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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기억의 시간
작가 : charlotte
작품등록일 : 2019.10.6

매일 사라지는 기억, 잊혀진 시간 속 어딘가에서 찾아야하는 스스로의 답. 불완전하기에 완전해질 수 있는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
어느 누구 하나 믿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날들을 보내던 그녀가 찾은 기억의 조각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녀의 이야기3
작성일 : 19-11-10 14:24     조회 : 225     추천 : 0     분량 : 7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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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쩐 일인지 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남자가 문을 열어준다. 이런 과잉친절이 오히려 내게 더 큰 불안을 선물했다. 등 뒤에서 소리 없이 문이 닫히자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돋아난다. 눈을 질끈 감는다. 한참이 지나도 그는 내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작은 숨소리 하나도 들리지 않는 숨 막히는 순간.

 “눈 떠.”

 나지막하게 건네 오는 말에 조심스레 눈을 뜨면 남자는 나를 향해 자조적으로 웃는다. 딱 웃는 것 말고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것이 나를 더욱 더 깊은 불안의 늪으로 몰아넣는다. 그와 있으면서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극도의 공포에 조금씩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걸 본 남자는 웃는 것을 멈추고 딱딱한 얼굴로 빤히 내 얼굴을 바라본다. 순간적으로 내게 가까워진 그의 얼굴엔 분노가 서려있었다. 대체 왜, 왜 내게 이러는 것인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남자친구?”

 “네.”

 “한경원은 아니었고? 대체 무슨 수작들인 거야.”

 “….”

 “은성아, 나는 대답 안 하는 게 제일 싫어.”

 “그 사람은 환자 보호자일 뿐이니까요.”

 “그게 정말 내가 원하는 대답인 것 같니?”

 “그 사람하고 저는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

 “또, 또. 내가 너네 둘이 무슨 사이였는지 몰라서 이러고 있는 줄 아니? 야, 내가 아무것도 모르면서 너네를 여기에 불러다 놓은 건 줄 알아?”

 “….”

 “또 이러네. 은성아, 제발 나를 더 화나게 하지 마. 무슨 꿍꿍인지 들어나 보자. 뭘 숨기고 있는 거야, 왜 숨기는 거야. 빨리 말해.”

 “아무것도 숨기지 않았어요. 진짜에요.”

 “야, 속일 사람이 따로 있지, 내가 바본줄 알아? 네가 나를 속이려고 하면 어쩌자는 거야. 내가 너를 몰라? 똑바로 말해.”

 “차라리 그냥 때리세요.”

 “뭐?”

 “제 말 안 믿으실 거면 그냥 때리세요.”

 “…알았어, 가봐.”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으로, 뒷맛이 찜찜하다는 그 얼굴로 매섭게 나를 노려보던 남자의 입에서 의외의 말이 튀어나왔다. 깜짝 놀라 그의 눈을 똑바로 마주보자 소름끼치도록 환하게 미소 짓는다. 조금씩 뒷걸음질 치다 돌아서는 순간, 남자의 우악스러운 손길이 내게 다가온다. 그리고 기억이 끊겨버렸다.

 

 03. 기억의 시간

 내게 가까워진 경원의 눈빛이 심하게 요동치는 게 보인다. 침착하려 애쓰며 활짝 웃자 어색하게 미소를 머금는다. 가까이 다가앉으면서도 여전히 내게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던 그가 입만 달싹인다. 겨우 결심이 섰는지 조용히 나를 부르더니 또 다시 말이 없다. 침묵이 일상이라 그런지 그의 행동이 전혀 부자연스러워 보이지 만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왜요?”

 “내가 무슨 말을 들었는데….”

 “네?”

 “혹시, 혹시 말이야.”

 “네.”

 “…아니야.”

 무슨 말을 하려던 건지 대충은 알 수 있을 것 같지만 그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오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마치 눈치를 보듯 계속해서 나를 힐끔 거리던 그는 결국 말하기를 포기한 듯 고개를 휘젓는다. 아무래도 아직은 때가 아닐지도 모르니 조금은 더 기다려 줘야할 것 같다. 그에게서 시선을 거두며 들고 있던 책을 다시 펼쳤다. 여전히 내게 머무는 그의 시선을 느꼈지만 부러 말을 아꼈다.

 ‘기억이 머무르는 시간은 어쩌면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짧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보다 긴 것일 지도 모르지만 결국에는 그 시간들도 내게 돌아올 것이다. … 아무도 말하지 않는 시간은 간절히 알고자 할 때에야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는 법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것이 나타났을 때는 조심해야 한다. 때론 그것이 독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책을 읽던 것이 이 부분에 와서 멈춰졌다. 내가 모르는 것에 대한 진실은 어쩌면 책에서 하는 말대로 내게 독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걸 알아내지 못한다면 나는 이곳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을 지도. 그러니 결국 나는 독이 든 잔을 들어야 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 사실이 두렵지는 않았다, 그건 나를 죽일 수 없을 테니까. 문득 아직도 그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경원과 시선을 맞추었다.

