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
 1  2  3  4  5  6  >>
 
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기억의 시간
작가 : charlotte
작품등록일 : 2019.10.6

매일 사라지는 기억, 잊혀진 시간 속 어딘가에서 찾아야하는 스스로의 답. 불완전하기에 완전해질 수 있는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
어느 누구 하나 믿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날들을 보내던 그녀가 찾은 기억의 조각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한 사람을 위해 쓰인 책1
작성일 : 19-11-10 14:27     조회 : 231     추천 : 0     분량 : 8112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처음으로 책을 쓰기 시작했던 것은 슬의 권유였다. 내가 심심함을 견디지 못하고 끄적이던 노트를 빼앗아 들고 읽어보던 그녀의 표정은 진지했다. 그러더니 내게 글을 써보라고 했다. 그때는 그저 자신감을 주기위해 하는 선의의 거짓말 정도로 여겼었다. 그래서 장난스럽게 웃어넘겼고, 이후로도 줄곧 내가 무언가를 쓰고 있을 때면 한 번씩 그런 말을 했었다. 매일 조금씩 써 내려갔던 글은 어느 순간 책이 되어 세상 밖으로 나와 있었다. 그즈음 나와 슬의 사이는 틀어져있었고, 결국 나는 그녀의 친구였던 은성을 이용하기 까지 했다.

 어느 날 은성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은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날부터 글을 쓰는 것을 멈추게 되었고, 밀려드는 갖은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그녀의 첫 자살시도 이후 몇 번이고 은성을 통해 듣게 되는 그리 반갑지 않은 소식은 나를 고립시켰다. 그날 슬이 내게 했던 말 그대로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괴롭혔다. 다시 되돌릴 수만 있다면 그때로 돌아가 모든 실수와 잘못들을 바로잡고 싶었다.

 그로부터 멀지 않았던, 비가 오려는지 하늘도 회색빛 우울을 뿜던 날이었다. 잡히지 않는 글머리를 억지로 잡아당기고 있던 내게 은성의 전화는 달갑지 않았다. 짜증스럽게 전화를 받으니 흐느끼는 소리만 귓가를 파고들었다. 불길한 예감이 고개를 들었고, 그녀의 목소리가 힘겹게 뱉어낸 말에 전화를 잡고 있던 손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쿵 소리를 내며 떨어진 핸드폰 너머에서는 여전히 울고 있는 은성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리고 있었다. 애써 현실을 부정해보지만 그런다고 이미 벌어진 일이 돌려지지는 않는다.

 집을 나서는 걸음이 무거워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슬의 죽음은 결국 나로 인한 것이니 나는 그녀에게 가야만 한다. 이제는 어떤 사죄의 말도 할 수 없게 되었지만 그러니 더욱 그녀에게로 걸어 나가야만 한다. 그것이 나의 벌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땅의 중력이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것만 같다.

 “슬아, 내가….”

 상주도 없는 장례식이었다. 일찍 가족을 잃었던 그녀에게는 상주가 되어줄 그 누구도 없었다. 그 상황에서 묵묵히 상주의 자리를 지키고 있던 것은 난생 처음 보는 낯선 남자였다. 꺼림칙한 기분이 나를 둘러쌌지만 더 이상 내가 관여할 수 있는 것은 없을 테니 그저 조용히 그녀의 죽음을 애도했다. 이제 나는 나의 방식으로 슬의 아팠던 과거를 어루만져야 할 것이다. 그것이 내가 그녀에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이며, 벌일 테니.

 슬의 장례식이 모두 끝나고 난 뒤에 집으로 돌아와 노트북을 펼쳤다. 차분히 써내려간 글은 나의 이야기였고, 그녀의 아픔이었다. 거의 완성 되었던 글 위에서 깜빡이는 커서를 한참동안 노려보았다. 절대 완성 될 수 없는 문장 앞에서 나는 빼곡하게 적여 내렸던 것을 모두 지워냈다. 이렇게 글을 쓴다 해도 이제는 그것을 알아줄 존재가 이미 사라진 이후라는 것을 안다. 그러니 더는 이 글을 쓸 수 없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낯선 번호로 연락이 왔다. 나와 만나고 싶다는 말에 수없이 거절했지만 상대편의 남자는 길게 한숨지으며 슬의 이름을 거론한다. 불가항력일지도 모른 무언가에 의해 나는 그를 만났다. 자신을 의사라 소개하며 조심스럽게 꺼내드는 남자의 이야기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이상하리만치 차분한 그의 행동이 더욱 내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건 무리입니다.”

