포함한 우리 세 사람을 아프게 만들었던 순간의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실은 그 전부터 알고 있었어. 은성이가 병원에서 너를 봤다더라. 난 그때 막 다음 작품 준비 중이었고, 신경 쓸 겨를이 없었어.”

 “그래서?”

 “모르는 척 했어. 네가 나랑 얘기하고 싶어 할 때도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피하기만 했지. 그 상황에서 네 얘길 듣는다 해도 난 진심으로 그걸 다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었으니까.”

 “그게 말이 돼?”

 “알아. 근데 그땐 나만 생각했어. 사실 조금 지쳐있었던 거야. 넌 늘 우울했었으니까.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나는 잘 모르고 있었고, 그냥 괜찮다고 하는 네 말을 믿었던 거지.”

 “꼭 내 탓인 것 같네.”

 “아니, 그런 뜻은 아니야. 나중에 작품 다 끝내고서 몇 번인가 은성이한테 연락을 받았어. 그때부터 네가 의심하기 시작했고, 난 알면서도 외면했지.”

 “그래서 속여서 미안하다고 했던 거야?”

 “마침 딱 보기 좋게 은성이랑 말이 통했고, 조금은 숨이 트이는 것 같았어. 우리 둘 다 너를 걱정하고 있다는 게 통했는데 그 이상이었는지도 몰라. 그래서 실은 정말 흔들리기도 했었어. 그렇게 힘들어 하는 널 두고 내가 지금 뭐하는 짓인가 싶긴 했어. 은성이한테도 사실대로 얘기했었어, 흔들린다고.”

 “정말 대단한 우정이다.”

 “미안해. 근데 난 너 조금이라도 기분 좋아지게 해주려고 은성이랑 계속 만날 수밖에 없었어. 네가 좋아했던 순간들 보면서 잠깐이나마 웃었으면 했거든. 네가 기억하는지는 몰라도 어느 순간부터 넌 전혀 웃지를 않았어. 그래서 그날, 네가 마음에도 없는 독한 말을 늘어놨던 날. 곧 마무리만 하면 되는 거여서 일부러 은성이가 너랑 약속 시간 미루고 나랑 먼저 만나기로 했었어.”

 내 기억 속 한 장면이 새롭게 재구성 된다. 그때의 감정은 내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었지만 그에게는 너무도 독하게 남아있었다. 지독하게 따라붙던 그 죄책감을 그는 너무나도 조용하게 말해 나갔다. 그날 그의 말은 내가 생각한, 은성이 생각한 그런 의미의 말이 아니었고, 나와 그녀의 오해였을 뿐이었다. 그의 이야기가 여기서 잠시 멈추었다 이어지면서 나의 다른 기억이 앞으로 나타났다. 그가 집에 찾아왔고,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의 할 일을 했다. 그건 나를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한다. 그날 그가 집으로 돌아가기 전 내게 건넸던 것은 두 사람이 만들어낸 나의 소중하고 행복했던 추억들이었다. 책으로 만든 그것을 끌어안고 나는 한참이나 울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경원이 나에게 건넨 마지막 선물이라 여겼다. 그래서 결국 나는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 것이었다는 말을 끝으로 그는 마무리를 지었다.

 “결국 제대로 의사소통을 하지 않은 게 문제였네.”

 “시도는 했지.”

 “근데?”

 “이미 마음을 닫은 넌 듣고 싶어 하지 않았어.”

 애써 태연한 체하며 말하는 경원의 표정에 씁쓸함이 묻어났다. 비겁한 나는 지금 순간을 외면하려 화제를 돌렸다. 이어져야 할 이야기는 그걸로 끝이 아니니 말이다. 그는 다른 기억을 떠올리려 노력하다 끊어졌던 이야기를 다시 이어 붙였다. 내가 기억하지 못할 한참 이전의 기억이었다. 나의 우울이 시작 되려 했던 순간인 듯싶은 그때의 이야기는 모르는 편이 나았을 지도 모르겠다. 계속 이어나가는 것들은 이제 내 안에서 흩어지기 시작한다. 그건 제자리를 찾으려고 하는 것 같기도 했지만 결국은 나를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모든 기억이 한 순간에 사라지려했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 어긋나고 있던 것들을 불러 모아 빼곡히 기록해 두었다. 나의 기억과 경원이 들려준 이야기로 나뉘었고, 은성의 기억도 담겨있었다. 이렇게 하면 결국 온전한 나의 기억이 되어 돌아와 줄 테니까.