 “이거 어떻게 생각해요?”

 “응?”

 “기억의 시간, 내가 간절히 알고자 하면 알게 되는 독이 될지도 모르는 그 시간.”

 “글쎄, 잘 생각 안 해봤는데.”

 “그런 것치고는 꽤나 길게 밑줄을 쳐 놨는걸요? 혹시 부끄러워서 그래요? 나는….”

 “기억은, 내가 모르는 시간이 반드시 존재해. 알려고 할수록 괴로워지는 시간들도 있어. 가끔은 차라리 그 시간을 기억 속에서 없애고 싶기도 하지. 지금 넌 기억이 없으니 잘 이해는 안 가겠지만.”

 “없애고 싶은 기억 속의 시간은 뭔데요?”

 “내가 상처 냈던 날들, 수없이 했던 거짓말들.”

 그의 말에 어떠한 대답도 할 수 없다. 빤한 시선으로 그의 말을 곱씹다 옅은 미소를 입가에 새겼다. 그 말은 분명 나를 향한 것이라는 걸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 아무 말도 더는 하지 않았다. 나와 시선을 맞추고 있는 그의 표정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변해가고 있다. 작은 숨이 새어 나오면 손을 움직여 그의 어깨 위에 내려놓는다. 경원은 그런 나의 행동에 쓴 웃음을 짓는다. 분명한 것은 그는 내가 기억을 찾은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럴 때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고민하다 말을 이었다.

 “괜찮아요. 그것도 다 이유가 있으니 없어지지 않는 것일 수도 있잖아요.”

 “정말 그럴까?”

 “그러길 바라요. 당신도, 은성씨도 괜찮았으면 좋겠어요.”

 “….”

 “난 전부를 기억하고 싶어요.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그 시간을 전부 다. 여전히 아무런 기억도 떠오르지 않는 게 너무 힘들어요. 이런 기분 이해 못하죠? 최근에 당신 나한테 계속 기억 못한다고 은근히 막 대했잖아요.”

 장난스럽게 마무리하는 내 말에 그에게 괴로움이 깃든다. 말을 멈추고 씽긋 웃었지만 그의 표정은 여전히 힘겨웠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것 같은 그런 얼굴을 하고서 할 말을 찾는다. 하지만 쉬이 말을 이어나가지 못하는 그에게서 죄책감과 같은 유형의 감정이 엿보인다. 슬쩍 떠보려 했던 것이 조금은 지나쳤는지도 모른다.

 “내가, 내가 미안해.”

 “미안할 필요 없어요. 내게 잘못한 적 없잖아요.”

 “아니, 했어. 너에게도….”

 “그런 말하지 마요.”

 “다 알고 있잖아, 슬아.”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미안해, 너를 이렇게 만든 것도 결국은 내 잘못이야.”

 “그래, 일말의 죄책감이라도 남아 있다면 이제부터라도 속죄하면서 살아요. 그러면 되죠.”

 그가 나의 말에 뒤로 물러선다. 숨기고 있던 나의 감정이 그와 동시에 밖으로 표출 된다. 나에게 숨기려고만 하던 것들에 대해 나는 이제부터 조금씩 알아갈 것이다. 경원의 눈빛이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그의 어깨를 힘주어 잡으며 다독였다.

 “아, 얘기해 줘서 고마워요. 그런데 나는 이거 보면서 내가 알아야 하는 그 시간은 언제일지 궁금해졌어요. 난 아직 기억이 없잖아요, 당신이 말한 것처럼.”

 “슬아.”

 “네?”

 “내가 준 책들 다 읽은 거지?”

 “그럼요.”

 “그게 내 답이야.”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직은 말할 수 없지만 네가 그걸 알아줬으면 좋겠어.”

 “…고마워요.”

 “더는 너한테 강요하지 않을게, 기다릴게. 네가 전부 기억할 때까지. 그러니까 말해줘, 네가 다 기억하게 되면.”

 “그럴게요.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요, 경원씨.”

 “처음으로 내 이름 불러주네.”

 내가 하는 말에 그의 표정에 얼핏 슬픔이 서린다. 그의 말대로 여태껏 한 번도 그의 이름을 부른 적이 없었다는 것에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든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가 내게 건넸던 그 책들은 전부 기억에 관한 것임과 동시에 내게 믿어달라고 호소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의사에게 결코 들키지 않을 것이었기에 속으로 감탄했다. 그동안 그는 내게 자신의 잘못에 대해 수도 없이 이야기 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제대로 알았다. 시간은 흐르고 있었고, 창밖으로 저물어가는 석양이 더 강렬한 빛을 뿜으며 어둠으로 변하고 있다. 나의 시간은 그 중간에서 멈추어 움직이지 않았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은 분명했다. 경원은 나를 그곳으로 인도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으니 말이다.