 “왜죠?”

 “이거 봐요, 김석호씨. 당신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건지는 알고 있는 겁니까? 한 사람의 생명으로 어떻게 그런 무모한 짓을 할 수가 있는 거죠? 당신 진짜 의사가 맞기는 합니까?”

 “…다시 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건 아니죠! 사람이라면 이런 일은 해서는 안 된다는 것쯤은 알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어떻게 생을….”

 “이은성씨는 이미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여자만큼의 간절함은 없으신가봅니다? 자신이 했던 잘못은 생각 안 하십니까, 옛 연인으로써? 이번에 다시 만나면 그 죗값 제대로 치르시면 되는 것 아니냐는 말입니다.”

 그의 말에 입이 움직이지 않았다. 이미 다 알고 찾아온 남자는 내게 제법 흔들릴 만한 제안을 들고 왔다. 하지만 이건 미친 실험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결국 나는 그의 제안을 수락 할 수밖에 없었다. 그 남자는 사람을 다루는 법을 잘 알고 있는 듯이 보였으니 말이다. 이쯤에서 가장 충격을 받았던 것은 은성이 이런 터무니없는 실험적 제안을 이미 받아들였다는 것이었다. 나의 증오는 이때부터 불씨를 지피기 시작했다.

 슬이 죽은 지 벌써 1년이었다. 그녀의 죽음을 김석호는 마치 없었던 일인 듯 되돌려 놓았다.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슬의 얼굴은 전과는 조금 달랐지만 여전히 그대로였다. 매일 그 모습 그대로 미동조차 없는 그녀를 마주하는 일은 내게 더 큰 괴로움을 선물했다.

 깨어날 것이라고 했던 날에도 슬인 여전히 눈을 뜨지 못했다. 참다못한 은성이 김석호에게 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는 가지런한 눈썹을 밀어 올리며 그녀를 내려다 봤다. 그날, 다시 마주친 은성의 모습은 지쳐보였다. 꼭 흠씬 두들겨 맞은 사람처럼 축 처지던 모습을 보고서도 나는 그저 증오에 차서 그런 것 따위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결국 몇 번의 다툼을 끝으로 서로를 향한 감정은 잘못된 방향으로 끊어져 버렸다.

 드디어 깨어난 슬은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뜻 모를 분노가 나를 향해 채찍질을 시작했다. 그때부터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녀의 기억을 위해, 잊혀진 그 순간들을 위해. 만일 슬이 모든 기억을 되찾는다면 그땐 새롭게 시작할 그녀의 인생을 돕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날이 지나도 그녀는 나를 기억해내지 못했다. 어느 날인가 그녀가 나를 보자마자 애써 웃어보였다. 그리고는 나를 끌어안고 한참을 울었었다. 기억이 돌아온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보기 좋게 빗나간 나의 착각일 뿐이었다.

 매일 조금씩 나아지는 그녀의 건강과는 별개의 문제인 것인지 슬은 아무것도 기억해내지 못했다. 화라도 내면 좋으련만 그것은 단지 나의 부질없는 욕심일 뿐이었다. 문득 어쩌면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그녀가 나를 기억하지 못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랐다. 슬이 나를 기억해내지 못한다면 나는 더 이상 그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지 못할 것이고, 조금의 사죄도 하지 못할 테니 말이다. 나의 이기심은 이때부터 크기를 키워나가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첫 책이 완성 됐고, 떨리는 마음으로 그것을 건넸을 때에도 슬은 아무것도 알아채지 못하는 것 같았다. 씁쓸함에 돌아가는 걸음이 끌리고 있었다. 그렇게 네 권의 책이 완성됐다. 전부 기억에 관한 것이었고, 그녀만을 위한 것이었지만 여전히 슬은 그것을 알지 못한다. 내가 건넨 책을 잘 읽고 있다고 하는 말을 들어도 조금도 기쁘지가 않았던 것은 나를 떠올리지 못하는 까닭일까?