 매일 내 퍼즐들은 전쟁이라도 하는 것처럼 흩어졌다 모이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또렷하게 비친 것은 김석호의 기억들이었다. 은성도, 경원도 알지 못하는 기억들은 어찌 보면 그가 자기 멋대로 만들어낸 것들이니까. 자꾸만 원점으로 돌아오는 질문은 이 게임을 아주 재미있게 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지루하기만 한 소리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모든 것이 명확해졌을 때에야 그는 내가 누구도 믿지 못해 다시 그에게 돌아오기를 원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즈음 경원의 책은 막바지에 도달해 있었다. 그의 책이 완벽히 완성 되어 내 손에 들렸을 때, 나는 그것을 들고 김석호를 찾아갔다.

 마치 내가 올 것을 예상하고 있었던 사람처럼 너무도 평온해 보이는 그를 보니 곱게 웃을 수만은 없었다. 뾰족하게 날선 말에도 그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다만 뭐가 그리 즐거운지 싱글벙글 웃을 뿐이었다. 하지만 내가 뱉은 말에 그 미소는 깨지고 말았다. 어쩌면 이번 게임의 승자는 나일지도 모르겠다. 그를 마주보고 앉아 방금 했던 질문을 그대로 되풀이하면 표정이 일그러진다.

 “알고 싶은 게 그게 답니까? 더 궁금한 건 없고?”

 “있어야 하나보군요.”

 “딱히.”

 “질문이라는 게 참 묘해요, 기억처럼. 알고 싶은 건 많지만 하나씩 알아가죠. 우리 지금 시간 많잖아요, 안 그래요?”

 “그래요. 제일 궁금한 게 당신 기억이 내 기억 아니냐는 거였나요?”

 “정확히는 내 기억인 척 가장한 당신의 기억이겠죠?”

 “내가 아니라고 한다면?”

 “그럼 내게 어떻게 기억을 돌려준 걸까요, 당신은? 난 이미 당신 손에 죽었는데.”

 장난 하냐고 말하고 싶었다. 은근 슬쩍 대답을 피해가려 내게 반문하는 것도 이젠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왜 그는 인정하지 않는 것일까. 나를 다시 살려낼 정도로 머리가 좋은 사람이 그런 사소한 것마저 쉽게 알아채지 못한다는 것이 안타까워지는 순간이었다. 어쩌면 머리가 너무 좋은 것도 탈일지 모른다. 지금의 김석호를 보면 뇌에 과부하가 오고도 남은 듯 보이니까. 붉으락푸르락 수도 없이 변하는 그의 낯빛은 내가 뱉어낼 말들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걸로 여겨졌다. 조금만 더 자극을 해볼까 하다가 마주친 그의 눈빛이 날카로워지는 것을 발견했다. 한 발 물러나는 게 좋을 듯싶어 재빨리 책상 위에 책을 내려놓고 천천히 움직였다.

 나를 따라오는 시선을 조심스레 피하며 문을 여는 순간, 그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순순히 이 남자의 말을 따라서는 안 되겠지만 이미 내 손은 문을 닫고 있었다. 그가 내 쪽으로 걸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은성을 통해 들었던 그 상황과 비슷한 듯한 분위기가 흐른다. 그러니 다시 문을 열고 나가야 하는데 좀처럼 몸이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가까운 거리에서 들려오는 숨소리에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돋는다. 움직여야 한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쾅 소리를 내며 내 앞에서 반쯤 열리던 문이 도로 닫혔다. 나보다 한 발 앞선 그의 행동은 이미 내가 다음으로 무엇을 할 지 다 아는 것처럼 보였다.