 그만 가겠다며 일어서던 그가 내게 다른 책을 한 권 더 건넨다. 마지막 책이라고 말하는 그의 손에 들린 것을 받아들었다. ‘진실’ 너무도 단호하게 적힌 제목에 나는 그를 올려다봤다.

 “이게 마지막이야.”

 “잘 읽을 게요.”

 “그럼 갈게.”

 “내일도 올 거죠?”

 “응.”

 그가 떠나고 읽고 있던 책의 끝 페이지를 서둘러 읽었다. 빨리 마지막 책을 읽고 싶어졌기 때문이기도 했고, 마주하고 싶은 진실을 그 속에서 발견하고 싶어서였다.

 책을 펼치는 순간 끊어졌던 그의 글이 다시 이어진다. 아무리 읽어도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쉽게 파악이 되지 않았다. 무슨 말일지 한참을 고민하고 있다가 무심결에 시간을 확인했다. 그러다 저녁에 오겠다던 은성이 오지 않고 있음이 떠올랐다. 불길한 생각이 들기 시작할 즈음 어쩌면 의사가 나타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뭐해요?”

 마치 맞춘 듯이 의사가 문을 열고 들어와 서성이고 있는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반사적으로 놀란 몸이 움찔 움츠러들었다. 그가 내게 조금씩 가까워지면 불안감이 한층 깊어진다. 뒤로 물러서며 그의 시선을 받아내다 잔뜩 흐트러진 모습을 발견했다. 이제 불길함은 확신에 가까워진다. 어색하게 웃으며 자리로 돌아간다. 아직 그의 물음에 대답하지 못한 것이 떠오르지만 무어라 대꾸해야 할지 모르겠다. 대답은 해야 하지만 말이 입 안에서만 맴돌 뿐이었다.

 “뭐해요?”

 “침대에만 있는 게 답답해서 잠깐 일어났어요.”

 “그랬군요. 상태는 좀 어떤 것 같습니까?”

 “그건 의사 선생님께서 더 잘 알고 있으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혹시나 해서, 확인 차 묻는 거니 그렇게 예민하게 받아치지 마세요.”

 “이미 말씀 드렸던 것 같은데, 기억이 안 난다는 것만 빼면 멀쩡해요.”

 “이상하죠, 의식이 돌아 온지 두 달이 되도록 여전히 기억은 돌아오지 않는 다는 게 말입니다.”

 “저만 그런 건가요, 혹시?”

 “글쎄요.”

 “선생님이 그러셨죠. 애써 기억해내려고 하지 말라고. 그래서 정말 조금의 노력도 하지 않고 있어요. 그런데 지금 이상하다고 하시니까 조금 혼란스럽네요.”

 “아, 그랬었죠. 하지만 이정도로 기억이 안 돌아오는 분은 또 처음이라.”

 “모르겠어요. 어쩌면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 않아서 그러는 건 아닐까요? 선생님은 의사시니까 저보다 잘 아실 것 아니에요. 알려주세요, 제가 왜 아직도 이 모양인지.”

 “….”

 답답하다는 듯이 울먹이며 꼭 하소연 하듯이 하는 말에 의사의 눈썹이 움직인다. 그리고 한참 만에 한숨을 내쉰다. 자신이 의도했던 방향과 다른 대답이었는지 묘하게 차가워진 얼굴로 나를 응시한다. 천천히 몸을 움직여 침대 난간을 움켜쥔 손이 하얗게 질린다. 어찌나 강하게 잡은 것인지 미세하게 떨리기까지 한다. 순식간에 두려움이 나를 집어 삼키고 있었지만 태연하려 애썼다.

 흘깃 쳐다본 시계의 시침이 움직인다. 그가 들어올 때 봤던 건 아홉시 정각이었으니 벌써 한 시간이나 지나버린 것이다. 대화가 끊기고서 그는 단 한 마디도 더 이어가지 않았다. 급격한 피로감이 몰려들어 그대로 쓰러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제발 빨리 그가 이 공간에서 나가주기를 바라고 있었지만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는다.

 다른 이가 아닌 의사와의 조용한 침묵은 전혀 달갑지 않다. 그로부터 삼십분의 시간이 더 흐르고서 그가 낮게 웃는다. 소름이 끼치는 웃음에 인상이 찡그려지고 있었다. 기분 나쁜 웃음 뒤로 그의 표정이 더 없이 차가워진다. 차분하려 애쓰는 건지 깊게 숨을 들이쉬더니 뱉어내는 숨에 말을 함께 토해낸다.