 전에도 그랬듯이 그녀와 나는 침묵 속에서 각자의 일을 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함께 석양이 지는 것을 바라본다. 그렇게 함께 있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해야 하지만 이제는 그만 나를 알아봐주기를 원한다. 결국 내가 뱉어낸 못된 말로 인해 슬은 슬퍼했다.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린 나의 이기심 탓으로. 우리는 다시 침묵을 지켰다. 부러 모질게 대했던 그 말들과 행동에 자책하며 오늘도 글을 써내려간다. 오로지 한 사람만을 위한 글을 그녀가 알아봐주는 순간이 온다면, 그때는 내가 먼저 모든 것을 털어놓을 것이다. 나를 의심하지 않고, 여전히 기다려주는 그녀를 위해서.

 지금 생각해보면 모든 순간들 속의 슬은 나를 경계하고 있었다. 자신을 부정했고, 내가 아닌 은성을 더 먼저 찾았다. 어찌 보면 당연할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그다지 달갑지만은 않았다. 하루라도 빨리 나를 기억해주길, 내게 화를 내며 왜 그랬느냐고 물어주기를 바랐다. 모순된 감정이 스스로를 망치고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 더 이상 슬을 마주할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김석호는 더는 그녀의 곁에 있을 수 없겠다고 말하는 나를 짜증 가득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리고는 단칼에 내 요구를 거절했으며 잠깐 쉬고 오라는 소리만 했다. 계속 되는 요구에 그가 택한 것은 돈이었다. 얼마든 줄 수 있으니 시키는 대로 하라고 하던 그의 태도에 울컥 화가 치밀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잠깐의 휴식이 아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돌아서 나와 집에 틀어박혔다. 며칠 지나니 김석호에게서 연락이 왔다. 원치 않는 그의 돈은 이미 내 수중에 들어와 있었고, 결국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슬에게 돌아가야 했다. 다시 만난 그녀는 나를 향해 환히 웃어주었다. 그러니 나는 이제 내 모든 것을 걸고서라도 그녀를 지켜야 한다.

 매일 쉬지 않고 글을 써내려갔다. 이것이 어떤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는 이뿐이었다. 마지막 책 이후로 내가 쓰고 있는 것은 그녀에 관한 것이었다. 이렇게까지 열심히 글을 써본 적이 있기는 했었는지 모를 만큼 몰두해 있었다.

 오늘도 슬을 만나기 위해 작업할 것을 챙겨 병원으로 향했다. 그다지 마주치고 싶지 않은 은성과 병실 앞에서 마주쳤고, 내게 할 말이 있다고 한다. 말을 섞고 싶은 마음이 없기에 그대로 지나치려는데 슬의 일이라는 말에 은성의 뒤를 따른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막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김석호를 발견하지 못한 그녀를 위해 걸음을 멈춰 세웠다. 잔뜩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은성에게 부러 화를 내며 말했고, 자연스럽게 되받아친다. 그가 가까워지며 무슨 일이냐 묻는다. 그녀를 알고 처음으로 가장 부자연스럽고, 긴장한 모습으로 그를 마주하는 것을 보니 그동안 간과했던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다른 이의 시선을 의식한 것인지 김석호는 나를 자신의 방으로 이끈다. 그리고 마주한 것은 그의 추한 본성이었다. 그것을 모르고 있던 것은 아니었으나 나는 그에게 어떠한 말도 더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내 머릿속에 울리는 경고등은 빨리 슬을 이곳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기억을 찾았든 아니든 말이다. 그 답답한 곳을 빠져나와 멍하니 슬의 병실 앞에 다가 선다. 잊고 있었던 은성의 말이 떠올라 서둘러 걸음을 옮긴다. 아무도 없는 복도 끝에서 전화를 걸었다. 한참 만에 전화를 받은 은성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작게 속삭인다. 슬의 기억이 돌아왔다. 잠시 왜 그녀가 자신에게는 그것을 숨겼는지 의문이 생겼다. 그 다음은 배신감이었다. 스스로에게 느끼는 분노였을지도 모를 감정에 돌진하듯 슬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막상 그녀를 보고 있으니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나는 그녀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을 테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고 싶지만 지금 내 눈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나와는 반대로 아는지 모르는지 평소와 다름없이 나를 대하는 슬의 모습에 애써 태연하려 노력했다. 내가 줬던 책을 읽고 있던 그녀가 고개를 들어 나와 눈을 맞춘다. 참 예쁘게도 웃으며 내게 말을 건다. 이 질문을 하는 이유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쉽게 말을 할 수가 없지만 장난스럽게 대답을 유도하는 것에 조금은 용기를 내본다.