 “대답은 듣고 가야지, 안 그래?”

 “당신 눈만 봐도 대답은 충분히 될 것 같은데.”

 “우리 시간 많잖아.”

 “땡, 그 시간은 내가 정하는 거죠. 이제 끝났어요.”

 “정말 그럴까…. 여기서 나갈 수는 있어?”

 “그러다 내가 소리라도 지르면 어쩌려고요?”

 “그럴 수는 있고?”

 “왜 못할 거라고 생각하죠?”

 “못하니까.”

 “못하는 게 아니고 안 하는 거예요. 내가 그러면 당신이 어떻게 할 지 알고 있으니까.”

 “오, 그러셔?”

 “이제 비켜요.”

 “내가 정말 그렇게 쉽게 비켜줄까?”

 “안 비키면 뭐, 누군가 문을 열어주겠지.”

 “뭐?”

 “하나, 둘, 셋.”

 똑똑, 노크소리가 경쾌하게 문 너머에서 들려왔다. 씩 웃으며 그를 바라보자 마치 으르렁 거리는 것과도 같은 소리가 그의 목 깊은 곳에서부터 울려 나온다. 그다지 무섭지는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자 문이 조심스레 열리려 했다. 그건 단순한 나의 착각이었을 뿐, 그는 문을 잠가 버렸다. 뭐하는 거냐고 소리치자 그의 입가에 비웃음이 자리 잡는다.

 "뜻대로는 안 되지."

 여전히 기분 나쁜 저 미소를 앞으로 보지 않을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니 제발 저 문을 열고, 문 밖의 탁 트인 공간으로 가게 해줬으면 싶었다. 그럴 마음이 전혀 없는 그가 나를 잡아끌어 다시 의자에 앉힌다. 일어서려 하면 강한 힘이 도로 주저앉히는 통에 결국 일어나는 것을 포기했다. 움직임이 멈추자 잠깐 기다렸다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앉은 그가 다시 시작이라는 듯한 제스처를 보인다. 이 사람에게 절대 지지 않으려면 아무래도 더 많은 인내가 필요할 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대화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 되었고, 마지막은 또 같은 말로 끝이 나고 있었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어 헛웃음이 났다. 일그러지는 그의 표정조차도 지금은 어이가 없을 만큼 웃기기만 할뿐 전혀 무섭지가 않았다. 원래 사람은 극한의 공포 상황에서 조금 더 여유를 갖게 되는 건가?

 내가 찾아야 하는 답을 말해주지 않을 사람과 이렇게 마주보고 있는 건 정말 최대의 시간을 낭비하는 짓이다. 할 수만 있다면 당장 밖으로 나가고 싶지만 그가 나보다 빠를 테니 계속 햄스터 쳇바퀴 돌 듯 반복적인 대화를 할 수밖에. 아마도 먼저 지치는 쪽이 항복을 하고 나면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좀 더 솔직해져 보죠, 우리?”

 “어떻게 말이죠?”

 “내가 알고 싶은 것, 당신이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서요.”

 “내가 뭘 알고 있는데?”

 “모른다고 하려는 거면 소용없어요. 그런 것쯤은 그 똑똑한 머리로 금방 이해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러니까, 뭘 원하냐고.”

 “진실.”

 “무엇에 대한?”

 “당신은 왜 날 죽였을지 생각해 보다 아주 뒤늦게 떠오른 기억 덕분에 알겠더라고요. 아니, 여전히 잘 이해는 안 가요. 근데 다시 나를 살린 거 보면 그게 맞는 것 같더라고요.”

 “그게 뭔데?”

 “당신은 내가 당신의 운명이라고 생각했던 거겠죠. 근데 뜻대로 되지 않았을 테고, 카메라도 당신이 집에 설치했던 거죠. 계속할까요?”

 “계속 해봐.”

 “그래서 그 날 이런저런 구차한 설명을 했겠죠. 내가 무척 불안정한 상태이니 언제 발생할지 모를 사고에 대비한 것이다. 뭐 이런 식이었겠죠, 틀린가요?”