 “좋습니다. 그렇게 끝까지 아무것도 기억하지 마세요. 결국 괴로워지는 쪽이 누구일지 지켜봅시다.”

 의사의 말은 내게 위협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아무런 반응도 보여서는 안 된다. 괴로워 미칠 것 같은 표정으로 그 말에 대응하자 그의 입 꼬리에 조소가 걸린다. 느린 걸음으로 멀어진 그가 문 앞에 우뚝 멈춰서더니 잊고 있었다는 것처럼 행동하며 돌아선다. 싸늘하게 식은 말투가 말을 마침과 동시에 멈추었던 걸음이 움직인다. 멀어지는 그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힘겹게 숨을 뱉었다. 마지막까지 그는 완벽하게 이 순간의 승자였다.

 숨죽인 울음이 터져 나와 나의 괴로움을 현실로 바꾸어 놓았다. 조금 시간이 지나니 노크소리가 들린다. 제발 그 노크가 은성의 것이기를 바라며 고개를 들면 예상과는 다르게도 다른 사람이 멋쩍게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더니 무언가를 내게 건넨다. 이게 뭐냐고 묻는 나에게 은성이 전해달라고 부탁했다는 말만 전하고는 빠르게 사라진다. 마치 두려운 무언가가 이곳에 존재하는 것처럼 불안해보이던 뒷모습이 사라지고 손에 들린 것을 살폈다.

 평범해 보이는 노트였다. 혹시나 싶어 은성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그것을 손에 꼭 쥐고 있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도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기다림에 지쳐 노트를 펼쳐봤다. 다음 순간 나타나는 다소곳한 글씨체로 빼곡하게 적힌 글들은 나의 온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었다. 그것은 내가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기록이었다.

 밤이 새도록 그것을 전부 읽어야만 했다. 나의 의문투성이였던 시간들이, 궁금증들이 그 안에 전부 적혀 있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는 바람에 그것에서 시선을 옮겼다. 나의 시선이 닿는 곳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경원이 서있었다. 지난 밤,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그는 내 곁에 앉자마자 지쳐 쓰러졌다.

 두 시간 정도 지나고 나니 조금은 피곤함이 가신 얼굴로 일어난 그가 나를 향해 피곤을 토로한다. 그 뒤에 또 숨겨진 것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무슨 일 있어요?”

 “아니, 아무 일도 없었어.”

 “제발 이제 나한테 거짓말 하지 말아줘요. 어제는 은성씨가 오지 않았어요. 무슨 일 있는 거 맞죠?”

 “별일 없어.”

 “제발 사실대로 말해줘요. 숨기지 마요.”

 “슬아, 알아서 좋을 게 없어. 은성인 괜찮아.”

 “거짓말 하지 마.”

 “….”

 자꾸만 무언가를 숨기려 든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꼭 알아야만 할 것 같았다.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작게 읊조린 말에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분명히 은성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그건 의사와 연관이 있음과 동시에 나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지금까지 나를 지키기 위해 그 사람의 폭력에 맞서고 있었다. 그럼으로써 나와 나의 기억을 지켜내고 있었다는 걸 이제는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러니 지금도 괴물과도 같은 그 사람으로부터 나를 지키려 하고 있을 것이다. 단호한 시선에 경원의 눈은 떨리고 있었다. 일 분이 한 시간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지나고 그의 입이 무겁게 열린다.

 “은성이 많이 다쳤어.”

 “다 그 사람 때문이겠죠.”

 “더는 말 해줄 수 없어. 부탁 받았거든.”

 “경원씨, 정말 나에게 조금의 미안함을 느끼고 이 일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면 솔직해져요.”

 “그래, 맞아.”

 “지금, 어디 있어요?”

 그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굳게 닫힌 입은 이후의 어떤 질문에도 열리지 않았다. 제발 은성이 무사하기만을 바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느낀 감정은 절망에 가까웠다. 그래서 생각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를. 몇 시간의 생각 끝에 내린 결정은 의사에게서 벗어나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지금 당장은 쉽지 않을 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그 사람이 시작한 게임은 내가 이곳을 벗어나는 순간 룰이 바뀔 것이다. 나를 끈질기게 쫓던 시선이 없어지는 순간이 되어야지만 진짜 게임의 룰이 바뀔 테고, 그래야 이 게임이 끝날 수 있을 테니까.

 며칠의 시간이 지나도 은성은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다른 간호사에게 부탁해 펜을 구했고, 그녀가 쓰기 시작했던 일지의 뒷부분을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그녀가 없는 지금 상황에서는 내가 그것을 채워 넣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은성이 돌아와 이것을 봤을 때 빈 곳이 없기를 바랐다. 그러니 나는 이것을 써야만 하고, 여기에 내가 겪는 일에 대해 빠짐없이 적어 놓을 것이다. 나와 그녀를 위해.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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