 “내가 상처 냈던 날들, 수없이 했던 거짓말들.”

 이후 나는 은성의 말처럼 슬이 기억을 찾았다는 것에 확신했다. 하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아직 나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에게 작은 확신이라도 주고 싶다. 고민 끝에 내가 건넸던 그 책들에 관한 의미를 돌려 말했다. 옅은 미소가 그녀의 입 끝에 걸린다. 처음으로 슬의 입에서 내 이름이 불려졌다. 아직은 어색한 칭호에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렇게라도 좀 더 다가섰다는 것이 다행인지도 모른다.

 그녀에게 마지막이라며 건넨 책은 다른 것들보다는 얇았다. 에둘러 표현한 그녀의 이야기라는 것을 슬인 알고 있을까. 차라리 모르는 편이 지금으로썬 좋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병실을 나와 엘리베이터 앞에 서는데 김석호가 내 옆에 다가와 선다. 잔뜩 흐트러진 모습에 의아해하는데 그가 나를 향해 소름끼치는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말에 나의 동공이 지나치리만큼 확대되는 느낌이 든다.

 김석호의 방으로 달려가 문을 여니 그곳에는 은성이 바닥에 널브러져있었다. 그동안 몰랐던 것은 그가 단 한 번도 그녀의 얼굴에는 손을 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제야 알아챈다. 힘없이 늘어지는 은성을 들쳐 업고 병원을 빠져나갔다. 거리의 모든 이의 시선이 내게 꽂히는 것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눕힌 그녀가 괴로운 신음을 토한다. 진작 알았더라면 막을 수 있는 일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고개를 들었다. 보살핌이 필요해 보이는 은성의 곁에서 밤을 꼬박 지새우고 그녀의 부탁대로 나는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절대 말하지 말아달라고 했던 은성의 당부는 슬이 화를 내는 순간 깨지고 말았다. 분노에 찬 그녀의 눈이 붉게 이글거린다. 지금은 어떠한 도움도 줄 수 없다는 것이 쓴 맛을 낼 뿐이었다. 하루 종일 슬은 어떠한 말도 더 하지 않았다. 익숙한 그 침묵 속에서 우린 서로 다른 일을 하고, 지는 석양의 빛을 바라봤다. 어둠이 그 찬란한 빛을 집어 삼키고 나면 나는 돌아갈 준비를 한다.

 은성은 여전히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누워 멍하니 천장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이 더 힘들지도 모르는 그 상황에서도 돌아온 나에게 슬의 안부를 묻는다. 괜찮다는 말을 듣고서야 안심하는 것을 보니 그녀는 나보다도 더 슬을 위하고 있는 사람인 것 같다.

 밤늦도록 편지를 썼다. 그녀의 시작에 대해서 쓰고 있으려니 내가 짊어져야 하는 죄책감의 무게가 고스란히 어깨를 찍어 내린다. 허공에 뿜어 올린 숨은 그것을 전혀 덜어주지 못했다. 새벽녘에 다시 밖으로 나와 슬에게로 돌아갔다. 잠이 들려던 그녀를 깨워 손에 그것을 꼭 쥐어주고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왔다. 김석호가 본다면 분명 그것을 빼앗으려 할 테고, 그 다음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니 말이다.

 아무래도 지금 쓰고 있는 글은 완성할 수 없을 것 같다. 며칠 동안 그녀의 죽음부터의 이야기를 다듬고 다시 쓰기를 반복했지만 그 끝은 여전히 쓸 수가 없었다. 결국 미완성 상태의 것을 들고 나가 재본을 맡겼다. 오로지 한 사람만을 위한 마지막 책을 손에 쥐었을 때, 곧장 병원으로 가지 못했다. 지금은 나도, 은성도 그곳에 가지 않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나를 대신 할 사람이 필요하다.