 “우선 더 들어보지.”

 “그리고 내가 뭔가 부정적인 말을 했을 테고, 당신은 그게 화가 났던 거야. 그러니 운명이라 여겼던 나는 더 이상 그런 존재로 보일 리가 없었고 골치 아픈 문제가 되어버렸던 거죠. 결국 당신은 반항하는 나를 붙잡고 어디 해보라는 식으로 죽이기까지 한 거죠. 여기서 궁금한 건, 왜 나를 다시 살렸을까 하는 거예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당신이 만들어 놓은 기억 깊은 곳에 그 답이 숨어있더라고.”

 “그래서, 답을 찾았나?”

 “아니, 찾는 걸 그만 뒀죠.”

 “왜지?”

 “난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하고 싶지 않으니까. 자, 이제 당신이 알려줄 차례예요.”

 어깨를 으쓱이며 그는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 삼십 분, 한 시간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 나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 다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가 내 손목을 붙잡아 세운다. 말할 마음이 생겼냐고 물으면 고갯짓으로 앉으라는 시늉을 한다. 말 해주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털썩 주저앉으니 망설인다. 한참의 망설임 끝에 서랍을 뒤지던 그의 손에 검은 가죽 커버로 된 꾀 묵직해 보이는 노트 한 권이 들려있었다. 크기도 큰 노트가 책상 한 가운데에 턱하니 놓여진다. 가만히 응시하고 있으니 읽어보라는 말을 한다. 의심의 눈초리로 그를 탐색하다 그것을 손에 들었다. 제일 처음 펼친 곳에는 환자 번호와 내 이름 두 글자가 적혀 있었다. 다음 장으로 넘기니 내가 그와 제일 처음 만났을 때일지 모를, 나의 기억 속에는 없는 내용이 나온다.

 ‘비오는 날의 그녀가 누군지 궁금했다. 살면서 한 번도 이렇게까지 예쁜 미소를 짓는 사람은 본 적이 없었는데….’

 첫 줄을 보자마자 왜 이런 내용이 적혀 있나 싶었지만 곧 다음 문장을 읽는 순간 바로 이해가 됐다. 그와 내가 처음으로 만났던 날 건넨 우산 하나와 미소로 인해 나는 지금 이런 상황에 까지 이른 것이다. 그 엄청난 진실의 무게를 견디기가 버거워 곧바로 그것을 내려 놨다. 이제야 정확해지는 답은 솔직하게 말하자면 어이가 없고 소름 돋는 것이었다. 단지 이날 하루, 단 몇 마디의 말과 행동으로 몇 분도 채 되지 않을 그 시간만 가지고 그는 말도 안 될 일들을 해왔던 것. 그걸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당황스러움에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왜 마저 안 읽어?”

 “더 읽을 필요도 없을 것 같은데요.”

 “아니, 끝까지 읽어.”

 강압적인 그의 말투에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고, 내 손엔 다시 그 노트가 들렸다. 차분하려 노력하며 그 많은 페이지들의 수많은 단어와 문장들을 읽어야만 했다. ‘내가 알던 그녀는 완전히 죽어버렸다. 이미 우울에 침체된 사람에게선 그때의 미소도 발견 할 수가 없다. 이대로 나아지지 않는다면 결국 그녀는 극단적 선택을 할지도 모른다.’ 그건 틀리지 않았지만 그렇다면 왜 나를 죽였는지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맨 처음 이해했던 답은 틀렸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울함의 끝자락에서 나는 어떻게 알았는지 그의 카메라를 찾아와 건넸고, 그게 내가 죽은 이유에 속해있었다. 그를 너무 자극했던 것. 사람은 알 수 없는 동물이라는 사실 한 가지를 터득했다. 누구도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도 말이다. 파르르 떨리는 손이 마지막 장을 넘기고 있었다. 나에 대한 기록들이 끝났고, 그를 다시 똑바로 마주했다. 주위의 공기가 떨리기 시작한다.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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