 병원 근처를 서성이다 마침 모자를 푹 눌러 쓴 사람을 만났다. 이유는 모르지만 의상은 전부 검은색으로 맞춰 입은 그 사람에게 슬의 병실을 알려주고 책을 부탁했다. 흔쾌히 내 부탁을 수락한 그 사람이 경쾌한 걸음으로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잘 전달했다며 웃는 그에게 나는 작은 사례를 했고, 만족한 듯 그 사람은 자신의 걸음을 재촉했다.

 은성은 많이 회복 되었는지 이제는 제법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고 이리저리 배회하는 그녀의 행동에 긴 한숨이 새어나왔다. 슬의 안전은 아직 괜찮다 말했지만 그것은 은성의 불안을 잠재우지 못했다. 그녀가 아는 한 김석호는 절대 슬을 그냥 두지 않을 것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나와 은성은 그 남자에게 반격을 가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가 모르게 진행할 수 있는 방법은 내가 글을 쓰는 것이었다. 지금 써내려가는 이 이야기는 온전히 김석호를 망치기 위해서 쓰이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사실 하나가 그 앞을 가로막았다. 그는 대체 언제부터 슬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거기서부터 막히기 시작한 우린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은성은 슬을 만나기 위해 아직은 힘든 몸을 이끌고 병원으로 향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지친 기색을 보이며 돌아온 그녀는 그대로 침대 위에 쓰러졌다. 잠든 것 같기도 한 은성을 건들이지 않기로 했다.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며 차분히 생각을 정리했다. 그러다 문득 김석호는 어떻게 나에 대해, 은성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슬의 죽음에 무슨 연관이 있으며 어째서 그녀를 다시 살리려 했던 것일까.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의문들만 존재한다. 어디서부터 시작해 어디에서 끝을 내야하는지 모르겠다.

 “김석호 봤어.”

 “그래?”

 “그 사람이 나 보고 뭐라고 했는지 알아?”

 “뭐라고 했는데?”

 “안 죽었네?”

 소름이 돋았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를 않는다. 순간적으로 모든 사고가 멈춰버린 탓이었다. 입만 뻥긋거리고 있는데 은성이 웃기 시작한다. 어쩌면 발악인지도 모를 그런 웃음은 그녀의 심정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어느새 그것은 울음이, 은성의 분노가 되어있었다.

 

 
작가의 말
 

 .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22 왜곡된 기억2 2019 / 11 / 10 227 0 2637   
21 왜곡된 기억1 2019 / 11 / 10 239 0 8093   
20 착시2 2019 / 11 / 10 218 0 4523   
19 착시1 2019 / 11 / 10 198 0 5639   
18 기억의 끝에서의 시작3 2019 / 11 / 10 223 0 3732   
17 기억의 끝에서의 시작2 2019 / 11 / 10 244 0 5687   
16 기억의 끝에서의 시작1 2019 / 11 / 10 243 0 4108   
15 한 사람을 위해 쓰인 책2 2019 / 11 / 10 224 0 5217   
14 한 사람을 위해 쓰인 책1 2019 / 11 / 10 232 0 8112   
13 그녀의 이야기4 2019 / 11 / 10 214 0 4437   
12 그녀의 이야기3 2019 / 11 / 10 226 0 7752   
11 그녀의 이야기2 2019 / 11 / 10 210 0 7178   
10 그녀의 이야기1 2019 / 11 / 10 222 0 7490   
9 기억의 조각들 8 2019 / 11 / 10 222 0 6153   
8 기억의 조각들 7 2019 / 11 / 10 245 0 6153   
7 기억의 조각들 6 2019 / 11 / 10 212 0 5586   
6 기억의 조각들 5 2019 / 11 / 10 217 0 6616   
5 기억의 조각들 4 2019 / 11 / 10 223 0 5813   
4 기억의 조각들 3 2019 / 11 / 10 227 0 7643   
3 기억의 조각들2 2019 / 11 / 10 231 0 4008   
2 기억의 조각들 1 2019 / 11 / 10 234 0 7936   
1 이야기의 시작, 2019 / 11 / 9 363 1 5829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